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 약세

2006/01/18 19:39

프레시안에 미국 경제의 이상조짐에 대한 글이 연일 올라오고 있다. 내용은 대개 최근의 원화 환율하락에 대한 것인데, 간단히 말해서 원화의 환율이 하락(현재 980원/1달러 선까지 갔대나)하는 현상의 궁극적 원인은 달러화 약세에 있다는 것이고, 달러화의 약세는 미국 경제의 이상을 알리는 징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 지구촌의 소비자 구실을 하고 있으며, 동시에 전 세계 저축의 10%가 몰릴 정도로 전 세계의 투자처 구실도 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쌍둥이 적자, 곧 재정적자와 경상수지적자가 심화되어 종국에는 전 세계가 연쇄도산을 하고 말 것이라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1929년의 대공황과 같은 세계 대공황이 올 것이다. 이 경우, 대공황기 식민지 조선 식자층의 생활상을 다룬 소설 <레디메이드 인생>에서 그리고 있는 것처럼, 가장 피해가 큰 집단은 결국 비정규직 먹물계급을 포함한 '기생프로레타리아'일 것이다. 일찌감치 시골에 땅사서 농사짓는 것이 답일까? …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아래, 프레시안에서 퍼온 기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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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의 몰락, 그 스산한 예언

[이봉현의 경제스케치] 금융공포의 균형
등록일자 : 2006년 01 월 16 일 (월) 09 : 22   
 

  10원짜리 동전이 40년 만에 바뀐다고 한다. 원료인 구리와 아연의 가격이 올라 동전 액면가치의 4배나 돼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금이나 은 같은 실물로 만들어졌던 화폐가 가치는 없지만 지폐처럼 정부가 권위를 부여한 법화(法貨)로 바뀐 이래 화폐의 제조원가, 즉 실질가치는 늘 액면가치를 밑돌았다. 법화의 개념이 없었던 로마시대에도 네로 황제가 은화의 은 함량을 액면가치보다 적게 만들도록 했다는 것을 보면, 실질가치 이상의 액면가치로 화폐를 발행하게 하는 유혹이 그 뿌리가 깊음을 알 수 있다.
  
  달러의 신뢰도 상실이 낳는 파장
  
  지폐는 정부가 발행한 차용증서에 불과하지만 신뢰를 바탕으로 가치가 유지된다. 신뢰가 바로 실질가치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신뢰를 갉아먹어 위기에 몰리고 있는 화폐가 있다. 바로 기축통화라고 불리는 미국 달러다. 올 연초부터 원/달러 환율이 8년 만의 최저까지 떨어져 국내 수출기업과 중소기업들이 울상을 짓고, 당국이 연일 수억~수십억 달러를 들여 환율 방어에 나서는 '법석'을 떠는 것도 결국은 달러의 신뢰도 상실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6%를 넘어섰다. 일란성 쌍둥이라 할 수 있는 재정적자와 합치면 국내총생산의 10%를 훌쩍 뛰어넘었지만, 줄어들기는커녕 해마다 불어나고만 있다. 경상적자가 GDP의 5%를 넘으면 외환위기가 온다는 게 동남아, 남미 같이 호되게 당해본 나라들의 경험칙이다. 쌍둥이 적자는 한마디로 실력보다 소비를 많이 했다는 얘기다. 저축률이 1%대로 역대 최저인 상태에서도 미국의 국민과 정부는 시간당 7000만 달러, 연간 6000억 달러를 빌려 레저용(RV) 승용차나 디지털TV를 장만하고 해외에서 전쟁을 벌이는 데 쓰고 있다.
  
  이런 빚잔치가 가능한 것은 '달러의 리사이클링'이라 불리는 국제 자본흐름 덕분이다. 1990년대에는 강한 달러정책에 이끌려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간 민간자본이 미국의 경상적자를 보전해줬지만, 미국인들이 투자보다 소비에 정신이 팔려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진 2000년대에는 일본, 중국, 한국 등 아시아 국가 중앙은행들이 대신 미국 경상적자를 보전해주는 역할을 해 왔다. 이들 아시아 국가 중앙은행들이 대미 수출로 번 막대한 달러를 미국 국공채 같은 미국 자산에 투자한 것이다.
  
  미국의 빚잔치가 유지되는 구조
  
  아시아 중앙은행들이 이렇게 한 것은 자국 통화의 절상(달러가치 급락)을 막고 미국의 소비경제를 유지해 계속 수출증가세를 유지하자는 계산에서다. 아시아는 생산하고 미국은 아시아의 돈을 빌려 소비한다는 구조다. 미국은 좋게 말해 세계의 '성장엔진' 노릇을 하고 아시아는 달러 가치를 지탱해준다는 암묵적 균형이 만들어진 것이다.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공멸의 두려움이 이 균형을 유지해준다는 뜻에서 이를 '금융공포의 균형'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달러의 위기는 1971년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달러의 금태환(요구가 있으면 금으로 바꿔주는 것) 정지를 선언했을 때부터 예정된 것이란 얘기가 설득력이 있다. 발권이 금 보유란 속박을 벗어나면서 '지폐의 시대'가 왔고, 국제교역의 불균형을 간단히 달러를 찍어 벌충하는 도덕적 해이가 도를 더해가며 미국의 경상적자가 부풀기 시작했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미국 정부는 인쇄라는 '굉장한 기술'을 갖고 있는데, 이 기술로 돈 들이지 않고도 원하는 대로 달러를 찍어낼 수 있다"고 비꼬았다.
  
  리처드 던컨은 그의 책 〈달러의 위기-세계경제의 몰락〉에서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 이후 30년 동안 미국에 3조 달러 이상의 누적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됐다"며 "미국의 부채 대부분이 상환될 수 없기 때문에 현재 (위기가) 터지기 직전"이라고 밝혔다. '카드(달러)로 지은 경제'는 기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위기의 뇌관은 아시아 등 경상수지 흑자국의 중앙은행들이 더 이상 미국 달러 자산을 사줄 수 없을 때 터지게 된다. 그래서 2조 달러 이상의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고 그 중 60~70%를 미국 단기 국채 등에 투자해 온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중앙은행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국제금융시장에서 주시되고 있다.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아시아 국가들
  
  가장 두려운 유령은 '외환 보유액 운용의 다변화'다. 지난 10일 중국의 후샤오렌 외환관리국장이 "외환의 자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외환투자 영역을 넓히겠다"고 한 것이 다변화를 암시한 것으로 해석돼 한바탕 시끄러웠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이따금씩 나오는 중국의 외환운용 다변화 관련 발언에 대해 "미국의 위안화 절상압력에 대한 저항의 성격이 있는 것 같다"며 "하지만 무역구조를 고려할 때 달러를 벗어나 다른 데 투자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에는 한국은행이 외환보유 통화구성의 다변화를 언급했다가 한은발(發) 국제금융 쇼크를 일으킨 적도 있다.
  
  중앙은행이 약해질 것이 뻔한 통화로 표시된 자산을 들고 있는 것은 일종의 국부유출이다. 달러 가치가 10% 하락하면 한국은 GDP의 3%, 싱가포르와 대만은 8%의 자본손실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외환보유액을 달러 위주에서 금이나 유로 등으로 다변화하고 싶지만 너도나도 그러면 달러가 붕괴되고 국부도 반토막난다는 점에서 아시아 국가들은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금융 저널리스트 애디슨 위긴은 〈달러의 경제학(The Demise of the Dollar)〉에서 "미국 소비자들이 과소비에 중독돼 있듯이 (대미) 수출국들은 미국으로의 상품 수출에 중독돼있다"며 "구매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판매자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체제가 굴러갈 수는 없다는 데 고민이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현재 GDP의 6%인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8%에 이르면 달러에 대한 신뢰가 붕괴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현재의 적자 규모로도 세계 잉여저축(경상흑자)의 80% 이상을 빨아들이고 있는데 이 비율이 8%를 넘어서면 세계의 잉여저축 전부를 자본수지 흑자로 흡수해야 보전이 된다는 것이다. 현재의 경상적자가 계속되면 2008년까지 필요한 해외자금 수요가 4조 달러에 이르고 2조4000억 달러인 아시아 중앙은행들의 외환보유액은 2배인 5조 달러가 돼야 한다는 계산이다. 실현가능하지 않은 현실이 불과 2~3년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 결과는 미국의 '외환위기'다. 자국 통화를 해외부채로 갖고 있는 미국의 외환위기는 미국 조폐창의 인쇄시설을 24시간 가동해 달러를 찍어서 해외 중앙은행에 진 빚을 갚는 상황을 말한다. 현재 미국이 갖고 있는 대외준비자산은 부채상환 요구에 단 10분도 버티지 못할 만큼 적다. 이런 점에서 미국은 세계 어느 나라도 갖고 있지 못한 특권(시뇨리지: 지폐생산 비용과 액면가의 차이 만큼의 이익)을 누리는 것이지만, 세계경제는 실타래처럼 엉클어질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증발된 통화량만큼 달러 가치는 수직 하락할 것이고, 미국이 해외자금을 끌어들이려면 미국 내 금리는 치솟게 된다. 이럴 경우 부동산 등 자산거품이 꺼지고 소비도 줄어들며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오게 된다는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이런 위기가 현실화될지, 아니면 국제적인 협조와 조정을 통해 해소될지는 누구도 알기 어렵다. 그러나 애디슨 위긴은 아직도 많은 미국인들이 "느리게 성장하는 경제는 돈을 유출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는 돈을 유입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가하게' 말하는 한 위기의 해소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아시아판 유로로 '아쿠(ACU: Asian Currency Unit)'를 내놓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기축통화로서 달러가 누려온 위상의 약화와 맞물려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기업이나 개인이나 수십 년 간 누적된 모순의 폭발로서 달러 가치가 붕괴할 위험을 먼 일로만 볼 것이 아니다.

로이터 이봉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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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8 19:39 2006/01/18 19:39




거세된 학문, 인문학의 위기
박노자칼럼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인문학의 위태로움을 탄식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학생들이 사학과나 철학과를 회피하고 인문학 서적들이 팔리지 않아 재고만 쌓이는 현실이기에 당연한 걱정이라 하겠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가는 ‘국민’에 대한 국가주의적 세뇌를 목적으로 ‘민족적 긍지’를 심어준다는 ‘국학’이나 ‘국민윤리’로 연결될 수 있는 철학 등을 전략적으로 지원해 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국가의 과제가 ‘민족’보다는 자신을 ‘좋은 상품’으로 만들어 팔 줄 아는 인간의 대량생산이니, 전통적 의미의 ‘국민적 인문학’은 뒷전으로 밀리게 됐다. ‘돈 안되는 학문’이 연구비 분배의 주된 주체인 정부나 기업화돼 가는 대학들의 푸대접을 받고 쇠퇴하는 것은 위기의 외재적 원인이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과연 오늘날과 같이 틀에 박힌 인문학이 자신의 위기를 자초한 부분이 있지는 않은가? 지금 자본과 국가가 인문학의 목을 졸라 질식사시키는 것이 사실이지만, 자본주의 국가가 생산한 인문학은 자본과 국가의 공격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미 지역에서 근대 대학 제도의 형성과 함께 20세기 초반에 그 틀이 완성되고, 그 뒤에 한국으로 이식된 아카데미즘(순수학술) 인문학에는 주된 두 개의 특징이 있다. 하나는 연구 주체와 대상의 철저한 분리, 연구자의 ‘중립과 객관’이라는 고답적 자세이고, 또 하나는 ‘전공’끼리의 정밀한 구별과 연구자들의 극단적인 전문화다.

물론 ‘중립’이 강조된 상황에서도 철학도인 박종홍이 박정희를 위해 ‘국민교육헌장’과 같은 파시즘의 선언문을 기초해 주는 일은 충분히 가능했다. 국가에 의해 키워지는 학문이니 국가를 섬기고 봉사하는 일이 당연했겠지만, ‘고상한’ 현학이 장려되는 오늘의 분위기에서 아나키즘 연구자가 실재하고 있는 아나키스트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일제하 공산주의 운동 연구자의 다수가 현존하는 급진 좌파 운동과 효율적으로 상호작용하지는 않는다. 공부가 실존적인 ‘나’와는 무관한 하나의 ‘작업 재료’처럼 다루어지는, 지행합일이 불가능한 분위기에서 니체나 프롬과 같은 위대한 반란자를 연구했던 사람이 1980년대 독재정권 하에서 반공주의와 국가주의 ‘교육’을 강요하는 문교부 장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미시적인 분야 나누기는 공부의 깊이에서 장점도 많지만 결국 사회와 소통할 수 없는, 지식 생산의 ‘라인’에서 한 나사만 돌릴 줄 아는 ‘전공자’를 만듦으로써 자본과 국가 앞에서 지식인을 무력화시키게 된다. 1930년대의 백남운이나 신남철, 전석담, 인정식 같은 거인들은 그들의 좁은 ‘전공’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와 ‘사회’ 전체를 꿰뚫어볼 수 있었기에, 식민지 현실의 비판자로서 일제에는 위험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국사’ 전반 중에서도 하나의 인물, 하나의 기간, 한가지 비문이나 문헌만 ‘전문 연구’하는 사람은 신자유주의적 국가를 이념적으로 분석, 비판할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낮다.

신자유주의에 맞서 있는 광범위한 피해대중의 처지에서라면 그러한 종류의 인문학이 관심의 대상이 될 리 없다.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인문학 위기의 내재적 본질이 아닌가. 자유주의자들은 소련·중국에서 쓰였던 ‘학문의 당성(黨性)’과 같은 표현을 조롱하지만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특정 정치 조직에의 충성이라는 스탈린주의적 의미의 ‘당성’이 아닌, 체제에 짓밟히는 피해자의 처지에 서서 체제의 변혁을 도모하려는 의미의 ‘당성’이 필요하다. 사회를 진보시킬 수 있는 공부야말로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기사등록 : 2006-01-16 오후 06:10:52기사수정 : 2006-01-16 오후 06: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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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7 01:28 2006/01/17 01:28

DJ와 탕(湯)임금

2006/01/16 18:53

오늘자 프레시안에 나온 기사의 일부이다. 정동영 전 장관에 관한 것인데,

 

<… 자신에게 쏟아지는 당권파 책임론에 대해서도 정 전 장관은 "DJ는 79석 짜리 당으로도 한국정치를 주름잡았는데 우리는 144석 여당으로 빌빌거리고 있다"며 "누구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이고 소통의 문제"라고 당의 위기 원인을 진단했다.…>

 

이것은 정 전 장관이 열린우리당의 한 지역당 행사에 참석해서 한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은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에 맹자가 했던 말과 문장구조가 비슷하다.

 

<齊人伐燕取之. 諸侯將謨救燕. 宣王曰 "諸侯多謨伐寡人者 何以待之?" 孟子對曰 "臣聞 七十里 爲政於天下者. 湯是也. 未聞以千里 畏人者也.… >

제나라가 연나라를 정벌하여 잡아먹었는데 제후들이 연나라를 구할 모의를 하였다. 제나라 선왕이 맹자에게 말하기를 "저를 정벌하려고 모의하는 제후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하니 맹자가 대답하기를 "70리 영토로도 천하에 정치를 한다는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탕임금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영토가 1000리나 되면서 남을 두려워 한다는 말은 못들어 보았습니다.…

                                                                               - <<孟子>>, 2-11 부분

 

탕임금은 중국 실증 역사상 최초의 국가인 은나라를 세운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전설적인 성인(聖人)이다. 제선왕은 전국시대 전국7웅의 하나인 제나라의 왕인데 이 시기에 제나라는 이웃나라를 잡아먹을 정도로 강성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이 뒤의 내용에 대해 말하자면, 제선왕이 왕도정치를 행하면 두려울 게 뭐가 있겠냐는 얘기를 맹자가 한다. 맹자는 무조건 왕도정치다.

 

p.s : DJ가 정치를 잘했다는 말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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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6 18:53 2006/01/16 18:53

진보블로그의 '행인'이라는 사람의 블로그에서 퍼왔다. http://blog.jinbo.net/hi/?pid=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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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 라인 | 내맘대로

 

 

누구나 자신이 서있는 위치에서 이야기를 한다. 객관적 입장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래서 힘들다. 오히려 객관적이라는 것은 그래서 정치적이다. 정치적으로 객관적일 수 없는 행인은 그래서 매우 주관적인 견지로 내 이야기를 한다.

 

시위를 진압하는 입장과 시위를 진행하는 입장은 당연히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게 된다. 어느 한 쪽이 어떻게 잘못했느냐를 판단하는데 이 둘은 서있는 위치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집회시위를 바라보는 제3자(실상은 제3자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지만)는 두 집단 중 어느 하나의 이야기를 더 들을 수밖에 없고, 이들은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결국 자신이 서고 싶은 위치에 자신을 옮겨둔 채 이야기를 하게 된다.

 

김강자라는 분이 있다. 종암서장을 하면서 집창촌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펼치고 경찰주도의 청소년 선도사업을 수행했던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이분이 자서전 비스무리한 것을 썼다. 이 책 안에 시위에 대응하는 경찰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이분이 말씀하시는 경찰의 모습과 내 입장에서 바라본 경찰의 모습은 많은 차이가 있다. 이분의 책 안에 있는 내용과 내가 경험한 내용을 비교해보면 이렇다.

 

"시위대의 일부가 예전과 같이 쇠파이프, 몽둥이, 돌 등으로 무장하고 여경 기동대의 폴리스라인을 넘으려고 했다. ... 시위대는 아무 무장도 하지 않은 여경 기동대원들을 무너뜨렸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청장 이하 경찰 수뇌부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쓰러지는 부하들을 보는 심정은 분노 그 이상의 것이었다. ... 내가 경찰 수뇌부라도 당장 최루탄 발사 명령을 내리고 싶었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가까스로 정착되어가는 평화적인 시위문화를 깨뜨릴 수는 없었다."

 

평화집회를 약속했는데, 경찰들은 닭장차로 집회참가자들을 둘러쌌다. 닭장차 저편으로는 사람들과 차량들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우리의 모습과 우리의 구호는 닭장차로 둘러쳐진 폴리스 라인 안에서만 맴돌았다. 노인들이 앞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무장한 전경들은 방패로 이들을 사정없이 밀쳐냈다. 힘 없이 쓰러지는 어르신들을 보는 심정은 분노 그 이상의 것이었다. 나에게 총이 있었다면 당장 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방패 앞으로 머리를 들이미는 것 뿐이었다.

 

"경찰이 교통소통을 위해 차도를 점거한 시위대를 연행하자 그동안 자취를 감췄던 화염병이 다시 등장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경찰 지휘부는 작년 말보다 더욱 분개했다."

 

집회 끝나고 가두시위를 하려는데, 예정된 코스로 시위를 하려하자 경찰 관계자가 오더니 차량소통에 방해가 된다고 지하도로 가란다. 어이가 없어서 신고한 대로 하는 건데 왜 그러느냐 했더니 교통을 방해할 경우에 법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법에 나와 있는대로 신고한 거니까 우리는 예정대로 시위를 하겠다고 했고, 그대로 진행을 했다. 순간 전경대원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선두에 있던 사람 여러 명이 순식간에 닭장차 안으로 끌려들어갔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했을까? 경찰의 지시대로 지하도로 가야하나? 그들이 법을 들이밀며 불법적인 행위를 하려는 마당에 우리가 그들의 불법적 지시를 따라야 하는가? 우리는 항의할 수밖에 없었고, 경찰들을 밀어부칠 수밖에 없었고, 닭장차에 끌려들어갔던 사람들을 빼내올 수밖에 없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신 사전에 정해진 약속을 깨고 도로 점거 등의 행위를 할 경우에는 가차없이 시위대를 진압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군복무 중인 군인을 빼다가 시위진압에 동원하는 경우가 있나? 의경이라는 희안한 제도 만들어서 젊은이들을 무상으로 부려먹는 것도 모자라 집회시위에 동원해서 폭력진압을 하도록 만드는 나라 있나? 닭장차로 시위대를 완전 차단하고 그걸 폴리스라인이라고 우기는 나라 있나? 관공서 100m 밖에서만 집회시위하라고 하는 선진국 있나? 미국 대사관 앞에서는 아예 사람들이 모여있지도 못하게 하는 나라가 있나? 정부종합청사, 국회의사당 들어가면서 정문에서부터 경찰들이 중무장한 상태로 지키고 서 있다가 개구멍으로 민원인 들어가게 하면서 소지품 검사까지 하는 선진국 있나? 어딨나? 미국? 어딨나?

 

이분의 말마따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르다."

다른 부분을 봐도 이렇게 달리 본다. 김강자씨의 눈에는 폴리스라인을 뚫고 나온 시위대에게 가차없이 폭행을 행사하는 '선진국' 경찰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우리나라와는 완전히 다른 그들의 폴리스라인 설치가 합리적으로 보인다. 달라도 아주 다르다.

 

이분, 여경 기동대가 쳐 놓은 폴리스라인을 무너뜨리고 시위대가 여경 기동대 수명에게 부상을 입힌 것을 들며 분개하신다. 어제 "우리 아들 때리지 마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평화적인 시위문화 정착을 촉구하는 대회를 여신 분들도 지난 수년 간 천여명이 넘는 전의경들이 집회시위 참가자들에 의해 부상을 입었다고 성토하셨다.

 

그런데 지난 수년간 집회 시위 참가했다가 전의경들에게 다친 사람은 무릇 기한가? 다른 부대는 다 제껴놓고 1001, 1002, 1003 얘네들에게 얻어 터져 죽거나 뻗었던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경찰 수뇌부가 집회시위에서 부하들이 부상 당하는 것을 걱정하는 것만큼, 전의경으로 자식을 보낸 부모들이 자기 자식이 시위대에게 부상 당하는 것을 걱정하는 것만큼,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하게 집회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두려움과 공포에 대해서 김강자씨는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지난 농민대회에 참가했던 한 어르신이 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식구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서울로 올라왔단다. 이래 해도 죽고 저래 해도 죽는 거, 내 어차피 죽으러 가는 거니까 그런 줄 알아라...

 

김강자씨가 이야기하는 경찰의 인내와 폴리스라인에 얽힌 전설들은 "평화로운 시위문화 정착"을 위해 헌신 노력한 경찰의 자화자찬일 수는 있지만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나같은 사람들에게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아마, 내 입장에 대해서도 김강자씨는 전혀 동의하지 않을지 모른다.

 

대충 동의하는 부분이 하나 있기는 하다.

 

"젊은이들이 한쪽은 화염병과 몽둥이, 돌로 무장하고 다른 한쪽은 마치 로마 병정을 연상시키는 두터운 방석복과 최루탄으로 무장하고 거리에서 맞붙어 싸워야 하는 것인지. ... 되는대로 길바닥에 주저앉아 준비한 도시락을 먹는 그들의 얼굴에는 피곤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항상 가슴이 미어졌다."

 

그 모습 보면서 기분 좋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날씨 추운 요즘 여의도 길바닥에서 닭장차 옆에 배식대를 마련하고 돌아가며 식판을 들고 밥을 받아가는 전경들 보면 뜨신 오뎅국물이라도 사다주고 싶은 심정이다. 쟤들이 뭔 죄를 지었길래 저 고생을 하나? 그런데 바로 그 앞에 늘어선 농성천막들이 보인다. 그사람들, 이 추운 겨울날 길바닥에서 먹고 자면서 투쟁을 하고 있다. 저 사람들은 뭔 죄를 지었길래 저 고생을 하나?

 

투쟁하는 사람들이야 자신의 생존권을 걸고 하는 싸움이므로 어떤 형태로든 그 자리에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의경들은 다르다. 걔들은 그 자리에 없어도 되는 사람들이다. 군복무를 위해 징집당하는 것도 서러운데 게다가 아스팔트 바닥에 방패하나 깔고 찬 궁둥이를 붙이고 있어야 되는 이 젊은이들, 그 자리에 사실은 없어야할 사람들이다.

 

피곤이 덕지덕지 묻은 전의경들의 모습, 나도 그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월급 제대로 받고 있는 김강자씨의 후배들이 그 자리에 나오기 바란다. 폴리스라인도 제대로 좀 치고, 그 무거운 방석복도 좀 벗어버리고, 자유로운 집회시위도 보장하면서 경찰도 좀 인간답게 살아보자. 이 참에 경찰도 노조 만들고, 집회시위 강제진압 같은 '선진적'이지 못한 명령이 나오면 노조 이름으로 비판 성명도 좀 발표하고, 서로 그러다 보면 평화시위 저절로 정착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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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1 04:52 2006/01/11 04:52

지난해말 볼리비아 대선에서 에보 모랄레스가 승리함으로써 중남미에 7번째 좌파 정부가 들어서게 됐다. 이 좌파 정부들의 앞날은 순탄할까? 중요한 변수가 미국이다.

역사를 보면 미국은 제3세계, 특히 남미의 개혁 또는 좌파 정부를 그냥 두지 않았다. 지난해 출간돼 한글로도 번역된 <경제 저격수의 고백>은 그 수법을 폭로한다. 1970~80년대 이 작업에 직접 관여했던 저자 존 퍼킨스가 전하는 방법은 이렇다. 목표가 정해지면 먼저 ‘경제 저격수’(economic hit man)들이 투입된다. 민간 전문가 직함을 지닌 이들은 정부 관리들에게 과장된 전망을 제시한다. ‘외자를 도입해 발전소를 지으면 10년 뒤까지 몇십%의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식이다. 뇌물·협박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한 작업에 넘어가면 덫에 걸린다. 엉터리 전망이기에 쌓이는 건 빚뿐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마피아와 마찬가지로 빚을 갚지 못한 대가로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저자는 썼다.

경제 저격수들이 실패하면 “중앙정보국(CIA)의 자칼이 끼어든다.” 실제로 퍼킨스가 파나마의 토리호스 대통령과 에콰도르의 롤도스 대통령 설득에 실패한 뒤인 81년 두 대통령은 잇따라 비행기 폭발사고로 숨졌다. 퍼킨스는 “이들의 죽음은 결코 우연한 사고가 아니었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또 축출 위기에 몰렸던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 덕에 목숨을 건졌다”고 믿는다.

이 공작에는 평화봉사단이나 비정부기구들도 연루된다는 의혹이 있다. 퍼킨스만 해도 에콰도르에서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한 직후 경제 저격수로 뽑혔다. 평화봉사단원 출신의 노동운동가 낸시 월리스는 얼마 전 미국 인터넷매체 ‘엠아르진’에 쓴 글을 이렇게 끝맺었다. “모랄레스 취임을 앞두고 볼리비아의 희망이 고조된 지금, 평화봉사단과 비정부기구들의 목적을 따져봐야 한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기사등록 : 2006-01-08 오후 06:42:11기사수정 : 2006-01-08 오후 06:4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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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0 16:01 2006/01/10 16:01

김광석

2006/01/05 20:19

내일, 2006년 1월 6일은 죽은 포크가수 김광석의 10주기이다. 나는 96학번 신입생맞이를 준비하던 즈음인, 10년 전 이 날 (다음날이던가?) 아침, 과방에서, 한겨레에 실린 그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눈쌓인 캠퍼스에 햇빛이 쏟아지던 아침.

 

유서도 없고, 정황도 묘연한 미스테리의 자살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나, 그리고 나와 비슷한 분위기에서 살아온 많은 사람들이 왜 김광석을 좋아했는지, 좋아할 수 밖에 없었는지가 더 미스테리이다. 민중가요도 아닌, 이문세류의 사랑노래만도 아닌, 아직 연구중일 수밖에 없는 쓸쓸한 음률. 포크라는 애매한 규정이 따라다녔다. 포크? 민중이라는 뜻인데...

 

한겨레21에 실린 작가 김연수의 글에서는 김광석의 노래를 "민중가요와 사랑노래의 변증법"이라고 했다. 공적인 (운동권)의식과 사적인 (연애)감정이 빚는 청춘의 모순을 김광석의 노래가 변증법적?으로 해결하고 있었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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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5 20:19 2006/01/05 20:19

새이름폴더

2006/01/03 04:21

윈도 탐색기에서 새이름폴더를 자꾸 만들면 아래와 같이 된다고 한다. 나도 어디서 보고 와서 해본 것이다.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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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3 04:21 2006/01/03 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