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영

2005/06/27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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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27 01:28 2005/06/27 01:28

[영화] 홍반장

2005/06/14 19:53

 홍반장

- “축적(蓄積)”과 “소외(alienation)"의 논리에 대한 우발적 반항


정확한 제목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다.(매우 길다.) 제목대로 주인공은 홍반장(김주혁)이고, 그의 직업은 반장이다. “통, 반” 할 때의 그 반장. 그러나 그의 직업이 거기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영화의 첫 번째 모티프가 된다.(두 번째 모티프는 상업영화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덕목, 곧, 세속적 남녀관계이다.) 영화 속 그의 또 다른 직업, 혹은 그가 종사하는 또 다른 업종들은 다음과 같다.


부동산업

인테리어업

편의점 아르바이트

택배업

중국집 배달

김밥집(구체적인 업무는 알 수 없음.)

주점 주방장

live 카페 가수

사설탐정 혹은 경찰 보조원(이에 따라 “훌륭한 시민상 몇 개”를 탔다.)

정육점

비디오 가게

시골역 안전요원

(이상, 등장하는 시간 순)


홍반장은 이렇게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지만 또한 어떠한 직종에도 종사하지 않는다. 혜진(엄정화)의 말대로, “제대로 할 줄 아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 모든 일들은 일당(5만원)으로 계산되지 연봉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이 임금에는 “노동자가 노동력 한 단위를 재생산하는데 필요한 (교환)가치” 따위의 개념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 비용은 “돈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부담을 안 갖고, 다음에도 또 시킬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계약관계가 불명확하고, 또 위약(違約)시의 법률관계가 모호한 비용이다. 한 마디로 말해, “인간적 비용”이다. 이처럼 인간적인 계약 관계 속에서 일을 하는(살아 가는) 홍반장은, 그러나 현대 사회의 상식으로는 “세상에서 제일 할 일 없는 사람”이다. 홍반장의 인생은 사회의 통념에서 볼 때, “왜 그러고 사는지” “좀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불쌍해 보이기도 한” 인생이다.


왜인가? 직업에 관한 현대사회의 상식이 처한 상황은? 곧, 소외(alienation)라는 것.


첫째,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소외. 이른바 “실제의 노동”(labor as reality)이라는 것이 사회 속에서는 의미가 없어진다. 노동에 관한 표상(껍데기)이 그것을 대체한다. 구체적인 작업과정이라든가, 그것의 의미보다는 외형, 곧 사회관계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홍반장은 누구보다 훌륭한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지만, 동시에 그는 이 사회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인정받지 못한다. 자격증이 없으니까. 이에 대해 홍반장은 이렇게 말한다. 곧,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둘째, 노동과정으로부터의 소외. 실제의 노동 그리고 노동자는 노동과정으로부터 자아를 실현할 수 없다. 한마디로 일이 싫어진다.(월요일이 싫어진다.) 일 보다는 일의 결과물이 목적이 된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노동과정이 자기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사회적이지만, 여전히 고립된(이른바 “고립된 생산의 산물만이 상품이 된다”고 하는 M씨의 말대로) 사적 소유물로서의 “공장” 속에서 그것이 강요된 작업을 하는 것만이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다른 것을 꿈꾸는 사람, 혹은 다른, 자기만의 작업과정을 꿈꾸는 사람은 “한심해 보일” 뿐.


셋째, 노동의 결과(곧,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필연적 귀결로서, 상품이라는 것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자신의 노동의 결과물이 변한 것이기도 한 바의, 화폐라는 상품과 대면하여 물신주의에 빠진다. 이른 바 현대사회의 상품 물신성(commodity fetishism)이라고 하는 것. 결국 화폐상품이라는 것(한마디로 돈)의 축적이 삶의 목표가 되는데, 화폐라고 하는 것은 사실 자신이, 노동의 소외 속에서, 작업한 결과물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축적이라는 것은 이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되었다. 이른 바 “자본”(capital)이라고 하는 것은 축적된 상품이다. 소외되지 않은 노동과정 속에서 인간적 능력이 전개되는 것이 아닌, 소외된 노동의 결과물이 축적되는 것으로부터 세상이 움직인다. 이것이 자본주의다. 왜 일, 활동, 인간적 행위가 아니라, 그것의 소외된 결과물(화폐)을 추구하는가 왜 그것이 행복이라고 불리는가. 왜 홍반장이 한심한 사람으로 불리는가.


이 영화를 ‘여성 판타지’라는 시각으로 분석한 것에 대해.

(이 글을 쓸 무렵 S씨로부터 이러한 분석이 나왔다.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켜 준 S씨께 감사한다.)


그런데 위의 분석을 전제할 때, 홍반장이 갖춘 ‘야메’의 능력에 대한 판타지(여성판타지)는 영화속에서만, 현실을 거울처럼 거꾸로 반영하는 영화속에서만, 성립하는 현상이다. 여성들은 영화관에서 홍반장에게서 판타지를 발견하고, 극장을 나서자 마자 “현실적인 남성”을 찾는다.(물론, 정확히는 영화속 판타지+현실적 능력) 그러니까 이 영화는 진정한 ‘영화’인 것이다. 진정한 판타지인 것이다.

 

감독 : 강석범 / 출연 : 김주혁, 엄정화, 김가연, 기주봉 등 / 2004-3-12 / 108분 /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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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14 19:53 2005/06/14 19:53

제목 황당한 자살사건
번호 675 분류   조회/추천 252  /  5
ID/이름 underist / 김재환    
작성일 2001년 05월 14일 00시 25분 43초
세상에 이런 자살 사건도 있을까?

1994년 3월 23일, 미국 샌디애고에서 로널드 오퍼스라는 남자가
10층 빌딩 아래로 투신해 자살했다. 기이하게도 그의 시체는 바
닥에 떨어진게 아니라 8층에 쳐진 안전망에 걸쳐진 채로 발견되
었는데, 경찰에 의한 부검 결과 직접적인 사인은 머리를 관통한
라이플 총탄이었다.
즉, 그가 투신할 즈음에는 이미 라이플총탄이 그의 두개골을 관
통해서 그는 죽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혹시 자살을 가장한 살인이 아닐까 의심한 경찰은 주변 수색에
나섰지만, 그가 투신한 지점에는 아무런 핏자국도 발견할 수 없
었고, 오히려 자살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지는 그의 자필로 된 유
서만이 놓여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머리에 난 총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가 자살하기 전에 라이플 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고 떨어졌
다면, 그 주변에 핏자국이나 흔적, 혹은 라이플 총이 남아 있어
야 하는데, 그런것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사건을 수사해 주변 탐색을 해가던 경찰은 놀라운 데서 답을 찾
을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가 10층에서 자살 투신한
직후 9층지점을 통과하는 순간, 9층에서 날아온 총탄에 머리를
맞은 것이었다.
9층에는 노부부가 세 들어 살고 있었는데, 그 부부가 심한 말다
툼을 하다 격분한 남편이 총을 들고와 부인에게 총을 쏘았는데
총알은 부인을 빗겨나가, 정말 우연히 마침 그리로 떨어지던 오
퍼스를 맞힌 것이다.
우연치고는 정말 기가 막힌 우연히고, 어짜피 자살할려고 투신
하던 오퍼스가 총에 먼저 맞아 죽는다고 크게 달라질 것이 없으
므로 그게 뭐가 대수냐고 생각할른지도 모르지만, 경찰은 다른
결론을 내렸다.
8층에는 안전망이 쳐져 있었으므로, 만약에 오퍼스가 머리에 총
탄을 맞지 않았을 경우, 그는 안전망에 걸쳐져 살아 남았을런지
도 모른다. 즉 자살 미수로 살수도 있었는데, 그 총탄으로 사망
했으므로 9층 노부부중 남편은 과실치사 혐의가 된다는 것이었
다. 다시 말하자면, 남편은 부인을 겨냥해 총을 쏘았더라도, 만
약 그게 부인에게 맞았을 경우는 일급 살인이 되지만, 부인을
빗나가 그 옆의 다른 사람이 맞았을 경우는 이급 살인, 즉 과실
치사가 되며, 이 경우로서 9층에 사는 노인은 과실 치사 혐의가
적용된다는 것이다.

경찰의 혐의 적용이 이렇게 풀려가자, 그 노부부는 곧 자신들은
항상 그 총에 총탄을 넣어두지 않으며, 어떻게 그 총이 장전되
어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그들에 따르면, 그들은 평소, 부부싸움에는 항상 남편이 빈총을
들고 나와 부인에게 쏘는 시늉을 하면서 위협하는 등의 습관이
있었는데, 분명한건 자신들이 결코 그 총에 탄환을 장전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총탄이 장전된지 모르고
총을 발사했으므로 살해 의도가 전혀 없었으며 (일급 살인죄를
면함), 또 마침 오퍼스가 그 와중에 총탄을 맞았으므로 오퍼스
는 사고사로 처리 되야지 자신이 살인죄를 적용받는 건 억울하
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건의 핵심은 누가 과연 그 총탄을 장전했다는 것인
가?

그 총탄을 장전한 사람이 이번 사건의 유죄가 될 것이었다. 경
찰은 수사 끝에 그 노부부의 아들 중 한 명이 사건 6주 전 총탄
을 장전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 아들은 직장에서 해고되고 어머니로부터 금전적인 도움을 외
면 당하게 되자, 아버지의 습관(어머니를 향해 빈총을 발사하는
습관)을 떠올리고 어머니를 살해하기 위해 몰래 총탄을 집어 넣
은 것이다.
그 아들은 총탄을 장전한지 6주가 지나도록 자신의 부모가 부부
싸움을 하지 않는 바람에, 자신의 어머니가 살해될 희망이 점점
없어지자 결국 절망한 채로 10층에서 자살하기로 한것이다.

즉 다시 말하자면 그 아들이 바로 자살한 로널드 오퍼스였던 것
이다.

이런 기가 막힌 경우가 있을까?
사건은 결국 오퍼스의 자살사로 종결되었다.

------------------------------------------
실화랍니다--;

underist, beside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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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5 00:20 2005/05/25 00:20

The nobodies

2005/05/23 22:24

Fleas dream of buying themselves a dog, and nobodies

dream of escaping poverty: that one magical day good luck will

suddenly rain down on them-will rain down in buckets. But

good luck doesn't rain down yesterday, today, tomorrow,

or ever. Good luck doesn't even fall in a fine drizzle, no matter

how hard the nobodies summon it, even if their left hand is

tickling, or if they begin the new day with their right foot, or

start the new year with a change of brooms.

 The nobodies: nobody's childre, owners of nothing. The

nobodies: the no ones, the nobodied, running like rabbits,

dying through life, screwed every which way.

 Who are not, but could be.

 Who don't speak languages, but superstitions.

 Who don't create art, but handicrafts.

 Who don't have culture, but folklore.

 Who are not human beings, but human resources.

 Who do not have faces, but arms.

 Who do not have names, but numbers.

 Who do not appear in the history of the world, but in the

 police blotter of the local paper.

 The nobodies, who are not worth the bullet that kills them.

 

 Eduardo Galeano, "The Nobo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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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3 22:24 2005/05/23 22:24

제목 [펌] 신데렐라는 단지 예뻐서 왕과 결혼한 것이 아니다!!!
번호 851 분류   조회/추천 919  /  13
ID/이름 slee5129 / 이은희    
작성일 2004년 05월 29일 04시 15분 40초
운이 좋아서 왕비가 된 것도 아니다.


바로 그녀의 능력 때문이었다!!!


신데렐라가 12시 종소리를 듣고 무도회를 떠나는 장면.....

종은 12시 정각부터 12번 즉, 11초간 울린다.

그 안에 떠야 -_-; 한다.

무도회장 실내는 최소 50미터라고 본다.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은 길이가 73미터, 기타 현관 등 감안할 때 130미터 내외다.
무도회장 나오면 바로 계단이라고 가정하고 50미터라고 해주자.

그 안에 사람들 꽉찼다. 즉, 직선으로 주파할 수는 없다.

지그재그로 가야하는데 엄청난 속도라서 신데렐라와 부딪히는 사람은
갈빗대 서너대 부서지는 건 기본이고 춤추다 골깨지고 황천가는 일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지그재그이니 45도 각도로 무한 꺾는다 생각해서
루트2 근사값인 1.4 곱해서 70미터 되겠다.
거기에 계단 길이 더해야한다.
10미터 더해서 80미터라 하자.

유리구두를 부서지지 않게 계단에 투하 -_-; 해야한다.
마차 시간 등을 감안해 위의 과정을 8초에 소화한다고 하면
10m/s의 관성이 유리구두에 실려있으니
순간적으로 멈춰서 놓고 오는 수밖에 없다.
달리다 정지하기는 어려우니 7초경 부터 감속한다고 가정하자
중간속력이 그만큼 더 나야 한다.

12시 종이 땡~ 하는 순간
스프린터 자세로 튀어-_-나가는 것이 아니라
춤추던 왕자를 다치지 않게 뿌리침과 동시에
"어머 12시가 되기 전에 가야해요" 대사를 날림과 동시에
180도 턴 해서 최대 속력으로 지그재그 달려야 한다.

모리스 그린은 스타트를 0.104초에 했다고 하는데
신데렐라는 0.00 초에 정확히 했다고 하자.
따라서 최초 1초는 증속,
중간 6초는 초속 12미터의 등속운동이라 해야 개연성이 있다.
그녀는 100미터를 8.33초에 주파하는 속도로 달리는 것이다.

물론 유리구두에 드레스를 입었으니 이정도지
나이키사의 ■Swift Suit■라도 입었다면 그녀가 달린 후
생기는 후폭풍으로 무도회장이 적잖이 작살 났을 것이다.
어떠신가? 그녀의 무한한 육체적 강인함에
왕자가 안 끌릴수 있겠는가?

그녀를 통해 탄생될 2세들은 1990년 주말 오후 5시40분에
엠비씨에서 볼수 있었던 플래시맨 바로 그넘 들인것이다.
부국강병, 체력은 국력 중세시대에 이런 철녀를 만났으니
왕자가 기를 쓰고 그녀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왕자가 그녀를 찾는 이유는 또 있다.
자, 원하는 지점에 유리구두를 투하-_-하고!
신데렐라가 8초만에 대기하던 마차에 꽂-_-혔다고 하자.
마차를 타서 남은 4초동안 왕궁밖으로!!!!! 나가야 한다.

베르사유 궁전의 메인홀 현관 앞 정원은
직선거리가 1311미터라고 한다.
이를 딱 삼분의 일로 줄여서 400미터라 가정하자.
시속 100km 도달 시간 3.2초,

최고속도 387km/h의 속도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차라는
맥라렌은 정지상태에서 400미터 주파하는데 11초가 걸린다.
맥라렌을 양귀싸대기 날릴
이런 기똥찬 말과 마차를 봤을 때 과학입국의 사명감에
몸이 부르르 떨리지 않았겠는가?

고로, 왕자는 신데렐라를 찾아
슈퍼 2세를 탄생시키고 슈퍼 말,
슈퍼 마차도 만들어 우주정복을 시작하자는 생각으로
그녀를 열렬히 찾았던 것이다..........................

아..................
비장한 사랑과 냉철한 지성에 치를 떨며.........


■.■

그러니까 신드렐라 스토리뭐... 이런말을 하자말자-_-;;

radio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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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16 05:49 2005/05/16 05:49

[퍼온유머] 라면교

2005/05/07 01:33

유머 게시판 
 
제목  [펌] 라면교
번호  849 분류     조회/추천  1096  /  15 
ID/이름  slee5129 / 이은희       
작성일  2004년 05월 13일 23시 02분 06초
 
Q. 라면교의 주된 교리는 무엇인가요?

A. 많은 것이 있으나 크게 세 가지를 지키고 믿으면 라면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부활의 신앙입니다.
끓는 물에 돌아가신 후 3분만에 부활하신 기적을 믿는 것입니다.

둘째로 삼위일체입니다.
면발과 국물과 김치의 조화됨과 하나됨입니다.

셋째로 사랑과 긍휼입니다.
주리고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희생하고 봉사하는 자세입니다.
 
Q. 짜파게티님도 구주이십니까?

A. 많은 종교신학자들이 여전히 여기에 대하여 논쟁을 하고 있습니다. 부활과 사랑의 측면에서는 부합하나, 짜파게티경 5장에 보면 `면이 끓으면 국물을 큰술 3술만 남기고 따라버리`라는 글이 나옵니다. 이것은 일부 근본주의 신학자들로 하여금 삼위일체를 부정한다는 증거로 쓰여지기도 하지만,
조심스러운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큰술 3술`에 남아있는 깊은 뜻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짜파게티님을 인정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Q. 그렇다면 이단으로는 어떤 종파가 있습니까?

A. 우선 부활신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교파들이 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라면교의 초기에 있었던 `하이면`과 그 뒤를 잇고 있는 `생생 짬뽕` `생생 우동` 등의 `튀기지 않은 면발`을 강조하는 부류입니다. 끓는 물의 고난을 부정하고 `생면`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교파입니다. 또한, 삼위일체의 부정이 있습니다. `비빔면` `모밀국수`가 대표적인 세력입니다. 이들은 국물을 다 따라버리는것도 부족하여 냉수에 헹구는 극악한 사탄의 무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부활 신앙에 반하는 자들과 더불어 `액상 스프`라는 사도의 양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 때의 깔끔한 맛에 유혹되어 영원한 지옥불이 기다리는것을 모르는 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Q. 컵라면님에 대하여 알고싶습니다.

A. 컵라면님은 배고프고 주린 자가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니요, 노숙하는 자나 길 잃은 자를 위하여
냄비에서 스스로 나오신 성자이십니다.
이분께서는 비록 냄비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셨지만, 부활과 삼위일체와 사랑을 실천하시는 큰 성인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주이신 라면님과 착각하는 우를 범하여서는 안되겠습니다.
시중에서 라면님의 형상을 모방한 것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뿌셔뿌셔`입니다..

radio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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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07 01:33 2005/05/07 0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