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KBS1의 대하드라마를 내가 최초로 본 건, 아마도 <<노다지>>가 아닐까 싶다. 내 초등학교때니까 80년대에 만들어진건데, 지금 생각하면 대담하게도, 1894년부터 1950년대까지를 다루었다. 그거 끝나고 나서 <<토지>> 했다. 이것도 노다지랑 거의 비슷한 시기를 다뤘다. 그거 끝나고는 나도 이래저래 KBS1 대하드라마를 멀리하게 됐는데, 나 대학때는 <<용의눈물>>인지 뭔지 이성계 이야기도 다루었다고 하고, 그리고 <<태조 왕건>이라고, 말 그대로 고려태조 왕건을 다루어서 히트를 치기도 했다.

 

2. 이번에 하는 <<서울, 1945>>는 물론 해방전후의 이야기인데, 웃기게도 주인공들은 모두 함흥 출신이다. 그러니까 함흥이라는 '고향' 출신 사람들의 일대기가, 함흥에서 시작해서 '경성'이라고 하는 전국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는 해방전후사를 다룬 여느 드라마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인적 네트워크' 이야기가 하나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해방전후사를 정치사, 혹은 경제사로 볼 때의 상투적인 이야기들, 곧, 일본의 패전과 전후 처리문제를 둘러싼 미소의 대립, 한국전쟁, 친일파 청산 문제 등등은 모두 많이 알고 있는 이야기일텐데, 그런 거시사 말고 사람들의 전형적인 인간관계의 문제, 곧 미시사라고도 할 하나의 사회사가 이 드라마에 있다는 거다.

 

2.1. 말하자면 이렇다. 함흥이 생긴 이래 최고 천재라고 하는 운혁(최수영)이는 부모님과 누님의 희생으로 당시로서는 하층민이 언감생심 꿈꾸기도 힘들었을 경성제국대학까지 진학하게 되고, 또 그 기대를 저버리랴, 재학 중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다. (고등문관시험은 오늘날의 사법시험을 말하는 것 같다. 사법시험의 권위가 수천명이 합격하는 시험으로 하락한 것은 1990년대 이후 사법개혁으로 인한 것이다.) 함흥의 유지 문자작(김영철)의 딸인 석경(소유진)이가 운혁이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멜로드라마의 정통문법에 의한 것이기도 하고, 엄연한 역사의 현실이기도 할 것이다. 나아가서 운혁이와 같은 하층민 출신의 개희도 운혁이를 좋아하는데, 여느 멜로드라마처럼 운혁이는 개희를 선택한다. 실상 운혁이 집안과 개희 집안은 모두 문자작 집안에 복속되어 사는 처지. 운혁이가 고등문관시험 합격했을 때 그의 신원보증을 해준 것도 문자작이다. 한편 문자작의 동생 문동기는 사회주의 운동가가 되어 친일파인 형을 등지게 되는데, 운혁이는 문동기를 선생으로 모시면서 사회주의자가 된다. (이외의 인간관계가 너무 많아서 여기 적는 것은 의미가 없을 듯하다.)

해방이 되고 함흥에 소련군이 진주했을 때 문자작은 동생인 문동기에 의해 체포되는 운명을 겪는다. 그러나 문동기는 형의 처형을 놓고 갈등한다. 기실 이전에 문자작은 문동기를 형제라는 피붙이에 대한 끔찍한 애착으로 대했던 것이다. 물론 문자작이 사회주의를 혐오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도망다니던 문동기에게 문자작이 은밀히 한 말, 곧, "내가 사회주의가 뭔지 모르지만, 네가 원하는 세상이 오면 그땐 내가 죄인이 되겠지. 그땐 네가 나를 봐줘야 한다."라는 말의 울림은 문동기를 옥죈다.

 

2.2 인민위원회의 서슬이 남한보다 훨씬 심했던 북한 지역의 특성상, 문자작은 자살을 택하게 된다. 이에 따라 문자작의 딸 석경은 울면서 자신의 어머니의 고향이기도 한 동경으로 떠나기로 하는데... 떠나는 배 앞에서 석경은 운혁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린다. 이때 운혁이가 말하길,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마시오. 당신에겐 피아노가 있지 않소." 실상 석경은 조선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였던 것. 그런데 껴안고 있는 두사람을 우연히 개희가 보게 되고...

 

3. 이렇게까지 적고 보니, 역시 여느 드라마와 다름없는 멜로 물이 되고 말았다. 또한 괜히 드라마 광고해준게 되고 말았고. 더이상 쓰는 건 무의미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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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0 01:34 2006/04/10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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