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정 헌재재판관 후보자에 대해 야당이 한 목소리로 지명철회를 요구한다고 한다. 이후보자가 과거 사실상 민주당 지지 활동을 하는 등 정파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오로지 정략적인 것으로 논평의 가치도 없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보단 한 마디 말하는 게 내 책임이라 생각하여, 몇 자 적는다.
우선 헌법재판소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헌재는 소위 정치적 사법기관이다. 그저 단순히 법을 적용하여 재판하는 사법기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헌법위반을 다루는 사법기관은 재판관들의 헌법적 이념과 철학 그리고 정치적 성향에 따라 결정이 달라진다. 그래서 우리 헌법은 일반 법원과 달리 그 구성에 있어서도 정치적으로 편향되지 않도록 9인의 재판관 모두를 대통령의 뜻대로 임명하지 못하도록 했다.
헌법 제111조
② 헌법재판소는 법관의 자격을 가진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하며, 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③ 제2항의 재판관중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3인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자를 임명한다.
이런 헌법 조항은 우리 헌재의 이념지형을 주권자의 그것과 가급적 맞추기 위한 노력의 소산이었다. 우리 헌법은 애초부터 대통령과 국회 지명의 재판관은 정치적 성향이 강할 것을 예상했고 대법원장 지명의 재판관은 중립적인 성향이 강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 이유로 대통령과 국회 지명의 헌재 재판관의 정치적 활동 경력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 따라서 문대통령이 지명권을 행사할 수 있는 헌재 재판관에 대해,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유사한 인물을 지명한 것은, 우리 헌법이 예상한 결과에 불과하다.
국회 선출 3인의 재판관의 경우를 생각해 보라. 여당 몫의 재판관은 여당과 정치적 성향을 같이 하는 법률가를, 야당 몫의 재판관은 야당과 정치적 성향을 같이 하는 법률가들이 지명되어 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지금 와서 이 당연한 임명권 행사를 정치적 편향 운운하면서 반대한다는 말인가.
더욱, 헌재재판관의 임명에서 국회가 하는 일은 대법관의 경우처럼 동의권을 행사하는 게 아니다. 그저 청문절차를 진행할 뿐이다. 야당이 합심해 반대한들 대통령이 임명권을 행사하면 그만인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 헌재가 비정상적으로 보수화되어 있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지나오면서 우리 헌재는 완전히 보수화되었다. 대한민국의 이념지형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새 정권의 대통령이 그것을 자신의 헌법적 권한으로 시정하고자 하는 것은 주권자 입장에선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통진당 사건에서 헌재는 8:1로 정당해산결정을 하고 말았다. 그게 바로 우리 헌재의 정치적 성향이자 이념지형이다. 이래 가지고서는 헌재의 헌법해석을 주권자인 우리 국민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적 성향의 대통령이 진보적 법률가를 임명하는 게 무엇이 잘못이란 말인가.
야당이 청문절차를 통해 후보자가 적절한 재판관 자격을 갖지 않았다고 공격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정치적 성향을 근거로 해선 안 된다. 그 후보자가 싫으면 그것보단 헌법재판관으로서의 기본적 자질이 없다고 주장해야 한다. 이후보자가 우리 헌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무능한 법률가라고 주장하라. 그것이 아니라면 입을 다물어야 한다.
이후보자의 선배로서, 지난 20년 이상 그를 지켜본 사람으로서, 매우 간단하게 그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그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와 약자를 위한 헌법수호자로서 일하는 데 큰 흠이 없는 사람이다. 그것은 그가 살아온 그의 과거가 말해준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야기하자. 나하고 이후보자를 비교하면 누가 더 정치적 성향이 강할까. 포탈에 두 사람 이름을 쳐보면 당장 알 것이다. ㅎㅎ 그러니 누군가 내게 당신은 정치적 성향이 강해 헌재재판관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면 내가 동의할까. 명확히 말하지만, 이런 글을 쓰는 것과 재판관 자격은 전혀 관계가 없다. 그렇지 않은가?
박찬운 /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이유정 임명’ 일제히 제동거는 야3당…8월 국회 뇌관으로
(한겨레 / 송경화 윤형중 기자 / 2017-08-18)
야 “노무현·민노당 지지” 꼬투리
“임명 철회하지 않으면
김이수 표결과 연계” 압박
여당 “야, 이념 장사 그만하라
독립만세 부르면 공직 못맡나”
정기국회 들머리 기싸움 모양새
법사위 21일 청문회 실시 논의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 문제가 8월 임시국회의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야권은 “정치재판관, 반헌법재판관”이라며 임명이 철회되지 않을 경우 국회 동의가 필요한 김이수 헌법재판소 소장 후보자 처리도 장담할 수 없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고, 여당은 “이념 장사 그만하라”며 맞서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8일 당 최고위 회의에서 “3·1운동 때 독립만세를 불렀으면 해방된 나라에서 공직 취임을 하지 못한다고 해야 되겠냐”며 “적폐를 청산해 달라고 촛불로 만든 새로운 대한민국에서 그런 분이야말로 모셔서 귀중하게 써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철(국민의당), 주호영(바른정당) 원내대표가 “이 후보자가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 지지 모임에 참여하고 2004년엔 민주노동당 지지 선언을 하는 등 이념적으로 편향됐다. 지명 철회가 없으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표결도 어렵다”고 밝힌 데 대한 비판이다. 이 후보자는 국회 동의 없이도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수 있지만 김 후보자는 국회 표결이 필수적이므로 두 사람을 ‘연계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장 공석 상태는 이날로 200일째를 맞았다.
야당은 공세 강도를 높이고 있다. 김동철 원내대표는 “이 후보자가 지명되면 헌재의 정치적 중립성이 무너지고 헌재 결정의 신뢰도 땅에 떨어질 것”이라고 했고, 주호영 원내대표는 “헌재의 사유화, ‘이유정 알박기’”라는 표현을 썼다. 두 당의 협공을 지켜보던 자유한국당도 화력을 보탰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이날 “이 이상 정파적일 수 없는 사람이 지명됐다”고 말했다.
야권에서 갑자기 ‘이유정 카드’를 부각시키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쏟아낸 각종 정책을 뒷받침할 법안·예산안 문제가 다뤄지는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기선잡기 성격이 짙다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당의 한 의원은 “문 대통령이 100일 동안 ‘이것 하겠다, 저것 하겠다’고 다 던져놨는데 이번 정기국회에서 재원 문제 등이 하나하나 논의되기 시작할 것”이라며 “여소야대에서 야권은 쉽게 (처리)해주지 않을 것이며 첫 관문이 김이수 표결 건”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에 대한 ‘코드 인사’ 비판이 누적된 만큼 이참에 “제대로 붙어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국민의당의 다른 의원은 “헌법재판관은 여야가 각자 정치적 성향에 따라 후보를 추천해왔어도 지금까지는 ‘정도껏’ 해왔는데 이 후보는 이를 넘어선다”며 “현재 법무부 법무실장 자리를 비롯해 부처 개별 인사에도 ‘코드 인사’ 논란이 계속 진행중인데 ‘이유정도 해줘놓고 누군 왜 안 되냐’는 논리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오는 21일 전체회의를 열고 청문회 실시계획서 채택을 논의할 예정이다. ‘캐스팅보터’인 국민의당은 이에 앞서 의원총회를 열어 이 후보자에 대한 당론과 ‘김이수 표결 연계’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당내에선 “헌법재판소에 개혁적 성향도 필요하고 여성인 점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어 갑론을박이 오갈 것으로 보인다.
출처: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8074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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