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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파업 그 후, '파업둥이' 아버지의 명절 나기

[르포] 해고 처분 앞두고 어머니가…"철도 노동자는 명절 없어요"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1.30 10:11:06

 

 

 

 

 

 

 

 

 

 

 

 

 

 

 

 

전국철도노조(철도노조) 서울기관차승무본부장은 지난 철도파업 때문에 해고 위기에 처했다. 곧 '배제징계(해임, 파면 등 해고에 해당하는 징계)' 예상되는 상황에서 처분서를 받아들 것이다. 그는 최근 어머니가 위독해져 고향인 전라북도 부안에 내려갔다. 설 연휴(1월 30일~2월 1일)가 지나면 처분서가 올 것이다. 설상가상이다.

 

지난 2013년 12월 9일 오전 9시, 철도노조는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철도 민영화 반대', '수서발KTX 설립 취소'를 요구했다. 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23일간의 파업은 놀라운 현상들을 만들어냈다. 난생 처음으로 여고생의 편지를 받아봤다는 김성주(가명, 36) 기관사는 파업 기간 동안 이어졌던 시민들의 관심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도 노동자들이 감당해야 할 상처는 가혹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파업 철회를 호소했던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최연혜 사장은 파업 시작과 동시에 4000여 명을 직위해제했다. 총 8773명에 대한 직위해제, 7790명에 대한 징계 회부, 191명에 대한 업무 방해 고소 고발, 490명에 대한 중징계 회부, 손해배상 152억 원 청구, 가압류 116억 원 신청 등.

 

철도 노동자들은 그렇게 '민영화'라는 단어를 대한민국 한 복판에 던져 놓았다. 공공재, 그리고 국가의 역할에 대한 고민도 함께 던져 놓았다. 그리고, 파업이 끝난지 한달여 만에 상처 투성이 명절을 맞이했다.

 

 

▲ 서울 수색차량기지 ⓒ프레시안(박세열)

▲ 서울 수색차량기지 ⓒ프레시안(박세열)

 

 

징계 앞두고 '국민 대수송'에 나선 '파업둥이' 아버지 김성주 씨 이야기 

 

서울기관차승무지부의 휴게실에서 만난 김성주 기관사는 설 직후 징계위원회에 출석하라는 통지서를 받아들었다. 4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2009년 철도 파업에 참여했다가 사소한 이유로 경찰에 연행된 후 '해고' 날벼락을 맞았다. 2월이었던 구정 명절을 며칠 앞두고.

 

서기지부 교선부장이었던 김 기관사가 징계를 받게 된 이유도 황당했다. 행신역에서 예정된 기자회견에 늦게 갔던 김 기관사는 선전물에 실을 사진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기자회견이 끝난 공간을 돌아다니며 사진기 셔터를 몇 번 눌렀다. 그 모습을 본 경찰이, 김 기관사를 현장에 남아 있는 시위대로 생각하고 연행해버린 것이다.

 

파업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경찰에 연행될 당시 어떤 불법적인 행동도 하지 않은 그는, 사측의 해고 통지를 받아들고 지노위(서울지방노동위), 중노위(중앙노동위)를 들락거렸다. "불법 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잠재적으로 불법 행위를 저지를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는 사측의 주장은 황당한 수준이었다. 가족들은 걱정했다.

 

"지노위, 중노위에서 다 해결 되니 걱정 말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김 기관사의 어머니는 한숨만 내쉬었다. 결국 그는 승소했고, 1년 반 만에 일터로 돌아오게 된다.

 

김 기관사는 그러나 2014년, 또 다시 명절을 앞두고 징계위 출석 요구서를 받아들게 됐다. 아내의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자꾸 생각났다. 파업 기간에 생긴 아이여서 "파업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아이었다. 파업 중에 경사가 난 것이다. 아내는 그가 파업에 참여할 때 든든한 지원군이기도 했다. 아내 뿐 아니라, 길거리에서 만난 이름 모를 시민들이 모두 든든한 지원군이라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몰랐다고 했다. '철도 민영화 저지'의 명분이 정당하다는 것을 확인받은 것 같아 흥분도 느껴졌다. 23일이나 파업을 이끌게 된 동력이었다.

 

 

▲ 서기지부의 조합원 '사랑방' ⓒ프레시안(박세열)

▲ 서기지부의 조합원 '사랑방' ⓒ프레시안(박세열)

 

 

많은 기관사들은 이야기꾼이다. 이야기를 잘 한다. 더군다나 지부의 교선부장을 지냈을 정도면 말글 깨나 다룰 줄 안다는 이야기다. 올해 서른 여섯인 김 기관사는 철도청이 철도시설공단과 코레일로 분할되면서, 코레일 공채 1기로 입사했다. 한국항공대학교 출신인 그는 철도 기관사가 될 줄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운전 직열에 지원하면 차장이 될 수 있다"는 말만 듣고 "차장이면 높은 사람 아닌가"라는 생각에 지원서를 넣었다. 그는 "차장이 운전하는 사람인 줄은 정말 몰랐었다"며 웃었다. 그렇게 기관사가 됐다. 항공대에 진학한 계기도 "항공대에 가면 스튜어디스를 많이 만날수 있다"는 외삼촌의 주장 때문이었는데, 스튜어디스 지망생은 항공대에 입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대학에 와서 알게됐다고 했다. 시커먼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대학을 다녔다.

 

거침없는 입담을 자랑하던 그는 "징계를 받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냐"는 질문에 다소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본인에 대한 징계보다 지부장의 해고 여부가 더 걱정인 듯 보였다. 그는 "그래도 할 일은 해야죠"라고 답했다.

 

김 기관사는 설 당일인 31일 새벽 2시에 출근한다. 그날 운행할 객차를 조성(운행할 열차를 편성해 이어붙이는 일)하는 일을 하게 된다. 입환(차량의 분리, 결합, 전선(轉線) 등을 하는 작업)용 기관차를 몰고 객차를 살펴 운행 가능하도록 이어붙이는 작업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이다. 문제가 생긴 객차가 있으면 골라내야 한다. 마치 구슬을 꿰면서 불량 구슬을 골라내는 것과 같다.

 

 

▲ 수색차량기지에서 한 기관사가 차량을 살피고 있다. ⓒ프레시안(박세열)

▲ 수색차량기지에서 한 기관사가 차량을 살피고 있다. ⓒ프레시안(박세열)

 

 

그가 레버를 쥐자 수십 톤 쇠뭉치가 움직였다

 

김 기관사는 다행이 집이 서울이어서, 설 근무가 끝난 오후에는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낼수 있다. 고향이 지방에 있는 사람들은 명절이라도 해도 별 의미가 없다. '명절 추억'을 공유할 상대도 모두 동료들이다.

 

"명절이요? 철도 노동자는 명절같은 거 없습니다. 그냥 평상시랑 똑 같아요." 서울 경의선 수색역에 있는 서기지부 조합원 '사랑방'의 뜨끈한 온돌 위에 누워있던 기관사들이 입을 모았다.

 

"저 친구는 집이 여수고, 이 형은 집이 안동이예요, 명절때 고향에 간 기억이 없네요. 대수송기간이라, 귀향길, 귀성길 사람들 실어 나르고, 서울본부에 떨어지면, 다음 돌아올 근무자가 누군지부터 확인합니다. 근무자를 확인하면 전화를 걸죠. 그렇게 시간 맞는 기관사들끼리 한잔 걸칠 때가 있는데, 그게 우리한테 명절이예요."

 

 

김 기관사는 동료를 한명 가리키며 "저 형님도 명절 지나면 징계위에 출석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 동료는 웃음을 슬쩍 지어보였다. 그는 "징계는 사실 두렵지 않아요. 과거에도 몇 차례 당한 적이 있어서..."라고 말을 흐렸다. 또 다른 기관사는 "본가에도 처가에도 '아시죠? 저 바빠서 집에 못 갑니다' 전화 한통이면 귀향길 안가도 되니 오히려 얼마나 편합니까"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직위해제는 대부분 '원상복귀'됐다. 열차는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처분서를 기다리고 있는 150명 가량의 배제징계 대상자와 500명 가량의 경중징계 대상자들이 남았을 뿐이다. 인터뷰 시간이 끝나간다. 김 기관사는 검은 색 가죽 가방을 어깨에 메고 굉음을 내고 있는 디젤 기관차에 올랐다. "출고선 위에 선 묵직한 쇳덩이를 가볍게 움직이는 손맛"이 기관사가 돼 맛보는 행운이라고 한 기관사가 말했다.

 

명절과 징계와 파업을 뒤로하고, 가슴에 "철도 민영화 반대" 리본을 단 기관사가 레버를 쥐고 가볍게 힘을 주니 수십 톤 쇠뭉치가 '철컹' 하며 앞으로 가기 시작했다. 차창 밖 세상이 진짜로 움직였다.

 

 

▲ 디젤 기관차 안에서 본 풍경 ⓒ프레시안(박세열)

▲ 디젤 기관차 안에서 본 풍경 ⓒ프레시안(박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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