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계에서는 걱정부터 나왔다. 본선 참가국이 기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늘어나자 “경기의 질이 떨어질 것”, “흥행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오랫동안 월드컵 본선에 참가해 온 주류 축구계의 시선은 새로 문이 열린 변방의 나라들을 향해 다소 냉소적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가장 큰 감동은 그 ‘변방’에서 나왔다. 전 세계 축구팬들은 인구 52만명의 이름조차 생소한 섬나라 카보베르데가 쓴 드라마에 환호했다. 카보베르데는 조별리그에서 스페인과 우루과이를 상대로 승점을 따냈고, 32강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와 정면으로 맞섰다. 화려한 스타 플레이어는 없었으나, 서로의 빈틈을 메워주는 유기적인 조직력과 끈기로 이번 대회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를 써 내려 갔다.
32개국 체제의 월드컵은 ‘그들만의 리그’였다. 경험과 자본, 관심은 늘 브라질, 아르헨티나, 독일 등 전통의 강호들에 집중됐고, 변방의 나라들은 본선 무대를 밟을 기회조차 얻기 힘들었다. 기득권은 “자격 미달인 이들에게 문을 열어주면 전체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논리로 장벽을 정당화했다. 소수의 검증된 이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효율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카보베르데는 그 장벽이 무능력을 걸러내는 장치가 아니라, 단지 기회의 독점을 유지하는 도구였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증명해냈다. 문턱을 낮추고 자리를 늘리자, 그동안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던 곳에 머물러 있던 이들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빛날 수 있는지 똑똑히 보여주었다. 하향 평준화라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기회가 넓어진다는 것은 단순히 참가자의 숫자가 늘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이들에게 무대를 내어주는 일이다. 새로운 도전자의 등장은 기존 강자들에게도 긴장감을 안긴다. 경쟁은 느슨해지는 것이 아니라 한층 더 치열해지고, 그 과정에서 공동체 전체가 함께 동반 성장한다.
무엇보다 변방에 머물던 이들의 마음가짐이 바뀐다는 점이다. ‘나에게도 공평한 기회가 올 수 있다’는 믿음은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된다. 이제 카보베르데 어린이들은 너도나도 축구공을 차면서 미래의 월드컵 무대를 꿈꾸게 될 것이다. 결국 기회의 확대는 단순히 문을 넓히는 것을 넘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도전하면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일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월드컵 문호를 넓힌 데에는 분명 상업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그 결단은 축구의 무대를 넓혔고, 뜻밖에도 지구촌 전체에 깊은 위로와 감동을 주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좁은 문을 당연하게 여긴다. 기회를 나누기보다 경쟁의 문턱을 더 높이는 데 익숙하다. 기득권을 지키는 장벽이 더욱 단단해질수록 사회적 양극화는 더욱 깊어지고,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의 좌절과 절망은 우리 공동체에 더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과연 우리 사회에 부족한 것은 실력일까, 아니면 기회일까. 카보베르데가 어쩌면 그 질문에 답했는지 모른다. 사회적 문턱을 낮추고 기회의 판을 넓히는 것은 호의가 아니다. 누구나 노력한 만큼 더 큰 무대에 설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더 많은 카보베르데가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잠재력을 만나는 길이 아닐까.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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