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21일 시민들이 전날 도청 앞 저지선을 뚫으려다 멈춘 버스를 바리케이드로 이용 계엄군과 대치하고 있다.5·18기념재단(황종건) 제공
1980년 5월 21일 시민들이 전날 도청 앞 저지선을 뚫으려다 멈춘 버스를 바리케이드로 이용 계엄군과 대치하고 있다.5·18기념재단(황종건) 제공
1995년 ‘5공 재판’ 기록 보니 

“용기 잃지 말고 분발하라”
중앙정보부장 서리 명의로
당시 정석환 전남지부장 통해
최웅 여단장에 100만원 전달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인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 금남로 집단 발포로 시민 수십명을 사살한 공수부대 지휘관에게 발포 다음날 “용기를 잃지 말고 분발하라”며 격려금 100만원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5월19일 재경 전남 출신 유력인사 8명을 광주에 보낸 뒤 이들에게 따로따로 50만원씩 모두 400만원의 돈봉투를 챙겨주며 계엄군에 대한 우호 여론 조성에도 나섰다.

 

이는 80년 5월 당시 전 전 대통령이 군과 민간 영역을 장악한 채 5·18 관련 상황을 통제·관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보안사령관은 정보·수사 책임자요”라며 “광주하고 나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라고 했던 그의 주장이 거짓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9일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재판 기록을 보면,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는 80년 5월21일 계엄군 집단 발포 다음날 해당 공수부대장에게 격려금을 전달했다. 정석환 전 중앙정보부 전남지부장 직무대리는 1995년 12월 검찰 조사에서 “전두환 중앙정보부장 서리가 80년 5월22일 광주에 투입된 특전사 11공수여단장인 최웅에게 격려금 100만원을 전달하도록 했다”고 진술했다.

 

11공수여단은 80년 5월21일 오후 1시부터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에서 시민들에게 무차별 발포를 해 시민 34명이 숨졌다. 정 전 지부장은 “그날(5.22) (전화 통화한) 전두환 부장 서리가 11여단장인 최웅 장군의 사기가 극도로 저하되어 있을 터이니 ‘용기를 잃지 말고 분발하라’고 전해달라. 중앙정보부장 명의로 격려금 100만원을 전해달라고 말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통화하고 1시간 뒤 정 전 지부장은 최 장군을 지부장실에서 만나 ‘중앙정보부장 서리 전두환’ 명의로 100만원을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정 전 지부장은 최웅 장군에게 전두환 부장 서리와 전화 통화를 연결해줬더니 최 장군이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고 말한 것을 들었다고 전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초기 광주의 ‘민심순화를 위한 선무활동’을 직접 지휘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정 전 지부장은 80년 5월19일 오후 5시께 전두환 부장 서리와 통화한 사실이 있다고 검찰에서 말했다. 그는 “당시 전 부장이 ‘광주가 심상찮게 돌아가는 것 같아 특별민심순화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재경 전남 출신 유력인사 8명이 헬기 편으로 오늘 저녁 7시에 광주비행장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들을 급히 내려보내느라 여비도 못 줬으니 지부 예산 중에서 활동비를 마련해 이들에게 지급하라’고 하더라”고 진술했다.

 

정 전 지부장은 “당시 밤 10시께 전남도청 도지사실로 가서 설득 대상자들의 명단을 그들에게 나눠주고 현금 50만원씩이 든 돈봉투를 전두환 중앙정보부장 명의로 각자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