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동일성

 

동물학자들은 작은 생물체들의 개체성을 재구성한다. 가령, 개미군집의 개체성은 어떠한가? 개미 한마리를 온전한 개체라고 할 수 있을까? 개미는 뇌도 없을텐데, 어떻게 한마리로서 개체가 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것보다는 집단행동을 통해서만 온전한 삶을 이어가는 그들은, 전체군집을 하나의 개체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사람은 어떠한가? 사람은 반대로 한 사람의 몸 여러 군데군데가 모두 따로 생명을 가진 개체인 것은 아닐까? 발도 손도 눈의 각막도 그 자체의 생명을 가지고 생애주기를 보낸다. 어떻게 인간 모든 신체부위를 하나의 개체로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인간은 자기동일성을 어떻게 보증할 수 있는가. 한마디로 내 몸의 여러 개체 중에서 진짜 나는 어디인가? 뇌? 생각? 주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8/22 23:31 2007/08/22 23:31

지조와 변절 사이

2007/08/09 01:10

오늘 화장실에서 오줌누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역사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린이 말로 '변절'이란 걸 하는데, 지조와 변절이 사실 종이 한장 차이인지라, 다 후대의 평가의 문제겠지만, 그래도 어떤 사람은 지조를 지킨 걸로, 어떤 사람은 변절한 것으로 평가되는데, 그렇다면, 그것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일제시대에 독립운동가들이 변절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기독교계의 거물 윤치호와 신흥우가 일제 말기에는 신사참배를 하고, 그 이전에 민족적 지성이라던 이광수, 최남선은 일찌감치 자치론자로 돌아서서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주장하고, 그런 반면에, 능글능글하게 총독이랑 밀담까지 나누던 여운형은 끝까지 독립운동가로 남게 되는데...

 

그런가 하면, 도산 안창호는, 결코 비타협적 투쟁가가 아닌 그가, 끝까지 조선민족의 독립을 주장하다 죽은 것이 이상할 것은 없겠다. 더러운 꼴 보기 전에 일찍 죽었으니깐(1938). 실은 일제시대에는 많은 수의 변절자가 1941~1945년 사이에 나왔으니깐.

 

결국, 안창호가 더 오래 살았다면, 윤치호나 신흥우처럼 되지 말란 법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결국 지조와 변절 사이에 '종잇장 같은 육체 한장'이 남는 건 아닌가. 찌릿찌릿 좀이 잘 쑤시는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변절을 하기 쉽겠고, 느릿느릿 몸이 무거운 사람은 지조를 지키기가 한결 쉬울지도...

 

그렇지 않다면야, 사람들이 왜 좋은 걸 버리고 안좋은걸 취하겠는가. 왜 지조를 버리고 변절을 하겠는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8/09 01:10 2007/08/09 01:10

4월의 노래

2007/05/09 20:04
 

4월의 노래 - 박목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지를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을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5/09 20:04 2007/05/09 20:04

[다큐] 우리학교

2007/04/16 14:26

주말에 재일 조선인 학교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우리학교>>를 보았다.

 

* <<우리학교>>(our school) / 개봉 2007. 3.29 / 감독 김명준 / 131분

영화사 진진(배급) 스튜디오 느림보(제작) /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2006) 운파상 수상. 

 

아래, 이 영화의 배경음악의 하나인 <우리를 보시라>(작곡 윤영란 작사 리명옥 노래/연주 조선대학교 경음악단 ) 공식 블로그( http://blog.naver.com/ourschool06)에서 퍼옴.

 

 

그 언제나 나를 보는 눈길들 내가 서는 자리마저 하나없듯이
마음을 숨기며 발자취도 감추고 세상에는 저 혼자라 알아왔네
단 하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동무들이 나를 나를 이루어주고
두 팔을 크게 벌려 여기 오라고 안아주는 나의 학교
 
우리를 보시라 그 어디 부럼 있으랴
마음껏 배워가는 이 행복 넘치네
아침의 해빛이 아름답고 고운 그 모습을 그려 살리라
 
굽이굽이 돌아드는 이 길을 함께 가니 푸른 하늘이 열리여있네
조선옷 입고서 얼굴 바로 들고서 날마다 학교가는 이 기쁨아
불리우는 이름을 몰랐었네 자란 곳이 다른 줄을 몰랐었네
더는 헤매지 말고 웃어 보라고 안아주는 나의 학교
 
우리를 보시라 그 어디 부럼 있으랴
참되게 살아가는 이 행복 넘치네
아침의 해빛이 아름답고 고운 그 모습을 그려 살리라




< 출처 : 우리학교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4/16 14:26 2007/04/16 14:26

돌발영상

2007/01/31 00:39

뉴스전문 케이블 YTN의 돌발영상 몇회분을 주욱 보았다. 재밌었다. 돌발영상이라고 하나, 사회의 모든 측면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주로 '정치'라는 층위에 한정된 소재들로 만들어진 것이 많았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해 '정치돌발영상'인 것이다. 재밌는 이유는 이때문일 것이다.

 

사회에서 정치라는 층위가 차지하는 위상은 참 각별한 것 같다. 분명히 사회를 움직이는 독자적인 요인이 될 힘은 정치의 어디에도 없는 것 같지만, 많은 사람들은 상당한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마, 정치의 핵심이 싸움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택동도 말했잖는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사람들은 싸움구경을 좋아하는 것이다. 총싸움도 좋아하고.

 

정치의 목적인 권력이 총구에서 나오는 만큼, '정치돌발영상'의 대부분의 내용은 폭력을 운용하는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물론 폭력이 주먹으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유머, 위트, 상대방의 약점을 후벼파는 적절한 농담, 자신의 허물을 가리는 허허웃음, 최대한 젠틀하게 보이도록 위장된 살벌한 공격, 상대의 공격이 사실은 자신에게 득이 될 수 있음에도 최대한 허약하게 보임으로써 동정을 이끌어 내기...등등.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1/31 00:39 2007/01/31 00:39

[영화] 박치기

2007/01/24 03:59

일본 감독과 배우들이 만든 영화인데, 내용은 재일 조선인들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일본 사회내의 '한국인(조선인)'에 대한 얘기라서, 한국영화라고 불러야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지만, 물론 일본 영화이다. 아마도 원작 소설은 좀더 일본 사회의 문제를 중심에 두었으리라. 이런 영화는 몇 개 더 있다.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인가 하는 영화는 기타노 다케시가 주연이었지. 이런 영화들의 특성상 이들을 초민족적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마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예쁜 재일조선인 '리경자' 역할을 한 여배우는 일본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라고 한다. 도쿄 출신의 이 배우가 영화의 배경인 칸사이 지방 사투리를 연습하는 것도 힘들었겠지만, 영화 중간 중간에 현실감을 위해 삽입한 한국어(조선어)는 굉장히 어색하다.

 

일본에서는 이 영화가 일본 영화제 같은 데서 상도 좀 타고 그런 것 같다. 참 신기하게 느껴진다. 어찌되었든 일본인들은 한국인(조선인) 문제를 자신들의 문제 중 하나로 생각한다는 것인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영화의 갈등구조는 굉장히 복잡하다. 아, 물론 이 영화는 코믹 영화다.

 

이 영화에 나오는 한 등장인물, 곧 라디오 방송 PD는 이렇게 얘기하는 듯 하다. 즉, 나는 대학 다닐 때, 칸트, 헤겔, 마르크스 등등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지만, 인간이 부닥친 문제는 그것보다 훨씬 세세하다고. 하지만, 이건 내 얘기고, 실제로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무슨 이유가 있든지 간에 부르면 안되는 노래 같은 게  있을 리 없잖아!"라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1/24 03:59 2007/01/24 03:59

» 저우창이/중국 월간 <당대> 편집인

 

중국에선 가난한 사람이 갑자기 부자가 되어 우쭐대는 것을 ‘샤오바오’(燒包)라고 한다. 중국에는 아직 가난한 사람이 수억 명에 이르지만, 많은 이들이 벼락부자가 되어 샤오바오를 부린다.

20년 전, 부자들의 샤오바오는 ‘황금반지’였다. 손가락마다 금반지를 끼고 다니며 유세를 부렸다. 손가락이 여섯 개가 아닌 것을 한탄할 정도였다. 10년 전, 부자들의 샤오바오는 ‘황금연회’로 바뀌었다. 식탁 가득 호화로운 음식을 차리고 호사를 부렸다. 이 바람에 베이징에서 유명하다는 식당의 음식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그런데도 부자들은 이런 식당에서 기꺼이 바가지를 썼다. 이때는 거리의 건달들도 샤오바오를 부렸다. 이들은 홍콩 조폭영화에 나오는 깡패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거리를 누비며 ‘황금영’(상하이 폭력조직 흑사회의 두목)을 되뇌었다.

 

요즘 부자들의 샤오바오는 ‘황금첩’이다. 뇌물로 돈을 번 탐관오리나 장사로 부자가 된 이들은 하나같이 첩을 거느린다. 한둘은 기본이고, 첩을 열이나 데리고 사는 이들도 있다. 이들 첩의 샤오바오는 ‘황금장신구’다. 몸에 주렁주렁 금붙이를 달고 다니며 위세를 떤다. 첩에게 남편을 빼앗긴 아내들은 ‘황금통장’이라는 샤오바오를 부린다. 이들은 남편에게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해 비상금을 저축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젠 정부도 샤오바오를 부린다. 정부의 샤오바오는 ‘황금성’이다. 백성들의 피땀으로 번 돈으로 관청을 자금성처럼 호화롭게 꾸민다. 자기 돈이 아니라고 건물을 장식하는 데 마음껏 호사를 부리는 것이다. 이러니 백성들도 샤오바오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백성들의 샤오바오는 ‘황금무덤’이다. 요즘 같은 호시절을 보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난 가족들을 위해 무덤을 궁전처럼 호화롭게 지어주는 것이다.

 

과거엔 세상이 모두 샤오바오를 부려도 지식인들만은 예외였다. 이들은 청빈을 얘기하며 고고함을 지켰다. 샤오바오라는 말을 만들어 부자들의 속물근성을 풍자한 것도 이들이었다. 이들 뒤에 있는 여론도 상인이나 관리들의 샤오바오를 용서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지식인들마저 샤오바오에 빠졌고, 여론도 샤오바오를 문제삼지 않는 지경이 됐다.

 

요즘 지식인들의 샤오바오를 대표하는 게 장이머우 감독의 블록버스터 영화 <황금갑>(당나라 말기 황궁의 암투를 그린 영화. 한국에선 <황후화>로 번역)이다. 그는 원래 중국 계몽영화의 기수였다. 그의 영화 <국두> <귀주이야기> <홍등>에는 백성들의 삶에 대한 관심이 듬뿍 배어 있었다. 그러나 요즘 그는 중국 상업영화의 선두에 서 있다. 그의 최근 작품, 특히 <황금갑>에선 사상을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두 개의 단어 ‘사치’와 ‘탐욕’만이 있을 뿐이다.

 

요즘 중국 영화에 사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황금갑>과 동시에 개봉한 자장커 감독의 <삼협호인>은 중국 영화의 진정성을 간직하고 있다. 그는 과거 중국 계몽영화의 계승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삼협호인>은 관객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황금갑>이 3억위안을 벌어들여 중국 영화사의 신기록을 세우는 동안 <삼협호인>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간판을 내려야 했다.

 

그러나 이는 장이머우의 잘못이 아니다. 사치와 탐욕에 눈먼 중국 관객의 잘못이다. 장이머우가 샤오바오하게 된 것은 결국 중국 국민들이 샤오바오에 빠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갑자기 잘살게 되면서 샤오바오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땐 샤오바오가 사라질 수 있을까? 장이머우가 총감독을 맡은 올림픽 개막식이 샤오바오의 거대한 의식이 될까 걱정스럽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1/22 20:58 2007/01/22 20:58

수식을 사랑하다니! 수식이 아름답다니!

 

그러나, "누구보다 먼저 진실에 도달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도 증명이 아름답지 않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케플러가 티코 브라헤의 데이터만 가지고 행성운동 법칙을 찾아낸 게 아니듯.

 

p.s. : 계속 생각하고 있던 것인데, 이 영화가 보여주는 대책없는 순수지향이 파시즘과 인종청소를 뒷받침하는 논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돈안되는 우려를 갖고 있다. 몇명 보지도 않은 이 영화로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하는 게 좀 웃기긴 하지만, 뭐, 그렇다는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1/11 21:48 2007/01/11 21:48

선생님들

2006/12/26 00:39

내가 대학에 처음 들어와서 선생님들이랑 상견례를 했는데, 인상 깊은 분이, 김진균, 신용하 선생님이셨다. 김진균 선생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여러분과는 다른 사람, 가령 대학에 들어오지 못한 친구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라"고.

 

거물 진보인사다운 인사말을 기대했던 나는 조금 실망했다. 그정도는 전교조 선생님들이 많이 하던 말 아닌가.

 

한편, 신용하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대학에 왔으니 이제 정말 열심히 공부하라"고.

 

이건 좀 납득이 갔다. 이른바 '진정한 공부'라고 하는 말의 무게가 고등학교때의 공부와 비교되면서 상당히 무겁게 다가온 듯하다.

 

이후에 두 선생님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나에게는 무의식 중에 두 선생님을 일종의 수퍼에고화하는 경향이 생기게 되었다. 두 선생님이 서로 입학동기라고 하던데, 두 선생님이 서로 다른 양 극단을 달리는 우리 사회의 전형을 내 무의식에 찔러넣어셨던 듯하다.

 

한분은 만석꾼 집에서 태어나 부러운 것 없이 자라 당시로서 힘들었을 재수까지 하면서 자신의 전망에 대해 충분한 성찰을 거치면서 대학에 진학하셨고, 다른 한분은 가난이 싫어 집에서 탈출하다시피 하여 대학에 들어왔고, 고생을 정말 많이 하셨다.

 

전자, 곧 김진균 선생님은, 그래서 너그러운 포용력으로 나처럼 보잘것 없는 인간에 대해서도 조금 기억하고 계셨다. 물론, 진보인사들의 다수가 선생님을 많이 기억하고 있다. 후자, 곧 신용하 선생님은 엄청난 저술로 유명하다.

 

나는, 지금 생각하건대, 그동안 너무 무책임하게 내 삶을 이런 '수퍼에고'들의 책임에 맡겨놓고 있었던 거 같다. 이들이 내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 하더라도, 인생은 답이 뻔해서 내가 살 수 있는 삶의 스펙트럼은 결국 김진균 선생님과 신용하 선생님의 자리 사이에 있는 어디쯤인 거 같다. 특히 나처럼 x도 없는 인간은 이들이 마련한 전형 속에서 기회주의적으로 왔다갔다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조상들이 조상을 신격화하고, 가문을 종법화한 것이 좀 이해가 간다. 그들에게 인간은 정말 x도 아니었던 것이다. 무기력하고, 게다가 빨리 죽어버리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12/26 00:39 2006/12/26 00:39

이 책을 사서 요즘 보고 있다. '요순우탕문무주공+공자'라는 차이나 성현에 대한 관심이 동북쪽으로 전이된 결과이다. '갑빠'가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에, 좀 오래된 걸 읽고 싶었다. 최근엔 연구서들도 많겠지만.

일제시대에 쓰여진 이 책을 보고 무엇보다 놀란 건, 신채호의 문장.

 

  "역사에 영혼이 있다면 ... 눈물을 흘릴 것이다."

 

한문을 모국어로 하는 사람의 붓끝에서 나온 국문 치고 매우 박진감 있다. 고증에 대한 놀라운 안목. 알다시피, 그는 조선시대 성균관 박사 출신으로서 생의 마지막 순간에 무정부주의자(혹은 사회주의자)의 삶을 걷고 있던 사람이다. <<통감>>류의 역사서에서 찾을 수 있는 전통시대 고증에 관한 에토스를 그대로 근대 실증사학의 마인드로 옮겨 놓은 듯하다. 이건 서론만 보면 알 수 있다. <<천부경>>이나 <<한단고기>> 류 국수주의 사이비 저작에 비해, 단군의 실체를 명확히(연대까지) 밝히진 않고 있다.

 

그럼에도, 기자동이설 같은 부분은 굉장히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다. 이건 고대에 대한 하나의 깔끔한 매너처럼 느껴진다. 기자가 조선에 봉해진 것이 아니고, 정치투쟁에 염증을 느낀 기자가 조선의 매력에 끌려 조선으로 온 것이다. 물론 기자만 온 것이 아니라 그 족속이. 이러한 것은 여러가지 자료로 고증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

 

※ 뒤에 부록으로 '동시대인이 본 신채호론'이 있다. 실로 '위인의 사생활'이라는 주제의 글들이다. (이런 게 제일 재밌다.) 1919년 이후로 변절해서 총독부 기관지에 가명으로 글도 싣곤 하던 이광수의 글도 있다. 신채호는 그럴 리 없다며 1930년대까지 그를 아꼈다. 책은 비봉출판사에서 나왔고, 번역은 사장 박기봉씨가 했다. 경제학과 나와서 출판사 운영하려니까 직접 번역도 해야겠던 거겠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12/21 02:15 2006/12/21 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