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한대수의 노래 <옥이의 슬픔>의 가사. 옥이가 가진 슬픔의 근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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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이의 슬픔>(혹은 <옥의 슬픔>)

 

                                                        한대수

 

저 넓은 정원 뒤를 잇는 장미 꽃밭

높고 긴 벽돌 담이 저택을 두르고

앞문에는 대리석과 금빛 찬란도 하지만

거대함과 위대함을 자랑하는 그 집의

이층방 한 구석엔 홀로 앉은 소녀

아-아- 슬픈 옥이여 아-아- 옥이여


백색의 표정없는 둥근 얼굴 위의

빛 잃은 눈동자는 햐얀 벽을 보며

십칠년의 지난 인생 추억없이 넘긴 채

명예와 재산 속에 사는 부모님 아래

아무 말도 없이 아무 반항도 없이

아-아- 슬픈 옥이여 아-아- 옥이여


햇볕에 타고 있는 팔월 오후에

권태에 못 이겨서 집을 떠났다

오랫동안 못 본 햇님 그대 참 그립군요

울려라 종소리여 나도 자유의 몸이요

난 살고 싶소 난 세상을 볼테요

아-아- 슬픈 옥이여 아-아- 옥이여


복잡한 사회 속에 옥이는 들어서

수많은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서

사랑과 미움 속에 끓는 청년을 보았소

길가에 허덕이는 병든 고아도 보았소

배반된 남편 꿈 깨어진 나그네

아-아- 슬픈 옥이여 아-아- 옥이여


바람 찬 바닷가로 옥이는 나서서

밀려오는 파도에 넋을 잃은 채

인생의 실망 속에 자신 찾을 수 없이

꽃잎도 파도 위로 수평선을 따라서

저 초원도 가고요 저 눈물도 썰물도

아-아- 슬픈 옥이여 아-아- 옥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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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5 05:44 2006/02/15 05:44

달러화 약세

2006/01/18 19:39

프레시안에 미국 경제의 이상조짐에 대한 글이 연일 올라오고 있다. 내용은 대개 최근의 원화 환율하락에 대한 것인데, 간단히 말해서 원화의 환율이 하락(현재 980원/1달러 선까지 갔대나)하는 현상의 궁극적 원인은 달러화 약세에 있다는 것이고, 달러화의 약세는 미국 경제의 이상을 알리는 징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 지구촌의 소비자 구실을 하고 있으며, 동시에 전 세계 저축의 10%가 몰릴 정도로 전 세계의 투자처 구실도 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쌍둥이 적자, 곧 재정적자와 경상수지적자가 심화되어 종국에는 전 세계가 연쇄도산을 하고 말 것이라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1929년의 대공황과 같은 세계 대공황이 올 것이다. 이 경우, 대공황기 식민지 조선 식자층의 생활상을 다룬 소설 <레디메이드 인생>에서 그리고 있는 것처럼, 가장 피해가 큰 집단은 결국 비정규직 먹물계급을 포함한 '기생프로레타리아'일 것이다. 일찌감치 시골에 땅사서 농사짓는 것이 답일까? …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아래, 프레시안에서 퍼온 기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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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의 몰락, 그 스산한 예언

[이봉현의 경제스케치] 금융공포의 균형
등록일자 : 2006년 01 월 16 일 (월) 09 : 22   
 

  10원짜리 동전이 40년 만에 바뀐다고 한다. 원료인 구리와 아연의 가격이 올라 동전 액면가치의 4배나 돼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금이나 은 같은 실물로 만들어졌던 화폐가 가치는 없지만 지폐처럼 정부가 권위를 부여한 법화(法貨)로 바뀐 이래 화폐의 제조원가, 즉 실질가치는 늘 액면가치를 밑돌았다. 법화의 개념이 없었던 로마시대에도 네로 황제가 은화의 은 함량을 액면가치보다 적게 만들도록 했다는 것을 보면, 실질가치 이상의 액면가치로 화폐를 발행하게 하는 유혹이 그 뿌리가 깊음을 알 수 있다.
  
  달러의 신뢰도 상실이 낳는 파장
  
  지폐는 정부가 발행한 차용증서에 불과하지만 신뢰를 바탕으로 가치가 유지된다. 신뢰가 바로 실질가치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신뢰를 갉아먹어 위기에 몰리고 있는 화폐가 있다. 바로 기축통화라고 불리는 미국 달러다. 올 연초부터 원/달러 환율이 8년 만의 최저까지 떨어져 국내 수출기업과 중소기업들이 울상을 짓고, 당국이 연일 수억~수십억 달러를 들여 환율 방어에 나서는 '법석'을 떠는 것도 결국은 달러의 신뢰도 상실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6%를 넘어섰다. 일란성 쌍둥이라 할 수 있는 재정적자와 합치면 국내총생산의 10%를 훌쩍 뛰어넘었지만, 줄어들기는커녕 해마다 불어나고만 있다. 경상적자가 GDP의 5%를 넘으면 외환위기가 온다는 게 동남아, 남미 같이 호되게 당해본 나라들의 경험칙이다. 쌍둥이 적자는 한마디로 실력보다 소비를 많이 했다는 얘기다. 저축률이 1%대로 역대 최저인 상태에서도 미국의 국민과 정부는 시간당 7000만 달러, 연간 6000억 달러를 빌려 레저용(RV) 승용차나 디지털TV를 장만하고 해외에서 전쟁을 벌이는 데 쓰고 있다.
  
  이런 빚잔치가 가능한 것은 '달러의 리사이클링'이라 불리는 국제 자본흐름 덕분이다. 1990년대에는 강한 달러정책에 이끌려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간 민간자본이 미국의 경상적자를 보전해줬지만, 미국인들이 투자보다 소비에 정신이 팔려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진 2000년대에는 일본, 중국, 한국 등 아시아 국가 중앙은행들이 대신 미국 경상적자를 보전해주는 역할을 해 왔다. 이들 아시아 국가 중앙은행들이 대미 수출로 번 막대한 달러를 미국 국공채 같은 미국 자산에 투자한 것이다.
  
  미국의 빚잔치가 유지되는 구조
  
  아시아 중앙은행들이 이렇게 한 것은 자국 통화의 절상(달러가치 급락)을 막고 미국의 소비경제를 유지해 계속 수출증가세를 유지하자는 계산에서다. 아시아는 생산하고 미국은 아시아의 돈을 빌려 소비한다는 구조다. 미국은 좋게 말해 세계의 '성장엔진' 노릇을 하고 아시아는 달러 가치를 지탱해준다는 암묵적 균형이 만들어진 것이다.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공멸의 두려움이 이 균형을 유지해준다는 뜻에서 이를 '금융공포의 균형'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달러의 위기는 1971년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달러의 금태환(요구가 있으면 금으로 바꿔주는 것) 정지를 선언했을 때부터 예정된 것이란 얘기가 설득력이 있다. 발권이 금 보유란 속박을 벗어나면서 '지폐의 시대'가 왔고, 국제교역의 불균형을 간단히 달러를 찍어 벌충하는 도덕적 해이가 도를 더해가며 미국의 경상적자가 부풀기 시작했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미국 정부는 인쇄라는 '굉장한 기술'을 갖고 있는데, 이 기술로 돈 들이지 않고도 원하는 대로 달러를 찍어낼 수 있다"고 비꼬았다.
  
  리처드 던컨은 그의 책 〈달러의 위기-세계경제의 몰락〉에서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 이후 30년 동안 미국에 3조 달러 이상의 누적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됐다"며 "미국의 부채 대부분이 상환될 수 없기 때문에 현재 (위기가) 터지기 직전"이라고 밝혔다. '카드(달러)로 지은 경제'는 기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위기의 뇌관은 아시아 등 경상수지 흑자국의 중앙은행들이 더 이상 미국 달러 자산을 사줄 수 없을 때 터지게 된다. 그래서 2조 달러 이상의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고 그 중 60~70%를 미국 단기 국채 등에 투자해 온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중앙은행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국제금융시장에서 주시되고 있다.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아시아 국가들
  
  가장 두려운 유령은 '외환 보유액 운용의 다변화'다. 지난 10일 중국의 후샤오렌 외환관리국장이 "외환의 자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외환투자 영역을 넓히겠다"고 한 것이 다변화를 암시한 것으로 해석돼 한바탕 시끄러웠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이따금씩 나오는 중국의 외환운용 다변화 관련 발언에 대해 "미국의 위안화 절상압력에 대한 저항의 성격이 있는 것 같다"며 "하지만 무역구조를 고려할 때 달러를 벗어나 다른 데 투자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에는 한국은행이 외환보유 통화구성의 다변화를 언급했다가 한은발(發) 국제금융 쇼크를 일으킨 적도 있다.
  
  중앙은행이 약해질 것이 뻔한 통화로 표시된 자산을 들고 있는 것은 일종의 국부유출이다. 달러 가치가 10% 하락하면 한국은 GDP의 3%, 싱가포르와 대만은 8%의 자본손실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외환보유액을 달러 위주에서 금이나 유로 등으로 다변화하고 싶지만 너도나도 그러면 달러가 붕괴되고 국부도 반토막난다는 점에서 아시아 국가들은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금융 저널리스트 애디슨 위긴은 〈달러의 경제학(The Demise of the Dollar)〉에서 "미국 소비자들이 과소비에 중독돼 있듯이 (대미) 수출국들은 미국으로의 상품 수출에 중독돼있다"며 "구매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판매자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체제가 굴러갈 수는 없다는 데 고민이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현재 GDP의 6%인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8%에 이르면 달러에 대한 신뢰가 붕괴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현재의 적자 규모로도 세계 잉여저축(경상흑자)의 80% 이상을 빨아들이고 있는데 이 비율이 8%를 넘어서면 세계의 잉여저축 전부를 자본수지 흑자로 흡수해야 보전이 된다는 것이다. 현재의 경상적자가 계속되면 2008년까지 필요한 해외자금 수요가 4조 달러에 이르고 2조4000억 달러인 아시아 중앙은행들의 외환보유액은 2배인 5조 달러가 돼야 한다는 계산이다. 실현가능하지 않은 현실이 불과 2~3년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 결과는 미국의 '외환위기'다. 자국 통화를 해외부채로 갖고 있는 미국의 외환위기는 미국 조폐창의 인쇄시설을 24시간 가동해 달러를 찍어서 해외 중앙은행에 진 빚을 갚는 상황을 말한다. 현재 미국이 갖고 있는 대외준비자산은 부채상환 요구에 단 10분도 버티지 못할 만큼 적다. 이런 점에서 미국은 세계 어느 나라도 갖고 있지 못한 특권(시뇨리지: 지폐생산 비용과 액면가의 차이 만큼의 이익)을 누리는 것이지만, 세계경제는 실타래처럼 엉클어질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증발된 통화량만큼 달러 가치는 수직 하락할 것이고, 미국이 해외자금을 끌어들이려면 미국 내 금리는 치솟게 된다. 이럴 경우 부동산 등 자산거품이 꺼지고 소비도 줄어들며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오게 된다는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이런 위기가 현실화될지, 아니면 국제적인 협조와 조정을 통해 해소될지는 누구도 알기 어렵다. 그러나 애디슨 위긴은 아직도 많은 미국인들이 "느리게 성장하는 경제는 돈을 유출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는 돈을 유입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가하게' 말하는 한 위기의 해소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아시아판 유로로 '아쿠(ACU: Asian Currency Unit)'를 내놓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기축통화로서 달러가 누려온 위상의 약화와 맞물려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기업이나 개인이나 수십 년 간 누적된 모순의 폭발로서 달러 가치가 붕괴할 위험을 먼 일로만 볼 것이 아니다.

로이터 이봉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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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8 19:39 2006/01/18 19:39




거세된 학문, 인문학의 위기
박노자칼럼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인문학의 위태로움을 탄식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학생들이 사학과나 철학과를 회피하고 인문학 서적들이 팔리지 않아 재고만 쌓이는 현실이기에 당연한 걱정이라 하겠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가는 ‘국민’에 대한 국가주의적 세뇌를 목적으로 ‘민족적 긍지’를 심어준다는 ‘국학’이나 ‘국민윤리’로 연결될 수 있는 철학 등을 전략적으로 지원해 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국가의 과제가 ‘민족’보다는 자신을 ‘좋은 상품’으로 만들어 팔 줄 아는 인간의 대량생산이니, 전통적 의미의 ‘국민적 인문학’은 뒷전으로 밀리게 됐다. ‘돈 안되는 학문’이 연구비 분배의 주된 주체인 정부나 기업화돼 가는 대학들의 푸대접을 받고 쇠퇴하는 것은 위기의 외재적 원인이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과연 오늘날과 같이 틀에 박힌 인문학이 자신의 위기를 자초한 부분이 있지는 않은가? 지금 자본과 국가가 인문학의 목을 졸라 질식사시키는 것이 사실이지만, 자본주의 국가가 생산한 인문학은 자본과 국가의 공격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미 지역에서 근대 대학 제도의 형성과 함께 20세기 초반에 그 틀이 완성되고, 그 뒤에 한국으로 이식된 아카데미즘(순수학술) 인문학에는 주된 두 개의 특징이 있다. 하나는 연구 주체와 대상의 철저한 분리, 연구자의 ‘중립과 객관’이라는 고답적 자세이고, 또 하나는 ‘전공’끼리의 정밀한 구별과 연구자들의 극단적인 전문화다.

물론 ‘중립’이 강조된 상황에서도 철학도인 박종홍이 박정희를 위해 ‘국민교육헌장’과 같은 파시즘의 선언문을 기초해 주는 일은 충분히 가능했다. 국가에 의해 키워지는 학문이니 국가를 섬기고 봉사하는 일이 당연했겠지만, ‘고상한’ 현학이 장려되는 오늘의 분위기에서 아나키즘 연구자가 실재하고 있는 아나키스트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일제하 공산주의 운동 연구자의 다수가 현존하는 급진 좌파 운동과 효율적으로 상호작용하지는 않는다. 공부가 실존적인 ‘나’와는 무관한 하나의 ‘작업 재료’처럼 다루어지는, 지행합일이 불가능한 분위기에서 니체나 프롬과 같은 위대한 반란자를 연구했던 사람이 1980년대 독재정권 하에서 반공주의와 국가주의 ‘교육’을 강요하는 문교부 장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미시적인 분야 나누기는 공부의 깊이에서 장점도 많지만 결국 사회와 소통할 수 없는, 지식 생산의 ‘라인’에서 한 나사만 돌릴 줄 아는 ‘전공자’를 만듦으로써 자본과 국가 앞에서 지식인을 무력화시키게 된다. 1930년대의 백남운이나 신남철, 전석담, 인정식 같은 거인들은 그들의 좁은 ‘전공’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와 ‘사회’ 전체를 꿰뚫어볼 수 있었기에, 식민지 현실의 비판자로서 일제에는 위험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국사’ 전반 중에서도 하나의 인물, 하나의 기간, 한가지 비문이나 문헌만 ‘전문 연구’하는 사람은 신자유주의적 국가를 이념적으로 분석, 비판할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낮다.

신자유주의에 맞서 있는 광범위한 피해대중의 처지에서라면 그러한 종류의 인문학이 관심의 대상이 될 리 없다.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인문학 위기의 내재적 본질이 아닌가. 자유주의자들은 소련·중국에서 쓰였던 ‘학문의 당성(黨性)’과 같은 표현을 조롱하지만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특정 정치 조직에의 충성이라는 스탈린주의적 의미의 ‘당성’이 아닌, 체제에 짓밟히는 피해자의 처지에 서서 체제의 변혁을 도모하려는 의미의 ‘당성’이 필요하다. 사회를 진보시킬 수 있는 공부야말로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기사등록 : 2006-01-16 오후 06:10:52기사수정 : 2006-01-16 오후 06: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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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7 01:28 2006/01/17 01:28

DJ와 탕(湯)임금

2006/01/16 18:53

오늘자 프레시안에 나온 기사의 일부이다. 정동영 전 장관에 관한 것인데,

 

<… 자신에게 쏟아지는 당권파 책임론에 대해서도 정 전 장관은 "DJ는 79석 짜리 당으로도 한국정치를 주름잡았는데 우리는 144석 여당으로 빌빌거리고 있다"며 "누구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이고 소통의 문제"라고 당의 위기 원인을 진단했다.…>

 

이것은 정 전 장관이 열린우리당의 한 지역당 행사에 참석해서 한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은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에 맹자가 했던 말과 문장구조가 비슷하다.

 

<齊人伐燕取之. 諸侯將謨救燕. 宣王曰 "諸侯多謨伐寡人者 何以待之?" 孟子對曰 "臣聞 七十里 爲政於天下者. 湯是也. 未聞以千里 畏人者也.… >

제나라가 연나라를 정벌하여 잡아먹었는데 제후들이 연나라를 구할 모의를 하였다. 제나라 선왕이 맹자에게 말하기를 "저를 정벌하려고 모의하는 제후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하니 맹자가 대답하기를 "70리 영토로도 천하에 정치를 한다는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탕임금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영토가 1000리나 되면서 남을 두려워 한다는 말은 못들어 보았습니다.…

                                                                               - <<孟子>>, 2-11 부분

 

탕임금은 중국 실증 역사상 최초의 국가인 은나라를 세운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전설적인 성인(聖人)이다. 제선왕은 전국시대 전국7웅의 하나인 제나라의 왕인데 이 시기에 제나라는 이웃나라를 잡아먹을 정도로 강성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이 뒤의 내용에 대해 말하자면, 제선왕이 왕도정치를 행하면 두려울 게 뭐가 있겠냐는 얘기를 맹자가 한다. 맹자는 무조건 왕도정치다.

 

p.s : DJ가 정치를 잘했다는 말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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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6 18:53 2006/01/16 18:53

진보블로그의 '행인'이라는 사람의 블로그에서 퍼왔다. http://blog.jinbo.net/hi/?pid=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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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 라인 | 내맘대로

 

 

누구나 자신이 서있는 위치에서 이야기를 한다. 객관적 입장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래서 힘들다. 오히려 객관적이라는 것은 그래서 정치적이다. 정치적으로 객관적일 수 없는 행인은 그래서 매우 주관적인 견지로 내 이야기를 한다.

 

시위를 진압하는 입장과 시위를 진행하는 입장은 당연히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게 된다. 어느 한 쪽이 어떻게 잘못했느냐를 판단하는데 이 둘은 서있는 위치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집회시위를 바라보는 제3자(실상은 제3자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지만)는 두 집단 중 어느 하나의 이야기를 더 들을 수밖에 없고, 이들은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결국 자신이 서고 싶은 위치에 자신을 옮겨둔 채 이야기를 하게 된다.

 

김강자라는 분이 있다. 종암서장을 하면서 집창촌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펼치고 경찰주도의 청소년 선도사업을 수행했던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이분이 자서전 비스무리한 것을 썼다. 이 책 안에 시위에 대응하는 경찰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이분이 말씀하시는 경찰의 모습과 내 입장에서 바라본 경찰의 모습은 많은 차이가 있다. 이분의 책 안에 있는 내용과 내가 경험한 내용을 비교해보면 이렇다.

 

"시위대의 일부가 예전과 같이 쇠파이프, 몽둥이, 돌 등으로 무장하고 여경 기동대의 폴리스라인을 넘으려고 했다. ... 시위대는 아무 무장도 하지 않은 여경 기동대원들을 무너뜨렸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청장 이하 경찰 수뇌부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쓰러지는 부하들을 보는 심정은 분노 그 이상의 것이었다. ... 내가 경찰 수뇌부라도 당장 최루탄 발사 명령을 내리고 싶었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가까스로 정착되어가는 평화적인 시위문화를 깨뜨릴 수는 없었다."

 

평화집회를 약속했는데, 경찰들은 닭장차로 집회참가자들을 둘러쌌다. 닭장차 저편으로는 사람들과 차량들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우리의 모습과 우리의 구호는 닭장차로 둘러쳐진 폴리스 라인 안에서만 맴돌았다. 노인들이 앞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무장한 전경들은 방패로 이들을 사정없이 밀쳐냈다. 힘 없이 쓰러지는 어르신들을 보는 심정은 분노 그 이상의 것이었다. 나에게 총이 있었다면 당장 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방패 앞으로 머리를 들이미는 것 뿐이었다.

 

"경찰이 교통소통을 위해 차도를 점거한 시위대를 연행하자 그동안 자취를 감췄던 화염병이 다시 등장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경찰 지휘부는 작년 말보다 더욱 분개했다."

 

집회 끝나고 가두시위를 하려는데, 예정된 코스로 시위를 하려하자 경찰 관계자가 오더니 차량소통에 방해가 된다고 지하도로 가란다. 어이가 없어서 신고한 대로 하는 건데 왜 그러느냐 했더니 교통을 방해할 경우에 법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법에 나와 있는대로 신고한 거니까 우리는 예정대로 시위를 하겠다고 했고, 그대로 진행을 했다. 순간 전경대원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선두에 있던 사람 여러 명이 순식간에 닭장차 안으로 끌려들어갔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했을까? 경찰의 지시대로 지하도로 가야하나? 그들이 법을 들이밀며 불법적인 행위를 하려는 마당에 우리가 그들의 불법적 지시를 따라야 하는가? 우리는 항의할 수밖에 없었고, 경찰들을 밀어부칠 수밖에 없었고, 닭장차에 끌려들어갔던 사람들을 빼내올 수밖에 없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신 사전에 정해진 약속을 깨고 도로 점거 등의 행위를 할 경우에는 가차없이 시위대를 진압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군복무 중인 군인을 빼다가 시위진압에 동원하는 경우가 있나? 의경이라는 희안한 제도 만들어서 젊은이들을 무상으로 부려먹는 것도 모자라 집회시위에 동원해서 폭력진압을 하도록 만드는 나라 있나? 닭장차로 시위대를 완전 차단하고 그걸 폴리스라인이라고 우기는 나라 있나? 관공서 100m 밖에서만 집회시위하라고 하는 선진국 있나? 미국 대사관 앞에서는 아예 사람들이 모여있지도 못하게 하는 나라가 있나? 정부종합청사, 국회의사당 들어가면서 정문에서부터 경찰들이 중무장한 상태로 지키고 서 있다가 개구멍으로 민원인 들어가게 하면서 소지품 검사까지 하는 선진국 있나? 어딨나? 미국? 어딨나?

 

이분의 말마따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르다."

다른 부분을 봐도 이렇게 달리 본다. 김강자씨의 눈에는 폴리스라인을 뚫고 나온 시위대에게 가차없이 폭행을 행사하는 '선진국' 경찰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우리나라와는 완전히 다른 그들의 폴리스라인 설치가 합리적으로 보인다. 달라도 아주 다르다.

 

이분, 여경 기동대가 쳐 놓은 폴리스라인을 무너뜨리고 시위대가 여경 기동대 수명에게 부상을 입힌 것을 들며 분개하신다. 어제 "우리 아들 때리지 마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평화적인 시위문화 정착을 촉구하는 대회를 여신 분들도 지난 수년 간 천여명이 넘는 전의경들이 집회시위 참가자들에 의해 부상을 입었다고 성토하셨다.

 

그런데 지난 수년간 집회 시위 참가했다가 전의경들에게 다친 사람은 무릇 기한가? 다른 부대는 다 제껴놓고 1001, 1002, 1003 얘네들에게 얻어 터져 죽거나 뻗었던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경찰 수뇌부가 집회시위에서 부하들이 부상 당하는 것을 걱정하는 것만큼, 전의경으로 자식을 보낸 부모들이 자기 자식이 시위대에게 부상 당하는 것을 걱정하는 것만큼,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하게 집회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두려움과 공포에 대해서 김강자씨는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지난 농민대회에 참가했던 한 어르신이 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식구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서울로 올라왔단다. 이래 해도 죽고 저래 해도 죽는 거, 내 어차피 죽으러 가는 거니까 그런 줄 알아라...

 

김강자씨가 이야기하는 경찰의 인내와 폴리스라인에 얽힌 전설들은 "평화로운 시위문화 정착"을 위해 헌신 노력한 경찰의 자화자찬일 수는 있지만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나같은 사람들에게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아마, 내 입장에 대해서도 김강자씨는 전혀 동의하지 않을지 모른다.

 

대충 동의하는 부분이 하나 있기는 하다.

 

"젊은이들이 한쪽은 화염병과 몽둥이, 돌로 무장하고 다른 한쪽은 마치 로마 병정을 연상시키는 두터운 방석복과 최루탄으로 무장하고 거리에서 맞붙어 싸워야 하는 것인지. ... 되는대로 길바닥에 주저앉아 준비한 도시락을 먹는 그들의 얼굴에는 피곤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항상 가슴이 미어졌다."

 

그 모습 보면서 기분 좋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날씨 추운 요즘 여의도 길바닥에서 닭장차 옆에 배식대를 마련하고 돌아가며 식판을 들고 밥을 받아가는 전경들 보면 뜨신 오뎅국물이라도 사다주고 싶은 심정이다. 쟤들이 뭔 죄를 지었길래 저 고생을 하나? 그런데 바로 그 앞에 늘어선 농성천막들이 보인다. 그사람들, 이 추운 겨울날 길바닥에서 먹고 자면서 투쟁을 하고 있다. 저 사람들은 뭔 죄를 지었길래 저 고생을 하나?

 

투쟁하는 사람들이야 자신의 생존권을 걸고 하는 싸움이므로 어떤 형태로든 그 자리에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의경들은 다르다. 걔들은 그 자리에 없어도 되는 사람들이다. 군복무를 위해 징집당하는 것도 서러운데 게다가 아스팔트 바닥에 방패하나 깔고 찬 궁둥이를 붙이고 있어야 되는 이 젊은이들, 그 자리에 사실은 없어야할 사람들이다.

 

피곤이 덕지덕지 묻은 전의경들의 모습, 나도 그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월급 제대로 받고 있는 김강자씨의 후배들이 그 자리에 나오기 바란다. 폴리스라인도 제대로 좀 치고, 그 무거운 방석복도 좀 벗어버리고, 자유로운 집회시위도 보장하면서 경찰도 좀 인간답게 살아보자. 이 참에 경찰도 노조 만들고, 집회시위 강제진압 같은 '선진적'이지 못한 명령이 나오면 노조 이름으로 비판 성명도 좀 발표하고, 서로 그러다 보면 평화시위 저절로 정착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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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1 04:52 2006/01/11 04:52

지난해말 볼리비아 대선에서 에보 모랄레스가 승리함으로써 중남미에 7번째 좌파 정부가 들어서게 됐다. 이 좌파 정부들의 앞날은 순탄할까? 중요한 변수가 미국이다.

역사를 보면 미국은 제3세계, 특히 남미의 개혁 또는 좌파 정부를 그냥 두지 않았다. 지난해 출간돼 한글로도 번역된 <경제 저격수의 고백>은 그 수법을 폭로한다. 1970~80년대 이 작업에 직접 관여했던 저자 존 퍼킨스가 전하는 방법은 이렇다. 목표가 정해지면 먼저 ‘경제 저격수’(economic hit man)들이 투입된다. 민간 전문가 직함을 지닌 이들은 정부 관리들에게 과장된 전망을 제시한다. ‘외자를 도입해 발전소를 지으면 10년 뒤까지 몇십%의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식이다. 뇌물·협박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한 작업에 넘어가면 덫에 걸린다. 엉터리 전망이기에 쌓이는 건 빚뿐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마피아와 마찬가지로 빚을 갚지 못한 대가로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저자는 썼다.

경제 저격수들이 실패하면 “중앙정보국(CIA)의 자칼이 끼어든다.” 실제로 퍼킨스가 파나마의 토리호스 대통령과 에콰도르의 롤도스 대통령 설득에 실패한 뒤인 81년 두 대통령은 잇따라 비행기 폭발사고로 숨졌다. 퍼킨스는 “이들의 죽음은 결코 우연한 사고가 아니었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또 축출 위기에 몰렸던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 덕에 목숨을 건졌다”고 믿는다.

이 공작에는 평화봉사단이나 비정부기구들도 연루된다는 의혹이 있다. 퍼킨스만 해도 에콰도르에서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한 직후 경제 저격수로 뽑혔다. 평화봉사단원 출신의 노동운동가 낸시 월리스는 얼마 전 미국 인터넷매체 ‘엠아르진’에 쓴 글을 이렇게 끝맺었다. “모랄레스 취임을 앞두고 볼리비아의 희망이 고조된 지금, 평화봉사단과 비정부기구들의 목적을 따져봐야 한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기사등록 : 2006-01-08 오후 06:42:11기사수정 : 2006-01-08 오후 06:42:11
한겨레 (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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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0 16:01 2006/01/10 16:01

김광석

2006/01/05 20:19

내일, 2006년 1월 6일은 죽은 포크가수 김광석의 10주기이다. 나는 96학번 신입생맞이를 준비하던 즈음인, 10년 전 이 날 (다음날이던가?) 아침, 과방에서, 한겨레에 실린 그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눈쌓인 캠퍼스에 햇빛이 쏟아지던 아침.

 

유서도 없고, 정황도 묘연한 미스테리의 자살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나, 그리고 나와 비슷한 분위기에서 살아온 많은 사람들이 왜 김광석을 좋아했는지, 좋아할 수 밖에 없었는지가 더 미스테리이다. 민중가요도 아닌, 이문세류의 사랑노래만도 아닌, 아직 연구중일 수밖에 없는 쓸쓸한 음률. 포크라는 애매한 규정이 따라다녔다. 포크? 민중이라는 뜻인데...

 

한겨레21에 실린 작가 김연수의 글에서는 김광석의 노래를 "민중가요와 사랑노래의 변증법"이라고 했다. 공적인 (운동권)의식과 사적인 (연애)감정이 빚는 청춘의 모순을 김광석의 노래가 변증법적?으로 해결하고 있었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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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5 20:19 2006/01/05 20:19

새이름폴더

2006/01/03 04:21

윈도 탐색기에서 새이름폴더를 자꾸 만들면 아래와 같이 된다고 한다. 나도 어디서 보고 와서 해본 것이다.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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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3 04:21 2006/01/03 04:21

※ 프레시안에서 퍼왔으니, 프레시안 가기 싫은 분들은 여기서...

"'제국과 다중'론은 미국식 자유주의에의 투항"

[시각] 사미르 아민, 하트와 네그리의 이론 신랄하게 비판
등록일자 : 2005년 12 월 26 일 (월) 14 : 14   
 

  미국의 좌파 잡지인 〈먼슬리 리뷰(Monthly Review)〉가 최근호(2005년 11월호)에 〈제국(Empire)〉이라는 저서의 공저자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좌파 이론가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의 관점과 이론을 신랄하게 비판한 사미르 아민(Samir Amin)의 글 '제국과 다중'을 게재해 전세계 좌파 진영에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제국주의와 불균등 발전〉 등 30여 권의 저서를 낸 이집트 출신의 세계적인 정치경제학자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아민은 이 글에서 '제국(Empire)'과 '다중(Multitude)'이라는 키워드로 오늘날의 세계체제를 설명하는 하트와 네그리의 이론이 "미국식 자유주의에 투항하는 이론"이며, 두 사람의 이론적 관점에서는 "지배자본이 강요하는 일방적 세계화"를 극복해내고 진정으로 민중에 이익이 되는 "진보적 대안"을 창출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하트와 네그리의 '제국과 다중' 이론은 이들의 저서가 국내에서 번역, 출판되면서 진보적 이론가와 활동가들은 물론이고 일반 지식인과 대중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 왔다. 그 과정에서 일부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대체로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는 데 그친 감이 있다.
  
  〈프레시안〉은 이런 점에서 아민의 글이 하트와 네그리의 이론에 대한 '비판적인 이해'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먼슬리 리뷰〉의 허락을 얻어 그 번역문을 싣는다. 원문은 〈먼슬리 리뷰〉의 웹사이트(www.monthlyreview.org/1105amin.htm)에서 볼 수 있다.
  
  아울러 이 번역문을 게재하는 것을 계기로 〈프레시안〉은 앞으로 〈먼슬리 리뷰〉에 게재되는 글 가운데 국내 독자들이, 그 논지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오늘날의 세계와 담론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글을 선별해 비정기적으로 번역 소개할 예정이며, 이렇게 하는 데 대해 〈먼슬리 리뷰〉 측과 합의했음을 밝혀둔다. 〈편집자〉

  
  제국과 다중
  
  제국주의 이후의 제국인가, 제국주의의 새로운 확장인가?
  

 
사미르 아민. ⓒ프레시안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는 현재의 세계체제를 '제국'이라고 부른다.(주) 두 저자가 '제국'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바로 그 '제국'을 구성하는 주요 특징들을 '제국주의'를 규정하는 특징들과 구분하려는 의도에서다. 두 사람의 정의에 따르면 '제국주의'는 엄격하게 정치적인 차원, 즉 '어느 한 국가의 공식적인 힘이 자국의 국경 너머로까지 확장된다'는 차원으로 축소된다. 따라서 제국주의가 식민주의와 혼동되고, 결국은 식민주의도 제국주의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 돼버린다. 이런 공허한 주장은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미국의 이데올로기적 담론에 영합하는 것이다. 이 담론에 따르면 유럽 국가들과 달리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식민주의 제국을 구축하려는 열망을 가져본 적이 없으며, 따라서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가 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 그렇다고 부시(미국 대통령-역주)는 우리에게 말한다. 그러나 역사적 유물론의 전통이 오늘날의 세계에 대해 제시해주는 분석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이 분석은 자본, 특히 지배적인 자본의 축적에 필수요건이 되는 것들을 식별해내는 데 초점을 둔다. 따라서 이 분석은 지구적 차원에서 부와 권력의 양극화를 낳으면서 제국주의의 정치경제적 체제를 구축하는 메커니즘을 발견해낼 수 있게 해준다.
  
  하트와 네그리는 이런 관점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뿐만 아니라 그 밖의 다른 정치경제학파 사람들이 그동안 제시해 온 모든 분석들을 일관되게 무시한다. 그 대신 두 사람은 모리스 뒤베르제(프랑스의 정치학자-역주)의 법칙주의나 저속한 앵글로색슨 식 경험주의 정치학을 채택한다. 그래서 두 사람에게는 '제국주의'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여러 다양한 제국들, 예를 들어 로마제국, 오스만제국, 영국 또는 프랑스의 식민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러시아와 소련 등에 두루 적용되는 공통의 특징이 된다. 그리고 그 모든 제국들 각각이 붕괴한 것도 '서로 유사한 원인들' 때문이다. 두 사람의 이런 견해는 어떤 진지한 역사 독해라기보다 피상적인 저널리즘에 훨씬 더 가깝다. 더욱이 두 사람의 견해는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특히 현재 유행하는 경향에 영합하는 것이다.
  
  지난 20년 간에 걸친 자본주의와 세계체제의 전개과정에는 당연히 모든 영역에서의 질적인 변환이 포함돼 있다. 이와 관련해 과학과 기술의 혁명은 그 자체로 최근까지 국가이익의 수호와 관련되던 수준을 넘어 지구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관리의 형식들도 창출할 것이라고 보고, 더 나아가 이것은 '긍정적'인 발전이라고 보는 지배담론을 두 사람이 신봉한다는 문제점도 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지배담론은 심각한 단순화의 토대 위에서 전개되는 것이다. 사실 자본의 지배적 부분들은 세계 자본주의의 초국가적 공간에서 활동하지만, 그들에 대한 통제권은 여전히 확고하게 국가적인 성격을 가진 금융그룹들(예를 들어 미국이나 영국 또는 독일에 근거를 둔 금융그룹들을 말한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유럽'이라는 곳에 근거를 둔 금융그룹은 존재하지 않으니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의 수중에 들어있다. 게다가 이 체제의 경제적 재생산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그 변종들을 만들어내는 '정치'의 행위들과 병행되기 마련이다.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공허하고 통속적인 자유주의만 자본주의 경제가 국가 없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볼 뿐 그 외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초국가적인 세계국가는 아직 생겨나지 않았다. 세계화에 관한 지배담론은 회피하고 있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질문을 던져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중심 자본주의의 지배적 부분들(즉 과점집단들)의 지구적 축적 논리와 그런 체제의 정치를 지배하는 논리 사이의 모순이다.
  
  발음이 듣기 좋은 '제국(Empire)'이라는 용어를 중심으로 하트와 네그리가 제시한 체제는 세계화의 모습에 대해 지배담론이 바라보는 관점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초국가화(超國家化)'가 이미 제국주의 및 제국주의적 갈등을 근절시키고 제국주의를 '중심이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하는' 체제로 대체했다. 그리고 제국주의적 관계의 정의인 '중심과 주변 간의 대립'은 이미 극복됐다. 여기서 하트와 네그리는 제3세계 안에도 부(富)의 제1세계가 존재하고 제1세계 안에도 빈곤의 제3세계가 존재하므로 제1세계와 제3세계를 대치시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진부한 담론을 채택한다. 물론 미국에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도에도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여전히 우리는 모두 계급적으로 나뉜 채 세계 자본주의에 통합된 사회 속에서 살아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도의 사회구성과 미국의 사회구성이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계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는 일부 사람들의 적극적인 역할과 그 나머지 사람들의 수동적인 역할, 즉 세계화된 체제의 요구에 단지 적응하기만 하는 역할을 구분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현실에서 보면 이런 구분은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 더 타당하다. 현대 역사의 초기단계(1945~1980년)에는 제국주의 국가들과 피지배 국가들 사이의 역관계가 그래도 주변부 국가들의 '개발'을 의제에 올리고 피지배 국가들도 세계의 변혁을 위해 스스로 적극적인 행위주체로 나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는 형태였다. 그런데 그런 관계들이 오늘날에는 지배자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극적으로 변했다. 개발의 담론은 사라졌고, 그 대신 적응의 담론이 들어섰다. 달리 말하면 현재의 세계체제(즉 '제국'이라는 것)는 과거의 세계체제에 비해 제국주의의 성격을 덜 갖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갖는 것이다.
  
  하트와 네그리가 만약 지배자본의 대표들이 글로 써놓은 것들에 주목하기만 했다면 위와 같은 사실을 인식했을 것이다. 믿기 어려울지 몰라도 두 사람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미국의 기성 주류세력(민주당 지지자든 공화당 지지자든)의 주요 분파들은 모두 다 자신들의 계획이 지향하는 목표를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그들의 목표는 다른 국민들에게 해악을 초래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자신들의 낭비적 생활방식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지구의 자연자원에 대한 접근권을 독점하는 것, 그 어떤 중간 규모의 세력이라 할지라도 그 세력이 워싱턴의 지시에 저항할 수 있는 경쟁자가 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지구에 대한 군사적 통제를 통해 이런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하트와 네그리는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는 완전히 패배했고 세계화된 형태로 자유주의가 복원된 것은 객관적으로 진보를 의미한다는 유행담론을 채택했다. 체제에 결함이 있다면 그 결함은 체제와의 싸움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체제 자체의 논리 안에서 교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네그리가 범대서양주의(대서양 양안에 위치한 미국과 유럽 각국은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입장-역주)적 유럽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대열에 동참해 워싱턴에 종속적인 극단적 자유주의 헌법을 제정하려는 그들의 프로젝트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의 실제 역사는 자유주의 선전가들이 말하는 바와 전혀 다르다. 서구의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들에서, 현존하는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그리고 제3세계의 급진 민족주의 성향을 띤 대중주의 경험들 속에서 민족주의와 공산주의가 지난 30여 년 동안 촉발하고 고무해 온 사회적 변혁들은 자본으로 하여금 자신의 지배논리가 초래한 사회적 요구들에 적응하도록 강제하고 제국주의적 야망들을 억제했다. 이런 사회적 변혁의 프로젝트들은 급진적 성격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데서 한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회적 변혁들은 대단한 것이었고, 대체로 보아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대 역사의 초기에 시작된 이런 변혁의 프로젝트들이 훼손되고 붕괴됨으로 인해 가능해진 자유주의의 복원은 잠정적인 것으로서 일보전진이라기보다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에 대해 문제제기를 올바로 하려면 하트와 네그리의 자유주의적 담론을 폐기해야만 한다. 오늘날의 세계에 대해 던져진 질문들에 대해 그동안 중요한, 그리고 물론 다양한 이론적 답변들이 나왔고, 그 중에서 특히 새로이 다듬어진 역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나온 이론적 답변들이 눈길을 끈다. 하트와 네그리는 이런 이론적 답변들을 무시한다. 여기서 나는 나 자신이 제시한 이론적 답변의 개요를 소개하는 것으로 만족하겠다. 과거에는 제국주의가 복수의 제국주의 세력들이 서로 영속적으로 갈등을 빚는 모습으로 존재했다. 과거에는 과점적 자본집중의 증대가 있었지만 이제는 삼극동맹(三極同盟, the triad, 미국과 유럽 및 일본)이라는 집단적 제국주의가 등장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자본의 지배적 부분들은 삼극동맹이라는 새로운 제국주의 체제로부터 나오는 자신들의 이익에 대해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이 체제에 대해 통합적인 정치적 관리를 하려는 시도는 복수의 국가들이 존재하는 현실과 충돌한다. 삼극동맹 내부의 모순은 지배적 과점자본들의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각 국가가 대변하는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이 모순을 "경제는 제국주의 체제의 파트너들을 통합시키지만, 정치는 관련 국가들을 분열시킨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해 왔다.
  
  다중은 민주주의를 형성하는가, 자본의 헤게모니를 재생산하는가?
  
  자본주의에 고유한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개인'을 전면에 내세운다. 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처음 성립된 계몽주의 시대에는 개인은 교육을 받고 재산을 소유한 사람, 따라서 이성(理性)을 자유롭게 활용할 줄 아는 부르주아여야 했다는 사실을 지금의 자유주의는 도외시한다. 계몽주의 시대의 자유주의는 자유를 향한 인간해방이라는 측면에서 불멸의 진보였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운동인 사회주의도 개인을 부정함으로써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에 의해 협소한 한계 안에 갇히게 되거나 불완전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단지 형식적인 것만이 아니라 분명 실질적인 것이었다.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적인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이런 진술에 필수적 보완조건으로 "자본주의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고서는 더 이상 민주적 진보가 없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고자 한다. 민주주의와 사회적 진보는 분리될 수 없다. 과거에 실제로 존재했던 사회주의들은 이 보완조건을 존중하지 않았고, 따라서 민주주의 없이도, 또는 자본주의에 존재하는 만큼의 민주주의만 있어도 진보를 성취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 지점에서 한 마디를 더 덧붙일 필요가 있겠다. 그것은, 오늘날의 민주주의 지지자들의 대다수는 민주주의에 대한 더 이상의 요구를 거의 하지 않고 있거나, 자본주의의 원칙들을 의문시하는 것은 차치하고 가시적인 사회적 진보 없이도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트와 네그리는 이런 범주의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섰는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개인주의적 토대는 개인을 역사의 궁극적인 주체로 설정한다. 그러나 개인이 역사의 주체라는 주장은 구체제(계몽주의의 정의에 따르면 구체제는 개인에 대한 의식이 없었던 체제였다)의 역사에도 들어맞지 않고, 계급이 역사의 진정한 주체가 된 시기에 계급들 사이의 갈등을 토대로 해서 성립된 체제인 자본주의의 역사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그러나 미래의 발전된 사회주의에서는 개인이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트와 네그리는 우리가 바로 그런 역사적 전환점에 이미 도달했으며, 따라서 국가나 민족과 더불어 계급도 더 이상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대신 개인이 역사의 주체가 이미 됐거나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도달한 전환점에서는 두 사람이 말하는 '다중', 즉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주체들 전체'로 정의된 '다중'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전환점은 왜, 그리고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하트와 네그리의 글은 아주 모호하다. 두 사람은 '인지자본주의(cognitive capitalism)'로의 이행, 비물질적인 생산, 새로운 네트워크 사회, 탈영토화의 출현을 이야기한다. 두 사람은 또 규율사회(disciplinary society)로부터 통제사회(society of control)로의 이행에 관한 푸코의 명제들을 거론한다. 이처럼 지난 30년 동안 말해져 온 모든 것, 각자의 관점에 따라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또는 상투적이고 당연해서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든 강력히 논박해야 할 것이든, 모든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거대한 단지 안에 뒤범벅 상태로 집어넣어진다. 그러나 현재 유행하는 그 어떤 주장도 쉽게 확신하게 하지 못한다. 네트워크 사회에 대해 마뉴엘 카스텔이 정식화한 이론적 주장이나 제러미 리프킨과 로버트 라이히를 비롯한 미국의 대중적 저술가들이 퍼뜨린 생각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그 모든 생각들의 뒤범벅 속에서 무엇이 진정으로 새롭고 중요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나는 문제의 '다중'이라는 용어가 창안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하나의 가설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리가 사는 시기는 20세기를 형성해 온 강력한 사회적, 정치적 운동들(즉 노동자들의 운동, 사회주의자들의 운동, 민족해방운동)이 패배한 시기다. 그 중 어떤 패배의 경우에도 그 패배에 내재된 전망의 상실이 일시적인 불안정을 낳는 동시에 그 불안정을 정당화하는 한편, 원하든 원치 않든 그 불안정이 세계를 변혁하는 데 유효한 수단이 된다는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준 이론적 주장들을 양산한다. 그러나 과거의 '리메이크'를 제시하는 것보다는 과거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는 것에 의해, 그리고 모든 측면에서 사회적 진화에 의해 생겨난 새로운 현실들을 효과적으로 통합하는 것에 의해 점진적으로 새로운 이론적 정식화가 견고하게 자리 잡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논의의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는 다양한 기여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하트와 네그리의 담론은 그런 기여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트와 네그리가 다중에 관한 자신들의 담론으로부터 이끌어낸 명제들은 그들 자신이 정식화한 형태로도 그들 자신이 처해 있는 곤경을 증언해준다. 이런 그들의 명제들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사상 처음으로 전지구적 차원에서 실현될 가능성을 막 보이기 시작했다는 '민주주의'에 관한 명제다. 더 나아가 두 사람은 다중을 민주주의에 구성요소적 세력이 된다고 정의한다. 이는 참으로 엄청나게 단순한 명제다. 우리가 실제로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여기저기서 실시되는 선거들 가운데 일부와 같이 자유주의 권력들, 특히 워싱턴의 권력을 만족시키는 것이 분명한 소수의 표피적 겉모습들을 제외하면, 필수적인 민주주의든 미래에 실현가능한 민주주의든 민주주의는 지금 위협을 받고 있다. 민주주의가 그 정당성을 상실함으로써 위기에 처한 상황은 종교적 또는 인종적 근본주의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유고슬라비아에 인종관료주의(ethnocratic) 정권이 들어섰던 것이 민주적 진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예를 들어 러시아의 독재정권에 봉사했던 것과 같은 한 범죄집단의 권력을 무너뜨리는 대신 미국 중앙정보국(CIA)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는 또 다른 범죄집단의 권력을 세우는 선거가 과연 민주주의를 위한 진보인가, 아니면 하나의 조작된 소극(笑劇)인가를 묻고 싶다. 지구를 통제하기 위한 제국주의 프로젝트의 전개가 미국 국내에서도 기본적인 민주적 인권을 위축시키기 위한 노골적인 공격이 저질러지는 데 발단이 된 것은 아닐까? 유럽에서 주요 우파 및 좌파 정치세력들로 하여금 서로 손을 잡도록 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자유주의 콘센서스는 선거과정의 정당성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모든 질문들에 대해 하트와 네그리는 침묵하고 있다.
  
  두 번째로 살펴봐야 할 하트와 네그리의 명제는 '다중의 다양성'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다중의 다양한 구성요소들을 정의하는 형식과 내용은 물론이고 그 다양성을 창출하거나 위축시키는 힘들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하트와 네그리의 모든 글에 걸쳐 중대한 모순들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두 사람에 따르면 현재의 세계화는 중심과 주변 사이의 격차를 축소시킨다. 사실 그렇지 않다면 세계화는 계속 제국주의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는 격차가 더 벌어지고 세계적 차원에서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의 체제가 구축되면서 하트와 네그리가 말한 방향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두 사람이 말한(사실은 북미와 서유럽 사회들에 대해서만 그들이 말했지만) 전체 체제의 지역적 구성부분들 각각의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성은 그 자체로 다양한 성격을 갖는다. 미국에서와 같이 인종적 또는 준 인종적 지역사회들도 있고, 종교와 언어상으로 다양한 지역들이 있으며, 아마도 변혁된 사회현실에 맞게 다시 정의하는 것이 좋을 듯한 계급들도 여럿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다양성들이 열거된 뒤에도 실제로 이야기된 것은 거의 없다. 그런 것들은 사회체제의 생산, 재생산, 그리고 변혁의 과정에서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가? 내가 '정치문화(political culture)'라고 부르는 것을 개념화하지 않고서는 이런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하기가 불가능하다. 이 분야에서도 역시 진지하고 적극적인 기여들이 있다. 그 중에는 분명 논박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무시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이런 면에서도 하트와 네그리는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이는 기여를 한 것이 전혀 없다.
  
  개인을 역사의 주체로, 다중을 민주주의 프로젝트의 구성요소적 세력으로 역전시켜 설정한 것은 이상주의적이고 관념적인 발상이다. 이런 발상은 현실의 사회관계들에는 아무런 변혁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머릿속 사고의 세계에서만 역전이 일어난 것과 같다. 내가 여기서 사고 또는 사상은 늘 현실의 수동적인 반영일 뿐이라고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이와 반대되는 견해를 각각의 '심급(審級)'이 지닌 자율성을 인정한 토대 위에서 발전시켜 왔다. 사상은 시대를 앞설 수 있다. 나의 문제제기는 이런 일반적인 명제에 대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하트와 네그리의 사상을 포함해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에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은 시대를 앞선 것인가, 아니면 아직 극복되지 못한 '패배한 시기'의 현실을 단순하면서도 혼동되게, 그리고 모순적으로 표현하는 것일 뿐인가? 패배한 시기의 여건에서는 다중이 확정적이지 않고 다양하며 분절된 상태의 '다양한 것들'을 구성하는 실체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예를 들어 선거에서의 강력한 다수와 같이 실질적인 힘으로 작용하는 듯한 외양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것 이상이 아니며, 역사에서 흔히 그랬듯이 하나의 '접합되었지만 내부적으로 모순을 일으키는 구조'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다중에 관한 이야기는 1970년대의 노동자주의(workerism)가 그랬던 것과 같이 시간이 흐르면서 잊힐 것이다. 이는 〈제국과 제국주의(Empire and Imperialism)〉(Zed Books, 2005)라는 책에서 아틸리오 보론(Atilio Boron)이 지적한 대로 '부분적인 것과 일시적인 것에의 고착'이 두 경우에 다 해당되기 때문이다.
  
  하트와 네그리의 담론에 배후로 깔려 있는 정치문화는 미국 자유주의의 정치문화다. 이 정치문화는 미국독립전쟁과 그 당시에 채택된 미국헌법을 근대 개막시기의 결정적인 사건으로 본다. 하트와 네그리에게 영감을 준 한나 아렌트는 미국독립전쟁이 "무한한 정치적 자유 추구"의 시대를 열었다고 했다. 이런 관점에서는 오늘날에 비로소 '세계적 차원에서 최초로 가능해진' 민주주의의 구성요소적 세력인 '다중'의 등장은 적극적인 의미에서 '세계의 미국화'가 승리했음을 상징하는 것이 된다.
  
  너도나도 미국 자유주의로 몰려드는 경향은 필연적으로 다른 나라들의 다른 경로들을, 특히 한나 아렌트가 프랑스혁명을 '빈곤과 불평등에 대한 제한된 투쟁'으로 축소시키고 그렇게 축소된 프랑스혁명에 미국독립전쟁을 대조시키면서 정식화한 '옛 유럽'의 다른 경로에 대한 평가절하를 수반한다. 냉전의 시기에는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 중국혁명 등 근현대의 위대한 혁명들이 모두 폄하당해야 했다. 2차대전 이후에 반혁명의 선봉이 된 미국의 자유주의 담론에 따르면 그런 혁명들은 애초부터 전체주의 경향에 의해 오염된 것이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발전이 필요로 하는 것들 가운데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의문시하지 않는 개척적인 혁명을 이루고 그런 내용의 헌법도 갖춘 '미국 모델'만이 살아남은 것은 그런 혁명들, 즉 자코뱅파에 의한 프랑스혁명의 급진화에서 시작된 자본주의의 요구사항들에 의문을 제기했던 혁명들의 유산이 폐기되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문화에서는 프랑수아 퓌레(프랑스의 역사학자-역주)가 퍼부은 것과 같은 프랑스혁명에 대한 비난, 흔해빠진 반소비에트주의, 그리고 마오주의에 대한 공격을 주요 반혁명 메뉴로 삼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하트와 네그리는 완전한 침묵을 지키고 있다. 미국의 헌법은 대중적 일탈의 위험성을 완전히 체계적으로 배제하는 방향으로 작성됐음을 확인해주는 내용의 비판적인 글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나왔고, 게다가 이런 글들의 대부분은 미국에서 씌여졌다. 그럼에도 하트와 네그리는 이런 글들을 체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이 이룬 성공은 대단한 것이어서, 그들과 같이 하는 데 성공한 적이 없는 유럽의 반동세력 모두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예를 들어 지스카르 데스탱은 극단적 자유주의 유럽 프로젝트의 헌법은 미국의 헌법만큼이나 '좋은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성공하지는 못한 것 같다.
  
  미래의 구성요소적 세력으로 설정된 다중의 열망은 아주 작은 것들로 축소됐다. 예를 들면 자유, 특히 다른 나라로 이주할 자유, 그리고 사회적으로 보장된 소득에 대한 권리와 같은 것들이다. 위에서 말한 유럽의 프로젝트는 미국 자유주의에 의해 허용되는 범위 밖으로는 감히 나가지 않으려고 주의하는 태도를 분명히 보이는 동시에 노동자들의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유산으로 인정될만한 것들은 모두 다 무시하며, 특히 미국의 정치문화에 의해 거부당하는 '평등'을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새로 생겨나는 글로벌 시민권(또는 유럽 시민권)으로부터 그 효력을 근본적으로 빼앗는 정책들만 실행된다면, 그런 시민권이 변화의 추동력을 갖출 것이라고 믿기 어렵다.
  
  오늘날의 세계화된 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을 건설하는 데는 다른 요건들, 특히 전 세계에 걸쳐 대중 계급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욕구와 열망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사실 하트와 네그리는 전세계 인구의 85%를 차지하는 주변부 사회들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에서부터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게 분명하다. 세계의 상이한 국가들과 지역들의 구체적이고 고유한 여건들 속에서 효력을 가질 수 있는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대안을 추구하는 전술과 전략에 관한 논의가 하트와 네그리에게 흥미를 유발한 적은 결코 없었던 것 같다. 미국의 개입에 의해 촉진된 '민주주의'가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에서 있었던 것과 같은 '선거 소극'을 넘어서는 것을 허용할까? 지구를 가득 채우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인권을 풍요로운 서구로 이주할 권리 정도로 축소시키는 게 합당한 일인가? 사회적으로 보장된 소득에 대한 요구는 정당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보장된 소득이 실현되면 자본에게 노동을 고용하도록, 그리고 그 결과로 노동을 착취하고 억압하도록 허용하는 자본주의적 관계가 파괴되어 그 시점부터는 누구나 자본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따라서 자신의 창조적 잠재력을 확인하게 되는 노동자에게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고 단순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인가?
  
  역사의 주체를 '개인'들로 축소시키고 그런 개인들을 '다중'으로 합치는 것은 우리 시대의 도전과제들에 상응하는 역사적 주체들을 재구축하는 일과 관련된 진정한 질문을 던지지 못하게 한다. 이 주제에 대해 하트와 네그리는 침묵하고 있지만, 그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답변을 해준 많은 기여들이 있다. 과거의 역사에 나타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들은 분명 현대 역사의 주제들을 '노동계급' 하나로 축소시키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과거의 네그리라고 할 수 있는 노동자주의자들에게 이런 질책을 할 수 있다. 그들과 달리 나는 피지배 계급과 민중에 이익이 되도록 사회적 역관계를 효과적으로 변혁하는 대중투쟁의 각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유능한 사회적 집단들로부터 형성되는 역사의 주체에 대해 분석해볼 것을 제안해 왔다.
  
  현 시점에서 이런 분석을 하는 것은 제국주의 헤게모니 블록과 매판 헤게모니 블록이 행사하는 권력에 맞서 그것을 물리칠 능력을 지닌 민주적이고 대중적이며 국가적(민족적)인 헤게모니 블록의 형성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그러한 민주적, 대중적, 국가적(민족적) 블록의 형성은 나라마다 다른 구체적 여건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따라서 '다중'이나 이와 비슷한 형태의 일반적인 모델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민중과 국가의 자율성에 대한 긍정은, 하트와 네그리가 〈제국〉에서 찬양한 '지배자본에 의해 강요되는 일방적 세계화'를 '협의된 세계화(negotiated globalization)'로 대체함으로써 현재의 제국주의 체제를 점진적으로 해체하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가능해지는 민주적 진보와 사회적 진보는 세계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긴 이행과정의 일부분이 될 것이다. '다중'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검토하는 것보다는 이와 같은 실질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를 보다 깊이 있게 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길인 게 분명하다.
  
  제국과 다중의 정치문화는 도전과제에 상응하는가?
  
  몇 가지 문화적 요소들, 특히 종교적 요소와 인종적 요소를 불변으로 가정하고 그것을 전제로 인류의 다양성을 바라보는 관점, 즉 '문화주의(culturalism)'가 요즘 유행이다. '공동체주의'의 발달과 '다문화주의'를 인정하라는 권유도 바로 이런 역사적 관점의 산물이다. 이 관점은 역사적 유물론의 전통과 다르다. 역사적 유물론은 계급투쟁을 세계화된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형식 및 조건들과 연결시키려고 노력한다. 이런 맥락에서 제시된 분석들은 나라마다 서로 다르게 거쳐 온 다양한 경로들을 이해하고, 각국의 사회 내부에, 그리고 세계체제의 수준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모순들을 식별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이런 분석들은 내가 '현대 세계에 사는 대중의 정치문화 형성'이라고 부르는 것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여기서 내가 문제제기를 한 대상은 하트와 네그리의 저작들에 바탕으로 깔려 있는 정치문화다. 그 정치문화는 역사적 유물론의 전통 안에 있는가, 아니면 문화주의의 전통 안에 있는가? 나는 〈자유주의 바이러스(The Liberal Virus)〉(Monthly Review Press, 2004)라는 책에서 각국 국민의 정치문화를 형성하는 두 개의 경로, 즉 한편으로는 유럽적인 경로,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적인 경로를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이 책에서 내가 전개한 주장의 개요만을 간략하게 상기시키고자 한다.
  
  유럽대륙의 정치문화는 계몽주의와 근대성의 창출, 프랑스혁명, 노동자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발전 및 마르크스주의의 등장, 러시아혁명 등 형성적 기능을 가진 일련의 대사건들에 의해 구축돼 왔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각각의 경우에 생겨난 '좌파'들에게 유럽 사회에 대한 정치적 관리권을 갖도록 보장하지는 않았지만, 유럽대륙에서 우파와 좌파가 대치하는 정치문화를 구축했다. 승리한 반혁명 세력은 프랑스혁명과 러시아혁명 이후에 그랬듯이 구체제의 복구, 정교분리로부터의 후퇴, 귀족집단과 교회의 담합,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등에 나섰다. 그들은 민중으로 하여금 지배자본의 제국주의 프로젝트를 지지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위해 1914년의 전쟁 발발 직전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것과 같은 국수주의적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동원했다.
  
  미국의 정치문화를 구성해 온 주요 사건들은 유럽의 경우와 매우 다르다. 미국의 정치문화를 구성해 온 사건들은 프로테스탄트 중 계몽주의에 반대하는 분파에 의한 뉴잉글랜드 건설, 식민지 부르주아들, 특히 노예를 소유한 지배적 부르주아 분파에 의해 수행된 미국독립전쟁, 변경(프런티어)의 확장을 토대로 한 대중과 부르주아 사이의 동맹 및 그 결과로 나타난 인디언 학살, 사회주의 정치의식의 성숙을 저해하고 그 대신 공동체주의를 들여앉힌 대규모 이민자 유입 등이었다. 미국에서 일어난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우파의 영속적 지배'라는 미국 정치문화의 특징을 강화하는 것이었고, 이로 인해 미국은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장 안전하고 확실하게 보장하는 나라가 됐다.
  
  오늘날 인류의 미래를 좌우할 가장 중요한 싸움들 가운데 하나가 '유럽의 미국화'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유럽의 미국화'의 목적은 유럽의 문화와 정치적 유산을 파괴하고, 그 대신 미국에서 지배적인 문화와 정치적 유산을 유럽에 들여앉히는 것이다. 이런 극단적 반동의 길이 오늘날 유럽의 지배적 정치세력들이 추구하는 길이 돼 있고, 그 완벽한 유럽판이 유럽 헌법 프로젝트로 나타났다. 인류의 미래를 좌우할 가장 중요한 싸움들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지배자본, 즉 '북(North)'과 지구인구의 85%를 차지하면서도 삼극동맹이 추구하는 제국주의 프로젝트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남(South)' 사이의 싸움이다. 이 두 개의 중요한 싸움의 중요성을 하트와 네그리는 무시한다.
  
  미국적 민주주의에 대한 두 사람의 섣부른 찬양은 북미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분석가들의 글들과 뚜렷하게 대조된다. 이들 비판적 분석가는 '반미주의자'라는 이유만으로 애초부터 비판자로서의 자격이 없는 사람들로 간주돼 버리고 만다(그런데 누구의 눈에 그들이 그렇단 말인가? 미국의 기득권자들의 눈에?). 여기서 나는 아나톨 리븐(Anatol Lieven)의 저서 〈미국, 옳은가 틀린가(America Right or Wrong: An Anatomy of American Nationalism〉(Oxford University Press, 2004)의 내용을 인용하겠다. 리븐과 나는 이념적 출발점도 학문적 출발점도 다르지만, 이 책의 결론은 나의 결론과 대동소이하다. 리븐은 미국의 민주주의 전통(그 실재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박하지 않을 것이다)을 이 나라의 태생적인, 그리고 거듭된 이민자들의 유입에 의해 지속되고 재생산된 '반계몽주의(obscurantism)'와 연결시켜 설명한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 사회는 결국 영국 사회보다는 파키스탄 사회와 더 흡사하다. 게다가 미국의 정치문화는 서부정복의 산물이며, 이는 미국인이 아닌 다른 모든 사람들은 미국을 가로막지 않는다는 조건을 받아들여야만 계속 살아갈 권리를 갖는 인디언으로 간주하는 태도로 이어진다. 미국 지배계급의 새로운 제국주의 프로젝트는 공격적 국가주의를 배증시킬 것을 요구하며, 배증된 공격적 국가주의가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오늘날의 미국은 오늘날의 유럽이 아닌 1914년의 유럽을 상기시킨다. 모든 차원에서 지금의 미국은 '옛 유럽'에 비해 더 진보하기는커녕 1세기가량 뒤진 상태에 있다. 그런데 이 점이 바로 '미국 모델'이 우파에 의해,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이미 자유주의에 투항한 하트와 네그리를 포함한 일부 좌파에 의해 선호되는 이유다.
  
  "제국주의는 시대에 뒤진 구식 용어"라는 '제국'과 "개인이 역사의 주체가 됐다"는 '다중'이라는 두 개의 개념 외에 또 하나 지적해야 할 것은 하트와 네그리의 담론은 체념의 어조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현 단계의 자본주의 발전이 긴박하게 요구하는 것들에 순종하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으며, 그런 자본주의 발전에 스스로 통합되는 것만이 그 결과로 입을 수 있는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패배한 시기'의 담론이며, 그 '패배한 시기'는 아직 극복되지 않았다. 하트와 네그리의 담론은 자유주의에 투항한 사회민주주의의 담론이고, 범대서양주의에 투항한 유럽주의의 담론이다. 이런 종류의 담론과는 단호하게 결별해야만 좌파라는 이름에 걸맞은 좌파, 즉 민중의 이익을 위해 진보를 고무하고 스스로 실행할 수 있는 좌파가 부활할 것이다.
  
  (주) Michael Hardt and Antonio Negri, 〈Empire〉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0) and 〈Multitude: War and Democracy in the Age of Empire〉 (New York: Penguin, 2004). 두 저자는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관련된 많은 근본적인 쟁점들, 예를 들어 인지자본주의나 금융자본주의, 노동과 생산의 조직, 그리고 지정학과 관련된 쟁점들은 직접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점을 갖고 내가 두 사람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이보다는 그들이 새로이 전개된 상황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은 채 상황으로부터 부당한 결론을 이끌어내어 자신들의 생각을 뒷받침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들을 나무라는 것이다. 문제의 상황변화에 대한 독해는 매우 다양하게 존재하며, 그런 독해들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논하겠다. 〈제국(Empire)〉은 2001년 9월 11일(9.11 테러사건-역자주) 이전에 저술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자국의 물질적 이익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대중의 요구에 따라 인도주의적 이유에서, 그리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군사적 개입에 나섰다고 주장하는 미국 정부의 저속한 선전의 담론을 하트와 네그리가 수용한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번역/이주명 기자

사미르 아민/정치경제학자,제3세계포럼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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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26 21:42 2005/12/26 21:42

[펌] CD굽던 노인

2005/12/22 16:53

아래, 아는 동호회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글이다. 물론 그쪽에서도 퍼온 것이라 최초로 쓴 사람이 누군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고수'라는 말은 이런 때를 위해 준비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에는 정말 '별놈'들이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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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년 전이다. 내가 갓 게이머가 된 지 얼마 안 돼서 용산구에 올라가 살 때다. 용산역에 왔다가는 길에, 게임 시디를 한 장 사기 위해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용산역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게임 시디를 구워 파는 노인이 있었다. 게임을 한 장 사 가지고 가려고 구워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를 것 같았다.

"얼마 알아보고 왔소?"

"한 장에 5천원 아닙니까?"

"한 장에 만2천원이오."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 다른 곳은 5천원이던데..." 했더니,

"시디 한 장 가지고 에누리 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4가지 없는 노인이었다.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구워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이미지를 뜨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뜨는 것 같더니, 해가 저물도록 이리 클릭하고 저리 클릭하고 굼뜨기 시작하며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다이렉트로 구우면 다 될 건데, 자꾸만 이미지만 뜨고 있었다. 이제 다 됐으니 그냥 구워달라고 해도 통 못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TV에서 "카드 앵벌이 싸구려"를 방영할 시각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이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이미지 안 뜨고 CD to CD로 구워줘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구울 만큼 구워야 시디가 돌아가지, 공시디에 라이터 지진다고 돌아가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굽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용팔이시구먼, "카드 앵벌이..." 한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방영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구워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인식이 안되고 뻑이 난다니까. 시디란 제대로 구워야지, 굽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이미지 뜬 것을 숫제 1배속으로 걸고 태연스럽게 새턴을 켜고 야구권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흥분해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시디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게임 시디다. 방영 시간을 놓치고 녹화본을 봐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용팔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용산역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용팔이다워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용팔이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집에 와서 시디를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구웠다고 야단이다. 통신 판매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싸구려 벌크 시디로 구우면 얼마 못 가서 시디가 인식이 잘 안되다가 데이터가 쉬이 날아가며, 무리하게 고배속으로 구우면 다운이 잘 되고 동영상이 끊기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복사 시디는 고급 화이트 골드 시디에 스카시 방식 레코더를 사용해 저배속으로 구워 좀체로 뻑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시디는 한번 동영상이 끊기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복사 시디를 구울 때 이미지를 미리 뜬 뒤에 이미지가 제대로 떠졌는지 가상 시디 이미지로 잡고 에뮬레이터로 확인을 한 뒤에 비로소 굽는다. 물론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IDE 방식의 레코더로 CD to CD로 직접 굽는다. 금방 굽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몇 시간씩 걸려 가며 이미지 뜰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중고 게임기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중고 플스를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재생 렌즈는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정품 렌즈는 세 배 이상 비쌌다. 정품 렌즈란 다른 중고 플스에서 떼어낸 수명이 다 된 렌즈가 아닌 신품 렌즈인 것이다. 눈으로 봐서는 신품인지 가변 저항을 조절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용팔이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정품 렌즈를 달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시디를 굽는 그 순간만은 오직 잘 돌아가는 시디를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불법 복사 시디를 만들어 냈다.

이 시디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게이머에게 용팔이 소리를 듣는 세상에서, 어떻게 잘 돌아가는 복사 시디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오이 3개에 오렌지맛 쿠우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단속이 떠서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그리고, 사 년 여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날 나는 무슨 볼 일이 있어 용산에 가게 되었다. 한참 길을 걷다 문득 맞은편에 용산역이 있음을 알아차리고는, 그곳을 바라보며 잠시 상념에 잠겼다. 푸른 창공에 무너질 듯한 용산역 밑으로 용산견이 잠을 자고 있었다. 아, 그때 그 노인이 저 용산견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시디를 굽다가 우연히 용산역의 마스코트인 용산견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집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DVD 레코더로 플스 2 DVD를 굽고 있었다. 전에 플스 1 시디를 4배속 레코더로 굽던 생각이 난다. 플스 1 복사 시디 구경한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플스 1 복사 시디 판다는 스팸 메일도 날라 오지 않는다. "파이날 환타지 쎄븐"이니, "도끼매끼 메모리알"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년 전 시디 굽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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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22 16:53 2005/12/22 1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