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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최고인민회의, 무엇을 다뤘나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09/22 11:54
  • 수정일
    2014/09/22 11:5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北 최고인민회의, 무엇을 다뤘나[친절한 통일씨] 김일성부터 김정은까지 회의 훑어보기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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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9.21  16: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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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2차회의가 오는 25일 열린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지난 4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2차회의를 2014년 9월 25일 평양에서 소집한다"며 "대의원 등록은 2014년 9월 23일과 24일에 한다"고 밝혔다.

5년 임기의 최고인민회의는 정기회의와 임시회의로 나뉘는데, 정기회의는 1년에 1~2차례 열리는게 원칙이다. 북한은 1948년 정권수립 당시 최고인민회의 제1기 제1차회의를 시작으로 회의를 소집하고 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조직문제와 국가예산 및 집행정형 등을 다룬다. 1948년부터 시작된 최고인민회의 회의의 주요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 2012년 9월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2기 6차회의.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일성 시대①, 1948년 1기~1967년 4기

김일성 시대의 최고인민회의는 1948년 1기를 시작으로 1990년 9기까지 기간이다.

1948년 9월 2일 열린 제1기 제1차회의에서는 헌법 승인 등 북한 정권 수립의 틀을 마련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당시 헌법 상 임기 3년이던 제1기는 1957년 9월까지 약 9년간 존속했고, 13차례 회의를 가졌다.

1차 회의에서는 헌법 승인과 그 실시에 관한 결정, 정부 구성, 최고재판소 선거, 검사총장 임명과 함께 김일성 수상이 정부 정강을 발표하는 등 국가 수립의 기초를 다졌다.

2~5차회의에서는 도.시.군.면.리 인민위원회 선거 등 지방주권기관 형성, 행정구역 개편 등 행정기관 체제 정비와 인민경제계획 부흥발전을 위한 2개년(1949-1950) 계획에 관한 법령 채택, 정부 대표단의 소련방문사업 토론, '북.소 10개년 경제문화교류협정' 발표 등이 다뤄졌다.

그리고 이승만 정부를 비난하는 '평화옹호세계위원회 평화제의 호소문'이 채택됐다.

   
▲ 김일성 수상이 1948년 9월 10일, 최고인민회의 제1기 제1차회의에서 정부 정강을 발표하는 모습. [자료사진-통일뉴스]

한국전쟁 후인 6차~13차 회의에서는 소련, 중국 및 인민민주주의 제국가들에 파견된 정부 대표단 사업에 관한 토론, 인민경제복구 발전 3개년(1954-1956) 계획에 관한 법령 채택, 조선문제의 평화적 조정을 위한 제네바 회의에서의 정부 대표단 사업 토론 등에 대한 회의가 주를 이뤘다.

그리고 통일문제를 토의하기 위한 남.북한 각 정당 사회단체 및 각종대표 연석회의를 담은 최고인민회의 호소문 채택, 농촌 경리를 발전시킬 데 대한 토론, 주민소득세.주민지방자치세에 관한 토론, 매년 책정되는 예산안과 결산에 대한 심의와 법령화가 있었다.

즉, 1기 1차회의에서 13차 회의까지는 북한의 국가체제마련 및 전후 복구사업, 김일성 중심의 권력체제기반 구축 등이 주를 이뤘다고 할 수있다.

최고인민회의 2기는 1957년 9월부터 1962년 10월까지 약 5년 2개월이었고 총 11차례 회의가 열렸다.

주요내용은 △1차회의(1957.9.18~20) 김일성 수상 재선출 등 내각 구성, △3차회의(1958.6.9~11) 인민경제발전 1차5개년(1957-1967) 계획에 관한 법령 채택, △4차회의(1958.10.1~2) 전반적 중등의무교육제를 실시하며 기술의무교육제 실시를 준비할 데 관한 법령 채택 등이 있었다.

그리고 △'농업현물세에 관한 법령' 채택(5차회의, 1959.2.19~21), △조국의 평화적 통일문제에 관하여 대한민국 민의원 및 남조선 인민들에게 보내는 서한 채택, '인민교육체계를 개편할 데 관한 법령' 채택(6차회의, 1959.10.26~28), △인민보건사업을 강화할 데 관한 결정 채택(7차회의 1960.2.25~27) 등이 다뤄졌다.

이어 미군철수.연방제 실시.경제문화교류.군대축소 등을 담은 대한민국 국회 및 남조선 제정단, 사회단체들과 인민들에게 보내는 편지 채택, 남북조선의 경제문화교류와 협조를 실현하며 남소전에서 민족경제의 자립적 발전을 도모할 데 대한 의견서 등 채택이 8차회의(1960.11.19~24)의 주요 내용이었다.

11차회의(1962.6.20~21)에서는 5.16구데타과 관련, 미군철수 및 반미시위 등을 담은 대한민국 국가재건최고회의 및 남조선 사회정치활동가들과 전체 인민들에게 보내는 서한이 채택됐다.

이 시기부터 북한은 전후 추진된 경제의 사회주의적 개조사업이 마무리되고, 1차 5개년 계획의 성과로 김일성에 대한 유일적 지도체계가 공고화됐다.

최고인민회의 3기는 1962년 10월부터 1967년 12월까지 약 5년 1개월, 총 7차례의 회의가 열렸다.

1차회의(1962.10.22~23)는 관례대로 내각구성에 대해 다뤄졌고, 3차회의(1964.3.26~28)에서는 협동농장들의 경제토대를 강화하며 농민의 생활을 향상시킬 데 대한 법령, 한일회담 반대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촉진할 데 대한 호소문이 채택됐다.

4차회의(1965.5.20~24)에서는 베트남 지원 토론, 한일회담 분쇄 토론, 한일회담과 베트남전에 대한 결정서 채택, 5차회의(1966.4.27~29)에서는 농업현물 세제 폐지법령, 베트남파병 반대 호소문, 6차회의(1966.11.22~24)는 전반적 9년제 기술의무교육 법령이 채택됐다.

최고인민회의 4기는 1967년 12월부터 1972년 12월까지 5년 1개월로, 총 6차례 회의가 열렸다.

주요 내용을 보면 1차회의(1967.12.14~16) 내각구성, 5차회의(1971.4.12~14) 현 국제정세와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촉진할 데 대한 토론, 조국통일기본방침 호소, 6차회의(1972.4.29~30) 캄보디아 반미구국투쟁 지지성명 채택 등이 다뤄졌다.

김일성 시대②, 1972년 5기~1990년 9기

1972년 12월부터 1977년 12월까지 약 5년 임기였던 최고인민회의 5기는 총 7차례 회의를 가졌다.

5기는 헌법을 개정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차회의(1972.12.25~28)에서 '사회주의 헌법'을 채택, 주석제와 중앙인민위원회가 신설됐다. 특히, 주석은 국가의 수반이며 국가주권을 대표한다고 명시해, 이때부터 김일성은 수상이 아닌 주석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또한 최고인민회의도 상임위원회가 상설회의로, 위원장과 부위원장은 각각 의장과 부의장으로 개칭됐고, 옛 헌법에서 정한 위원정수를 삭제해 상설회의 의장.부의장은 최고인민회의 의장.부의장이 겸직하도록 했다.

이는 당시 남쪽에서 단행된 유신헌법과 궤를 같이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나, 그 동안 진행된 김일성 유일적 영도체계를 완성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 김일성 주석이 1977년 12월 최고인민회의 제6기 제1차회의에서 연설하는 모습. [사진출처-우리민족끼리]

5기 2차회의(1973.4.5~10)에서 전반적 10년제 고중의무교육과 1년제 학년전 의무교육 실시 법령, 3차회의에서(1974.3.20~25) 세금제도 폐지 법령,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미국 의회에 보내는 편지 등이 채택됐다.

그리고 4차회의(1974.11.27~30) '사회주의 농촌문제에 관한 테제' 실현을 위한 결정서 채택, 5차회의(1975.4.8~10) 전반적 11년제 의무교육에 관한 법령집행 총화 결정 채택, 6차회의(1976.4.27~29) 어린이보육교양법 채택, 7차회의(1977.4.26~29) 토지법 채택 등이 다뤄졌다.

최고인민회의 6기는 1977년 12월부터 1982년 4월까지 약 4년 3개월 동안 총 5차례 회의를 열었다.

1차회의(1977.12.15~17)는 조직문제, 2차 7개년(1978-1984)계획 법령 채택, 2차회의(1978.4.18~20)는 사회주의 노동법 채택, 4차회의(1980.4.2~4)는 인민보건법 채택 등의 내용으로 진행됐다.

최고인민회의 7기는 1982년 4월부터 1986년 12월까지 약 4년 8개월로 총 5차례 회의가 열렸는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처음으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등장했다.

주요 인사문제를 다룬 1차회의(1982.4.5)에 이어 3차회의(1984.1.25~27)에서는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를 촉진할 데 대한 결정서, 4차회의(1985.4.9~11)에서는 남북간 민족적 화해와 신뢰 도모를 위한 실제적 조치를 취할 데 대한 결정서 채택 등이 있었다.

이 시기는 최고인민회의 결정과 별도로 주로 대남관계에 대한 메시지들이 주로 나왔는데, 3자회담(1984), 남북국회회담(1984), 군사당국자회담(1986) 제안과 대남 수해물자 제공(1984), 이산가족고향방문(1985)이 이뤄지기도 했다.

최고인민회의 8기는 1986년 12월부터 1990년 5월까지 약 3년 5개월로, 총 5차례 회의가 열렸다.

1차회의(1986.12.29~30)에서 국가지도기관 구성과 함께 이듬해 김일성 주석은 시정연설에서 남북고위급회담을 제의했다.

2차회의(1987.4.21~23)에서는 인민경제발전 3차 7개년(1987-1993) 계획 법령 채택이 있었고, 4차회의(1988.12.12)에서는 정무원 총리가 리근모에서 연형묵으로 교체됐다.

최고인민회의 9기는 1990년 5월부터 1998년 9월까지 약 8년 3개월동안 있었지만,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으로 차기 대의원 선거는 물론, 최고인민회의도 1994년 이후부터 열리지 않았다.

1994년 4월까지 총 7차례 회의 열린 회의 중 1차회의(1990.5.24~26)에서는 국가지도기관 구성과 함께 전민족적 대화, 남북한 자유왕래 및 전면개방을 제시했다.

2차회의(1991.4.11~13)에서는 민법과 가족법이 채택됐고, 3차회의(1992.4.8~10)에서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맺은 핵무기확산 방지조약 비준을 승인했으며 사회주의 상업법, 도시경영법, 형사소송법이 수정보충됐다.

특히, 9기 3차회의에서는 헌법도 수정됐는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노동당의 영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면서 당의 영도를 명문화했다.

또한 국방부문을 별도로 신설했고, 국방위원회가 국가주권의 최고군사지도기관으로 독립, 격상됐다. 또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임기는 4년에서 5년으로 연당됐으며, 경제면에서는 자립적 민족경제를 강조했다.

5차회의(1993.4.7~9)에서는 '전민족 대단결 10대 강령' 채택, 지하자워법, 외국투자기업 및 외국인세금법, 자유경제무역지대법, 계량법 등이 통과됐다. 그리고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에 추대되면서 전면에 등장했다.

6차회의(1993.12.9~11)에서는 민족유산 계승발전사업 개선 강화 결정, 건설법, 토지임대법, 외국투자은행법, 세관법 등이 채택됐고, 7차회의(1994.4.6~8)에서는 문화유물보호법, 변호사법, 합영법 등이 수정보충됐다.

김정일 시대, 1998년 10기~2009년 12기

   
▲ 2007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11기 제5차회의에 참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처음 치러진 최고인민회의 10기 대의원 선거이후 1차회의가 1998년 9월 5일 열렸다. 10기는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총 10차에 걸쳐 회의가 진행됐다.

10기 1차회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재추대되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선출됐으며 헙법개정이 이뤄졌다. 당시 개정헌법은 '김일성 헌법'으로 개칭하고 김일성은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됐다.

개정 헌법 중 경제분야에서는 주민의 개인부업 경리 외에 합법적인 경리활동을 통해 얻은 수입도 개인소유에 속하도록 하고, 독립채산제 개념을 도입했다.

그리고 주석제와 중앙인민위원회를 페지하고 국방위원회를 국가주권의 최고군사지도기관이자 전반적 국방관리기관으로 명시했다. 또한 정무원을 폐지, 내각으로 개칭했으며,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도 상임위원회로 바뀌었다.

2차회의(1994.4)는 '인민경제계획법'을 채택했고, 3차회의(2000.4)는 '교육법', '대외경제중재법' '민용항공법'을 채택했으며, 사회안전성을 인민보안성으로 개칭했다. 4차회의(2001.4)는 '가공무역법', '갑문법', '저작권법' 채택과 함께, 내각의 전년도 사업정형과 당해 과업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5차회의(2002.3)에서는 '국토계획법'이, 6차회의(2003.3)에서는 '군사복무법', '기구법', '도시계획법', '하천법', '회계법'이 각각 채택됐다.

최고인민회의 11기는 2003년부터 시작, 2008년까지 총 6차례 회의가 열렸다.

1차회의(2003.9)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재추대되고, 핵문제에 관련한 외무성의 조치를 승인했으며, 2차회의(2004.3), 3차회의(2005.4)에 이어 열린 4차회의(2006.4)에서는 과학기술발전을 다그쳐 강성대국 건설을 추동하자고 결의했다.

제11기 5차회의(2007.4)와 6차회의(2008.4)는 별다른 내용없이 국가예산집행 결산 및 승인, 내각 상업 정형및 과업이 발표됐다.

최고인민회의 12기는 2009년부터 시작 2013년까지 총 7차례 회의를 열었다. 12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등장하는 정치적 변환기를 맞이했다.

1차회의(2009.4)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재추대되고, 헌법이 일부 수정됐으며, 예산집행 결산 및 계획을 승인했다.

2차회의(2010.4.9)에 이어 두 달도 채 안돼 열린 3차회의(2010.6.7)에서는 대대적인 개각이 단행됐다. 당시 내각 총리는 김영일에서 최영림으로 교체됐으며, 장성택은 국방위원호 부위원장으로 선임됐다.

그리고 기계공업상과 전자공업상을 부총리급으로 격상하고, 체육상이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을 겸직하도록 했다.

4차회의(2011.4)이어 열린 5차회의(2012.4)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이후 내부를 재정비하는 자리로 진행됐다. 이 회의에서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처음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당시 회의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추대하고, 김정은 당 제1비서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추대됐다. 특히 헌법을 '김일성-김정일헌법'으로 개칭하면서 헌법 서문에 '핵보유국'을 명시했다.

그리고 5개월 만에 열린 6차회의(2012.9)에서는 '전반적 12년제 의무교육 실시에 대한 법령'이 발포되는 등 교육관련 의제가 주로 다뤄졌다.

7차회의(2012.4)에서는 박봉주가 내각 총리로 선출되고, '금수산태양궁전법', '우주개발법' 채택과 '국가우주개발국'을 신설했다. 특히, '핵보유국 지위법'을 채택해 3차 핵실험의 의미를 강조했다.

김정은 시대, 2014년 13기

최고인민회의 12기는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과도기적 성격을 지녔다고 할 수있다. 그리고 김정은 제1위원장의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 조직과 제도를 재정비했다는 의미가 있다.

그런 면에서 지난 4월 시작된 최고인민회의 13기 1차회의는 김정은 체제를 본격화하는 틀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지난 4월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1차회의에 참석한 김정은 제1위원장.  [자료사진-통일뉴스]

당시 제13기 제1차회의에서는 예상과 달리 노.장.청을 배합한 조직구성으로 김정은 체제를 한층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는 게 중론이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양형섭, 김영대 부위원장, 최태복 의장이 유임되고, 최룡해, 리용무, 오극렬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출됐다. 그리고 장정남, 조춘룡 등 신진그룹을 전진배치해 안정성을 강화했다.

오는 25일 제13기 제2차회의가 열린다. 이번 회의는 1년에 2회 열린다는 원칙에 입각했지만 5개월 만에 열린다는 점에서 다소 이례적이다.

12기 5차회의는 4차회의 두달 만에 열려 대대적인 조직개편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12기 6차회의는 5차회의 5개월 만에 열렸지만 교육문제 외 특별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제13기 제2차회의는 김정은 체제 구축 이후 두 번째로 열리는 최고인민회의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보름 넘게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날 회의에 등장하느냐에도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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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유치 시민이 결정... 삼척으로 눈길 쏠린다

 

찬·반 주민투표 10월 9일 예정... 원전 정책에 영향 불가피

14.09.21 21:41l최종 업데이트 14.09.21 21:41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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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척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를 주관하게 된 주민투표 관리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게 된 DMZ평화생명동산의 정성헌 이사장.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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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시에서 진행되는 주민투표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삼척시에서는 오는 10월 9일 민간 기관 주도로, '삼척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가 실시될 예정이다. 원전 유치 문제를 놓고 시민의 힘으로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은 삼척시가 처음이다. 

주민투표는 '주민 수용성이 결여된 삼척원전 유치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인하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투표로 지역 사회에 내재된 상처와 갈등을 치유'하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 주민투표는 지난 6.4지방선거에서 '삼척원전 유치 백지화'를 최대 공약으로 내건 김양호 후보가 삼척원전을 유치하는 데 적극적이었던 김대수 전임 시장을 큰 표 차로 물리치고 시장에 당선하면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김양호 시장은 당선과 동시에 먼저 주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약속했다. 삼척 시민들이 직접 원전 유치 문제를 결정하게 하자는 것이다.

원전 유치 관련 삼천 시민의 의사를 묻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삼척시는 지난 2011년 3월 9일,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원전 유치에 찬성하는 주민이 96.9%를 넘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조사는 삼척시 공무원들과 통·리·반장들이 대거 동원돼 공정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원전 유치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주민투표'를 강하게 요구했다. 하지만 그 뜻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전 유치, 삼천시민이 투표로 결정한다"

주민투표 실시 요구가 받아들여진 건 김양호 시장 체제가 들어선 뒤다. 지난 8월 26일 시의회에서 주민투표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문제는 계속됐다. 선관위는 지난 9월 1일 원전 유치 신청 철회는 국가 사무에 속하는 사안으로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렸다. 결국 주민투표를 민간이 주도해 실시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후 삼척시에서는 지난 12일 '삼척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 관리위원회'가 구성됐다. 위원장은 인제군에서 DMZ평화생명동산을 운영하는 정성헌 이사장이 맡았다.

투표 실시를 위한 절차는 차근차근 진행됐다. 주민투표 관리위원회는 지난 15일 주민투표 실시를 삼척 시민들에게 공고했다. 16일에는 주민투표 자원봉사자 460명을 모집하는 공고도 냈다. 15일부터 10월 8일까지는 공정한 주민투표를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원전 유치 찬반 운동이 진행될 예정이다. 또한 이 기간에 시민들이 의견을 자유롭게 낼 수 있는 토론회와 설명회가 함께 열린다.

삼척 시민들은 1998년과 2005년에 정부의 원전, 방폐장을 건설 시도를 물리친 경험이 있다. 이번이 세 번째 싸움인 셈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민투표가 삼척 시민들의 운명을 결정지을 판이다. 이 투표는 정부의 원전 정책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주민투표 관리위원회 정성헌 위원장을 만나 주민투표 의미 등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16일 고성군 거진읍사무소 안에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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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 중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는 정성헌 이사장.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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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투표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원전 관련 주민투표는 이번이 처음이다. 주민투표는 원론적으로, 시민이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 중요하다. 생명의 안전 문제를 다루면서 국가 사무와 지방 사무를 나누는 것은 관료적 발상이다. 법을 좁게 해석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문제를 공동체 구성원들이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법 이전에 법 정신의 문제다. 

지금까지는 중앙 정부가 에너지 정책을 일방적으로 결정해 왔다. '원전 마피아'라는 이야기도 있지 않나. (에너지 정책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상당히 좌우하는데도, 모두 자본과 권력의 입장에서 결정이 됐다. 

엄청난 생명의 안전성과 관계된 문제인데도 생활인의 입장에서 결정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에너지 정책에서 시민은 없었다. 그냥 백성만 있었지. 그런데 이제 최초로 시민이 '우리 의견 좀 얘기 하겠소'라고 하는 것이다. 시민 의식이 최초로 투표라는 행동으로 표출되는 거니까,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 원전 유치와 관련해 주민 의사를 물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
"주민투표 관리위원장 처지에서 그 문제를 자세히 이야기하는 것은 정도에서 벗어나는데... 이전에 실시된 (원전 유치 찬반) 조사가 공정하고 열린 조건에서 이루어졌으면 이런 (주민투표를 실시하자는) 얘기가 안 나온다. 결국 과거에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다. 여러 문제가 있었다. 그것이 삼척시 공동체를 크게 갈라놨다. 

찬반 의사를 표시하는 데서 갈라지는 것은 괜찮은데, (찬반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좋지 않은 방법과 절차로 갈라놓은 것은 옳지 않다. (주민투표는) 그때 잘못으로 생긴 갈등을 치유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주민투표를) 이전에 있었던 찬반 조사와 비교하면 안 된다. 그때 한쪽에서는 주민투표를 실시하자고 했다. 공정하게 투표를 해서 찬성이든 반대든 한 표라도 더 나온 쪽에 승복하자고 했다."

- 주민투표가 원전 문제를 말끔히 해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100점짜리는 없다. 그렇지만 (주민투표 결과가 나오면) 주민 간 갈등은 상당히 치유가 될 것이다. 먼저 아주 자유롭고 열린 공정한 조건 속에서 찬반이 이야기 될 것이다. 투표 인명부를 만드는 것 등 모두 삼척시 예산이 아닌 성금으로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하기로 했으니까, 매우 자발적으로 치러지는 투표다. 

물론 일부 예산이 모자르면 시·도에서 얼마 도와줄지 모르겠지만, (투표 자체는) 철저히 시민의 자발성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이전 찬반 조사는 동원과 내리꽂는 식으로 진행돼 (찬성 의견이) 96% 넘게 나왔다. 이전 조사를 공격, 부정,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주민 의사를 공정하고 자유롭게 물어보자는 의미로 투표가 진행될 것이기에 (주민 갈등은) 상당히 치유가 될 것으로 본다. 

주민투표 관리위원회 구성을 보면 알 수 있다. 원전 반대 사람들로만 구성돼 있지 않다. 민변 변호사가 있으면 그렇지 않은 변호사도 있고, 바르게살기운동 쪽 사람도 있다. 나도 '원전 반대 의사를 가진 사람들로만 위원회를 구성하면 틀림없이 투표 이후 정당성 문제제기가 나온다, 생각이 다른 사람도 골고루 들어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민투표는 민주주의 교육장, 삼척시민 자부심 가져야"

- 주민 대다수가 인정하는 공정한 주민투표가 돼야 할 텐데.

"주민투표는 국가 차원에서 실시하는 것과 똑같다. 투표를 실시하기 전에 원전 유치 관련 토론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시민들 중에는 찬성-반대가 아닌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다. 주민투표를 치르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표출이 되기를 바란다. 너무 많은 욕심을 낼 수는 없지만, 이런 게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삼척만 그런 게 아니지만 원전을 유치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꼭 돈 이야기를 한다. 원전을 유치하면 몇 조 원을 지원하니 어쩌니 하는데, 돈으로 (사람들의) 투표 심리를 사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 권력이나 지방 권력이 할 일이 아니다. 천민 자본이 하는 짓이다. 경제유발 효과가 얼마고 하는데 그것을 사실대로 분석을 하면, 실제로는 얼마 되지 않는다. 자본들이 그런 식으로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은, 원전 문제 이전에 진짜 안 좋은 일이다. 수단에 불과한 돈이 민의를 왜곡하는 것이다."

- 삼척 시민들이 얼마나 투표에 참여할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투표율이 높을 것이다. 현지(삼척)에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를 한다. 반대 의사를 표시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잘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얘기를 한다고 한다. 투표율은 크게 걱정을 하지 않을 정도로 나올 것 같다. 사람은 자기 인생을 자기 의사대로 결정하고, 행동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시민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이제 삼척 시민은 (이번 주민투표를 통해) 자기 의사를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에 책임지는 시민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삼척 시민이 투표에 참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나는 이번 투표가, 우리나라 대한민국 공동체 구성원들이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민주 시민으로 다시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런 것을 삼척 시민들이 앞장서서 한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자존감과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더군다나 원전은 생명의 안정성을 다루는 문제다. 지구 생태계를 위해 인류가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민주시민으로서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할지를 다 생각하면, 투표에 참여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이번 주민투표는 삼척시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고 민주시민 전체를 교육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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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세계적 축산기지 완공 눈 앞

 
 
주택, 공공건물, 숙박업소, 수의방역소, 기반시설 건설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4/09/22 [09:42]  최종편집: ⓒ 자주민보
 
 

 

▲     © 이정섭 기자

 

조선이 세계 최대의 축산단지로 조성하고 있는 강원도 세포지구가 2년만에 시련을 뚫고 놀라운 성과를 이룩했다고 북 언론이 전했다.

 

연합뉴스와 노컷 뉴스 등 국내 언론들은 22일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2012년9월22일 김정은 제1비서의 발기로 시작한 세포지구는 강원도 세포, 평강, 이천군을 포괄하는 5만여정보의 등판개간을 끝냈으며, 계획의 98%에 달하는 인공풀판(초지)과 77%에 해당한 자연풀판을 조성했다"고 전한소식을 보도했다.

 

▲     © 이정섭 기자

 

조선중앙통신은 "600여정보의 바람막이숲과 1만 2,7000여정보의 풀판보호림을 조성하고 저류지와 살림집, 여관, 축산연구소, 수의방역소, 집짐승우리, 천수백㎞의 도로 등을 건설해 대규모축산기지 건설의 확고한 전망을 열었다"고 공정을 소개했다.

 

이 신문은 재일동포 신문인 조선신보가 지난 6월 "세포지구는 등판개간과 자연풀판정리사업은 이미 끝났으며, 방목도로를 비롯한 천수백km의 도로가 새롭게 형성되고 먹이풀을 기르는 인공풀판조성사업은 올해내에 모두 끝낼 계획"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     © 이정섭 기자

 

조선신보는 "올해 10월 노동당 창건 70돌까지 모든 건설을 끝내고 고기생산목표는 2017년에 년간 5천t에서 단계적으로 끌어올려 2020년에 년간 1만t을 생산할 계획이며, 여러가지 고기가공품과 유제품도 생산하게 된다"고 밝혔다

 

신문은 "세포지구 축산기지 건설사업은 2012년 12월에 시작돼 군인건설자들과 전국각지에서 돌격대원들이 건설사업을 맡고있으며, 풀판이나 밭의 여기저기에 담당단체의 표식이 세워지고있다"고 설명했다.

 

▲     © 이정섭 기자

 

▲     © 이정섭 기자

 

▲     © 이정섭 기자

 

▲     © 이정섭 기자

 

한편 세계적 축산단지로 건설 되고 있는 세포등판은 단순한 농장이 아니라 육가공 및 유가공 등을 할 수 있는 종합적인 축산기지로 조성되며, 원산- 금강산 광광 지구의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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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세계적 굴지 관광 명소 어떻게 되나?

북, 세계적 굴지 관광 명소 어떻게 되나?
 
원산-금강산 백만 관광객 유치 공개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4/09/21 [18:49]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원산-금강산 관광 주요지구안의 금강산 모습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조선이 세계적인 굴지의 관광명소로 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운 강원도 일대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의 청사진이 공개했다.


국내 언론들은 21일 일제히 조선 대외경제성 산하 원산지구개발총회가 지난는 20일 오후 중국 다롄(大連)에서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회원 200여명을 대상으로 개최한 투자설명회에서 원산·통천·금강산지구 등 크게 3개 지구로 구성된 대규모 관광지구 개발 방안을 소개했다고 보도했다.

 

북측은 이 계획의 거점 도시인 인구 36만명의 원산이 중국, 일본 등 인접국가와 1~2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고 3시간 비행거리 이내에 인구 100만명이상 도시가 40여개에 이른다며 인접 국가와의 접근성을 강조했다.

 

▲ 명사십리로 유명한 송도 해수욕장에 건설 된 물놀이장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조선 대외경제성 산하 원산지구개발총회는 압록강 하구의 중국 단둥(丹東)에서 신의주, 평양을 거쳐 원산에 이르는 철도, 도로와 두만강 하구의 러시아 하산에서 청진, 함흥를 거쳐 원산을 연결하는 철도, 도로가 있어 조선의 동·서부를 연결하는 주요 교통 분기점이라며 교통의 편리성을 부각시켰다.

 

원산지구개발총회는 "원산-금강산지구의 관광 인프라 개발이 북한의 계획대로 진행되면 연간 10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원산지구 송도원국제소년야영소 위락시설은 최신식으로 개건 건설되었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또한 이 지역에 지난해 말 개장한 마식령 스키장과 송도원 국제소년단야영소 리모델링 공사를 원산-금강산지구 개발의 대표적인 선도사업으로 꼽았다.

 

리상렬 원산지구개발총회사 부총사장은 "마식령 스키장은 개장 첫 시즌이었던 지난 겨울에도 호텔이 부족해 손님을 맞이하지 못할 정도로 대인기를 누렸다"면서 "그동안 우리나라(조선)는 겨울철이 관광산업 휴식기였는데 마식령 스키장은 겨울철에도 관광객을 접대할 수 있는 큰 관광자산이 됐으며 숙박시설 확충이 우선 시급한 과제"라고 소개했다.

▲ 서울시 면적에 가까운 세계최대의 축산 기지로 건설되고 있는 세포등판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특히 원산시에서 25㎞ 떨어진 마식령 스키장이 국제경기를 치를 수 있는 총 49.6㎞ 슬로프와 야외스케이트장, 야외수영장 등을 갖췄으며 현재 360명이 묵을 수 있는 호텔이 있다고 밝혔다.

 

조선은 원산지구에 1만 2천명, 통천지구에 7천명, 금강산지구에 1만 4천명을수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을 갖추는 사업 이외에 공항, 항만, 철도, 도로, 전력 등 각종 기반시설과 골프장, 카지노 등 위락시설에 대한 신축·확충 구상도 공개했다.

▲ 마식령 스키장 호텔 침실,지난 겨울 숙소가 없을 지경으로 초만원을 이루었다고 한다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특히 원산 갈마반도에는 1일 수천명이 이용할 수 있는 규모의 공항을 건설해 외국인 관광객이 평양을 거치지 않고 직접 원산-금강산지구를 관광할 수 있게 하기로 했다면서 우선 추진사업으로는 원산시 중심부와 마식령 스키장, 울림폭포지구, 석왕사지구, 금강산지구를 연결하는 기존 도로망을 보수·확장하는 한편 원산시 중심부에 있는 숙박·서비스 시설을 현대화·신축하고 국제박람회장, 체육시설, 상업시설 등 관광에 필요한 서비스시설을 건립할 방침이라고 부연했다.


조선은 이와 관련 원산-금강산지구 시찰과 현지 투자상담을 희망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방북 신청을 10일 이내에 처리해주고 내년 4월께 원산-금강산 현지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을 초청해 대규모 투자설명회를 열 계획이다.


한편 조선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원산- 금강산 관광지구가 개발 계획은 국제적 관광명소 될 전망으로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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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7시간 행적 의혹 기사 번역자도 처벌하나

 

검찰, 19일 '뉴스프로' 번역가 전아무개씨 노트북 압수수색

14.09.20 19:59l최종 업데이트 14.09.20 19:59l

 

 

검찰이 세월호 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 의혹을 보도한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을 수사하고 있는 가운데, 검찰이 해당 기사의 번역가도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이 문제가 된 <산케이신문> 지국장뿐만 아니라 번역가까지 수사하고 나서면서 논란이 계속 일 것으로 보인다.   

20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지난 19일 오후, 외신 번역 전문사이트인 '뉴스프로'의 번역가 전아무개씨의 경북 구미 자택으로 찾아가 전씨의 노트북을 압수했다. 또 전씨에게 참고인 진술조서를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20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산케이신문> 지국장 고발 건에 뉴스프로 번역기사도 포함돼 있어서 관련 IP를 압수수색했다"며 "전씨에게 번역 기사를 쓴 민씨가 누군지 등을 물어봤다"고 밝혔다.

검찰이 <산케이신문>의 해당 기사를 번역한 민아무개씨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관련 IP를 발견하고 그 IP에 해당하는 전씨의 컴퓨터를 압수수색한 것이다. 전씨는 뉴스프로에서 민씨와 함께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3월 문을 연 뉴스프로는 번역가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운영되는 외신 번역 전문사이트다. 

번역가 수사 중인 검찰..."눈엣가시 손보겠다는 의지"
 
기사 관련 사진
▲  지난 3일 일본 <산케이신문>이 '박근혜 대통령이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 누구와 만났을까?'란 제목의 기사를 실어 논란이 되고 있다.
ⓒ 산케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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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검찰은 <산케이신문> 가토 타쓰야 서울지국장을 수사하는 과정의 하나라고 밝혔다. 하지만 압수수색을 벌였다는 것은 단순히 수사 협조를 요구하는 절차가 아니라는 점에서 검찰이 번역가 처벌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특히 뉴스프로의 번역가들은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외신 기사를 꾸준히 번역해왔다. 또 뉴스프로가 국외 시민단체인 정상추(정의와 상식을 추구하는 시민네트워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때문에 검찰이 정부에 비판적인 해외 시민단체를 탄압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뉴스프로는 지난 19일, '박근혜, 뉴스프로에 칼 빼들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검찰을 강하게 비판했다. 자신들을 탄압하기 위한 박근혜 정부의 공작이라는 것이다. 뉴스프로는 "뉴스프로를 겨냥한 것은 이번에 눈엣가시인 정상추와 뉴스프로를 손보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앞서 일본 <산케이신문>은 지난달 3일 가토 서울지국장 이름으로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났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가토 지국장은 박 대통령이 문제의 7시간 동안 모처에서 한 남성과 함께 있었다는 풍문을 <조선일보> 칼럼과 증권가 소식지 등을 언급하며 보도했다. 

이에 자유청년연합 등 보수단체가 명예훼손 혐의로 가토 지국장을 고발했고 검찰은 가토 지국장을 출국금지했으며 두 차례 소환해 조사를 벌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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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가 잘못 읽은 줄 알았어요. 아니 미친거 아닌가”

[인터뷰] 900명 정규직 인정 받은 울산 현대 비정규 노조, 천의봉 법규부장
 
입력 : 2014-09-20  18:47:02   노출 : 2014.09.21  11:03:00
 

9월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562호. 민사 41부 정창근 부장판사가 주문을 읽어 내려갔다. “근로자 파견 관계는 원고들 전부에 대해 인정한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900여명을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이었다. 울산 비정규직지회 소속 천의봉(33) 법규부장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미치겠다”고 읊조렸다.

10여분에 걸친 판결이 끝나자 법정을 나온 어깨 넓은 남성들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안았다. “우리가 이겼다” “정규직이다” 등의 환호도 들려왔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원고들의 법률대리인인 김태욱 변호사도 눈물을 훔쳤다. 4년 만에 나온 1심 판결이었다. 18일 판단에 이어 재판부는 19일 재판에서도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로써 사내하청 노동자 1100명이 정규직으로 인정됐다.

두 재판 모두에서 승소하고도 천씨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내부를 갈라놓는 판결을 할거라고 예상했어요. 의장공정(차에 부품을 장착하는 일)만 정규직을 인정하는 식으로요. 저는 재판부가 다른 판결문을 잘못 읽는 줄 알았어요. 재판부가 미친 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고.” 울산으로 돌아가는 천씨를 19일 오후 전화로 만났다.

   
▲ 지난 18일 현대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현대차가 모두 고용하라는 판결이 나오자 법원이 울음바다가 됐다. 사진=안지연 제공
 

“재판부가 미친 거 아닌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자 지위 인정 싸움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2004년 아산·울산·전주 공장에 비정규직 노조가 결성됐고 노동부는 2004년 127개 업체 1만 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했다. 천씨도 그즈음 노조에 가입했다. 당시 그는 ‘산재대체인력’이었던 그는 산재 당한 정규직의 자리를 일시적으로 대신했다.

“정규직이 산재 당해서 나가면 사내하청이 그 자리를 땜빵하는 식이었어요. 당연히 고용이 불안하지요. 정규직이 돌아오면 나는 나가야 하는거잖아요. 2004년에 노동부가 불법파견을 인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래서 일종의 보험 든다는 생각으로 노조에 가입했어요. 노조에서는 무조건 출근하라고 하더라고요. 땜빵을 하다가 (사내하청) 신형 산타페 공정에 티오가 나서 일하게 됐죠.”

그때부터 6년 천씨는 차량 타이어를 장착하는 축을 조립하는 일을 했다. 공장 곳곳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혼재 돼 일했다. 같은 일을 하는데 처우는 절반이었다. 2004년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단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던 2010년 울산공장 하청 노동자 최병승(38)씨가 불법파견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 지난해 8월 8일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앞 명촌주자창에서 296일간의 철탑농성을 마친 천의봉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저 자식 떨어뜨려 죽여버려”

대법원 판단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또 하나의 싸울 근거가 됐다. 그때부터 안 본 게 없다. 그 해 겨울 울산 공장 하청 노동자들은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공장 점거농성을 벌였다. 노조 대의원이었던 천씨 역시 25일간 이어진 점거농성에 참가했다. 그리고 이듬해 2월 그는 이 점거농성 때문에 해고됐다. 더불어 회사는 징계와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012년 10월에는 최병승씨와 함께 철탑에 올랐다. “병승이 저 자식 떨어뜨려 죽여버려“ 당시 이들이 철탑에 오른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 온 사측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천씨와 최씨는 밧줄로 철탑에 몸을 묶고 신너를 끼얹었다. 철탑농성은 300일 가까이 이어졌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법을 지키라는 요구가 그렇게 어려웠다.

정규직화 요구에 대한 현대차의 입장은 한결같았다. “최병승 1인에게만 해당한다” “최병승이 일했던 의장공정에 국한된다”는 것이다. 2010년부터 시작된 교섭도 정규직화 대신 ‘특별채용’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 했다. 특별채용이 되면 근속연수는 일부만 인정되고 체불임금은 지급되지 않는다.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도 취하해야 한다. 회사에서는 손해볼 게 없는 셈이다.

   
▲ 지난해 8월 8일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앞 명촌주자창 송전철탑에서 최병승, 천의봉씨가 크레인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벌써 노조가입 문의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법파견 투쟁 10년, 4년을 바라보는 1심 심리에 지친 노동자들에게 이는 ‘먹혀들었다.’ 지난 8월 18일 전주·아산 공장 비정규직지회가 특별채용에 합의했다. 울산지회는 이를 ‘쓰레기 합의안’ 이라 했다. 2010년 1900명으로 시작한 근로자 지위 소송에 1100명만 남게 된 이유다. 천씨가 가장 힘들었던 것도 이 지점이다.

“철탑 농성은 그냥 있었던 것뿐이고요. 진짜 힘들었던 건 법적 판결이 나와도 현대차는 무조건 피해가려고만 했던 것들이에요. 사내하청 노동자를 촉탁직으로 고용하고 특별채용 한다고 하고. 그러면서 함께 싸웠던 지회가 갈라지기도 했고요. 조금 힘들어도 버텼다가 같이 쟁취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지요. 현대차를 더 압박할 수 있는 계기가 됐을 텐데.”

그는 이번 판결이 끝이 아니라는 걸 안다. 노동부와 법원 판단에도 아무것도 이행하지 않았던 현대차는 노동자들에게는 ‘초법적’ 존재다. 현대차의 항소 또한 예상하고 있다. “법원 판결만으로 불법파견이 해결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어요. 이제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조직해서 현대차를 압박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지요. 벌써부터 조합 가입 문의가 들어오고 있거든요. 2010년 대법원 판결 때 조합원이 1900명까지 올라갔으니 이번에도 기대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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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우리, 손놓지 말아요…믿을 건 국민 뿐”

 

 

윤정헌 기자 yjh@vop.co.kr 발행시간 2014-09-20 23:07:28 최종수정 2014-09-21 11:36:05
세월호 특별법 촉구하는 촛불문화제 참가자들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촉구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양지웅 기자
 

공전 중인 국회에서는 세월호가 들려오지 않는다. 불미스러운 일이 터지고 가족대책위 지도부가 전원 사퇴한 뒤숭숭한 분위기. 그래도 세월호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아니, 세월호 유가족들은 더욱 서로를 보듬고 아끼며 '특별법' 제정을 위한 마음을 다잡았다.

세월호 참사 158일째인 20일 오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들과 사회단체들이 모여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이번 문화제는 서울, 수원, 인천, 아산 등 13개 지역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됐다.

7시 30분께 광화문 광장에서 시작된 문화제의 첫 순서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진실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부산 경남지역 대학생들의 아름다운 동행 '부산 노란 버스'의 노래 공연이었다.

어두워진 광화문 광장은 1천여명(주최측 추산, 경찰 추산 400여명)의 시민들이 밝힌 촛불로 장관을 연출했다.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라', '특별법 제정 약속한 대통령이 책임져라' 등이 적힌 손피켓을 들고 문화제 참석한 시민들은 "가족들이 원하는 기소권, 수사권이 보장된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월호 국민대책회의 최영준 공동운영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문화제는 '노란버스'의 공연에 이어 작가회의 시낭송, 가족발언, 이호중 교수 발언, 박래군 공동운영위원장의 발언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엄마 품에서 세월호 촛불 든 아이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촉구 촛불문화제에서 아이가 엄마 품에서 촛불을 밝히고 있다.ⓒ양지웅 기자

"우리는 더 이상 정부와 국회를 믿을 수 없다"

27일째 광화문 농성장에서 단식 중인 김홍술 목사는 "약자에게 봉사해야 하는 권력이 오히려 거짓과 흉계로 세상을 덮고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과 그 뒤에 있는 권력들은 분명 하느님의 선한 세력에 의해 반드시 넘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목사는 "진정으로 세월호의 진상 규명과 생명이 안전이 존중되는 대한민국을 위해서는 모든 국민들이 진정성 있고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으로 명확한 진상 규명이 이뤄질 때까지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국민대책회의 박래군 공동운영위원장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5월 16일 눈물로 약속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다 걷어찼다"며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정부와 국회, 경찰, 검찰을 믿을 수 없다"고 성토했다.

이어 박 공동위원장은 "이제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하자는 대로, 정치권이 주는 대로 살 수 없다"며 "세월호 참사라는 끔찍한 사고를 겪었으면서도 우리 사회를 더 어렵게 만드는 정치를 갈아엎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월호 촛불집회 함께 한 유가족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촉구 촛불문화제에서 세월호 유가족이 발언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죄송한 마음 뿐… 하지만 우리의 손 놓지 말아달라"

이날 가족 발언을 위해 무대에 오른 단원고 2학년 故오영석군 어머니 권미화씨는 최근 발생한 폭력사태와 지도부 사퇴 사태에 대해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권씨는 "먼저 최근 발생한 일에 대해서 죄송한 말씀을 드립니다. 많은 사랑과 지지를 보내주셨던 국민 여러분들께 죄송한 마음뿐입니다"라며 발언을 시작했다.

잘못은 깨끗하게 인정하고, 갈 길은 굽히지 않겠다는 가족들. 권씨는 촛불을 든 시민들에게 "저희 손을 놓지 말고 잡아달라"고 호소했다. 허리를 숙이며 "다시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반성하고 노력하겠습니다"라는 그에게 시민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촛불은 "힘내세요"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외쳤다.

한편 이번 폭행 연루와 관련해 유가족 5명을 포함한 가족대책위 집행부 9명은 책임을 지고 전원 사퇴를 결정했다. 오는 21일 가족대책위는 집행부 재구성을 위해 총회를 열 계획이다.

세월호 유가족 발언에 오열하는 시민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촉구 촛불문화제에서 세월호 유가족의 발언을 듣던 시민이 오열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월호 특별법 위해 촛불 밝힌 시민들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촉구 촛불문화제에서 촛불을 밝히며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월호 희생자 추모하는 시낭송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촉구 촛불문화제에서 시낭송을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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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여자 축구 93분동안 “조국통일” 함성

 
 
공동응원단 “조국통일”외침 속 북 '5점 골 축포' 화답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4/09/21 [02:14]  최종편집: ⓒ 자주민보
 
 

 

▲ 경기시작에 앞서 인천 럭비구장에 마련된 축구장 하늘에 공화국 깃발이 나부끼고 조선 애국가가 울려퍼졌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 북측 선수단 임원진이 여자축구를 응원하기 위해 남동 럭비구장에 마련된 축구장을 찾았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조국통일” “우리는 하나다” “북측 잘 한다” 함성은 높고 푸른 조국 반쪽 인천에서 울려 펴져 북녘에 닿을 듯했다.

 

푸른 잔디 위를 달리고 또 달리는 하얀 경기복의 북녘 선수들은 공동응원단의 함성에 답례라도 하려는 듯 전반 1골 후반 4골 등 총5골을 넣으며 홍콩 문전을 골 폭탄으로 초토화 시켰다.

 

평화의 숨결’ ‘아시아의 미래라는 지향아래 제19차인천아시아대회가 개막 2틀 째를 맞는 20일 오후 5시 인천 남동 럭비 구장에서는 배달민족의 뜨거운 피가 흐르는 북측 낭자들이 홍콩 선수단과 경기를 펼쳤다.

 

이날 경기장은 차라리 축구장이 아니라 평화의장이요 한민족임을 확인하는 통일의 장이었다.

 

축구경기 전후반과 추가시간을 합친 93분 동안은 남과 북을 가로지른 철조망도남북을 갈라놓는 분단 장애의 사슬도 끊어 버린 해방구였다.

 

역사는 제19차 인천아시아 대회 여자축구 2차전이 열린 남동 럭비구장은 민족대단결과 통일염원이 불도가니 마냥 끓어 미움도 증오도 적대도 사소한 다툼과 반목질시도 녹여버린 용광로가 되어 민족의 하나 됨을 확인하였다고 말이다하지만 가슴 한켠에는 아쉬움의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북녘의 응원단이 함께 못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마치 명절이나 잔칫날 꼭 있어야 할 형제 친척이 빠져 허전함이 감도는 그런 분위기였다.

 

일산에서 왔다는 이용헌씨는 오늘 우리는 하나라는 구호와 조국통일을 외치며 북을 응원했다그리고 북은 승리로 답해 주었다면서 경기가 끝나고 북측 선수들이 운동장 돌면서 인사를 하는 것을 보며 깊은 감동과 함께 이렇게 쉬운 것이 통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그런데 아직 까지 우리는 이런 곳에서만 북녘 동포들을 만날 수 있고 공화국 국가를 들을 수 있다는 현실이 참 안타깝고 슬펐다.”며 하루빨리 통일을 이룰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비록 북녘 응원단이 오지 못했지만 우리 임원진이 대신하겠다. 임원진은 일당백 정신으로 공화국 국기를 흔들며 응원에나섰다.     © 이정섭 기자

 

▲ 보아라 저 뜨거운 하나 됨을! "감사합니다. 여러분들 때문에 이겼습니다."라는 북선수들의 인사에 "잘했습니다. 우리 이대로 통일합시다"로 답하는 응원단 모두의 눈가에는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 이정섭 기자

 

이용헌 씨는 지금 인천 아시안게임 표판매를 비롯해 홍보자체가 아주 저조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이는 정부와 인천 아시안게임 조직위가 자초한 화가 크다.”면서 북쪽 응원단만 왔어도 전국 관심도가 수십배가 됐을 것이다응원단을 보내겠다는 자체가 북으로서는 남북관계개선을 하겠다는 신호아닌가 한다만약 남쪽 정부가 이를 받아들였다면 북과 접촉할 수 있고 많은 문제들을 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는데 단일기라든지 체류비 문제를 들어 이를 성사 시키지 못한 것은 대단히 잘 못 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씨는 북측은 최근에 삐라를 북쪽으로 날리지 않으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고위급 회담을 할 수 있다고 통일부와 정부에서는 뿌리지 않겠다는 확고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 않다북은 마지막 카드를 보낸 것 같다남북관계 개선의 키는 통일부와 남측 정부가 쥐고 있는 것 같은데 자신감 없어 보이기도 하고 상황은 어두운 것 같다.“며 아시아 대회를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로 만들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경기장에서 만난 양심수 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 역시 오늘 경기장에 온 사람들 중 몇 사람이 축구에 관심이 있어 왔겠는가.”라며 오늘 관중 모두가 조국통일과 우리는 하나다라고 경기장이 들썩하게 외친 것은 민족의 하나됨과 통일을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는 반증"이라며 조국통일 염원의 간절함을 드러냈다.

 

권오헌 명예회장은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이렇게 좋은 기회를 왜 살리지 못했는가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우리민족의 통일을 위해서는 없는 기회도 만들어야 하는데 주어진 기회도 무산시키는 것은 통일의 의지가 없다고 보아야 맞지 않은가박근혜대통령의 통일대박 이야기가 진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민족을 적대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협력하는 것이라고 본다아직까지 아시아 대회가 여러날 남은 만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지금이라도 북측 응원단이 올 수 있도록 노력해 성사시키고 그를 계기로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길 바란다.”고 정부에 촉구했다.

 

소래초등학교 유민영 군도 평택에서 왔다는 강태희씨도 전라도에서 왔다는 윤종순 할머니도수원에서 온 강담 할아버지도 경상도가 고향인 안재구 할아버지도충청도 출신 박해전 아저씨도 모두가 하나같이 경기 소감을 묻는 질문에 조국통일이 빨리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광운대학교 김상덕 학생은 북측 선수들을 보니 특별했다이래서 통일을 해야 하는구나우리랑 다르지 않구나라는 것을 생각했다.”며 통일을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오늘 경기를 하는 북녘 선수들과 임원진 그리고 북녘 동포들을 형제적 사랑으로 뜨겁게 환영하며 응원을 펼친 남녘 응원단은 물보다 진한 피를 온몸에 지니고 사는 우리 팔천만 배달겨레의 하나 됨이 결코 멀지 않았음을 확인해 주는 소중한 자리였다.

 

아직도 귓가에는 조국통일’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가 쟁쟁하고 눈에는 북녘 경기장을 누비는 북측 선수들과 응원석에서 공화국 국기를 흔들며 응원하던 북측 임원단의 모습이 아른 거린다.

 

우리가 매일매일 손잡고 살 '조국통일' 그날을 하루빨리 앞당겨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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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게임 중에 대북 전단을 살포하겠다니??

아시안 게임 중에 대북 전단을 살포하겠다니<칼럼>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
전현준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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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9.20  21: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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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준(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 원장)


제17회 인천 아시안 게임 기간 중인 9월 21일 자유북한운동연합이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통일전망대 주차장에서 대북 전단을 보낼 계획과 관련하여 북측이 ‘군사적 도발’과 ‘아시안 게임 포기’까지 시사하고 있어서 우리 정부의 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북측이 ‘대북 전단’ 살포문제에 대해 공식입장을 내놓은 것은 9월 13일이었다. 북측은 남북고위급회담 북측 대표단 대변인 명의의 담화를 통해 "삐라 살포 등 동족 대결 책동을 중지하면 북남 대화의 문은 자연히 열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8월 11일 2차 고위급 접촉을 제안한 이후 북측이 내놓은 공식 반응이었다. 북측은 9월 13일과 15일에 국방위원회 명의로 남북 고위급 접촉 북측 대표단 대변인 담화와 유사한 내용의 통지문을 청와대 안보실에 보내왔다.

이후 ‘로동신문’은 9월 20일 “허위와 날조, 기만과 위협 공갈 등으로 일관된 심리전은 물리적 폭발력보다 더 엄중한 파국적 후과를 미치고 있다”며 “삐라 살포는 우리에게 총포탄을 쏘아대는 것보다 더 엄중한 도발행위”라고 비난했다. 이어 ‘신문’은 “삐라는 우리의 존엄과 체제에 대한 용납 못할 도전이고 비방 중상 중지에 관한 북남합의에 대한 공공연한 파기 행위”라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첫 걸음은 삐라 살포 중단이라고 강조했다.

‘신문’은 또한 “군이 하루에 수만 장을 찍어낼 수 있는 장비와 1000여종의 대북전단 원고를 자료화하고 있다”며 군이 대북전단 살포에 직접 나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어떤 날에는 120만장에 달하는 삐라와 2250권의 불순종교 선전물을 풍선에 매달아 우리 측에 날려보냈다”고 우리 정부를 비난했다.

9월 20일에는 북측 웹사이트인 '우리 민족끼리'가 "우리 군대는 이미 삐라살포 행위를 전쟁 도발 행위로 간주하고 도발원점과 지원·지휘세력을 즉시에 초토화해 버리겠다고 천명했다"며 "그것은 결코 경고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민족끼리’는 "수십억 아시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삐라 살포가 강행될 경우 어떤 파국적 사태가 초래될 것인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며 "그로 인한 엄중한 후과의 책임은 전적으로 괴뢰패당이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측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북 전단 보내기를 북측의 ‘존엄’인 김정은 제1비서에 대한 ‘용납못할 도전’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북측은 수령유일령도체제라 ‘수령의 존엄’에 대해서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방어하려는 행동을 보인다. 둘째, 대북 전단 살포를 우리 군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단 살포를 정부, 특히 우리 군이 주도하고 있다는 인식은 군사적 수단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의도의 표현인 것으로 해석된다. ‘도발원점과 지휘세력’에 대한 ‘초토화’ 운운이 그 증거이다. ‘무력도발’도 가능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셋째, 아시안 게임 기간 중에 ‘파국적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대북 전단 살포에 맞서 최악의 경우에는 아시안 게임 ‘포기’도 고려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아시안 게임 취재를 위해 수백 명의 해외 기자들이 한국에 들어 와 있는 상황에서 북측의 ‘최고 존엄’을 훼손하는 행동을 한다면 ‘파국적 행동(선수단 철수)’도 서슴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아시안 게임의 성공은 단순히 매달 몇 개를 더 따는 데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국익을 제고시키고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세계에 알려 외국인 투자와 몇 배의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렇지 않아도 적자 행사라는 비판이 있는 형국이다. 더구나 현재는 박근혜 대통령이 캐나다 방문을 위해 국내를 떠난 상태이다. 대통령의 성공적 외교는 국익과 국가의 위상 제고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 해외 순방 중에 만이라도 대통령은 국내 문제가 아닌 외교문제에 전념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굳이 대북 전단 살포를 ‘대통령 해외 순방 중에’, ‘아시안 게임 기간 중에’, ‘공개적으로’ 하여 대통령과 아시안 게임 관계자들을 불안하게 할 필요가 있겠는가? 금번의 대북 전단 살포로 당장에 북측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바도 아니라는 점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대북 전단 살포가 반드시 필요하다면 ‘아시안 게임이 아닌 기간에’, ‘비공개로’, ‘대통령 귀국 후에’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전단 살포 관계자들과 정부의 국익적 판단이 요구된다.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 원장)

 

   
 

1953년생으로서 전남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북한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통일연구원에서 22년간 재직한 북한전문가이다. 
2006년 북한연구학회장 재직 시 북한연구의 총결산서인 ‘북한학총서’ 10권을 발간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 동안 통일부 자문위원, NSC자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고려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으며 민화협,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하였다. 
현재는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는 「김정일 리더쉽 연구」, 「김정일 정권의 통치엘리트」, 「북한 체제의 내구력 평가」, 『북한이해의 길잡이』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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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을 점거해도 기자는 오지 않았다

서울 한복판을 점거해도 기자는 오지 않았다9월18일 파이낸스센터 20층, 마지막 물까지 기자에 건넨 씨앤앰 하청노동자들
박장준 기자  |  weshe@mediaus.co.kr
 
 
 

 

 

 

“여기 들어와 보니까 밖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린다. 왜 석 달 동안 바깥에 있었을까.” 18일 서울파이낸스센터 20층에서 들린 이야기다. 이 노동자는 종합유선방송사업자 씨앤앰이 간접고용한 비정규직이다. 이날 20층에 모인 노동자 67명은 대부분 해고자다. 이들은 109명 해고문제를 해결하라며 씨앤앰을 좌지우지하는 주주인 MBK파트너스를 찾아 면담을 요청했다. 이날 파이낸스센터 20층과 MBK파트너스는 딱 4시간 멈췄고, 노동자들은 경찰에 끌려나왔다.

복잡하지만 복기해보자. 씨앤앰은 가입자가 240만 명이 넘는 업계 3위 사업자다. 사모펀드운용사인 MBK파트너스는 2007년 맥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와 손을 잡고 국민유선방송투자라는회사를 설립, 씨앤앰 지분을 매입해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사모펀드의 특성상 MBK는 재매각 차익을 얻는 게 목적이지만 2009년 IPTV 등장으로 케이블은 경쟁에서 밀렸다. 씨앤앰은 유령가입자를 만들어 가입자수를 뻥튀기하고, 하청을 쥐어짰지만 매번 매각에 실패했다.

   
▲ 18일 서울파이낸스센터 20층에서 연좌농성을 벌인 민주노총 서울본부 더불어 사는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지부장 김영수) 소속 조합원들의 모습. 이들은 씨앤앰의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와 면담이 성사될 때까지 무기한 대기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사진=미디어스)

올해 다시 기회가 왔다. 정부는 케이블방송 점유율 규제를 완화했고, CJ헬로비전과 티브로드 등 1, 2위 사업자가 씨앤앰을 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문제는 가격이다. MBK파트너스는 씨앤앰을 인수하던 시기, 대만의 케이블업체를 사들였고 지난달 인수 7년 만에 재매각했고 1조 원에 가까운 돈을 차익으로 챙길 수 있었다. 그런데 씨앤앰은 이게 불가능했다. 씨앤앰 원·하청에는 모두 노동조합이 있다. 사모펀드에게 ‘싸우는 노동조합’은 매각가 하락의 주범이다.

지난해 하도급업체 노동조합과 고용승계 관련 협약을 맺은 씨앤앰이 돌아선 것은 규제완화 시점이다.씨앤앰은 지난해 영업이익 1349억 원, 당기순이익 755억 원(종속기업 연결기준)을 기록했다. 2012년에 비해 순이익은 130억 원이나 늘었다. 상황은 나쁘지 않았지만 씨앤앰은 하도급업체들이 자신을 불공정거래 혐의로 고소할 만큼 더 쥐어짰다. 하도급업체들은 약속이나 한 듯 노동조합의 파업 선언 직후 직장폐쇄를 결정했다. 6월부터 총 109명이 해고됐다.

지난 7월 노동자들은 서울파이낸스센터 주변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하도급업체는 원청 탓을 하고 원청은 주주 탓을 하는 상황에 의사결정권을 쥐고 있는 대주주만이 문제를 풀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해결은커녕 오히려 일은 꼬여만 갔다. 노동조합은 지난달 말 파업을 끝내고 현장에 복귀하려 했지만 하도급업체 사장들은 노조에 “원청이 파업 포기 각서를 요구했다”며 “각서를 쓰지 않으면 우리도 망할 판”이라며 항복문서, 백기투항을 요구했다.

고용노동부와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의 압박이 있고서야 직장폐쇄가 풀렸다. 그러나 해고자 문제는 그대로였다. 최근 노동부는 원청 씨앤앰을 불러 전향적인 입장에서 이 문제를 풀 것을 요청했으나, 씨앤앰은 대주주 핑계를 댄 것으로 알려졌다. 주주단 결정 없이 원청이 움직일 수 없고, 해고 문제도 풀릴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셈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18일 낮 12시 반께 서울파이낸스센터 20층까지 걸어 올랐다. 물론 MBK사무실은 닫혀 있었다.

   
▲ 18일 서울파이낸스센터 20층 MBK파트너스 사무실 앞. 노동자 60여 명은 이곳에서 윤종하 대표 면담을 요청했다. (사진=미디어스)

기자가 도착한 것은 20분 뒤인 12시50분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20층 앞에는 보안요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잡아타고 한층을 내려갔다. 출입하는 사람에 끼어 운 좋게 19층과 비상계단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층 빨간조끼를 입고 복도에 앉아 있는 노동자들이 보였다. 노동조합 간부에게 현장 상황을 전해 들었고, MBK파트너스 사무실 앞에 앉아 취재를 시작했다. 경찰도 곧장 현장에 도착, MBK와 대화를 주선하겠다고 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씨앤앰의 임원이 파이낸스센터 로비에 도착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리고 점거 두 시간이 넘어가던 때, 만남을 주선해보겠다던 남대문경찰서 관계자는 소득이 없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노동조합 간부들을 불러모아 “지금 안 나가면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노동조합은 “대답이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답했다. 노동자들은 연행과 벌금을 각오했다. 갈 곳은 이곳 아니면 저 밑바닥 거리뿐인 해고자 아닌가.

노동자들은 물 한 병조차 전달받지 못한 채 4시간 동안 구호를 외쳤다. 현장에는 물이 딱 한 병 있었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자신들 틈에서 취재하던 매일노동뉴스 기자에게 물을 권했다. 우리 이야기를 잘 써 달라는 이야기였다. 지난 6월부터 씨앤앰 사태를 쭉 취재한 기자이지만 부끄러움을 느꼈다. “똑같은 상황이다. 답답하다”는 노동조합 이야기를 핑계 삼아 기사를 쓰지 않았던 기억이 났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살려고 기자를 하는 게 아닌데.’

노동자들 사이에서 취재를 시작했다. 씨앤앰 성낙섭 전무, 한상진 상무, 홍명호 홍보팀장에 전화를 걸었다. 합쳐서 30여 차례가 지났을 때 한 상무가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든 씨앤앰 입장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홍보팀장이 연락하게끔 말해놓겠다”고만 했다. 성 전무도 같았다. 4시께야 연락이 닿은 홍명호 팀장은 “장영보 사장에게 보고하느라 연락이 늦었다”며 “공식입장은 협력업체 노사, 고용문제라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경찰이 연행작전을 시작하자 노동자들은 스크럼을 짰다. (사진=미디어스)

4시 반께 갑자기 경찰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세 명씩 스크럼을 짰다. 4시40분께 경찰은 작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작전에 방해가 된다”며 기자들을 밀어냈다. 경찰에 사지가 붙들려 끌려나온 노동자들은 서울파이낸스센터 로비에서 구호를 외쳤다. “MBK, 씨앤앰이 부당해고 해결하라!” 로비에 있던 한상진 상무는 기자와 만나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고만 말했다. 사모펀드와 경찰은 단 4시간 만에 노동자들의 농성을 정리했다.

유독 씨앤앰 현장에는 기자들이 없다. 씨앤앰은 방송업계에서 ‘힘’ 있는 사업자다. 그리고 언론은 웬만해선 동종업계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더구나 노동현장에 오는 매체는 극소수다. 금융자본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파이낸스센터 ‘점거’ 했는데도 20층 현장을 찾은 언론은 매일노동뉴스, 경향신문, 노동과세계, 뉴시스, 시사인, 미디어오늘 그리고 미디어스 정도.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서울신문은 다음 날 이 소식을 원고지 1.6매 분량으로 단신 처리했다.

몇 달 동안 월급 한 푼 못 받고 거리에서 먹고 자던 해고자들, 마지막 남은 물 한 병을 건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원청도 하청도 해결 못한다고 해서 결국 대주주 사무실을 찾아왔지만 4시간 만에 쫓겨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결국 1단짜리 단신이 됐다. 100일이 넘은 파업, 두 달이 넘은 노숙농성, 그리고 서울 한복판 점거까지… 노동자들은 기자들을 불렀고, 기다렸다. 내가 현장에 과하게 몰입한 건가, 아니면 당신들이 과하게 현장을 피해다니는 건가.

   
▲ 사지가 붙들려 끌려나오는 노동자도 여럿 있었다. (사진=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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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노란 리본 금지령’에 NO하는 제주 교육감

교육부 ‘노란 리본 금지령’에 NO하는 제주 교육감
 
교육의 목적은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만드는 데 있다
 
임병도 | 2014-09-20 09:18:3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9월 16일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에 공문을 내려보냅니다. △학교 앞 1인 시위 △세월호 관련 공동수업 △중식 단식 △노란 리본 달기 등 4가지 사항을 금지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교육부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고 가치판단이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편향된 시각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며 세월호 관련 4가지 사항에 대한 금지령을 내린 것입니다. 
 

 

 

 

 

9월 17일 제주도의회, 이석문 교육감은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단상에 올랐습니다. 제주도의회 교육 행정에 관한 질의에 응답해야 하는 공식적인 석상에 교육부 금지령을 위반하고 교육감이 노란 리본을 달았던 것입니다. 

교육부의 공문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하는 교육감이 왜 교육부의 공문을 무시하고 노란 리본을 달았을까요?
 

 

 


이석문 교육감은 CBS와의 인터뷰에서 교육부의 노란 리본 금지가 ' 과거 독재시대나 아니면 그 상황 속에 있는 느낌이다. 마치 등교할 때 양말 색깔은 안돼, 머리는 너무 길어서 안 돼 등 복장 규정을 하는 느낌이 강하다.'라며 비판했습니다. 

이석문 교육감은 '특별한 변화가 없고, 제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노란 리본) 계속 달고 있겠다'고 말했습니다.
 

 

 

세월호를 탔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은 제주로 수학여행을 가던 중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생애 처음으로 친구들과 제주로 수학여행을 간다고 들떠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가고 싶었던 제주 수학여행의 첫 번째 여행 코스인 '정방폭포'
며칠 전에 갔던 정방폭포 앞에는 안산 단원고 학생과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가는 즐거운 제주로의 수학여행,
그러나 안산 단원고 아이들의 꿈은 제주에 채 도착하지 못하고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교육부의 노란 리본 금지령은 우리 아이들이 죽어간 친구를 기억조차 못 하게 하겠다는 발상입니다. 생존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은 대학 입학 특례와 같은 특혜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왜 친구들이 죽어야만 했는지 그 진실이 궁금할 따름입니다. 

엄마,아빠보다 친구와 노는 것이 더 즐거운 사춘기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노란 리본을 금지하는 것은 친구를 떠난 보낸 미안한 마음에 대못을 박는 일입니다. 

'우리 친구를 두 번 죽이지 마세요'라고 절규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부가 생각하는 교육이 도대체 무엇인지 고민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석문 교육감은 '교육을 통해 함께 웃을 수 있고,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정책을 펼쳐나가겠다'며 제주 교육감 선거에 당선됐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웃고, 울어줄 수 있는 마음이 따뜻한 친구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고 함께 가는 선생님

우리 아이들도 이석문 교육감의 교육철학처럼 제주에서 따뜻한 교육을 계속 받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머리에 지식을 채워주는 선생님보다 따뜻한 인간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생님들이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교육의 목적은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만드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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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3일 위해, 500년 원시림 자르겠다는 강원도

 

[주장] 17일부터 가리왕산 벌목 시작... '투런 규정' 등 대안 있는데도 외면

14.09.19 18:36l최종 업데이트 14.09.19 18:36l

 

 

지난 17일, 가리왕산 벌목이 시작되었다. 어떤 말로 이 상황을 설명해야 하나. 대체 우리가 지금 무엇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있는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500년 원시의 세계가 잘려나가고 있다. 

500년 원시의 숲에서는 사람의 길은 희미하다. 대신 온갖 희귀식물과 야생동물을 품었다. 극상림, 녹지자연도 9등급, 생태자연도 1등급. 인간의 단어는 이렇게도 건조하지만 숲에 들어서는 순간, 고작 몇십 년 밖에 살아보지 못한 우리가 숲의 호흡으로 500년을 상상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이 세계를 잘라내야 하는가. 2주의 동계올림픽, 그것도 단 3일의 알파인 스키경기를 위해서 말이다. 그것이 500년 원시림보다 중한가. 이 나라의 정부와 강원도는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는가. 

활강스키경기장, 가리왕산 아니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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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리왕산의 나무 한 사람이 품을 수 없는 나무가 가리왕산에는 빼곡하다. 아주 어린 나무에서 500년을 훌쩍 넘은 나무까지, 이 숲에서 나무의 연대기를 볼 수 있다.
ⓒ 박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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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큰 나무는 이식대상에조차 끼지도 못했다. 9월 17일 가리왕산에서 잘려나갔다.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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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리왕산의 나무가 잘리고 있다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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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과 같은 국제스키경기의 성립 조건을 담은 국제스키연맹(FIS)의 규정에 따르더라도, 평창동계올림픽 활강스키경기장을 꼭 가리왕산에 건설하지 않아도 된다. '투런(2Run) 규정'을 적용하면 표고차 350m~450m의 경기장에서 두 번에 걸친 완주기록 합산으로 활강경기를 치를 수 있다. 이를 위해 기존의 스키장을 활용하면 된다. 

또한 국제스키연맹은 '750m 규정'도 허용하고 있어, 표고차 700m인 용평스키장에 50m구조물을 세워 활강경기를 진행하면 된다. 실제로 1998년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구조물을 세워 활강경기를 치른 전례가 있다. 수천억 원의 예산을 절감하고, 가리왕산도 보전할 수 있는 방안이다.

강원도내 방문객이 매년 줄어들어 부도 위기에 처한 스키장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알펜시아 리조트 건설로 인한 부채 이자만 매일 1억 원씩 납부하는 처지에, 또 개발을 하겠다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래서 이번에는 얼마의 부채를 더 얻을 것인가.

가리왕산은 조선시대부터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관리되었다. 산림청 희귀식물 자생지로,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던 곳이다. 숲의 천이(遷移) 마지막 단계인 극상림, 원시림 위주로 지정되는 녹지자연도 8~9등급 지역이었다. 그런 가리왕산에 평창동계올림픽특별법과, 산림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해제를 통해 개발의 물꼬를 트더니 결국 숲에 톱날을 들이민다.

'환경보호는 올림픽 운동의 가장 핵심적인 목표들 중 하나'라고 국제올림픽위원회는 밝히고 있다. 올림픽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에 맞게 가리왕산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일본 나가노는 동계올림픽 개최 1년 전까지 활강경기장 관련 협상을 치열하게 지속했고, 미국 덴버는 올림픽으로 인한 환경훼손 문제로 동계올림픽 개최권을 반납했다. 동계올림픽이 끝난 후 유령도시로 전락해가는 러시아 소치는 '올림픽 유치가 지역발전을 이룬다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가리왕산도 지키고 정선군민도 만족하며 경제적 부담감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선택해야 한다.

가리왕산 지키는 방법,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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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리왕산에 건설될 예정인 알파인스키장 조감도. 정상부 부근이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던 곳이다. 약 50ha의 숲이 베어질 예정이다.
ⓒ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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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게 해야 한다. 새가 지저귀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가득해야 할 숲에 전기톱 소리가 들리는 것은 옳지 않다. 숲은 숲답게 지켜져야 한다. 우리는 숲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다. IOC와 한국정부, 강원도가 평창동계올림픽 알파인 스키경기를 '투런(2Run)', '표고차 750m'규정에 따라 경기를 치르게 하면 된다.

그러면 가리왕산 활강스키장 건설을 위해 잘려나가는 5만8000여 그루의 나무를 지켜낼 수 있다. 100년이 넘은 나무들의 연결을 단절하지 않아도 된다. 그중 단 181그루만 이식해 보호하겠다는 이 황당한 생태계 복원계획을 버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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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가리왕산에 남아 있는 나무를 지켜야 한다.
ⓒ 박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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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에는 너덜지대가 많고 대규모의 풍혈지역이 존재한다. 때문에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식물과 주목, 왕사스레나무, 마가목 등 한국 희귀수목의 분포지이며, 나무의 연령대도 다양해 산림가치가 매우 높다. 

많은 곳이 흙과 돌, 바위가 서로 연결되어 뿌리를 지키고 있다. 가리왕산의 나무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숲도 하나의 군집을 이루고 있어 한 지역이 파괴되면 다른 곳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강원도와 정부는 대안을 눈앞에 두고도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환경도 지키고, 혈세도 아낄 수 있는 방안을 애써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묻고 싶다.

이를 위해 가리왕산으로 모일 것이다. 9월 내내 가리왕산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캠핑을 하고 있다. 돌아오는 27~28일, 숲 문화제가 바로 가리왕산에서 열린다. 이를 시작으로 우리 다시 이야기할 수 있다. 2018년에 평창에서 진행되는 동계올림픽은 아직 4년의 시간이 남았다는 것을 말이다. 

가리왕산을 보호하고 예산을 절감하고, 동계올림픽을 추진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고 추진하는 데 이 시간은 충분하다. 즉각 가리왕산 벌목을 중단하고 FIS 규정상에 있는 투런(2Run), 표고차 750m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을 요구하자. 그래서 우리가 꼭 가리왕산을 지켜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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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오는 27일~28일 가리왕산을 지키는 숲 문화제가 열린다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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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배보람기자는 녹색연합에서 활동하는 활동가 입니다. 녹색연합 홈페이지에도 이 글이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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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하나, 북한 출전 전 경기 남북공동응원 펼친다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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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4/09/20 09:05
  • 수정일
    2014/09/20 09:05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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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AG> 통일응원단 ‘아리랑’ 40명 인천 상주 응원
오삼언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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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9.19  14:3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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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레하나 '아리랑' 응원단이 18일 경기도 화성종합경기타운 주경기장에서 열린 중국과 파키스탄 남자축구 예선 경기에서 응원을 펼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오삼언 통신원]
(사)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이하 겨레하나, 이사장 성유보)는 인천아시안게임 남북공동응원단으로 통일응원단 ‘아리랑’을 구성해 응원을 펼친다.

 

‘아리랑’ 응원단은 인천 추진위 공동응원단과 함께 활동하면서도 40여명의 인천 상주 응원단을 구성해 북한 선수들이 출전하는 모든 경기에서 남북공동응원을 펼칠 계획이다.

‘아리랑’ 응원단의 대표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아리랑’ 응원단에서 기획단장을 맡은 바 있는 소영재(48세)씨가 맡으며 응원단장은 2013년 동아시아컵대회 통일응원단장으로 활동했던 이원규(40)씨가 맡는다.

소영재 응원단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북측 선수들이 경기를 펼치는 만큼 따뜻한 동포애로 격려하고 우리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밑거름이 되는 응원을 하기 위해 ‘통일응원단-아리랑’을 구성하게 됐다”고 밝혔다.

 

   
▲ 북한 선수들과 손인사를 나누고 있는 겨레하나 '아리랑' 응원단. [사진 - 통일뉴스 오삼언 통신원]
 
   
▲ 북측 남자축구 선수들이 '아리랑' 응원단의 응원에 화답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오삼언 통신원]
이원규 응원단장은 “남북 화해와 교류의 물꼬를 트기 위해 열정적인 응원을 펼치면서 시민분들의 호응을 이끌어낼 것”이라며 “북측 선수들이 펼치는 모든 경기를 응원하는 만큼 북측 선수들이 ‘아리랑’ 응원의 힘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리랑’ 응원단은 ‘우리는 하나’라는 문구가 적힌 빨간 색 티셔츠와 짝짝이 응원도구를 이용하며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와 ‘힘내라, 코리아’, ‘잘한다’ 등의 구호를 함께 외치며 북한 선수들을 격려한다. 응원가로 ‘우리는 하나’ 등의 노래도 부를 계획이다.

이미 ‘아리랑’ 응원단은 19일 개회식 이전에 열린 북한의 세 경기를 모두 응원했다. 개회식 이후 본격적으로 구성되기 전 10여 명이 응원을 펼친 것.

 

   
▲ 16일 인천 남동아시아드럭비경기장에서 열린 북한과 베트남 여자축구 응원 모습. [사진 - 통일뉴스 오삼언 통신원]
 
   
▲ 18일 북한-파키스탄 남자축구 경기가 끝난 뒤 이원규 응원단장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오삼언 통신원]
15일 인천 숭의축구전용구장의 북한과 중국 남자축구, 16일 인천 남동아시아드럭비경기장에서 열린 북한과 베트남 여자축구, 18일 경기도 화성종합경기타운 주경기장에서 펼쳐진 중국과 파키스탄 남자축구 예선 경기들을 빠짐없이 응원했다.

 

통일응원단 ‘아리랑’은 상주하는 40여명의 응원단으로 개회식 이후 열리는 북한의 전 경기를 관람, 남북공동응원을 펼칠 계획이다.

 

[성명] 인천아시안게임 남북공동응원으로 화합 축제돼야

인천아시안게임이 오늘 개회식을 갖고 막을 올린다.

‘평화의 숨결, 아시아의 미래’라는 슬로건에도 걸맞고 대회 흥행에도 필수적인 북한 응원단의 방문 문제가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개회식이 열려 아쉬움이 크다.

‘관중없는 대회’라는 우려가 나올만큼 인천아시안게임이 2002년 부산대회와 판이하게 국민의 관심이 저조한 가장 큰 이유도 북한 응원단의 방문이 무산된 까닭이다.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은 10월 4일까지 인천을 중심으로 9개 도시에서 1만 4천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하며 45개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국가 선수들이 모두 참여하는 첫 대회라고 한다.

그야말로 45억 아시아인들의 화합을 다지는 장이 되는 데서 남북의 공동응원단이 함께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를 외치는 광경보다 상징적인 장면은 없을 것이다.

정부가 인천아시안게임이 막을 내릴 때까지 북한 응원단의 방문이 성사될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하길 바란다.

남북관계가 꽉 막혀 있는 상황에서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에 북한이 선수단을 보낸 것은 환영할 일이다. 우리나라에 와서 북한 선수들이 경기를 펼치는 만큼 따뜻한 동포애로 격려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

(사)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는 통일을 염원하며 인천아시안게임 전 기간인 16일간 상주하는 통일응원단 ‘아리랑’을 꾸려 북한 선수들이 펼치는 모든 경기를 응원할 계획이다.

(사)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는 남북 화해와 교류의 물꼬를 트기 위해 열정적인 응원을 펼치면서 시민분들의 참여와 지원을 호소할 것이다. 인천아시안게임이 성공적으로 치러지고 한반도와 아시아, 나아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열성을 다하겠다.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도 남북공동응원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2014년 9월 19일 
(사)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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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진-하산 개발사업'과 남북관계개선사업

'라진-하산 개발사업'과 남북관계개선사업
 
<분석과전망>라진에 북적이는 러시아와 중국,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한성 자유기고가 
기사입력: 2014/09/19 [22:05]  최종편집: ⓒ 자주민보
 
 

 

우리나라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 5명이 북러 경협사업인 라진-하산 개발사업과 관련하여 북-중과 북-러 접경지역을 시찰하고 있다. 18일에 출국했으며20일까지 3일간 돌아보게 된다북러 합작사업에 우회적으로 참여를 하게 된 우리 기업인들에 대한 국회차원의 지원책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다.

라진-하산 개발사업을 위해 지난 2월 한국기업인 시찰단이 방북을 하고 7월에는 정부 부처와 민간기업 관계자들로 구성 된 대규모 실사단이 방북을 한 것에 이어지는 중요한 행보이다.

 

우리 민간기업이 우회적으로 참여하는 북러의 라진-하산 개발사업

 

라진-하산 개발사업은 러시아 하산과 북한 라진 사이의 철도를 개보수하고 북한의 라진 항을 현대화하여 그것을 국제적인 물류사업의 거점으로 되게 하는 사업이다.

지난 2008년에 북러 합작사업으로 확정되었다그 이후 하산과 라진 항 사이 54km 구간 낡은 철로는 새것으로 교체되었으며 정차역들은 정비되었다.

라진 항 현대화 작업도 동시에 추진되었다부두는 콘크리트로 재포장되었으며 석탄을 싣는 이동식 크레인의 레일과 연료탱크가 새롭게 설치되는가 하면 항구의 수심도 더 큰 배가 드나들 수 있도록 9m에서 12m로 깊어졌다.

 

라진-하산 간의 철로는 주로 석탄 등 물자교역에 이용될 철로지만 그 의의는 그것들을 뛰어넘는 각별함을 갖고 있다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한반도 종단철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더 나아가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게 되는 전망을 갖고 있는 것이 라진-하산 간의 철로이다.

 

북중러는 물론 우리나라도 그 범주의 중심에 든다부산에서 독일 함부르크까지의 거리가 19km이다배로 가면 27일 걸린다그렇지만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하면 열흘이면 충분하다운반 비용도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라진 항도 전략적 의의를 갖는 것은 마찬가지이다라진 항은 겨울에도 얼지 않는 부동항이다장기적으로는 아시아와 유럽 사이의 상업노선이 구축되게 될 때 그 중심이 라진 항이다당장에는 러시아 광산지역과 아시아 항구들이 연결되는 최단 경로가 된다.

 

라진-하산 개발사업에 북한보다 러시아가 더 적극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이다개발사업에 드는 총사업비 34천만 달러 전액을 러시아가 다 부담한다러시아가 라진-하산 개발사업을 시작하면서 북한으로부터 50년간 라진항 3호 부두의 사용권을 확보하게 되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라진항의 중요성은 러시아에 국한되지 않는다중국 역시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11년부터 라진항 1호 부두를 통해 중국 남방으로 석탄을 수송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일찌감치 지린성 훈춘에서 라진항까지 50km의 도로를 개보수했었다다른 부두도 눈독을 들이고 있는 중이다.

 

남북관계개선은 북방경제 진출의 제1조건

 

라진-하산 개발사업은 우리들에게는 어떻게 보면참 가슴 아픈 사업이다그 사업은 애초 한북러 합작사업이었다.

 

북러가 합작하기로 하기 1년 전인 2007년 한북러가 합작사업으로 결정을 했었던 것이다김대중정부 시기 남북 6.15공동선언에 기초하고 2007년 노무현 정부시기 남북이 합의한 10.4선언으로 인해 이루어진 북방경제의 대표적인 사업이었다.

 

그렇지만 이 사업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중단되고 말았다이명박정부가 6.1510.4를 전면부정해버린 탓이었다남북간의 교류사업 거의 대부분은 이명박 정부의 5.24조치로 인해중단되는 고통을 감수해야했다.

 

그러나 5.24조치의 위용은 지난해 9월 라진-하산 간 철도가 개통되는 장면 앞에서는 그 위력을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5.24조치가 아무리 맹위를 떨친다하더라도 러시아와 중국이 라진에 활발하게 북적이는 것에서 번히 확인되는 경제적 손해를 언제까지고 방치할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우리정부가 나서서 라진-하산 개발사업에 우리의 민간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텄다.

2013년 11월 13일이었다그날 박근혜대통령이 방한한 러시아 푸틴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라진-하산 개발사업에 한국 기업들이 참여하도록 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이다우회적인 방식이기는 했다.

 

코레일과 포스코현대상선 등 3개 민간기업이 발 빠르게 뛰어들었다마치 기다렸다는 태세 그 자체였다라진-하산 개발사업을 위한 북러 합작회사인 라손콘트라스의 러시아 측 지분 70% 중에서 절반 정도를 인수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3개 민간기업은 곧바로 컨소시엄을 구성했다그리고 이어 지난 2월 11일 18명의 시찰단을 꾸려 방북 길에 올라서는 라진-하산 개발사업을 시찰하고 돌아왔다. 7월에는 정부관계자까지 대동하는 38명의 거대한 실사단을 꾸리고 방북을 했다.

 

쉬운 길 놔두고 돌고 돌아간 길이었다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맺었던 남북합의사항이 부정당하지않았더라면 러시아와 대등하게 더 나아가 중국보다 더 성과적으로 그 사업의 한축으로 역할을 다했을 것이었다.

 

이번 국회의원 시찰단의 시찰지역에는 북한 라진 항이 제외되어있다우회적인 참여방식이 빚어낸 결과이자 근본적으로는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의 부산에서 출발해서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철도가 연결돼서 가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꿈을 꿔왔습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라진-하산 개발사업에 우리 민간기업이 참여키로 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난 뒤 박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박 대통령에게서 자주 확인되는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의 전형이다하루라도 빨리 남북관계개선의 길이 열린다면 힘 있게 추진해야할 중차대한 북방경제사업을 남 얘기 하듯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북러 간의 대표적인 경협사업인 라진-하산 개발사업은 지난 2001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이뤄낸 -러 모스크바 선언에 기초해 진행되고 있는 사업이다.

이 라진-하산 개발사업에 우리 기업인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더 나아가 박근혜정부가 자주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창조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역할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나와야한다.

 

그 방법은 이미 나와 있다박근혜대통령의 대북정책이라고 하는 <한반도신뢰프로세스>에 그대로 적시되어있다. 6.15남북공동선언 10.4선언 등 기존에 남북이 합의한 것들을 존중한다는 것이 그것이다남북관계개선이다라진-하산 개발사업에서의 우리민간기업의 성과를 보장해줄 수 있는 결정적인 몫이 박근혜정부에게 있는 결정적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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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만 아시나요, '노래 게' 등 200여종

꽃게만 아시나요, '노래 게' 등 200여종

조홍섭 2014. 09. 18
조회수 3128 추천수 0
 

인터뷰 `게 도감' 낸 갯벌 전문가 백용해 녹색습지교육원장

20여년 간 전국 갯벌 '내 집처럼', 1971년 이후 첫 대중적 도감 나와

노래하는 달랑게, 뒤로 걷는 닭게…우리나라에만 200여종, 55종 수록

 

05136529_P_0.jpg» 백용해 녹색습지교육원장. 사진=조홍섭

 

갯벌 생태체험에 간 아이가 지르게 될 첫 외침은 아마도 “야, 꽃게다!”일 것이다. 식탁에 오른 얼룩덜룩하고 커다란 집게를 가진 꽃게와는 분명 다르단 걸 느꼈겠지만, 어쩌랴 아는 게 이름이 그것밖에 없으니.

 

인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갯벌에서 게와 놀았던 백용해(위 사진) 녹색습지교육원장도 ‘큰게’ ‘작은게’ ‘손큰게’ ‘손작은게’로 구분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가 분류의 필요를 절실히 느꼈던 것은 나중에 아마추어 사진가가 돼 게 사진을 정리할 때였다. 이름을 알기 위해 전문가를 찾았고 무작정 논문을 읽기 시작했다.
 

갯벌 생태에 관한 공부에 빠진 그는 20여년 동안 전국의 갯벌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이공계 출신도 아니고, 관련 분야 박사 학위도 없지만 이제 갯벌 생물에 관해서라면 정부도 그에게 자문한다. 국내 최고의 갯벌 전문가 가운데 하나인 백 원장이 최근 게 도감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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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점에 가면 야생화와 어류는 말할 것도 없고 버섯, 이끼, 물벌레 도감까지 다양한 분야의 도감이 나와 있다. 지난 5일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위치한 녹색습지교육원에서 만난 백 원장은 “게 분야는 그렇지 않다”며 책을 한 권 보여줬다.

 

원로 동물분류학자인 김훈수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은 1971년 문교부의 한국동식물도감 제14권이었다. “국내엔 이 도감이 유일한데 일반인이 보기엔 너무 어려워요.” 사실 많은 갑각류 연구자들은 주로 일본 도감을 참고한다. 그는 “어떤 특징으로 비슷한 게의 차이를 구분할지 알려줄 친절한 도감이 현장에서 절실했다”고 도감을 낸 이유를 말했다.
 

방게.jpg» 방게. 눈밑 돌기로 비슷하지만 다른 종인 참방게, 수동방게 등과 구별된다.

 

“방게만 해도 방게·참방게·수동방게·갈게 등 과거엔 아종으로 분류했지만 이제는 별개 종이 된 비슷한 모양의 게가 많습니다. 현장에서 펄이 묻은 상태로는 종을 가려내기가 정말 힘들지요. 그래서 눈 밑 돌기 모양과 마디 개수 등 동정(생물의 분류학상의 소속이나 명칭을 바르게 정하는 일)을 위한 열쇠를 종마다 제시했습니다.”
 

게 가운데 우리에겐 꽃게가 가장 친근하지만 사실 꽃게는 특이한 게이다. “게들은 유생 시기에 배갑(등딱지)이 꼬리 구실을 해 헤엄쳐 다니지만 자라면 한곳에 붙박여 삽니다. 장거리 회유를 하는 꽃게는 예외적이지요.”
 

꽃게.jpg» 모래 밑에 숨어 먹이를 노리는 꽃게. 다른 게와 달리 장거리 회유를 한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에 게가 200여종이나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번에 도감을 낸 갯벌의 55종 말고 눈에 잘 띄지 않는 바닷속에 더 많은 게가 서식한다”고 말한다. 종이 다양할뿐더러 행동도 갖가지다.
 

달랑게.jpg» 귀뚜라미처럼 다리 돌기를 이용해 소리를 내는 달랑게.

 

달랑게는 소리를 내어 소통하는 ‘노래하는’ 게이다. 모래밭에서 잽싸게 내달리는 이 게는 집게발 안쪽에 난 돌기를 다리 마디의 돌기와 마찰시켜 소리를 낸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 모래밭에 엎드려 있으면 달랑게들이 와글와글 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속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어요. 의사소통을 하는 거죠.”
 

방게.jpg» 갈대의 잎을 즐겨 먹는 방게. 번식기 등 특정 시기에 영양 섭취를 위해 식물을 먹는 게가 여럿 있다.

 

갈댓잎을 좋아하는 방게처럼 풀을 뜯어 먹는 게도 여럿 있다. 모든 게가 옆으로 걷는 것도 아니어서 밤게는 앞으로, 닭게는 뒤로 간다. 또 먹다간 자칫 큰일 날 게도 있다. 치명적인 독성을 지닌 아열대 바다의 가시바위부채게(가칭)가 이미 제주 성산까지 북상했다.
 

밤게.jpg» 다른 게와 달리 앞으로 걷는 밤게.

 

악마게.jpg» 치명적 독성을 지닌 태평양 열대 산호초에 사는 악마게. 제주에도 비슷한 독성 게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붉은발말똥게는 그에게 뜻깊은 게이다. 1941년 일본인 학자 가미타가 국내에서 보고한 이후 자취를 감췄지만 2002년 한강 하구 습지를 조사하다 백 원장이 61년 만에 다시 발견했다. 환경부 멸종위기종 2급으로 지정된 이 게는 이후 사라지는 강 하구를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공신이 됐다.
 

붉은발말똥게.jpg» 강하구의 하천이 흘러드는 곳에 서식하는 붉은발말똥게. 멸종위기종 2급인 보호종이다.

 

그런데 해군기지 건설공사가 벌어지던 제주 강정마을에도 이 게가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실이라면 기지건설 반대운동이 힘을 얻게 된다. 조사해 보니 붉은발말똥게가 아니라 두이빨사각게였다.

 

두이빨사각게.jpg» 제주 강정섬에서 발견된 두이빨사각게. 보호가치가 높지만 서식 하천은 해군기지 건설로 사라졌다.

 

그런데 이 게도 1941년 일본인 학자의 보고 이후 채집 기록이 없는 종인데다 제주 남부가 분포의 북한계지여서 보호가치가 충분했다. “당국은 두이빨사각게를 모조리 잡아 대체 서식지로 옮겼는데 가 보니 모두 사라졌습니다.”
 

펄 갯벌에 가장 흔한 게인 칠게도 위험하다. 칠게는 낙지가 워낙 좋아한다. 최근 어민들은 낙지를 대량으로 잡는 어법인 주낙과 통발의 미끼로 칠게를 잡아 팔아 겨울철 쏠쏠한 소득을 올린다. 하지만 그물로 칠게를 대량으로 잡다 보니 “이제 포획의 양과 시기를 규제할 때가 됐다”고 백 원장은 말한다.
 

칠게.jpg» 펄 갯벌에 가장 흔한 게인 칠게. 낙지 미끼로 남획되고 있다.

 

우리나라 갯벌은 외국과 달리 사람의 이용 강도가 매우 높다. 그런데도 수백년 동안 이용해 온 비결은 뭘까. 그는 “자연에 순응한 현명한 이용”이라고 단언한다. “물때 때문에 한 달의 반은 휴어기가 되지요. 문제는 요즘 시도 때도 없이 남획을 하고 갯벌체험을 하면서 이런 지속가능한 이용이 깨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범게.jpg» 카리스마 있는 인상을 지닌 범게. 지구상에서 황해 갯벌에만 서식하는 1속1종의 게로서 시급히 보호해야 하는 종이다. 모래에 주로 서식하나 바닷모래 채취로 서식환경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그는 갯벌을 관리하고 교육할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웃도어 열풍을 타고 무얼 할지 모르고 무작정 갯벌에 오는 도시민이 많습니다.

 

그런데 지자체는 눈에 보이는 시설을 짓는 데 급급할 뿐 탐방객을 안내하고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는 소홀합니다. 세계적인 갯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국민은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백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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