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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과 김정은의 '밀당'... 아깝다, 한국은 보기만

 

[한반도워치] 북한 김정은, 9월 2일 하바롭스크 기념식에 참석할까

15.06.18 20:42l최종 업데이트 15.06.18 20:42l

 

 

최근 푸틴과 김정은이 러시아 극동 하바롭스크에서 회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중국발 뉴스가 나왔다. 푸틴 대통령이 9월 2일 하바롭스크에서 열리는 소련군 출병 및 중국·북한의 항일전쟁 70주년 기념식에 김정은을 초대하여 정상회담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이를 위해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이 참전했던 러시아 극동 부대인 제88여단 기념비 제막행사도 동시에 준비 중이라고 한다. 러시아가 김일성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김정은이 극동에 올 수 있는 명분을 만들고 그 기회를 이용해 정상회담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극동의 도시 중에 한국인이 많이 살고 있는 블라디보스톡이 개방적이며 경제 중심의 도시라면 러시아 극동 연방관구가 있는 하바롭스크는 지금도 공산당의 영향력이 강력한 보수적인 도시이다. 하바롭스크는 1918년 이동휘가 이끄는 독립운동단체이자 볼셰비키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한인사회당이 결성된 도시이며, 김정일의 실질적인 출생지이기도 하다. 

김정은 시대에는 최룡해, 이수용 외무상도 하바롭스크를 방문하였으며 현재 북한의 영사관, 벌목공 등 많은 북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5월 다자 간 정상회담의 성격을 띠는 전승절 행사가 국제무대에 데뷔하는 김정은에게 부담감을 주었다고 보고 김정은이 편하게 올 수 있는 지역으로 하바롭스크를 준비하였을 것이다.

푸틴-김정은 만남 소식, 중국 매체서 나온 까닭

푸틴과 김정은과의 회동을 보도한 뉴스 매체가 러시아나 북한이 아닌 <중국청년보>라는 신뢰성이 높지 않는 중국통신사라는 점을 주목하여야 한다. 지금 시진핑 정부는 9월 3일 항일승전기념일 행사를 위해 전방위로 뛰고 있다. 3일간에 걸친 국가 공휴일 지정은 물론이고 더 많은 외국 정상들을 초청하기 위해 중국 외교부는 초비상이다. 

시진핑 정부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한국과 북한의 참석을 위해 오래 전부터 외교 노력을 기울여 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참석은 아직 확정적이지 않지만 중국과의 여러 가지 정치경제적 현안으로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다 북한의 김정은이 참석한다면 중국의 외교적 위신은 크게 높아질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나온 북한의 반응으로 보아 김정은의 베이징 참석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과 중국 관계는 여전히 긴장관계에 놓여 있으며 김정은은 모스크바 전승절 불참과 마찬가지로 다자 간 정상회담을 부담스러워한다. 북한은 이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바쁜 일정 때문에 오는 9월 중국 방문이 어려울 수 있다"는 언론보도도 내놓았다.

북한은 여전히 중국을 신뢰하고 있지 않다. 중국 정부로서는 김정은이 전승절에 참석하면 베스트이지만 엉뚱한 길로 새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김정은이 만약 9월 2일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푸틴만 만나고 중국을 방문하지 않으면 9월 3일 행사가 조명을 덜 받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중국 정부가 자신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중국 언론을 이용해 김정은의 방러 가능성의 김을 빼려는 의도에서 이런 내용을 흘렸을 가능성이 높다. 이 보도가 나온 며칠 이후 6월 16일 러시아 정부는 하바롭스크 러-북 정상회담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공식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중국의 의도가 일단은 통한 것으로 보인다. 

러북 정상회담 적극 추진하는 푸틴의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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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군(軍) 수산 부문의 공로자들을 노동당 청사로 불러 직접 표창을 수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해 12월 28일 보도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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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정황으로 볼 때 러시아가 9월 2일 푸틴-김정은 회동을 추진하는 것은 분명하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 5월 전승절 기념에 불참한 김정은에 대해 특별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북러관계는 실질적인 교류를 강화하고 있다. 6월 25일부터 하바롭스크에서 열리는 군악 페스티벌 '아무르의 물결' 행사에 김정은은 북한 군악대에 참가를 직접 지시하였다. 

2015년 '북-러 친선의 해'를 두고 다양한 경제협력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세레킨(Maxim Sherekin) 러시아 극동개발부 차관은 앞으로 극동개발에 북한 노동자들을 대규모로 참여시키겠다고 선언하였다. 러시아는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한에다 원유와 식량을 국제 시세 이하로 지원해주고 있다.

푸틴이 김정은 회동에 목을 매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북한을 설득하여 극동의 긴장완화를 추진하고자 하는 목적 때문이다. 푸틴은 국제적으로 고립에 빠진 김정은에게 손을 내미는 유일한 인물이다. 푸틴이 김정은을 통해 동북아의 긴장을 완화하고 북핵 문제를 중재한다면, 강대국 러시아의 국가 위신을 세울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북한과의 협력을 매개로 본격적으로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전면화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극동에서 러시아가 가장 희망하는 사업은 북한을 통한 가스관 연결사업이다. 가스관만 연결된다면 러시아는 한국이라는 거대 새로운 시장을 확보할 수 있고 이를 발판으로 철도, 전력, 극동개발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푸틴은 김정은을 만날 수 있을까? 6월 16일자 러시아 정부 발표대로라면 9월 2일 정상회담은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푸틴의 성격상 시기는 유동적이지만 러북 정상회담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푸틴은 소련 KGB 출신으로 공작에 능하며 추진력은 역대 러시아 대통령 중 최고다. 

푸틴은 서방으로 넘어가려는 우크라이나를 두 조각 냈으며 복잡한 카프카즈 문제를 안정화시켰다. 푸틴은 북한 문제 해결 없이는 러시아의 극동정책이 성공을 거둘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다. 푸틴이 김정은을 만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푸틴이 김정은을 만나기만 한다면, 갓 서른을 넘긴 외교 초짜인 북한의 지도자를 설득하고 구워 삶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현 체첸 대통령인 람자 카디로프(Ramzan Kadyrov)가 푸틴에게 설득당해 푸틴의 양아들임을 자처하는 것처럼 김정은도 푸틴에 전적으로 의지할 가능성이 높다. 냉전의 한가운데인 동독에서 스파이로 복잡한 국제문제를 다루어왔고 러시아의 피 튀기는 권력투쟁을 통해 '차르'로 등극한 푸틴 앞에서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은이 대등한 협상을 하는 것은 힘들다고 보인다.  

김정은은 왜 국제무대에 나오는 걸 주저하는가

푸틴의 적극적 구애에도 김정은은 왜 쉽게 만남을 허락하지 않을까? 김정은은 푸틴과 정상회담을 통해 무기 및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핵 문제 압력을 완화할 수 있는데도 여전히 주저하고 있다. 지난 5월 김정은의 모스크바 전승절 행사 불참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했지만 평양 내부의 공식 반응을 확인할 수 없어 아직도 정확한 진위를 확인하기 어렵다. 

후돌레이(Konstantin Khudoley)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김정은이 푸틴과의 회동을 주저하는 이유는 북한의 입장에서 북러관계는 북미관계보다 전술적으로 낮은 차원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북한은 최근 미국과 쿠바의 관계 개선을 예의주시하면서 여전히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최악의 갈등을 벌이는 푸틴과 정상회담을 한다면 전략적 목표인 북미관계의 개선이 어려울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의 '북한 때리기'가 계속 되고 있고 미국이 조만간 대선 국면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김정은이 '포스트 오바마' 이후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추측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냉혹한 권력정치의 입장에서 본다면 김정은 체제가 아직 안정화되지 않았다는 것이 김정은이 외부 방문을 꺼려하는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2년 전 김정은은 북한의 2인자인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였으며 지난 5월에는 북한 군부의 1인자인 현영철 무력부장을 제거했고 지금도 김정은에 반대하는 권력층을 솎아내고 있다. 

김정은과 조직지도부의 핵심 측근들은 김정은이 북한을 비울 경우 내부 쿠데타나 정변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당분간 북한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의 정상회담은 불가능하다. 

9월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권위주의 국가인 러시아와 북한에서 정책 결정은 1주일이면 충분히 가능하다. 앞으로 몇 달 동안 어떠한 새로운 변화가 생길지도 모른다. 김정은을 국제무대에 올려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러시아와 중국의 구애와 강대국 사이에서 몸값을 올려 체제 생존을 보장받으려는 북한의 게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정작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한국은 이 게임에 참여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립니다. 
이 글을 쓴 윤성학 박사는 고대 러시아CIS연구소 연구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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