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교복을 입고 단상에 선 이권택(덕계고 1학년)군은 "배우는 학생과 가르치는 선생님, 만드는 학자들 모두가 반대하는 국정 교과서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거냐"고 물어 박수를 받았다. 이군은 "헌법 1조에는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나온다'라고 돼 있다"며 "지금 윗분들의 권력은 당신들만의 것이 아니다, 부디 국민과 소통해달라"고 덧붙였다.
교사 또한 마이크를 잡았다. 최창식 고양일고 교사(전교조 경기지부장)는 "친일·미화가 아닌 5월 광주 민주화 운동과 전태일 열사 등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르치겠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어 "박 대통령은 역사 교과서뿐 아니라 다른 교과서도 바꾸려 할 것"이라며 "그걸 어떻게 아느냐면, 전체를 보면 그런 기운이 오기 때문"이라고 말해 환호성을 받기도 했다.
이에 사회자는 "나라가 학생을 걱정하지 않고 학생들이 나라를 걱정하게 됐다, 박근혜 정권이 다시 시민에게 촛불을 들게 했다"고 말했다. 주최 측은 집회 말미 "교과서 국정화가 강행된다고 해서 그걸로 끝난 건 아니다"라며 "발표 즉시 촛불 집회를 여는 등 반대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민들은 범국민대회 후 인근 국가인권위원회까지 행진했다.
청소년·대학생 1000여 명, 거리에서 "국정화 반대" 외쳐
"익명의 학우가 제게 먼저 '국정화에 대한 입장이 뭐냐'고 물어올 정도로, 학우들의 국정화 반대 요청이 총학에 빗발쳤습니다. 총학생회장 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 사실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 못 해도, 노동 개악해도, 담뱃값이 올라도 우리 청년들, 국가를 믿고 참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미래 세대 교육을 해치는 것만은 참을 수 없습니다."
송준석 연세대 총학생회장의 재치있는 발언에 대학생들이 박수와 환호성으로 호응했다.
건국대·고려대·이화여대 총학생회 등 40여 개 대학 총학생회가 모인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위한 대학생 대표자 시국회의'는 이날 오후 역사교과서 저지 전국 대학생 공동 행동을 주최했다. 여기에는 800여 명 대학생이 모였다. 비슷한 시각,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전국 청소년 250여 명도 광화문에서 집회·행진을 하며 국정화 중단을 촉구했다.
각 학교 총학생회장 등 대학생 대표자들은 지난 20일부터 '국정화 반대'를 주장하며 청와대 인근에서 1인 시위를 이어왔다. 30일에는 '대학생 대표자 595인 및 4만 대학생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4만 2천 대학생, 국정화 반대선언 '역대 최다')
이대·서강대 등 학생 120여 명은 앞서 이대 대현공원부터 약 4.5km를 걸어 행진했다. 이들은 걸으며 "서울시민 여러분, 대학생은 하나의 역사관을 강요하는 박근혜 정부 국정 교과서를 반대합니다"라고 외쳤다. 오후 4시 30분께 함께 모인 학생들은 "국민의 뜻 거스르는 독재적 발상 철회하라, 다양성 획일화하는 국정 교과서 반대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학생들을 응원하기 위해 함께 한 어른도 있었다. 강원도 영월에 사는 권장희(53)씨는 학생들의 행진 소식을 온라인에서 접하고 2시간 30분을 걸려 서울에 왔다. 권씨는 "잘못된 걸 알고, 행동하는 학생들이 멋지다"며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박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모두 부친이 친일파 논란을 겪었다, 그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나"라 말했다.
서강대 학생 "저희 선배가 이런 일 추진해서 제가 다 죄송"
이날 단상에 선 광운대 15학번 새내기 한태희씨는 "정권이 역사 교육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정권 입맛에 맞게 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박 대통령의 10년 전 발언을 인용하며 "박 대통령님이 제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해주셨다"고 꼬집었다.
서재우 고려대 총학생회장은 "박 대통령이 최근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강력한 '국정화' 의지를 밝혔다, 반대 여론은 듣지 않고 강행하려는 비민주적인 모습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여당은 '올바른 역사관' 운운하지만, 단 하나의 올바른 역사관이 존재하긴 어렵다"며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다양한 관점이 담긴 역사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태인 서강대 사학과 학생은 "저희 선배님(박 대통령)이 이런 일을 해서 제가 다 죄송하다"라고 말해 청중을 웃기기도 했다. 그는 "국정화가 진행되면 제가 알고 있던 기존 지식은 다시 쓰이게 될 것이다, 생존권을 걸고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단 한 권의 국정 교과서라는 게 얼마나 기만적인가"라며 "다시 한 번 죄송하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이날 총학생회장 등 대표자들은 선언문을 통해 "대한민국 역사를 지키고 국정화를 철회하기 위해, 미래 세대로서 떳떳하기 위해 앞으로도 끝까지 함께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학생들은 "대학생의 힘으로 국정교과서 막아내자"라고 외쳤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