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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사나이, 사라지지 않은 질문…'두 얼굴의 호파'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현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저서에 [함석헌 평전], [고문과 학살의 현대사],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퀘이커교도. 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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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영웅이자 동시에 부패의 상징으로

전미 트럭 운전사 노조 위원장으로 급부상

40만 장거리 트럭커 묶어 최대 노조로 키워

조직범죄 세력과 유착, 연금기금 손댄 의혹

사기 등 관련 구속됐다 풀려난 뒤 의문의 실종

미국에는 사라진 사람이 많지만, 사라진 뒤 50년이 넘도록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는 사람은 드물다. 제임스 리들 호파(James Riddle Hoffa, 1913~1975년 실종)는 1975년 7월 30일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근교식당에서 약속 상대를 기다리다 자취를 감췄다. 1982년 7월 30일 법적으로 사망 처리됐지만 시신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살아서는 노동조합의 거물이었고, 사라진 뒤에는 미국 범죄사의 영원한 수수께끼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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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파는 1913년 2월 14일 인디애나주 브레이질의 광부집안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때 아버지를 잃었고, 1924년 열한 살에 어머니와 형제자매를 따라 디트로이트로 이주했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학교를 일찍 그만둔 그는 식료품 창고에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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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노동운동은 딸기상자에서 시작됐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1930년대 초, 창고에 잘 무르는 딸기가 도착하자 호파와 동료들은 하역을 거부했다. 회사가 화물의 부패를 걱정해 서두를 수밖에 없는 순간을 노린 것이다. 결국 노동자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졌고, 호파는 노동조합 조직가의 길로 들어섰다. 작은 딸기상자가 노동자의 단결이 얼마나 강력한 무기인지 보여 준 셈이다.

1965년의 호파(위키피디아)

트럭이 멈추면 미국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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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파는 전미 트럭운전사 노조인 팀스터스(International Brotherhood of Teamsters)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1957년 위원장에 오른 그는 강력한 조직력과 거친 협상술로 이름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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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대표적인 성과는 1964년 전국 화물운송 단체협약이었다. 40만 명이 넘는 장거리 트럭 운전사들을 하나의 협약으로 묶어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했다. 팀스터스는 그의 지도 아래 미국에서 가장 큰 노동조합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트럭이 멈추면 물류가 멈추고 경제가 흔들리는 나라에서 호파는 기업과 정치권이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노동자를 위해 쌓은 권력은 점차 그 자신을 위한 권력으로 변질됐다.

1939년 호파의 머그샷(위키피디아)

조합원의 곳간에 손을 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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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파의 발목을 잡은 것은 조직범죄 세력과의 유착, 그리고 조합자금과 연금기금을 둘러싼 의혹이었다. 팀스터스의 거대한 연금기금은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와 부동산사업 등에 자금을 공급하는 통로로 이용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노동자들이 평생 일해 마련한 노후자금이 조직범죄와 얽힌 사업에 흘러들어 갈 위험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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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상원에서 노조 비리를 조사한 존 매클렐런(John McClellan, 1896~1977) 의원의 위원회에서 수석 법률고문을 맡은 로버트 케네디(Robert F. Kennedy, 1925~1968)는 호파를 집요하게 추궁했다. 두 사람의 대립은 미국정치사의 유명한 장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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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파는 1964년 배심원 매수와 사기관련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1967년 수감됐지만 1971년 12월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1913~1994) 대통령의 감형으로 풀려났다. 다만 1980년까지 노조간부 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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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이 키운 조직의 지도부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이미 위원장 자리는 프랭크 피츠시먼스(Frank Fitzsimmons, 1908~1981)에게 넘어갔고, 호파의 복귀를 달가워하지 않는 세력도 적지 않았다.

존 매클렐런 상원의원(위키피디아)

시신 없는 살인, 끝나지 않은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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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7월 30일, 호파는 디트로이트 근교의 식당 마커스 레드 폭스(Machus Red Fox)에서 조직범죄와 연계된 인물들을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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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관은 여러 장소를 뒤졌지만 시신을 찾지 못했다. 훗날 마피아와 연계됐던 프랭크 시런(Frank Sheeran, 1920~2003)은 자신이 호파를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이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그의 진술을 뒷받침할 결정적인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호파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누가 책임자인지는 여전히 확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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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실종을 둘러싼 소문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운 지도자가 어떻게 노동자의 돈과 조직을 둘러싼 불신의 상징이 됐을까.

프랭크 시런(Quién fue Frank Sheeran, el irlandés que inspiró la película de Netflix)

한국에서 읽는 호파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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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파의 이야기는 한국 노동운동에도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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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노동자의 단결은 여전히 필요하다. 원청과 하청,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 노동시장에서 개인의 힘은 약하다. 노동자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고 실질적으로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어야 한다.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개정 노동조합법 2·3조는 2025년 9월 9일 공포됐고, 2026년 3월 10일 시행됐다. 원청의 실질적인 지배·결정 범위에서 하청노동자의 교섭권을 넓히고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다. 법이 시행됐다고 노동현장의 격차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노동자의 권리가 실제현장에서 작동하도록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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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강한 조직일수록 투명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회비와 기금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다. 지도부가 돈을 어떻게 쓰는지 공개하고, 조합원이 이를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호파의 사례는 노동자를 대신해 행사하는 권력도 견제 받지 않으면 사익을 위한 권력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회계공개와 민주적 의사결정은 노조를 약화하는 장치가 아니라 신뢰를 지키는 토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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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노동조합을 무조건 영웅으로 만들거나 무조건 악마로 몰아서는 안 된다.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일과 조직의 부패를 감시하는 일은 서로 반대되는 과제가 아니다. 노동운동이 정당성을 지키려면 권력과 자금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비판과 내부견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정부와 기업 역시 부패를 이유로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까지 부정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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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파는 노동자의 영웅이면서 동시에 권력의 위험성을 보여 주는 인물이었다. 그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가 남긴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노동자의 힘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 힘을 쥔 사람을 누가 감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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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데서 멈추지 말고, 그 권력을 행사하는 조직까지 민주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조합원의 곳간은 지도자의 사유물이 아니다. 그 사실을 잊는 순간, 사라지는 것은 지도자 한 사람만이 아니라 노동운동에 대한 사회의 신뢰일 수도 있다.

1957년, 불법 도청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던 법정 심리 이후의 호파(오른쪽)(위키피디아)

https://ok.ru/video/2397275294303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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