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부산 사상구의 모텔 8층에서 탈출 도중 추락한 인도네시아 선원을 5일 정부가 인신매매 피해자로 지정했다. 2023년 인신매매방지법 시행 뒤 피해자로 확정된 첫 선원 노동자다.
성평등가족부는 지난달 27일 부산을 찾아 ‘모텔 감금·추락 사건’의 경찰 수사 내용과 입원 중인 피해자 상태를 파악했다. 엿새 전 인도네시아 선원 파자르(가명·32)는 감금된 건물 8층 방에서 창문을 통해 빠져나오다 추락(부상)했다. 뒤따라 내려오다 건물 중간에서 떨어진 25살 남성은 머리를 부딪혀 사망했다. 복잡하고 위법적인 송출·입 계약과 원양어선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이탈 방지를 명분으로 한 인권침해, 인신매매에 악용되는 부산의 현실이 한꺼번에 드러난 사건이었다.
성평등부는 파자르의 피해가 “운송, 감금, 착취 목적 등의 인신매매 요건을 충족한다고 판단”하고 “시간이 걸리는 사례판정위원회 개최 대신 경찰 수사를 근거로 신속하게 피해자 확정을 추진”했다. “인신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내·외국인 합쳐 선원이 피해자로 지정된 것은 처음”이라고 박정식 폭력예방교육과장은 밝혔다.
지난 3년간 정부가 확정한 인신매매 피해자 수는 모두 91명이었다. 내국인(16명)보다 외국인 피해자(75명) 수가 4배 이상 많았다. 법 시행 첫해 3명이었던 피해자는 지난해 42명으로 늘었고 올해는 5일 현재까지 34명이었다. 피해자 발굴 체계가 정착되지 못했던 초기 상황과 최근 확대되고 있는 계절노동자 규모 등이 반영(외국인 피해자 75명 중 37명이 계절노동자)된 통계로 풀이된다.
피해 유형별로는 ‘노동력 착취’가 전체 91명의 70%(64명)에 달했다. ‘성착취’ 피해자는 23명이었고 ‘성·노동력’ 이중 착취 피해도 4명이었다. 파자르는 올해 노동력 착취 피해자 21명에 포함됐다.
“갇힐 줄 알고 있었다”
일자리가 나왔다는 연락을 파자르가 받은 것은 7월12일이었다. 그는 닷새 뒤 인도네시아 인드라마유(자와바랏주)의 집을 떠나 기차를 탔다. 집엔 어머니에게 맡긴 5살 아이가 있었다. 2년(계약 기간) 뒤에나 다시 만날 아이였다.
7월17일 오후 5시 페말랑(자와주)의 송출업체 ㅍ사에 10명의 남자가 모였다. 파자르가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고, 같은 배를 탈 동료들이라고 했다. “ㅍ사 직원이 계약서 내용을 읽어주고 1명씩 서명하게 했”(파자르 인터뷰)다.
갑판원 파자르의 월급은 500달러였다. 송출 수수료로 790달러를 뗐다. 수수료는 할부금처럼 월급에서 분할 공제(150달러씩 5개월+6개월째 40만원)될 예정이었다. 파자르의 가족(원양어선원 월급은 바다에 있는 당사자 대신 육지 가족에게 생활비로 송금)이 받을 돈은 반년간 월 300~410달러였고 7개월째부터 450달러(남은 50달러는 배에서 파자르에게 담배 등으로 제공)가 됐다. 그나마 3~4개월에 한번씩 지급된다고 했다. 그 적은 돈을 기다리며 가족들은 빚을 내 살 수밖에 없었다. 업체는 파자르의 오토바이를 송출 수수료(빚) 담보로 잡았다.
공항으로 출발하기 2시간 전에 이뤄진 계약이었다. “시간이 부족해 다 읽지 못한” 계약서(19장)엔 파자르가 뒤늦게 확인하고 충격을 받을 문장들이 포함돼 있었다. 저녁 7시에 버스에 오른 일행은 이튿날 새벽 자카르타공항에 도착했다.
“투모로우 카팔(배).”
남태평양 피지 인근에서 조업할 원양어선을 다음날 대한민국 부산에서 탄다고 했다. 파자르 등 10명은 베트남을 경유해 7월20일 아침 7시께 김해공항에 착륙했다. 입국 심사장(B-2 관광통과 비자)을 나온 그들을 2명의 한국인 남자가 맞았다. 각자 손팻말 하나씩을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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