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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 운동

지난 금요일 저녁, 출신 동아리의 1년 중 가장 큰 행사가 있어 갔다왔다.

뒷풀이에서 오랜만에 만난 후배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나눴는데, 그 때 한 얘기 중

혹시나 나중에 까먹으면 안될 것 같은 얘기가 있어 메모를 해둘까 한다.

 

나와 이야기를 나눈 S모 후배님은 올 해 총학생회 선거 대응에 대해 고민을 해 봤단다.

해야 한다고 말하는 얘들도 있었고,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얘들도 있었다는데,

전자의 주장을 뒷받침 한다고 내놓은 근거들이 대략 5년전에도 들어왔던,

너무나 해묵은 얘기들이라는 사실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예 올 해 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더 이상 학생운동이 학생회운동으로는 생명유지 자체가 안 될 수밖에 없는

이유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아래 이야기들은 그 날 했던 얘기에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합한 것이다.)

 

 

예전에 학생운동의 역사 같은 것을 공부하면서 90년대 초반에 쓰여진 글을 본 적이 있다.

거기서는 학생운동이 전체운동에서 가장 선진적인 부분이 될 수 있는 이유를 대략 이렇게 보고 있었다.

잘 기억은 안나는데 대략 "학생들은 젊음의 패기와 배움의 자리에 있다는 가능성...."

뭐 이런 거였다.

 

여기서 정의하는 학생운동은 '대학생' 자체일 수도 있겠지만

의미를 명확히 규정하자면 '20대'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러니까 예전부터 지금까지 학생운동 하면 20대 젊은이들이 하는 운동이라는 거다.

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균열적인 방식으로' 형성하는 공간이 바로 대학이고,

그들의 '형성중인' 정체성과 대면하여 저항의 주체로 일으켜 세우기 위해

학생운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아주 기본적인 전제가 오늘날에 이르러 완전히 뒤흔들리고 있다 생각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내 '학생운동'의 경험 덕분인데,

난 07년 쯤에 평생교육 문제에 대해 고민할 기회가 있었다.

그 고민의 결과를 아주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학생이라는 거다.

 

이미 대학과 대학이 아닌 곳의 경계가 무너진지는 오래이다.

직장 끝나고 영어회화 배우러 다니는 직장인은 90년대 개념으로 보자면 학생이 아니었지만

2000년대 개념으로는 분명 학생이다.

난 작년에 대학을 졸업했지만, 얼마전까지 방통대 경제학과에 편입해서 공부를 좀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지금은 포기했지만) 그렇다면 나는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학생신분이고 언제부터가

학생신분이 아닌가?

게다가 전통적인 의미의 대학생에 해당하는 연령대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형성하고

정체성을 구축하는 공간은 어디인가? 학생회실, 학회실, 강의실?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너도 알고 나도 안다.

마지막으로, 예전부터 존재해왔던 문제이지만 아무도 고민하지 않았던 문제로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안가고 바로 취직하는 20대의 문제이다.

우석훈 박권일의 <88만원세대>에서는 그 중에서도 실업계고 졸업 후 취직하는 여성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파트가 있는데, 90년대 학생운동의 개념으로는 절대 이런 주체들의 문제를

사고할 수 없다.

 

90년대 학생운동의 자장안에 묶여있는 지금의 학생운동, 특히 학생회운동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대학에 입학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하는 운동이다.

그것은 68혁명에서 그랬던 것처럼 대학생이 사회변혁의 주체라는 사고에 기대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미 평생학습사회로 접어든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학생운동의 상은 소멸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80년대 말, 90년대 중반까지 대학생이 규모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나 이 사회의 주축세력으로 성장하면서 나타났던 일시적인 현상이지 보편적인 모습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난 이 시점에서 '백 투 더 베이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곧 '학생'이라는 만들어진 정체성을 버리는 것이다.

나도 잘 모르는 것이긴 하지만, 이것이 80년대 초반 학생운동,

그리고 광주항쟁에서의 들불야학 운동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필요한 것도 바로 그런 베이직이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덧붙이고 싶은 점은 학생운동만 자신의 정체성을 버릴 것이 아니라

노동자 운동도 자신의 정체성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이 아니라 이 평생학습사회체제에 적합한 저항주체로서의 노동자-시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노동자운동은 전적으로 '학생운동'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와 동시에 학생운동은 대학의 벽을 넘어서 대학 밖의 학교와 결합할 수 있어야 한다.

 

 

어제 서동진씨 논문을 여기저기서 찾아 놓고 오늘 읽고 있었는데,

그걸 읽고 있자니 나의 이런 생각이 조금 더 근거를 찾은 것 같다.

예전에 알라딘 블로거(??) 게슴츠레님이 <학생운동의 종언 혹은 부활의 기회>라는 글에서

학생회운동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는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나는 그것은 전적으로 '고려대'니까 가능한 얘기라고 생각한다.

그게 고려대에서도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미지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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