5월 총선 이후 서울 시내 대학들은, 학생들이 모이는 것 자체를 막기 위해 모두 문을 닫았다(휴업). 그렇다고 2학기까지 휴업할 순 없었다. 개강하자마자 대학가는 그동안 억눌렸던 에너지가 곧바로 분출했다. 주요 대학 학생회 중심으로 시위나 농성이 벌어졌다.
일부 정치군인들이 이런 학생들에게 본때라도 보이기라도 하듯 시위 현장에 군을 투입했다. 10월 5일 새벽 수도경비사단(지금의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무장 군인 22명이 고려대 학생회관에 난입해 농성 중인 고려대생 5명을 폭행하고 연행한 것이다. 학생들과 시민사회는 경악했고, 고려대와 전국 대학생들은 분기했다.
기왕 벌어진 일, 박정희 정권은 학생들의 기세를 꺾기 위해 즉각 군을 동원했다. 시위가 부정선거 문제로 확산하는 걸 막아야 했다. 정부는 10월 15일 서울 전역에 위수령을 발동했고, 공수특전단과 유격여단이 출동해 서울 시내 대학들을 점거했다. 양택식 서울 시장이 ‘학원의 무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군 투입’을 요청하는 형식이었지만, “경찰은 학원 안에 들어가 시위 주동 학생을 색출하고, 안 되면 군 투입해서라도 질서를 잡으라”고 한 박정희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11월 8일 위수령이 종료되기까지 24일 동안 군과 경찰에 의해 학생 1,880명이 체포되고, 119명이 구속됐다. 23개 대학에서 학생 117명이 제적됐고, 제적과 동시에 군대로 끌려갔다. 서울대학교에선 59명이 제적되고, 강제 입영 당했다. ‘자유의 종’ ‘횃불’ 등 대학가의 많은 간행물이 발행 중단됐으며, 사회법학회, 사회과학연구회, 후진국사회연구회, 문우회 등의 학회가 해체됐다.
위수령에 이어 중앙정보부는 11월 13일 학생운동권을 빨갱이로 내몰기 위한 조작 사건을 또 발표했다. ‘서울대생내란음모사건’이 그것으로 중정은 서울대생 4명을 국가보안법 제1조(반국가단체 구성) 위반, 내란 예비 음모 혐의로 구속했다. 이신범(법대, 서울대 『자유의 종』 발행인), 심재권(상대, 민주수호학생투쟁위원회위원장), 장기표(법대생), 조영래(사법연수생)와 수배중인 김근태(상대) 등 4명이 폭력으로 국가 전복을 모의했다고 터뜨렸다.
학생 4명이 정부를 전복하려 했다니… 참으로 허무맹랑하고 졸렬한 조작이었다. 시민들은 학생운동을 경계하고 주동자를 비난하기는커녕 정권의 치졸한 행태를 조롱했다. 재야단체인 민주수호국민협의회에서는 즉각 변호인단을 구성하고 조작의 근거를 발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내란 음모, 폭발물 사용 음모 등이 사실로 인정된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조영래, 김근태는 김민기가 존경하던 고교 선배였다.
위수령으로 반정부 시위의 예봉은 꺾었지만, 이반한 민심은 걷잡을 수 없었다. 박정희 정권은 이판사판이었다. 영구집권을 위한 체제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차기 선거의 패배는 확실하고, 선거에서 패배하면 군사정권 관계자들은 그동안의 죄과를 피할 수 없었다. 더 근본적인 대책, 더 극단적인 조처가 필요했다.
박정희는 12월 6일 유신 친위 쿠데타의 선행 조처로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중공의 유엔 가입, 북한의 남침 위협을 핑계로 꺼낸 대통령의 ‘비상대권’이었지만, 헌법이나 법률 어디에도 그 근거가 없었다. 공화당은 부랴부랴 근거 법률을 마련하기 위해 12월 27일 대통령에게 비상대권을 부여하는 ‘국가 보위에 관한 특별법’을 날치기 처리했다.
대통령에게 국민의 기본권 전반을 제한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으로, 헌법적 한계를 넘어서는 명백한 위헌이었다. ‘북한의 남침 위험’에 대해선 미 국무부까지도 ‘전혀 타당성이 없다’라고 일축할 정도로 날탕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군사정권이 당시 기댈 건, 유신체제 때 남발했던 ‘비상조치’ ‘비상대권’ 외에는 달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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