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무기 도입 열풍의 진정한 배후

 
김종대 2015. 04. 08
조회수 476 추천수 0
 

 김종대.jpg

 

 해외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 중 하나는 특정 무기체계에 대한 이상 열풍입니다. 마치 인기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듯이 어떤 신무기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이상한 일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나라가 항공모함을 제작하거나 핵무기를 배치한다면 민족주의 감정이 크게 고양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국가의 전략무기를 우리 손으로 개발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미국제 특정 무기 하나에 천문학적 돈을 갖다 바쳐도 아깝지 않은 열풍이 분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합니다. 
 1991년에 걸프전이 발생하자 CNN 방송에서는 연일 이라크에서 발사한 스커드 미사일을 다국적군의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요격하는 장면이 매일 보도되었습니다. 우리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최첨단 전쟁을 목격하고 우리 군뿐만 아니라 지식인 전체가 넋을 잃었습니다. 베트남전 악몽을 깨끗이 씻어내는 이 전쟁을 두고 앨빈 토플러는 “실리콘이 강철을 이겼다”며 감격에 찬 평론을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걸프전이 종전될 무렵에 조지 부시 대통령은 패트리어트를 생산하는 레이시언사를 방문하여 조립 라인에서 노동자들을 모아놓고 “이것이 바로 기술혁명의 승리”라며  연설을 하였습니다.
 이런 찬란한 위용에 넋을 잃은 한국에서는 “저 패트리어트를 사지 않으면 큰 일나겠구나”라며 당장 사와야 할 것 같은 이상열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그 여파가 심했던지 걸프전이 끝날 무렵에 노태우 대통령 지시로 청와대 김희상 국방비서관을 단장으로 구매 사절단이 직접 걸프전 현장으로 날아가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웬걸? 막상 가서 다국적군의 패트리어트 운용 실태를 보니 언론에 보도된 바와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패트리어트가 스커드 탄두를 정확히 파괴한 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이스라엘에는 상당수의 스커드 미사일이 떨어졌던 것입니다. 게다가 수백여발의 스커드를 갖고 있었던 사담 후세인은 한 번도 일제사격을 하지 않고 하루에 많아야 10여발을 정해진 시간에 쏘아 댔습니다. 사절단은 “알려진 성능과 다르다”며 패트리어트 구매를 유보시켰습니다. 훗날 미 회계감사원(GAO)는 “패트리어트의 실제 명중률은 2%에 불과하다”며 그 신화를 벗겨내는 보고서를 발간하였습니다. 학자들의 패트리어트에 대한 반론도 이어졌습니다. MIT 공대의 포스톨 교수는 “기술적으로 날아오는 미사일의 탄두를 요격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며 이를 “총알을 총알로 맞히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미지를 점령하는 선점효과

 

그러나 한 번 뇌리에 박힌 패트리어트에 대한 강렬한 인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이걸 심리학에서는 선점효과(preemption effect)라고 부릅니다. 걸프전 3년 후인 1994년에 북한의 불바다 위협으로 온 나라가 전쟁 위협에 휘말렸습니다. 이 때 미국의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은 한국의 안보 불안에 주목하며 패트리어트, 아파치 헬기와 같은 무기를 구매할 것을 종용하였습니다. 당장 사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분위기가 또 조성되었습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용케도 참았습니다. 그러다가 김대중 정부 와서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미사일 방어를 전역미사일방어(TMD)와 국가미사일방어(NMD)로 구분하고 이를 전면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을 결정하였습니다. 그러자 미국의 미사일방어 체계에 무언가 우리도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급증이 또 발발하여 패트리어트 구매에 대한 세 번째 열풍이 불었습니다. 2000년 6월에 국방부는 패트리어트 구매를 핵심으로 한 차기 대공유도무기 도입사업(SAM-X)를 추진합니다. 그러나 도입 시기는 멀찌감치 뒤로 미루었습니다. 그러다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에 와서야 중고 패트리어트 PAC-Ⅱ가 독일로부터 도입되는데, 막상 이 시점이 되자 패트리어트의 인기는 시들해져 버렸습니다. 이제는 패트리어트의 성능의 한계가 알려질 만큼 알려진데다가 벌서 구형무기가 된 패트리어트가 예전과 같은 신선한 충격도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미사일방어 이야기는 거의 사라졌다가 2006년에 북한이 핵 실험을 단행한 데 이어 이명박 정부시기에 두 차례의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이라는 충격이 몰려 왔습니다. 그러자 우리 사회에는 때 아닌 스텔스 전투기 열풍이 불기 시작하였습니다. F-35 스텔스 전투기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합동전투기사업(JSF)에 투자국으로 참여해야 하는데 한국은 공동 투자국 11개국에 들어가 있지 않았습니다.


 무기 신드롬과 군산복합체

 

 막상 F-35 개발이 지지부진하여 개발기간이 연장되고 가격이 폭등한 결과 2011년경에는 공동투자국 11개국이 물량을 축소하거나 사업 자체를 취소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겪고 난 이후 집단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북한의 핵 미사일 기지를 확실하게 제압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 스텔스 전투기 열풍이 불기 시작합니다. 마치 이 전투기를 사지 않으면 한반도가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온 언론과 아마추어 군사 매니아들이 결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전투기를 반대라도 하면 마치 불순분자처럼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공군 역대 참모총장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당장 이 전투기를 사라고 다그쳤습니다. 그래서 2013년에 차기전투기 기종으로 아직 개발도 되지 않은 F-35가 선정됩니다. 
 그런데 개발도 되지 않은 이 고가의 전투기에 대해 방위사업청은 사업 중간에 물량을 축소하는 것으로 계획을 조정하는 무리수까지 두어가면서 차기전투기로 F-35를 선정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존하지 않는 전투기여서 계약을 할 수 없는 겁니다. 아직도 우리는 이 전투기가 언제 나올지 기다리고만 있습니다.    
 그러더니 작년에 갑자기 사드 미사일 요격체계 도입 열풍이 다시 불기 시작합니다. 미국도 3개 포대 밖에 갖고 있지 않은 개발 중인 무기에 불과한 사드는 일본, 이스라엘, 나토 국가 어디에서도 구매나 배치 의사를 표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만 이 요격미사일 체계에 대한 열풍이 불더니 이제는 여당 대표, 군 예비역 장성 할 것 없이 전부 나서서 사드를 사지 않으면 큰 일 날 것 같은 소란을 피웁니다. 정작 박근혜 정부는 중국을 의식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 사드 미사일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도입이나 배치를 한다, 안 한다를 말할 수도 없는 형편인데 말입니다. 도대체 한국 사회, 왜 이러는 걸까요? 강대국에 둘러싸여 일단 강해져야 한다는 조급성, 첨단 고성능 무기를 배치하면 무언가 위로를 받는 느낌, 신기한 무기체계가 선사하는 신선한 충격, 이런 것들이 배합되어 한국 사회는 온통 무기도입 열풍입니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요? 참 희한한 나라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박근혜보다 조중동이 더 나쁘다

[손석춘 칼럼] 세월호 어머니의 절규, "당신, 사람인가? 짐승인가?"
 
입력 : 2015-04-07  09:29:38   노출 : 2015.04.08  09:41:47
손석춘 언론인 | 2020gil@hanmail.net  
 

“사람인가, 짐승인가?” 

생때같은 10대 아들 성호를 세월호 참사로 잃은 어머니 정혜숙 씨가 던진 물음이다. 삭발한 어머니는 “사람이라면 눈물을 닦아 달라, 숨을 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절규했다. 그 물음에 가장 먼저 답할 사람은 누구인가. 특별법을 마치 선심 쓰듯 만들어놓고, 그 누더기 법조차 시행령을 통해 무력화에 나선 세 사람, 대통령 박근혜와 국무총리 이완구,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이다. 진상 조사 주도권을 정부가 쥐고 조사범위도 정부 발표자료 분석에 한정하는 시행령에 유족의 반발은 당연한 권리다.  

최근 흐름을 톺아보면 저들 또한 반발을 예상한 듯싶다. 시행령 발표 뒤 정부는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수억 원의 배·보상금을 지급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대체 무슨 깜냥인가? 돈으로 여론전을 펼 셈인가? 유족들 삭발에 대통령이 ‘세월호 인양 뜻’만 밝혀 어물쩍 넘어가겠다면 그 또한 여론전의 연장이다. 문제의 핵심은 고약한 시행령 아닌가.  

3인에 이어 ‘사람인가 짐승인가’에 답해야 할 사람이 있다. 바로 기자들이다. 권력과 국민 사이엔 언론이 있다. 가상해보자. 정부 발표를 언론이 무시하면, 권력은 그것을 국민 다수에게 홍보할 길이 없다. 그 구실을 언론이 한다. 바로 그렇기에 언론은 정부 발표를 전하되 비판적 시각을 지녀야 옳다. 기자의 ㄱㄴㄷ이다.

그런데 어떤가. 조선일보는 발표 다음날 1면에 “세월호 배‧보상 학생 1인당 8억2000만원” 제하의 기사에서 “학생 250명에게 1인당 평균 8억2000만원, 교사 11명에게 평균 11억4000만원이 지급된다”고 보도했다. 시행령의 문제점에 소극적인 보도와 사뭇 대조적이다. 1면에 이어  3면 전면에 걸쳐 ‘돈’을 편집했다. 반면, 경향신문은 ‘세월호를 ‘돈’으로 덮으려는 정부’라는 표제로 1면 머리를 편집했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저널리즘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증언한다. 경향은 진보적이고 조선은 보수적이어서 그런가? 전혀 아니다. 저널리즘 기본의 문제, 아니 그 이전에 사람으로서 품격의 문제다.

오해라면 답하기 바란다. 정부의 느닷없는 배·보상금 발표를 그동안의 관련보도와 달리 크게 부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시행령에 세월호 유족의 반발을 잠재우려는 의도 아닌 무엇이 있는가? 하여, 조선일보를 비롯해 정부가 발표한 ‘돈’을 아무런 비판 없이 용춤추며 부각한 신문과 방송의 기자들에게 성호 어머니의 질문을 던진다. “사람인가, 짐승인가.”  

돈이면 다 된다는 ‘돈 생각’ 하는 자들이 한국 사회에 무장 늘어나는 살풍경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럼에도 앞서 지목한 3인과 기자들에게 솔직히 묻고 싶다. 혹 유족들이 그 정도 돈을 받았으면 그만 됐다고 판단하는가. 

먼저 3인에게 정중히 묻는다. 당신에게 10억 줄 테니 아들이나 딸, 또는 동생이 죽어도 ‘가만히 있어라’ 한다면 어쩔 셈인가? 물론, 당신들은 어림없을 터다. 당신들의 재산은 이미 곳간을 채우고 넘치지 않은가. 대통령은 해마다 수억 원을 불리고 있지 않은가. 혹 안산 사람들은 재산이 없기에 그 정도면 숙지근해지리라 생각했는가?

권력 추구가 아니라 권력 비판이 생명인 기자들에게 묻고 싶다. 자신의 기사가 그렇게 편집되어 보도되어도 괜찮은가? 3개 신문과 3개 방송에서 주는 연봉 때문에 할 말을 못하는가? 그렇다면 어떤가, 조선일보 사장 방상훈이 지난해 주주배당금으로 38억 원을 받은 사실은. 당신이 현장에서 ‘기레기’ 욕을 먹어가며 뛰고 있던 2014년 내내 그는 무엇을 했을까. 어떤 일을 했기에 배당금만으로 월 3억 이상을 챙겼을까. 세월호 유족을 돈으로 능욕한 조선일보 기자들에게 정말이지 묻고 싶다.

기실 적잖은 국민이 세월호를 ‘단순 교통사고’로 보고 있다. 그만큼 받으면 이제 됐다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짜장 소수일까? 아니다. 조중동이 가장 많이 팔리는 곳, 종편방송을 즐겨보는 사람들 가운데 다수가 그렇게 생각한다. 바로 그래서다. 어쩌면 3인보다 더 나쁜 ‘사람’은 나팔수들이다.  

   

▲ 손석춘 언론인

 

 

‘희생자들의 형제자매’가 연 기자회견에서 동생을 잃은 언니 남서현은 “그동안 우리 형제자매들은 부모님께 걱정을 끼칠 것 같아 묵묵히 있었지만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 지금 이런 식이라면 이 나라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울먹였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신문의 날’ 새벽이다. 한국 언론이 그 창간일을 신문의 날로 기념하는 독립신문은 의병을 ‘비도’로 쓴 원죄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늘의 범죄가 모면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세월호 유족을 더는 능욕하지 말라. 잘못을 깨달았다면, 저 오만한 3인에 대해 비판을 아끼지 말라. 그것은 더도 덜도 아닌 기자의 기본책무다. 물론, 짐승이 아니라면 그렇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죽여버릴 수 있나요"

 
기사 관련 사진
▲  베트남전 '민간학살' 피해자 언론 인터뷰가 열리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에서 고엽제전우회 회원들이 '월남전 참전 용사들이 모욕당했다'고 주장하며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항의 집회하는 고엽제 전우회 베트남전 '민간학살' 피해자 언론 인터뷰가 열리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에서 고엽제전우회 회원들이 '월남전 참전 용사들이 모욕당했다'고 주장하며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참전용사 모욕하지 마라" "민간인 학살 운운, 거짓말 하지 마라"

7일 오후 서울 시내 모처. 커튼을 쳐둔 창밖으로 날선 구호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방한 중인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 응우옌 떤 런(남·64)씨와 응우옌 티 탄(여·57)씨가 기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초 이날 오후 7시에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베트남전 관련 사진전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 리셉션 행사가 베트남전 관련단체의 압력으로 취소된 터였다. 

"내가 있던 자리에서만 65명이 한국군에게 희생당해"
 
기사 관련 사진
▲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피해자인 응우옌 떤 런(NGUYEN TAN LAN)씨와 응우옌 티 탄(NGUYEN THI THANH)씨가 언론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베트남전 당시 한국 군인들에게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두 사람에게 면전에서 자신들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는 참전 군인들의 모습은 어떻게 비쳤을까. 

"여러분들에게 한국 군인들이 우리 베트남에 있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제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고 싶습니다. 참전 군인들이 저를 보시기가 좀 껄끄러울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좀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말문을 연 사람은 응우옌 떤 런씨. 그는 15살이던 1966년 2월 13일을 잊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가족들과 이웃사람들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고 총을 쏘아대던 군인들 어깨에 붙어있던 호랑이 마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군인들은 우리 가족을 포함한 25가구의 마을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고개를 숙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한 5분 정도 지난 후, 어떤 군인이 크게 외치는 소리를 들었고 사방에서 총알이 날아오고 수류탄이 떨어졌어요. 사방에 포연이 자욱한 가운데 주변에는 팔이 잘린 사람, 하반신이 잘린 사람, 창자가 흘러나오고 뇌수가 흘러나온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어요. 부모들은 자식의 이름을 부르고, 자식은 부모를 찾는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응우엔 떤 런씨는 이날 어머니와 13살이던 여동생을 잃었다. 

"제가 있던 자리에서만 65명이 한국군에게 희생당했습니다. 바로 제가 목격자이고 생존자입니다. 이 자리에서 저는 제 심장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만 말을 하는 겁니다."

"총 쏘고, 불 지르고, 칼로 찌르기까지..."
 
기사 관련 사진
▲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생존자 응우옌 티 탄(NGUYEN THI THANH)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응우옌 티 탄씨 가족에게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것은 1968년 2월 12일이었다. 

"당시 저는 8살이었지만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국군들이 입었던 얼룩무늬 군복을 기억합니다. 몇 명의 군인들이 제가 숨어 있던 방공호에 폭탄을 던지는 시늉을 하면서 나오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같이 있던 이모가 나가라고 해서 방공호를 나갔는데, 한국 군인들이 총을 쐈습니다. 

오빠는 덤불숲에 엉덩이가 날아간 채 쓰러져 있었고, 언니는 대나무 숲에서 죽어 있었습니다. 이모는 집에 불을 지르려던 군인을 말리려다 칼에 찔려 죽었습니다. 다섯 살이었던 제 동생은 숨을 쉴 때마다 쿨럭 쿨럭 피가 흘러나왔지만, 그때 전 너무 어려서 동생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응우옌 티 탄씨 마을에서는 모두 74명이 목숨을 잃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학살 당시 장에 갔던 어머니도 시신무더기 속에서 발견됐다. 그렇게 응우옌 티 탄씨는 고아가 됐다. 한쪽 엉덩이를 잃고 장애인이 된 오빠와도 헤어진 응우옌 티 탄씨는 다낭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퇴원한 뒤에는 작은 아버지 아이들을 돌보며 10년을 살았다고 했다. 8살에 고향을 떠난 그는 18살이 돼서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죽여버릴 수가 있나요? 그때는 사는 게 너무너무 고통스러워서 순간 순간 죽고 싶었어요. 정말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마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저도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으며 공부도 할 수 있었을 텐데요."

끝내 응우옌 티 탄씨는 울음을 터트렸다.

"위로 원했는데, 한국와서 이런 일 겪을 줄은..."
 
기사 관련 사진
▲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생존자 응우옌 티 탄(NGUYEN THI THANH)씨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제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한국에 와서는 좋은 분들을 만나서 위로를 받고 싶었을 뿐입니다. 참전했던 군인 분들도 만나고 싶었어요. 그분들로부터도 위로를 받고 싶었는데, 한국까지 와서 이런 일을 겪게 될지는 몰랐습니다."

이날 베트남 참전단체들은 응우엔 떤 런씨 본인과 아버지, 형이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베트콩) 활동을 했다는 플래카드를 걸어놨다. 정당한 전투행위였다는 것을 강조하는 듯 보였다. 이런 주장에 대해 응우엔 떤 런씨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학살이 일어났을 때 저는 겨우 15살이었고,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집에 있었을 뿐입니다. 설사 백보 양보해서 참전군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쳐도 다른 죽음들은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 나는 그렇다치고 응우옌 티 탄씨가 당한 일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요? 다 여자들과 아이들뿐이었는데…."

이날 통역을 맡은 평화운동가 구수정씨는 "베트남이 통일된 후 과거 베트콩 활동을 하다 죽거나 다친 사람들에 대한 보상은 국가차원에서 철저히 이뤄졌다"라면서 "베트남 정부로부터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분들이 민간인이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날이 되면 우리는 '따이한' 제사를 지냅니다"
 
기사 관련 사진
▲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피해자인 응우옌 떤 런(NGUYEN TAN LAN, 오른쪽)씨와 응우옌 티 탄(NGUYEN THI THANH)씨가 언론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응우옌 떤 런씨는 방한 첫날 나눔의 집에서 만났던 위안부 할머니들에게서 같은 전쟁피해자로서 동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분들도 저희들과 똑같은 피해자였습니다. 그분들은 일본군에 의한 피해자들이고 저희는 한국군에 의한 피해자라는 점, 한 가지만 달랐습니다."

어머니와 형제들의 시신을 채 수습하지 못했던 것이 평생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다는 응우옌 티 탄씨는 가족묘를 만드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그날이 되면 우리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제사를 지냅니다. 그 제사를 어머니 제사, 동생 제사, 언니 제사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제사를 따이한(大韓) 제사라고 부릅니다."

살아남은 피해자들이 학살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는데도, 한사코 이를 부인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베트남전 관련 단체들의 태도를 보면서 베트남전이 끝난 지 40년이 흘렀지만 아직 기억 속의 전쟁은 끝나지 않은 듯했다.

응우옌 떤 런씨와 응우옌 티 탄씨의 조용한 흐느낌 소리 위로 스피커에서 나오는 군가 소리가 들려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충암고 같은 ‘사학비리’ 학교가 또 있을까요?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4/08 10:53
  • 수정일
    2015/04/08 10:5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사학재단과 학교의 부실운영 사실을 감추고 있는 충암학원
 
임병도 | 2015-04-08 08:42:0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급식비 미납 학생에게 막말했다는 논란을 빚고 있는 충암고 교장과 교감이 각각 학교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습니다. ‘충암고 급식에 관한 교감 지도 내용’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충암고 교감은 급식비 지도를 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충암고 교감은 급식비 미납 지도가 언론 보도처럼 막말은 없었고 급식비 미납이나 급식실 운영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충암고 교감의 변명은 문제의 원인이 학생이 아닌 충암학원이라는 사학재단과 학교의 부실운영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감추고 있습니다.


‘사학비리 백화점 충암학원’
 
충암고등학교를 운영하는 충암학원은 1965년에 건물 하나로 학교 설립인가를 받았는데, 현재는 1천억 원대의 재산을 가진 거대 사학재단으로 변신했습니다.1

▲건물 곳곳에 금이 가고 오래된 충암고등학교. 안전점검에서 D등급을 받았다. ⓒ 경향신문

충암학원이 건물 하나에서 1천억원의 자산을 보유할 수 있던 배경에는 학교 돈을 빼돌려 부동산과 주식 투자 등으로 재산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학교와 학생을 위해야 하는 사학재단이 학교와 학생을 통해 돈만 벌고, 학교에는 투자하지 않으니 학교 건물은 낡고, 학생들의 교육 여건은 계속 엉망이 됐습니다.  
 
2011년 서울시교육청은 충암학원을 조사했습니다. 당시 무려 34건의 비리 혐의가 적발돼 ‘사학비리 백화점’이라 불릴 정도였습니다.2

충암학원의 이사장은 2005년 뇌물과 병역비리로 쫓겨났습니다. 이사장을 대신해 부인과 아들, 딸이 번갈아 맡았습니다. 며느리와 조카는 법에도 없는 유치원 실장이나 교사로 근무하며 월급을 받았습니다. 이사장의 처남은 명목상 행정실장으로 근무했지만, 실제 업무는 계약직 직원이 모두 도맡아서 했습니다.
 
이사장의 차량 운전사 월급과 사학재단의 난방유 등의 지원은 법인 재산이 아닌 학교의 돈을 빼돌려 지급됐습니다. 매년 학교 돈으로 설립자의 묘소를 참배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하지도 않은 학교건물 창호교체 공사를 했다고 속여 8천만 원을 횡령하고, 공사비를 부풀리는 방법으로 학교 돈을 빼돌렸습니다. 급식실 운영이나 급식기구 구매에서도 각종 비리와 문제점이 발견됐습니다.

신규교원 채용 과정의 평가자료가 무단으로 폐기됐고, 학교 운영에 관한 회의록은 거짓으로 작성됐습니다.

▲충암고등학교와 충암학원의 각종 비리들 ⓒ 오마이뉴스

서울시교육청은 2011년 충암학원 이사장과 이사, 감사 등 이사회 전원에 대한 취임승인 취소 의견을 냈고, 중, 고등학교 전직 교장 등 10명과 교직원 29명은 중징계 조치를 받았습니다.

야구명문으로 유명한 ‘충암고등학교’였지만 사학비리와 인권침해의 공간이었습니다.3 학교를 졸업한 동문은 결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실과 비리의 온상이었습니다. 이번 사건이 터지자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가 많았습니다.

학교 급식비 미납으로 학교 운영이 어렵다고 변명하지만, 실제 충암고등학교의 운영은 급식비가 아닌 사학재단의 비리와 부실 운영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육성회비를 못 내면 혼났던 악몽이 떠올라’
 
30대가 넘는 사람들은 황토색 육성회비 봉투를 기억할 것입니다. 70~80년대 육성회비 봉투는 당시 국민학교를 다니는 사람 중에는 이 봉투가 상처가 됐던 사람도 있습니다.

육성회비를 내야 하는 시기가 오면 아이들은 고민에 빠집니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에 육성회비 봉투를 부모에게 내밀어 봤자 ‘내일은 꼭 줄게’라는 말밖에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육성회비를 가져가지 못한 날이면 두렵고 떨렸습니다. ‘육성회비 안 낸 사람 다 나와’라는 말이 떨어지면, 몇 명 아이들은 쭈뼛거리며 교탁으로 나갔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있는 자리에서 선생은 ‘왜 육성회비를 안 내는데, 너희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든줄 알아?’라며 면박을 줬습니다.

‘오늘 청소는 육성회비 안 낸 애들이 한다’면서 육성회비를 내지 못했으니 머슴처럼 일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육성회비를 낼 때까지 계속 주번4을 시킬 때도 있었습니다.
 
충암고 교감이 급식비를 내지 않은 학생을 대상을 급식비 지도를 했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수업 시간에 교감이 들어와 ‘육성회비 내지 않은 놈들은 모두 가방 싸서 집에 가’라는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대한민국 범죄자의 대명사로 불리는 ‘신창원’5은 자신이 범죄자가 됐던 이유가 선생님 때문이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지금 나를 잡으려고 군대까지 동원하고 엄청난 돈을 쓰는데 나같은 놈이 태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너 착한 놈이다.'하고 머리 한번만 쓸어 주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5학년때 선생님이 '이 쌍놈의 새끼야, 돈  안가져 왔는데 뭐 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하고 소리 쳤는데 그 때부터 마음 속에 악마가 생겼다.” — 《신창원 907일의 고백》 중

학교는 영리를 목적으로 세운 기업이 아닙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학교 중에는 말로는 교육을 내세우지만, 안으로는 가족들의 부와 권력을 채우는 사학재단이 지배하고 있습니다.6

충암고등학교 급식비 사건을 보면서, 지금 우리가 싸울 대상은 무상급식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교육을 망가뜨리는 사학재단과 스승이 될 수 없는 이 땅의 거짓 선생들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1. [통제 받지 않는 교육권력 ‘사학’]안전점검 ‘D등급’ 받은 학교 지원 받아 횡령, 시설 보수 안 해.경향신문 2014년 8월 25일.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8252154345&code=940401
2. 서울시교육청. 학교법인 충암학원 및 충암중·고등학교 특정감사 결과http://www.sen.go.kr/web/services/bbs/bbsView.action?bbsBean.bbsCd=77&bbsBean.bbsSeq=33 
3. 야구 명문 충암고? 창피한 줄 알아라 사학비리와 인권침해 ‘충암학원’, 비리 역사 훑어보니. 오마이뉴스 2011년 6월 23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86204 
4. 70~80년대 주번은 석탄을 가져 오거나 폐품을 정리라는 등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일을 했었다.
5. 어릴 적부터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신창원은 절도죄로 소년원에 들어갔다. 계속된 절도와 강도행각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수감 중이던 신창원은 청송교도소에서 탈옥했고, 탈옥 2년 6개월 만에 검거됐다. 이후 교도소에서 중졸,고졸 검정고시를 우수한 성적을 합격했다  
6. 2011년 서울시교육청관할 사학재단에서 비리 문제로 이사승인이 취소된 곳은 충암학원(충암초·중·고), 상록학원(양천고), 진명학원(진명여고), 숭실학원(숭실중·고), 청숙학원(서울외고)으로 5개 재단 8개교에 이른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782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일, '독도는 일본땅' 외교청서 발표..이틀 연속 '도발'

일, '독도는 일본땅' 외교청서 발표..이틀 연속 '도발'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4.07  14:11:36
트위터 페이스북
   
▲ 2015년도 일본 외교청서 목차. [출처-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아베 신조가 이끄는 일본 내각이 7일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내용을 담은 외교청서를 발표했다. 전날 문부성이 '독도 영유권 주장'을 한층 강화한 중학교 교과서 검정결과를 발표한 데 이어 이틀 연속 독도 도발을 감행한 것이다.

7일 일본 외무성은 '외교청서 2015'를 각의에 보고했다고 밝히고, 요지와 목차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독도와 관련해서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봐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한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표현했다. 오는 8월에는 9년 만에 영어판을 발간한다고 밝혔다.

내각관방 산하 영토.주권대책기획조정실은 이날 시마네현이 가진 공문서와 개인 소장 자료 등 1천여 점의 독도 관련 자료 등을 담은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올려 도발 수위를 한층 끌어올렸다.

청서는 "한국은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이고 "2015 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에 해당한다"며 "계속 다양한 수준에서 의사 소통을 쌓아 대국적 관점에서 미래 지향적으로 중층적인 한일관계를 쌍방의 노력으로 구축하기 위해 꾸준히 대처해나간다"고 명시했다. 지난해 청서에 있던 "자유 민주주의, 기본적 인권 등 기본적인 가치와 이익을 공유한다"는 표현을 삭제해, 냉각된 한일관계를 반영했다.

특히, 일본군'위안부' 관련 장을 별도로 배치해 1965년 한일협정 등으로 법적으로 해결된 문제라는 일본의 일방적 입장, '아시아여성기금' 등 일본 측의 노력, 지난해 고노담화 검증과 <아사히신문> 오보 등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일본의 입장을 비교적 소상하게 서술했다.

청서는 전후 70년 동안 일본이 '평화국가로의 행보'를 해왔다며, "일본은 국제협조주의에 기반한 '적극적 평화주의'의 입장에서 각국과 협력하여 세계 평화와 안정 및 번영에 지금 이상으로 적극 공헌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속적인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지역 및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에 심각한 위협"이라거나 "중국의 불투명한 군사력 강화"와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와 남중국해 등에서의 "일방적인 현상변경 시도"를 경계하는 표현도 담았다. 

외교부 당국자들은 아베 내각의 잇따른 독도 도발에 곤혹스러움을 숨기지 않고 있다. 다만, 지난달 21일 제7차 한중일 외교장관회의 이후 관계 복원 흐름, 이달 중 5년 만에 한일안보협의회를 재개하기로 한 방침 등을 감안해 대응 수위는 조절하고 있다. 

전날 조태용 외교부 1차관이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교과서 검정결과에 항의했던 것과는 달리, 이날에는 이상덕 동북아국장이 가나스기 겐지 주한 일본 총괄공사를 불러 항의했다. "예년 수준의 표현이 담겼다"는 게 '절제된 대응'의 근거이나, "미온적이고 관성적 대응"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우리 정부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어제 일본 정부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축소․누락 기술한 중학교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키는 도발을 감행한데 이어, 오늘 독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등에 관해 부당한 주장을 담은 외교청서를 또 다시 각의 결정하는 역사퇴행적 행보를 반복하였다"며 "일본 정부가 아무리 억지주장을 되풀이하여도 우리 고유의 영토인 독도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한반도 침탈의 첫 번째 희생물이었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분들이 강제로 끌려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상처를 입었다는 역사적 진실은 지울 수도 수정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노 대변인은 "일본 정부는 메르켈 총리가 ‘독일은 과거의 잔혹행위를 전달하고 기억해야 할 영원한 책무가 있다’고 발언한 것을 가슴에 되새기면서, 전후 독일이 왜 국제사회로부터 존경받고 있는지 그 이유를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이런 식의 항의만 반복하는 것이 과연 효과적인 대응인가'는 지적에 대해, 노 대변인은 "성명을 발표하고, 주한 일본대사 또는 관계자를 초치해서 항의와 함께 정부의 엄중한 입장을 전달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도 "이외의 조치 필요성 여부 등에 대해서 현재 검토 중에 있다"고 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윤동주 기념사업 추진해 민족정신 이어가겠다"


<포토뉴스> '용정 윤동주연구회', 윤동주 묘역서 청명절 추모행사
용정=조천현  |  tongil@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4.06  15:02:32
트위터 페이스북

 

   
▲ '용정 윤동주연구회'는 4일 중국 용정시 동산 윤동주 시인의 묘지에서 추모제를 개최했다. [사진 - 조천현]
지난 4월 4일 오전 10시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동산 윤동주 묘지에서 ‘용정 윤동주연구회’ 주최로 용정시 문인 등 50여명이 참가해 추모제가 열렸다.

 

청명절을 맞아 조상의 묘를 참배하고 제사를 지내는 이날 날씨는 따뜻했다. 
초목이 소생하는 동산 공동묘지 주변에 성묘하러 나온 이 지역 주민들도 함께 참가했다.

윤동주 묘소를 찾은 용정시 문인들은 윤동주 시인의 넋을 기르며 시낭송도 진행했다.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세월이 가도 변치 않는 시인의 주옥같은 시가 동산에 메아리쳐 울려 퍼졌다.

이곳에 함께 잠든 시인의 고종사촌이자 친구인 송몽규의 묘지도 가까이 있었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명동촌에서 태어나 함께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의 감옥에 갇혀 같은 해 세상을 떠났다. 뒤늦게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뛰어든 늦봄 문익환 목사도 같은 마을 동무다.

 

   
▲ 용정 문인들은 윤동주 시인의 고종사촌이자 친구인 독립운동가 송몽규 선생 묘역도 참배했다. [사진 - 조천현]
지난해 9월27일 윤동주(尹東柱·1917~1945)의 고향인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에서 그의 작품세계와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용정 윤동주연구회가 설립됐다.

 

용정시가 고향인 중국 조선족 문인들을 중심으로 용정 윤동주연구회를 설립한 김혁(50, 소설가) 회장은 “연변에 산재한 일회성 행사위주의 윤동주 관련사업의 아쉬움을 호소”하며 “매년 윤동주의 고향에서 생일과 사망일에 맞춰 학술대회 등 기념행사를 꾸준히 열고, 윤동주 관련 각종 문화사업을 추진해 민족정신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윤동주는 일본 도시샤대에서 유학 중이던 1943년 7월 14일 일본 경찰에 체포됐으며 다음해 3월 31일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후쿠오카 교도소에서 1945년 2월 16일 세상을 떠났다.

 

   
▲ 시인 윤동주 묘지.  [사진 - 조천현]
 
   
▲ 윤동주 시인의 얼굴이 담긴 현수막이 내걸렸다. [사진 - 조천현]
 
   
▲ 용정지역 문인들이 헌화하고 있다. [사진 - 조천현]
 
   
▲ 김영주 시인이 윤동주 시인의 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 조천현]
 
   
▲ 추모제를 마친 용정의 문인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 조천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세월호 인양 ‘적극검토’ 뒤에 숨어있는 발톱들

 
 
시행령 공포되면 특위는 ‘진상조사기구’ 아닌 ‘정부기구’
 
육근성 | 2015-04-06 18:00:0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세월호 유족들이 특별법 정부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며 상복을 입고 삭발까지 했다. 그리곤 희생자의 영정을 안고 울부짖었다. 정부가 특별법 취지에 반하는 시행령을 만들어 진상규명을 막아설 뿐 아니라, 유족들의 요구를 묵살한 채 선체를 인양하지 않는 쪽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통곡한다.


입법예고 끝나는 날 ‘선체 인양’ 언급

지난 27일 해수부가 특별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하자 유족들은 분개했고, 세월호 특위위원장도 기자회견을 자청해 시행령 폐지를 주장하며 박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이후 정부에 대한 비판여론이 조성됐다. 그러자 정부는 여론 확산을 막기 위해 ‘희생자들에 대한 배상·보상 계획’을 발표한다. ‘목숨값을 후하게 받으면서도 저런다’는 식의 맞불 여론을 일으켜 유족들의 반발을 희석하기 위해서였다.

유족들의 반발과 정부 비난 여론이 심상치 않아서 일까. 박 대통령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정부 시행령 입법예고가 끝나는 날(6일) 박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발언은 세월호 인양과 관련된 것이었다. 유족들의 두 가지 요구(시행령 폐지와 조속한 인양) 중 하나에만 답을 내놓은 셈이다.

‘답 같지 않은 답’이다. “선체 인양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2단계 조건을 달았다. “인양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결론이 나면 실종자 가족과 전문가들의 의견과 여론을 수렴해 선체 인양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적극검토’ 뒤에 숨어 있는 ‘발톱들’

‘기술검토’와 ‘여론수렴’ 등 두 가지 조건 모두 충족돼야 선체 인양을 하겠다는 얘기다. ‘선체 인양’이라는 ‘고지’에 도달하려면 ‘두 관문’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니 무슨 테스트 같다. ‘유족들의 뜻에 따르겠다’고 한 약속을 또 어기다니. 약속 깨는 소리로 요란한 곳이 청와대다.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됐는데 이제 서야 기술 검토와 여론 수렴, 이런 얘기가 나온다. 알아서 하는 게 없다. 유족들이 거리로 나와 절규하며 단식 투쟁을 하고,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어야 마지못해 뭔가 하는 척 했을 뿐이다. 반면, 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다른 곳에 전가하는 데는 손발 놀림이 전광석화였다.

말만 ‘적극 검토’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새누리당이나 해수부의 입장과 똑같다. ‘천문학적 비용이 들고 조류가 빨라 인양에 기술적인 어려움이 따르는데 그래도 인양을 하겠다면 국민적 합의가 우선’이라는 게 새누리당과 해수부의 주장이다. 뭔가 트집 잡을 것이 있으면 이를 핑계로 인양을 하지 않으려는 수작이다.


시행령 공포되면 특위는 ‘진상조사기구’ 아닌 ‘정부기구’

정부 시행령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다. 정부안을 폐지하고 특위가 제출한 안을 공포하라는 유족들의 외침에 묵묵부답이다. 대신 정부시행령 입법예고가 끝나는 날에 세월호 인양 얘기를 불쑥 꺼냈다.

입법예고가 끝나면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처 대통령이 서명하게 된다. 심사와 심의 과정이 있다고 하나 입법예고를 거친 시행령안은 그대로 발효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 대통령의 ‘결단’이 없다면 해수부가 만든 시행령은 원안 그대로 공포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될 경우, 세월호 특위는 ‘진상조사기관’이 아닌 ‘정부기구’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진상규명과 조사활동이 원천 봉쇄당할 가능성이 높고, 정부와 여당이 특위 실무권한을 장악해 조사권이 민간에서 정부로 넘어갈 위험성이 다분하다. 해수부와 국민안전처(해경) 등 ‘가해자 그룹’에 속하는 조사대상이 조사의 주체가 되는 구도이어서 특위활동은 정부여당이 그려놓은 밑그림에 색칠만 하는 것이 고작일 공산이 매우 크다.


4.29재보선 의식한 정치적 발언

입법예고가 끝나는 날 세월호 인양 문제를 거론한 박 대통령의 저의가 뭘까. 두 가지 노림수가 읽힌다. 세월호 유족들의 분노에 국민 여론까지 합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진화 차원에서 나온 발언일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이 유족들의 외침에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유족들의 분노를 다소 누그러뜨리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시행령 밀어붙이기’에 대한 물타기 발언일 수도 있다. 입법예고 마지막 날이라서 유족들의 분노가 절정에 달한 상태다. 이때 유족들의 또 다른 요구사항인 ‘선체 인양’에 대해 일단 ‘파란 불’로 이해될 수 있는 제스처를 보임으로써 ‘시행령 반발’을 완화시켜 보겠다는 속내가 아닐까.

4.29재보선을 의식한 포석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 1주기와 맞물려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론이 확산될 경우 이것이 선거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적극검토’ 발언에 진정성은 없어 보인다. 정말이라면 ‘2가지 관문 통과’를 조건으로 내걸지 않았을 것이다.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고 반대 측을 설득해서 인양을 적극 검토하겠다’ 이 정도 발언이 나왔어야 했다.


숨어 있는 ‘발톱’ 또 있어

‘적극적 검토’ 뒤엔 ‘2가지 조건’이라는 발톱이 숨겨져 있다. 숨겨진 발톱은 또 있다. “아픈 가슴을 안고 사신 실종자 가족과 유족 여러분께 깊은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하면서도 유족들이 간절히 원하는 ‘정부 시행령 폐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그대로 밀어붙이겠다는 얘기다.

희생자 가족들의 간절한 바람은 진상규명이다. 그런데 실종자 가족과 유족을 향해 "진정한 애도"를 얘기하면서도 진상규명에 대해서는 일절 말이 없다. 국민의 권리이기도 한 ‘진상규명’을 외면하는데 어찌 그것이 ‘진정한 애도’일 수 있겠나. 가증스러울 따름이다.

진상규명을 막는 시행령을 만들면서 애도라니. 이제 유족과 실종자 가족 뿐 아니라 상식 있는 국민이면 다 안다. 박 대통령의 ‘애도’ 뒤에 숨어 있는 발톱이 어떤 것인지를.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2&table=c_aujourdhui&uid=518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박종철 수사검사’ 박상옥 청문회, 법무부 비협조로 ‘반쪽’ 되나

 

‘수사·공판기록’ 제출 거부하다 하루전 ‘제한적 열람’만…야당 “청문회 방해”

최명규 기자  최종업데이트 2015-04-06 16:55:52 이 기사는 현재 건 공유됐습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전국대학민주동문협의회가 3월 2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수사했던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임명을 반대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전국대학민주동문협의회가 3월 2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수사했던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임명을 반대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우여곡절 끝에 7일 열리는 '박종철 수사검사'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반쪽' 청문회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법무부가 핵심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 검사였던 박 후보자는 사건 축소·은폐에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다.

6일 박상옥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소속 야당 위원들에 따르면 법무부는 핵심 자료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공판 기록 제출을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해 오다가 청문회 하루 전날인 이날 오전에서야 '제한적 열람'이 가능하도록 조치하겠다고 통보해 왔다. 그것도 국회가 아닌 기록을 보관 중인 서울중앙지검에서 제한된 청문위원만 열람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특위 야당 간사인 새정치민주연합 전해철 의원 등은 기자회견에서 "모든 수사·공판 기록은 6천여 페이지가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상식적으로 청문위원들이 하루 전에 서울중앙지검을 방문해 이 많은 자료를 열람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충실한 자료 분석을 통해 후보자의 은폐·부실 수사 의혹을 규명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어렵사리 재개된 청문 절차를 정부가 나서서 방해하는 것이자, 명백히 국회의 대법관 후보 검증 권한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약 두 달 간 청문회 개최를 거부해왔던 야당이 입장을 선회하면서 내걸었던 전제 조건은 충분한 자료 제공에 의한 진상 규명이었다. 그러나 법무부가 자료 제출에 비협조로 나오면서 정상적인 청문회 진행은 불가능해졌다는 것이 야당 위원들의 판단이다. 7일 청문회가 사실상 '반쪽'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들은 "후보자의 자질 및 도덕성을 검증하기 위한 필수적인 자료에 대해 물리적 검토 시간조차 확보되지 않은 형식적인 열람으로는 정상적 청문회 진행이 어렵다는 것이 명백하다"며 "이로 인해 청문회 진행에 차질이 생긴다면, 그 책임은 국회의 정당한 자료 요구에 협조하지 않은 법무부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판단에 따라 야당 위원들은 당초 하루 예정된 청문회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단 증인·참고인들의 대부분이 7일 청문회에 출석하는 것이 예정돼 있는 만큼, 이날 청문회는 일단 진행을 하고 추가로 기간을 연장해 자료 검토 시간 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기간 연장을 위해선 여야 간사 협의가 이뤄진 뒤 전체회의에서 의결이 필요하다. 여당 쪽과의 협의에 대해 전해철 의원은 "아직 뚜렷한 결론은 현재 나와 있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야당의 요구를 여당이 거부할 경우 청문회 파행까지도 예상되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물개의 습격, 밥의 반란

 
조홍섭 2015. 04. 06
조회수 6206 추천수 0
 

남아공 백상아리 단골 먹이 케이프물개, 청새리상어 잡아 내장만 먹어

잠수부 2차례 목격 학술지에 보고, 남획으로 줄던 상어의 새 복병 주목

 

seal1.jpg» 청새리상어를 공격해 내장을 먹는 케이프물개. 해양 표면에서 일어나는 포식자의 행동 가운데는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다. 사진=크리스 팔로우스

 

대서양의 차가운 용승류와 인도양의 난류가 만나는 남아프리카 남쪽 바다는 어족자원이 풍부해 많은 포식자가 몰려든다. 특히, 거대한 백상아리가 케이프물개를 사냥해 물 밖으로 집어던지고 이를 잡기 위해 뛰어오르는 모습이 놀라움을 안겨준다.
 
그러나 작은 물고기를 주로 잡아먹는 것으로 알려진 케이프물개가 자기 크기의 청새리상어를 잡아먹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물개가 상어의 밥이란 통념을 깬 관찰결과가 학계에 보고됐다.

 

seal6_Thomas Bjørkan _View_at_Cape_Point.jpg» 물개의 상어 포식이 목격된 바다에서 가까운 케이프 포인트의 전경. 사진=Thomas Bjørkan, 위키미디어 코먼스

 

<스미소니언 매거진>의 보도를 보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최남단인 케이프포인트에서 잠수부 일을 하는 크리스 팔로우스는 2012년 관광객들과 함께 바깥 바다에서 상어를 관찰하고 있었다. 미끼에 이끌린 청새리상어 10마리가 몰려들었다. 
 
그런데 이곳에 젊은 수컷 케이프물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보통 작은 물고기와 오징어 따위를 잡아먹는 물개가 노린 것은 뜻밖에도 상어였다.
 
이 물개는 크기가 자기만 한 1.4m 길이의 청새리상어를 공격했다. 배를 물어뜯어 구멍을 낸 뒤 속에서 위와 간 등 내장을 꺼내먹었다.

 

나머지는 먹지 않고 내버렸다. 이런 식으로 10마리의 상어 가운데 5마리를 차례로 죽였다. 익숙한 솜씨였다.

 

seal2.jpg» 케이프물개의 청새리상어 공격 모습. 사진=크리스 팔로우스

 

seal3.jpg» 상어를 물고 물 표면에 올라운 물개. 2012년 촬영한 장면이다. 사진=크리스 팔로우스 
 
20여년 잠수경력의 팔로우스가 물개의 이런 행동을 본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2004년에도 보트를 타고 가던 중 젊은 물개 한 마리가 다 자란 청새리상어를 추격해 잡은 뒤 내던지고 마침내 죽여 내장만 먹는 모습을 15분 이상 관찰했다. 그러나 이 장면은 촬영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팔로우스는 두 번의 관찰결과가 단지 우연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다른 해양학자들과 함께 학술지 <아프리카 해양학 저널> 최근호에 그 내용을 보고했다. 현장을 생생하게 촬영한 사진이 뒷받침돼 있던 것도 발표의 배경이었다.

 

seal5_Brian Dell Bdell555_Fur_Seals_on_Duiker_Island.jpg» 남아프리카의 케이프물개 서식지. 보호 덕분에 최근 개체수가 늘었다. 사진=Brian Dell Bdell555, 위키미디어 코먼스
 
물개는 일반적으로 상어의 먹이이다. 케이프물개는 이 해역 백상아리의 주요 먹이 동물이다. 물개가 새끼 상어나 그물에 걸려 죽은 상어를 먹는 일은 있어도 이처럼 자연 상태에서 포식자인 중형 상어를 잡아먹는 모습을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위 포식자는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한다. 먹이 생물의 사망률과 위험 회피 행동을 좌우한다. 이 해역에서 청새리상어와 케이프물개는 모두 포식자로서 먹이인 물고기를 두고 경쟁한다. 
 
케이프물개는 17~18세기 남획으로 크게 줄어 1920년에는 2000마리만 남았다. 그 후 보호조처로 회복해 현재 170만 마리로 불어났다. 최근엔 물고기를 다 잡아먹는다는 어민의 불평을 사고 있다.

 

seal4_Mark Conlin_NMFS _1024px-Prionace_glauca_1.jpg»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에 가장 널리 분포하는 상어인 청새리상어. 물고기와 오징어 등을 주로 잡아먹는 포식자이나 남획으로 위험 신호가 켜졌다. 사진=Mark Conlin? NMFS, 위키미디어 코먼스

 
청새리상어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분포하는 중간 크기의 상어이다. 남획으로 최근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위험 근접종’으로 지정했다. 만일 이번 관찰처럼 물개에게 손쉽게 다량 잡아먹힌다면 이 상어의 보전 전략은 새롭게 짜여야 할 것이다.
 
잡은 먹이에서 에너지가 풍부한 부위만 먹는 행동은 드물지만 다른 포식자에서도 나타난다. 대서양대구를 먹는 하프바다표범이나, 고래에서 지방이 풍부한 부위만 먹는 백상아리에서 그런 행동이 보고된 바 있다.
 
연구자들은 “이런 행동이 우발적인지 일상적인 사냥 전술인지 소형 카메라 부착 연구 등을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라고 논문에서 지적했다. 먹이의 딱딱한 부위만 확인할 수 있는 위 내용물과 배설물 조사방식으로는 내장만 먹는 이런 물개의 행동을 알 수 없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 Fallows, HP Benoît & N Hammerschlag (2015): Intraguild predation and partial consumption of blue sharks Prionace glauca by Cape fur seals Arctocephalus pusillus pusillusAfrican Journal of Marine Science, DOI: 10.2989/1814232X.2015.1013058
http://dx.doi.org/10.2989/1814232X.2015.1013058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조사대상인 해수부가 세월호 특위 장악한다"

 

[현장] 유기준 장관 면담이 3시간 늦게 열린 이유

15.04.06 20:55l최종 업데이트 15.04.06 21:26l

 

 

기사 관련 사진
▲ 인사 나누고 자리로 가는 유기준 유기준 해수부 장관이 6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해수부 회의실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면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세월호 피해자 가족협의회와 유기준 해수부장관의 면담이 성과 없이 마무리됐다. 다만 양 측은 참사 1주기인 16일 이전에 2차 면담을 갖기로 했다.

이날 유가족 대표들은 유 장관에게 "정부가 발표한 시행령안은 파견된 공무원들이 기획,조정권한을 갖게 돼 있고 조직도 단 하나의 '과'만을 설치하도록 돼 있어 특별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업무범위또한 정부조사결과만을 검증하는 것으로 제한돼 있고, 조사위 인원또한 90명으로 한정돼 있다"고 꼬집었다. 대표단은 특히 "게다가 90명 중 공무원이 42명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이중 해수부와 해경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고 강조했다.

대표단은 거듭 정부 시행령안 철회하고 특조위가 제안한 안을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유 장관은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대신 오는 16일 이전에 유가족 대표단과 면담을 갖고 재논의하기로 했다. 이날 유 장관과의 면담은 오후 7시 50분 경 마무리됐다.

이날 세월호 유가족들의 해수부 항의 기자회견과 해수부 장관 면담은 예정시간보다 3시간이 지나서야 열리는 진통을 겪었다.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를 위한 피해자 기족협의회(아래 가족협의회)는 6일 오후 세종시에 있는 해양수산부 정문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었다. 하지만 기자회견과 유기준 해수부장관 면담은 예정시간을 3시간 넘긴 오후 5시가 돼서야 성사됐다. 경찰의 과도한 대응이 그 이유로 꼽혔다.

시간대별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오후 2시] "화장실 가겠다" vs. "안 된다"
 

기사 관련 사진
▲ 경찰과 충돌하는 세월호 유가족들 6일 오후 충남 세종시 해수부 청사 앞에서 유기준 장관과 면담을 요구하던 세월호 유가족과 출입을 저지하던 경찰병력이 충돌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경찰병력 위로 넘어진 유자고 6일 오후 충남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해수부 앞에서 유기준 장관과 면담을 요구하던 세월호 유가족들이 출입을 저지하던 경찰병력과 충돌하던 중 한 유가족이 경찰 병력 위로 넘어지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가족협의회 소속 유가족 등 160여 명이 해수부 정문 앞에 도착했다. 이들은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을 가겠다며 문을 열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해수부로 통하는 문은 꽉 닫혀 있엇다. 굳게 닫힌 문을 열리지 않았다. 

청사관리소와 경찰은 이동식 임시화장실을 긴급 배치했다며 청사내 화장실 사용을 가로 막았다. 하지만 임시화장실(1대)은 200여 명 가까운 참가자들이 사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유가족들은 "우리가 죄인이냐? 왜 청사 화장실 이용을 금지시키냐"라면서 따졌다. 문을 열려는 유가족들과 문을 지키려는 경찰과의 실랑이는 이렇게 시작됐다. 일부 유가족들은 정문을 타고 넘어가다 찰과상을 입기도 했다. 또 다른 유가족은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다 넘어져 119 구급대에 실려 갔다.     

오후 2시 30분께 예정된 기자회견을 시작하기 위해 유가족들이 정문 앞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찰은 그때까지도 유가족들의 화장실 출입을 금지했다. 가족협의회 측은 "이 상태로는 기자회견을 진행할 수 없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오후 3시 10분께] 경찰 "자진 해산해라" 경고방송  

경찰이 현장 방송차량을 이용해 경고방송을 시작했다. 세종경찰서 경비과장은 방송을 통해 "세종경찰청장을 대신해 알린다"며 "집시법 2조 1항 2호에 의거 자진해산을 요청한다"라고 경고했다. 유가족들은 "당장 경고방송을 중단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경찰의 경고방송은 계속됐다. 유가족들의 항의도 거세졌다. 
 

기사 관련 사진
▲ 연행되는 유가족 6일 오후 충남 세종시 해수부 청사 앞에서 유기준 장관과 면담을 요구하던 세월호 유가족과 출입을 저지하던 경찰병력이 충돌 중 유가족들이 연행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경찰 버스 내 유가족 팔 잡아 당기는 경찰 6일 오후 충남 세종시 해수부 청사 앞에서 유기준 장관과 면담을 요구하던 세월호 유가족이 출입을 저지하던 경찰병력과 충돌 도중 경찰버스 안에서 한 경찰이 유가족의 팔을 잡아 당기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사지 붙들려 연행되는 세월호 유가족 6일 오후 충남 세종시 해수부 청사 앞에서 유기준 장관과 면담을 요구하던 세월호 유가족과 출입을 저지하던 경찰병력이 충돌 중 유가족들이 연행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경찰과 충돌에 실신한 유가족 6일 오후 충남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해수부 앞에서 유기준 장관과 면담을 요구하던 세월호 유가족들이 출입을 저지하던 경찰병력이 충돌하던 중 쓰러져 실신해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오후 3시 30분께] 항의하는 유가족 7명 연행 

경찰은 항의하는 유가족 7명을 연행해 경찰 버스에 태웠다. 경찰은 이들을 세종경찰서로 연행해 조사한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연행 소식을 전해들은 유가족들이 버스 주위에 모여 들었다. 경찰은 유가족들이 항의하자 버스 문이 열려 있는 상태로 버스를 출발시켰다. 이 과정에서 한 유가족이 넘어져 다쳤다. 그런데도 경찰은 연행자들을 경찰서로 옮기기 위해 또 다시 버스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오후 4시께] 경찰 버스 앞에 눕다 
 

기사 관련 사진
▲ "유가족이 죄인이냐?" 6일 오후 충남 세종시 해수부 청사 앞에서 유기준 장관과 면담을 요구하며 진입을 시도하던 일부 세월호 유가족이 연행되자 호송을 막기 위해 다른 유가족들이 길바닥에 누어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유가족을 연행하나?" 6일 오후 충남 세종시 해수부 청사 앞에서 유기준 장관과 면담을 요구하며 진입을 시도하던 일부 세월호 유가족이 연행되자 호송을 막기 위해 다른 유가족들이 길바닥에 누어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유가족들이 연행된 유가족들을 태운 버스 앞에 드러누웠다. 이날 오후 4시 16분이 되자 한 유가족이 묵념을 제안했다. 이 유가족은 "쓰레기 같은 세월호 특별법 앞에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싸울 것을 굳게 다짐한다"라고 말했다. 

잠시후 경찰이 몰려들어 이들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유가족들은 "아예 우리를 죽이라"고 울부짖었다. 유가족들은 경찰에 의해 강제로 인도로 옮겨지면 다시 버스 앞에 주저앉았다. 경찰은 그제서야 경찰 병력을 바깥으로 이동시키고 연행자들을 현장에서 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오후 4시 30분께] 차가운 늦은 점심... 김밥 한 줄 

유가족들이 길바닥에 주저앉아 늦은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이들은 안산에서 급하게 출발하면서 미처 점심식사조차 하지 못했다. 이날 점심은 김밥 한 줄과 생수였다. 연행된 7명은 신원조회 후 오후 4시 40분경에야 버스에서 내렸다.

[오후 4시 50분께] 기자회견 "조사대상인 해수부가 사무처 장악한다고?" 

이날 오후 2시로 예정됐던 기자회견이 그때서야 시작됐다. 예정시간을 3시간 가까이 넘긴 후였다. 

유가족들은 기자회견에서 "해수부장관을 만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와 세월호 인양을 약속받으려고 내려왔다"라면서 "그런데도 화장실 사용을 막고 항의하는 유가족들을 연행하고 다치게까지 했다"라고 성토했다. 이어 "세월호 특별법에 꼭 담아야 하는 기소권과 수사권, 조사권 중 조사권 하나만이 들어있다"라면서 "그런데 해수부가 조사권마저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해수부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쓰레기 시행령(안)으로 특별법의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해수부 출신 공무원이 특조위 사무처를 장악해 조사권을 무력화 하려고 하고 있다"라면서 "특별법의 첫 번째 조사대상인 해수부는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손을 떼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또 "세월호 선체 인양을 공식선언하고 추진일정을 발표할 것과 이때까지 모든 배보상 절차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가족협의회는 기자회견 직후 6명으로 대표단을 구성해 유기준 해수부장관과 면담을 진행하고 있다. 대표단은 유 장관에게 입법 예고된 특별법 시행령 폐기와 특조위가 제출한 시행령 안을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 2만7822명의 서명이 담긴 의견서도 함께 전달했다. 하지만 오후 7시 현재 가족협의회 대표들의 언성이 높아지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화, 삼성테크윈 품고 방산 1위 기업 등극

 
2015. 04. 06
조회수 39 추천수 0
 

  산업통상자원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한화그룹의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등의 인수를 승인하면서 매각 인수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이번 인수합병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갖춘 국내 거대 방산기업 탄생이 가시화하면서 시장의 기대감 또한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말 삼성그룹은 삼성테크윈과 삼성토탈, 삼성탈레스, 삼성종합화학 등 방산 및 석유화학 4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번 M&A는 2조 원대에 이르는 규모로 국내 유력 방위사업 기업인 삼성테크윈이 포함됨으로써 방산업계를 비롯해 시장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매각이 순조롭게 마무리되면 삼성 4사 7500명의 직원이 한화 배지를 달게 된다.
  지난 3월6일 산업통상자원부는 한화의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인수를 승인했다. 업계에서는 첨단기술력을 갖춘 삼성그룹의 방위사업부문과 한화가 손을 잡기로 하면서 국내 방산경쟁력이 크게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a2.jpg 

삼성테크윈의 K-9 자주포.  앞으로는 한화의 K-9 자주포가 될 것이다

                                            

 한화-삼성, 2조원대 방산·석유 M&A 전격 추진

 

  한화그룹은 이번 인수합병을 통해 삼성그룹으로부터 삼성테크윈 지분 32.4%를 확보한다. 인수금액은 8400억원이다. 삼성테크윈은 삼성탈레스 지분 50%를 보유하고 있어 한화그룹이 자연스럽게 삼성탈레스 공동경영권도 보유하게 된다.
  한화그룹이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를 인수하게 되면서 지난 2013년 기준 1조 원이던 방위사업부문 매출이 무려 2조6000억원 규모로 증가하게 된다. 이 같은 매출액은 국내 방위사업 업계 1위 규모다. 현재 방산 매출 2위 업체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으로 지난 2013년 매출은 1조3500억원으로 추정된다. LIG넥스원, 두산DST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삼성테크윈은 CCTV 관련 영상보안장비와 반도체 칩 장착 장비인 칩마운터, 가스터빈, K-9 자주포 등을 생산하는 정밀기계업체다. 특히 삼성테크윈은 삼성탈레스 지분 50% 외에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지분 10%, 삼성종합화학 지분 23.4%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2013년 매출은 2조6289억원, 영업이익은 960억원이었다.
  삼성탈레스는 지난 2000년 삼성그룹과 프랑스 탈레스인터내셔널이 50대50의 지분 합작으로 설립됐다. 현재 구축함 전투지휘체계, 레이더 등 감시정찰장비 등을 생산중인 방산 전자회사로 2013년 매출은 6176억원, 영업이익은 206억원이었다.

 

 한화, 방위사업 규모·업무영역 확대 계획

 

 한화그룹은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 인수를 통해 방위사업 규모와 업무영역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기존의 탄약, 항공유압장치, 정밀유도무기 중심에서 자주포, 항공기·함정용 엔진, 레이더 등 방산전자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차세대 방위사업에 적합한 포트폴리오를 확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삼성테크윈의 로봇 무인화 사업 육성에도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10월 합병한 기계부문(구 한화테크엠)의 산업기계 기술에 삼성테크윈의 메카트로닉스 기술을 통합해 공장자동화, 초정밀 공작기계, 태양광 제조설비 등의 분야에서도 시너지를 창출한다는 복안이다. 그리고 기존 국방용 무인기 기술에 삼성테크윈의 영상처리, 정밀제어기술을, 삼성탈레스의 소프트웨어기술을 더해 중장기적으로 무인시스템과 첨단 로봇사업 분야에 진출할 예정이다.

 

 삼성테크윈, 무인차·드론 등 미래 사업 발굴 의지

 

  이같은 한화그룹의 계획은 삼성테크윈이 보유한 첨단 원천 기술과 지속적인 제품 개발 노력에 의해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삼성테크윈은 매각작업이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무인차와 드론 등 미래 ‘먹거리’ 발굴에도 적극 나서 성과를 내고 있다. 우선 최근 독자기술로 개발한 무인차 ‘스타엠(Star-M)’이 눈에띈다. 스타엠은 사람이 탑승하지 않고 일반도로와 산악 등 험지에서도 스스로 이동 가능하다. 스타엠 개발에는 삼성테크윈의 로봇 및 영상분석 관련 석박사 연구원 80여 명이 투입됐다. 스타엠은 주요 산업단지와 원자력발전소 등에 투입돼 24시간 감시임무를 수행한다. 일반도로와 험지, 야지 등에서 시험주행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삼성테크윈은 이와 함께 폭우, 지진 등 재난현장에 출동해 구호물품을 수송할 수 있는 재난구호용 무인차도 개발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테크윈은 또 최근 독자기술로 드론 ‘큐브콥터’의 개발을 마쳤다. 큐브콥터의 외관은 상자처럼 생겼지만 비행시에는 날개가 펴지고 비행 후에는 다시 날개가 접힌다. 날개가 펴지는 드론 방식은 국내외에서 특허출원이 이뤄진 상태다. 큐브콥터는 한 번의 충전으로 15∼20분 동안 작동하며 내장된 CCTV를 운용할 수 있다. 큐브콥터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의 상업용 드론과 달리 스스로 화면을 분석하고 관제센터에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점이다. 화제나 범죄 차량 등을 중앙 관제시스템을 통해 입수하면 자동으로 분석하고 목표지점까지 스스로 비행한다. 삼성테크윈은 오는 10월 중대형 드론 2종의 개발을 마치고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드론 시장에 뛰어들 태세다.

a1.jpg

경남 창원소재 테크윈의 전경

 

 항공·에너지장비 부문 기술력도 두각

 

 삼성테크윈의 항공부문도 지속적인 매출확대가 전망된다. 삼성테크윈은 3월 초 KAI와 1702억원 규모의 수출용 T-50 고등훈련기 엔진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납품 계약기간은 오는 2016년 12월31일까지다. 세계 항공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KAI의 수주 확대는 삼성테크윈의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삼성테크윈의 첨단 에너지기술 개발도 눈에 띈다. 삼성테크윈은 최근 한국가스공사와 공동으로 정압기지 설치용 압력발전기 국산화에 나서기로 했다. 정압기지는 액화천연가스(LNG) 생산기지에서 지하배관을 통해 고압으로 보내진 천연가스를 도시가스회사 또는 발전소에 공급할 수 있도록 일정한 압력으로 낮추는 곳이다. 압력발전기는 정압기지에서 천연가스의 압력을 낮출 때 고압가스로 터빈을 회전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에너지 장비다.
  정압기지용 압력발전기 제작에는 첨단 기술이 필요해 지금까지 프랑스 크라이오스타, 스웨덴 아틀라스콥코 등 선진 업체들이 독점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테크윈은 지난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사에 대형 공기압축기 17대를 수출하는 등 국내 최초로 에너지장비 수출에 성공했다. 최근에는 수천만 달러 규모의 해상 원유시추 기지용 가스압축기를 수주하는 등 에너지장비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삼성 4사 직원 ‘매각 반대’는 걸림돌

 

 그러나 한화그룹의 삼성테크윈 등 인수가 완전히 마무리될 때까지 프랑스 탈레스의 삼성탈레스 지분 매입 요구, 삼성 노조의 반발 등 풀어야 할 과제도 만만찮은 상황이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프랑스 탈레스 본사는 한화그룹과의 합작 의사가 없어 자사가 보유한 삼성탈레스 지분 50%도 한화그룹이 인수하길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스가 보유한 지분가치는 2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탈레스가 삼성탈레스에 대한 공동매각권을 행사할 경우 한화는 삼성탈레스 인수 자금으로 2500억원을 추가 확보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부담에도 불구하고 삼성탈레스의 한화 매각이 무산될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업구조 재편과 방위사업 강화라는 삼성과 한화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만큼 삼성과 한화가 해결점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삼성테크윈 등 삼성 직원의 반발도 넘어야 할 산이다. 한화는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 등 기존 직원의 고용을 승계하고 삼성의 문화와 한화의 문화를 융합시켜 그룹 미래 사업을 선도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삼성 4사 직원들은 서울 강남 삼성본관 앞에서 매각 철회 집회를 갖는 등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매각 반대와 함께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삼성 4개사 직원들은 회사 매각 시 위로금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측은 매각되는 회사가 직접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방산기업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한화그룹의 의지가 강하므로 인수합병 작업은 무리 없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인수합병이 안전적인 발전을 하기위해서는 삼성테크윈 등 삼성 직원들의 요구가 충분히 이뤄져야 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장윤석 객원기자 peace21@hanmai.net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지방재정이 나빠도 매년 해외연수 가는 도의원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4/06 11:31
  • 수정일
    2015/04/06 11:3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막말 문자’ 이성애, 세금으로 간 해외연수가 관광?
 
지방재정이 나빠도 매년 해외연수 가는 도의원들
 
임병도 | 2015-04-06 08:54:4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경남 무상급식 중단에 학부모들의 원망과 반발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지난 4월 2일 경남 양산에 사는 학부모는 이성애 경남도의원에게 문자를 보냈다가 황당한 답변을 들었습니다.

양산에 사는 한 학부모는 이성애 경남도의원에게 “잘 주무셨나요? 아침부터 너무 눈물이 나네요. 울 딸래미가 초등 3학년인데요. 어제 저한테 엄마 오늘부터 학교에 돈 내고 밥 먹어? 어! 이러니 그럼 나 밥 먹지 말까? 엄마 돈 없잖아! 이러는 겁니다. 한번 보십시오. 10살짜리 꼬맹이도 무상·유상을 알아요. 왜 천진난만한 애들에게 밥값 걱정을 하게 만들까요? 우리가 뽑은 높으신 분들이 부모나 애들에게 왜 이렇게 상처를 줄까요? 너무 힘듭니다. 다시 우리 아이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돌려주세요. 눈물로써 호소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이성애 경남도의원은 학부모의 문자에 “이렇게 보내는 문자 공짜 아니죠. 문자 남발하는 돈으로 아이 기 죽이지 말고 급식비 당당하게 내세요. 어릴 때부터 공짜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는 게 현명한 건지 한 번쯤 생각해보시는 건 어떤지. 외벌이로 빠듯한 속에서도 우리 아이들 급식비 내며 키웠기에 저는 이해할 수가 없네요.”라며 문자 보낼 돈으로 아이 급식비 내라는 답장을 학부모에게 보냅니다.

온라인에서는 이성애 경남도의원의 문자에 대해 황당하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는 논란이 거세게 일었습니다.

이성애 경남도의원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1 무상급식 관련 문자메시지를 많이 받았으며, 문자를 보낸 양산 학부모에게 ‘죄송하다. 그분이 마음을 많이 상했을 것 같다. 그분 입장에서는 충분히 마음을 다쳤을 수도 있겠다 싶다. 미안하다’고 답변했습니다.

이성애 경남도의원이 ‘그분 입장에서’라는 표현을 했기에 유권자 입장에서 세비를 받는 경남도의원이 제대로 일을 하는지 조사해봤습니다.


‘지방재정이 나빠도 매년 해외연수 가는 도의원들’ 

대한민국의 지방의회 의원들도 국회의원처럼 매년 해외 방문이나 연수를 갑니다. 도의원의 해외 방문이 특정 도시와의 협약을 위해서라면 갈 수 있겠지만, 그저 때가 되면 가는 연례행사에 불과합니다.

▲경남도의회의 상임위원회 해외연수 내용 중 첫 번째 페이지 ⓒ 경남도의회 홈페이지 캡처

재정 적자를 줄여야 해서, 당연히 복지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주장이 무색하리만큼 경남도의회 의원들은 매년 해외연수를 다녀왔습니다.

경남도의회 의원들은 2014년에만 상임위원회별로 ‘라트비아’, ‘중국’,’동유럽’,’몽골’ 등을 다녀왔습니다. 2013년도에는 ‘중국’과 ‘태국’, ‘포르투칼’, ‘스페인’, ‘터키’ 등을 2012년에는 ‘카자흐스탄’, ‘네덜란드’, ‘프랑스’, ‘인도네시아’ 등을 해외연수라는 명목으로 다녀왔습니다.

문자 보낼 돈으로 급식비를 내라는 이성애 경남도의원도 지난 2014년 8월 27일부터 9월3일까지 체코와 오스트리아, 독일을  6박 8일간 다녀왔습니다.


‘세금으로 다녀온 해외연수, 관광이나 다름없어’

이성애 경남도의원이 해외연수를 다녀왔다고 뭐 그리 큰 문제냐며 반발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성애 의원이 다녀 온 해외연수를 파헤쳐 보면 문제가 없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경남도의회 문화복지위원 소속 의원들의 해외연수 일정표 ⓒ 경남도의회

경남도의회 문화복지위원회 소속 도의원 8명과 수행공무원 3명이 다녀 온 6박 8일간의 일정을 보면 대부분 관광지입니다.
 
○ 체 코 : 프라하 관광센터, 프라하 성, 바츨라프 문화광장 카를교 문화의 거리 
○ 오스트리아 : 쉔부른 궁전, 성슈테판 사원, 게른트너 거리 국립오페라하우스 공연관람 및 공연장 시설견학 짤스캄머굿 호수, 게트라이데 거리, 미라벨 정원
○ 독 일 : 뮌헨국제전시장, BMW전시관, 프라우엔 교회 마리엔 광장, 로텐부르크 마켓광장, 시청사 프랑크푸르트 GDA 양로원, 하이델베르크 고성
 
우리가 흔히 시중에서 보는 동유럽 6박 8일 여행 일정과 비교해봐도 거의 흡사할 정도입니다. ‘문화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이니 관광지를 가는 일이 당연할 수 있다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경남도의회 문화복지위원회가 해외연수를 다녀온 후 발간한 보고서의 오스트리아 편에 보면 ‘직접 오케스트라 공연을 관람하였는데, 소위 오케스트라 공연이라는 것을 직접 접할 기회가 없어서인지’라는 문장이 있습니다.2 오케스트라 공연을 가본 적이 없었는데 좋았다는 의미입니다.

문화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오케스트라 공연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람들로 구성됐다는 사실을 보면 참 놀랍습니다. 도의회 의원으로 선출됐고, 전문성과 상관없이 문화복지위원회 소속이 됐다고 봐야 합니다.
 
경험과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그저 수박 겉 핥기 식으로 해외연수를 가는 그 자체가 낭비일 수 있습니다.


‘별 차이도 느끼지 못하면 왜 가나?’ 
 
이성애 경남도의회 의원은 세금으로 6박 8일간의 해외연수를 다녀왔지만, 그다지 배우거나 경험한 일이 없었나 봅니다.

▲지방의회 의원들의 해외연수를 비판한 KBS 뉴스 보도 ⓒKBS뉴스 캡처

이성애 경남도의원은 해외연수를 다녀오면서 가진 KBS 뉴스9와의 인터뷰3에서 ‘복지시설을 방문했는데 거기 복지시설은 우리와 별 차이가 없다’고 했습니다.

6박 8일간의 해외연수 일정에서 복지와 관련한 일정은 독일의 ‘GDA WOHNTIFT FRANKFURT’라는 노인요양시설뿐이었습니다.

달랑 노인 요양시설 한 곳을 방문해놓고 별반 차이가 없다는 말을 했다는 자체가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일과 같습니다.

한국과 독일이 별 차이가 없다고 했던 이성애 경남도의원의 답변과 다르게, 경남도의회 해외연수 보고서에는 한국과 독일이 다른 이유가 ‘인간다운 개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점’과 ‘독일과 한국의 사회보장제도에 큰 차이가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성애 경남도의원의 답변과 보고서가 다른 이유는 이성애 도의원이 제대로 해외연수를 다녀오지 않았거나, 보고서 작성에 전혀 관여하지 않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도의원들이 해외연수를 다녀왔지만, 보고서를 베끼거나 대충 만든다는 지적은 계속 제기됐었습니다. 이성애 도의원이 다녀온 후 발간된 32페이지짜리 보고서에서도 무려 10페이지가 인터넷에서 흔히 나오는 나라 안내와 관광지 소개였습니다.4
 
문화복지위원회 부위원장인 이성애 도의원이 문화복지위원회 보고서에 관여하지 않았다면 굳이 해외연수를 세금으로 갈 필요가 있었을까요?5

문자 보낼 돈으로 급식비를 내라는 문자를 보낸 이성애 경남도의원은 아동복지학과 출신입니다. 아동의 복지를 공부했던 전문가의 입에서 ‘공짜를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지 마라’는 식의 답변이 나왔다는 자체가 너무 황당합니다.
 
이성애 경남도의원이 참여하고 있는 경남도의회 사회복지연구회의 홈페이지를 보면 활동 내역이나 자료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평소에 소외당하거나 어려운 계층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했으니 당연히 막말이 나왔다고 봐야 할 정도입니다.

이성애 경남도의원은 월 288만 원의 월정수당과 150만 원의 의정활동비 등 매달 483만 원을 받습니다.6 연간 5천만 원이 넘는 세비를 받는 도의원이 몇 십원짜리 문자 비용을 모아 급식비를 내라고 했습니다.

아이엠피터는 보고서 한 장만으로 이성애 경남도의원이 매달 483만 원을 받을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생겼습니다.7 경남 시민들이 공짜로 관광 다니는 도의원을 키우지 말고, 당당하게 세비 받으며 일하는 도의원을 뽑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1. 경남도의원, 학부모 문자에 “그 돈으로 급식비 내라”2015년 4월 3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95941&CMPT_CD=SEARCH 
2. 문화복지위원회 공무국외연수 결과 보고서 22페이지 . 경남도의회.
3. 공직자 관광성 해외 연수에 보고서 베끼기 여전.KBS뉴스 2014년 9월 20일 
4. 경남도의회 문화복지위원회 공무국외연수 결과 보고서. 2014년 9월 18일
http://www.gncl.or.kr/source2014/korean/activity/foreign4.html?mode=view&page=1&number=107&tcount=112&article_num=104&flag=&keyword=#skip-content 
5. 의원들의 해외연수는 ‘공무’이다. 말 그대로 공적인 업무인데, 공적인 업무에서 보고서 관여와 의견 제출은 당연한 일이다.
6. 도의회 의장 의정비 인상 논란. 경남매일. 2014년 10월 5일.
http://www.gn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60610 
7. 아이엠피터는 지방의회 의원들이 세비를 받는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유급 의원이 오히려 부정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도 제대로 하지 않고 세비를 받는 의원에 대해서는 강력한 감사와 퇴출이 필요하다고 본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780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희호 없는 김대중을 생각할 수 있는가

등록 :2015-04-05 22:03수정 :2015-04-05 22:58

 

2009년 8월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면한 이래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은 6년째 매주 두 차례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아가 남편과 마음의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31일 오전 가족·측근들과 함께 묘소를 찾은 이 이사장이 분향을 하고 있는 모습.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희호 평전] ① 연재를 시작하며 
어린시절에서 현재까지 90여년 삶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의 일생을 그리는 ‘이희호 평전-고난의 길 신념의 길’이 오늘부터 매주 월요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한겨레> 연재 회고록 ‘길을 찾아서’ 19번째 주인공입니다.

 

이희호 이사장이 걸어온 길은 20세기 초 일제강점기부터 21세기 지금에 이르기까지 90여년에 걸쳐 있습니다. 이 일대기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해방 전후 대학 시절과 미국 유학, 사회운동 시절을 거쳐 정치인 김대중과 만난 뒤 현대사의 파란과 굴곡을 헤쳐 나오는 시기를 모두 아우를 예정입니다. 그의 삶은 일찍이 사회문제에 눈뜬 여성운동가의 삶이었고, 흔들리지 않는 신앙으로 간난신고를 헤쳐 나온 종교인의 삶이었으며, 남편과 함께 불굴의 의지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투사의 삶이었습니다.

 

지난해부터 준비해온 이 일대기는 매주 한 번씩 진행하는 이희호 이사장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 보관된 개인 문서와 구술 사료, 저서, 관련 책과 지인들의 증언을 참고해 고명섭 논설위원이 평전 형식으로 연재합니다. 이를 통해 그동안 공적 지면에서 충분히 조명되지 않은 ‘인간 이희호’의 극적인 삶이 면면히 이어져온 우리 국민의 민주항쟁사와 더불어 온전히 드러나기를 기대합니다. (제목 ‘이희호 평전’ 글씨는 이 이사장의 친필)

 

글·인터뷰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투사를 단련시킨 투사 “시련의 세월에도 늘 한결 같은”

 

2009년 8월23일 제15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낸 ‘현대 정치사의 거인’ 김대중이 이 땅의 사람들과 영원히 작별했다. 이날 오후 국회를 떠난 영구차는 현충원에 고인을 내려놓기 전 서울시청 앞 광장을 들렀다. 민주주의 수호자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려고 모여든 수많은 시민을 앞에 두고 검은 상복을 입은 노구의 부인이 단상에 올랐다. 슬픔에 젖은 가녀린 몸에 어울리지 않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광장으로 울려 퍼졌다. 고인과 47년의 삶을 함께한 부인 이희호였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제 남편은 일생을 통하여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피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많은 오해를 받으면서도 오로지 인권과 남북의 화해협력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바라옵건대, 남편이 평생 추구해온 화해와 용서의 정신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것이 남편의 유지입니다.”

 

세상을 뜨기 전 김대중은 피로써 이룬 민주주의가 깨져 나가는 걸 보며 독재의 부활을 걱정했다. 2009년 5월23일 16대 대통령 노무현의 갑작스런 죽음을 접하고 자기 몸의 절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검찰을 앞세운 정권의 잔인한 보복이 끝내 전임 대통령의 자살을 불렀다. 김대중은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은 이명박 정권에 의해 강요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일기에 썼다. 김대중은 장례식에서 읽으려고 쓴 조사에서 비명에 간 후배 대통령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은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저승에서, 나는 이승에서 힘을 합쳐 민주주의를 지켜냅시다. 그래야 우리가 인생을 산 보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김대중은 정권의 방해로 이 조사를 읽지 못했다. 6월11일 6·15 남북공동선언 9돌 기념식이 열렸다. 김대중은 아픈 몸을 이끌고 참석해 혼신의 힘을 다해 말했다. “독재정권이 과거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까. 그분들의 죽음에 보답하기 위해, 우리 국민이 피땀으로 이룬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을 다 해야 합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마지막 생기를 다 모아 쏟아낸 연설을 뒤에 남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대중은 쓰러졌다. 그것이 영원한 잠의 시작이었다.

 

김대중은 서울 동작동 현충원의 새로 단장한 묘역에 묻혔다. 장례식 이후 지금까지 이희호는 매주 두 번씩 남편의 묘소를 참배한다. 비가 오는 날도 눈이 오는 날도 빠지지 않았다. 화요일에는 지난날의 동지들, 측근들, 그리고 가족과 함께 남편을 찾고, 금요일에 다시 홀로 묘소를 찾는다. 일이 있어 타지에 갔을 때는 돌아오는 길에라도 들러 남편을 만났다. “남편이 하늘에서도 이 나라 민주주의와 남북의 화해와 세계 평화를 위해 힘써 달라고 기도합니다.” 남편의 몸이 흙으로 돌아갔지만 아내는 남편을 떠나보내지 않은 것 같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남편을 생각하며 같은 내용으로 기도합니다.” 이희호 곁에는 여전히 김대중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왼쪽)과 부인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1971년 대선 찬조연설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하면 
내가 앞장서 타도하겠다” 
이듬해 유신 쿠데타가 일자 
“어느 누구도 바른말을 못하니 
당신이 더 강하게 투쟁하시라” 
남편이 납치되기 석달 전 
“중정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용감하게 싸워달라” 

이 단호함은 김대중을 단련시켰다 
“아내에게 버림받을까봐 
정치적 지조를 바꿀 수 없었다”

 

이희호의 삶은 김대중의 존재와 떼려야 뗄 수 없이 얽혔다. 그러다 보니 이희호 자신보다는 ‘김대중의 부인’으로 더 알려졌다. 그러나 김대중과 만나기 전에도 이희호는 주목받는 사회운동 지도자였다. 이름이 나는 데 굳이 김대중이라는 존재에 빚질 이유가 없었다. 미국에서 유학한 유망한 사회학 연구자로서 대학 강단에 섰고, 여성문제연구회의 창립을 주도했으며,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YWCA)연합회 총무로서 여성기독운동을 이끌었다. 총무로 취임해 활동한 4년 동안 이희호는 여성운동의 새 장을 열었다. 이 나라 여성인권운동 성장의 중심에 이희호가 있었다.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우던 이희호는 김대중과 부부의 인연을 맺음으로써 삶의 행보가 바뀌었다. 운명은 두 사람을 현대사의 회오리바람 속으로 밀어 넣었다. 두 사람이 걸은 길은 수난의 골고다 언덕이었다. 그러나 아내가 남편을 마냥 뒤따르는 길은 아니었다. 이희호와 김대중이 즐겨 쓴 표현을 쓰자면, 두 사람의 일생은 ‘동행자’, ‘동역자’의 삶이었다. 함께 걷고 함께 일하고 함께 싸우는 삶이었다. 이희호는 김대중의 동지, 가장 깊은 신뢰로 묶인 평생 동지였다. 이희호와 김대중은 동지로서 서로를 일으켜주었고 부추겨주었다.

 

이희호와 김대중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희호가 없는 김대중을 생각할 수 있는가’ 하고 자주 물었다. 동행자 이희호가 없다면 정치인 김대중도 있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생전의 김대중 자신이 그런 생각을 가장 분명하게 표현한 사람이었다. 김대중은 1983년 미국 망명 시절 샌프란시스코에서 강연하던 중 이렇게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 했을 때 유세장에서 음료를 건네고 있는 이희호 이사장
“아내가 없었더라면 내가 오늘날 무엇이 되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오늘 내가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은 내 아내 덕분이고, 나는 이희호의 남편으로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독재자들의 핍박을 받던 시절 이희호는 남편의 안위가 걱정돼 기도로 밤을 새우면서도, 독재자와 싸우기를 중단하라거나 민주주의 투쟁 일선에서 물러나라고 한 적이 없었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투쟁을 지원하고 독려했다. 1972년 10월 대통령 박정희가 ‘유신 쿠데타’를 일으키자 일본에 있던 김대중은 망명 아닌 망명 생활을 해야 했다. 이희호는 정보기관의 감시를 피해 남편에게 쓴 편지에서 “어느 누구도 바른말을 하지 못하고 가슴 답답해하고 있다”고 조국의 현실을 전한 뒤 “현재로서는 당신만이 한국을 대표해서 말할 수 있으니 더 강한 투쟁을 하시라”고 적었다.

 

박정희 정권의 ‘김대중 도쿄납치사건’이 일어나기 석 달 전인 1973년 5월 편지에서는 “중앙정보부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다”고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밝히면서도 “꾸준히, 용감하게 싸워나가 달라”고 또박또박 썼다. 상황이 너무나 위험하니 이제 투쟁을 그만두고 타협하라고 할 수 있을 법도 한데, 이희호의 입에서는 끝내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 단호한 태도가 김대중의 양심을 단련시켰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 신민당 후보로 나선 남편을 대신해 찬조연사로 전국을 돌 때 이희호는 연단에 서서 시민들에게 말했다.

 

“만약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를 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습니다.”

 

이희호의 부드러움 속에는 부러지지 않는 철심이 들어 있었다. 그 철심이 남편의 민주주의 신념이 흔들리는 것을 막아주었다. 김대중의 신조 ‘행동하는 양심’의 그 양심 한가운데 이희호가 있었다. 유신독재 시절 옥중의 남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희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늘 말하는 바와 같이, 행함이 없는 양심은 악의 편에 속한다 하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무엇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야고보서 4장 17절) 우리 크리스천은 사회를 새롭게 변혁하는 행함으로 지상의 천국을 이루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희호가 김대중의 양심을 지키고 키웠다는 사실을 김대중은 아내에 관해 쓴 글에서 솔직하게 밝혔다.

 

“우스갯소리로 나는 늘 아내에게 버림받을까봐, 나 자신의 정치적 지조를 바꿀 수 없었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스개가 아니다. 나의 진심이다. 1980년 당시 내가 정권에 협력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상황이었다. 쿠데타에 가담했던 실력자가 나를 찾아와 온갖 회유와 협박을 했다. 나도 인간인데 그런 유혹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한순간 흔들리던 나의 마음은 아내를 생각하며 올곧게 바로잡혔다. 아내는 결코 나의 배신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아내의 사랑을 잃는다는 것은 내게는 곧 목숨을 잃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나는 아내의 사랑을 택했다.”

 

이희호가 김대중과 함께한 세월의 태반은 핍박과 죽음의 불길이 어른거리는 환난의 시간이었다. 그 시절 내내 신념과 의지를 지키고 두려움을 이겨내게 해준 것이 신앙이었다. 이희호는 자신이 믿는 신에게 간구하고 또 간구했다. 기도하다 밤을 새우는 날이 몇날 며칠인지 몰랐다. 성경 말씀을 읽고 또 읽었다. 남편이 쿠데타군에 잡혀가 행방도 생사도 알 수 없던 때 이희호는 이사야서를 되풀이해 읽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니, 떨지 말라. 내가 너를 강하게 하겠다. 내가 너를 도와주고, 내 승리의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주겠다.” 망망한 바다에서 난파당한 배의 파편 한 조각을 붙들고 흘러가는 것 같은 시간들이었다. 이 표류가 어디서 끝날지, 과연 육지가 나올지 도무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기댈 것은 기도뿐이었다. 몸과 마음이 갈라지고 부서질 것 같았으나 기도로 버텼다.

 

이희호의 신앙 안에서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은 하나로 만났다. 사회의 고통을 외면하고 개인의 기복에만 매달리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었다. 이희호에게 신앙은 자유, 정의,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를 찾으려는 싸움의 보이지 않는, 최후의 무기였다. 이희호가 남편의 목숨을 지켜달라고 하늘에 간구했던 것은 남편이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하느님의 사업에 일꾼으로 동참하는 것이 남편이 할 일이었다. 그 신앙이 용기의 원천이었다. 김대중은 “용기는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헌신에서 나온다”고 했다. 이희호가 낸 용기야말로 ‘진리에 대한 헌신’, 곧 이희호 자신이 믿는 하느님의 뜻에 대한 헌신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희호의 용기는 용서로도 나타났다. 자신의 신앙이 가르치는 대로 이희호는 원수조차 용서해야 한다는 신념을 실천했다. 1977년 남편에게 쓴 편지에서 이희호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 유학길에서 돌아와 
여성인권운동을 이끌던 이희호 
정치인 김대중을 만난 뒤론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며

 

47년간 동행을 이어갔다 
지금도 매주 두번 묘소를 찾는다 
“당신, 하늘에서도 
민주주의를 위해 힘써주세요” 

많은 이들이 이희호에 대해 
한결같음을 꼽는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그는 언제나 제자리를 지킨다”

 

“오직 악은 악으로 이길 수 없고 선으로만 이긴다는 것을 우리는 다 같이 알아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 ‘내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르거든 마실 것을 주라’고 가르친 이런 사랑을 생각하고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고 크리스천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것이니, 원수까지 사랑하는 아가페의 사랑을 실천해야겠습니다.”

 

이 편지를 보낸 것은 남편이 유신정권의 폭압에 저항하다 5년형을 받고 서울에서 가장 먼 진주교도소 독방에 갇혀 있을 때였다. 수난의 한가운데서 용서를 이야기하려면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이희호는 신군부가 조작한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남편이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판결을 받은 직후에도 똑같이 기도했다.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도 사랑해주시고 축복해주시옵소서.”

 

지난 2월 이희호 이사장이 고명섭 논설위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겨레> 집필진은 매주 한차례 서울 동교동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5층, 청와대 시절 그대로 옮겨 놓은 고 김대중 대통령의 집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김경애 기자

 

이희호가 보여준 이 용서의 정신은 김대중이 사형선고를 받는 자리에서 했던 유언과 하나로 연결돼 있다. 그때 김대중은 이렇게 말했다. “머지않아 반드시 민주주의가 회복될 것입니다. 나는 그걸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때가 되거든 먼저 죽어간 나를 위해서든, 또 다른 누구를 위해서든 정치적인 보복이 이 땅에서 다시는 행해지지 않도록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희호와 김대중이 공유한 용서는 신앙적 차원의 결단이고 신념이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이희호를 아는 사람들 가운데 여러 사람이 그를 생각하면 고린도전서의 이 구절이 떠오른다고 말한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는 그 한결같음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많은 이들이 이희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바로 그 한결같음을 꼽는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고난의 시절이나 영광의 시절이나 한결같다.”

 

그런 한결같음은 매주 두 번씩, 빠지지 않고 남편의 묘소를 찾는 데서도 드러난다. 이희호는 그런 한결같음으로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모질고 강퍅한 시련의 현대사를 통과했다. 이희호가 걸은 길은 고난의 길이었고 믿음의 길이었다. 우리는 이제 이희호가 거쳐 온 그 세월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 어린 날의 이희호를 만나게 된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인터뷰 녹취정리 유선희 인턴기자(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태양절 행사 본격화..북.일관계 험로


[주간북한동향] 3월 30일~4월 5일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4.06  00:19:49
트위터 페이스북

 

   
▲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전동렬이 사업하는 기계공장을 찾아 경비행기에 탑승, 시범비행을 했다고 1일 북한 매체가 전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정은 동향>

□ 경제분야 : 전동렬 사업 기계공장(1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전동렬이 사업하는 기계공장을 현지지도, 해당 공장이 생산한 경비행기를 직접 탑승하며 시범비행을 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1일 보도했다.

김 제1위원장은 기계공장의 현대화를 강조하고 경비행기를 탑승한 뒤 "성능이 대단히 높다"고 만족을 표했다.

황병서 총정치국장, 오금철 부총참모장, 리병철 당 제1부부장, 조춘룡 제2경제위원장, 홍영칠 당 기계공업부 부부장 등이 동행했다.

□ 군사분야 : 해군 제164군부대(4일)

김 제1위원장이 해군 제614군부대를 시찰했다고 4일 매체가 보도했다. 그는 함선종합훈련실을 둘러보며 "만능해병, 바다의 결사대로 튼튼히 준비할 것"을 강조했다.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동행했으며, 리용주 해군사령관, 허영춘 해군 정치위원이 영접했다.

 

   
▲ 제20차 태양절요리축전이 1일부터 3일까지 평양면옥에서 진행됐다. 50개단위 9백여 명이 참가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정치>

□ 조선농업근로자동맹 제71차 전원회의 확대회의가 30일 평양에서 열렸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함경북도 현지지도 40돌 기념보고회가 지난달 30일 함경북도에서 열렸다.

□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제56차 전원회의, 조선직업총동맹 제78차 전원회의, 조선민주여성동맹 제70차 전원회의가 지난달 31일 평안남도 평성시와 평양에서 각각 개최됐다.

□ 지난해 4월 1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 격려 1년동안 총 2천7백여 단체가 답사행군을 했다고 지난달 31일 매체가 보도했다.

□ 태양절을 맞아 김일성.김정일 동상이 3일 나선시에 제막됐다. 김영남, 최룡해, 현영철 등이 참가했다.

□ 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달 30일 정론을 통해 국산품 애용과 애국심 고취를 강조했다.

□ 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달 30일 사설을 통해 기본단위를 창조하고 일반화할 것을 강조했다.

<남북관계>

□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은 지난달 31일 비망록을 발표, 한.미 동맹을 비난했다.

□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서기국 보도 제1088호를 발표, 유엔인권이사회 북한인권결의에 남측이 동참한 것을 비난했다.

□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2일 대변인 담화를 발표, 간첩혐의로 억류 중인 남측 국민들을 거론하며 "추호도 용서치않고 무자비하게 처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조선직업총동맹이 3일 대변인 담화를 발표, 남측 노동계 투쟁에 지지의사를 보냈다.

□ 조선공무원 및 봉사일꾼직업동맹가 4일 대변인 담화를 발표, 남측 공무원노조의 공무원연금개정 반대 지지의사를 표했다.

□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4일 논평을 통해 한.미연합군사연습 독수리 연습을 비난했다.

 

   
▲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리진쥔 주북 중국 신임 대사(왼쪽)가 지난달 30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신임장을 봉정했다.[자료사진-통일뉴스]

 

<대외관계>

□ 조선대외문화연락협회가 지난달 30일 재일 총련 의장.부의장 압수수색과 관련한 성명을 발표했다.

□ 북한 당국은 최근 발생한 재일총련 의장.부의장 압수수색과 관련, "이런 상태에서는 북일 정부간 대화도 할 수 없다"고 일본측에 2일 통지문을 보냈다.

□ 당 중앙위원회가 민주콩고재건 및 민주주의를 위한 인민당 창건 13돌 축전을 지난달 30일 보냈다.

□ 춤말리 사야손 라오스 총비서가 김정은 제1비서에게 당창건 60돌 축전에 대한 답전을 지난달 24일 보내왔다고 매체가 4일 보도했다.

□ 태양절을 맞아 러시아 아르세날-데웨유한책임공사 총사장과 잠비아 파제드기업회사 사장이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4일 선물을 보냈다.

□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조제 에두아르두 두스산투스 앙골라 대통령에게 태풍피해에 대한 위로전문을 1일 보냈다.

□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무하마드 부하리 신임 나이지리아 대통령에게 2일 축전을 보냈다.

□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러시아 오호츠크해에서 발새한 대형냉동선 침몰사고에 3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위문전문을 보냈다.

□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에게 독립 55주년 축전을 4일 보냈다.

□ 박봉주 내각총리가 사아라 쿠우곤겔 나미비아 신임 총리에게 지난달 26일 축전을 보냈다고 1일 매체가 전했다.

□ 리수용 외무상은 러시아 오호츠크해에서 발생한 대형냉동선 침몰사고에 3일 세르게이 빅토르비치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상에게 위문전문을 보냈다.

□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지난달 30일 만수대의사당에서 리진쥔 주북 중국 신임대사로부터 신임장을 받았다.

□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1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술탄 살민 사이드 주북 카타르 신임 대사와 란시나 부아 코네 주북 말리 신임대사의 신임장을 받았다.

□ 로두철 내각부총리가 1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 러시아대사를 만났다.

□ 리수용 외무상이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 러시아 대사와 술탄 살민 사이드 주북 카타르 신임대사를 2일 각각 만났다.

□ 리수용 외무상이 란시나 부아 코네 주북 말리공화국 신임 대사와 4일 만났다.

□ 베트남에서 진행된 국제의회동맹 제132차 총회에 참가한 최진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의장을 단장으로 한 최고인민회의 대표단이 4일 평양으로 돌아왔다.

최진수 단장은 지난달 31일 회의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조선자연보호연맹은 오는 5월 뉴질랜드 미란다자연기금과 철새공동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2일 매체가 보도했다.

□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30일 논평을 통해 미국과 유럽의 대 러시아 제재를 비난했다.

□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31일 논평을 통해, 미국의 무기수출을 비난했다.

□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1일 논평을 통해 미국의 인종차별을 비난했다.

□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2일 논평을 통해 미국의 사이버테러 북한소행 주장을 반박했다.

 

   
▲ 북한 2015학년도 개학식이 1일 진행됐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사회문화>

□ 조선장애어린이회복원이 지난달 30일 개교했다. 김문철 조선장애자보호연맹 부위원장 등이 참가했다.

□ 북한 여자배구팀이 지난달 21일부터 29일까지 베트남에서 열린 VTV-빈 디엔 여자배구경기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지난달 30일 매체가 전했다.

□ 국가과학원 기계공학연구소가 6MN수평관압출프레스를 지난달 30일 개발.제작했다.

□ 봉화화학공장 창립 40돌 기념보고회가 지난달 31일 열렸다. 리무영 내각 부총리 겸 화학공업상, 리만건 평안북도당위원회 책임비서 등이 참가했다.

□ 북한 올림픽위원회는 지난달 31일 총회을 열고 지난해 체육성과를 평가했다.

□ 국가우표발행국이 공동구호 관철 우표 1종을 지난달 31일 발행했다.

□ 세계물의날을 맞아 적십자 및 적반월회 대표단이 지난달 31일 평양남도 신양군 신양읍을 둘러봤다.

□ 북한이 지난달 27일부터 31일까지 태국에서 열린 2016년 아시아축구연맹 23살 선수권대회 조별예선에서 1위로 본선경기 참가자격을 얻었다.

□ 2015년도 새학기가 1일 시작됐다.

 

   
▲ 스마트폰용 온라인쇼핑몰. [자료사진-통일뉴스]
□ 북한에 온라인쇼핑몰인 '옥류'가 등장, 호평을 받고 있다고 1일 매체가 전했다.

 

□ 제20차 태양절요리축전이 1일부터 3일까지 평양면옥에서 진행됐다. 50개단위 9백여 명이 참가했다.

□ 태양절을 맞아 만경대상체육경기대회가 2일 평양체육관에서 개막했다. 김영훈 체육상이 개막사를 했으며, 압록강팀과 평양팀 남자배구경기가 진행됐다.

□ 태양절을 맞아 239명에게 국가학위직이 2일 수여됐다.

□ 국가과학원 중앙실험분석소가 최근 수십 종의 분석용 표준물질을 새로 개발했다고 2일 매체가 보도했다.

□ 인민보건법 채택 35년을 맞아 3일 북한 웹 사이트 <우리민족끼리> 는 '인민사랑의 법령'이라고 자랑했다.

□ 태양절을 맞아 지행될 제4차 4월의 봄 인민예술축전 포스터가 5일 공개됐다. 축전은 11일부터 17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영정 꼭 품은 부모 보며 참을 수 없는 눈물이"

 

[현장] 세월호 유가족 도보행진 2일차... 1500명 빗속 행진

15.04.05 11:33l최종 업데이트 15.04.05 20:59l

 

 

[최종신 : 5일 오후 7시 15분] 
"해수부는 하수인, 주범은 청와대 주인"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유가족 재욱엄마 "국민들 관심에 감사합니다"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시민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 희생자 이재욱 학생의 어머니 홍영미 씨를 안아주며 위로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유가족 영석 엄마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시민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 오영석 학생의 어머니 권미화 씨를 안아주며 위로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광화문광장에 모인 시민들 "세월호 유가족 힘내세요"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게 다가가 안아주며 격려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출발 7시간 만에 16km를 걸어 광화문광장에 도착했다. 행렬의 맨 앞에 아이의 영정을 든 '예은아빠'와 '찬호아빠'가 있었다. 광장에서 기다리던 500여 명의 시민들이 박수로 그들을 맞았다. 곳곳에서 "힘내세요", "잊지 않을게요", "미안합니다" 함성이 터졌다. 유가족들은 "감사합니다"라고 응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세종대왕상까지 걸어간 유가족들 한 두명이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은 번져나갔고 삭발한 엄마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영정 속 아이들은 웃고 있었다. 영정 아래로 '진실규명'이라고 쓰인 노란 띠가 묶여 있었다. 5일, 유가족의 1박2일 도보행진이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5천 촛불로 가득 채워진 세종대왕상 앞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진실 침몰시키는 정부 규탄한다"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유가족과 시민들이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와 온전한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며 촛불과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정부 시행령 폐기하라"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유가족과 시민들이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와 온전한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촛불 든 시민 "세월호 유가족 힘내세요"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게 박수를 치며 격려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유가족에게 지지와 박수 보내는 시민들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게 지지와 박수를 보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이날 오후 5시 30분부터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촛불집회가 진행됐다. 무대 맨 앞쪽에는 영정을 목에 건 유가족 200명이 자리를 잡았다. 그들 뒤로 주최측 추산 5천여 명의 시민들이 '정부 시행령 폐기하라'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이날로 세월호 침몰사고 355일째를 맞았지만, 1년 전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다.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거리에서 여전히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여야 합의로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켰지만 특별법을 구체화시킬 시행령 때문에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종자 아홉명이 남았지만 정부는 세월호 인양에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마이크를 잡은 함세웅 신부는 "시행령에 따르면 범죄자로 지목된 해양수산부가 조사 책임을 진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사실 해수부는 하수인이고 청와대 최고 권력자이자 박정희의 딸인 대통령이 이번 사건의 주범"이라고 말했다. 

이어 함 신부는 "자식의 영정을 가슴에 품으신 유가족들은 저희를 일깨워주는 스승"이라며 "우리의 안일함을 깨닫게 해주고 행동으로 나서게 했다, 유가족들을 따라서 시행령을 폐기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집회 사회를 맡은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바닥에 놓여 있던 '시행령 폐지하라'라는 플래카드를 뒤집어달라고 요구했다. 청와대에서 봤을 때 정면으로 보이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청와대에서 보면 글자가 뒤집혀서 못 볼 것 같아요. 중앙에 딱 맞춰 주십시오. 거꾸로 있어서 폐기 못했다고 할 수 있잖아요. 조금이라도 삐뚤어지면 안 돼요. 구호를 외칠 때도 최대한 크게 해주십시오. 함성 작아서 못 들었다고 폐기 안 했다고 할 수 있어요." 

"여섯 살 아들이 말해요, 구하러 가자고" 
 

기사 관련 사진
▲ 도보행진 나선 세월호 유가족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 폐기하라"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유가족들이 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와 온전한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며 이틀째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다. 유가족 뒤로 국회가 보인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영정 대신 들고 세월호 보도행진 합류한 정청래 의원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마포대교에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와 온전한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1박2일 도보행진에 합류, 희생자 오영석 학생의 영정사진을 목에 걸고 광화문광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날 정 의원은 지난해 세월호 농성장에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24일간 단식 농성 인연으로 알고 지낸 오영석 학생의 어머니 권미화를 대신해 영정을 들고 광화문광장까지 함께 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우리가 걸어온 거리만큼 민주주의, 안전한 나라 가까워졌습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유가족들이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역 인근에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와 온전한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며 광화문광장으로 도보행진을 벌이자, 한 시민이 유가족을 응원하기 위해 직접 쓴 종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세월호 인양 요구도 나왔다. 1박2일 동안 유가족들과 함께 행진한 안승혜(34)씨는 "걸으면서 다리, 무릎, 발목이 아팠다, 비도 내려서 투덜거렸다"면서 "비라도 맞을까봐 영정을 꼭 품은 부모들을 보면서 참을 수 없을 만큼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이어 안씨는 여섯 살 아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소개했다. 

"제 아이가 파워레인저라는 만화를 좋아해요. 아직 차가운 물속에 형 누나들이 갇혀 있다고 얘기하면 제 아이는 파워레인저 가면을 쓰고 가서 구해주고 싶다고 합니다. 여섯 살짜리 아이도 구해주러 간다고 하는데, 이 정부는 너무합니다. 그래서 저는 분노합니다. 엄마로서 보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 싸우는 유가족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더 많은 빚을 지지 않기 위해서 여기 계신 시민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실종자 허다윤양의 아버지 허흥환(51)씨가 무대 앞에 섰다. 분노를 참기가 힘겨운지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아직 세월호 속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직 세월호 속에는 아홉명의 가족이 있습니다. 그들은 외칩니다. 꺼내달라고. 그들은 외칩니다. 인양해 달라고. 그들은 외칩니다. 밝혀달라고. 정부가 약속했고, 대통령이 약속했습니다. 저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355일째입니다. 국민 여러분, 정말 도와주십시오. 국민 여러분, 끝까지 함께 해주십시오." 

민중가수들이 공연으로 분위기를 북돋았다. <노래하는 나들>과 <우리나라>가 노래를 불렀다. <우리나라는>는 '화인'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인 도종환 시인의 시를 가사로 붙여 만든 곡이었다. 

"이제 사월은 내게 옛날의 사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는 내게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다. 눈물을 털고 일어서자고 쉽게 말하지 마라. 하늘도 알고 바다도 아는 아픔이었다." 

[3신 : 5일 오후 4시 1분]
"물에 빠져 죽은 아이들, 비 맞게 할 수 없어..."
 

기사 관련 사진
▲ 영정 젖을 걱정에 비닐 씌우고 도보행진 이어가는 세월호 유가족 세월호 유가족들이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마포역을 지나며 비가 내리는 굳은 날씨에 영정이 비에 젖지 않기 위해 비닐을 씌우고 가슴에 품고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도보행진에 눈물 흘리는 시민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유가족과 시민들이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역 인근에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와 온전한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며 광화문광장으로 도보행진을 벌이자, 한 시민이 이들을 지켜본 뒤 고개를 돌려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녹색당 '죽음 앞에 돈 흔드는 모욕 중단하라' 세월호 유가족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인근에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와 온전한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며 1박2일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들 뒤쪽으로 세월호 유가족을 지지하는 녹색당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서울에 가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도보행진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노란 우의를 입은 긴 행진대열이 5일 오후 3시 현재 서울 마포대교를 지나고 있다. 시민 참여가 늘어나면서 행진단은 1500명(주최측 추산, 경찰 추산 1000명)으로 늘어났다. 

유가족들은 비를 맞으며 묵묵히 발걸음을 떼고 있다. 삭발에 참여한 단원고 희생자 고(故) 박성호군의 어머니 정혜숙(47)씨는 "참사가 일어난 이후 정부가 한 일이라고는 유가족들 복장만 터지게 한 것"이라며 "1년이 지나도 여전한데 정부에게 기대를 할 수가 없다, 우리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단원고 희생자 고(故) 임경빈군의 어머니 전인숙(44)씨는 "삭발을 하고 싶었는데 남편이 말려서 못했다"며 "4월 16일까지 정부가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삭발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600만 명 국민이 올바른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서명했다, 정부는 유가족과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래군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은 "물에 빠져 죽은 아이의 얼굴에 비를 맞게 할 수 없어서 영정에 비닐을 씌웠다"면서 "아이를 걱정하는 부모들의 마음을 이해한다면 정부가 이럴 수는 없다, 유가족들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2신 : 5일 낮 12시 49분]
늘어나는 시민들 "집에서 뭐하냐, 나와라"
 

기사 관련 사진
▲ 이틀째 세월호 도보행진 이어가는 유가족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유가족들이 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와 온전한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며 이틀째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발걸음 멈추고 세월호 유가족 응원하는 시민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유가족들이 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와 온전한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며 이틀째 도보행진을 벌이자, 지나가던 시민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이들을 응원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유가족 힘내세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유가족들이 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와 온전한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며 이틀째 도보행진을 벌이자, 지나가던 시민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이들을 응원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집에서 뭐하냐, 서울시민들 거리로 나와라" 

1박2일 세월호 유가족 도보행진단에 합류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500여 명으로 출발한 행진단은 5일 오후 1시 현재 700여 명으로 늘어났다. 행진단 길이만 500여 미터로 행진단 꼬리가 길어지고 있다. 이들은 광명에서 서울 구로구를 지나 영등포구 여의도로 향하고 있다. 

정오를 지나자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눈에 띄었다. 서울 구로구 구로동 주민 형복순(50)씨는 아들, 딸과 함께 팔짱을 끼고 걸었다. 형씨는 "유가족들이 언제 보상해달라고 했나, 진상규명을 먼저 한 다음에 보상 얘기를 해도 늦지 않다"며 "찢어지는 유가족들 마음에 작은 힘을 보태기 위해 거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구로동 주민인 김영호(44)씨는 아홉 살 딸과 손을 잡았다. 김씨는 "행진단이 집 앞을 지난다는 소식을 듣고 씻지도 않고 집에서 나왔다"며 "서울 시민 여러분, 집에서 뭐하냐, 나와서 유가족들과 함께 걷자"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남의 일이 아니다, 같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온전한 세월호 인양', '재방방지·안전사회 건설' 문구가 적힌 리본을 단 시민들은 "시행령을 폐지하라", "책임자를 처벌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신도림 역 앞 횡단보도에 선 20여 명의 시민들은 박수를 치며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라고 유가족들을 격려했다. 이에 유가족들은 "고맙습니다"라고 답했다.

[1신 : 5일 오전 11시 33분] 
"숨 죽이지 않겠다"... 형제자매도 시행령 철회 요구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유가족 '내 동생이 보고 싶습니다' 세월호 유가족이 1박2일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앞에서 한 유가족 학생이 '내 동생이 보고 싶습니다'라고 적힌 종이를 목에 걸고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진실을 인양해 주세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유가족과 시민들이 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와 온전한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며 이틀째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도보행진 나선 유가족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 폐기하라"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유가족과 시민들이 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역 인근에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와 온전한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며 이틀째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세상은 자꾸 잊으라고, 그만하라고 합니다. 동생에 대한 그리움은 도저히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만하라 하지 마세요. 가치를 매길 수 없이 사랑스럽고 빛났던 그들을 절대로 돈으로 계산하려 하지 마세요."

세월호 사고로 동생 고(故) 남지현양(단원고)을 잃은 남서현씨가 동생 영정 앞에 섰다. 남씨는 "아직도 그 아이의 목소리, 웃음소리 숨소리까지 생생하다, 너무 보고 싶다"며 울먹였다. 이어 그는 "매일 밤 잊지 않기 위해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기억해 낸다"며 "우리 나라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이제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씨 뒤로 '진실을 향한 걸음, 우리 함께 해요'라는 피켓이 눈에 띄었다. 

남씨 앞에 앉은 세월호 유가족 200여 명이 박수를 쳤다. 머리를 삭발한 부모들은 노란 손수건으로 머리를 감쌌다. 손수건에는 '실종자가 돌아올 때까지, 진실에 닿을 때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5일 오전 '1박2일 세월호 유가족 도보행진단'이 하룻밤을 묵은 경기도 광명시 광명장애인종합복지관 2층 체육관에서다(관련기사: 정봉주도 삭발 동참 "뭐라도 도우려고...").

세월호 희생자 형제자매 73명, 시행령 철회 성명서 발표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사고로 형제자매를 잃은 73명은 5일 오전 광명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세월호 시행령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 강민수

관련사진보기


세월호 사고로 형제자매를 잃은 73명은 이날 오전, 세월호 시행령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우리는 지난해 4월 16일 이후 형제자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간절히 바랐다"며 "수많은 악플과 유언비어, 비난에도 우리는 조용히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이제 더 이상 숨죽이지 않고 적극적인 자세로 엄마 아빠들의 동료가 돼 진실에 다가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 특별법 시행령 전면 폐지 ▲ 언론의 진실보도 ▲ 안전사회 건설 ▲ 정부의 책임있는 자세를 요구했다. 

지난달 27일 해양수산부(장관 유기준)는 4·16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아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을 입법예고했다. 이에 세월호 특위는 입법예고를 특위 무력화 시도라고 규정하고 즉각적인 철회를 요구해 왔다(관련기사: "세월호 진상규명 약속... 박 대통령, 진실이었나?").

이 자리에서 단원고 희생자 고 이영만군의 형, 이영수씨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이 입법예고된 이후 우리는 아빠, 엄마의 삭발식을 보게 됐다"며 "우리가 살아가야할 세상이 왜 이렇게 잔인한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씨는 "부모님들께 걱정이 될까, 조심스러워 모든 상황에 숨죽이고 있던 형제자매들은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정부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 없어 우리는 지금부터 공식적으로 전면에 나선다"고 밝혔다. 

남지현양의 언니 남서현씨는 "더 이상 세월호 인양을 미루지 말라"면서 "실종자 가족에게도 형제자매들이 있다, 그 아이들을 보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 남씨는 "대통령님, 마지막 한 명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겠다던 약속을 지켜라"고 말했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유경근 '4·16 세월호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형제자매들이 부모 뒤를 이어 참사의 진상을 밝혀내겠다니 기특하지만 한편으로 가슴이 찢어진다"면서 "부모로서 너무 고통스럽지만 우리가 짊어져야할 짐으로 감내하자"고 말했다. 

도보행진단 오후 1시 여의도 집결, 오후 5시 광화문 촛불집회

기자회견 직후인 오전 10시부터 유가족들은 영정을 목에 걸고 발걸음을 뗐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자 유족들은 영정에 비닐을 씌었다. 유가족들은 노란 우의를 입고, 노란 우산을 들고 서울로 향했다. 

광명장애인종합복지관을 출발한 도보행진단 500여 명은 오후 1시경 서울 여의도공원에 도착한다. 간단히 점심을 먹은 뒤 오후 2시 국회에 도착해 시행령 폐지를 요구하는 함성을 외칠 예정이다. 이후 오후 5시 서울 광화문광장에 도착해 촛불집회를 연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