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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살인 진압' 김석기, 갈 곳은 국회 아닌 감옥"

 
용산 참사 7주기 "억울한 현실 안 바꾸면 다음은 바로 당신!"
 
| 2016.01.23 19:02:19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거리와 나와 살려달라고 외치는 거 말고는. 용산 참사가 해결되지 않아 세월호에서 아이들이 희생되고 농민 백남기 씨가 다친 거 같습니다. 우리가 미처 용산을 해결하지 못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듯합니다. 죄송합니다. 이 말 밖에 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얼마나 흘려야 눈물이 마를까. 2009년 1월 20일 재개발을 반대하며 망루에 올랐다 목숨을 잃은 고(故) 이상림 씨 부인 전재숙 씨는 머리를 떨궜다.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7년이 지났지만, 유가족들의 시계는 7년 전에 멈춰 있었다.  
 
23일 용산 참사 남일당 터에서는 '용산참사 7주기 여기, 사람이 있다' 추모대회가 열렸다. 참사가 발생한 남일당 건물은 헐린 지 오래지만, 정작 그 터는 공터로 남아있다. 황금알을 낳는다던 곳이었지만 현재는 야외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막대한 이익을 기대했던 재개발 계획과는 다른 모습이다. 
 
애초 용산4구역 재개발 사업은 40층 규모의 주상복합 아파트 6개동(763가구)이 들어선다는 것이었다. 지난 2007년 5월 용산구의 사업시행인가가 떨어졌지만 용산 참사와 2013년 용산역세권개발 좌초로 무산 위기가 불거졌다. 사업 시공권을 갖고 있던 삼성물산과 대림산업, 포스코건설 등은 잇따라 발을 뺐다. 
 

▲ 발언하는 전재숙 씨. ⓒ프레시안(허환주)

"7년 동안 폐허로 남겨둘 것을 왜 그리 성급하게…" 
 
용산 참사 추모위는 "폐허가 되어 고작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이곳이 절규하던 철거민들을 서둘러 진압해 죽게 했던 자리라는 사실이 끔찍하다"면서 "7년 동안 폐허로 남겨둘 것을 왜 그리 성급하게 대테러 진압하듯 했는지 이 학살의 터는 묻고 있다"고 지적했다. 
 
추모위는 용산 참사 이후에도 벌어지고 있는 국가폭력도 비판했다. 이들은 "농민 백남기 씨가 두 달 넘게 사경을 헤매고 있다"며 "그날 진압 장면은 용산 망루가 검붉게 타오르기 직전의 물대포 진압을 보는 것 같았다"라고 표현했다. 
 
이들은 "하지만 여전히 그 누구의 사과 한마디도 없다. 오히려 진압 책임자인 강신명 경찰청장은 '용산 참사 진압도 위법하지 않다고 판결됐다'고 뻔뻔하게 말했다고 한다"며 "하루아침에 여섯 명의 국민이 죽임당했는데 그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한 게 지금까지도 국가와 경찰에게 살인면허로 인용되고 있어 참담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용산 학살 진압 책임자 김석기의 승승장구하는 모습에 저들은 '여기까지 해도 용납하는구나'를 넘어 '이렇게까지 해야 앞길이 보장되는구나' 하며 더욱 자신감을 얻고 활개 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용산참사 당시 경찰의 과잉진압 등 논란이 일면서 서울경찰청장직에서 사퇴한 김석기 전 청장은 오사카 총영사,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거쳐 올해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에 복당했다. 현재 경북 경주 지역구에 예비후보로 등록, 국회의원을 노리고 있다. 
 
"억울한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다음은 너다" 
 

▲ 공터로 남은 남일당 터. ⓒ프레시안(허환주)

이날 마이크를 잡은 박래군 용산참사 추모위 집행위원장은 남일당 터를 두고 '전쟁터'였다고 표현했다. 박 위원장은 "살겠다고 14명의 철거민이 망루에 올랐다가 9명만 탈출하고 나머지 5명은 그 자리에서 불에 타 죽었다"며 "이곳은 그런 현장이다"라고 설명했다. 
 
박 위원장은 "이후 355일이 지나 장례식을 치를 때까지 이 공간은 유가족이 울부짖던 곳이었고, 용역과 경찰이 마구잡이로 폭력을 행사했던 공간이었다"며 "서둘러 사람을 잔인하게 죽였던 공간이었고, 그러고도 7년을 '공간'으로 남겨두는 공간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위원장은 "우리는 용산을 통해 잘못된 자본과 권력을 볼 수 있다"며 "그런 잘못된 구조를 바꾸고 서로 손잡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자. '여기 사람이 있다'는 말을 우리 가슴 속에 붉게 새기자"고 당부했다.  
 
유경근 세월호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잊지 말자"고 독려했다. 유 위원장은 "자식이 죽고 난 뒤 648일째 4월 16일을 살고 있다. 하지만 용산참사 유가족들은 2196일째 1월 20일을 살고 있다"며 "겨우 648일을 사는 것도 힘든데 그날들을 어떻게 버텼는지 놀라울 따름"이라며 "우리가 느끼는 어려움은 투정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유 위원장은 "여전히 그날을 우리는 잊지 못하지만 '저들'은 우리에게 참사를 잊으라고 강요한다"며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짓을 해놓고도 그들은 이를 어떻게 해서든 잊히게 하려고 애쓴다"고 지적했다.  
 
유 위원장은 "세월호도 그렇고 용산도 그렇고 잊게 하려는 악랄함과 우리는 싸울 것"이라며 "용산 참사 희생자들이 '억울한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다음은 너다, 너희가 할 일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늘 그곳은 추웠다
 
이날 추모제에서 고 이상림 씨 며느리 정영신 씨는 남편 이충연 씨와 분향소를 지켰다. 그는 이날 추모대회에 앞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시아버지를 생각하며 장문을 남겼다. 아래 전문을 싣는다. 
 
검정봉다리를 늘 들고 오셨다. 그안을 들여다보면 먹거리가 한가득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도를 다니셨고, 자전거타시고 동네 이곳저곳을 다니시며 사람들과 정을 나누셨다. 무뚝뚝한 말투 속에 사랑이 묻어있고, 인자한 미소가 보는 사람마저 미소 짓게 만드셨다. 
 
막내아들을 무척 좋아하셨다. 덩달아 막내며느리도 무척 좋아하셨다. 본인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가족들 먹는 것만 봐도 행복해 하시던 그런 아버님. 사랑하던 가족들을 지키고 싶었던 꿈이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어야했고, 그렇게 사랑했던 아들은 죄인이 되어 7년이 되도록 용산이란 사슬에 묶여있다.
 
얼마 후면 학살의 터이자 우리가족들의 추억과 삶이 있던 그 자리는 사라질 거다. 행복을 꿈꿨던 그 자리는 사라질 거다. 사라지기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가슴에 새겨야겠다. 평범한 우리가족들의 삶을 무참히 짓밟은 자. 사랑하는 아들 곁에서 죽임을 당하게 만든 자. 사랑하는 아버지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하게 만든 자. 꿈과 희망을 송두리째 빼앗은 자. 반드시 기억하고 처벌할 것이다. 
 
늘 그곳은 추웠다. 오늘도 무지 춥다고 한다. 사람들의 온기로 가득하길 바래본다. 무너진 삶의 현장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많은 걸음 기다려본다.

 

ⓒ프레시안(허환주)

 

 

 

ⓒ프레시안(허환주)

 

 

 

▲ 이날 추모제에는 방한 중인 마이나 키아이 유엔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참석, 용산 참사 유가족, 박래군 집행위원장 등과 면담을 진행했다. ⓒ프레시안(허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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