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2006/12 | 2 ARTICLE FOUND

  1. 2006/12/26 선생님들
  2. 2006/12/21 <<조선상고사>> by 신채호

선생님들

2006/12/26 00:39

내가 대학에 처음 들어와서 선생님들이랑 상견례를 했는데, 인상 깊은 분이, 김진균, 신용하 선생님이셨다. 김진균 선생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여러분과는 다른 사람, 가령 대학에 들어오지 못한 친구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라"고.

 

거물 진보인사다운 인사말을 기대했던 나는 조금 실망했다. 그정도는 전교조 선생님들이 많이 하던 말 아닌가.

 

한편, 신용하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대학에 왔으니 이제 정말 열심히 공부하라"고.

 

이건 좀 납득이 갔다. 이른바 '진정한 공부'라고 하는 말의 무게가 고등학교때의 공부와 비교되면서 상당히 무겁게 다가온 듯하다.

 

이후에 두 선생님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나에게는 무의식 중에 두 선생님을 일종의 수퍼에고화하는 경향이 생기게 되었다. 두 선생님이 서로 입학동기라고 하던데, 두 선생님이 서로 다른 양 극단을 달리는 우리 사회의 전형을 내 무의식에 찔러넣어셨던 듯하다.

 

한분은 만석꾼 집에서 태어나 부러운 것 없이 자라 당시로서 힘들었을 재수까지 하면서 자신의 전망에 대해 충분한 성찰을 거치면서 대학에 진학하셨고, 다른 한분은 가난이 싫어 집에서 탈출하다시피 하여 대학에 들어왔고, 고생을 정말 많이 하셨다.

 

전자, 곧 김진균 선생님은, 그래서 너그러운 포용력으로 나처럼 보잘것 없는 인간에 대해서도 조금 기억하고 계셨다. 물론, 진보인사들의 다수가 선생님을 많이 기억하고 있다. 후자, 곧 신용하 선생님은 엄청난 저술로 유명하다.

 

나는, 지금 생각하건대, 그동안 너무 무책임하게 내 삶을 이런 '수퍼에고'들의 책임에 맡겨놓고 있었던 거 같다. 이들이 내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 하더라도, 인생은 답이 뻔해서 내가 살 수 있는 삶의 스펙트럼은 결국 김진균 선생님과 신용하 선생님의 자리 사이에 있는 어디쯤인 거 같다. 특히 나처럼 x도 없는 인간은 이들이 마련한 전형 속에서 기회주의적으로 왔다갔다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조상들이 조상을 신격화하고, 가문을 종법화한 것이 좀 이해가 간다. 그들에게 인간은 정말 x도 아니었던 것이다. 무기력하고, 게다가 빨리 죽어버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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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6 00:39 2006/12/26 00:39

이 책을 사서 요즘 보고 있다. '요순우탕문무주공+공자'라는 차이나 성현에 대한 관심이 동북쪽으로 전이된 결과이다. '갑빠'가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에, 좀 오래된 걸 읽고 싶었다. 최근엔 연구서들도 많겠지만.

일제시대에 쓰여진 이 책을 보고 무엇보다 놀란 건, 신채호의 문장.

 

  "역사에 영혼이 있다면 ... 눈물을 흘릴 것이다."

 

한문을 모국어로 하는 사람의 붓끝에서 나온 국문 치고 매우 박진감 있다. 고증에 대한 놀라운 안목. 알다시피, 그는 조선시대 성균관 박사 출신으로서 생의 마지막 순간에 무정부주의자(혹은 사회주의자)의 삶을 걷고 있던 사람이다. <<통감>>류의 역사서에서 찾을 수 있는 전통시대 고증에 관한 에토스를 그대로 근대 실증사학의 마인드로 옮겨 놓은 듯하다. 이건 서론만 보면 알 수 있다. <<천부경>>이나 <<한단고기>> 류 국수주의 사이비 저작에 비해, 단군의 실체를 명확히(연대까지) 밝히진 않고 있다.

 

그럼에도, 기자동이설 같은 부분은 굉장히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다. 이건 고대에 대한 하나의 깔끔한 매너처럼 느껴진다. 기자가 조선에 봉해진 것이 아니고, 정치투쟁에 염증을 느낀 기자가 조선의 매력에 끌려 조선으로 온 것이다. 물론 기자만 온 것이 아니라 그 족속이. 이러한 것은 여러가지 자료로 고증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

 

※ 뒤에 부록으로 '동시대인이 본 신채호론'이 있다. 실로 '위인의 사생활'이라는 주제의 글들이다. (이런 게 제일 재밌다.) 1919년 이후로 변절해서 총독부 기관지에 가명으로 글도 싣곤 하던 이광수의 글도 있다. 신채호는 그럴 리 없다며 1930년대까지 그를 아꼈다. 책은 비봉출판사에서 나왔고, 번역은 사장 박기봉씨가 했다. 경제학과 나와서 출판사 운영하려니까 직접 번역도 해야겠던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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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1 02:15 2006/12/21 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