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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화법 개정? ‘날치기 추억’ 곱씹어도 소용없다

 

야멸찬 대국민담화, 과잉 충성으로 화답하는 새누리당
 
오주르디 | 등록:2013-03-08 12:35:36 | 최종:2013-03-08 14:28:4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정부조직개편안을 원안대로 처리해줘야 한다며 대단한 결기를 보였던 박 대통령의 행동은 3권 분립 정신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많다. 법안 통과가 아무리 다급하다 해도 입법부의 한 축인 야당을 향해 ‘무릎 꿇어라’라는 식의 비난을 쏟아낸 건 지나친 행동이었다.


야멸찬 대국민담화, 과잉 충성으로 화답하는 새누리당

새누리당이 꼴불견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새누리당의 충성심이 도를 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야멸찬 대국민담화 때문인지 어떻게 하든 정부조직개편안의 원안 통과를 관철시키겠다고 난리다. 국회의장 직권상정이 여의치 않으면 불과 10개월 전 제 손으로 통과시킨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해서라도 원안 통과를 관철시키겠단다.

지난 7일 새누리당이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직권 상정해 처리하자고 민주당에게 제안했다.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예전 같으면 곧장 국회의장에게 달려가 직권상정해 달라고 요구했을 텐데 말이다. 여당과 한패인 국회의장은 경호권 발동으로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을 제압하려 했을 테고,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여야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을 것이다. 고성과 욕설, 주먹질과 단상 점거는 다반사이지 않았는가.

다수당인 새누리당이 저렇게 얌전하게 나올 수밖에 없는 데에는 지난해 5월 통과된 ‘국회선진화법’ 때문이다. ‘몸싸움 방지법’이라고도 불리는 ‘국회선진화법’은 크게 다섯 가지 사항을 담고 있다. 다수당의 횡포를 막고 여야 타협을 이끌어내는 데 주안을 뒀다.


‘국회선진화법’, 새누리 발등 찍을 줄이야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범위를 크게 제한했다. 천재지변이나 국가비상사태, 혹은 교섭단체 대표가 합의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도록 못박았고,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되려면 국회 재적의원 3/5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안건조정제도가 도입됐다. 여야간 이견 조정이 필요한 안건에 대해 해당 상임위 재적의원 1/3 이상이 요구할 경우 안건조정위원회가 구성돼 최장 90일 동안 활동할 수 있다. 댜수여당이 소수야당의 의견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없도록 만든 장치다.

이 두 가지가 여당의 직권 상정 시도에 발목을 잡고 있다. 민주당이 직권상정 제안을 거부할 경우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 받아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회 재적의원 2/3에 해당하는 180명의 동의가 필요하다. 현재 새누리당 의석수는 153석. 국회의장 직권 상정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선진화법’은 악법? 개정하자는 새누리

새누리당 의원들 사이에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자신들이 운신하는데 제한을 받는다는 이유로 제정된 지 1년도 안 된 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목청을 높인다. 자신들이 만든 법을 향해 악법이라며 침을 뱉는 꼴이다.

 

“국회선진화법이 아니라 후진화법이다. 선진화법이든 뭐든 개정해야 한다.” (이한구 원내대표)

“국회선진화법은 좋은 취지와는 달리 국회 코마법(혼수상태)이 됐다” (유기준 최고위원)

“선진화라는 거짓말로 분칠된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식물국회, 식물정부가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당연히 개정돼야 한다.” (심재철 최고위원)

“아주 잘못된 법으로 다수의 원리 자체을 봉쇄해 버렸다. 하수구 없는 부엌과도 같다.” (이인제 의원)

“표결을 보장하는 제도로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선진화법 개정이 당 지도부의 의견이냐’는 질문에) 그렇다. 당 지도부가 생각을 모은 것이다.” (김기현 원내수석부대표)

 

이토록 법 개정에 안달이 난 이유가 또 있다. 국회의장 직권상정 뿐만 아니라 해당 상임위원장이 상임위에 직권상정할 수 있는 길도 막혔기 때문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지난달 정부조직개편안과 관련해 안건조정위를 발동시켰다. 최대 90일 동안 안건조정위의 활동이 보장되게 돼 있어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상임위를 통한 국회본회의 상정 또한 어려운 상태다.


‘안건조정제도’에 의해 상임위 통한 상정도 막혔으니

국회의장 직권상정은 민주당이 거부함에 따라 물건너갔고, 안건조정제도 때문에 당장 상임위를 통한 본회의 상정도 불가능하게 됐다. 게다가 직권상정 제안은 민주당에 의해 거부당했다. 이러자 생각해 낸 게 법 개정인 것이다. 많이 아쉬웠나 보다. ‘국회선진화법’이 없다면 예전처럼 몸싸움을 해서라도 정부조직법을 통과시켰을 텐데. 그 시절이 몹시 그리운가 보다.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 시키고 ‘후진 국회’로 돌아가려는 발상이 곧 ‘다수결 만능주의’다. 다수결 원칙이 능사는 아니다. 저급한 수준의 민주주의에서는 다수결이라는 획일화된 방식이 먹힐지 모르나, 다층적이고 다양한 민주사회라면 다수결만으로는 턱도 없다. 언제든지 누를 수 있는 게 ‘소수’라고 보는 시각은 위험하다. ‘소수’를 파트너로 인식하는 입체적 사고가 필요한 시대다.

‘국회선진화법’을 만든 것도 그 때문이다. 다수라는 숫자의 힘에만 의존하는 ‘획일적 다수’ ‘잔혹한 다수’가 아니라, 소수의 입장을 이해하는 ‘유연한 다수’ ‘포용력있는 다수’가 돼야 국회가 발전하고 정치가 좋아진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기 위해 만든 법이다. 타협할 줄 아는 다수가 진정한 다수다.


‘날치기 추억’ 곱씹어도 소용없다

어색할 것이다. ‘날치기 국회’가 몸에 익은 새누리당 아닌가. 설상가상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에 봉착해 있다. 그래도 지혜롭게 인내해야 한다. 막 걸음마를 시작한 ‘국회 선진화’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국회선진화법’이 없었다면 정부조직법을 놓고 여야가 벌써 이랬을 것이다.

박 대통령도 적극 찬성했던 법이다. 설령 개정을 하려 한다 해도 안건조정제도 등에 의해 브레이크가 걸릴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받아들인 걸까. 국회인사청문회를 통과한 장관후보자들에게도 임명장을 주지 않으며 야당을 압박하던 박 대통령이 생각을 바꾼 모양이다. 청문회를 통과한 후보자들에게 오는 11일 먼저 임명장을 주기로 했단다.

그토록 그 때가 아쉬운가. ‘날치기의 추억’을 곱씹고 또 곱씹어도 소용없다. 후진 기어는 이미 제거된 상태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야당과 타협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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