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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위기의 한반도, 그리고 우리에게 원로가 없다는 것의 아쉬움

전쟁위기의 한반도, 그리고 우리에게 원로가 없다는 것의 아쉬움
(서프라이즈 / 권종상 / 2013-03-08)


새벽에 참 흉흉한 꿈을 꾸다가 일어났습니다. 이곳 로컬 신문에 큰 활자로 '더 세컨드 코리안 워' 라고 박혀 있고 흑백사진으로 잿더미가 된 한국의 어딘가를 보여주는 걸 보고서 충격을 받았는데, 이게 꿈이었던 겁니다. 일어나보니 베갯잇이 젖어 있을 정도로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황당한 꿈을 꾸게 된 배경엔 1983년 만들어진 핵전쟁의 참사와 그 이후의 지구의 모습을 다룬 영화 'The Day After'를 유튜브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보았던 탓도 있을 것이고, 최근 북의 핵실험 성공과 예의 그 불바다 위협, 그리고 심지어는 북한이 투발체로 당연히 활용이 가능한 로켓, 그것도 미국까지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탄을 지니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 같은 것들이 제가 이런 꿈을 꾸게 한 매개체로 작용했는지도 모릅니다.

제 블로그 이웃님 한 분은 전쟁가능성에 대해 "인정하기 싫지만 한반도의 독립변수는 미국이며 그 다음이 중국"이라고 지적하고, 그 두 나라가 현재 의기투합해서 북을 제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교적 낙관적인 견해를 펼치신 후에, 자기 말이 미덥지 않을 경우 주식시장을 보면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물론 시장이 가장 먼저 '진짜 위협'을 감지하고 무슨 일이 있을 경우 제일 먼저 시장동향이 달라질 거란 사실은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야기이긴 했습니다. 이 이웃님께서는 여기에 덧붙여 미국이 전쟁을 일으키고자 해도 이미 시퀘스트 상황으로 제일 먼저 군 예산을 감축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 그리고 일본은 중국의 군비 증강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으며 중국은 지금까지 그 어느때보다도 군비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상황을 예로 들어주시며 전쟁 위험성은 별로 없다고 낙관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전쟁이란 변수의 의외성입니다. 물론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뺨 맞고도 아무짓도 못했던 무능한 이명박 정부가 전쟁을 막았네 어쩌네 하는 소리를 하고 계신 분도 있지만, 그건 다 미국의 계산이고 의도였지 절대 한국 정부의 결정이 개입될 여지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진짜 전쟁국면이었던 1994년, 우리에겐 당시 이런 상황을 맞아 아무런 대응도 못하고 있던 정부 대신 당시 영국에 유학하고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당시 대선 낙선 후 정계은퇴 상황이었던)이 이 상황을 위기로 파악하고 결국 미국이 카터를 미국에 특사로 파견시키도록 하는 데 성공, 전쟁위기를 막아냅니다.

이때 클린턴과 미국정부는 이미 전쟁 도상 연습까지 마친 후였습니다. 만일 그때 전쟁이 일어났더라면 북한 뿐 아니라 한반도 전역이 초토화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입니다. 즉, 전쟁은 '공멸'입니다. 하물며 북이 중장거리 핵무기를 확실히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 지금,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폐해는 한반도의 궤멸이 될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를 김대중 대통령은 들여다보고 있었던 겁니다.

물론 지금 미국이 군 예산을 삭감해야 하고 바로 직접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라도, 문제는 '일본'입니다. 언제든지 '자위대'가 아닌 '군'을 가지고 싶어하는 군국주의 일본. 우경화가 계속해 진행되고 있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경화를 정권이 계속해 음으로 양으로 조장하고 있는 일본이 미국의 대리전을 치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이 경우 한국군은 당연히 최전방의 선봉이 되겠죠. 가장 희생이 큰 병력이 될 겁니다. 물론 이게 만일 더 잔인한 수단을 사용하는 전쟁일 경우 굳이 전후방을 가린다는 게 의미가 없겠지만.

지금 북은 정전협정을 폐기한다는 등의 강경한 어조로 대남간접도발의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 한국과의 대화보다는 미국과의 직접대화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북은 지금까지 휴전협정 당사자로서의 북미대화를 원해 왔지만 미국은 그 요구를 듣지 않았고, 오바마 정부는 천안함 사건 등을 핑계로 과거 클린턴 정부와는 달리 북미대화에 대해 거의 '생까는' 자세를 취해 왔습니다.

한반도에 이만한 긴장 덩어리가 생긴 가운데, 만일 그걸 국지전 정도로 풀어낼 생각을 하는 세력이 있다면 전쟁은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껏 한반도에 긴장이 생기면 그걸로 재미를 봐 온 이웃이며 적인 나라 일본은 1950년 한국전 발발로 인해 세계적 경제 강국이 된 그때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며, 지금 저렇게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는 박근혜 정부는 국지전 카드 한 방이면 바로 반대파들 모두를 잠재우고 전시체제로 전환하면서 지금까지 있어왔던 민주화의 결실 모두를 유신시절, 혹은 그 이전 이승만 정부 시절로 되돌릴 수 있다는 유혹을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한국전쟁을 일으켰을 당시의 김일성의 나이인 김정은에게, 전쟁의 유혹은 '선친이 남긴 금단의 과일' 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문제는, 이런 불장난이 가시화될 때마다 우리에겐 다행히 누군가들이 있어 줘 왔습니다. 물론 '그들'이 다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38선을 베개삼아 그 한 몸 뉘겠다고 말한 백범 김구 선생, 그리고 몽양 여운형과 조소앙, 김규식 같은 거두들이 암살 등으로 그들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그 순간에 한국전쟁은 발발했고, 끝까지 외교적 노력을 통해 미국이 북에 특사를 파견하는 것을 성공시킨 김대중이란 인물이 있었을 때 제 2의 한국전쟁의 불씨는 꺼질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겐 그런 역사적인 맥락을 파악하고 짚어줄 어른들이 계시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주변 모든 나라들과 심지어는 그 국민들이 모두 우경화 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이 계속해 과거 역사 한 점과 겹쳐 보인다는 것… 저는 그게 두렵습니다.

 

 

 

타임지를 뒤져보다가, 뉴욕타임즈를 잠깐 들여다봅니다. 로컬 뉴스들을 보고, 국제면을 보고…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기운들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갑작스런 우경화, 그리고 그런 정세의 변화를 막거나 혹은 늦출 수 있었던 인물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상황들… 김수환 추기경님,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같은 분들의 부재가 참으로 아쉽습니다.

세계 정세가 돌아가는 상황이 이렇게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은, 로컬 차원에서의 경제는 물론이고 세계 경제 자체를 거대한 양극화로 몰아가던 신자유주의가 한계에 이르렀고,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시대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약탈적 자원수탈도 동시에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할 것입니다. 이런 돌아가는 여러 정황들이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 정말 걱정입니다. 그리고 평화는 '무엇을 주고라도 지켜야 할 가치' 입니다.

시애틀에서…

 

권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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