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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항상 위기…대화 외 다른 방법 없다

 

 
 
한반도 전쟁 막은 것… 핫라인 그리고 남북회담
 
耽讀 | 등록:2013-03-10 10:59:32 | 최종:2013-03-10 11:00:0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박정희 목따러 왔수다.”

1968년 1월21일 밤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침투했다. 이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김신조가 다음 날인 22일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김신조는 기자회견에서 청와대 침투 계획을 설명하면서 “31명이 5명 또는 7명씩 6개조로 나뉘어 1조에서 5조까지는 청와대의 1층, 2층, 경호실, 비서실, 정문위병소의 격파를 분담하고 나머지 1개조는 습격이 성공했을 때 청와대 수송부의 자동차를 탈취해 문산까지 나가 임진강을 도강하는 것”이라고 했었다. 만약 성공했다면 한반도는 전면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1968년 한반도… 전면전 위기

청와대 습격 이틀 뒤인 23일에는 북한 원산 앞바다에서 미국 해군 정보선(情報船)인 푸에블로호와 그 승무원 83명이 나포된 ‘푸에블로호 피랍사건’(Pueblo Incident)이 일어났다. 자국민과 배가 북한에 피랍되었는 데도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지 못한 것은 당시 베트남전이 한창이었고, 워낙 많은 인원이 납치되었기 때문에 감행하기 어려웠다. 결국 그해 12월 23일 82명의 생존 승무원을 석방하는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또 그해 10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3차례에 걸쳐 북한의 무장 공비 120명이 울진·삼척 지역에 침투하여 12월 28일 소탕시까지 약 2개월간 게릴라전이 일어났다. 그 유명한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다. 군경과 예비군은 본격적인 토벌작전에 착수, 12월 28일까지 약 2개월간 계속된 작전에서 공비 113명을 사살하고 7명을 생포하여 침투한 120명 모두를 소탕했다.

우리 측도 군인, 경찰, 일반인 등 20여 명이 사망하는 희생을 치렀다. 두 달 동안 강원도에서 국지전이 벌어진 셈이다. 한 순간 판단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충격을 받은 박정희는 ‘향토예비군’을 창설한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때는 문세광을 통해 저격을 시도했지만, 미수에 거쳤다. 하지만, 부인 육영수 여사가 숨지는 비극이 일어났다.

한반도는 8년 후 또다시 전쟁 기운이 감돈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 살인 사건이다.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을 북한군이 도끼로 죽였다. 사건 직후 주한미군사령부는 주한미군 장병들의 휴가취소와 부대복귀명령을 내렸다.


1976년 미군살해, 1983년 대한민국 대통령 암살 계획

이어 주한미군과 한국군은 데프콘 3호(경계상태돌입)를 발령하고, F-4전폭기, F-111전폭기 각 1개 대대를 한국기지에 배치했다. 핵항공모함 레인저호를 한국해역으로 이동, B-52폭격기를 출동시키고, 오키나와 주둔 해병대 1800명을 한국에 증파했다. 방아쇠만 당기면 전쟁이었다.

북한은 7년 후 또다시 대한민국 대통령 목숨을 노렸다. 1968년에는 직접 청와대를 겨냥했다면, 1983년에는 국외방문 중이 대통령을 노렸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해 10월 9일에 일어났다. 북한은 전두환 대통령이 버마(현 미얀마)를 방문하자 아웅산 묘소에 폭탄을 설치해 터뜨렸다. 폭발 사고로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 김동휘 상공장관 등 각료와 수행원 17명이 순직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했다. 분노한 전두환 대통령은 북폭을 계획했지만 포기했다.


1950년 한국전쟁 후…한반도는 항상 위기

이후에도 ‘제1차연평해전’(1999년 6월 15일), ‘제2차연평해전’(2002년 6월 29일),’대청해전’(2009년 11월 10일), ‘연평포격’(2010년 11월 23일)처럼 북한 도발은 이어졌다. 2008년 7월에는 금강산 관광객을 사살까지 했다. 그렇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는 단 한 순간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위기에도 한반도에서는 한국전쟁처럼 피비린내나는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놀랍게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큰 역할을 했다. 박정희는 자신의 목숨을 노린 김일성과 대화 채널을 만들었다. 1971년 12월 이후락-김영주 사이에 핫라인을 설치한 것이다. 남북이 휴전선에서 충돌이 일어나면 핫라인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전두환도 핫라인은 끊지 않았다.

그리고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에서 핫라인이 설치됐다. 임동원 전 국정원장은 자신이 지은 <피스메이커>에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핫라인 개설이 가장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임 전 원장은 2000년 8월 남쪽 언론사 사장단 방북을 비롯해 9월 김용순 비서의 남쪽 방문, 2002년 6월 서해교전, 10월의 2차 핵위기와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방미 추진, 2002년 4월과 2003년 1월 임동원 특사 방북 등 주요 현안은 모두 이 핫라인을 거쳤다고 밝혔다.


한반도 전쟁 막은 것… 핫라인 그리고 남북회담

결국, 남북간 대화 채널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들어 대화채널은 끊겼다. 가족사이에 대화가 끊기면 온전한 가정이 아니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대화가 끊긴 이후 북한은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로켓발사와 3차핵실험을 강행했다. 판문점 전화도 끊겠다고 선언했다.

유엔안보리는 대북제재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러자 북한은 남북 간의 불가침 합의를 전면 폐기한다고 선언했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은 8일 오전 성명을 내 “조선정전협정이 완전히 백지화되는 3월 11일 그 시각부터 북남사이의 불가침에 관한 합의들도 전면 무효가 될 것이라는 것을 공식 선언한다”고 밝혔다.

이보다 앞서 북한은 안보리 결의가 채택되기 직전인 7일 오후 6시 외무성 성명에서도 “제2의 조선전쟁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며 “침략자들의 본거지에 대한 핵 선제타격 권리를 행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 정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북한이 도발하면 “지휘세력까지 응징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8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한국을 공격한다면 대한민국은 당연하고 인류의 의지로 김정은 정권은 지구상에서 소멸될 것”이라고 밝혔다.


2013년 남북한 ‘치킨게임’

‘치킨게임’으로 치닫고 있다. 겁많은 이가 먼저 운전대를 돌리면 진다. 북한도, 남한도 먼저 돌리지 않겠다면서 먼저 네가 운전대를 돌리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심각하다. 대화채널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뽑은 외교·안보라인을 보면 강경파밖에 없다. 대화 목소리를 낼 온건파가 보이지 않는다.

강경파만 득세하니 ‘강 대 강’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작은 충돌이 국지전으로,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비화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3일만에 북한을 초토화시킬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어리석은 자들도 있다. 3일만에 북한을 패퇴시킬 수 있어도 남한 역시 파멸이다.

파멸을 막는 유일한 길은 대화밖에 없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2004년 6.15 4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남북을 대표하고 있다. 우리가 마음 한번 잘못 먹으면 7천만 민족이 공멸한다. 그러나 우리가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올바르게 문제를 풀어나간다면 우리 국민과 후손들은 축복받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감사할 것이다.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누구도 영원히 그 자리에 있는 사람도 없고, 영원히 사는 사람도 없다. 우리 민족을 위해서나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나 오늘의 이 자리는 하늘과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마련해 준 기회다. 반드시 성공적으로 문제를 풀자.”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제1비서가 새겨야 할 말이다. 두 사람 판단 잘못이 7천만 공멸로 이끌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김정은 제1비서는 한반도 하늘 아래 모든 사람들에게 죄 지으면 안 된다. 요즘 자신의 행보가 반민족, 반생명, 반평화임을 알아야 한다. 핵무기는 자주권이 아니다. 핵무기는 평화를 담보하지 않는다. 공멸로 이끄는 죄를 김정은은 짓지 말아야 한다. 박 대통령 역시 수구세력 주장에 흔들리지 말고, 냉철한 판단을 해야 한다.


다 죽고 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지난 2007년 1월 23일 신년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화를 위한 전략의 핵심은 공존의 지혜입니다. 화해와 협력, 공존을 위한 지혜의 요체는 신뢰와 포용입니다. 끊임없이 상대를 적대하고, 의심하고, 상대의 허물을 들추어 상대의 자존심과 불안을 자극하고, 사사건건 시비를 따지고 자존심을 세우려고 해서는 신뢰를 쌓을 수도 없고, 화해와 협력의 대화를 이어갈 수도 없습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대범한 자세로 상대를 포용해야 합니다. 대결주의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렇다, 대결주의는 길이 아니다. 공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화해와 협력을 위한 신뢰와 포용이 가장 필요할 때. 한반도에 ‘너 죽고 나 살자’는 성립되지 않는다. 너 죽으면 나도 죽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국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을 가야 한다. 냉전시대는 피스키퍼로 살았지만 냉전이 해체된 이후 피스메이커로 살아가고 있다는 임동원 전 국정원장의 <피스메이커>는 이렇게 끝맺음을 하고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통일은 목표인 동시에 과정이다. 미․북 관계 개선과 북핵문제 해결과정에 병행하여 ‘남북경제공동체’ 건설 및 군비통제를 추진하면서 우리는 통일에 접근해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당면한 과제는 ‘통일지향적 평화체제’를 구축하면서 ‘사실상의 통일상황’부터 실현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통일은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지구 상에서 가장 많은 핵무기를 보유한 미국과 소련은 지난 1962년 지구 파멸 직전까지 갔다. ‘쿠바 미사일 위기’ 사건이다. 당시 미국 합참과 공군은 선제공격을 주장했다.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때 케네디 대통령은 측근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군인들의 주장은 엄청난 장점이 하나 있어. 그들이 하자는 대로 하면, 나중에 우리 중 아무도 그들이 틀렸다고 말해줄 수 없을 거야. 왜? 우리는 다 죽고 없을 테니까.” -3월 8일 <한겨레> [세상 읽기] 위기와 용기, 책임감

다 죽고 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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