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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매매 경유지’ 된 부산…“중국 어선, 한국에 불법감금 외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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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 림
  • 등록일
    2026/08/06 07:48
  • 수정일
    2026/08/06 07:48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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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영기자

  • 수정 2026-08-06 07:08

인니 선원, 지난달 21일 모텔서 탈출 중 추락사

인신매매방지법 시행 뒤 첫 선원 피해자 인정

지난달 21일 부산 사상구의 모텔 8층 방에 감금된 뒤 창문으로 탈출하다 추락한 파자르(가명)씨가 인도네시아 송출업체 ㅍ사와 체결한 계약서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송출수수료로 790달러가 책정돼 있다. 이인경 부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장 제공

지난달 21일 부산 사상구의 모텔 8층에서 탈출 도중 추락한 인도네시아 선원을 5일 정부가 인신매매 피해자로 지정했다. 2023년 인신매매방지법 시행 뒤 피해자로 확정된 첫 선원 노동자다.

성평등가족부는 지난달 27일 부산을 찾아 ‘모텔 감금·추락 사건’의 경찰 수사 내용과 입원 중인 피해자 상태를 파악했다. 엿새 전 인도네시아 선원 파자르(가명·32)는 감금된 건물 8층 방에서 창문을 통해 빠져나오다 추락(부상)했다. 뒤따라 내려오다 건물 중간에서 떨어진 25살 남성은 머리를 부딪혀 사망했다. 복잡하고 위법적인 송출·입 계약과 원양어선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이탈 방지를 명분으로 한 인권침해, 인신매매에 악용되는 부산의 현실이 한꺼번에 드러난 사건이었다.

성평등부는 파자르의 피해가 “운송, 감금, 착취 목적 등의 인신매매 요건을 충족한다고 판단”하고 “시간이 걸리는 사례판정위원회 개최 대신 경찰 수사를 근거로 신속하게 피해자 확정을 추진”했다. “인신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내·외국인 합쳐 선원이 피해자로 지정된 것은 처음”이라고 박정식 폭력예방교육과장은 밝혔다.

지난 3년간 정부가 확정한 인신매매 피해자 수는 모두 91명이었다. 내국인(16명)보다 외국인 피해자(75명) 수가 4배 이상 많았다. 법 시행 첫해 3명이었던 피해자는 지난해 42명으로 늘었고 올해는 5일 현재까지 34명이었다. 피해자 발굴 체계가 정착되지 못했던 초기 상황과 최근 확대되고 있는 계절노동자 규모 등이 반영(외국인 피해자 75명 중 37명이 계절노동자)된 통계로 풀이된다.

피해 유형별로는 ‘노동력 착취’가 전체 91명의 70%(64명)에 달했다. ‘성착취’ 피해자는 23명이었고 ‘성·노동력’ 이중 착취 피해도 4명이었다. 파자르는 올해 노동력 착취 피해자 21명에 포함됐다.

“갇힐 줄 알고 있었다”

일자리가 나왔다는 연락을 파자르가 받은 것은 7월12일이었다. 그는 닷새 뒤 인도네시아 인드라마유(자와바랏주)의 집을 떠나 기차를 탔다. 집엔 어머니에게 맡긴 5살 아이가 있었다. 2년(계약 기간) 뒤에나 다시 만날 아이였다.

7월17일 오후 5시 페말랑(자와주)의 송출업체 ㅍ사에 10명의 남자가 모였다. 파자르가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고, 같은 배를 탈 동료들이라고 했다. “ㅍ사 직원이 계약서 내용을 읽어주고 1명씩 서명하게 했”(파자르 인터뷰)다.

갑판원 파자르의 월급은 500달러였다. 송출 수수료로 790달러를 뗐다. 수수료는 할부금처럼 월급에서 분할 공제(150달러씩 5개월+6개월째 40만원)될 예정이었다. 파자르의 가족(원양어선원 월급은 바다에 있는 당사자 대신 육지 가족에게 생활비로 송금)이 받을 돈은 반년간 월 300~410달러였고 7개월째부터 450달러(남은 50달러는 배에서 파자르에게 담배 등으로 제공)가 됐다. 그나마 3~4개월에 한번씩 지급된다고 했다. 그 적은 돈을 기다리며 가족들은 빚을 내 살 수밖에 없었다. 업체는 파자르의 오토바이를 송출 수수료(빚) 담보로 잡았다.

공항으로 출발하기 2시간 전에 이뤄진 계약이었다. “시간이 부족해 다 읽지 못한” 계약서(19장)엔 파자르가 뒤늦게 확인하고 충격을 받을 문장들이 포함돼 있었다. 저녁 7시에 버스에 오른 일행은 이튿날 새벽 자카르타공항에 도착했다.

“투모로우 카팔(배).”

남태평양 피지 인근에서 조업할 원양어선을 다음날 대한민국 부산에서 탄다고 했다. 파자르 등 10명은 베트남을 경유해 7월20일 아침 7시께 김해공항에 착륙했다. 입국 심사장(B-2 관광통과 비자)을 나온 그들을 2명의 한국인 남자가 맞았다. 각자 손팻말 하나씩을 들고 있었다.

‘룬다 3호’와 ‘룬다 5호’.

ㅍ사와 계약한 그들은 모두 룬다 3호 선원들이었다. 다른 송출업체와 계약한 5호 선원 10명이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사실은 그때 알았다. 두 한국인이 인도네시아 선원 20명을 버스에 태워 부산 사상구의 한 모텔로 데려갔다.

“패스포트(여권)! 패스포트!”

모텔 도착(아침 8시30분께) 뒤 한국인들은 선원들을 10명씩 두방에 나눠 배정했다. 8층 1호와 2호 방에 각각 룬다 3호와 5호 선원들을 들여보냈다. 입실 전 여권을 압수했다. 여권은 인도네시아에서 ㅍ사가 먼저 가져갔다. 출국과 한국 입국을 위해 돌려준 뒤 숙소 입실 전 재압수했다. 입실이 끝난 오전 9시께 밖에서 문을 잠갔다.

파자르는 “철그럭 철그럭” 자물쇠 채우는 소리를 들었다. 한국인들이 방과 엘리베이터 사이에 앉아 지켰다. 문은 “식사 시간에 맞춰 열렸”다. “한 여성이 문 앞에서 밥과 반찬을 차례로 배식”했다.

파자르는 자신도 모르는 복잡한 계약 관계 속에서 ‘감금’됐다.

선사로부터 선원 모집을 외주받은 인도네시아 송출업체가 있었고, 선사에게 한국 입출항과 선원 승선을 대행해주는 한국 업체가 있었다. 대행업체가 외국인 선원 이동과 숙박 관리를 재하도급한 경호업체가 있었고, 두 한국 남자는 경호업체 소속이었다. “문을 잠그기 전 동의를 구했다”고 경호업체는 주장(경찰 조사)했으나 파자르는 “들은 기억이 없었”다.

사실 파자르는 “감금될 줄 알고 있었”다.

2015년부터 원양어선을 탄 그는 이번이 4번째 승선 계약이었다. 3번째 계약(2019년 사모아에서 승선)이 종료돼 부산에서 하선했던 2024년에도 파자르는 “같은 모텔로 이송”됐다. “그때도 방문이 잠겼”다. “여권은 하선과 동시에 압수(출국 공항에서 반환)당했고 휴대폰도 함께 빼앗겼”다. 버스에서 내린 파자르는 모텔 건물을 보자마자 “오늘도 방에 갇히겠구나” 직감했다.

7월20일 자물쇠 채워진 모텔방 801호에서 파자르씨가 촬영한 내부 영상의 한 장면. 파자르 제공

감금 목적은 ‘이탈 방지’였다. 계약 조건이 열악할수록 이탈 압력은 커졌다. 원양업계는 국내 체류 기간과 동선을 최소화해 가능성을 지우려 했다. 입국 즉시 배로 옮겨 승선시키고 하선 즉시 공항으로 싣고가 출국시켰다. 감금은 그 절차가 오차 없이 물리지 않을 때 발생했다. 룬다 3호와 5호가 부산에 입항(기상악화에 따른 지연)한 시각은 그날 밤 11시1분과 밤 9시27분이었다.

두 배는 같은 선주(룽청 룬다 원양어업 유한공사) 소유의 중국 참치잡이 연승이었다. 중국 원양어선은 불법조업과 선원 인권침해로 악명이 높았으나 일자리가 급한 파자르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승선을 오래 기다려야 하는 한국 배와 달리 중국 배는 건강검진 등 절차도 까다롭지 않았고 빨리 탈 수 있었”다. 지난 10년간 일한 배도 모두 중국 선박이었다. “선장에게 폭행당하며 하루 14시간 이상 일했”다. “와이파이를 이용하지 못해 항구에 닿을 때만 가족과 연락했”다. 파자르는 몰랐지만 룬다 3호와 5호의 이력도 ‘화려’했다. 성폭력과 구타, 가혹행위, 동상과 손가락 절단, 하루 20시간 강제노동 등의 인신매매와 상어·바다거북 불법 포획이 언론보도와 피해자들의 증언(2022~2023년 환경정의재단 보고서)으로 폭로됐다.

“높이가 가늠되지 않았”다.

모텔방에서 파자르가 휴대폰(2년 전 하선 때와 달리 빼앗지 않음) 카메라로 창문 아래를 찍었다. 영상에선 바닥 대신 암흑만 보였다. “여길 나가서 한국에서 일하면 배 타는 것보다 월급이 나을 거”란 말들이 801호에서 나왔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면서도 그 생각을 하지 않았던” 파자르까지 탈출에 동의한 사람은 5명이었다. “누군가 이불을 묶기 시작했고 같이 모여 줄을 만들었”다. 새벽 2시쯤 줄이 완성됐다. “벽을 타기엔 너무 높아 2명이 포기”했다.

파자르가 가장 먼저 창문을 넘었다. 이불을 잡고 천천히 내려갔다. “바람이 많이 불어 무서웠”다.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줄이 모자랐고, 이불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바닥에 가까이 이르렀다고 생각하고 손을 놨”다. “그대로 떨어졌”다.

7월21일 새벽 파자르씨가 휴대폰으로 촬영한 창문 밖은 높이가 가늠되지 않았다. 맞은편 도로에서 트럭이 흐린 빛을 남기며 지나갔다. 파자르 제공

무시무시한 문장들

“장안 투룬(내려오지 마), 장안 투룬.”

부러진 다리를 붙잡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때 ‘그 남자’가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파자르가 위쪽을 향해 소리치며 말렸다. 못 들은 것인지 남자는 계속 내려왔다. “건물 중간쯤에서 갑자기 추락(2시30분께)”했다. “중심을 잃은 몸이 뒤집히며 머리가 먼저 떨어졌”다. 1m 옆에서 불러도 답이 없었다. “피가 흐르는 얼굴을 후드티 모자가 덮고 있었”다.

“마이 프렌드!”

파자르가 “옆 건물로 기어가 문을 두드렸”다. 얼굴 내민 한국인들에게 꼼짝하지 않는 남자를 가리키며 ‘친구의 우정’을 호소했다. 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갈증에 시달렸다. “8층에서 던져 준 생수병이 땅바닥에서 터졌”다. 새벽 3시를 넘겨 경찰과 119대원들이 도착했다. 파자르는 병원으로 옮겨져 다리 수술을 받았다. 남자는 다발성 손상으로 사망(7월29일 본국 이송)했다.

경찰은 입·출항 대행업체 대표와 경호업체 관리자, 모텔 주인 등 5명을 감금 혐의로 입건했다. 대행업체 대표는 “중국 선주 의뢰로 행정 업무만 대리했고 이동과 숙박은 경호업체에 위탁했다”며 “감금과 무관하다”(한겨레와 통화)고 주장했다. “사고 발생 즉시 선주에 연락했으나 후속 조처는 위임받은 게 없다”고 했다. 나머지 선원 18명은 경찰 조사 뒤 배에 승선했다. 출항 예정일을 하루 넘긴 7월22일 부산을 떠나(룬다 3호와 5호 각각 오전 10시11분과 오전 10시6분) 공해로 나갔다.

입원 치료 중인 파자르씨의 휴대전화에 자신의 사건을 보도한 인도네시아 현지 언론들의 기사가 띄워져 있다. 이인경 부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장 제공

“1억2000만루피아(940여만원).”

이 금액을 파자르는 병원에서 처음 봤다. 경찰에게 돌려받은 가방 속 계약서를 문병 온 한국 활동가와 통역이 발견하고 알려줬다. “무단이탈 행위를 할 경우 벌금 및 손해배상금으로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문장이 아무렇지도 않게 적혀 있었다. 월급을 한푼도 쓰지 않고 14개월을 모아야 하는 돈이었다. 업체는 바람처럼 움직였다. 파자르가 인도네시아 집에 연락했을 때 “추락 이튿날 송출업체에서 찾아와 그 돈을 내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무시무시한 문장들이 계약서에서 줄줄이 딸려 나왔다.

“이탈에 대한 제재의 일환으로 본인의 사진, 여권, 선원수첩 및 기타 증빙 서류 등 개인정보를 각종 소셜미디어에 업로드하고 유포하는 것에 동의합니다.”

계약서가 일부러 누락한 돈도 있었다. “이탈 시 1000달러를 추가로 내겠다는 영상을 선원별로 촬영해 업체가 보관하고 있었”다. 꼼꼼하고 촘촘하게 설계된 착취였다.

그 착취엔 한국도 얽혀 있었다. 낙동강 하류의 강변 모텔에서 발생한 추락 사건은 ‘국제도시 부산’의 두 가지 실상을 드러냈다.

① 공공연했던 외국인 선원 감금이 예기치 않은 인명 사고로 노출됐다. 감금은 외국 원양어선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국내 선박에 고용된 외국인 선원들의 감금 피해도 드물지 않았다. “층마다 자물쇠를 채운 체류·숙박 시설들이 인권단체에 목격”(이한숙 이주와인권연구소 소장)됐다.

② 부산이 인신매매에 악용되는 현실도 확인됐다. “중국 배들이 자국에서 멀지 않은 부산을 승·하선에 활용하는 까닭은 불법 감금에 따른 위험을 한국에 외주화하는 것”이라고 김종철(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설명했다. 강제노동 어선들에 ‘애용’되는 항구들은 결과적으로 그들의 착취를 뒷받침했다. 기항지 국가들이 선박 정보 수집을 강화하고 입항 검사와 항구 이용 거부 등의 권리를 적극 행사해야 한다고 국제사회는 지적(미국 선진국방연구센터(C4ADS) 2020년 보고서)해왔다. “인권침해가 보고된 배에 한해서라도 항구 이용을 막아야 한다”(김종철)는 목소리에 해양수산부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명확한 근거 제시 없는 입항 거부는 국가 간 분쟁을 일으킬 수 있다”(선원정책과)는 이유였다.

기항지 국가들이 인신매매 선박의 항구 이용 거부 등의 권리를 적극 행사해야 한다고 지적한 미국 선진국방연구센터(C4ADS)의 2020년 보고서. 표지 갈무리

파자르는 “귀국 뒤가 더 걱정”이었다. 몇 겹으로 쳐놓은 이탈 벌금이 그의 가난한 가정을 파탄낼 것이라며 두려워했다. 김종철 변호사는 “인신매매 피해자로 지정된 만큼 토대가 된 계약에 희생되지 않도록 한국 정부가 인도네시아 정부를 상대로 외교적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평등가족부는 파자르에게 병원 치료비와 귀국 비용 등을 지원(박정식 과장 “이탈과 피해는 별개”)할 예정이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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