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미사일 비축 소모시키는 러-이 공동전선+중국
지금 북부전선에서 우크라이나가 군사시설과 석유관련 시설 등 러시아 영내의 상당히 깊숙한 곳들까지로 공격대상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제공하는 군사정보 덕이다. 남부전선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적하고 있는 이란의 드론이나 미사일 공격이 효과를 발휘한 것은 러시아가 제공하는 군사정보 덕이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단계에서 러시아가 이란으로부터 제공받은 드론(샤헤드)의 도움을 크게 받은 것과 관련이 있다. 미국 미사일 비축을 소모시켰다는 점에서 이란과 러시아는 ‘공동전선’을 펼치고 있다.
게다가 여기에 중국도 관여하고 있다. 북부전선에서 미국과 싸우는 러시아를 경제면에서 지원하고 있는 것이 중국이며, 남부전선에서 미국과 싸우는 이란을 경제면에서 지원하고 있는 것도 중국이다.”
중국은 러시아의 최대 교역대상국이며, 구미의 제재로 국제 결제시스템에서 러시아가 배제당한 뒤 중-러 교역은 미국 달러에서 중국 위안화와 러시아 루블화로 결제수단이 바뀌고 중국 은행들이 러시아의 국제결제를 떠받치고 있다. 중국은 이란에서도 수출입 양면에서 최대 교역대상국이 됐으며, 특히 수출 원유의 90%를 중국이 수입하고 있다.
이처럼 과거 두 개의 세계대전과 비교해서 이번 3차 세계대전은 ‘경제전쟁’ 측면이 강하고, 남북 두 개의 전선은 훨씬 더 긴밀하게 연동하고 있다.
지난 20년간의 이란 근대화와 민주화
토드는 이번 미국-이란 전쟁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놓치고 있는 지난 20여 년에 걸친 ‘이란의 근대화’ 성과에 주목하면서, 그것이 이번 전쟁에서 이란이 전략적 우위를 차지하고 드론과 미사일을 대량생산해 지구전을 펼칠 수 있게 함으로써 전세를 역전시키게 만들었다고 봤다.
그는 “식자율(문자해독률)·과 혁명의 상관관계를 발견”한 영국의 역사가 로렌스 스톤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썼다.
“이란에서는 젊은 남성의 식자율 50%라는 허들(장애물)이 1964년 무렵 무너졌고, 그 15년 뒤에 이란혁명(1979년의 호메이니 이슬람혁명)이 일어났다. 1981년 무렵에는 젊은 여성의 식자율도 50%가 넘었고, 1985년 무렵에는 출생률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라는 명칭 속의 ‘이슬람’이라는 말 때문에 ‘민주주의’적 측면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란혁명은 분명 ‘종교적 혁명’이었으나, 크롬웰이 이끌었던 영국 퓨리턴(청교도)혁명과 다를 게 없다. 신의 이름으로 왕정을 타도하기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양자는 같은 것이다.”
인구역사학자답게 토드는 이란이 세계최강 미국의 공격을 받아내면서 ‘역습’에 성공한 이유를 이처럼 식자율과 출생률이라는 인구통계학적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2000년에 간행된 ‘문명의 접근’에서 나는 이슬람권의 출생률 저하에 주목했는데, 그 중에서도 이란의 극적인 (출생률/출산률) 저하는 도드라졌다. 1980년대 전반에 약 6.5명이었던 것이 2000년 초에는 2.1명 아래로 내려갔다. 이는 당시의 프랑스와 같은 수치였는데, 그것이 20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올해 5월 18일(너무 인상적이어서 날짜까지 기억한다) 2025년의 이란 출생률이 1.35명이었다는 것을 타스님 통신 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 이것은 저출산으로 고민하는 독일과 같은 수치(2024년)다. 모두 인구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걸 의미한다. 꼭 기뻐해야 할 수치라곤 할 수 없지만,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사회로서의 성숙’을 말해 주고 있다.”
이것이 이란이 지난 20년간 이룩한 민주주의적 측면의 성과이며, 이슬람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그것을 보지 못하거나 보지 않으려 할 경우 사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얘기다.
생산력 지표는 GDP가 아니라 엔지니어 수
토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내가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부터 ‘서양이 패배하고 러시아가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인구가 미국의 절반도 되지 않는 러시아가 미국보다 더 많은 엔지니어를 배출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에 따르면, 전쟁이 길어질수록 필요성이 증가하는 것은 고가의 최첨단 무기보다 값싸고 심플한(간편한) 대량의 무기다. 지구전이란 이런 무기를 얼마나 많이 제조할 수 있느냐는 ‘생산력 싸움’이다. 사실 미국은 지구전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 정도의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공급할 수 없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에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GDP(국내총생산) 합계는 서방국가들(미국, 캐나다, 유럽, 일본, 한국)의 겨우 3.3%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 3.3% 쪽이 서방국가들보다 많은 무기를 공급할 수 있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GDP는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지표여서 ‘진짜 경제력(생산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뒤부터 1970년대까지는 철강, 자동차, 냉장고, TV 등 실물경제가 중심이었고, GDP도 의미를 지닐 수 있었으나, 산업구조가 바뀌고 물품보다 서비스 비율이 높아지면서 GDP는 실제 생산력을 측정하는 지표로서의 리얼리티(현실감)를 상실했다. 오늘날 미국의 팽대한 GDP에는 ‘평균수명 연장에 기여하는 바가 없는데도 너무 비싼 의료비’, ‘소송 대국의 터무니없는 변호사비용’, ‘세계 제일의 수용인수를 자랑하는 교도소’ 등 결코 생산적이라고 할 수 없는 서비스 부문의 GDP가 잔뜩 포함돼 있다.
“오늘날 ‘진정한 생산력’을 보여주는 것은 GDP가 아니라 ‘엔지니어의 수’다. 그런 점에서 이란은 고등교육 진학률이 높고 또 이공계 비율이 많아,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엔지니어 대국’이다. 고등교육 수료자들 중 엔지니어 교육을 전공하는 비율이 미국에서는 7%, 프랑스에서는 15%인데 비해 이란에서는 30%다. 총인구를 감안하면 이란은 프랑스의 약 3배나 되는 인제니어를 배출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미사일과 드론의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이 생산력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의 요격미사일들을 소모시켜 방공시스템을 무력화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안전보장을 미국에 의존해 온 아랍의 걸프만 국가들은 미군기지의 존재가 자국의 ‘안전’이 아니라 ‘리스크’(위험)를 높이는 모순에 직면하고 있다.”
중국도 엔지니어 면에서 미국을 압도할 것이다. 미국이 특히 제조업 생산력에서 중국과 상대가 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그것이다. 게다가 중국은 중국공산당 지도부도 대체로 이공계 출신인데 비해 미국 지배집단은 금융과 경영 등 경제 엘리트와 법률전문가들이 대세를 차지한다.
이란과 남인도, 새로운 비서양 근대화 모델
토드는 이란의 비약적 발전이 “세계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며 서양에 완전히 식민지배당한 역사가 없는 이란의 발전을 메이지유신 이후의 일본에 비기면서, 최근 급속도로 산업화하고 있는 남인도의 ‘타밀 나두’ 지역과도 비교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보도에 따르면, 타밀 나두의 출생률은 1.3명이다. 오늘날 눈부신 ‘이륙’를 하면서 ‘초근대성’을 체현하고 있는 남인도도 이란과 마찬가지로 출생률의 극적인 저하를 보이고 있는 것인데, 뒤집어서 얘기하면, 출생률의 극적인 저하 자체가 사회의 급속한 ‘근대화’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토드에 따르면 비서양권의 근대화는 먼저 일본에서 시작해서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호랑이’, 다음에 중국, 남인도, 이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것을 하나의 연속적인 ‘물결’로 파악할 수 있지만, 인구역사 및 가족인류학자로서 토드는 유럽과 닮은 가족구조를 지닌 한국, 일본, 중국과 남인도 및 이란의 그것은 다르다면서, 서양에 유사 모델이 존재하지 않는 이란과 남인도의 비약적인 발전을 ‘제2의 근대화 물결’ 또는 ‘초근대화 물결’로 볼 수 있으며, 이는 근대화 모델을 서양이 독점해 온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했다.
러중의 권위주의체제 vs 구미의 리버럴체제
토드는 이런 이란과 러시아, 중국을 ‘권위주의체제 국가’로 분류하면서 “현실에 기반한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신들의 국익에 따라 전략적 사고를 토대로 합리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그 언동이 예측 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부류로 파악했다. 매우 긍정적이다.
이에 대비되는 또 하나의 부류로 그는 “근시안적이고 전략적 사고가 결여돼 있으며, 자신들의 국익에 반하는 경우에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조급하게 비합리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그 언동이 예측 불가능하고 신뢰할 수 없는” 집단을 들면서 “‘리버럴’이라 자칭해 온 미국과 유럽이 바로 그들”이라고 지목했다. 매우 부정적이다.
문제 해결능력이 뛰어난 중앙집권적 과두지배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이는 토드의 성향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는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목적은 우크라이나를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며 “전쟁 승리가 이미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러시아에게 가능한 한 많은 희생을 치르게 하는 것, 러시아를 가능한 한 약체화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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