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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중에서....

만일 네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위녕, 오늘 하루 쉬고 싶다고 투덜거리는 널 보내고 엄마는 이 글을 쓴다. 엄마는 네게 말하곤 했었지. 다만 네가 최선을 닿 성실하기를 바란다고. 생각해 보면 절대로 취소하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공부를 잘하라느 압력을 그런 식으로 네게 교묘히 불어넣었는지도 몰라. 이 겨울, 국토대장정을 떠날 돈을 모으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찾아다니는 너를 보며 엄마는 실은 네가 시험을 잘 본 것만큼이나 대견했단다. 아직 너는 어리니까 엄마가 조금 도와주어도 좋을 일인데 굳이 네 힘으로 하겠다는 것을 보며 우쭐하기가지 했단다. 그래서 엄마는 오늘 네게 <<내 발의 등불>>이라는 책 이야기를 해볼까 해.

 

닐 기유메트라는 신부님이 지으신 잛은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야. 늘 그렇듯이 별 기대 없이 책장을 열었는데, 뜻밖의 이야기가 있었다. 제목은 <천사 미니멜>이야. 짧은 이야기니까 좀 들어 볼래?

 

'마지막 천사가 창조되었을 때 그에게 '미니멜'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모든 천사들 가운데 가장 완벽하지 못했기 대문이다'라는 구절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천사들은 보통 끝에 '엘'이라는 철자를 가지고 있지. 네 영세명인 미카엘라는 미카엘의 여성형이고 네 동생들 가브리엘, 라파엘이란 대천사들의 이름도 모두 그렇다. 미니멜이란 앞에 붙은 '미니'에서 짐작할 수 잇듯이 작고 보잘것없고 막내라는 그런 뜻일 테지. 당연히 천상에서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인 미니멜은 절망하기 시작했어.(천상에서 보잘것없다 해도 우리가 보기에는 엄청나게 아름답고 또 위대한 존재라고 저자는 토를 달았다.) 그래서 미니멜은 죽기로 ㅈ결심한다. 그런데 천사는 불멸의 존재라, 자살이 불가능해. 방법은 하나. 자기를 만든 신에게 가서 자기를 그냥 없애 달라고 부탁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단다.


신은 곰곰 생각하다가 대답한다.

사람들 세상에 피에타 상이 수백만 개 존재하고. 나이아가라 포포가 수백 개, 에베레스트 산이 수백 개 존재하다고 한 번 가정해 봐라. 그것들은 더 이상 독창적이 아니니 그 절대적 인 매력을 잃지 않겠느냐?
나의 창조물들을 자세히 보아라 어떤 눈송이도 똑같이 생긴 것이 없다. 나뭇잎이나 모래알도 두 개가 결코 똑같이 않다. 내가 창조한 모든 것은 하나의 '원본'이다. 따라서 각자 어떤 것과도 대치될 수 없단 거란다. ... 너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나는 너 없이도 세계를 창조할 수 있었지만 만일 그랬다면 세계는 내 눈에 영원히 불완전한 거으로 보였을 것이다. 너를 미카엘이나 라파엘로 만들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네가 너로서 존재하고 나의 고유한 미니멜이기를 원한다. 태초부터 내가 사랑한 것은 남과 다른 너였기 대문이다. 너는 내가 오랜 세월에 걸쳐 꿈꿔 온 유일한 미니멜이다. 따라서 어느 날 네가 존재하지 않는다면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느냐? 만일 네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는 더할 수 없이 슬플 것이다. 영원히 눈물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엄마는 한참을 이 구절을 붙들고 있었다. 왜냐구? 엄마도 가끔 생각하거든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나에게는 왜 저 사람이 가진 저것이 없을까? 시은 왜 나에게 이런 재능을 주지 않았을까? 하고. 그런데 생각해 보게 된 거야. 나이아가라 폭포가 동네마다 있다면, 동네 뒤에는 다 에베레스트 산이 있다면, 피에타 상이 온 동네 교회마다 있다면..... 갑자기 말이야, 신기하게도 웃음이 나왔어.


닐 기유메트 신부님은 이 밖에도 많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신 분이야. 어떤 사람의 책이 좋으면 그 사람이 지은 모든 책을 읽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은 너와 내가 같아서 엄마도 이 분의 책을 다 찾아 읽었단다.


사랑하는 달, 가끔 여성지를 펼쳐들고 있으면 온몸이 오싹해 질 때가 있어. 온갖 성형외가 광고와 다이어트 광고들. 그건 이 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 잘라라, 붙여라, 꿰매라, 빼라..... 결국, 지금 너는 추하다!


위녕, 네 코에 대해 불만이라고 했지? 하지만 엄마가 아무리 생각해도 네 콘는 너의 입술과 세트를 이루는 아름다운 코야. 네 코가 엄마코를 닮았다면 너의 입술은 부자연서러웠을 거야. 성형외과 의사에게 들었는데 인간의 얼굴은 이목구비뿐만 아니라 심지어 턱선 어깨선과도 모두 조화를 이루도록 독특한 설계를 가지고 있다고 해. 그래서 얼굴 하나를 잘못 고쳐 놓으면 그 모든 균형이 무너져 내리고 그러면 그 균형을 어떻게든 되찾기 위해서 다시금 다른 이목구비에 손을 대게 되는 악순환이 벌어 진다고 하더구나.

 

위녀, 넌 엄마의 심미안을 전혀 믿지 않지만 너는 예쁜 아잉야. 그리고 엄마는 너를 사랑한다. 세상에 하나뿐인 위녕 너를 말이야. 만일 네가 없어지면 우준느 균형을 찾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 치겠니? 어느 시인이던가 그런 말을 했다.


한 송이 수선활르 피우기 위해 온 우주가 협력했으니 지구는 수선화 화분이다.'라고.
엄마는 오늘은 꼭 수영을 가려고 해. 온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엄마의 몸을 튼튼하게 지키려고 말이야.
자, 오늘도 좋은 하루!

 

- 40-44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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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자신에게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네 자신뿐이다.




위녕, 좋은 날씨가 계속된다. 하루 종일 공부해야 하는 너는 어쩌면 이런 날씨가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하겠다. 하늘은 푸르고 날씨는 덥지도 춥지도 않고 꽃들은 화사하고... 오늘도 가끔 창밖을 보고 있니? 그래 가끔 눈을 들어 창밖을 보고 이 날씨를 만끽해라. 왜냐하면 오늘이 너에게 주어진 전부의 시간이니까. 오늘만이 네 것이다. 어제에 관해 너는 모든 것을 알았다 해도 하나도 고칠 수도 되돌릴 수도 없으니 그것은 이미 너의 것은 아니고, 내일 도한 너는 그것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단다. 그러니 오늘 지금 이 순간만이 네가 사는 삶의 전부, 그러니 온몸으로 그것을 살아라.

너는 어제 어처구니없이 당한 오해와 공격에 대해 엄마에게 오래도록 이야기했었다. 그래, 생각 같아서는 너에게 그런 짓을 한 사람에게 좇아가서 두 팔을 걷어붙이고 항의하고 싶었단다. 하지만 일단 엄마는 여기서 한 박자 쉬기로 했어. 대신 네게 이런 편지를 쓰고 싶었단다. 그 순간, 네가 하지도 않은 일로 그가 너를 오해하고 사람들 앞에서 너를 망신당하게 했을 때, 그때 네 마음이 피 흘리며 아팠을 때, '정말, 정말, 너를 상처 입힌 것은 과연 누구였을까?'하는 편지 말이야.


'네 자신을 아프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네 자신뿐이다.'


이 말은 엄마가 안셀름 그륀이라는 신부님의 책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마라>에서 읽은 구절이었어. 그 신부님은 성폭력의 상처를 가진 여성들을 치료하고 있었는데 어떤 위로도 이 여성들을 다 위로하고 치유할 수 없지. 어린 시절의 성폭력은 그 여자들이 자신을 아프게 하기 위해 초래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역사에 희생당한 사람들, 테러에 희생당해 불행을 겪는 사람들, 모두가 자기 자신을 아프게 하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니었지. 그런데 말이야. 성폭력이나, 광기의 역사나, 테러에 희생당해 불행을 겪는 사람들, 모두가 자기 자신을 아프게 하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니었지. 그런데 말이야. 성폭력이나, 광기의 역사나, 테러에 희생당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도저히 어쩔 수 없다 해도, 그 와중에 그것은 그저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다고 하거나 나는 오직 희생아라고 말하기 전에 조금은, 우리가 무언가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해. 그륀 신부는 이 여성들과 면담을 통해 이상한 사실을 발견한다.


고통 당하는 사람은 자신의 고통을 자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고통과 작별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고통은 그가 알고 있는 것이지만, 그 고통을 놓아 버린 후에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가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녕, 너는 이 이상하고 모순되어 보이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니? 이 무서운 진리를 말이야.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 주변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난단다. 가끔 엄마는 생각해. 진자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든 그 고통에서 그들이 헤어나올 방법을 함께 모색해 주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단다. 그런데 이들은 정말 여기서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기나 한 걸까? 하고 말이야. 가끔 그건 엄마에게도 마찬가지였어.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대개는 그 고통이 가해지는 틀을 깨 버려야 할 때가 많으니까. 그건 미지(未知)이고 그것은 고통보다 더 두려운 거지.

그리고 다시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 거야. 그것은 비단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뿐 아니라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이상한 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지. 그는 그것을 이렇게 써 놓았단다.


우리 모두는 늘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배심원석에 앉혀놓고, 피고석에 앉아 우리의 행위를 변명하고자 하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이해할 수 있겠니? 우리를 변호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를 늘 비난하는 사람들을 배심원 자리에 앉힌 것은 누구였을까? 피고석에 우리 자신을 앉힌 것은 누구였을까? 엄마가 많이 힘들던 어느 날, 사람들이 내게 원하는 것과 엄마가 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다르다고 느끼는 날 엄마는 이 구절을 읽었고, 책이 아니라 가슴에 붉은 밑줄이 손톱자국처럼 북북 그어지는 것 같았고 그리고 엄마의 녹슬어 가던 인생이 끼이익 하고 각도를 트는 소리를 냈다. 엄마는 오래도록 불행한 결혼을 끝내고 싶었지만 두려워서 그러지 못하고 있었어. 왜냐하면 아직 하지도 않은 이혼을 두고 아직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그 비난들이 엄마의 귀에 들려오는 듯했기 때문이지. 그런데 이 구절을 읽자, 나는 왜 피고석에 앉아 있으며, 나는 대체 누구를 배심원석에 앉히고 있었나 싶었던 거야. 분명 내 자신은 내가 피고석에 앉을 만큼 잘못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고, 엄마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엄마를 비난하지 않았고 그럴 리도 없을 텐데, 엄마는 스스로 피고석에 앉아 내 결혼생활의 판결을 엉뚱한 이들에게 맡기려고 하고 있었던 거지. 그토록 중요한 내 인생의 판결을 나를 사랑하지 않은 사람들의 손에 맡기려고 하다니.... 그날은 마침 오랜만에 외출을 하는 날이었는데 엄마는 별로 친하지도 않은 지인들과 술을 마신 후, 이렇게 말했다고 하더라.

"나는 이제 피고석을 떠나겠어! 오늘부터 내 배심원들 다 해고야.... "

있잖아 위녕, 어떻게 그런 말을 술 마시고 반복했는지 모르지만 태어나서 술 마시고 얼결에 한 말중에 제일 나은 것 같아. 그 순간 엄마의 마음속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이 찾아왔단다. 해방감은 공포를 수반했지만, 적어도 나를 비난하기만 하는 사람들 앞에서 나를 변명하고 있는 짓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만은 확실했고, 엄마는 그 어리석음이라는 확실함을 붙들고 일단 확실한 그것을 발길로 뻥 차 버림으로써 거기서 한 발짝 벗어나기 시작했단다. 아직도 그 순간의 감격을 기억해.

그륀 신부님의 이 말은 동방의 성자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사상에 기대고 있지,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344년경에 태어난 사람이었어. 그때나 지금이나 성자들이 대개 그렇듯 그는 모함과 오해에 시달린다. 사람들이 그를 골탕 먹일 방법을 의논했지. 그러나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어. 만일 그를 주교자리에 앉힌다면 그는 그 일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너무 훌륭한 주교가 될 것이고, 만일 그를 유배 보낸다면, 그는 이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닮게 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굳세어질 것이며, 그를 죽인다면 그는 하느님을 위해 순교한다는 기쁨에 사로잡힐 것이라는 게 뻔했다는 거지. 그 무엇도 그를 삶의 기쁨에서 내몰 수 없었다는 것이야. 소크라테스가 말했던가. "그들은 나를 죽일 수는 있으나 해칠 수는 없다'고.

하는 수 없이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주교로 임명되는 구나. 344년이면 기원 후 겨우 4세기인데,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600년 전인데, 우리나라에 아직 삼국시대도 오지 않았던 그때에 말이야. 그때도 돈과 성공만 아는 젊은이들이 넘친 모양인지. (그때도! 와우!) 이 성자는 지금 들어도 이미 진부한 말을 하는구나.


당신이 당신을 재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는 그 잣대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이 인간의 힘인가? 당신이 틀림없이 가난을 두려워하는 것 같아도 돈이 힘은 아니다. 당신의 노예 생활을 모면케 해 주는 자유도 힘은 아니다. 인간의 힘은 참된 표상과 함께 갖게 되는 주의 깊음과 생활방식과 관련된 올바름이다.


그래, 여기서 드디어 표상이라는 말이 나오는 구나. 참된 표상과  함께 갖게 되는 주의 깊음과 생활방식과 관련된 올바름 엄마는 이 구절에서 한참을 멈추었단다.

그륀 신부님이 요한 크리소스토모를 인용한다면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자기보다 200년쯤 먼저 살았던 에픽테스토스라는 사람의 말을 인용하며 다시 말한다.


사람들은 사건 때문에 혼란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사건에 대한 표상 때문에 혼란에 빠진다. 죽음이 끔찍한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표상이 끔직한 것이고 깨어진 꽃병 자체가 끔찍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신과 꽃병을 동일시하여 꽃병이 깨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온 마음으로 꽃병에 집착하는 것이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돈을 잃어버렸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돈은 꼭 필요하며 돈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상처를 입힌다.


글쎄, 그렇다고 이 위대한 사람들처럼, 엄마가 죽음도, 깨어진 꽃병도, 일어버린 돈도, 나를 상처 입힐 수 없다고 큰소리치며 말할 날이 올까마는, 한 줄기 아주 가느다랗게 희망 같은 것이 엄마를 비추었단다. 내용이 어떻든 사귀던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불행이라고 느끼는 것, 어찌 되었든 결혼을 이어 나가는 것이 행복에 대한 표상이고 이혼은 어쨌든 불행한 일일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 부자는 행복할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표상들 예쁘고 날신하면 어쨌든 행복할 거라는 그런 표상들.... 표상은, 잘못된 표상들은 이제껏 내가 이름을 아는 사물과 사건만큼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고3 시절을 생각해 봤어. 엄마는 그때 난생처음으로 힘든 시기를 맞았단다. 외할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 서셔서 하나밖에 없는 집이 차압을 당하고 우리는 그야말로 거리에 나 앉게(말하자면 말이다) 되었던 거지. 엄마의 마음을 다줄 수 있었던 친한 친구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 버리고, 엄마가 짝사랑하던 사람은 어느 날 정말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어. 나름대로 이보다 더 불행하긴 힘들다고 생각했지. 실제로 숨죽여서 많이 울었다. 제일 견디기 힘든 것은 우리 집안의 사정도 아니고 유학 간 친구도 아니고 짝사랑하던 사람의 부재도 아니었어. 그건 나의 이런 딱한 처지가 알려지게 되어서 반 아이들이 처음으로 엄마에게 가엾다는 눈치를 보내게 되었다는 거지. 지금은 꼭 그렇지 않다마는, 그때는 그것이 그렇게나 엄마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고, 참을 수 가 없었어.

일부러 분식집에서 돈을 내었고 일부러 명랑한 척 떠들었다. 일부러 말이야. 맘속으로는 엄청 죽고 싶었는데(지금 생각하면 죽고 싶기까지? 그런데 그랬단다) 그걸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이 그렇게나 힘든 일이었던 거야. 그때 생각했지. 죽고 싶다, 도망가 버리고 싶다. 그런데 말이야. 도망칠 곳이 없더구나.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 거야. 그러니까 온몸으로 고3을 맞을 수밖에.

그때 생각했어. 이왕 피할 수 없다면 끌려가지 말자고. 내가 끌고 가자, 휘둘리지 말고, 억지로 노예처럼 공부하지말고 내가 이 시간들의 주인이 되자고.

지금까지 생각해도 그때처럼 엄마가 열심히 살았던 적은 거의 없어. 다른 친구들은 고3이라고 빠졌지만 일요일마다 하루종일 가는 성당의 봉사활동도 빠지지 않았다. 책도 열심히 일었어. 친구들과 이야기도 많이 했고 새로운 친구와도 친해지게 되었지. 나중에 시간도 많아지고 집안 형편도 회복되었는데 가끔씩 그렇게 고3때 생각이 나는 거야. 그 이후로 한 번도 그렇게 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은 거지. 내가 생각하기 에 끔찍했던 불행들이 나를 분발시키고 나를 바른 자세로 살게  만들어 주었던 거야. 가끔 생각하곤 한단다. 나에게 있어 진정한 불행과 진정한 불운은 무엇일까?

에픽테토스는 노예였고 절름발이였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불구였다는 설도 있고 주인에게 맞아서 불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지, 아무튼 그는 끔찍한 어린 시절을 보냈음이 틀림이 없다. 노예로 다시 로마로 보내졌을 때 그는 이미 행방된 노예인 에파프로디토스에게 고용된다. 그런데 해방 노예로서 노예의 비애를 잘 알고 있어야 할 에파프로디토스는 에픽테토스를 학대한단다. 그래서 에픽테토스는 알게 되었다고 해.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계속 그것을 전가한다고 말이야. 학대받는 며느리였던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학대하고, 딸이라고 설움당하던 어머니가 딸을 구박하고, 배고픔을 참으며 고생고생 자수성가한 사업가가 저임금으로 아이들을 착취하고. 상처가 대물림되는 이유는 그것이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이야. 만일 엄마가 너희들에게 어떤 의미이든 상처를 주었다면 엄마 역시 엄마의 엄마에게 받은 이ㅠ되지 않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되겠지.

에픽테토스는 그래서 거기서 자신과 상대방의 상처를 들여다 보고 그것을 극본한 다음, 말하지. 단언한단다.


인간은 자유를 원할 때에메나 자유로워진다. 다른 사람은 우리가 자신을 해치고 상처낼 때에만 우리에게 상처입힐 수 있다. 불행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난 일 때문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 믿음 선입견.... 즉 표상이다.


에픽테토스와 요한 크리소스토모와 그륀 신부님은 각기 아릿아를 부르다가 이제 오페라의 끝 무렵에 와서 삼중창을 부르는 빅3처럼 말한다.


우리는 자신이 다른 사람에 관해서 만들어낸 생각에 일치하게끔 그 사람을 체험한다. 어느 한 사람을 열광적으로 찬탄한다면, 우리는 그가 저지른 가장 정신 나간 일도 황홀하게 바라보고, 유일하며 비범한 것으로 해석한다. 화난 안경이나 실망한 안경으로 바라보면, 우리는 그를 마음에 안 들고 불쾌하고 허약하며 아주 간사하고 부정직한 등등의 사람으로 체험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올바로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표상과 표상을 투사하는 배후를 묻고, 사물과 사람들을 하느님의 빛 안에서 상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우리는 참으로 자유롭게 사물과 사람들을 대할 수 있다. 그러면 사물들이 더 이상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


위녕, 무엇인가에 표상을 투사하는 너의 배후는 무엇이니? 네 속에 없는 것을 네가 남에게 줄 수는 없다. 네 속에 미움이 있다면 너는 남에게 미움을 줄 것이고, 네 속에 사랑이 이있다면 너는 남에게 사랑을 줄 것이다. 네 속에 상처가 있다면 너는 남에게 상처를 줄 것이고, 네 속에 비꼬임이 있다면 너는 남에게 비꼬임을 줄 것이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떤 의미든 너와 닮은 사람일 것이다. 자기 속에 있는 것을 알아보고 사랑하게 된 것일 테니까. 만일 네가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너와 어떤 의미이든 닮은 사람일 것이다. 네 속에 없는 것을 그에게서 알아볼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네가 남에게 사랑을 주든, 미움을 주든 , 어떤 마음을 주든 사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네 것이 된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된면  말 한마디 시선 하나가 두려워진다. 정말 두려워져.

위녕, 우리는 가끔 어처구니 없는 가시덤불에 걸리기도 하고, 모욕의 골짜기에 떨어지기도 하지. 너의 선의와는 아무 상관없이 너는 매를 맞을 수도 있고, 창피를 당할 수도 있어.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설사 그 일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일을 마음속으로 자리매김할 수는 있다는 거야. 그건 우리에게 달린 일이거든, 그리고 우리에게 달릴 수밖에 없는 일익도 해.

오늘 아침에 우연히 마주치게 된 모욕에 오늘 하루를 내줄 것인가, 생명이 약동하는 이 오월의 아름다움에 네 마음을 내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너 자신이지. 그것은 나쁘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너의 선택이라는 거야.

이 시간의 주인이 되어라. 네가 자신에게 선의와 긍지를 가지고 있다면 궁극적으로 너를 아프게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네 성적이 어떻든, 네 성격이 어떻든, 네 체중이 어떻든 너는 이 시간의 주인이고 우주에서 가중 귀한 사람이라는 생명이다.

위녕, 힘들다고 했지? 그래 힘들지. 누구나 그 시절을 다 힘들게 보냈어. 그런데 너의 힘듦은 진정 어디서 오니? 그래 이왕 힘든 거, 힘든 시간을 나를 분발시키고 나를 향상시키는 기회로 삼아 보면 어떨까? 미안하다. 그것이 힘든 걸 알면서도 이렇게 또 지당한 소리를 늘어놓게 되었구나, 그러나 위녕, 사실을 말하면 엄마는 네가 이 시기를 좀 잘못 넘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래도 돼. 너는 아직 젊고 또 많은 기회가 있을 거야. 이 한 해로 너의 모든 것을 판단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도 안되고...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엄마의 미안한 사랑을 보낸다.왠지 오늘은 수영장이 임시 휴일일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자, 오늘도 좋은 하루!

 

                                                                                                        - 98-111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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