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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빛의 제국> 중에서...

남자는 왼손에 들고 있던 종이컵을 찌그러뜨려 쓰레기통으로 던졌다. 그리고 다시 동사무소 안으로 돌아갔다. 모든 꿈과 희망을 잃어버리고 연료통 밑바닥에 가라앉은 몇 방울의 냉소를 연료 삼아 겨우 굴러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권태가 걸음걸음 바짓자락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의 공작원반, 흔히 130연락소라 부르는 그곳을 막 떠나온 기영은 그의 허무주의적 태도가 조금 놀라웠다. 이런 적지에서, 전두환 역도가 광주에서 수천의 인민들을 백주에 학살하는 땅에서 긴장도 적개심도 없이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러나 지금 와 돌이켜 보면 권태와 허무야말로 이 사회의 특질이었다. 권태는 무차별적으로 퍼져 있었다. 기영은 권태가 무엇인지는 알았으나 그것을 실제로 목도하기는 처음이었다. 그가 떠나온 사회에서 권태는 자본주의를 비판할 때에나 등장하는 추상적 개념이었다. 물론 그곳에도 권태는 있었다. 그러나 사회주의사회의 권태는 차라리 무류에 가까운 개념이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적절한 동기부여가 부족한 상태라 할 수 있었고, 따라서 어떤 자극만 주어진다면 금세 사라질 가볍고 허망한 것이었다. 그러나 처음 맞닥뜨린 자본주의적 권태에는 무게와 질량이 있었다. 그것은 삶을 짓누르고 질식시키는 유독 가스처럼 느껴졌다. 단순히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이 생겼다. 가끔 어떤 종류의 인간들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즉각적으로 아, 저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 라는 원초적인 경계심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경로로 포섭되었는지 모를 그 동사무소 직원이야말로 그런 사람이었다. 권태와 우울, 허무와 냉소, 후줄근한 옷차림과 매력 없는 용모가 어우러진, 잠시라도 함께 있기 불편한 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흘러 전혀 엉뚱한 자리에서 기영은 그와 다시 마주쳤다. 1999년 여름. 그는 붉은 망토를 두르고 청량리역에서 자그은 나무 궤짝 위에 올라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망토에는 검은 십자가가 수놓아져 있었는데 금박으로 경계를 삼았가 때문에 멀리서 보면 대학 응원단장의 복장처럼 보였다. 이마와 뺨으로 쉴새없이 땀이 흘러내렸고, 검고 푸른 파리들이 윙윙대며 그의 머리 주변을 맴돌았다. 기영은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는 너무 달라져 있었다. 예전보다 훨씬 말랐고 눈빛은 형형했다. 그는 우렁찬 목소리로 종말이 다가왔다고 외쳤다. 권태에 찌들어 있던 고정간첩은 어떻게 종말론자가 되었을까? 정말 되기는 된 것일까? 창녀와 경찰, 대학생과 노동자가 엇갈려 오가는 광장에 멈춰 서서 그는 광신도가 되어버린 고정간첩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기영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기영이 다가가자 무심한 얼굴로 종말론 안내책자를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요한계시록의 내용들이 발췌되어 조악하게 편집되어 있었다. 기영은 물었다.
"혹시 저 모르시겠습니까?"
남자는 기영을 쏘아보았다. 그러곤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로 몸을 돌렸다. 기영은 그의 팔을 살짝 붙잡았다. 그가 짜증스런 얼굴로 돌아보며 쏘아붙였다.
"왜? 내가 미친놈 같소?"
"그게 아니고 예전에 동부이촌동에서 뵌 적이 있습니다만."
남자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그랬다 한들 그게 무슨 송용이오? 다 소용없소. 그 책자를 보시오. 우리는 곧 돌려올림을 당하게 될 것이오! 그날이 멀지 않았소."
약간은 버림받은 기분이 되어 광장을 떠나려 핮 ㅏ남자는 잰걸음으로 기영을 따라붙었다.
"실은 당신이 누군지 알아."
기영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상관없어. 난 이 세계의 비밀을 알았으니까. 그 전까지는 사는게 그저 답답하고 그래, 막막하기만 했지. 그렇지만 성령을 영접하는 순간 난 알았어. 지금까지의 인생은 모두 헛거였다는 걸. 속았던 거지. 어리석었던 거야. 이 광장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낯짝들을 보라구. 행복한 얼굴이 있나? 다 벌버둥을 치며 꿀꿀이 돼지처럼 하루하루 사는 거야. 이 섹{가 왜 존재하는가를 모르기 때문이야. 모르니까 그냥 걸어가는 거야. 그걸 알면 더 이상 방활항 필요가 없어. 우리 주님이 가르쳐주신대로 걸어가면 돼."
그의 장광설은 끝날 기미가 없었다. 기영은 물었다.
"정말 올해가 가기 전에 사람들이 하늘로 들려올라가고, 그들이 몰던 차는 운전자를 잃은 채 고가도로 아래로 처박히고, 남은 자들은 차라리 죽기를 바라며 고통 속으로 울부짖게 된단 말입니가?"
"인간으로 태어난 걸 후회하게 될 거야/"
"경험해보지도 않고 그걸 어떻게 미리 알 수 있습니까?"
붉은 망토를 입은 남자는 자신의 귀를 가리켰다. 작고 못생긴 쪽박귀였다.
"너는 꼭 네 눈으로 보아야만 믿느냐? 이 귀로 똑똑히 들었다구. 주님께서 알러주셨어. 당신도 귀를 기울여봐. 귀를 기울이는 자에게만 우리 주님은 말씀하신다."
사내는 다시 상자로 올라가 목청을 가다듬었다. 기영은 광장을 떠났다. 물론 그해 말, 어디에서도 휴거는 일어나지 않았다. 세상은 멀쩡했다. 서른세 명의 시민들이 보신각 종을 치는 가운데 새해가 밝았다. 연도 표시방식이 네 자리로 바뀌었다고 비행기가 추락하지도 않았고 기차가 탈선하지도 않았다. 그는 전국 백예순여섯 개 교회에서 종말을 기원하는 집회가 열렸다는 뉴스를 보며 붉은 망토의 사내를 떠올렸다. 혁명과 종말, 양자에게 모두 배신당한 사내와 전국의 백예순여섯 개 교회에 모였던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종말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 이렇게 명확해졌는데 왜 아무도 자살하지 않을까? 종말이 이렇게 간단히 유예될 수 있는 것일까? 그는 잠시 궁금했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미 오래 전 일이었다. 광화문의 대형 빌딩마다 'Y2K 문제 완벽 대비' 같은 플래카드가 내걸리고 자가발전기와 생필품을 장만하여 집에 틀어박힌 이들이 전세계적으로 수백만에 달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두 잊어버렸다. 가동을 중단한 핵발전소도 없었고 인공위성의 오작동으로 핵미살이니 날아가지도 않았다. 물론 그 법석 덕분에 돈을 번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남한에서만 일조원이 투입됐다니까 미국이나 유럽에선 더했을 게 분명하다.
기본적으로 기영은 인간을 움직이는 두 가지 심리적 축을 두려움과 욕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세기말은 단연 두려움이 욕망을 압도했던 시기였다. 전쟁도, 전염병도, 폭동도 아닌, 난생처음 맞닥뜨린 기호에 대한 두려움. 2로 시작하는 네 자리의 숫자가 우리가 미처 짐작하지 못한 그 어떤 추상의 메커니즘을 통해 세계를 아수라장으로 만들리라는, 한편 과학적으로 들리지만 그 본질은 샤머니즘에 가까운 기이한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그게 기영에게는 전혀 와 닿지를 않았다. 남의 주민등록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복잡한 암호의 세계에서 살아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기독교적 세계관과 무관하게 자랐기 때문일까. 어쨌든 만약 재난과 파괴의 신이라는 게정말 있다면 그런 식으로 등장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온갖 난리법석을 떨며 요란스레 예정된 날짜에 나타나 그렇듯 맥 빠진 축제를 벌이지는 않을 것 같았다. 진정한 재난은 인간의 상상력 저 너머에 서, 맥베스 성을 공격하는 버넘의 숲처럼 진군해올 것이라 생각했다. 마치 이날 아침 홀연 그의 필립스 액정 모니터 화면으로 떠오른 바쇼의 하이쿠처럼.

 

- 79-84 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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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떤 산적이 단 일 주일만 마을을 다스린다 하자. 그놈들은 아마 하루도 안 돼 마을을 거덜내고 말 것이여. 그러나 일 년을 다스린다면 추수 때까지는 기다리겠고 사람들도 살려두겠지. 만약 십 년을 다스린다면 계획도 세울 거여. 다 굶어 죽으면 안 된까 밥과 옷도 주면서 다스리겠지. 삼십 년을 다스린다면 애를 낳느냐 안 낳느냐까지 신경을 쓸 거다. 삼십 년을 다스리는 산적, 고것이 바로 국가란 것이다."

 

- 16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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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세의 만화에서 따온 까치라는 가명을 쓰던 더벅머리 친구와 역시 주둥이라는 가명을 쓰는 친구, 그리고 망치라는 가명을 쓰던 기영, 이렇게 셋이 어느 여름날 인천 월미도로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소주와 바닷바람에 취해 바닷가 벤치에 축 늘어져 있던 까치가 문득 물었다.

"너희들은 혁명의 그날이 올 것 같냐?"

까치의 형은 까치보다 먼저 학생운동에 투신한 투철한 활동가였고 소수파인  PD의 핵심적 이론가 중 한 명이었는데 고등학생인 까치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대학에 들어가서 뭐 할 거냐, 부르주아의 개가 될 거냐, 그럴 바엔 차라리 공단에 바로 들어가서 노동운동을 해라. 날 봐라, 대학에 들어갔지만 곧 때려치우고 공장에서 활동하는데 너무 늦게 온 것이 늘 후회스럽다, 너는 일 년이라도 빨리 노동자가 되어 나와 같은 죄책감 없이 계급투쟁에 몸을 던지라고 종용했다고 한다. 책상도 없이 온 가족이 공유하는 단칸방에서 어렸을 때부터 어깨를 맞대가 함께 살아온 까치에게 형의 말은 무시하기 어려운 압박이었다. 까치의 형은 그의 교과서를 빼앗고 책상 대용으로 쓰던 사과궤짝도 갖다버렸다. 흥, 자기만 대학 가고 나는 가지 말라는 거냐. 대학을 다니다 그만두는 거하고 처음부터 안 가는 거하고 어떻게 같냐? 까치는 반발심으로 형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몰래, 그렇기에 더욱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 합격 했다. 오히려 평소 성적보다 더 월등한 점수를 받았지만 그 역시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자기 형과 마찬가지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고 강의실은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단지 형과는 다른 정파를 택해 NL이 되었고 곧 주체사상을 '사상원리'로 받아들였다.

주둥이가 까치에게 말했다.

"혁명의 그날이라.... 언젠가 오지 않겠냐?"

그러자 까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난 말이야,  실은 혁명의 그날이 올까봐 두려워."

"왜?"

".... 내가 좋아하는 만화방도 못 가고, 전자오락도 못 하고."

맨정이었다면 정색을 하고 따졌을 주둥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건 못 하겠지."

"미제를 축출하고 독재정권 타도하고 반제반봉건체제를 깨부순다 치자. 그래서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그런 세상이 온다 치자. 그 다음엔 뭘 하지? 너무 지루하지 않을까?"

기영은 묵묵히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아침 일곱시, 사이렌 소리와 함ㄲ ㅔ일어나 일제히 직장으로출근하고, 일요일은 당 중앙위원회의 결정이 있을 때만 쉬고, 매일 밤 함께 모여서 하루의 일과를 총화하는 세상을 너희는 모를 것이다. 물론 거기서도 삶의 ㅅ즐거움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공터에서 배드민턴도 치고 겨울에는 스케이트를 타고 친구들과 축구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골방에 틀어박혀 포르노를 보거나 이어폰으로 이글스를 듣거나 잔혹한 일본 만화를 볼 수는 없다.

주둥이가 옆에 앉아 있는 기영의 존재를 문득 의식하고 옆구리를 쿡 찔렀다.

"넌 어때?"

"글쎄, 아마 그런 건 못 하겠지. 까치 말대로 지루하긴 할 거야. 그렇지만 거기에도 나름의 재미가 있지 않을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기영은 월미도에서 나눈 그날의 대화들이 생각나곤 했다. 바닷바람에선 자반고등어 냄새가 풍겼다. 어깨를 겯고 노래를 부르며 비틀거리던 휴가 장병들, 입술을 부비고 서로의 속살을 더듬는 연인들 사이에서 그들 셋은 오지도 않을 혁명 이후를 걱정하고 있었다. 결국 어린 혁명가들이 남몰래 걱정하던 ㅎ'혁명의 그날'은 오지 않았다. 대신 국제통화기금이 진주해 1945년 미군정이 그랬던 것처럼 남한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기영이 처음 보았던 팔십년대의 남한은 지금으 ㅣ남한보다 차라리 당시의 북한과 더 비슷했다고 할 수 있었다. 직장들은 대부분 평생고용을 보장했고 대학생들은 취업 걱정 같은 것은 거의 하지 않았다. 수입 대리석으로 로비를 장식한 은행과 대기업은 영원불멸할 것 처럼 보였다. 자식은 부모를 봉양했고 부모는 자식에게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대통령은 체육관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선출되었으며 야당은 유명무실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경 너머의 세계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우리 식대로 살아가자'는 북한의 구호는 팔십년대의 남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었다. 자원을 배분함에 있어 시장원리보다는 국가의 결정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공무원의 부패가 자심했고, 뇌물과 협잡이 사방에서 판을 쳤다는 점도 북한과 비슷한 점이었다. 고등학생, 대학생 할 것 없이 학도호국단으로 편성되어 일 주일에 며칠은 교련복을 입고 등교하고 한 달에 한 번은 온 국민이 민방위 훈련을 하느라 법석을 떠는 것도 북한과 다르지 않았다. 공습에 대비한 등화관제 훈련으로 서울과 평양 모두 몇 달에 헌 번은 캄캄한 암흑세상으로 변해버리곤 했다.

그러나 지금의 남한은 팔십년대의 남한과 비슷한 점이 거의 없는, 사실상 완전히 새로운 나라였고, 당연히 북한과도 전혀 다른 종류의 나라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북한보다는 싱가포르나 프랑스에 가까울지도 몰랐다. 결혼한 부부들은 아이를 낳지 않고, 일 인당 국민소득은 이만 덜러에 육박하고, 은행과 대기업의 운명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고, 매년 수십만 명의 외국인이 결혼과 취업을 위해 입국하고, 영어권 국가에서 공부하려는 초등학생들이 날마다 인천공항을 떠난다. 부산에서는 러시아제 권총이 팔리고, 인터넷으로 섹스 파트너를 찾고, 휴대폰으로 동계올림픽의 생중계를 보고, 페덱스가  샌프란시스코 산 엑스터시를 운반하고, 온 국민의 반 이상이 적립식 펀드에 투자하는 사회였다. 최고 지도자는 풍자를 감당할 카리스마도 없는 한갓 비아냥의 대상일 뿐이었고, 노동자 계급을 대표한다는 정당이 해방 이후 최초로 의회에 진출했다. 만약 기영이 처음 남파되었던 1984년에 누군가 이십 년 후 남한이 이런 사회로 변모하리라 예상했다면 아마 미친놈이란 소리를 들었을 것이었다.

 

- 196-199 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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