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2008/05 | 6 ARTICLE FOUND

  1. 2008/05/31 조선일보의 촛불집회 심층취재
  2. 2008/05/28 근대교육?
  3. 2008/05/24 "3층도식"
  4. 2008/05/23 집착의 구조
  5. 2008/05/19 블로그 개설 3주년 (1)
  6. 2008/05/05 김약국의 추억

조선일보 최보식 부장이란 사람이 작성한 기사이다. 우리는 이런 글에서 "말리는 시누이" 전술의 전형성을 간취할 수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끊어 읽지 않으면 전체 글의 진의를 파악할 수 없는 애매한 글이지만, 어쨌든 다 읽고 나면 뭔가 독해해냈다는 '느낌'이 새록새록 묻어난다. 글쓰기 공부할 때 도움이 많이 될 듯해서 가져왔다.

 

---------------------------------------

 

그들은 '참을 수 없는 순정'으로 나왔고…
조선일보 | 기사입력 2008.05.30 03:29 | 최종수정 2008.05.30 10:12

20대 여성, 서울지역 인기기사

 

최보식 사회부장이 본 촛불시위 현장 절박하지만 놀이처럼… 경찰차에서 '닭장 투어' 기념사진 일부에선 배후 의심… 중앙통제식이 아닌 인터넷 정보로 움직여 "광우병 위험 없다해도 국민이 불안해하는데 무조건 밀어붙이나"

 

 

 

시위 인파 300여명은 도로 한복판을 점거한 채 서울 을지로에서 퇴계로를 지났다. 동대문운동장 앞에서, 앞장서던 한 여성이 "오늘은 이만. 여기서 헤어지고 내일 다시 만납시다" 하고 외쳤다. 밤 11시40분이었다.

 

↑ 29일 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촛불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건 고시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그때 군중 속에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당신이 뭔데 해산하자 말자 하느냐" "우릴 갖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여기까지 와서 그냥 흩어지자는 거냐"….

그러자 다른 쪽에서 "그러는 당신은 뭐냐. 왜 자꾸 사람들을 선동해. 우리가 다 연행됐으면 좋겠다는 거냐"고 받아쳤다. 시위대 안에서 옥신각신 언쟁이 벌어졌고, 결국 행진은 29일 새벽 1시쯤 끝났다.

지금 촛불시위는 이전의 시위와는 다른 뭔가 새롭고 혼잡스러운 양상을 띠고 있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 조직에 몸담았던 한 젊은이는 "지금 이 시위대가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켜야 할 '선(線)'을 넘어선 촛불시위에 과연 '조직적 배후'가 있는 것일까. 이번 시위에는 참여연대, 민주노동당 , 민변, 민노총,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나눔문화, 다함께, 한총련 등 1700여개 단체가 가담했다. 이들 단체는 현장에서 촛불과 종이 피켓, 유인물 등을 배포하며 독려하고 있다. 시위의 '군불'을 때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26일에는 '반란에 동참하라'는 제목의 유인물 4만장이 집회 현장에 뿌려졌다. 다음날 밤 을지로와 퇴계로를 점거했을 때는 시위대를 이끄는 승합차도 있었다. 앰프를 실은 승합차에서 마이크로 구호를 외치는 '프로들'이 목격됐다. 이들 단체는 광우병에 대한 '공포(恐怖)'를 이용해 다른 '정치·이념적 목적'까지 계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장에서 그 의도가 일사불란하게 먹혀드는 것 같지는 않았다. 시위 인파가 합법(合法)의 선을 넘어 도로를 점거한 지 이틀째 날인 25일 밤, 청계광장 촛불집회 인파 속에서 50대 남자와 젊은 여성 간에 도로로 나가는 문제를 놓고 입씨름이 벌어졌다.

"오늘 새벽에 연행된 사람들을 못 봤나. 평화 집회하는 사람들을 경찰이 방패로 찍었다."
"그래도 여기를 떠나면 안 된다. 경찰이 용인한 것은 광장에서의 평화적인 촛불문화제다."
"아기 업은 엄마까지도 전경들이 방패로 밀쳤다. 그걸 보고도 광장에 머물자고 할 수 있나."

"경찰만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나라면 아기를 업은 채 새벽에 전경들 사이에 둘러싸일 상황은 만들지 않겠다." 결국 한쪽은 도로로 뛰쳐나갔고, 다른 쪽은 청계광장에 남아 밤늦게까지 촛불을 들고 있었다.

새벽 시각, 경찰이 촛불집회 주최측인 '국민대책회의' 관계자를 불러 시위대 해산을 설득해 달라고 주문했다. 대책회의 관계자는 이를 받아들여 해산하자고 했지만, 시위대가 따르지 않았다.

이번 촛불시위의 뚜렷한 특징이라면, 아직은 '중앙통제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설령 시위를 '주도'하는 단체들이 있다 해도, 시위 인파를 한 방향으로 몰아가지는 못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대부분 참가자는 인터넷 등에서 돌아다니는 정보를 신봉하고 '참을 수 없는 순정(純情)'으로 나온 것 같았다.

25일 밤 경찰이 시위대의 도로 진출을 봉쇄하자, 딸아이를 업은 30대 여성이 방패를 들고 있는 경찰에게 다가가 "아저씨들도 곧 결혼할 텐데, 애한테 미국산 쇠고기 먹이고 싶겠어요" 하고 말했다. 그녀는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며 울먹였다.

새벽 1시쯤에는 중학생 5명이 집회 현장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할지, 집에 돌아가야 할지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한 여학생이 "이제 집에 돌아가는 건 절대 비겁한 게 아니에요. 어차피 우린 또 내일 나와야 하잖아요" 하며 다른 남학생을 설득하기도 했다. 이 감성적 '순수함'에 어떠한 논리적 설득도 쉽게 통할 것 같지 않았다.

대다수 시위 참여자는 광우병에 대한 불안(不安)과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에서 제 발로 뛰쳐나온 것이 틀림없었다. 이 때문에 '배후론'을 비웃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외부적으로는 '배후론'에 화를 내면서도, 내부에서는 '어떤 세력에 의해 이용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불안감도 내비쳤다. 27일 밤 10시30분쯤, 청계광장에서 남은 200여명은 "프락치를 쫓아내자"며 서로를 확인하기 위해 주민등록증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들에게 도로 점거는 '불법'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 같았다. 정당한 자신들의 요구와 주장에 귀 기울이지 않는 현 정권에 비하면, 도로 점거는 별것 아니었다. 또 월드컵 당시 '광장' 경험도 한몫을 하고 있었다. 도로를 행진하는 몇몇 직장인이 "우리나라가 이래서 참 좋아. 월드컵 때도 그랬고, 국민들이 뭐 하나 있으면 집 밖으로 다 나오잖아" 하며 주고받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25일 오후 6시쯤 광화문 앞 대로를 점거한 뒤 대학생들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으며 "내가 언제 여기 걸어보겠냐"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에게서 이번 시위는 '뭔가 절박한 것 같으면서도 놀이(娛樂)'였다. 속칭 '닭장차'라는 경찰버스에 태워진 뒤 "닭장투어 기념"이라면서 사진을 찍어 교환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시위에는 대화 채널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조나 대학 운동권 등의 불법시위와 달리 높은 굽에 미니스커트 입은 여성들, 청소년, 퇴근길 직장인 등 일반 시민을 상대로 강제 해산해야 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다음날 출근해야 할 직장인들이 새벽까지 시위를 하는 것은 인상적이었다. 회사원 김모(31)씨는 27일 새벽 2시30분까지 시위대 속에서 경찰과 대치했다.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을 찍었다는 김씨는 " 미국 산 쇠고기를 먹어서 광우병 걸린 확률이 매우 낮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며 "하지만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겁내고 있고 국민이 이토록 불안해하는 걸 대통령은 국민에게 한 마디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국민을, CEO인 자신의 결정에 무조건 따라야 할 '회사원'으로 보고 있는 증거"라며 "내가 왜 이명박을 찍었을까 하는 후회를 매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게 현 정권이 직시하지 못한, '놀이판' 같은 시위 현장의 '민심(民心)'인지 모른다.

 

농림수산식품부 정운천 장관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고시를 발표한 29일 서울 도심에서는 1만명(경찰추산)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 /사진부 VJ 민봉기 기자 [최보식 사회부장 congchi@chosun.com ]
[ ☞ 모바일 조선일보 바로가기 ] [ ☞ 조선일보 구독하기 ] [ ☞ 스크린신문 다운로드 ]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05/31 00:46 2008/05/31 00:46

근대교육?

2008/05/28 16:10

예를 들어보자. 대한제국기에 철도학교, 광산학교 같은 것이 근대적인 학교제도 수립의 흐름 속에서 만들어졌다. 나는 이것을 알고 있고, 또한 그 역사적인 의미를 연구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 학교들은 의식적이든 비의식적이든 18세기 독일 광산학교를 모델로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근대교육의 초창기에는 광산학교가 인기가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광산학교도 없고, 또 실업학교란 것도 별로 인기가 없다. 이렇게 된데는 어떤 정신적 기저의 흐름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일까? 대한제국기에 최초로, 그것도 중요하게 설립한 몇 안되는 학교 중에 하필 광산학교가 있었고, 이곳에 당시의 엘리트들, 기술적으로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엘리트들이 입학하고, 또 졸업과 동시에 사회적 자본의 순환적 축적을 기대받고 있었던 것일까?

이런 것은 근대교육을 고민하면서 한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다. 그저 근대교육 하면 보통교육만 생각했던 것. 그러나 실제로 근대교육의 본고장인 서유럽에서 이런 학교들이 더 인기가 있었던 것 아닐까? 나는 제대로 공부를 하고 있는가 말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05/28 16:10 2008/05/28 16:10

"3층도식"

2008/05/24 14:20

역사학의 비켜갈 수 없는 고민은 사료를 연결하여 '말'로 만들어줄 모델을 설정해야한다는 것이리라. 모델로는 브로델의 3층도식이 제일 모범적이라고 생각된다. 물질문명-경제-자본주의가 각자의 사료들을 흡수한다. 이러니 어마어마한 사료가 수집될 수 있었을 것이다.

 

브로델의 관심은 '경제적인 것'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물질문명, 경제, 자본주의, 모두 오늘날 우리가 경제학의 영역에 속한다고 말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똑같은 방식으로 역사학의 대상, 따라서 사료 자체가 3층도식을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까? 맨 윗층에 정치가 있다. 인간의 가장 의식적 활동이 엄선된 사료를 생산한다. 이 사료들은 모두가 진지한 사료라고 믿어도 좋다. 중간에 경제가 있다. 역사 속의 인물들은 조금 덜 엄밀한 사료를 흘리고 다닌다. 이것들은 진지함의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적어도 손해는 볼 수 없으므로 이들이 흘린 이 사료 자체가 많은 경우 '솔직함'을 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맨 아래 일상생활. 여기서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가지 헛소리, 농담, 의미없는 사료들을 뿌리고 다닌다. 이 사료의 방대한 바다에 빠져서는 헤어나오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 군데군데 우리가 '대상'이라고 부를 것들도 많이 빠져 있으므로 연구할 여지는 많다고 생각된다. 사회학의 대상은 바로 이곳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05/24 14:20 2008/05/24 14:20

블로그 개설 3주년

2008/05/19 20:32
세월이 가는 줄도 모르게 달려와 버렸다. 본 블로그는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인 2005년 5월에 개설되었다. 순전히 심심파적을 위한 것만도, 그렇다고 거창한 구라적 실천, 혹은 앙가주망 같은 걸 기대한 것도 아니다. 느린 컴으로 연애편지 쓰듯 지웠다 썼다 여러번 끝에 글 하나를 올리게 되지만, 특출난 미문도 아니고 한 번즘 정곡을 찌를 만한 예리함도 갖추지 못한 글이라 읽는 이 하나 없는 무위의 실천을 심심파적 명분만으로 버티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다. 그렇다고 꼭 누가 봐주길, 누군가와 소통하길 기대한 것만도 아니다. 그래, 아니다, 사실은 연습으로서의 글쓰기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독자를 상정함으로써 아주 약간의 긴장을 부여하고 싶었달까... 그러니까 순전히 심심파적만을 위한 것도, 거창한 앙가주망을 위한 것도 아닌, 그 중간 어디 쯤에 내 불질의 의미가 있었다. 의미는 분명히 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불질은 계속 할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05/19 20:32 2008/05/19 20:32

김약국의 추억

2008/05/05 21:58

내 고향 중앙시장 입구에는 시장에 오는 사람이 한 번씩 들리게 되는 약국이 있다. 주인 약사 아저씨 이름이 김모였다. 아마도 그 소도시에서 장사가 제일 잘되는 약국이었을 것이다. 장사가 제일 잘되는 시장의 장사가 제일 잘될만한 목에 위치해 있었으니까.

 

내가 언젠가 집에 내려가서 할 일 없어서 시간때우려고 시립도서관에서 빌려다 본 소설 <<김약국의 딸들>>을 처음 서가에서 보았을 때 시장통의 그 약국을 떠올렸다. 아니, 전국에 무수히 존재할 약사 김모씨들의 약국을 떠올렸던 건지도 모른다. 소도시에서 가장 부유하고, 게다가 주유소 사장과는 달리 저명하기까지 하였던 김모 약사 아저씨, 선거바람이 불 때 국회의원 나갔다가 기성 정치인의 텃세에 눌려 여당 공천도 못받고 무소속 출마하고, 떨어진 일로 재산만 축내었을 테지. 그러나 여전히 한동안 지역사회에서 명성은 유지하고 있었다.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약국과 함께 약사 아저씨도 세월의 저편으로 퇴장하시겠지. 나는 한동안 김모 약사 아저씨와 그의 약국을 떠올릴 때마다 쇠락해 가는 내 고향 소도시 전체의 모습을 함께 떠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박경리 선생의 이 소설 <<김약국의 딸들>>에 등장하는 김약국은 양약을 파는 약국이 아니라 한약을 파는 약국이다. 또 김약국이란 약사 이름이 김씨라서 사람들이 그 약사를 일상적으로 부를 때 쓰는 호칭이기도 하다. 김약국, 김약국 어른, 김약국 나리, 김약국 나리 계신가 여쭙게... 이런 식으로.

 

파는 물건이 양약이냐 한약이냐를 차치하고 보면 김약국과 내 고향 시장통의 그 약국은 꽤나 닮아 있다. 할아버지한테 약국을 물려받은 김약국은 통영지방의 지주이자 유지이다. 대부의 말론브란도가 그러듯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약만 사러 오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일어날 각종 문제들에 대해 상담을 요청하러 오고, 돈을 뜯어가기도 한다. 김약국은 약만 팔지 않고 상담을 해주고, 돈을 주고, 대신에 위신(prestige)을 받는다. 지역사회에서 사람들의 삶은 이와 같이 경제적, 상징적 교환의 그물망으로 빈틈없이 연결되어 있다. 소설은 이런 그물망이 기계적으로 평등한 것만도 아니요, 중심에 현저히 많은 역할을 하는 존재가 있음을 숨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중심이 곧 인생에 있어 좋은 것은 다 차지하는 절대권력은 아니다. 그물의 연결된 올이 더 많을 수록 신경써야할 인생의 프로젝트가 더 많아서 피곤에 쩔어 있을 수밖에 없는 보스의 모습을 소설은 그리고 있다.

 

이런 촘촘한 공동체, 그러나 쇠락해 가는 그물망을 그리기에 일제시대 통영이라는 소도시가 제격이었을 것이다. 통영이 바닷가를 끼고 있는 소도시였단 점도 읽는 내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이미지에 내 고향을 대입했던 것에 한몫했다.

 

저자 박경리 선생이 오늘 돌아가셨다고 한다. 내일 강의 가서는 토지문화관에 꼭 한번 들러보아야겠다. 벌써 몇주째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내 삶은 곧 사소한 번뇌들의 그물망인가 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05/05 21:58 2008/05/05 2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