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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 예수처럼 쓰러져도 평화의 표지 될 것”

“강정마을, 예수처럼 쓰러져도 평화의 표지 될 것”

 

‘24시간 공사’ 이어지는 해군기지 앞 끈질기게 지키는 사람들

강한 기자 | fertix@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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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1.15 11:14:37

 

 

 

 

 
▲ 11월 12일 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 미사에 참여하는 사람들 ⓒ강한 기자

 

11월 12일, ‘24시간 공사’가 진행 중인 강정마을 제주 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는 천주교 생명평화 미사, 개신교 기도회와 함께, 공사장 문을 막아선 활동가들과 경찰의 몸싸움도 계속되고 있었다.

“고착”이라는 생소한 낱말은 이제 경찰뿐만 아니라 공사장 앞을 지키는 활동가와 사제들에게도 익숙한 용어가 돼버렸다. 이는 경찰이 바닥에 주저앉은 활동가나 사제를 강제로 들어 옮기고, 움직이지 못하도록 막는 일을 말한다.

오전 11시 미사와 묵주기도가 끝난 후 점심시간. 공사장 정문 앞으로 몰려온 경찰 수십 명이 활동가들을 강제 이동시키고, 문 앞에 놓여 있던 팻말과 돌, 드럼통 난로 등을 치우자 철문이 열린다. 레미콘을 비롯한 공사차량 십여 대가 공사장을 드나든다.

강정마을에 상주하며 활동하는 한경아(세실리아) 씨가 마이크에 대고 연신 경찰을 비판하고, 경찰들 틈에 갇혀 꼼짝할 수 없게 된 활동가들도 목소리를 높여 항의한다. 그러나 경찰들 대다수는 이제 이런 일에 익숙하다는 듯 무심한 얼굴이다. 공사장 앞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벌어지는 몸싸움과 입씨름은 강정마을의 일상적 풍경이 됐다.

 

 

   
▲ 11월 13일 오전 미사가 끝난 뒤 점심시간, 공사 차량을 통과시키기 위해 공사장 정문으로 몰려온 경찰과 사제, 활동가들이 대치하고 있다. ⓒ강한 기자

 

 

 

   
▲ 11월 12일 점심시간, 정문 앞을 막고 있던 사람들을 경찰이 해산시키자 레미콘 등 공사 차량이 들어서고 있다. ⓒ강한 기자

 

“이렇게 급하게 공사를 진행해서야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올지 의심스럽다”

강정 공소 정선녀(잔다크) 회장은 여느 때처럼 해군기지 공사장 앞 생명평화 미사의 해설을 맡고 있었다. 미사 이후에는 늘 ‘제주에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기도’와 묵주기도가 이어지고, <구럼비야 사랑해>를 노래한다. 정선녀 회장은 “해군이 정해진 시간 안에 무엇인가 달성할 목적으로 24시간 공사를 하는 것일 텐데, 이렇게 급하게 공사를 진행해서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올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정선녀 회장은 최근 귤 수확이 한창인 강정마을 주민들과는 주로 저녁 때 만날 수 있으며, “밤에는 주민들이 팀을 짜서 공사장 앞에 머물며 함께 지켜 주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해군기지에 찬성하는 사람조차도 내놓고 찬성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미군이 들어올 수도 있다는 데 대한 충격이 큰 것 같다”고 강정마을의 여론을 판단하고 있었다.

“주민들과의 모임은 자주 있어요. 활동가들을 위해 자기 집 방까지 내주는 등 주민들이 많이 애써주고 있지요. 공사장에서 케이슨 작업이 끝난 뒤에는 ‘마을 잔치’도 열렸습니다. 마침 비가 내려서 공사가 중단되니 쉴 수도 있었지요. 지킴이들이 지쳐서 많이 먹지는 못했습니다.”

 

 

   
▲ 11월 13일 오전, 공사장 앞 미사 해설을 맡고 있는 정선녀 강정 공소 회장 ⓒ강한 기자

 

 

 

   
▲ 11월 12일 오후, 제주 해군기지 공사장 앞 천막에서 봉헌하는 생명평화 미사 ⓒ강한 기자

 

“강정마을,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처럼 쓰러지더라도 온 세상 평화의 표지 될 것”

12일 오후, 제주 중앙 주교좌성당에서 봉헌하는 이영찬 신부 등 구속자 석방 촉구 시국 미사를 앞두고 서울, 인천, 전주 등 곳곳에서 찾아온 천주교 성직자와 신자들이 모여들며 공사장 앞도 활기를 띠었다.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을 맞아 홍색 영대(領帶)를 착용한 신부들은 공사장의 두 출입구와 제대가 있는 천막으로 나누어져 미사를 봉헌했다.

공사장 앞 오후 4시 미사를 주례한 박동호 신부(서울대교구)는 강론에서 “작은 고을 강정은 겉으로 봐서는 지치고 소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처럼 쓰러져 갈지도 모른다”면서도 “평화에 대한 신념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간직한 우리는 세상을 둘러보고 셈하여 이익을 따지지 말고 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2천 년 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한 젊은이의 삶이 온 세상을 바꾼 것처럼, 오늘날의 강정도 온 세상 평화의 소중한 표지가 될 것입니다.”

미사가 진행되는 도중 경찰이 몰려들어 해군기지 사업단 정문 앞에 앉아있던 사제와 활동가들을 들어 옮기기 시작하자 미사는 잠시 중단되고 말았다. 천막 안에 있던 신부들까지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는 사업단 앞으로 달려와 “헌법이 보장한 종교 행사를 경찰이 방해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이 와중에 군복 입은 이들을 가득 실은 해군 버스 몇 대가 사업단으로 들어서자 성직자, 활동가들의 항의와 야유 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 11월 12일 오후 미사 도중, 해군기지 사업단 정문 앞의 사제와 활동가들을 경찰이 에워싸자 미사가 중단됐다. 사제들이 경찰에게 항의하고 있다. ⓒ강한 기자

 

 

 

   
▲ 11월 12일 오후, 제주 해군기지 사업단 정문을 막고 있던 사람들을 경찰이 해산시킨 사이에 해군 버스가 진입하고 있다. ⓒ강한 기자

 

 

 

   
▲ 장성심 씨(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사제들 틈에서 기도하고 있다. 11월 12일 오후, 공사 차량 출입으로 중단됐던 미사가 다시 시작된 뒤의 모습 ⓒ강한 기자

 

제주교구 신자 장성심 씨, 공사장 앞에서 일주일 넘게 단식하며 기도 이어가
“내가 매일 짧은 옷 입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이유.. 사람들이 깨닫기를 바라는 호소”

제주교구 남원본당 신자인 장성심(루치아) 씨는 공사장 앞에서 단식을 이어가고 있었다. 11월 13일로 일주일째다. 삭발한 머리는 11월 10일 열린 ‘제15차 제주해군기지 백지화 전국시민행동의 날’ 행사에서 깎은 것이다. 세례 받은 지 약 3년이 됐다는 장 씨는 자신이 정해둔 기도 시간까지 약간의 여유가 남아 있다며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매일 공사장 앞에서 미사에 참석하고, 기도하고 있다. 낮밤도 없다. 최근에는 밤에도 침낭에 의지해 공사장 정문 앞을 지키며 농성하고 있다. 정선녀 회장은 장성심 씨가 십 년 넘게 택시를 운전한 “강한 제주 여자”라고 소개했다.

처음에는 물조차도 마시지 않는 단식을 시작했는데 여러 사람들이 “자살 행위다, 물이라도 마셔라” 하고 설득하자 5일째부터는 물과 효소를 먹으며 몸을 추스르고 있다. 그는 단식을 언제까지 계속할지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자매님 마음을 알겠으니 7일째인데 그만 단식을 풀라”고 권하는 한 신부에게는 “제가 죄를 짓겠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만하라고 하면 그때 중단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장성심 씨는 11월 6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영찬 신부의 구속적부심을 지켜봤다. 그는 이영찬 신부가 수인복(囚人服)을 입고, 손을 묶인 채 법정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말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법정 뒤편에 앉아서 무릎을 꿇은 채 조용히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장 씨는 강정마을 문제에 대해 제주도민, 특히 제주도 천주교 신자들의 호응이 적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강정마을의 평화활동가들 대부분이 ‘육지’에서 온 분들”이라면서 “제가 매일같이 미사 시간에 짧은 옷을 입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제발 깨닫기를 바라는 호소”라고 말했다.

13일 오후 4시 제주지방기상청은 제주도 전역에 강풍주의보를 내렸다. 1박2일 일정으로 강정마을을 찾아왔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며 한산해진 공사장 앞에도 거센 바람이 불고 빗방울까지 떨어졌다. 식당에 모여든 활동가들은 추위와 바람에 몸은 움츠러들어도 악천후에 공사가 중단되지 않을까 기대하며 반기는 기색이다. 거센 바람 속에 강정마을에 다시 긴 밤이 찾아들었다.

 

 

   
▲ 11월 13일 오후, 공사가 한창인 제주 해군기지 공사장의 모습 ⓒ강한 기자

 

 

 

   
▲ 11월 13일 새벽, 공사장 앞을 지키는 활동가들의 천막에 불이 밝혀져 있다. ⓒ강한 기자

 

 

 

   
▲ 11월 13일 새벽, 공사장 정문 앞에서 장성심 씨가 자주색 침낭을 덮고 추위를 견디고 있다. ⓒ강한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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