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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스 치던 풀 · 꽃이 가슴에 들어와 사랑이되었다

그냥 스치던 풀·꽃이 가슴에 들어와 사랑이 되었다

김정수 2016. 03. 23
조회수 230 추천수 0
 
권희정 생물다양성교육센터장
1458641167_00553727001_20160323.JPG» 식물종 교육 프로그램 전문가인 생물다양성교육센터 권희정 센터장이 19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홍릉수목원 숲에서 봄꽃 탐방을 하던 중 활짝 꽃을 피운 풍년화 나무 옆에 잠시 멈춰 섰다.

“선생님, 이게 무슨 식물이에요?”

 

새내기 교사는 당황했다. 생물교육 전공으로 대학에서 분자생물학 강의까지 들었던 그다. 하지만 교실 주변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식물들의 이름은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1984년 첫 발령을 받은 중학교에서 1학년 학생들을 교실 밖으로 데리고 나와 주변의 생물에 관한 단원을 가르치는 중이었어요. 애들한테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식물종의 이해를 통한 자연 보전’을 내건 생물다양성교육센터의 권희정(55·이학박사) 센터장. 그가 20여년 교사 생활을 접고 식물종 전문 교육 프로그램 운영자로 살아가도록 이끈 밑바탕에는 그때의 당황스러움과 미안했던 기억이 자리잡고 있다.

 

19일 그와 함께 이른 봄꽃들을 찾아 서울 국립산림과학원 홍릉수목원 숲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생물교사 생활을 하면서 식물을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면서도 애들 키우느라 엄두를 못 냈어요. 그러다 2003년 큰애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시간을 낼 수 있게 됐을 때 마침 동북아식물연구소에서 낸 ‘교사를 위한 자생식물 워크숍’ 광고를 보게 됐어요. 이거다 싶었죠.”

 

 

이름을 알면 흥미가 생기고
흥미는 이해로 이끌고
이해하다 보면 아끼게 된다

 

 

아이들이 물은 흔한 식물조차 몰랐다 

20여년 교사 생활을 접고

식물종 교육 운영자가 된 밑바탕엔

새내기 교사 때의 미안함의 기억

 

 

규제와 감독 벗어나려 지원 안 받아

1억원 자본금 갉아먹고 있지만

돈으로 따질 수 없는 행복이 있다

 

 

젊은 사람 일 빼앗지 않고

사회에 기부한다는 마음으로

 

 

‘분류학 바탕한 식물종 익히기’ 첫 박사

 

교사들에게 필요한 연수점수로 인정되는 것도 아니었고, 100만원이라는 참가비도 적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뤄뒀던 식물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저만큼 앞서 있었다. 그는 “그렇게 해서 자연을 배우게 됐다”고 했다. “생물 교사라고 자연을 아는 게 아니에요. 카페만 가다가, 식물 공부를 하러 산에 가니 너무 좋은 거예요. 그때부터 자연을 알게 됐죠.”
1458641198_00553761401_20160323.JPG» 홍릉수목원 숲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복수초 군락.

 

1년 가까이 진행된 자생식물 워크숍은 2004년 워크숍 참가 교사들을 중심으로 한 한국교사식물연구회 출범으로 이어졌다. 그는 연구회 초대 회장을 맡아 신생 단체의 기초를 다지는 역할을 했다.

 

그러던 2005년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이 그에게 학생 식물캠프를 해보자고 했다. 제안을 받고 기존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니 성에 차지 않았다. “생태나 숲과 같은 포괄적인 주제의 교육 프로그램들만 있었고, 식물종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프로그램이 없었던 거죠.”

 

식물분류학에 기초해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싶은 욕심이 솟았다. 그러려면 좀더 공부가 필요했다. 2007년 순천향대 생명과학과 신현철 교수를 지도교수로 삼아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 한 학기를 다녀보니 교직과 새로운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 한쪽은 포기해야 했다. 47살 때였다.

 

00553727101_20160323.JPG» 권희정 센터장이 2008년부터 식물종 익히기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직접 제작해 사용한 교육자료들.

“뭘 정리할까 하다가, 다른 분들이 더 잘할 수 있는 생물 교사를 그만두기로 했어요. 공부를 더 해 좋아하는 식물만 가르치면서 사는 것이 더 재미있고 보람될 거 같아서였죠.” 그로부터 4년 만에 그는 박사모를 썼다. 국내에서 분류학적 접근에 기반한 식물종 익히기 프로그램 개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은 그가 처음이다.

 

홍릉수목원 숲 탐방길에서 맨 처음 만난 봄꽃은 복수초, 다음은 풍년화였다. 홍릉수목원에서 가장 일찍 피는 꽃의 하나인 풍년화는 네 장의 기다란 꽃잎이 각기 약간 꼬이듯 비틀려 있는 특이한 꽃이다. 풍년화라는 이름은 잘 피면 풍년이 든다고 해서 붙여졌다. 올해 농민들은 풍년을 맞을 수 있을까? “저 정도면 잘 핀 것”이라는 것이 권 센터장의 판정이다.

 

학생들에게 식물종을 가르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연 속에 들어간다는 것, 자연 자체가 일단 교육 프로그램의 반이에요. 거기다 그냥 풀, 꽃이라고만 아는 것과 그것들의 이름을 아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게 되죠. 자연을 사랑하고 아끼는 생각은 일단 식물의 이름을 알아야 생기는 겁니다. 식물의 이름이 흥미를 유도하는 매개가 되고, 그것이 발단이 돼 이해로 나아가고, 이해를 하다 보면 사랑하게 되죠.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이 남긴 소감글들을 보면 그런 것이 녹아 있어요.”

 

 

새롭게 눈뜬 아이들 마음 곳곳에

 

정말 그랬다. “산에 가면 구경한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제는 식물과 내가 서로 알고 있는 사이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2015년 식물종 익히기 전문캠프 참가 명덕여고 1학년 황지우) “이름 없는 꽃은 없고, 비슷한 듯해도 각자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요즘엔 엄마와 집 근처 산에 오르며 꽃 얘기를 한다. 나도 모르게 잎차례를 보고 있다.”(2013년 식물종 익히기 전문캠프 참가 장평중 3학년 장유미)

 

봄꽃 탐방을 마치고, 서울 강남 수서역 근처에 있는 센터 사무실에 들러 들춰본 프로그램 참가 학생들의 탐구보고서에는 학교와 부모가 보내서 별 기대 없이 참가했다가 새로운 세상에 눈뜬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

 

노란 산수유와 개나리꽃, 아직 덜 피어나 연둣빛이 도는 히어리꽃, 뾰족 봉오리를 내민 진달래 등을 더 만나고 숲길을 한 바퀴 돌아 거의 내려왔을 때다.

 

어디선가 향긋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 한 발짝 앞서가던 그가 “여기 어디쯤 올괴불나무가 필 때가 됐는데…”라며 주위를 살피더니 “아, 저기 있네” 하고 외친다. 인동과의 자생식물인 올괴불나무는 산수유와 함께 우리 숲에서 일찍 피는 대표적인 봄꽃이다. 그를 뒤따라 길옆 언덕으로 올라가니 아직 잎이 나지 않은 앙상한 나뭇가지에 연분홍의 앙증맞은 꽃송이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매달린 꽃송이들 가운데는 자주색 꽃술이 떨어진 것들이 더 많았다. 주변에 모인 탐방객들이 “일찍 성숙해 벌써 수정을 마친 꽃들”이라는 권 센터장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생물상 조사 등 연구 프로젝트도

 

생물다양성교육센터는 그가 2008년 교직을 떠나면서 맡아온 동북아식물연구소의 교육 부문을 분리해, 자본금 1억원의 주식회사 형태로 2012년 출범시켰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기업 형태도 고민했으나, 지원을 포기하는 대신 규제와 감독에서 좀더 자유로울 수 있는 형태를 선택한 것이다. 학생 교육 프로그램 외에 교사 연수 프로그램, 식물 준분류학자를 양성하는 일반인 대상 파라택소노미스트 과정, 생태관광인 ‘꽃 따라 숲길 따라 힐링여행’ 프로그램 등을 4년 동안 운영해오면서 센터는 자본을 계속 갉아먹고 있는 상태다. 언제 적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동행한 홍숙윤(55) 센터 이사가 “아마 영원히 안 될 것”이라고 말하며 웃는다. 권 센터장과 같은 사범대에서 화학교육을 전공하고 한때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기도 했던 홍 이사는 센터 설립 때부터 권 센터장과 함께했다.

 

외부 지원을 받는 사회적 기업들이나 엔지오들의 교육 프로그램과 경쟁하며 수익을 내는 일이 쉬울 리 없다. 생물다양성센터는 그래서 교육과 함께 생물상 조사와 같은 연구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연구 프로젝트 참여 수입을 통해 사무실 운영 경비라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계산이다.

 

그에게 적자를 내면서도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을 묻는 것은 어리석은 질문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답변이 궁금했다. “부담이 될 정도의 적자는 아니고 연구 파트에서 고정 수입을 만들어가면, 시간이 지나면 적자는 해소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있고, 저를 믿고 주식이 모인 데 대한 책임감도 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이것은 젊은 사람들 일 빼앗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요. 기부도 하는데, 사회에 기부한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죠.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죠.”

 

글·사진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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