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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불법 사찰' 낱낱이 파헤친, 장진수의 <블루게이트>

'7급 공무원' 내팽개친 남자, 존경스럽다

[서평] '민간인 불법 사찰' 낱낱이 파헤친, 장진수의 <블루게이트>
14.06.21 18:06l최종 업데이트 14.06.21 18:06l
 
 

 

 

장진수.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2004년 7급 행정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이른바 '3대가 공덕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농담이 유행하는 요즘, 그가 7급 시험에 합격하여 공무원으로 임용된 것은 그야말로 큰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고향에 사는 칠순 넘은 부모님에게도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2005년 공무원에 임용된 후에도 그는 괜찮았다. 상당히 힘이 센 정부 부처 중 하나인 국무총리실에서 나름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는 우연히 잡은 행운 뒤에 바짝 숨어 있었던 '불행의 습격'을 받았다. 공직자들이 선망하는, 그래서 본인 역시 갈망했지만 진짜 가게 될 줄은 몰랐던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지원관실)에 발령이 나면서였다. 처음엔 그 행운에 즐거웠다고 한다. 공직자 비위를 조사하는 암행 감찰 부서이니 오죽하겠는가. 그런데 그곳에서 다가온 것은 기대했던 행복이 아니라 상상도 못한 엄청난 불행, 그 자체였던 것이다. 

<블루게이트> 이명박 정부의 최대 치부 고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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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루게이트> 표지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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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발단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첫해, 광우병 우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확산됐다. 이른바 '촛불 정국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당황한 이명박 정부의 대처는 엉뚱했다. 사회 전반을 다잡겠다며 전방위적인 사찰과 응징으로 화답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빚어진 사건이 바로 청와대와 지원관실이 주도한 '민간인 불법 사찰'이다. 

생각해보면 이 사건의 발단은 황당한 수준이었다. 사기업 금융업체 대표로 일하던 김종익씨가 자신의 인터넷 개인 블로그에 올린 한편의 동영상이 계기가 됐다. 그 동영상은 2008년 당시 미국 의료민영화를 비판해 화제가 된 영화 <식코>를 패러디한 <쥐코>였다. 그런데 이 사실을 지원관실이 포착하면서 이후 엉뚱한 파문으로 이어진 것이다.

지원관실은 민간인 신분인 김종익 대표가 운영하던 회사를 권한도 없이 불법 수색했다. 그러더니 이후 원청 업체에 압력을 넣어 김종익씨를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했고 이어 그가 보유하고 있던 회사 지분도 포기하게 만들었다. 더 나아가 서울 동작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다. 그들의 이 모든 행위는 불법이었다. 

김종익씨는 순수 민간인 신분이었다. 따라서 그가 무엇을 하든 국무총리실 소속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개입할 권리도, 이유도 없었다. 지원관실의 권한은 공무원의 비위 등 공직자들에 한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영역을 뛰어 넘어 정권에 반대하는 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민간인 신분인 김종익씨를 파멸로 몰아넣은 것이다. 있을 수 없는 '권력형 범죄'인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이 사실이 폭로된 것은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10년 6월 29일이었다. 고발 프로그램의 대명사인 MBC <PD수첩>이 국가권력형 범죄를 폭로한 것이다. 방송 후 두려움에 떨기 시작한 건 지원관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어찌했을까. 그때라도 거기서 멈춰야 했으나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지원관실의 판단은 달랐다. 그들은 제 2라운드를 시작했다. 이른바 '국가 권력 기관의 총체적 범죄 은폐'에 나선 것이다.

'컴퓨터를 한강에 통째로 던져라' 청와대 행정관의 지시

가장 먼저 한 일은 범죄 증거가 담긴 모든 문서를 파쇄 하는 것이었다. 공문서 수만장이 지원관실의 문서 파쇄기 안에서 갈가리 찢겼다. 이어 지원관실의 모든 컴퓨터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무서운 음모였다.

2014년 6월 나온 장진수의 <블루게이트>(오마이북)에는 이 같은 무서운 비밀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는 2008년 이 사건 시작에서부터 2013년 11월 양심선언 후 대법원 선고가 있을 때까지 전 과정을 마치 드라마 대본처럼 상세하게 썼다. 지금까지 있었던 그 어떤 양심선언보다 구체적이며 적나라하다. 특히 내 눈을 끄는 대목은 당시 이명박 청와대에서 행정관으로 일하던 최종석과 관련한 부분이었다.

민간인 불법 사찰은 지원관실만의 단독 범죄가 아니었다. 이명박 청와대가 깊숙이 관여했다. 추후 스스로를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의 몸통'이라고 주장하며 괴상한 기자회견을 연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을 비롯하여 권력의 핵심 세력이 결합한 '총체적인 권력형 범죄'였다. 그렇기에 이 은폐 과정에서도 청와대 관계자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했는데 그 중 한명이 청와대 최종석 전 행정관이었다.

2010년 7월 5일 지원관실의 과 서무였던 장진수를 최종석 행정관이 급히 찾았다고 한다. 장진수를 만난 최종석은 놀라운 말들을 쏟아냈다. 그는 "내일 검찰이 압수수색을 하러 국무총리실로 갈 것"이라며 범죄 증거의 완벽한 은폐를 지시했다고 한다. 이에 장진수는 상관이었던 진경락 과장의 지시에 따라 "이미 필요한 조치를 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최종석의 다음 지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고 한다. 마치 조직폭력배를 주제로 다루는 영화에서나 볼만한 대사였다.

"어떻게 해도 검찰은 자료를 다 복구한다고 합디다. 반드시 물리적인 조치를 해야 검찰이 복구를 못 해요. 망치로 깨 부숴 쓰레기통에 버리든지... 아니면 한강에 던져 버리면 더 좋은데. 하드 디스크를 분리하기 어려우면 아예 컴퓨터를 통째로 강물에 갖다 던져 버려도 괜찮고. 검찰에서 문제 삼지 않기로 (청와대) 민정 수석실과 얘기가 다 돼 있어요."

국가 권력이 '범죄의 주체'로 나서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할 수 있는 끔찍한 발언이었다. 2012년 4월, 결국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은 이 엄청난 증거 인멸 행위로 구속된다. 장진수의 양심선언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파묻힐 뻔한 범죄였다.

내가 왜 그들과 공범인가? 장진수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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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과 증거 인멸 사실을 폭로한 장진수(41)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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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장진수의 양심선언에 대해 일부에서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장진수 역시 아주 '성실하게' 이 범죄 은폐 과정 초기에 역할을 하지 않았냐는 반론이다. 실제로 장진수는 자신이 상관으로 모셨던 '공무원 범죄자'들의 요구를 충실히 따랐다. 컴퓨터 기록을 삭제했고, 문서를 없앴으며, 검찰 수사 과정에서 모의한 것처럼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장진수는 왜 양심선언을 하게 된 것일까. 나 역시 그 이유가 몹시 궁금했다. 더구나 장진수의 입을 막기 위해 '공무원 범죄자'들은 열심히 노력했다. 5만 원 신권을 압착 밀봉한 이른바 '관봉'(조폐공사가 신권 지폐를 한국은행에 납품할 때 사용하는 돈 묶음) 5천만 원을 장진수에게 전달하기도 했고 공기업에 일자리를 만들어 주겠다는 유혹도 했다. 그런데 이 모든 유혹을 끝내 다 뿌리치고 장진수는 양심선언을 선택했다.

혹자는 '장진수가 1심 재판을 통해 자신에게도 유죄 선고가 내려지자 이를 모면하고자 돌출행위를 한 것 아니냐'며 폄하하기도 했다. 또 누군가는 그 역시 처벌받아야 할 대상일 뿐이라며 양심선언의 의미를 축소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당사자인 장진수를 직접 만나 그에게 진짜 이유를 묻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만난 나는 그와 점심을 함께 먹으며 약 2시간에 걸쳐 대화를 했다. 그때 마지막으로 물은 질문이었다.

"장 선생님, 제가 정말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사실 처음엔 그들의 요구에 따라 증거 인멸 행위에 동참하셨잖아요? 왜 그때는 그러한 요구를 거부하지 않으신 거예요?"

장진수는 약간의 뜸을 들이다가 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참 부끄러운 게 그 부분인데요. 이해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때 그게 제 역할에 맞는 줄 알았습니다. 공무원 조직의 과 서무로서, 상관이 시키니까 그렇게 따르는 것이 공무원으로서 당연하다고 쉽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해서는 안 될 범죄 행위에 결과적으로 저도 가담하게 된 것입니다. 그 지시를 잘 수행해야지 하는 생각만 하고 그때는 다른 생각을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어느 날 갑자기 양심선언을 하기로 결심한 것인가요?"

그러자 장진수의 눈빛이 크게 일렁거렸다. 회한과 울분, 그리고 자조적인 부끄러움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1심 선고 때였어요. 판결문을 듣는데 정말 참혹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조직원으로서 상관인 그들의 지시에 따라 행동했지만 제 개인 윤리 기준으로는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는 없었거든요.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왜 저런 잘못을 하는가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솔직히 지시는 따르지만 속마음에서는 그들을 경멸했고 나는 그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상관이니 그 지시에 따르기는 하지만 난 저들과는 다르다'는 생각 말입니다. 

그런데 1심 판결을 보니 제가 그토록 경멸했던 그들과 한패로 묶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이건 아니다. 내가 왜 저런 자들과 공범이 되어야 하나. 그제야 비로소 진실이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했습니다. 이제라도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진실을 다 밝혀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저는 국민을 위한 진짜 공무원이 되고 싶었습니다."

장진수, 나는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양심 선언자가 대우받는 세상을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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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진수 주무관의 <블루게이트> 북콘서트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의 실체와 청와대 개입을 용기있게 폭로한 장진수 주무관이 지난 9일 <블루게이트> 출간 기념 북콘서트에서 민간인 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와 함께 비틀즈의 예스터데이(Yesterday)를 연주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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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선언은 짧고 그 고통은 길다.'

우리나라 양심 선언자에게 이 말보다 더 어울리는 표현이 있을까. 천만 관객이 봤다는 영화 <변호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의 고문 주장을 거짓으로 몰아가는 국가 권력의 조직적 은폐에 맞서 양심적인 군의관 윤성두 중위는 어렵게 진실을 폭로한다. 하지만 그의 양심선언은 이내 국가 권력의 힘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끌려 나간 윤성두 중위가 이후 감당해야할 고난을 상상하며 관객들은 분노와 울분을 느껴야 했다.

마찬가지로 나는 지금 양심선언을 한 후 장진수가 겪는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만약 그가 그들의 제안대로 '관봉'을 받았다면, 그래서 그들과 한패가 되어 계속 거짓말을 하고 그 대가로 더 많은 돈과 공기업 직장까지 알선 받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가 지금처럼 경제적 핍박이나 정신적 고통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왜 이런 달콤한 유혹 대신 고난을 선택했을까. 정말 지금도 후회하지 않을까.

"제가 진실을 밝힌 것에 대해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폭로를 하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했습니다. 무엇보다 검찰에서 진실을 말하고 나니 더 이상 이런 저런 거짓 핑계를 대며 느껴야 했던 고통이 없어 좋았습니다. 어차피 진실을 얘기 안 하면 전 살 수 없었습니다. 설령 앞으로 더 힘든 처지에 놓이더라도 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선택에 이처럼 분명한 장진수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고 했다. 그중 하나가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댓글 사건과 자신의 사건을 처리하는데 있어 이중적 태도를 보인 검찰이라고 한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은 대규모 부정선거 행위를 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수사를 마무리하면서 불법행위에 가담한 국정원 직원들을 대거 기소유예 또는 입건유예로 처분했다. 사실상 처벌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도 국가정보원의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 같은 검찰의 이해할 수 없는 처분에 국민적 분노가 분출하자 다급해진 검찰이 내놓은 해명은 기가 막혔다. '국정원의 상명하복 관계의 조직 특성을 감안할 때 원세훈 전 원장의 지시에 따라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해 직원들을 기소유예 했다'는 것이었다. 장진수 전 주무관은 "만약 그런 논리라면 왜 자신은 기소유예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자신 역시 상관의 지시에 따른 것인데 뭐가 다르냐는 항변이었다. 내가 보기에 만약 다르다면 그들은 침묵했고, 장진수는 진실을 폭로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진수의 양심선언이 없었다면 검찰은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하고 끝내야 했다. 하지만 장진수의 양심선언이 있었기에 지원관실뿐만 아니라 청와대 민정 수석실과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던 이영호 고용노동비서관이 조직적으로 개입했음을 밝힐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그 완벽한 진실은 다 드러나지 않았지만 장진수의 양심선언이 아니었다면 이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점을 대한민국 검찰도, 법원도, 대법원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2013년 11월 28일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장진수는 그로 인해 공무원 직위를 잃었고, 반면 자신에게 증거 인멸을 지시했던 상관 진경락은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되는 기막힌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정의이며 진실을 대하는 태도인지 반문하는 장진수 앞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래서 당부한다. 장진수 전 주무관처럼 우리 모두가 양심선언자로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대신 용기를 내어 진실을 말한 사람에게 응원과 격려는 할 수 있다. 그 가장 쉽고도 확실한 선택은 장진수 전 주무관이 남긴 양심선언을 열심히 읽어주고 공감하는 것이다. 그래서 단언한다. 그가 펴낸 책 <블루게이트>가 더 많이 읽힐수록 우리 사회는 그만큼 깨끗해 질 것이다. 그래야 거짓을 말한 이들이 더욱 더 부끄러워질 것이다. 이 책이 대한민국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나는 그것이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우리가 주는 의리라고 생각한다. 

'음료' 하나 마시는 의리보다, 양심선언을 선택한 장진수 전 주무관의 <블루게이트>를 구매하고 널리 읽는 의리. 그것이 대한민국을 바꾸는 '진짜 의리' 아닐까. 나는 이미 의리를 지켰다. 함께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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