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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헛되지 않도록..호혜 평등한 한미관계 바래"

효순.미선이 30주기 추모제..부지매입으로 평화공원 첫삽
양주=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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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13  21: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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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오전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56번 지방도로 앞에서 지난 2002년 6월 13일 미군 장갑차에 압사 희생당한 두 여중생 효순.미선양의 15주기 추모제가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56번 지방도로. 2002년 6월 13일 오전 10시 30분. 친구 생일 잔치에 가기 위해 언덕길을 넘던 신효순 심미선 두 여중생이 시속 50~60km로 교행하던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운명의 시간과 장소이다.

13일 오전 이곳 사고현장에서 '고 신효순 심미선 15주기 추모제'가 28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고 신효순 심미선 15주기 추모행사 공동준비위원회’(15주기 추모 준비위) 주최로 진행됐다.

당시 15살의 소녀들은 그만큼의 시간이 흘러 이제 서른살이 되었으며, 15주기 추모제를 맞아 비로소 국민 성금으로 만들어진 추모비 '소녀의 꿈'을 세우고 평화공원을 조성할 부지를 마련해 첫삽을 뜨게 되었다.

15주기 추모 준비위는 지난 4월말부터 시작한 모금에 지금까지 550여명이 참가해 5,400만원이 모였으며, 이미 미군이 세운 추모비 옆 밭 111평의 구입 계약을 마친 상태라고 설명했다.

부지매입 비용 1억1,100만원과 평화공원 조성 비용을 포함해 오는 9월말까지 3억원 조성을 목표로 모금을 진행하고 있다며, 많은 참여를 호소했다.(문의 02-712-8443 cafe.daum.net/sinsim2002)

   
▲ 문규현 신부는 추모사에서 촛불의 정신을 받들어 문재인 정부는 효순.미선이 사고의 진상규명과 호혜평등한 한미관계를 수립함으로써 이땅에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열어달라고 당부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상임대표인 문규현 신부는 추모사에서 "효순.미선이의 안타까운 죽음은 당시 범국민적 촛불로 승화되어서 노무현 정부 탄생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후에도 진상규명과 불평등한 한미 SOFA의 개정, 호혜평등한 한미관계의 수립이라는 역사적 과제에는 제자리 걸음만하고 오늘 이 시간까지도 그대로"라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이어 "부디 문재인 정부가 촛불의 정신을 받들어 추모공원 완공과 진상규명, 한미 SOFA개정, 호혜평등한 한미관계를 수립함으로써 이땅에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열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선양의 아버지 심수보씨는 15년간 미선.효순이를 잊지 않고 지켜준 시민단체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미선양의 아버지 심수보 씨는 "여러 분들과 뜻을 같이 하지 못한 사정을 이해하고 용서해 달라는 말씀부터 드린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15년 동안 지켜준 시민단체 관계자들에게 머리숙여 감사드린다"며, "(자식의 희생이)불평등한 한미 SOFA개정의 계기가 되어서 떳떳한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추모제를 마친 효순양의 아버지 신현수 씨는 딸을 추억하며 "많은 분들이 15년이 지난 지금도 많이 기억해 주시는 구나. 너희들은 비록 갔지만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한미 SOFA협정이 개정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효순.미선의 추모 평화공원 '소녀의 꿈' 조감도.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당시 재판이 열린 미군 법정에 한국 변호사로서는 유일하게 참가했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권정호 변호사는 2002년 11월 20, 21일 주한미군 8군사령부 군사법원이 사고 운전병 마크 워커와 관제병 페르난도 니노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은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만천하에 드러낸 일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평결에 분노해 한국인들은 진상규명과 살인미군 처벌, SOFA개정, 부시 미 대통령의 사과를 내걸고 역사상 처음으로 10만명이 촛불을 들고 미국 대사관을 에워싸는 항의 투쟁을 벌였다.

이후 효순.미선 아버지와 평통사가 공동으로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의정부 지청에서는 일부 받아들여지기도 했으나 미 육군 범죄기록센터 등이 핵심적인 정보의 공개를 거부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권 변호사는 지난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러 한계가 있었지만 새 정부를 탄생시킨 촛불의 응원과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현장검증 비디오 테잎 등 결정적 자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날 추모제 참가자들은 마을 어귀에서부터 효순이와 미선이가 걸었던 길을 따라 행진해 새로 조성할 평화공원 앞에 도착한 후 터밟기, 정화수올리기와 소리굿 등 추모행사를 마치고 서울로 발길을 돌려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15주기 추모문화제 등을 진행했다.

15주기 추모제가 열린 사고 현장은 여전히 편도 도로 폭이 3.3m밖에 되지 않는 왕복 2차선의 좁은 언덕길이었다. 당시엔 사람이 다니는 인도도 없고 표지석도 갖춰지지 않았으며, 도로 옆은 바로 풀이 자라는 언덕 비탈이었다.

   
▲ 추모제가 열린 사고 현장은 여전히 위험천만하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효순이와 미선이가 가려던 친구 집에서 멀지않은 덕도리 사격장에서 인근 파주 무건리  훈련장으로 돌아가던 브래들리 탱크의 폭이 3.4m였다. 인근 파주 무건리 훈련장에서 기동훈련을 받고 언덕길을 올라오던 사고 장갑차는 폭이 3.66m에 달했고 무게만도 미군이 보유하고 있던 장갑차중에서 가장 무거운 56톤에 달했다. 

효순이와 미선이는 위험천만한 길에서 나란히 서지도 못하고 한줄로 서서 걸었지만 교행하던 탱크가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급하게 방향을 바꾸는 바람에 무려 56톤에 달하는 장갑차의 무한궤도에 참혹한 모습으로 깔리게 된 것이다.

사고 미군은 미군 군사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그해  미국으로 돌아갔다.

   
▲ 영정속 효순.미선이.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마을어귀에서 사고현장까지 행진을 시작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추모의 리본을 솟대에 묶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평화공원이 들어설 자리에서 솟대에 추모의 리본을 묶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영정 든 이들이 서 있는 곳이 평화공원 예정 부지이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2002년 미군들이 세운 추모비. 오른쪽 옆 빈터가 평화공원 부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정화수 소리굿 추모공연 모습.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못다핀 소녀의 꿈.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효순양 아버지 신현수씨(왼쪽)과 미선양 아버지 심수보씨.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두 여중생을 압사한 장갑차가 기동훈련을 벌였던 파주 무건리 훈련장. 여전히 헬기가 흙먼지를 일으키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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