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
이들 단어는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사회적 의미가 다르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이념이 대립하던 시기에 진영에 따라 이들 단어에 대한 호불호나 사회적 평가가 달랐다. 그러면 오늘날 한국에서는 어떤가? 국가보안법이 전체 환경을 지배하는 사회답게, 과거 독재정권의 악행 등에 의해 사상의 자유가 탄압받았던 사회답게 이들 단어에 대한 이미지는 심각하게 일그러져 있다. 서구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우선 좌파라는 단어에 대한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우파에 대한 것과 비교할 때 그러하다. 좌파는 현실 속에서 우파가 겪지 않아도 되는 유무형의 불이익을 감수하거나 강요당한다.
19대 대선이나 그 이전 선거 등에서 들어났듯이 우파는 진보, 좌파, 종북을 한데 묶어서 시도 때도 없이 말이 되건 안 되건 간에 비판하고 공격한다. 이 세 단어가 각각 차이가 있을 법하지만 그것을 구분하지 않는다. 싸잡아서 비판하는데 그것은 북에 동조하거나 남한 체제에 적대적인 것이라는 의미가 담긴 듯이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북한에 퍼주기를 한 좌파에게 정권을 넘길 수 없다. 진보 정권이 나라를 망쳤다’는 식으로 짧은 문장에 담아 TV 토론에서나 유세장에서 외친다.
그렇게 하는 것은 득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과거에 그랬듯이 이번에도 틀림없을 것이라는 확신에 차서 행동한다. 전체 사회가 좌파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라는 것, 그래서 곱지 않은 눈초리를 보낸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다. 국가보안법의 영향과 남북 대치와 전쟁 위기 속에서 이 단어들에 대한 한국적인 부정적 의미부여는 더욱 강화되었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남한 사회에서 보수, 우파라는 단어는 안전지대에서 보호받는 것이 보장된다는 고정관념이 지배적이다. 우파는 아무데서나 ‘나 보수요, 우파요’라고 큰 소리를 칠 정도다. 체제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큰 공감대 속에서 안도감과 상당한 정도의 우월감을 느끼는 그런 태도다.
그러나 진보, 좌파, 종북 이라는 단어는 비우호적이거나 반사회적, 반체제적이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이들 단어에서 주류사회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그래서 사회에서 걱정스런 눈초리를 보내는 그런 존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좌파, 종북으로 분류되거나 낙인찍힐 경우 심할 경우 공안 사건에 엮이면서 형사 처벌도 각오해야 할 것이라는 그런 위험한 존재로 낙인찍히는 것이다. 이런 고정관념은 일제가 치안유지법으로 공산주의를 단속한다는 명분으로 독립운동을 탄압하면서, 그리고 이승만이 그 치안유지법을 흉내 낸 국가보안법을 만들어서 반정부, 반체제, 민주화 운동을 억압한 뒤 수십 년 동안 겹겹이 쌓인 것이다. 일제 잔재와 직결되면서 이승만 정권 수립이후 지금껏 독기를 뿜어내고 있는 사회악 가운데 국가보안법이 가장 지독한 것에 속한다.
그러면 좌파, 우파나 진보 보수의 원조인 서구 사회의 오늘날은 어떤가? 그곳에서는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답게 좌파, 우파나 진보 보수가 다 동등한 위치에서 제 각각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서구 사회는 수백 년 동안 좌·우파, 진보 보수라는 공동체들이 경쟁하고 협의하고 때로는 갈등하면서 지내왔다. 그래서 좌·우파나 진보와 보수에 대해서 한국과 같은 부정적인 고정관념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 나아가 단순히 2분법으로 성향을 나누지 않고 극좌, 극우를 양극단으로 해서 그 안에 중도, 중도 우파, 중도 좌파 등 여러 부분으로 세분된 사상의 차이를 인정하고 있다. 이것이 정답이다. 남한사회처럼 좌우나 진보, 보수라는 식으로 두부모 자르듯 2분법으로 나누는 것부터가 후진적인 발상이다. 사람의 정치적, 사상적 성향은 십인십색이라 할 만큼 다양한데도 이런 차이에 눈을 감고 흑백논리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서구에서는 다양한 사상과 정치적 이념을 긍정적으로 받아드리는 사회적 분위기 덕에 서구 학자들은 왜 사람들이 좌우로 나뉘어 정치, 경제적으로 다투는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한 사례가 많다. 그 결과 진보와 보수적 성향의 사람들은 뇌구조가 다르거나 유전적 또는 성격 차이라는 요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보수와 진보는 후천적으로 정해지는 것으로 인식되었지만 과학의 발달에 의해 선천적인 면도 있는 것으로 과학자들이 밝혀낸 것이다. 물론 유전적, 후천적 요인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개인차는 얼마나 있는지에 대한 정밀 조사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좌우, 보수 또는 진보가 후천적 요인으로 갈린다는 고정관념이 오류라는 것은 증명 된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멀쩡한 사람도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면 세뇌당해서 빨갛게 변한다는 비과학적 전제를 진리처럼 받아드리는 그런 법이다. 후진적이고 야만적인 발상에 의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법이라는 것이 확인된다.
이념 대결이 자심했고 여전히 남남대결 등으로 불리는 내부 갈등이 심각한 한국 사회에서는 진보나 보수, 좌우파를 연구하기 위해 아직 뇌 구조나 유전적 요인 등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도 국가보안법을 칭송하는 수구세력들이 싫어하는 연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왜 그럴까? 그 해답은 간단하다. 한국에 국가보안법이 계속 존재하려면 인간이 후천적으로 사회화 과정에서 좌우로 갈린다는 학설만이 굳건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보안법이 존속될 명분이 확보되고 이 법으로 부당이득을 챙길 구실이 생기는 것이다. 만약 선천적 요인에 의해 좌우나 보수 진보가 갈린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가 쏟아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 때는 국가보안법을 폐기해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을 것이다. 수구보수는 이것을 두려워하고 있을 법하다.
국가보안법은 상상의 자유를 제약하면서 남파 간첩을 접촉하거나 불온서적이나 북한 미디어를 접하면 포섭되거나 세뇌당해 반국가 행위를 하는 것을 처벌하는 법이다. 그런데 선천적 요인이 존재한다면 이런 법이 비과학적이고 엉터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런 점을 미리 간파한 사회생태학자나 유전학 전문가들은 미리 알아서 그런 연구를 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연구해보았자 수구보수에 의해 배척받는 존재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에서 좌우, 보수 진보의 선천적 요인에 대한 연구는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 좋은 학자들은 자신들이 좀 더 출세하려면 주류 사회가 싫어하는 연구는 피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자기검열을 통해 할 짓과 안할 짓을 구분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과학 한국의 미래를 망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지구촌 시대다. 세계는 시공간적으로 자꾸 압축되고 좁혀지고 있다. 손바닥으로 언제까지 해를 가릴 수는 없다. 언젠가는, 그것도 가까운 시일 안에 용감한 과학자들이 발 벗고 나설 것으로 기대된다. 국가보안법 눈치를 보는 비정상적인 연구 풍토가 개선될 것을 희망하면서 브레인 메거진 28호<2011년 08월 23일자>에 실린 좌우, 보수 진보의 선천적 요인에 대한 연구 결과 내용을 축약해 소개하기로 한다
http://www.brainmedia.co.kr/brainWorldMedia/ContentView.aspx?contIdx=7226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의 료타 카나이 교수는 정치적인 태도와 관점 차이 등이 뇌구조와 연관성이 있는지 연구한 결과 자유주의적 좌파라고 밝힌 사람들은 뇌 전두엽 한가운데 있는 전대상회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이 상대적으로 더 컸고 보수적인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우측 편도체(amygdala)가 더 컸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고 캠퍼스(UCSD) 제임스 포울러 교수팀과 하버드대학 공동연구팀은 2천 명의 청소년 유전자 정보와 그들의 정치성향을 조사한 결과 DRD4-7R이라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10대부터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특정한 유전자를 보유한다는 것과 새로운 것을 원하는 행동이 합쳐지면 진보적 정치성향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조단 피터슨 교수팀은 실험 대상자 6백 명의 정치성향을 개별적으로 파악한 다음 성격 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질서를 잘 지키고 덜 개방적이며 예의 바른 사람은 비교적 보수적인 성향을, 유쾌하고 감성적이며 동정심과 평등의식이 높은 사람은 진보적인 성향을 띤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에서 소개한 연구결과를 살피면 정치적 성향은 선천적 요인과 함께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난다는 가설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경험적으로 볼 때 사람은 선천적, 후천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관련 과학이 더욱 발전하면 두뇌나 정보전달물질인 호르몬의 작용 등 유전적 요인의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히 규정하는 날이 올 것이다.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타 분석기법 등을 통해 정밀 조사를 할 경우 더 과학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가보안법 옹호론자들은 그 입지가 좁아질 전망이다. 한국의 진보적 과학자들도 이런 연구에 관심을 쏟아야 후진적 환경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서구의 진보와 보수에 대한 연구 결과를 참고하면서 서구에서 정립된 진보와 보수의 교과서적인 특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서구의 진보 보수주의 차이를 좀 더 자세히 살피는 작업은 한국적 보수 진보의 실체를 객관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다음은 서구의 진보 보수에 대해 개략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진보주의자들은 평등과 개인의 자유, 개인 재산, 개인의 권리, 제한적이면서 헌법에 근거한 정부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신념체계다. 그리고 복수주의(pluralism), 관용, 자율, 동의와 같은 상대적 가치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진보주의자는 이런 원칙하에 헌법, 자유민주주의,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인권, 자본주의, 자유무역, 정치와 종교의 분리와 같은 기본적 제도 등을 지지한다<http://http://en.wikipedia.org/wiki/Liberalism>. 진보주의는 다양한 경향과 전통을 지니고 있지만 주요 이론은 18세기 유행했던 전통적 진보주의와 20세기를 지배한 사회적 진보주의의 변형에 속한다.
진보주의는 개인과 공동체 생활 방식과 사회의 조직 원리, 정부 정책에서 자유를 보장하는 원칙이나 철학, 운동이다. 진보주의는 정부 간섭이나 통제를 최소화하는 경제정책, 프로그램을 중시한다. 특히 진보주의는 근대 산업사회의 어려운 상황에서 경제적 자유의 철학을 추진했다. 그 결과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보수주의와 전체주의와 같은 다양한 정치 이념에 맞서 진보적 자본주의를 표방했다. http://www.britannica.com/bps/additionalcontent/14/117903/liberalism#
진보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변했고 변하고 있으나 대체로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생각하고 신뢰하고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고 토론하거나 정당을 만드는 등의 결사의 자유와 직업 선택의 자유, 자신의 노동력을 포함한 상품을 사고파는 자유, 정부 형태는 물론 자신의 지배자를 선택하는 자유, 심지어 혁명으로 그것을 교체하는 자유 등이 포함된다<http://plato.stanford.edu/entries/liberalism/>.
진보주의는 정치적 다수세력이 되지 못할 경우 다른 이념과의 연대에 적극적이다. 캐나다에서는 진보정당이 20세기 들어 70년간 집권하기도 했으나 영국, 네델란드 등 서구 국가에서 진보적 정당은 20세기 말과 21세기 초 사회당 사회민주당, 심지어 보수당과 연합 정부를 구성했다<http://en.wikipedia.org/wiki/Liberalism>.
보수주의는 역사적으로 진화하면서, 지속성과 안전성을 지닌 제도와 행위를 선호하는 이데올로기 또는 태도다. 보수주의는 추상적이거나 이상적인 것보다 역사적으로 계승된 것을 선호한다. 이런 성향은, 사회가 단지 개인들의 느슨한 집합체라기보다 밀접하게 연결되고 상호의존적인 개인들의 살아있는 조직체라는 믿음에 근거한다. 보수주의는 흔히 철지난 기존의 정치, 사회적 질서의 복구에 매달리는 식의 비합리적 태도와는 구분된다.
보수주의라는 용어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반발 속에 등장했다. 보수주의자는 변화는 최소한으로, 그리고 점진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이상주의라기보다 현실주의자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 정부의 임무는 현존하는 생활방식을 섬기는 하인이지 주인이 아니다. 정치인은 사회와 정치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 http://www.britannica.com/EBchecked/topic/133435/conservatism>.
영국의 심리학자 Glenn Wilson은 보수주의의 신념을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라고 규정했다. 다른 학자는 이런 심리는 강력한 충성심 등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조사 결과 다음과 같은 논리가 제시되었다 - “ 진보, 보수 모두 변화에 저항한다. 단지 진보주의자가 좀 더 관대하게 받아드릴 뿐이다.”<http://en.wikipedia.org/wiki/Conservatism>.
서구의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는 합리성이라는 것을 중시하는 공통점이 있다. 단 전자는 인간에 대한 부정적 비관적 판단에 기울어 있으며 현재 눈앞의 현실에 후자는 바람직스런 미래에 주목한다는 차이가 있다. 보수주의는 인간이 정치 사회적 변화를 통해 도덕적으로 개선된다는 낙관적 견해에 반대한다. 보수주의는 흔히 기독교신자가 많은데, 인간이 원죄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위와 같이 주장한다. 이들은 인간의 역사가 죄악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보수주의는 인간의 본성이 원래 착하다거나 기본적으로 이성적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이 열정과 욕망에 좌우되며 이기심, 무정부주의, 비이성, 폭력 앞에 나약하다고 본다. 보수주의는 전통적인 정치와 문화제도 등은 인간의 파괴적인 본능을 억제하며 정부 기구가 그런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가족, 교회, 학교 등은 자제력의 가치를 가르쳐야 하며 이런 교훈을 얻지 못한 사람들에게 정부와 법률이 교훈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제도적 강제력이 없이는 윤리적 행동이나 자유의 책임 있는 활용이 불가능하다고 보수주의는 주장한다.
보수주의적 기질은 두 가지의 특성을 지닌다. 첫째, 인간성과 돌발적인 사회적 변화, 검증받지 않은 혁신 등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 이는 정치, 문화, 종교 등에서 발견된다. 두 번째 특성은 추상적 이론화나 논쟁을 싫어한다. 혁명가등의 미래 사회 계획은 의도적으로 생산된 이론에 의거하기 때문에 결국 재앙으로 끝날 뿐이라고 보수주의자들은 확신한다.
이런 점은 진보주의자들과 크게 대비된다. 진보주의는 추상적 이론화를 시도하지만 보수주의는 구체적인 전통을 중시한다. 이런 탓으로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주의나 급진주의자들의 이론적 성과에 필적할만한 이론 개발의 성과가 없다. 보수주의는 사회가 너무 복잡해서 진보주의 등에서 제시하는 사회개혁 프로그램이 무익하고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보수주의는 전통 속에 포함된 선조들의 기술, 도덕성, 다른 문화적 자원 등을 승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보수주의가 급작스런 변화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습관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은 정치적 변화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나거나 문화적 안정성을 고집하는 것으로 나타난다<http://www.britannica.com/EBchecked/topic/133435/conservatism>.
이상에서 소개한 서구 사회의 진보와 보수의 연구를 볼 때 두 성향은 사회 발전과 역사의 진보에 반드시 필요하다. 둘 중의 하나로는 그렇게 될 수 없다. 만약 보수주의만이 지배한다면 그 사회는 썩은 물처럼 될 것이고 진보주의만이 지배한다면 그런 사회는 대단히 불안정할 것이다. 두 성향이 서로 균형을 이루거나 교대로 사회를 지배하면서 사회와 역사는 앞으로 전진 했고 앞으로 그럴 것이다.
서구사회는 수 백 년 동안 경쟁과 협력, 대립과 협조, 갈등과 화해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상대의 장점을 취하면서 자기의 단점을 버리는 식으로 진화를 거듭했다. 서구의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에서 많은 점을 배워 자본주의를 수정 보완한 것처럼 진보와 보수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에도 거대한 두 흐름은 서로 배우면서 좋은 점을 취해 긍정적인 변화를 모색한다. 두 사상은 서구 역사의 큰 흐름을 형성하면서 변화했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근세사 이후의 서구의 역사는 진보와 보수의 경쟁에 의해 발전한 것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한국의 보수진보도 서구의 그것으로부터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그래야 한민족이 동북아는 물론 지구촌의 평화와 안정, 행복에 기여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 우물안 개구리를 벗어나야 새로운 창조적인 미래가 열린다.
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 konews8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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