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2006/10 | 9 ARTICLE FOUND

  1. 2006/10/31 김광석_서른즈음에
  2. 2006/10/23 the Universal
  3. 2006/10/22 이반 일리치(Ivan Illich)
  4. 2006/10/18 황혼의 호로비츠
  5. 2006/10/10 북한 핵실험
  6. 2006/10/08 피아노
  7. 2006/10/08 경포호
  8. 2006/10/07 [영화감상] 공공의적2
  9. 2006/10/03 추석

김광석_서른즈음에

2006/10/31 01:07

도대체 왜 김광석이냐?

라고 물을 수 있을까? 그만큼 김광석이 이슈화되었을까?

 

우리는 왜 김광석을 좋아하는가? 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만큼, 김광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된걸까?

 

이런 것들은 잘 모르겠다.

다만, 김광석은 80년대가 가고, 90년대가 가기 전에 유행했던 가수.

80년대식으로 살아보려는 것이 정말 힘들었던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던 가수.

90년대로 탈출하는 것도 녹록치 않다는 걸 깨닫게 해 준 가수.

하여, 80년대와 90년대의 사이, 아니, 영웅적 세기와 비극적 희극의 세기 사이에서 내 마음을 달래주는 가수. 그런 가수여도 좋으리라.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게 희망이라는 비젼이 있다면,

나에게 불합리하게 장애가 되는 것들에 대해 그 비젼의 이름으로 자신감을 갖게 해줄 그 비젼...

내가 가진 것만으로 승부하라고 끝없이 나를 차분하도록 누르는 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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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31 01:07 2006/10/31 01:07

"일리치는 학교나 병원 그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 기관이 어느 정도 특정한 단계에서 제도화되면, 학교는 사람들을 더 우둔하게 만들고, 병원은 더 많은 사람들을 병들게 만든다."

 

라고, 어떤 논자들이 일리치를 빌어 말했다. 일리치가 한때 카톨릭 신부였고, 유명한 <<탈학교 사회>>라는 책의 저자이고,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 사상가라는 점은, 모두 어떤 특정 "제도"에 대한 이야기이니, 더 아이로니컬 하다.

 

로마 바티칸으로부터 위험 인물로 낙인 찍혀 사제직을 박탈당하고, 이후 그의 저작들은 보수파들로부터 희화적인 것으로, 진보주의자들로부터 복지국가 이념에 반하는 반동적 사상으로 낙인찍혀,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게 된다. 죽기 직전 20년 동안은 거의 공적으로 잊혀진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잊혀졌어도 글을 쓰는 용기가 진정한 인텔리겐치아의 자세일 것이다. 잊혀진다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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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2 00:46 2006/10/22 00:46

황혼의 호로비츠

2006/10/18 12:03

우리 서당 동네 슈퍼 앞에 피아노 가르쳐주는데가 있었는데 갑자기 없어져서 슈퍼 아주머니에게 여쭤봤더니 이사갔다고 했다. 덧붙이길,

 

"그 할머니요? 70 넘은 노친네한테 누가 피아노 배우겠어. 정신도 좀 이상하고.

옛날 사람치곤 참 똑똑했는데...

할머니가 남편한테 충격을 좀 받았나봐. 남편이 어린 여자한테 가서..."

 

이렇게 하여, 나의 피아노 교습 계획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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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8 12:03 2006/10/18 12:03

북한 핵실험

2006/10/10 14:52

어제 서울에서 남양주 오는 길에 차 안에서 라디오 듣다가 뉴스속보로 들었다.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했다는 것이다. 성공여부는 미지수라고 한다. 진도3.8인지 정도로 성공 여부를 알 수는 없다고 한다.

 

나는 주식을 가진 게 없지만 주가가 폭락했다는 뉴스는 들었다. 그런데 어떤 외신은 곧 주가가 다시 오를 거라고 한다. 한반도에서 전쟁? 어렵지 않겠냐는 거겠지. 현재 미국은 더이상 전쟁을 벌일 여력이 없을 것이다. 이라크도 버거운데 또다른 전선을 만들지는 못하겠지. 북한이 어딘가를 선제공격할 가능성? 그것도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남한 국민들이 라면 사재기도 안한다고 한다. 아마도 94년 1차 핵위기의 면역력 덕분일 것이다.

 

94년에 나는 대학을 떨어지고 백수 신세였다. 북한이 원자로에서 플루토늄인가를 추출하려고 연료봉을 제거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핵확산금지조약과 국제원자력기구를 탈퇴하고, 미국은 대북제제 수위를 높여가고, 공격설도 나오고, 난리도 아니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백수들부터 끌려간다지? 나는 내심 상당히 쫄고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인데, 그때 진짜 전쟁이 날 뻔했다고 한다. 우리 국민들은 몰랐지만, 클린턴 행정부 당시 국방장관이던 페리가 나중에 출판한 회고록에서 그렇게 말했다. 공격일자까지 잡아놓고 있었다고. 클린턴과 동아시아 함대 사령관인가 하는 사람이랑 페리랑 셋이서 백악관에 앉아서 시계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고. 그런데 그때 전 미 대통령 카터가 북한을 방문해서 김일성과 담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북한과 미국은 급속하게 대화 국면을 전개시켜 나가다가 결국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했다. 미국이 중유를 공급해 주는 대신 북한은 핵의 핵자도 꺼내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했다.

 

그러던 것이 정권이 바뀌고 공화당의 호전적인 네오콘들이 미국의 정책을 주무르기 시작하자 그 합의들이 하나 둘씩 깨져 나갔다. 북한이 테러국에게 무기를 판매하기 때문에 더이상 그 합의를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로 미국은 북한을 악의축으로까지 규정하면서 불안국면을 강화시켜 왔다. 한반도 야경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북한에는 밤에 불이 켜진 곳이 없다. 완전 조선시대가 따로 없다. 고립을 자초한 것인가? 미국이 고립시킨 것인가?

 

상식적으로 북한이 핵무기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이해가 잘 안간다. 원자력 발전소를 지으면 안되나? 기술력이나 제반 여러 장애들이 있겠지. 그렇다 하더라도 핵무기로 협상을 하려 하다니 정말 저러면 안되는거 아닌가?

 

여차여차 생각해보면, 역시 현대국가를 규정하는 것은 내부 구조도 중요하지만, 국가간 체계 내에서의 위치도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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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0 14:52 2006/10/10 14:52

피아노

2006/10/08 03:50

석경: 의외에요. 최운혁씨와 피아노.

운혁: (과거를 생각하며) 이 곡 한 곡만이오. 유일하게 아는 건. 어렸을 적에 성당에 다녔었오. 그때 미국인 수녀님이 한 분 계셨는데, 나와 내 누부에게 이 곡을 가르쳐 주셨소. 

                                                                            -  <서울 1945; 제9회>

 

어렸을 때 피아노 배우겠다고 어머니한테 얘기했다가 미친 놈 취급받았던 게 생각난다. 물론 어머니는 나를 생각해서 그러셨다. 유도 도장에나 다니던 놈이 갑자기 피아노라니.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도 음악적 재능이 영 없는건 아니다. 본디 음악이란 것이 귀족의 사슬로부터 전 인류의 행복을 위해 프로메테우스적으로 방출되어 나왔을 때, 우리 나라 피아노 가격이 너무 비쌌던 것이 아닐지.

 

우리 서당이 있는 동네에, 슈퍼 앞에 피아노 가르쳐 주는 곳이 생겼던데 거기를 나가서 피아노를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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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8 03:50 2006/10/08 03:50

경포호

2006/10/08 01:33

서당 답사(9.26-28)때 강원도 지역을 돌아보고 왔다. 기발이승(氣發理乘)의 철학자 율곡의 울림이 떨고 있는 곳.

 

그러나 생각보다 다양한 역사의 흔적들이 잠들어 있었다. 무엇보다 내게 인상적인 것은 경포호수였다. 바다로 흘러드는 물의 압력이 너무 미약해서 바다가 그걸 막아버린 결과 생겨난 호수, 곧 석호라고 하는 종류의 호수라고 한다. 그래서 바로 옆에 바다가 있는데, 그 바로 옆에 엄청나게 큰 호수가 있는 것이다. 물가에 갈대도 우거진 바로 그 호수. 이런 호수를 옆에 두고 철학을 한 율곡 선생의 머리 속이 궁금해졌다. 진주 남강만큼이나 시민들 곁에 있는 호수였다.

 

밤에 몰래 숙소에서 나와서 호수가에 앉아 있었다. 저 호수 가운데 뜬 달이 물결에 찰랑거리고 있었는데, 나는 바로 그 큰 호수의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맥주 한모금을 마시고 물결을 쳐다보니 모든 근심이 사라졌다. 잔 물결이 자꾸 내게로 왔다. 내가 그처럼 혼자 멍하니 앉아 있어 본 적이 있었던가?

 

대학 다닐때는 고민이 있으면 혼자 고향에 내려가서 바닷가 방파제에 앉아 물을 바라보곤 했다. 파랑의 울렁거림때문에 마치 내가 움직이고 있는 듯했다. 그때도 그랬었지. 김남조의 시를 들먹일 것도 없이 내게 물은 재생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아, 고등학교 다닐땐 남강가에 앉아 물을 보는 것이 유일한 오락거리였다. 자율학습이 없는 토요일 저녁에서 일요일 오전까지.

 

오행 중에서 내 몸의 성분이 불이 많아서 물가에 가면 그렇게 안정이 되는가 보다. 수영도 못하고 물을 두려워 하지만 물가에만 가면 차분하게 정리가 되는 것이다. 올 겨울에 애인이랑 꼭 한번 같이 가야겠다. 남방 속으로 싸늘한 바람과 함께 갈대잎들어 들어오는 듯...


 

겨울바다

 

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물 이랑 위에 불 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의 물이
수심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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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8 01:33 2006/10/08 01:33

왜 공중파 TV 추석 영화프로는 이런 거밖에 없는가, 하는 불평을 잠시 접고, 순수하게 영화로만 보니까 이것도 잡설거리는 남기는구나. 청소년들의 피를 끓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평이, "강우석식 국가주의 프로젝트"라던데, 과연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시골출신, 그것도 별다른 산업시설이나 볼 것도 없는 시골출신에게는 거대한 자본의 위력보다는 국가, 혹은 그것의 지부인 동사무소나 경찰서의 위력이 더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크건 작건 자본이라고 생긴 건 별로 볼 일도 없던 시골 마을에서 '왕초'들은 항상 '국가'와 관련된 존재들이었다. 그런 나에게 국가를 최고선으로 하는 '억울 비탄극'이 와닿을리 있겠는가. 그래도 우리 동네 청소년들은 이런 영화 보러 표끊고 들어갔겠지.

 

공공=국가=공무원=검사, 그것도 평검사의 가장 큰 적이 누구인가? 이 영화의 답은 졸부!

이 영화에서 졸부들은 항상 머리를 굴린다. 정직하게 살지 않고 틈새를 노린다. 그리고 선량한 일반 국민들로부터 유리되어 있다. 이들은 이 사회의 그 누구보다 세상이 나아갈 바를 먼저 알고 먼저 대처한다. 물론 결말에는 공무원에게 다 잡힌다. 일망타진되는 것이다.

 

나는 갑자기 이 졸부들의 얼굴 위에 일제시대때 김성수 같은 친일, 내지는 우파민족주의 실업가들의 얼굴이 겹쳐졌다. 역사책 속에서 추상화되어 등장하던 그 머리굴리는 실업가들의 얼굴이 이 영화의 졸부들의 복잡한, 하지만 결국 추상화되는 머리굴림과 겹쳐진 것이다. 김성수가 이병철, 정주영이 되고, 또 구씨일가와 김우중 같은 사람들이 되었다.

 

아, 나는 얼마나 책을 책으로만 보아왔던가. 얼마나 복잡했던 것일까, 그들의 처세는. 반도체냐 화학이냐,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공공의 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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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7 02:23 2006/10/07 02:23

추석

2006/10/03 20:55

추석 하면 조용필의 '꿈'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향을 찾아가네 / 나는 지금 홀로 남아서 / 빌딩속을 헤매다 초라한 골목에서 /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 (…) >

 

내 나이 어느새 32살. 언제였는지도 모르게 서른을 넘어버렸다. 이곳은 서울의 변두리 고시촌 근처. 조용필이 위의 노래를 구상한 것이 몇살이었던가. 나도 조용필 만큼이나 힘들어져 버린건가?

 

리버럴리스트 유시민이 말하길, "나이 40이 넘으면 보수화된다"고 했다. 인간은 젊음을 지나면 갈수록 약해지기 때문에 리버럴한 가치보다는 컨저버티브한 가치를 더 찾게 된다는 거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소거한다면, 누가 이 말에 토달 수 있겠는가. 자신을 사민주의자라고 소개하면서 등장했던 한 교수가 요즘은 중앙일보에 자주 글을 쓰는 것도 보게 된다. 그 교수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나라고 별 수 있겠는가.

 

20대 초반에는 추석이 되어도 일부러 집에 안내려 가곤 했다. 어머니가 걱정을 하든 말든, 난 싸늘하고 황량한 추석의 서울 거리가 좋았다. 밥은 학교 근처에 문 연 식당 아무데서나 해결하면서 마음껏 자유를 만끽했다. 그러던 시절도 잠시. 이제 추석에는 집에 가고싶어진다. 이번에는 좀 바쁜 일이 있어서 안가기로 하고 어머니께 전화만 드렸다. 고등학교 이후로 연락이 끊긴 초, 중학교 동창 친구에게 전화도 했다. 이 일이 끝나면 추석이 아니래도 꼭 내려 갔다올 생각이다.

 

가상의 독자여러분, 행복한 한가위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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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3 20:55 2006/10/03 2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