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곶감 빼먹기, 그리고 사형 선고의 이례성
최병규의 반헌법 행위 정점은 1977년 서울지법 인천지원 부장판사 시절이다. 같은 배를 타고 함께 납북됐다가 함께 귀환한 안장영, 안희천, 그리고 같은 시기 같은 방식으로 조작된 김흥수까지, 세 사람의 1심을 모두 최병규가 맡았다.
안장영은 1962년, 1964년, 1965년 세 차례나 납북됐다가 영세 귀환어부 관용방침에 따라 모두 훈방됐던 인물이다. 그러나 1976년 같은 배 동료였던 오형근이 간첩으로 조작되면서, 그 진술을 단서로 안장영도 다시 끌려갔다. 고춧가루를 물에 타 코·입·눈에 붓고, 무릎을 밟고, 펜치로 머리카락을 뽑는 고문이 자행됐다. 1977년 11월 18일, 최병규는 이 탄원서를 무시하고 안장영에게 사형을, 부인 최정순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납북어부 조작간첩 사건에서 1심 사형선고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더구나 공소시효가 이미 지난 혐의들까지 '상상적 경합범'으로 묶어 극형을 정당화했다. 2심에서는 박우동(1934~ ) 재판부가 면소사유를 직권으로 지적하며 징역 15년으로 감형했다. 2014년 재심에서 안장영·최정순 부부 모두 무죄가 확정됐다. 안장영은 이미 1992년 세상을 떠난 뒤였다.
안희천은 안장영 내사과정에서 함께 적발됐다. 1977년 12월 30일, 최병규는 검사가 무기징역을 구형한 안희천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무죄가 확정된 것은 2013년 11월, 사건발생 36년 만이었다. 책은 이렇게 적었다.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기소해 안희천과 가족의 인생을 처참하게 파괴한 1심 검사 김성남과 판사 최병규는 안희천 가족에게 사죄의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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