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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자들이 빼앗지 못한 희망, 설날

[한도숙 칼럼] 지배자들이 빼앗지 못한 희망, 설날

한도숙 한국농정신문 대표
입력 2014-01-29 14:44:20l수정 2014-01-31 1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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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은 희망의 농사준비를 알리는 명절이다.

1895 년 갑오년 다음 해 을미개혁으로 설날은 없어졌다. 서양력을 공식화한 탓이다. 그러나 수천년을 내려온 문화와 풍습이 하루아침에 법령 하나로 사라질 것인가. 백성들은 관행대로 음력 1월 1일 설날을 챙겼다. 그도 그럴 것이 설날은 새해를 맞이하는 첫날이다. 그러나 양력으로는 1월 1일이 입춘과 한 달이나 떨어져 있다. 반면에 음력 1월 1일은 입춘절 전후로 들어 태양의 운행질서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농경사회에선 입춘절이 한해의 시작이 된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입춘절로부터 보름 정도 지나면 얼었던 땅이 녹고 푸릇한 싹들이 밀려 올라온다. 농사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니 새해는 입춘절과 함께 하는 것이 순리지 싶다. 

일 본은 메이지유신으로 양력을 채용했다. 그것을 우리에게도 강요하다시피 한 것이다. 이후 을사늑약과 한일 병탄으로 설은 말 그대로 서러운 날이 되고 말았다. 일제는 우리 민족의 공동체 문화를 말살하고 민족혼을 훼손하려 설을 쇠지 못하도록 했다. 가래떡을 만들지 못하게 하고 차례를 지내지 못하도록 했다. 꼭 저 70년대 통일벼를 심으라며 공무원들이 재래 나락 모판을 밟아버린 것처럼 떡판을 밟아버리기도 했단다. 그러나 민족혼은 더욱더 설날을 강하게 기억하도록 만들고 소극적이지만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으로 설날을 쇠기도 했다. 

해 방되고 이승만 대통령은 서구의식으로 설을 복원하지 않았다. 그래도 민중들은 왜놈 설이라며 신정에 대해 반감을 품었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가정의례준칙을 발표하고 설을 쇠지 못하도록 했다. 이른바 이중과세 금지였다. 없는 살림에 두 번씩 설을 쇠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며 경제발전에 매진하자는 것이었지만 당시 박정권의 존망은 식량 자급에 달려 있었다. 해서 한 톨의 양식도 아껴야만 정권이 불안정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설 날은 정월 초하루이지만 보통 보름까지 설 기간으로 잡고 세시행사를 한다. 따라서 먹고 마시는 양도 많고 일을 하지 않으니 박정희는 그것을 바꿔보려 한 것이다. 많은 공무원 가족과 부유층이 신정을 쇠기도 했지만 신정은 설날을 대체할 수 없었다. 거대한 민족 문화의 뿌리는 잘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막 산업화가 시작 되며 고향을 등졌던 사람들이 구정이면 귀성으로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이 시작된 시점이기도 하다. 1969년인가로 기억되는 서울역 참사사건은 당시 설을 쇠러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의 설렘에 찬물을 뒤집어씌운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도 그때뿐 다음 해엔 더 많은 귀성객이 서울역을 메웠다. 

일 제가 뭐라던 박정희가 뭐라던 민중들은 설을 잊을 수가 없었다. 고향엔 어른이 계시고 자신의 삶의 근거가 있다. 거기서 설을 쇠어야만 그동안 유리된 채로 살아온 산업사회의 파편들이 공동체로 잠시나마 복귀해 위로받고 상처를 아물리게 하는 것으로 변모했다. 전두환 정권에서 민속의 날인가로 설을 인정하다가 89년인가 설은 제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이번 설에도 귀성으로 인한 교통대란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설 고향가는 KTX를 타러 이동하는 시민들

설연휴를 하루 앞둔 29일 오전 서울역에서 귀성객들이 고향으로 출발하는 KTX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희망이 거론되지 못하는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설 날은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차례가 끝나면 성묘를 하거나 세배를 다닌다. 아이들이야 세뱃돈 욕심에 멀고 가까운 친척을 가리지 않는다. 가까운 이웃의 어른과 먼 곳의 친척까지도 보름 전까지 세배를 드린다. 그리고 연을 날린다.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연을 만들고 날린다. 지금은 다양한 연들이 개발되어 날리지만 예전에는 주로 방패연이었다. 방패연은 역사가 길다. 이미 중국의 삼국지에 나오며 김유신 장군도 연을 이용해 신호했다고 하니 군사용으로 개발되어 민간 풍속으로 정착된 것 같다.

세 시풍속은 다양하다. 연날리기, 윷놀이, 여자들은 널뛰기 등 공동체 놀이가 중심이다. 우선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드린다. 차례를 지낸 후에 떡국을 반드시 먹었는데 떡국은 꿩고기를 넣는 것이 정석이다. 꿩이 없으면 닭고기를 넣는데 ‘꿩대신닭’이라는 속담은 여기에서 연유한다. 하얀 가래떡을 동그랗게 썰어 넣어 엽전을 연상케 했다. 돈이 많이 들어오라는 기복 풍습이다. 세배는 웃어른에 대한 예의다. 세배를 받은 웃어른은 세뱃돈을 나누어 줬는데 이 또 한 돈이 많이 생기라는 의미의 복돈이다. 글을 아는 어른들은 토정비결을 봐주었다. 올해 생기게 될 운세를 점쳐주는 것으로 아녀자들에겐 인기 만점이라 너도나도 그 어른께 세배 드리러 간다. 

토 정비결은 아산현감을 지낸 토정 이지함이 지은 것으로 일종의 예언서이다. 여기엔 태세(太歲), 월건(月建), 일진(日辰) 등을 숫자로 따지고 주역(周易)의 음양설(陰陽說)에 근거하여 일 년의 신수를 보는 것이다. 지금도 토정비결은 한해 운세를 점치는 대중적인 놀이처럼 유행하고 있다. 토정 선생은 마포 근처에 흙으로 정자를 짓고 기거를 했다고 해서 붙여진 호이다. 토정 선생은 백성들이 유리걸식하는 모습을 보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도록 유도하기 위해 비결을 지어 퍼트린 것이다. 

개 인의 운세를 토정비결이 점쳤다고 한다면 한해 해운은 무엇으로 아는가. 그것은 책력에 나와 있다. 해마다 운세가 다른 것은 천지간의 조화다. 지구의 움직임, 별들의 흐름, 태양의 변화들을 종합하여 나타낸 것이다. 농경시대엔 이런 천지간의 조화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다. 또한 농민들에게 해운을 미리 알림으로서 대비하고 정치적으로는 이데올로기화하여 근면한 생활을 유도했음이다. 

임 금이 신하에게 설날 새 달력을 나누어주면 그것으로 해운을 점치고 백성들에게 알렸다. 이것은 토정비결을 보는 개인의 행불행을 점치는 것보다 먼저였다. 세상이 변해 산업사회가 되다보니 해운은 간데없고 토정비결만 사람들에게 회자된다. 불확실성의 시대가 되어선지 곳곳에 점집이 늘어가는 추세다. 미신이라고 터부시하던 60년대를 능가하는 점집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다. 올해는 지방선거가 있다. 점집들이 호황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출마를 예정하는 사람들이 본인은 아닐지라도 배우자나 가족들이 운세를 보기 위해 점집 문턱을 닳게 할 것이 분명하다. 

사 회변화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으니 점치는 양반들도 이는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거기에 해운까지 참고한다면 개인의 행불행이 사주팔자에만 묶이지 않고 사회 전체의 상황과 천지간의 조화까지도 담아냄으로써 전체 사회의 행복도 미리 점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 같다. 

자 그럼 올해 태세를 짚어보도록 하자. 올해는 용이 세 마리다. 말이 다섯 마리, 소가 열두 마리다. 거기에 신(辛)일이 열흘이나 된다. 그럼 각자의 역할을 보자. 용은 치수를 담당한다. 일반적으로 용이 많으면 비가 많다고 풀이한다. 말은 수확물을 운반을 담당한다. 말이 수가 많을수록 수확물이 많다고 본다. 소는 경전을 담당한다. 소가 많을수록 더 많은 밭을 갈 수 있다. 신일은 모든 씨받이 생명의 수분수정이 가능한 날수다. 수분일이 길수록 열매가 많이 달린다고 해석한다. 

독 자들께서도 해석해 보시라. 이 네가지 경우의 수가 서로 견제하면서 해운이 결정 나기에 해석 여하에 따라 해운을 잘못 짚을 수도 있다. 이렇게 개인과 사회의 욕구와 희망을 정서적으로 아우르고 극대화하는 날이 어느 민족에게나 있었을까. 세시에 행하는 모든 행위가 농사를 제대로 지어보려는 민중들의 염원이 녹아들어 있다. 농사는 만사의 근본이고 대사이기에 설을 통해 강조하고 다짐을 두고 소원했다. 

이 렇듯 설날은 민중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세우는 날이었다. 모든 새로 만든 것으로 조상에게 예의를 차리고 또한 동고동락의 사람들과 서로 나누어 먹고 서로에게 희망의 덕담을 나누어주고 하는 세시풍속의 모든 것이 새로운 희망들을 만들어 내는 행위였을 것이다. 그런 희망의 장을 가두고 이중과세하지 말자는 표어와 정책으로 눌러버린 지배자들의 놀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아 보인다. 

농 사가 죽어버린 우리에겐 지금 희망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아니 희망을 말할 수 있는 마당이라는 구조 공동체가 없어져 버렸다. 희망이 거론되지 못하는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입춘절 양지 바른 곳에서 흙을 밀고 올라온 푸릇한 기운들을 보고 희망을 만들어 세웠던 설. 우리가 시급히 복원해야 할 희망의 마당은 우리가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것은 어쩌면 농업의 새로운 판짜기로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저 갑오년의 농민들이 희망을 갈구하며 일어선 것처럼 우리의 입으로 희망을 말할 수 있도록 판짜기를 해야 한다. 이번 설은 그런 설이 되어야 한다. 설, 잘들 쇠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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