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2월 13일부터 3일간 미 육군 항공대와 영국왕립공군은 폭격기를 동원한 네 차례 공습으로 독일 작센주의 주도 드레스덴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미 육군 항공대는 대공습 이후에도 4월 17일까지 세 차례 더 공중폭격을 수행했다. 연합군의 폭격으로 도시 건물의 90%가 파괴됐다. 무엇보다 엄청난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함으로써 종전 후 폭격의 정당성에 대한 국제적 논쟁이 일어났다.
하늘에서 떨어진 소이탄과 고폭탄은 거대한 화염 폭풍을 일으켰다. 거리의 사람들은 공상과학영화의 한 장면처럼 불덩어리 속에서 순식간에 재가 됐다. 1500도가 넘는 열기에 녹은 아스팔트가 도로 위 사람들 몸을 휘감은 채 타올랐다. 폭격이 끝난 뒤 민간인들이 대피한 방공호들 속에서도 공습이 한참 지난 시간임에도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시신이 수 백구씩 발견됐다.
포로수용소 지하에 있었던 덕분에 살아남은 커트 보니것은 <제5도살장>에서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해준다.
"바깥에는 불이 폭풍처럼 번지고 있었다. 드레스덴은 하나의 거대한 화염이었다.
이 하나의 화염이 유기적인 모든 것, 탈 수 있는 모든 것을 삼켰다. 다음 날 정오가 돼서야 걱정하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미국인들과 경비병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 하늘은 연기로 시커멨다. 해는 약이 바짝 오른 작은 핀 대가리였다. 드레스덴은 이제 달 표면 같았다. 광물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돌은 뜨거웠다. 그 동네의 다른 모든 사람이 죽었다."
드레스덴 폭격은 82년이나 지난 과거지만 무고한 사람들이 죽는 전쟁의 양상은 바뀌지 않았다. 2026년 2월 28일 드레스덴 폭격의 후예들은 이란의 초등학교를 미사일로 공습해 7세에서 12세 사이의 어린이 175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아시겠지만 나는 시간이 존재한 이래로 무분별한 학살을 이어온 행성 출신입니다. 내 동포가 급수탑에서 산 채로 끓여 죽인 여학생들의 시신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동포들은 자기네가 순수한 악과 싸우고 있다며 자랑스러워했죠. 지구인들은 우주에서 무시무시한 존재임이 분명합니다."(<제5도살장> 중)
연합군 측은 드레스덴 공습이 전략적 군사 목표를 파괴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였다고 주장했다. 드레스덴은 동부 전선의 중요한 수송 허브였으며 독일군을 지탱시키는 철도차량기지, 공장 및 산업 인프라가 있는 곳이었기에 공습은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또한 소련군이 전담하고 있는 동부전선으로의 독일군 수송을 막기 위한 소련군의 공중 지원 요청에 따라 진행된 것이었으며, 나치의 기반 시설을 무력화하여 전쟁을 하루빨리 끝내기 위한 조치였다고 말했다.
드레스덴 공습을 비판하는 측은 군사적 목표물을 뛰어넘는 주거 지역에 대한 융단폭격으로 막대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한 사실을 지적한다. 폭격 시기 또한 독일의 패배가 임박한 상황에서 군사적 필요성을 넘어서는 또 다른 고려가 있었음을 의심한다. 연합국임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새로운 대립 관계로 발전하고 있는 소련에 대해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행위이자 독일에 대한 징벌적 파괴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드레스덴은 엘베강의 피렌체라 불리는 문화와 예술의 도시였기에 이 도시를 파괴하는 것과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비판이다. 나치의 잘못을 응징하는 차원이더라도 그 대상이 민간인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계대전을 두 차례나 치렀던 20세기는 광기의 역사라고 한다. 하지만 20세기만 광기의 역사일까?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나라의 대통령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한 나라에 대해 석기시대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공공연히 떠벌린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이미 석기시대가 돼버렸고, 아이들마저 저격수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레바논 남부에서는 폭파 해체 공법으로 철거당하듯 건물이 폭탄에 무너지고 있다. 대다수 언론은 일방적 학살을 두 세력의 갈등이나 충돌이라는 이슈로 덮어버린다. 20세기가 연 광기의 시대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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