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2007/01 | 4 ARTICLE FOUND

  1. 2007/01/31 돌발영상
  2. 2007/01/24 [영화] 박치기
  3. 2007/01/22 [펌] 장이머우와 샤오바오 / 한겨레
  4. 2007/01/11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數式)

돌발영상

2007/01/31 00:39

뉴스전문 케이블 YTN의 돌발영상 몇회분을 주욱 보았다. 재밌었다. 돌발영상이라고 하나, 사회의 모든 측면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주로 '정치'라는 층위에 한정된 소재들로 만들어진 것이 많았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해 '정치돌발영상'인 것이다. 재밌는 이유는 이때문일 것이다.

 

사회에서 정치라는 층위가 차지하는 위상은 참 각별한 것 같다. 분명히 사회를 움직이는 독자적인 요인이 될 힘은 정치의 어디에도 없는 것 같지만, 많은 사람들은 상당한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마, 정치의 핵심이 싸움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택동도 말했잖는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사람들은 싸움구경을 좋아하는 것이다. 총싸움도 좋아하고.

 

정치의 목적인 권력이 총구에서 나오는 만큼, '정치돌발영상'의 대부분의 내용은 폭력을 운용하는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물론 폭력이 주먹으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유머, 위트, 상대방의 약점을 후벼파는 적절한 농담, 자신의 허물을 가리는 허허웃음, 최대한 젠틀하게 보이도록 위장된 살벌한 공격, 상대의 공격이 사실은 자신에게 득이 될 수 있음에도 최대한 허약하게 보임으로써 동정을 이끌어 내기...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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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31 00:39 2007/01/31 00:39

[영화] 박치기

2007/01/24 03:59

일본 감독과 배우들이 만든 영화인데, 내용은 재일 조선인들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일본 사회내의 '한국인(조선인)'에 대한 얘기라서, 한국영화라고 불러야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지만, 물론 일본 영화이다. 아마도 원작 소설은 좀더 일본 사회의 문제를 중심에 두었으리라. 이런 영화는 몇 개 더 있다.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인가 하는 영화는 기타노 다케시가 주연이었지. 이런 영화들의 특성상 이들을 초민족적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마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예쁜 재일조선인 '리경자' 역할을 한 여배우는 일본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라고 한다. 도쿄 출신의 이 배우가 영화의 배경인 칸사이 지방 사투리를 연습하는 것도 힘들었겠지만, 영화 중간 중간에 현실감을 위해 삽입한 한국어(조선어)는 굉장히 어색하다.

 

일본에서는 이 영화가 일본 영화제 같은 데서 상도 좀 타고 그런 것 같다. 참 신기하게 느껴진다. 어찌되었든 일본인들은 한국인(조선인) 문제를 자신들의 문제 중 하나로 생각한다는 것인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영화의 갈등구조는 굉장히 복잡하다. 아, 물론 이 영화는 코믹 영화다.

 

이 영화에 나오는 한 등장인물, 곧 라디오 방송 PD는 이렇게 얘기하는 듯 하다. 즉, 나는 대학 다닐 때, 칸트, 헤겔, 마르크스 등등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지만, 인간이 부닥친 문제는 그것보다 훨씬 세세하다고. 하지만, 이건 내 얘기고, 실제로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무슨 이유가 있든지 간에 부르면 안되는 노래 같은 게  있을 리 없잖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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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4 03:59 2007/01/24 03:59

» 저우창이/중국 월간 <당대> 편집인

 

중국에선 가난한 사람이 갑자기 부자가 되어 우쭐대는 것을 ‘샤오바오’(燒包)라고 한다. 중국에는 아직 가난한 사람이 수억 명에 이르지만, 많은 이들이 벼락부자가 되어 샤오바오를 부린다.

20년 전, 부자들의 샤오바오는 ‘황금반지’였다. 손가락마다 금반지를 끼고 다니며 유세를 부렸다. 손가락이 여섯 개가 아닌 것을 한탄할 정도였다. 10년 전, 부자들의 샤오바오는 ‘황금연회’로 바뀌었다. 식탁 가득 호화로운 음식을 차리고 호사를 부렸다. 이 바람에 베이징에서 유명하다는 식당의 음식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그런데도 부자들은 이런 식당에서 기꺼이 바가지를 썼다. 이때는 거리의 건달들도 샤오바오를 부렸다. 이들은 홍콩 조폭영화에 나오는 깡패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거리를 누비며 ‘황금영’(상하이 폭력조직 흑사회의 두목)을 되뇌었다.

 

요즘 부자들의 샤오바오는 ‘황금첩’이다. 뇌물로 돈을 번 탐관오리나 장사로 부자가 된 이들은 하나같이 첩을 거느린다. 한둘은 기본이고, 첩을 열이나 데리고 사는 이들도 있다. 이들 첩의 샤오바오는 ‘황금장신구’다. 몸에 주렁주렁 금붙이를 달고 다니며 위세를 떤다. 첩에게 남편을 빼앗긴 아내들은 ‘황금통장’이라는 샤오바오를 부린다. 이들은 남편에게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해 비상금을 저축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젠 정부도 샤오바오를 부린다. 정부의 샤오바오는 ‘황금성’이다. 백성들의 피땀으로 번 돈으로 관청을 자금성처럼 호화롭게 꾸민다. 자기 돈이 아니라고 건물을 장식하는 데 마음껏 호사를 부리는 것이다. 이러니 백성들도 샤오바오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백성들의 샤오바오는 ‘황금무덤’이다. 요즘 같은 호시절을 보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난 가족들을 위해 무덤을 궁전처럼 호화롭게 지어주는 것이다.

 

과거엔 세상이 모두 샤오바오를 부려도 지식인들만은 예외였다. 이들은 청빈을 얘기하며 고고함을 지켰다. 샤오바오라는 말을 만들어 부자들의 속물근성을 풍자한 것도 이들이었다. 이들 뒤에 있는 여론도 상인이나 관리들의 샤오바오를 용서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지식인들마저 샤오바오에 빠졌고, 여론도 샤오바오를 문제삼지 않는 지경이 됐다.

 

요즘 지식인들의 샤오바오를 대표하는 게 장이머우 감독의 블록버스터 영화 <황금갑>(당나라 말기 황궁의 암투를 그린 영화. 한국에선 <황후화>로 번역)이다. 그는 원래 중국 계몽영화의 기수였다. 그의 영화 <국두> <귀주이야기> <홍등>에는 백성들의 삶에 대한 관심이 듬뿍 배어 있었다. 그러나 요즘 그는 중국 상업영화의 선두에 서 있다. 그의 최근 작품, 특히 <황금갑>에선 사상을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두 개의 단어 ‘사치’와 ‘탐욕’만이 있을 뿐이다.

 

요즘 중국 영화에 사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황금갑>과 동시에 개봉한 자장커 감독의 <삼협호인>은 중국 영화의 진정성을 간직하고 있다. 그는 과거 중국 계몽영화의 계승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삼협호인>은 관객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황금갑>이 3억위안을 벌어들여 중국 영화사의 신기록을 세우는 동안 <삼협호인>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간판을 내려야 했다.

 

그러나 이는 장이머우의 잘못이 아니다. 사치와 탐욕에 눈먼 중국 관객의 잘못이다. 장이머우가 샤오바오하게 된 것은 결국 중국 국민들이 샤오바오에 빠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갑자기 잘살게 되면서 샤오바오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땐 샤오바오가 사라질 수 있을까? 장이머우가 총감독을 맡은 올림픽 개막식이 샤오바오의 거대한 의식이 될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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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2 20:58 2007/01/22 20:58

수식을 사랑하다니! 수식이 아름답다니!

 

그러나, "누구보다 먼저 진실에 도달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도 증명이 아름답지 않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케플러가 티코 브라헤의 데이터만 가지고 행성운동 법칙을 찾아낸 게 아니듯.

 

p.s. : 계속 생각하고 있던 것인데, 이 영화가 보여주는 대책없는 순수지향이 파시즘과 인종청소를 뒷받침하는 논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돈안되는 우려를 갖고 있다. 몇명 보지도 않은 이 영화로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하는 게 좀 웃기긴 하지만, 뭐,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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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1 21:48 2007/01/11 2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