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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비정상의 극치…시치미 뗀다고 국민이 믿을까"

'사면초가' 남재준…<조선>도 "남재준 과잉 신념 탓"

 

곽재훈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3.10 11:10:24

 

 

 

 

 

 

국가정보원 등에 의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의 후폭풍이 남재준 국정원장을 정면 겨냥하고 있다. 야당은 물론 '보수세력의 바이블'로 불리는 조선일보마저 남 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아울러 사건 발생 이후 침묵을 이어가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입장 표명 요구도 거세졌다.
 
민주당-조선일보 한목소리 낸 사연은…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10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국정원이 이렇게까지 망가진 것에 국민들이 경악하고 있다. 여기에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의 경계도 없다"며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그럼에도 진정한 자기 반성이나 책임지는 자세가 보이지 않는다"며 "국정원은 박근혜 정부의 '비정상성'을 극명하게 대표적으로 상징하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이라며 "이쯤 되면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민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엄벌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개혁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김진태 검찰총장이 신속·엄정한 수사를 지시했다지만 국정원에 동조한 의혹이 있는 검찰의 수사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할 것"이라며 "특검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날 통합신당 창당추진단 공동단장을 맡은 안철수 의원과 특검 도입을 요구하는 공동 회견을 했었다. (☞관련기사 보기)
 
김 대표가 '국정원에 대한 국민의 경악에는 진보·보수 이념의 경계도 없다'고 한 부분은 이날자 <조선일보> 사설을 떠올리게 한다. <조선>은 '남재준 국정원장이 책임져야' 제하 사설에서 "아직 국정원이 위조를 지시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설사 위조를 지시하지 않았다고 해도 책임은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주한 중국대사관의 '위조' 주장 이후 국정원이 계속 뻗대기를 해온 것을 거론하며 "거짓말이거나 무능이다. 국정원이 그동안 내세워 온 '50년 대공수사 노하우'의 실상이 이것이라니 정말 충격적"이라고 비난했다. "(남 원장의) 과잉 신념은 국가의 위기까지 부를 수 있다"며 "국정원 관련 모든 문제의 바탕에는 무절제한 신념이 어른거리고 있다"고도 했다. 
 
신문은 "남 원장이 문서 위조를 몰랐다면 다른 누구보다 앞장서서 문서 검증을 지시했어야 한다"며 "유(우성) 씨가 실제 간첩이라면 남 원장과 국정원이 놓아준 것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간첩이 아니라면 무고한 사람에게 엄청난 누명을 씌운 것이다. 검찰 수사 결과와 관계없이 남 원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순리"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이날 1면 머릿기사에서는 국정원 소속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이인철 주 선양(瀋陽)총영사관 영사가 허룽(和龍)시에 가보지도 않고 '가짜 영사확인서'를 만들어 보냈다면서, 이 영사가 검찰에서 "처음에는 확인서 작성을 거부했지만 본부(국정원) 측의 거듭된 지시로 어쩔 수 없이 가짜 확인서를 만들어 보내 줬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이날 <한겨레>는 자살을 시도했던 조선족 동포 김모 씨가 올해 1월 중국 칭다오(靑島)시에서 중국 변호사와 만나, 유 씨의 출입경기록 문건을 보여주며 '중국 상급기관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겠냐'고 물었다고 당시 동석했던 재중동포의 말을 빌어 전했다. 이 동포는 "김 씨가 그때 서류를 들고 왔는데 그게 (두께가) 한 1cm쯤 됐다. 복사본인지 뭔지 도장도 있었던 거 같다"고 신문에 말했다. 
 
이는 김 씨가 싼허(三合)세관에서 발급받았다고 위조한 것으로 알려진 '출입경기록 정황에 대한 회신(회신)' 문건 외에 다른 문서 위조에도 관여했을 정황이다. 검찰이 국정원에서 건네받아 법원에 증거로 제출한 문서 가운데는, 김 씨가 칭다오에서 중국 변호사에게 문의했다는 내용과 정확히 같은 내용의 문서가 있다. 허룽시 공안국이 발급했다며 법원에 낸 '출입경기록 발급 사실확인서(확인서)'다. 
 
국정원 '송구하다' 보도자료, 오히려 뭇매
 
국정원이 전날 "세간에 물의를 일으켜 송구하다"는 보도자료룰 낸 것은 오히려 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정원은 일요일인 전날 밤 입장을 내어 "국정원은 재판 진행 과정에서 증거를 보강하기 위해 3건의 문서를 중국 내 협조자로부터 입수하여 검찰에 제출했다"며 "하지만 현재 이 문서들의 위조여부가 문제가 되고 있어 저희 국정원으로서도 매우 당혹스럽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국정원은 "국정원은 조속히 검찰에서 진실 여부가 밝혀지도록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며 "수사 결과 위법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관련자는 반드시 엄벌에 처해서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번 계기를 통해 거듭나는 국정원이 되겠다. 다시 한 번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국정원은 휴일 밤 늦게 이메일을 보내서 국민에게 '송구스럽다'고 밝혔지만 진정성을 찾아보기엔 너무도 부족하다. 문서 위조 자체에 대해 인정하거나 사과 한 마디 없었다"고 비판했다. 전 원내대표는 "휴일 밤늦게 형식적 사과문으로 하려는 꼼수가 통할 리 없다"며 "남 원장은 책임지고 사퇴해야 할 것이다. 국정원 개혁과 개과천선은 남재준 사퇴와 특검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같은 당 신경민 최고위원도 "국정원이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한 듯 하다"고 혀를 찼다. 신 최고위원은 "국정원은 처음에는 진본이라고 주장하다가, 진본이라고 믿었다고 하면서 책임을 넘기고 있다"며 "찌질해도 너무도 찌질한 국정원"이라고 꼬집었다. 신 최고위원은 "만기친람하는 청와대와 대통령이 긴급 현안이 나오면 침묵하는지 모르겠다"며 "공부하는 학생이 아는 문제만 골라서 답할 수 없듯, 대통령은 질문을 피하거나 할 수 없다"고 했다. 양승조 최고위원도 "국격 떨어뜨린 남 원장을 즉각 해임하라"고 거들었다. 
 
정의당 천호선 대표는 "조작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어제 국정원이 도둑처럼 사과문을 발표했다"며 "하지만 문서 위조 그 자체를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고 마치 아무것도 몰랐다는 듯이 시치미를 떼고 있다. 이를 믿을 국민이 있을까 의문"이라고 했다. 천 대표는 "국정원 수장 남재준 원장과 황교안 법무장관은 즉시 사퇴해야 한다"며 여당에 대해서도 "새누리당은 증거조작이 명백해진 이상, 그간 국정원을 비호하고 외교적으로 문제가 될 발언까지 했던 것에 대해 사죄하고 이 사건에 대한 특검 도입에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공세를 폈다. 
 
여당에서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이날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유기준 최고위원은 기존 여당의 입장과 똑같이 "정치공세로 본질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고 야당을 공박하면서도 "간첩혐의는 간첩혐의, 증거조작은 증거조작"이라며 "이번 사건은 간첩혐의와 증거조작이다. (각각의) 잘잘못을 엄중히 따지면 된다"고 했다. 이혜훈 최고위원도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과 관련해 검찰은 국민적 의혹이 단 한 점도 남지 않게 철저히, 공정히 수사하지 않으면 검찰의 신뢰는 물론 대한민국 정부의 신뢰도 산산조각 날 수밖에 없다는 사즉생의 각오로 임해야할 것"이라고 했다. 야당의 특검 주장을 수용하지 않는 선에서 나름대로 최대 수위의 방어를 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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