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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개혁을 향한 ‘9전10기’ 도전

 
진경준 검사장의 120억원대 뇌물 사건에 검찰이 다시 ‘셀프 개혁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신뢰를 얻지 못했다. 이번에야말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검찰 개혁을 향한 ‘9전10기’ 도전


‘양파 수석’ 비리를 밝혀낼 수 있을까?

 

 

검찰이 또다시 ‘셀프 개혁안’을 내놓았다. 진경준 검사장이 120억원대 뇌물 의혹 사건으로 구속된 다음 날 꺼낸 개혁 조치였다. 김수남 총장은 7월18일 “검찰은 앞으로 이 사건을 철저히 수사해 그 진상을 낱낱이 밝히겠다”라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김 총장은 △주식 관련 부서의 검찰공무원 주식 투자 금지 △검찰 고위직에 대한 감찰 강화 △청렴교육 시스템 정비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검사 비리가 터졌을 때마다 반복되는 검찰의 대응 패턴이다.

4년 전에도 한 부장검사가 구속됐다. 김광준 부장검사가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 쪽과 유진그룹으로부터 9억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였다. 당시 한상대 검찰총장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뼈저린 반성과 성찰을 통해 겸허한 자세로 전향적인 검찰 개혁 방안을 추진하도록 하겠다”라고 다짐했다. 말은 화려했지만 셀프 개혁을 하겠다는 요지였다. 2010년 돈과 성접대를 받은 스폰서 검사 사건이 터졌을 때도, 2006년 법조 브로커 사건이 터졌을 때도 검찰은 셀프 개혁안을 내놓았다.

‘중이 제 머리 깎겠다’는 검찰의 다짐만 10년 넘게 되풀이되고 있다. 지금까지 검찰 스스로 내놓은 셀프 개혁안이 효과가 없었다는 의미다. 이쯤 되면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검사 출신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 또한 “검찰 밖에서 강제적으로 개혁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면, 검찰이 공수처 설치에 반대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나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김수남 검찰총장(왼쪽)과 검찰청 특별수사 전담 부장검사들이 2월29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특수부장 회의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수남 검찰총장(왼쪽)과 검찰청 특별수사 전담 부장검사들이 2월29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특수부장 회의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야 3당은 공수처 마련을 공동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각 당이 마련한 안에는 세부적 차이는 있지만 핵심은 검찰을 감시·견제한다는 것이다(오른쪽 표 참조).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별도의 독립 조직을 만들어, 수사권·수사지휘권·영장청구권·기소독점권 등을 가진 검찰 권력을 분산시키겠다는 의미다.

새누리당은 공식적으로 공수처 신설에 반대하지만, 내부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비박계 당권 주자인 정병국·주호영 의원은 공수처 찬성 의견을 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또한 7월25일 혁신비대위 회의에서 “검찰 개혁이 지지부진할 경우 공수처 신설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소야대 정국에 비박계까지 가세하면서 공수처 현실화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여론도 뒷받침했다. ‘조·중·동’ 등 보수 신문도 공수처를 설치해야 한다며 일제히 사설을 실었다. 홍만표·진경준·우병우와 같은 전·현직 검찰 출신의 비리 의혹이 터지면서 검찰 개혁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진 여론을 반영한 것이다.

검찰 스스로 외부 개혁을 자초했다. 실제로 이미 구속된 채 재판을 받는 ‘검찰 선배’ 홍만표 변호사에 대해 검찰이 ‘봐주기 기소’했다는 비판을 샀다. 홍 변호사는 변호사법 위반과 탈세 혐의로만 기소됐다. 로비 대상으로 이름이 오르내린 검찰 출신은 서면조사로만 끝냈다. 판사 출신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6월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현직 판검사의 협조 없이 홍만표 변호사가 수백억을 벌었다는 검찰의 발표는 (홍 변호사를) 영업의 신으로 추앙하려는 음모다”라며 비판했다.

문제는 공수처 설치 개혁안이 벌써 아홉 번 좌절을 겪었다는 점이다. 9전10기 도전이다. 그만큼 쉽지 않다. 3부를 뛰어넘는 기관이 생긴다는 위헌 논란과 검찰의 옥상옥(屋上屋)이라는 지적은 공수처 논의 때마다 반복됐다. 정당별로 살펴보면 새누리당은 늘 공수처 설치에 반대해왔다. 다만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여야(당시 야당은 한나라당) 모두 공수처 설치를 공약으로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총선 직후 2004년 6월 참여정부가 공수처를 대통령 직속 부패방지위원회 산하로 두고 기소권을 부여하지 않는 안을 발표하자, 한나라당은 반대로 돌아섰다. 공수처가 대통령 산하 기구가 되면 신종 야당 탄압의 수단이 될 것이라고 반대했다. 게다가 유관기관 사이 업무가 중복돼 비효율적일 거라는 점도 반대 근거였다.

이번에도 새누리당은 상설특검과 특별감찰관이 있어 또 다른 권력기관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야당은 현재 상설특검은 제도만 갖춰놓고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하는 제도특검이기에 ‘상설’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반박한다. 우병우 민정수석을 조사하는 대통령 직속 특별감찰관 또한 강제수사권과 기소권이 없어서 한계가 많다고 지적한다(32쪽 상자 기사 참조). 무엇보다도 공수처 설치에 대한 반대 논리는 ‘검찰발 조직 보호용’이라고 꼬집는다.

새누리당 일부 당권 주자도 공수처 신설에 찬성

공수처가 신설되려면 검찰의 반대 변수도 넘어야 한다. 검찰은 늘 조직적으로 외부 개혁을 무력화했다. 18대 국회를 복기해보면, 당시 사법개혁특위가 꾸려져 검찰뿐만 아니라 법원·경찰 등에 개혁 칼날을 들이댔다. 검찰 출신이었던 한나라당 주성영 전 의원은 “검찰 개혁 차원에서 대검 중수부 폐지 합의를 다 봤는데, 막판에 한나라당 사개특위 의원 10명 중 5명이 마음을 바꿨다. 모두 검찰 출신이었다. 검찰에서 전화 오고 만나고 하니 견해가 금세 뒤집어졌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 검찰은 무서운 곳이다. 검찰 개혁에서 가장 넘기 힘든 벽은 검찰 출신 국회 법사위원들 배후에 있는 검찰 조직이다”라고 덧붙였다.

   
 

검찰 출신 국회의원은, 검찰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로비 창구 노릇을 했다는 것이 2011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발행한 이슈 리포트에서도 확인된다. 참여연대는 공수처와 같은 특별수사기구 설치에 반대하는 검찰 출신 국회의원의 발언을 추적했다. 13대부터 18대 국회까지 검찰 출신 국회의원의 역할을 살펴본 참여연대의 결론은 이랬다. “13대 국회 이후 지금까지 특별수사기구 논의는 여야 이해타산과 이해 당사자인 검찰의 저항으로 좌절되었음. 여기에는 ‘검찰 지킴이’를 자처하며 기존 검찰 조직의 이해를 대변하는 검찰 출신 국회의원들의 역할이 크게 작용함.”

한 검찰 출신 현역 의원은 “솔직히 법사위에 검사 출신은 가면 안 된다. 꼭 로비를 받아 그런 게 아니라, 선후배 동료 간의 인정에 이끌린다. 친정이라 내재적으로 접근하다 보면 검찰 조직이 왜 저러는지 다 이해가 된다. 그러면 검찰 개혁론을 세게 주장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민주주의 회복 TF의 한 의원 또한 “개혁 성향을 가진 의원으로 꾸린 TF에서도, 검찰 개혁 문제에서는 검찰 출신 의원들이 다른 의원들에 비해 온도차가 있는 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검찰 개혁 앞장서면 검찰은 수사로 보복

검찰이 쥐고 있는 ‘칼’도 조직 방어를 위해 종종 사용된다. 18대 국회에서 끝까지 검찰 개혁안을 주장하던 주성영 전 의원은 성매매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무혐의로 마무리됐지만, 수사 자체가 불명예였다. 그는 19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해야 했다. 19대 국회 법사위원장이었던 민주통합당 박영선 의원 또한 검찰이 검경 수사권 문제에 나선 의원을 내사했다고 주장했다. “여당 이주영·주성영·이인기 의원, 야당 박영선·김동철·박지원 의원에 대해 검찰이 계속 정보를 수집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경찰에 우호적 발언을 했던 사람들을 공천받지 못하게. 이인기·주성영 의원이 범죄정보기획관실에서 돌린 지라시를 근거로 공천을 못 받았다. 검찰의 작전이 성공했다(2012년 10월16일 법사위 회의록).” 당시 서울중앙지검 전현준 3차장은 곧바로 “지금 말한 범죄정보와 관련 없는 동향 파악이나 지라시 발행은 하지 않는다”라고 부인했지만, 여의도에서는 뒷말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7월25일 민변, 참여연대 등 6개 시민단체는 국회 앞에서 공수처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공수처 도입은 검찰의 반발과 국회의 의지 부족으로 매번 좌절되었다. 이제는 반대할 근거도 명분도 없다. 검찰 비리로 검찰 개혁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크고, 여소야대 국면으로 입법화하기 좋은 만큼 이번 8월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9전10기 도전에 나선 공수처가 현실화될 수 있을까? 검찰의 조직적인 방어도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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