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해산과 국민모임 등장으로 진보정당 간 재편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진보정당은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이래 약 15년 간 큰 부침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이는 직장을 잃었고, 어떤 이는 스스로 직장을 떠났다. 또 어떤 이들은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진보정당 쇠락의 15년, 그 안의 사람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진보정당? 대표적인 노동법 위반 사업장”

많은 언론이 기사를 쓸 때 ‘야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을 거의 같은 단어로 쓴다.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더 이상 진보정당은 중요한 변수로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진보정당에게도 한 때  전성기가 있었다.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은 2004년 총선에서 원내 10석을 차지하며. 진보정당운동에 희망을 줬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NL과 PD의 대립이라는 내부 정파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채 2008년 분당했다. 분당 이후 진보정당은 이합집산을 거쳐 세 갈래로 갈라졌다. 그 중 가장 다수였던 통합진보당은 지난해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됐고, 정의당은 아직 원내 제3당으로 남아 있지만 영향력은 예전만 못하다. 통합진보당 창당 때 독자노선을 택했던 노동당(구 진보신당)은 2012년 이후 원외정당이다. 녹색당도 있고 그 외 진보정당을 창당하려는 움직임은 있으나 아직 진보정당은 지리멸렬하다.

진보정당의 쇠락 과정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이들은 진보정당의 당직자, 활동가들이다. 노동당의 부대표였던 장석준씨는 민노당 창당 이전인 창당준비위원회의 교육부장으로 당 활동을 시작했다. 장씨는 “민노당이 원내진출하기 전 한 달에 50만원 받았다. 아마 4대 보험도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며 “원내진출을 전후로 급여가 현실화됐다”고 말했다.

아주 많은 돈을 받은 것은 아니다. 민노당 원내진출 전후를 경험한 당직자들과 당시 민노당 의원 보좌관들은 월급으로 평균 150~180만원을 받았다고 기억했다. 2000년 민노당에 입당해 2004년 중앙당 정책연구원으로 활동한 윤현식씨는 “노동자 평균임금 정도를 받자고 하고, 그 선에서 임금을 맞췄다”고 말했다.

   
▲ 2004년 총선 직후 권영길 당시 민주노동당 대표 등 당선자들이 여의도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연합뉴스
 

월급 150만원을 좋았던 시절로 기억할 만큼 진보정당 당직자들의 상황은 좋지 않다. 사회를 바꾸고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일종의 ‘신념노동’이지만, 정작 이들의 노동권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생계문제는 이들이 진보정당을 떠나는 중요한 요인이다.

원외정당의 경우 상황은 더 안 좋다. 진보신당은 조승수 전 의원이 당선되기 전까지 원외정당이었다. 조 전 의원이 탈당한 후 원외정당이 되면서 당직자들이 80만원을 받았던 때도 있다. 지금은 현실화됐지만, 여전히 100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원외정당의 당직자 생활을 경험한 A씨는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진보정당은 대표적인 노동법 위반 사업장”이라고 털어놨다. A씨는 “공식적으로는 6시 퇴근, 5시 퇴근으로 산정하고 임금을 주는데 그렇게 적시만 했을 뿐 일은 훨씬 많이 한다. 말도 안 되는 야근과 살인적인 일정이 많다. 야근수당이 나와야 맞는 것”이라며 “1년 6개월 간 야근하고 주말이 없는 생활을 한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노동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기에 노동시간을 계측하기도 쉽지 않다. 윤현식씨는 “당직자들은 업무가 끝난 후에도 여러 활동을 한다. 조직파트의 활동가라면 술 마시는 것도 일”이라며 “틈만 나면 집회 나가고 현장을 지키느라 밤새는 일도 많다. 이런 일들은 업무로 잡히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결혼·가족 부양 불가능에 가까워”…강제 세대교체

이러한 임금 수준으로 생활이 가능할까. 전·현직 진보정당 당직자들은 결혼을 하는 것도 힘들고, 가족을 부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하나같이 “다른 일을 같이 하지 않으면 생계를 꾸려나갈 수 없다” “출산을 포기해야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A씨는 “한 달에 105만원 받았는데, 결혼해서 애가 있는 사람은 이 일을 할 수 없다고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소위 ‘투잡’을 뛰어야하지만, 노동시간이 너무 많아 투잡을 뛸 시간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2002년부터 당 활동을 시작했던 B씨는 민노당 지역위원회, 진보신당 경기도당, 진보신당 중앙당에서 일하다 결국 당직자 생활을 접었다. 그는 민노당 지역위원회에서 일할 때 110만원, 이후 약 130~160만원을 받았으나 진보신당이 등록 취소된 이후에는 80만원으로 생계를 꾸려야 했다.

   
▲ 2008년 4월 22일 국회의원 등록을 마친 민주노동당 단병호(오른쪽), 이영순(왼쪽) 등 비례대표 당선자들이 등록실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B씨는 “2012년 총선 이후 그해 말까지 80만 원 밖에 받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부양해야할 어머니가 있었는데 어머니가 병 때문에 아프셨다”며 “도저히 감당이 안 돼서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았다”고 말했다.

B씨는 진보정당 당직자들이 생계에 위협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B씨는 “분당 이후 진보신당 창당 초기에 일을 하는데 3개월 동안 월급을 못 받은 적도 있다”며 “중앙당은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지역 당협에는 상근자 두기 어려운 곳도 많다”고 전했다. B씨는 “모 지역당협의 경우 사무국장이 80만원을 받는 상황에서 한 당원이 당 활동을 해보겠다고 왔다. 그래서 30만원을 더 끌어와서 한 사람은 60만원, 다른 사람은 50만원을 받으며 일했다. 그냥 혈기만 가지고 생활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경우들이 많다”고 밝혔다.

진보정당 당직자들이 보수정당보다 젊은 이유도 적은 임금이 용인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장석준씨는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입 전에는 미혼에 20대 후반~30대 초반의 당직자들이 많았다. 진보신당과 노동당 당직자들도 20~30대로 젊은 편”이라며 “세대교체라는 의미도 있으나 젊은 세대가 가족 부양 등의 의무에서 자유롭기에 열악한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다는 점도 작용한다”고 말했다.

퇴직금 받으려…“한 달만 있다 분당하면 안 되나요?”

결국 당직자들의 삶의 굴곡은 진보정당의 굴곡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당직자들이 진보정당의 전성기였던 민주노동당 시절을 가장 좋았던 시절로 꼽는 이유다. B씨는 “원내정당이 되어 국고보조금을 받으면 당직자의 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으나 국고보조금이 끊기면 유지할 수가 없다”며 “의원실의 보좌관이나 의원을 지원하기 위한 각종 부서 등 원내정당이 되면 각종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말했다.

당직자들은 원내정당의 장점으로 여러 정책대안을 효과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윤현식씨는 “임금보다도 원내정당일 때 당이 더 많은 역량을 보유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정치 기획과 정책대안이 아주 수월했고 효과도 컸다. 그러나 진보정당이 어려워지면서 현재는 유지·관리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신념을 가진 이들도 미래가 보이지 않으면서 당을 떠난다. 배고픈 건 참아도 미래가 보이지 않은 것은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직자들 입장에서 민노당 분당은 생활이 어려워지는 결정적 계기였다. 민노당 당직자 출신의 C씨는 “정파 갈등으로 분당했을 때도 당직자의 절반 정도는 분당에 반대했다. 당이 불안정해지고, 따라서 급여를 못 받을 수도, 급여수준이 낮아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직 당직자 B씨는 분당 상황에 엄청난 걱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B씨는 “상근활동가 입장에서 당이 갈라지면 과연 돈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며 “퇴직금도 생각해봤는데 당시 규정에 따르면 퇴직금을 받기엔 근무기간이 한 달 모자랐다. 그래서 지역위원장에게 ‘한 달만 더 있다 분당하면 안 되나’라고 물어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 2008년 3월 6일 여의도 대하빌딩에서 열린 진보신당 현판식. 사진=이치열 기자
 

옛 통합진보당 당직자들은 더 극단적인 사례다.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당직자 200여명은 한순간에 실업자가 됐다. 게다가 일부는 급여도 받지 못한 채 잔여 재산 처분 작업 등 청산 작업을 하고 있다. 안승혜 전 통합진보당 공보부장은 “청산 작업을 안 하면 사법처리를 당하거나 벌금을 내야하는데 당이 해산됐기에 당에서 돈을 지급할 수도 없고 나라에서 주지도 않는다”며 “우리들끼리 농담으로 ‘열정노동’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이러한 진보정당의 분당, 이합집산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진보정당을 떠났다. 민주당으로 건너간 이들도 많았다. 민주노총 대변인으로 20년 간 노동운동을 하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 보좌관을 지낸 손낙구 보좌관이 대표 사례다. 그는 진보진영에서 알아주는 ‘정책통’이었고, 부동산 문제의 전문가다. 그러나 2011년 민주당 손학규 전 의원의 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손학규 전 의원이 대선 때 내놓은 슬로건 ‘저녁이 있는 삶’은 그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현재 새정치민주연합 최원식 의원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다.

C씨는 “손낙구 선배처럼 민주당으로 간 경우 생계적인 어려움과 정치적인 신념의 변화 두 가지 배경이 있을 수 있다. 아무래도 정치적인 신념이 바뀌는 데 생계 문제가 견인차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고 전했다. 진보정당 출신으로 민주당으로 옮겨 간 D씨는 “진보정당을 그만두고 싶어서, 민주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취직자리 찾아왔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의 또 다른 ‘정책통’으로 꼽혔던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 역시 민노당 분당 이후 최재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분당의 이후 일에 전념했으나 이혼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민노당 때부터 당직 생활을 한 김상철 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은 “정책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그만뒀다. 정책 쪽 활동가들은 정책을 만들어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당위가 컸는데 지속적 분당과정을 통해 삶이 위태로워지고 정치적 의지도 꺾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윤현식씨는 진보신당이 원외정당이 됐을 때 두 차례 자진 사표를 냈다. 윤씨는 “당 사이즈를 줄이는 과정에서 자진 사직을 했다. 정책 업무는 외부네트워크에서도 할 수 있고, 선거 시기에 중요하지 당직자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지난해 12월 19일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판결후 이정희 대표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당직자들이 일을 그만둘수록 정당의 재생산은 어려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당 입장에서는 숙련된 활동가가 그만두고, 새로운 젊은 활동가가 들어와 훈련을 거친 뒤 다시 그만두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특히 진보정당의 매력이 색다른 정책대안이라는 점에서 정책 담당자들이 당을 떠나는 것은 진보정당에 큰 타격이다. 보수정당들이 무상복지, 노동 및 비정규직, 선거구제 개혁 등 진보정당의 의제들을 가져가는 것도 이러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진보 재편 우려하는 당직자들 “내 일자리는 보장 되나요”

당직자들은 진보 재편 논의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진보결집 논의가 진행 중인 노동당의 당직자 E씨는 “다른 정당과 통합하면 활동가들이 먹고 살 수 있는 구조인지 의문이다. 특히 지역위원회들이 더 큰 불안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개의 정당이 하나로 합쳐지면 두 개의 지역위원회도 하나가 되는데, 과연 정당이 그 지역위원회의 당직자를 두 명이나 배치하려 할까.

정파 갈등도 이러한 불안감을 부추긴다. B씨는 “민노당 시절 위원장이 다른 정파로 바뀌면 당직자가 교체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특정 정파가 당권을 잡으면 그 정파의 당직자가 늘어나는 과정들이 있었다. 정당을 합치면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진보정치’라는 대의를 강조하며 당직자들의 고용안정을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직자들의 고용안정이 보장되지 않는 당은 재생산 위기를 맞을 수 밖에 없다. 부차적인 문제가 아니란 뜻이다. 김상철 위원장은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리더들의 의견에 비해 당직자들이 갖고 있는 전망과 비전이 사소하게 느껴졌던 것이 그간 진보정당의 관성”이라며 “당직자들이 지속적으로 일하며 활동이 축적되고 생산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