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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자(들)’ 실제 기자 “제일 어린 기자 두들겨 패 내보내면 다들 겁에 질렸다”

영화에 대해선 “비교적 그 시대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잘 그렸다”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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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정철운 기자

  • 입력 2026.10.09 09:10

  • 수정 2026.10.09 09:11

▲10월8일 MBC '뉴스하이킥'.

영화 ‘암살자(들)’에서 자유언론실천선언에 나섰던 동성일보의 실제 모델인 1974년 당시 동아일보 기자가 언론에 나와 처음으로 영화에 대한 평가를 내놨다.

 

이부영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장은 지난 8일 MBC 라디오 ‘조승원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 ‘암살자(들)’을 가리켜 “비교적 그 시대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잘 그렸다고 봤다”며 “우리들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상당히 뭉클한 마음을 받았다”고 말했다. ‘암살자(들)’은 상업영화 가운데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최초로 그려낸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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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영 위원장은 “1974년 3월부터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사건이 벌어지면서 수백 명이 잡혀들어갔다. 인혁당 사람들은 여덟 분을, 재판받은 지 18시간 만에 사형시켜 버렸다”며 야만의 시절을 언급하며 자유언론실천선언에 나서게 된 사회적 배경을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겨울이 되면 봉천동, 신림동 이런 높은 지대에선 연탄값이 두 배, 세 배가 되었다. 전부 지게를 지어서 연탄을 거기까지 올려야 되니까. 그걸 연탄 파동이라고 쓰면 중앙정보부에서 조용히 데려갔다. 구속은 시킬 수 없으니 패는 거다”라고 회상한 뒤 “제일 어린 기자들을 두들겨 패 내보내면 다들 겁에 질리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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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원장은 “1968년 신동아의 차관 특집 보도 이후 중앙정보부가 발칵 뒤집혔고, 당시 천관우 주필이 작심하고 ‘중앙정보부는 망동을 그쳐라’ 사설을 냈다. 그러니까 천관우 주필하고 신동아 주간하고 김상만 사장을 중정에서 다 데려갔다”고 전한 뒤 “김상만 사장이 거의 항복하다시피 하고 나왔다. 결국 ‘우리들이 나설 도리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관원들이, 중앙정보부 조정관이라는 사람들이 편집국장석 앞에 와서 붙어있고 이러니까, 그런 걸 보는 우리 젊은 기자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심경이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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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원장은 “(자유언론실천선언) 직전에 서울농대 김상진 씨라는 사람이 민주주의의 회복과 언론 자유를 내세우고 할복자살을 했다. 우리가 그것 때문에 충격을 굉장히 받았는데, 사회면에 잘 보이도록 보도했더니 바로 송건호 편집국장을 정보부에서 데려갔다. 그날 대부분의 기자들이 집에 가지 않고 철야 농성을 하면서 송건호 국장 석방을 요구했다. 다음날 편집국 안에 180여 명이 모여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했다”고 말했다.

▲1974년 10월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 모습.

이 위원장은 “(선언 이후) 각 부서마다, 정치부, 사회부, 편집할 것 없이 자유언론실천 특위를 만들어서 누가 기사를 빼는지 기록하고 싸웠다”며 “데스크들 중에는 중앙정보부로부터 월급처럼 받는 분들이 있었다. 거액의 촌지였다. 그런 분들하고 싸웠다”고 전했다. 당시 선언에 나섰던 기자들의 대다수가 이듬해 3월 해직됐다. 이 위원장은 “동아일보가 우리들을 내쫓아 놓고 지금 아무 조치가 없다”며 동아일보의 진정한 사과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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