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임 아나운서.
내가 대학 다닐때, 어쩌면 그 이전부터 MBC 라디오 방송에서《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
혁명이 일이 아니라 로망인 것처럼 보인 사람들에게, 아니 어쩌면 진짜 혁명가들에게도, 밤은 찾아왔을 것이고, 그들은 그들이 낮동안 부르짖던 무거운 구호와는 전혀 다른 조용한 이 아나운서의 음성에 끌렸을 것이다. 분위기 있는 용모에, 착한(듯한) 마음씨에, 아나운서로는 드물게(아니, 전국의 아나운서 분들께 죄송합니다만,) 사회성 있는 행보 - (그는 MBC 노동조합의 열렬 조합원이었다.)
아직 서슬퍼른 레드컴플렉스가 이 사회의 저류를 흐러던 때에, 어느 고별 방송에서였다던가, <인터내셔널>가를, <철의 노동자>를, 영화음악이랍시고, (영화음악인건 분명하지) 공중파 방송에서 틀어주었다던 사람.(물론 피디가 더 대단하다.) 이때문에(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TV는 꿈도 못꾸고 라디오만 나오고, 또 그나마 여러번 종영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던 사람.
미인은 박명이라던가, 2004년 7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매다, 결국 8월 4일날 저세상으로 갔다고 한다. 2년이 지난 지금, 물론,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 사실이 포털사이트 다음에 올라와 있길래, 나도 여기서 한 번 언급하고 지나간다.
이 사람, 그런데, 이름난 4년제 대학 나온, 아마도, 집도 잘산다던 사람. 대학 다닐때 자기 집 가정부 아주머니랑 계급의식에 대해 얘길 나눴다던가?(이건 풍문으로만 듣던 얘기라 확실치 않음.) 어떻게 생각하면, 이 사람이 보인 첨예한 사회성도, 이 사람의 그런 유한계급의 풍모에서 나온 건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으리라. 나도 그렇게 많이 생각했고.
이런 경우 사람들은, 십중 팔구 세계관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뭐 고민할 것 있겠는가. 이 사람이 '진짜'이든, '사이비'이든, 그건 이 사람의 진심만이 아는 문제인걸.
아래, 어느날 방송의 오프닝 멘트라고 하는군.(daum에 난 기사에서 퍼왔음. 사진도 거기서 퍼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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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22일 고공 크레인
새벽 세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 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 겠다구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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