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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 창업주 이원만 일가의 친일 혼맥, 정일권·이효상과 사돈

만주군 헌병 정일권, 신라 천년 발언 이효상과 잇따라 혼인

이원만, 일본 오사카에서 광고모자 하루 4만개 생산

장녀 이경숙은 지역감정 원조 이효상의 삼남과 혼인

동생 이원천의 아들은 정일권 전 국무총리 딸과 결혼

2026-07-25 01:10:01
 

코오롱그룹 창업주 이원만(1904~1994)의 본관은 여강 이씨다. 조선 500년 동안 문묘와 종묘에 함께 이름을 올린 '6대 국반' 가운데 하나로, 회재 이언적을 배출한 집안이다. 이원만은 이언적의 15대손이다. 뉴탐사 역사탐사는 이 집안이 해방 이후 어떤 사람들과 사돈을 맺으며 자리를 굳혔는지 추적했다. 그 자리에 있던 이름이 이효상 전 국회의장과 정일권 전 국무총리다. 한 사람은 대통령 선거에서 지역감정을 대놓고 부추긴 인물이고, 다른 한 사람은 만주군 장교 출신이다.

 

일본에서 모자를 팔아 번 돈

 

이원만은 경상북도 영일군, 지금의 포항에서 태어났다. 1935년 일본 오사카에 아사히공예주식회사를 세우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동생 이원천을 오사카로 불러 함께 일했고, 1937년에는 장남 이동찬까지 데려갔다. 이 회사를 키운 상품이 이른바 광고모자다. 모자 앞면에 회사 이름이나 상표를 새겨 넣는 방식이었다. 요즘의 브랜드 개념과 비슷하다. 이 모자가 일본에서 크게 팔리면서 한때 하루 4만개를 찍어냈다.

 

이원만은 일본에서 모은 자본을 해방 뒤 한국으로 들여왔다. 1957년 한국나이롱주식회사가 만들어졌고, 1975년 한국나이롱과 한국폴리에스터를 합쳐 코오롱이 됐다. 코오롱이라는 이름은 '코리아 나이롱'에서 나왔다. 1977년 장남 이동찬이 회장을 물려받았고, 1990년대 중반 손자 이웅열이 뒤를 이었다. 이원만은 5·6·7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기도 했다.

 

백이성 역사독립군은 이 대목을 이렇게 정리했다. "코오롱이라고 하는 기업은 스스로는 나는 친일 행위를 한 적도 없고 그냥 일본에서 모자를 열심히 만들어 팔았을 뿐이다라고 얘기하실지 모르겠는데, 해방 이후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가지고 저 엄청난 혼맥을 맺었던 걸 보면 정말 기업가이기 이전에 조선의 노블레스로서의 자긍심이라는 건 과연 찾아볼 수 없었는가."

 

"신라 천년" 이효상, 만주군 정일권

 

이동찬의 장녀 이경숙은 1969년 이효상 전 국회의장의 셋째 아들 이문조 영남대 교수와 결혼했다. 이효상은 1971년 대통령 선거 때 "신라 천년 만에 나타난 박정희 후보를 뽑아 경상도 정권을 세우자"고 유세한 인물이다. 현직 국회의장 신분이었다. 한국 정치에서 지역감정을 선거에 끌어들인 효시로 꼽힌다.

 

이효상의 이력은 그 앞에도 있다. 일제강점기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같은 친일 단체에서 활동했고, 조선총독부가 펴낸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로 실렸다. 대구 교남학교가 5년제 대륜학교로 인가받는 과정에서는 친일 인사 서병조가 학교를 인수하도록 이효상이 설득했다는 기록이 대륜학교 동창회 자료에 남아 있다.

 

또 하나의 사돈은 정일권이다. 이원만의 동생 이원천의 아들이 정일권 전 국무총리의 딸과 결혼했다. 정일권은 봉천군관학교를 5기로 졸업하고 일본육군사관학교에 편입해 1940년 졸업했다. 만주군 장교로 복무했고, 고등군사학교를 나와 만주군 총사령부 고급부관을 지냈다. 박정희보다 앞선 기수였다.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 군 부문에 이름이 올라 있다. 백이성 역사독립군은 방송에서 이 대목을 두고 "여강 이씨의 후손이 이효상하고 사돈을 맺고 정일권하고 사돈을 맺고 저러고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일권은 국립서울현충원 장군 묘역에 안장돼 있다.

 

정인숙 사건과 요정 정치

 

정일권은 1970년 3월 17일 밤 벌어진 사건에서도 이름이 오르내렸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부근 강변3로에 서 있던 검은색 코로나 승용차에서 20대 여성이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고급 요정 선운각에서 일하던 정인숙이다. 함께 있던 넷째 오빠 정종욱은 넓적다리에 관통상을 입었다.

민간인의 권총 소지가 사실상 불가능하던 시절,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권총 살인이었다. 정인숙의 집에서는 여러 차례 출국할 수 있는 복수여권이 나왔다. 여권 한 장 받기도 어렵던 때에 미국과 일본을 오간 기록이 남아 있었다. 소지품에서는 정관계 고위 인사들의 명함이 쏟아졌다. 검찰은 일주일 만에 오빠 정종욱을 범인으로 발표했다. 정종욱은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오랜 복역 끝에 가석방됐다. 그는 자신이 쏘지 않았다고 계속 주장해 왔다.

 

정인숙이 낳은 아들의 아버지를 두고 당시 소문이 무성했다. 야당은 정부 고위층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그해 국회에서는 신민당 조윤형 의원이 대정부 질문 도중, 대학가에 떠도는 노래라며 나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을 개사해 직접 불렀다. 아이 아버지를 청와대의 '미스터 정'으로 지목하는 내용이었다. 사건의 전모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정일권은 그해 12월 국무총리에서 물러났다.

 

장영자, 코오롱건설 매각 직전에 연행

 

코오롱과 권력의 접점은 1982년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장영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처삼촌 이규광의 처제였다. 부부는 1981년 2월부터 1982년 4월까지 7111억원 규모의 어음을 받아냈다.

 

당시 이동찬 코오롱 회장은 계열사인 코오롱건설을 장영자에게 매각하려 했다. 골동품 수집이 취미였던 이 회장에게 장영자가 골동품을 매개로 접근해 친분을 쌓았다는 것이 알려진 경위다. 매각 도장을 찍기 직전 장영자가 검찰에 연행되면서 거래는 무산됐다. 이 회장은 참고인 조사를 받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이동찬은 1987년 중앙대 강연에서 후손에게 풍요로운 정신적·물질적 유산을 남기는 것이 기업가의 사명이라고 말했고, 이 문구는 지금도 코오롱 홈페이지에 실려 있다.

 

백이성 역사독립군은 "일제강점기에 적극적으로 친일에 나선 경력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일본에 가서 사업에 성공해 한국으로 가져온 사람도 있다"며 "한국에 돌아와서 자기 사업의 안녕을 위해 친일파, 군사정권 인사 가릴 것 없이 혼맥을 맺은 이원만과 이동찬 회장은 꼭 짚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청래, 호남일보 특강에 첫 해명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는 23일 광주에서 호남일보TV 특강 논란에 처음 입을 열었다. 신천지와는 상관없는 행사였고, 호남일보 회장은 그날 만났으며, 호남일보에 신천지 관련 의혹이 있는지 몰랐고, 개국 1주년 초청 강연으로 알고 갔다는 취지다.

 

해명은 의혹을 줄이기보다 키웠다. 특강 당시 호남일보TV 구독자는 132명이었다. 뉴탐사 보도 이후 12일이 지난 현재는 166명이다. 34명 늘었다. 사실상 호남 출정식을 구독자 132명짜리 채널에 맡겼다는 뜻이 된다. 취재 결과 정 후보는 그날 개국 1주년을 축하한다는 인사말을 하지 않았다. 뒤늦게 들어온 김덕천 호남일보 회장을 맞을 때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자기 옆자리를 두드렸다. 호남일보 대표이사는 취재 과정에서 자신은 그 행사에 가지 않았고 가고 싶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정 후보는 앞서 신천지 관련 의혹 제기에 "저하고 관련이 있는 것처럼 연기를 피우는데, 걸리면 족족 제가 다 법적인 조치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신천지 측은 교인이 개인적으로 권리당원에 가입했을 수는 있으나 조직적으로 지시한 적은 없다는 취지의 해명을 내놨다. 호남일보는 뉴탐사에 내용증명을 보냈다. 정 후보 쪽에서도 고발이 예고된 상태다.

 

민주당 8·17 전당대회 예비경선 결과는 23일 나왔다. 당대표 후보는 김민석·정청래·송영길 3인으로 압축됐고, 고민정·김보미 후보는 탈락했다. 최고위원 본선 진출자는 박선원 이성윤 김용 한민수 서미화 최민희 김영호 임미애 8명이다. 이 가운데 친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최민희·한민수·이성윤 세 명이 모두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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