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

2006/10/10 14:52

어제 서울에서 남양주 오는 길에 차 안에서 라디오 듣다가 뉴스속보로 들었다.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했다는 것이다. 성공여부는 미지수라고 한다. 진도3.8인지 정도로 성공 여부를 알 수는 없다고 한다.

 

나는 주식을 가진 게 없지만 주가가 폭락했다는 뉴스는 들었다. 그런데 어떤 외신은 곧 주가가 다시 오를 거라고 한다. 한반도에서 전쟁? 어렵지 않겠냐는 거겠지. 현재 미국은 더이상 전쟁을 벌일 여력이 없을 것이다. 이라크도 버거운데 또다른 전선을 만들지는 못하겠지. 북한이 어딘가를 선제공격할 가능성? 그것도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남한 국민들이 라면 사재기도 안한다고 한다. 아마도 94년 1차 핵위기의 면역력 덕분일 것이다.

 

94년에 나는 대학을 떨어지고 백수 신세였다. 북한이 원자로에서 플루토늄인가를 추출하려고 연료봉을 제거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핵확산금지조약과 국제원자력기구를 탈퇴하고, 미국은 대북제제 수위를 높여가고, 공격설도 나오고, 난리도 아니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백수들부터 끌려간다지? 나는 내심 상당히 쫄고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인데, 그때 진짜 전쟁이 날 뻔했다고 한다. 우리 국민들은 몰랐지만, 클린턴 행정부 당시 국방장관이던 페리가 나중에 출판한 회고록에서 그렇게 말했다. 공격일자까지 잡아놓고 있었다고. 클린턴과 동아시아 함대 사령관인가 하는 사람이랑 페리랑 셋이서 백악관에 앉아서 시계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고. 그런데 그때 전 미 대통령 카터가 북한을 방문해서 김일성과 담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북한과 미국은 급속하게 대화 국면을 전개시켜 나가다가 결국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했다. 미국이 중유를 공급해 주는 대신 북한은 핵의 핵자도 꺼내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했다.

 

그러던 것이 정권이 바뀌고 공화당의 호전적인 네오콘들이 미국의 정책을 주무르기 시작하자 그 합의들이 하나 둘씩 깨져 나갔다. 북한이 테러국에게 무기를 판매하기 때문에 더이상 그 합의를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로 미국은 북한을 악의축으로까지 규정하면서 불안국면을 강화시켜 왔다. 한반도 야경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북한에는 밤에 불이 켜진 곳이 없다. 완전 조선시대가 따로 없다. 고립을 자초한 것인가? 미국이 고립시킨 것인가?

 

상식적으로 북한이 핵무기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이해가 잘 안간다. 원자력 발전소를 지으면 안되나? 기술력이나 제반 여러 장애들이 있겠지. 그렇다 하더라도 핵무기로 협상을 하려 하다니 정말 저러면 안되는거 아닌가?

 

여차여차 생각해보면, 역시 현대국가를 규정하는 것은 내부 구조도 중요하지만, 국가간 체계 내에서의 위치도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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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0 14:52 2006/10/10 14:52

피아노

2006/10/08 03:50

석경: 의외에요. 최운혁씨와 피아노.

운혁: (과거를 생각하며) 이 곡 한 곡만이오. 유일하게 아는 건. 어렸을 적에 성당에 다녔었오. 그때 미국인 수녀님이 한 분 계셨는데, 나와 내 누부에게 이 곡을 가르쳐 주셨소. 

                                                                            -  <서울 1945; 제9회>

 

어렸을 때 피아노 배우겠다고 어머니한테 얘기했다가 미친 놈 취급받았던 게 생각난다. 물론 어머니는 나를 생각해서 그러셨다. 유도 도장에나 다니던 놈이 갑자기 피아노라니.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도 음악적 재능이 영 없는건 아니다. 본디 음악이란 것이 귀족의 사슬로부터 전 인류의 행복을 위해 프로메테우스적으로 방출되어 나왔을 때, 우리 나라 피아노 가격이 너무 비쌌던 것이 아닐지.

 

우리 서당이 있는 동네에, 슈퍼 앞에 피아노 가르쳐 주는 곳이 생겼던데 거기를 나가서 피아노를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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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8 03:50 2006/10/08 03:50

경포호

2006/10/08 01:33

서당 답사(9.26-28)때 강원도 지역을 돌아보고 왔다. 기발이승(氣發理乘)의 철학자 율곡의 울림이 떨고 있는 곳.

 

그러나 생각보다 다양한 역사의 흔적들이 잠들어 있었다. 무엇보다 내게 인상적인 것은 경포호수였다. 바다로 흘러드는 물의 압력이 너무 미약해서 바다가 그걸 막아버린 결과 생겨난 호수, 곧 석호라고 하는 종류의 호수라고 한다. 그래서 바로 옆에 바다가 있는데, 그 바로 옆에 엄청나게 큰 호수가 있는 것이다. 물가에 갈대도 우거진 바로 그 호수. 이런 호수를 옆에 두고 철학을 한 율곡 선생의 머리 속이 궁금해졌다. 진주 남강만큼이나 시민들 곁에 있는 호수였다.

 

밤에 몰래 숙소에서 나와서 호수가에 앉아 있었다. 저 호수 가운데 뜬 달이 물결에 찰랑거리고 있었는데, 나는 바로 그 큰 호수의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맥주 한모금을 마시고 물결을 쳐다보니 모든 근심이 사라졌다. 잔 물결이 자꾸 내게로 왔다. 내가 그처럼 혼자 멍하니 앉아 있어 본 적이 있었던가?

 

대학 다닐때는 고민이 있으면 혼자 고향에 내려가서 바닷가 방파제에 앉아 물을 바라보곤 했다. 파랑의 울렁거림때문에 마치 내가 움직이고 있는 듯했다. 그때도 그랬었지. 김남조의 시를 들먹일 것도 없이 내게 물은 재생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아, 고등학교 다닐땐 남강가에 앉아 물을 보는 것이 유일한 오락거리였다. 자율학습이 없는 토요일 저녁에서 일요일 오전까지.

 

오행 중에서 내 몸의 성분이 불이 많아서 물가에 가면 그렇게 안정이 되는가 보다. 수영도 못하고 물을 두려워 하지만 물가에만 가면 차분하게 정리가 되는 것이다. 올 겨울에 애인이랑 꼭 한번 같이 가야겠다. 남방 속으로 싸늘한 바람과 함께 갈대잎들어 들어오는 듯...


 

겨울바다

 

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물 이랑 위에 불 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의 물이
수심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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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8 01:33 2006/10/08 01:33

왜 공중파 TV 추석 영화프로는 이런 거밖에 없는가, 하는 불평을 잠시 접고, 순수하게 영화로만 보니까 이것도 잡설거리는 남기는구나. 청소년들의 피를 끓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평이, "강우석식 국가주의 프로젝트"라던데, 과연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시골출신, 그것도 별다른 산업시설이나 볼 것도 없는 시골출신에게는 거대한 자본의 위력보다는 국가, 혹은 그것의 지부인 동사무소나 경찰서의 위력이 더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크건 작건 자본이라고 생긴 건 별로 볼 일도 없던 시골 마을에서 '왕초'들은 항상 '국가'와 관련된 존재들이었다. 그런 나에게 국가를 최고선으로 하는 '억울 비탄극'이 와닿을리 있겠는가. 그래도 우리 동네 청소년들은 이런 영화 보러 표끊고 들어갔겠지.

 

공공=국가=공무원=검사, 그것도 평검사의 가장 큰 적이 누구인가? 이 영화의 답은 졸부!

이 영화에서 졸부들은 항상 머리를 굴린다. 정직하게 살지 않고 틈새를 노린다. 그리고 선량한 일반 국민들로부터 유리되어 있다. 이들은 이 사회의 그 누구보다 세상이 나아갈 바를 먼저 알고 먼저 대처한다. 물론 결말에는 공무원에게 다 잡힌다. 일망타진되는 것이다.

 

나는 갑자기 이 졸부들의 얼굴 위에 일제시대때 김성수 같은 친일, 내지는 우파민족주의 실업가들의 얼굴이 겹쳐졌다. 역사책 속에서 추상화되어 등장하던 그 머리굴리는 실업가들의 얼굴이 이 영화의 졸부들의 복잡한, 하지만 결국 추상화되는 머리굴림과 겹쳐진 것이다. 김성수가 이병철, 정주영이 되고, 또 구씨일가와 김우중 같은 사람들이 되었다.

 

아, 나는 얼마나 책을 책으로만 보아왔던가. 얼마나 복잡했던 것일까, 그들의 처세는. 반도체냐 화학이냐,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공공의 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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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7 02:23 2006/10/07 02:23

추석

2006/10/03 20:55

추석 하면 조용필의 '꿈'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향을 찾아가네 / 나는 지금 홀로 남아서 / 빌딩속을 헤매다 초라한 골목에서 /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 (…) >

 

내 나이 어느새 32살. 언제였는지도 모르게 서른을 넘어버렸다. 이곳은 서울의 변두리 고시촌 근처. 조용필이 위의 노래를 구상한 것이 몇살이었던가. 나도 조용필 만큼이나 힘들어져 버린건가?

 

리버럴리스트 유시민이 말하길, "나이 40이 넘으면 보수화된다"고 했다. 인간은 젊음을 지나면 갈수록 약해지기 때문에 리버럴한 가치보다는 컨저버티브한 가치를 더 찾게 된다는 거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소거한다면, 누가 이 말에 토달 수 있겠는가. 자신을 사민주의자라고 소개하면서 등장했던 한 교수가 요즘은 중앙일보에 자주 글을 쓰는 것도 보게 된다. 그 교수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나라고 별 수 있겠는가.

 

20대 초반에는 추석이 되어도 일부러 집에 안내려 가곤 했다. 어머니가 걱정을 하든 말든, 난 싸늘하고 황량한 추석의 서울 거리가 좋았다. 밥은 학교 근처에 문 연 식당 아무데서나 해결하면서 마음껏 자유를 만끽했다. 그러던 시절도 잠시. 이제 추석에는 집에 가고싶어진다. 이번에는 좀 바쁜 일이 있어서 안가기로 하고 어머니께 전화만 드렸다. 고등학교 이후로 연락이 끊긴 초, 중학교 동창 친구에게 전화도 했다. 이 일이 끝나면 추석이 아니래도 꼭 내려 갔다올 생각이다.

 

가상의 독자여러분, 행복한 한가위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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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3 20:55 2006/10/03 20:55

일식

2006/09/13 00:23

일식

 

달이 해를 먹는 현상. 해는 먹혔지만 해의 찌꺼기는 달을 감싸지. 욕망이란 그런 것이다. 달이 해를 감쌀 때 그나마 우리에게 해의 존재를 말해주는 것은 그 찌꺼기일 따름. 사진을 보면 빛나는 것은 해의 찌꺼기(옆으로 새어나온 빛) 일 뿐이란 걸 알 것이다. 도대체 달은 무엇을 가리고 있는 것일까.


※ 이 사진은 내 대학 선배의 블로그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도 어디선가 훔쳐왔으리라. 어쨌든 이 포스트는 그 선배에 대한 나의 질투로부터 작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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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3 00:23 2006/09/13 00:23

자유의 길

                                 한대수

 

산과 하늘이있나
나는 물었다

아! 사랑 사랑이 뭐냐
나는 몰랐어

나의 친구여 나를 보게나
무슨 할말이 있다고
쓰라린 나그네 길에 나는 지쳤다.


여보게 나그네 그대
나는 외쳤다

내고향 어디메 있소
나는 몰랐어

나의 친구여 나를 보게나
무슨 할말이 있다고
쓰라린 자유의 길에 나는 지쳤다.


여기참 옛추억속에
나는 사라져

길가에 피어난 꽃에
나는 웃었다.

나의 친구여 나를 보게나
무슨 할말이 있다고
쓰라린 나그네 길에 나는 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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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를 올릴 수 있다면 정말 좋으련만...자유를 선택한 이의 대가로다.

가사라도 올릴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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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2 23:58 2006/09/12 23:58

<<서울 1945>> 종영

2006/09/10 23:07

지난 1월 시작된 <<서울 1945>>가 오늘 71회를 끝으로 종영했다. 극우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이 드라마가 역사, 특히 남한 건국세력의 역사를 왜곡했다고 비난하겠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좌익과 우익을 비교적 공정한 시각으로 표현했다는 찬사를 보낸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다.

 

물론 완전한 공정성은 있을 수 없고, 의미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는 다음과 같은 사실 하나, 곧 일제하 사회주의계열의 독립운동과 그 성과를 부족하나마 인정했다는 좋은 평가는 받을 만 하다고 본다. 김일성과 박헌영을 돼지처럼 생긴 것으로 묘사하지 않았다는 것도 대단한 균형감의 발로라고 본다. (정부에서 이번 3·1절과 8·15때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을 부분적으로 인정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역시 부족하지만 격세지감이다.)

 

이 드라마의 미덕이 또하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이 드라마가 역사의 전개를 '이념'이라는, 이제는 너무 진부해 보이리만치 (특히 우파에 의해) 우려먹힌 변수를 넘어서서, 역사의 다양한 변인에도 눈을 돌렸다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사람은 이념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해방공간에서 혁명가 문동기가 그의 형인 친일지주 문자작을 살리려고 고분하는 장면은 매우 사실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실제 그런 일이 당연히 많았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거시적인 구조의 문제를 남녀간 사랑 문제로 격하시켜버렸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겠다. 그 결과 사랑이라는 개인적 문제가 한국현대사의 거시적 사실과 부합하면서 극이 전개되어야 되기 때문에 다소 무리한 설정이 생기기도 했다.(갑자기 이동우가 김해경을 좋아하게 되어 버린다. 왜? 그래야 김해경을 살리면서 극을 전개해 나갈 수 있으니까. 드라마 안 본 사람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그런데, 사실 구조라고 하는 것은 항상 개인이 있으니까 성립할 수 있는 개념적 실재이기 때문에 서사의 중심에 다름아닌 개인이 있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다만, 작가의 의도를 관철시키려고 역사와 유리된 뚱딴지 같은 개인을 등장시키는 짓은 하지 말고, 거시적 시각 속에서 전형성을 충족시키는 개인을 등장시킨다면 대하드라마도 정말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한국전쟁 장면. kbs 홈에서 가져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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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0 23:07 2006/09/10 23:07

괴물

2006/08/22 18:49

영화 '괴물'을 보았다. 시네큐브에서 보았다. 이미 천만명이나 봤다고 하더니, 그 작은 극장에 관객이 10명도 없는 것이었다. 괴물의 위력이 많이 떨어졌나 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살인의 추억'에서 진일보한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거대한 세상의 시스템들 속에서 초라할 수 밖에 없는 인간, 특히 한국사람들이라는 기본주제에다가, 돈으로 만든 괴물을 별첨부록으로 제시한 형태였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다거나, 돈이 아깝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미 나온 많은 전문적인 영화평들의 한결같은 얘기처럼, 한국사회의 이야기를 하는 한국영화니까 절반은 먹고 들어간 것이다. 나도 절반은 먹혔다.

 

가족의 사투라는 테마도 새로울 건 없다. 이건 IMF 체제 하에서 기다렸다는 듯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사회과학 담론들이 주구장창 떠덜어대던 것이다. 즉, 한국사회의 사회복지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가족체계가 담당하고 있다는 고상한 말들. 다시 말하자면, 한국사회에서는 국가도 사회도 해주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재난통제나 미래를 위한 복지 같은 것은 가족의 부담으로 남는다는 것이겠지.

 

인간의 의지에서 소외되어 나온 거대권력이라는 '큰타자'도 명징성을 획득하지 못했다. 한국에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미국도, 무책임한 한국정부와 언론 및 시민단체들도, 관습화된 이미지에서 더 재밌는 에피소드 하나 못 실은 채, 그냥 나왔다가 들어갔다.

 

인물들이 담고 있는 전형성도 살인의 추억에서 더 나가지 못한 것 같다. 가족의 수장인 변희봉 아저씨는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한 목숨 희생하는 것이 아깝지 않은 우리 부모님들 이야기에서 더 나가지 못했고, 송강호가 연기한 어리버리 애아빠의 이미지도 이전 송강호 이미지에서 더 새로운 것이 추가되지 못했다. 양궁선수 고모 배두나는 마지막에 불화살 쏘는 것 말고는 별다른 역할이 없다.

 

그런 가운데, 왕년의 '민주투사' 박해일만이 내 눈길을 좀 끌었다. 송강호의 동생, 배두나의 오빠, 변희봉의 아들, 그리고 괴물에게 잡혀간 현서의 삼촌인 박남일은,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백수로 지내는 청년실업자이다. '조국 민주화'를 위해 투신했으나, 우리 사회는 취직도 시켜주지 않는다고, '씨발'을 섞어 가며 말한다. 현서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이동통신사 다니는 대학 선배를 찾아갔는데, '왕년에 데모질만 하더니 언제 그렇게 좋은 회사에 취직했는지' 모를 그 선배는 사실, 포상금에 눈이 어두워 남일을 경찰에 넘기기 위해 그리로 유인한 것이다. 연봉이 6천이냐고 묻는 남일의 질문에, 카드빚이 6천이라고 말하던 선배. 경찰들에게는 '저 새끼 도바리 천재니까 만만하게 보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역시 '도바리' 천재 박남일이 함정을 빠져 나와 쫓겨간 곳은 한강 다리 밑의 거지집. 거기서 그는 거지와 함께 택시를 타고 현서를 찾아 가면서 화염병을 제작한다. 휘발유와 광목과 솜과 나무젓가락, 그리고 역시 2홉들이 소주병, 즉 두꺼비 소주병. 휘발유를 제외한 모든 재료는 거지집에서 가져온 것 같다. 택시 안에서 화염병을 제조하니 택시기사가 짜증을 부리며 승차거부를 한다. 박남일이 '따블'을 준다고 하니 군소리 않고 가는 택시기사. 그러나 목적지인 원효대교 북단은 시위 인파로 교통정체가 심한 곳. 라디오에서는 교통방송이 흘러 나온다.

화염병은 괴물을 퇴치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김영삼 정부의 화염병 및 쇠파이프에 대한 강경조치 이후 자취를 감췄던,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까지도 가끔 시위 현장에 등장하던) 화염병은 거대권력을 닮은 괴물을 향해 날아간다.

 

화염병이 중요한게 아니다. 거기에는 군사독재라는 터널을 지나온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 있는 것이다. 이동통신사 취직한 선배의 연봉이 얼마인지가 중요한게 아니다. 거기에는, 한때 꿈이 있었던 젊은이들이 세상이라는 진정한 거대권력 앞에서 눈물을 머금고, (때로는 당연한 듯이) 삶의 급선회를 감행할 수 밖에 없는 2000년대 후반의 한국사회가 있는 것이다.

 


※ 이 풍자적으로 과장된 자칭 왕년 '민주투사'의 액숀을 보라.(사진은 네이버의 어떤 블로그에서 가져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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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2 18:49 2006/08/22 18:49

[노래] 기도

2006/08/16 02:41

                기도

 

눈을 감고 잠잠히 기도 드리라

무거운 짐에 우는 목숨에는

받아 가질 안식을 더하려고

반드시 도움의 손이 그대 위해 펼쳐지리

그러나 길은 다하고 날 저무는가

애처로운 인생이여 애꿎은 노래만 우네

 

멍에는 괴롭고 짐은 무거워도

두드리던 문은 머지않아 네게 열릴지니

가슴에 품고 있는 명멸의 그 등잔을

부드런 예지의 기름으로 채우고 또 채우라

삶을 감사하는 높다란 가지

신앙의 고운 잔디 그대 영혼 감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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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16 02:41 2006/08/16 0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