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 독선, 오만, 불통, 정치·사회·문화·역사적 지식 결핍 등 대통령 박근혜를 규정하는 개념은 수두룩하다. 그런데 이번에 그가 중국 전승절 70주년 행사에 참석한 뒤 9월 4일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재개관식에 찾아가서 보인 언행은 국가원수로서 그가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에 대해 일관성이 전혀 없는 ‘유체이탈’ 식의 사고를 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박근혜는 그 행사에서 ‘축사’를 통해 “비록 3층의 소박한 건물이었지만 그곳에서 대한민국의 법통이 시작됐다”며 “중국 내 독립항쟁 유적 보존과 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평화통일을 이루어서 진정한 광복을 완성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가 “대한민국의 법통은 상해 임시정부에서 시작되었다”고 공언한 것은 지난 8월 15일 정부 주관의 광복절 70돌 기념행사에서 한 말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는 ‘경축사’의 앞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확언했다.

“오늘은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상하이에서 열린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재개관식에서 임시정부 청사 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청와대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정부 수립을 선포한 바로 그 시간에 ‘건국’되었다는 것이다. 수구보수세력이나 극우파가 ‘대한민국 건국 원년은 1948년’이라고 강하게 주장해온 것을 박근혜가 명확히 인정한 셈이다. 그의 ‘공적 선언’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을 완전히 뒤엎는 ‘반헌법적’ 행동이었다. 새삼스럽지만 헌법 전문의 앞부분만 보기로 하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헌법을 수호’할 의무를 지닌 대통령 박근혜는 왜 지난 8월 15일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무시한 채 이승만 정부에서 법통이 시작된다고 했다가 꼭 20일 만인 9월 4일에는 중국에서 그 ‘법통’을 다시 임시정부로 환원시켰는가?

항일독립투쟁가 이회영의 후손인 이종걸(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은 9월 3일 국회 원내대표 연설에서 박근혜를 격렬히 비판했다.

“오늘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중국의 전승기념 열병식은 항일투쟁에 나선 유명무명의 윤봉길 의사와 같은 분들을 기리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바로 얼마 전 광복절 경축사에서 올해를 건국 67주년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1910년 일제의 주권 침탈 이래 36년 동안 가열차게 전개됐던 우리 민족의 치열한 항일투쟁의 중요성을 폄하하는 것이자, 헌법에도 규정된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훼손하는 잘못된 역사의식을 보여준 것입니다. 항일투쟁으로 스러져간 독립투사들에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박근혜가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의 법통을 임시정부에 ‘부여’한 이튿날인 9월 5일자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 통단제목은 “임정의 애국정신 살려 ‘진정한 광복’ 평화통일로”였다. 박근혜가 임시정부 청사 재개관식에서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이어받아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이루어내겠다”고 다짐한 ‘사건’을 대서특필한 것이었다. 같은 날짜 <조선일보> 사설(“독립운동 요람 상하이 임정 청사에서 ‘통일의 꿈’ 키운다”)은 박근혜의 ‘임시정부 법통’ 선언을 다시 확인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상하이에서 열린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재개관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의 출발점이다. 임정은 1919년 3·1운동의 민족적 염원과 함께 태어나 1945년 광복을 맞을 때까지 26년 동안 국내외 항일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임정은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공화국’을 선포하고 국민 모두가 나라의 주인임을 분명히 했다.”  

자, 박근혜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공개적으로 인정했으니, 앞으로 이 문제에 이의가 있는 보수세력은 ‘박근혜 규탄 운동’을 벌이거나 국회에 대통령 탄핵 청원서라도 보내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