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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발 사법개혁, 공분·응징 넘어 시스템 만들라

곽노현 전 서울시교유감

kwaknh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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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청산-단편적인 법안 중심 한계 노출

정교한 논리와 시민 통제 장치 마련해야

특정 정당 과제 아닌 국가 핵심 의제화하길

대한민국 사법부가 전례 없는 신뢰의 위기에 직면했다. 시민들의 사법 불신은 임계점을 넘었고, 사법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는 조사대상 OECD 20개 국가 중 15위로 하위권을 면치 못한다. 흥미로운 점은 사법 불신의 근원이 재판 지연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체로 1년 이내에 끝나는 1심 재판의 처리 속도는 과거와 비교하든, 국제적으로 비교하든 괜찮은 편에 속한다. 시민들이 문제 삼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사법부의 나침반이 정의와 인권이 아닌, 기득권과 제 식구 감싸기를 향해 고장 나 있다는 근본적인 의구심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 정기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5.12.5. 연합뉴스

기울어진 법대: 무너진 공정성

시민의 눈에 비친 법원은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가혹한 공간이다. 지난 7월 수조 원대 분식회계와 배임 혐의가 얽힌 총수승계 목적의 삼성물산-제일모직 불공정합병 사건에서 법원은 결정적 증거들을 탄핵하며 총수일가와 고위임원 전원에게 면죄부를 쥐어주었다. 반면, 믹스 커피를 뽑아먹기 위해 회사의 동전 몇 개를 챙긴 버스 기사에게는 신뢰 훼손을 이유로 해고가 정당하다는 서릿발 같은 판결을 내렸다.

이러한 이중 잣대는 구조적 문제와 맞닿아 있다. 공판중심주의와 집중심리원칙은 허울뿐이고, 재판은 월 1회 10분 남짓한 형식적 절차로 전락하고 여전히 서면심리에 의존한다. 대법원 재판도 형식적으로는 4인 소부의 합의 재판이지만 실제로는 주심 대법관 1인의 설명과 판단으로 2,3분 안에 끝나는 게 현실이다. 시민의 사법참여가 전무하다시피해서 시민들에게 법원은 거대한 장막에 싸인 ‘그들만의 성채’일 뿐이다. 퇴임한 대법관과 검찰총장이 전관의 지위를 이용해 막대한 부를 축적해도 이를 제어할 ‘문지기’는 어디에도 없다.

헌정질서의 위기와 사법의 책임

이러한 불신에 기름을 부은 것은 최근 일련의 헌정위기 상황에서 사법부가 보여준 반동적인 모습이었다. 12.3 사태 이후 사법부는 헌법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가 되기는커녕, 헌정질서의 혼란을 방조하거나 특정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법권을 남용한다는 의혹을 자초했다. 한마디로 조희대 사법부는 내란사법을 제대로 하지 않고 오히려 사법내란에 가까운 비상식적인 행태로 일관했다.

예를 들어, 재작년 12월 3일 비상계엄 직후에도, 계엄해제 이후에도 조희대 대법원장은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한 달 반이 지난 1월 19일 심야에 윤석열 구속영장 발부에 불만을 품은 일부 시민들이 서부지법에 난입, 폭동을 벌이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음에도 조 대법원장은 침묵할 뿐이었다. 드디어 3월 6일 지귀연 부장판사가 기상천외한 법 왜곡 해석으로 내란수괴를 석방했으나 조 대법원장은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 급기야 지난해 5월 1일 조희대 대법원장은 한 달 후 대통령 당선이 확실한 대선후보의 아웃을 빛의 속도로 판결하며 대선 판에 개입했다. 이런 일련의 파행은 사법부가 정치적 중립을 잃고 특정 세력의 '참호'가 되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제 사법개혁은 단순한 제도개선을 넘어 무너진 헌정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한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민주당발 사법개혁안: 성과와 한계

이에 민주당은 대법관 증원, 법왜곡죄 신설, 확정판결 헌법소원 허용,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판검사 징계 강화, 퇴임대법관의 사건수임 금지기간 확대 등을 골자로 한 개혁안을 추진 중이다. 과거라면 사법권 독립 침해 주장에 가로막혀 논의조차 힘들었을 개혁법안들이지만 지금은 시민들의 거센 개혁요구에 힘입어 민주당이 지난 6개월 넘게 개혁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개혁안은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첫째, 개혁의 동력이 특정 인물들에 대한 응징 심리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인적 청산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개혁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둘째, 단편적인 법안이 쏟아지면서 전략적 우선순위가 보이지 않는다. 시민의 피부에 와 닿는 하급심 법관 대폭 증원보다 상층부 권력구조 개편(대법관 증원)에 치중한다는 비판은 뼈아프다. 무엇보다 시민의 사법참여와 사법감시를 활성화할 배심제와 참심제 도입법안이 없는 것은 결정적 한계다. 셋째, 민주당 주도로 진행되기 때문에 여야의 극심한 대립 속에 개혁안이 정쟁의 도구로 소비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국회법사위 통과법안들마저 본회의 상정을 미루면서 개혁동력이 떨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사법개혁특별위원장과 위원들이 20일 국회 의안과에 사법개혁안 관련 법안을 제출하고 있다. 2025.10.20 [공동취재] 연합뉴스

민주적 사법개혁을 위한 제언: 방어 논리와 대안

진정한 사법개혁을 위해서는 위헌 시비를 넘어서는 정교한 논리와 시민적 통제장치 마련이 필수적이다.

첫째, 법왜곡죄와 배심제의 결합이 요구된다. 법관이 법을 악용해 판결을 왜곡하는 행위는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를 검찰이나 다른 법관이 판단하게 하면 또 다른 사법 카르텔이나 수사권 남용을 부를 수 있다. 법 왜곡 여부는 고도의 법 기술이 아닌, 시민의 건전한 상식으로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법왜곡죄 재판은 반드시 국민참여재판(배심제)으로 진행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이는 직업 법관의 편협한 논리보다 시민의 보편적 상식이 정의에 더 가깝다는 공화주의적 원칙의 실현이다.

둘째, 사후 입법에 의한 특별재판부 설치가 위헌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헌정질서 자체가 위협받았던 비상한 시기에 기존의 오염된 배당 시스템으로는 공정한 재판이 불가능했다. 소급 ‘처벌’을 허용하자는 것이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제왕적 대법원장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무작위 배당절차를 확보해서 실질적 법치주의를 구현하자는 것이었다. 따라서 위헌시비 앞에 주눅들 이유는 전혀 없었다. 다만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재판부 구성 권한을 정치권이 아닌 외부 위원회나 관할 법원의 판사회의 등 중립적 기구에 위임하는 방식은 불가피한 현실적 조정이었다.

셋째, 고위 판검사 출신의 전관비리 근절과 현직 판검사 징계 강화는 시민들이 환호할 개혁 법안이다. 고위 법관과 검사의 변호사 개업 제한을 5년으로 늘리고 징계 수위를 강화하는 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 침해가 아니다. 이는 사법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공직 윤리 확립'이다. 헌법재판소 역시 개인의 직업선택권 보장 운운하는 기득권 보호논리에서 벗어나 사법신뢰 회복이라는 더 큰 공익을 직시해야 한다.

결정적인 결함은 민주당의 사법개혁 패키지에 시민의 사법참여 확대, 즉, 배심제 활성화와 참심제 도입에 대한 부분이 아예 빠져 있다는 점이다. 시민의 사법참여 활성화는 국민주권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사법권은 통치권의 최상위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국가권력이다. 대통령도 파면하고 비상계엄도 위헌 무효로 돌릴 수 있으며 국회가 제정한 법률도 위헌 무효로 돌릴 수 있을 정도다. 대법원과 헌재라는 최종 문지기를 지킬 문지기는 깨어있는 국민밖에 없다. 시민의 사법참여는 시민주권의 목소리일 뿐 아니라 동시에 시민의 사법감시를 겸하는 시민주권의 눈과 귀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맺음말: 대통령과 시민이 함께 만드는 사법개혁

현재 국회에서는 내란전담재판부법 외에 실질적인 사법개혁 입법이 멈춰 서 있다. 사법부의 조직적 저항과 야당의 반발, 그리고 위헌 시비라는 삼각파도 앞에서 민주당의 단독 추진은 한계에 봉착했다. 그것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법안마저 본회의 처리를 유보 중인 민주당의 모습이다. 민주당은 일종의 진퇴양난에 빠졌다. 지방선거를 몇 달 앞둔 시점에서 정치적 동기를 의심받는 사법개혁 법안들을 밀어붙이기도 어렵고 지금 와서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기도 모양이 빠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파적 개혁'을 넘어선 '국가적 대계'로의 전환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대표이자 행정수반으로서 사법개혁을 특정 정당의 과제가 아닌 국가의 핵심 의제로 격상시켜야 한다. 다만 대통령이 직접 칼을 휘두르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대신 범국민 사법개혁 시민의회 플러스 구성을 제안한다. 아일랜드 시민의회가 처음에 그랬듯이,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된 시민대표들로 과반수를 구성하되 국회, 법조계, 학계 대표를 상당수 포함시켜서 함께 논란이 많은 사법개혁안을 심의하고 결정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법개혁이 '정치 보복' 프레임을 넘어 시민이 사법 권력을 통제한다는 민주공화국의 대원칙 위에 바로설 수 있다.

분노는 개혁의 불쏘시개가 될 수는 있지만 집을 짓는 재료는 될 수 없다. 이제 공분과 응징을 넘어 시민의 상식과 정의감이 지배하는 냉철하고 정교한 사법통제 시스템을 구축할 때다. 그것이 2026년 우리가 사법개혁을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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