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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24
    [이태경 비판] 이건희와 가신그룹만이 문제인가?(2)
    구르는돌
  2. 2009/06/01
    이명원, <말과 사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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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9/05/27
    그를 위한 통성기도를 강요하지 말라!(13)
    구르는돌
  4. 2009/05/18
    광주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하여 - 황석영 비판
    구르는돌

[이태경 비판] 이건희와 가신그룹만이 문제인가?

 

[이태경 비판] 이건희와 그의 가신그룹만이 문제인가?



김상봉 교수(이하 존칭 생략)의 제안 글 이후 이어진 기고들에서 쟁점은 주로 소비자운동으로서 ‘불매운동’과 궁극적 운동의 목표로서 ‘삼성해체’, 이 두 가지로 압축되는 듯 하다. 이 중 전자에 대해서는 나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듯 하니 굳이 말을 보탤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태경이 주되게 비판하고 있는 후자와 관련한 쟁점이다.(<삼성 해체가 답인가?>, <삼성 임직원 전체를 적으로 돌리지 말라">) 이태경은 삼성해체 주장에 대해 이건희와 그의 가신그룹만 문제 삼으면 될 것을 왜 삼성 전체의 문제로 부당하게 확대시키느냐고 불만을 표한다. 그는 ‘구좌파적 사고’라는 말까지 거론하며 김상봉의 제안을 평가절하하는데, 그러나 그의 ‘세련된’ 주장엔 함정이 너무 많아 보인다.



나쁜 기업은 해체되는게 맞다


나는 처음 김상봉의 삼성 불매운동 제안 글을 보고 그가 바람잡이 노릇을 자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 글을 통해 자신의 경향신문 칼럼이 게재되지 못한 것을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삼아 삼성문제를 전 사회적 논쟁의 공간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일단 ‘질렀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김상봉의 의중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나는 그가 ‘삼성해체’라는 말을 논쟁의 멍석을 깔기 위한 일종의 자극적 수사로 이해했다. 그의 글에서도 삼성이 해체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왜 그래야 하는지 근거는 있지만, 삼성을 어떻게 해체시키고 그래서 그 다음엔 어쩌자는 건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그러니 그의 제안에 대해 “하지만 정작 방법에 대한 문제는 적고, 삼성을 해묵은 비위 사실과 모순에 관한 철학자로서의 성찰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불평하는 이들도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 하다. (<진알시 회원, ‘삼성 불매운동’에 할 말 있다>, 오마이뉴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삼성해체’를 주장하는 김상봉의 글은 단지 논쟁의 출발점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정당하다. 우리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위법, 무법, 탈법, 초법적 행태들을 선보인 삼성, 어디로 보나 국내에서 가장 나쁜 기업 삼성은 해체되는 것이 맞다. 이것은 웬만한 기업들에게도 적용되어왔던 ‘관행’이고, 요새 유행하는대로 말하자면 ‘법치주의’에도 부합한다. 삼성이 아니라 다른 소규모 기업들이 이 정도였다면 이미 예전에 임직원들 줄줄이 소환되어 콩밥먹고, 기업은 다른 사람에게 조각조각 팔려져 나갔을 것이다.


이미 국가적 통제를 초월하여 국가위에 군림하게 된 삼성을 정상화시켜 국가와 사회의 통제아래 안착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해체시키는 것이 맞다. 그 이후 삼성의 지배구조를 어떻게 개편할 것이며, 사법권력을 비롯한 국가권력과의 관계를 어떻게 재구성 할지는 해체가 전제된 상황에서 논의되는 것이 옳다. 여기서 사람들이 우려하듯 ‘해체’를 ‘공중분해’라는 식으로 이해할 필요는 전혀 없다. 부당하게 독점된 권력과 자본은 해체되고 분산되어야 한다. 3%의 주식만을 소유하고도 회장 일가가 기업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상황은 이태경씨가 그리도 옹호한 ‘건강한 시장경제’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내 예상으로는 이태경씨가 말하는 ‘강하고 유능하고 정의로운 국가’가 등장한다면 ‘공정한 시장경제’와 ‘법치주의’에 입각해 삼성을 해체시킬 것 같다. ‘기업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 때문이 아니라.



임직원의 침묵도 범죄다


나아가 이태경씨는 삼성문제에 대한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 황당한 인식을 갖고 있다. 그는 “국가가 '이건희 일가 및 가신그룹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제 역할을 조금도 하고 있지 못한 현 시점에서 시민들이 '이건희 일가 및 가신그룹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는 소비자 운동(삼성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뿐”이라고 말한다. 왜 삼성의 문제가 이건희 일가와 가신그룹의 문제이며, 또 불매운동이 왜 그 문제만을 위한 해결책이 되어버렸는가? 김상봉도 첫 제안글에서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 부각되는 삼성의 문제는 이건희와 그 가신그룹의 비자금과 사법권력과의 유착, 부당한 지배구조의 문제로 드러나겠지만, 실질적인 문제는 오히려 이런 문제를 낳을 수 밖에 없었던 ‘삼성식 글로벌 스탠다드’에 있다. 이건희 회장의 황제식 경영이 ‘CEO리더십’으로 칭송받고, 삼성의 무노조 경영원칙은 온 나라에 ‘노조포비아’를 유포시켰다. 이는 노동자의 무권리 상태를 오히려 당연하게 여기게끔 만들었다. 지금까지 삼성반도체에서 24명이 백혈병이 발병하고, 13명이 사망해도 업무상 재해가 아닌 개인 질병이라고 매도해 이들을 두 번 죽이는 행태를 보였던 것이 삼성이었다. 이 백혈병 노동자의 문제를 고발하고 해결을 위해 일하던 한 노무사는 엉뚱하게도 경찰에 끌려갔다. 나의 누나도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삼성 전기 공장에 취직해 일했는데, 제품 검사 라인에서 주야를 번갈아 가며 일하다가 눈에 이상이 생겨 퇴사했다. 하지만 누나는 돈 잘 주는 회사를 왜 그만뒀냐는 아버지의 질책을 받아야 했다. 이렇게 우리의 삶과 노동의 한 가운데로 들어와 버린 문제들이 이건희 일가와 가신그룹의 문제만 해결하면 되는 정도의 일인가?


또한 그는 삼성 불매운동이 삼성 임직원 전체를 적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이쯤 되면 ‘미국의 이라크 침공 반대 운동이 미국 국민들의 반감을 살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는 말처럼 황당하게 들린다. 물론 우리는 삼성 임직원 전체를 매도해서도 안되고, 그럴 이유도 없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삼성의 임직원이 삼성의 부정한 행위에 대해 인식하고 이에 대해 정당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 일의 쉽고 어렵고를 떠나서, 인간으로서의 ‘의무’라는 사실이다. 나치 전범재판에 회부된 아이히만을 관찰하면서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것처럼 인간에게 사유는 '능력'이 아니라 '의무'이다. ‘직장’에선 유태인 학살을 자행했던 아이히만도 집에 돌아가면 자상한 아버지요, 성실한 남편이었다. 처음부터 나쁜놈은 없다. 다만 그가 사유하고 실천하지 않는 순간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될 뿐이다. 아마도 김용철은 삼성 임직원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 이하의 존재’이기를 거부한 사람, 인간의 의무를 다한 사람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또한 2006년에 삼성 사내 게시판에 삼성 직원들을 ‘끓는 물속에 서 잠자는 개구리’라고 비유하며 삼성식 경영을 비판하며 사직한 모 신입사원도 김용철 변호사에 비해 사회적 파장은 작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소중한 실천의 기록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래의 시를 이태경씨와 삼성의 임직원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정직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 김남주의 “어떤 관료” 중에서 -


 

 

(프레시안에 실림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324200059&section=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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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원, <말과 사람>

얼마 전에 YES24에서 벌인 이벤트 <사회과학 출판사 응원하기>에 당첨되었다.

사실 내가 응원한 책은 직접 읽어보지도 않은 책(김원의 <여공, 1970: 그녀들의 反역사>)인데, 재수도 좋게 YES24측에서 잘 속아주셔서 ㅋㅋㅋㅋ 이매진 출판사의 책을 공짜로 5권을 받게 되었다. (물론 이 책을 읽어보려고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 방대한 분량이어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서 집 근처 도서관에서 2번이나 빌려놨는데도 한번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반납했다.)

 

뭐 여튼간 그렇게 해서 받게 된 책은

1. 루이 알튀세르,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2. 우기동 외, <행복한 인문학>

3. 전희경, <오빠는 필요없다>

4. 이명원, <말과 사람>

5. 여러 만화가들(ㅋㅋ), <악! 법이라고?>

 

우선 1번 책이 가격이 2만원을 넘어가는 대작인지라, 거의 감계무량 수준... ㅋㅋㅋ 그러나 지금 당장 읽기에는 부담되고... 일단 4번부터 건드려 봤다.

 

 

이명원씨는 풍선인형이 맨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송하던 사람이라 대체 어떤 인물인가 했는데, 얼마전에 문화과학에서 <바리데기>에 관한 평론도 그렇고, 여러 글들이 참 매력적인 사람이라 생각해서 <말과 사람>에도 쉽게 손이 갔다.

 

물론 이명원씨의 개인저작이 아니라 이문열, 조정래, 백낙청, 김민수, 김상봉, 김종철 등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을 만나 인터뷰 한 내용을 담은 거라 이명원씨 개인의 생각뿐만 아니라 이들 지식인의 삶과 사상에 대해 더욱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튼 그래서, 여기다가는 인터뷰 내용 중 인상깊은 부분만 좀 담아본다.

아, 그러기 전에 이들 6명에 대한 개인적인 인상을 밝혀보자면....

 

1) 이문열 : 역시 구제불능인 것 같긴 하지만, 그의 불평대로 나도 그의 최근작들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으니, 인터뷰에서 주로 언급된 <호모 엑세쿠탄스>라는 책 부터 읽어보고 제대로 평가해 봐야 겠다. 그의 말대로 한 사람의 작가를 '이미지'로 작살내는것은 그리 좋지 않은 것 같으니....

 

2) 조정래 : 인터뷰 내용이 너무 싱거웠다. 신자유주의가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탈하는 행위라니... 별로 대단한 얘기도 아닌 것을 너무 심각하게 얘기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3) 백낙청 : '진보가 통일문제에 너무 지적으로 태만하다는 데에는 동의하나, 그의 방식으로 통일을 고민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변혁적 중도주의'라니... 이건 뭐 좌파 신자유주의도 아니고...

 

4) 김민수 : 이 사람은 잘 몰랐는데, 아주 매력적인 지식인이란 생각이 든다. 도시 디자인을 통해 근대 철학적 문제를 사유하는 그의 통찰력은 오랜만에 나의 뒷통수를 '뻑'하고 때려주셨다. 한국사회가 '이미지맹'에 빠졌다는데 한 표!!!

 

5) 김상봉 : 이 분은 최근 황석영, 노무현 관련 논의에서 다소 실망스러운 발언으로 좀 미워졌지만, 그래도 한국사회에서 보기드문 사유를 하고 있는 뛰어난 분이란 생각이다. (특히 그가 주축이 되어 작성된 진보신당 강령 전문(前文)은 후대에 기리기리 남을 명문이라 생각한다.) 특히 5.18을 '계급투쟁'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절대 공동체'를 지향한 씨알들의 투쟁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인상깊었는데, 숙고해볼 가치가 있는 주장이라 생각한다.

 

6) 김종철 : 가라타니 고진은 김종철이 문학비평계를 떠나면서 한국에서는 근대문학이 종언되었다고 말했다는데, 이와 관련된 발언들은 좀 신선했다. 갑자기 그의 <시적인간과 생태적 인간>이란 책을 찾아 읽어봐야 겠다는 욕구가 불쑥 불쑥!!! "근대 문학의 핵심은 야생의 정신 유무의 문제다"

 

총평을 하자면 1,2,3번은 탈락, 4,5,6번은 합격 ㅋㅋㅋㅋ

 

마지막으로 인상깊었던 부분을 옮겨 적는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36-138쪽 김민수의 발언 내용)

 

C.P.스노우가 1959년 <두 문화와 과학혁명>이라는 강연 제목에서 발의한 두 문화 논쟁은 인문학과 과학 사이의 심화된 단절 현상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시각예술과 인문학 사이에 그러한 단절이 존재하는 것인데, 사실은 시각예술과 인문학의 관계는 스노우의 두 문화 논쟁과 좀 다른 특수한 한국적 맥락이 있다고 본다. 오늘날 세상에 존재하는 시각예술은 어떤 의미에서 17세기 이래 근대 인문정신과 불가분의 관계에서 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세 유럽의 봉건적 길드에 속한 일개 장인에 불과했던 미술가들이 인문적 성찰을 통해 미술 아카데미를 성립시켰고, 바로 여기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정신 활동으로서 시각예술이 출현했던 것이다. 즉 시각예술은 인문적 성찰을 통해 예술의 지위를 획득했다. 따라서 시각예술은 인문학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한국의 경우는 이러한 역사적 전통이 일제에 의해 서구 학문이 이식되는 과정에서 오독된 것이고, 어떤 점에서는 과거 조선 시대보다 퇴화된 인식틀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옛날 조선 시대에 문인들은 예술을 겸비하고 있었다. 글을 쓰면서도 그림을 그렸던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오랫동안 유배 생활을 했던 고산 윤선도 선생은 <산중신곡>과 <고산유고>같은 문집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직접 거문고를 제작해 사용한 악기 디자이너이기도 했다. 거문고 제작과 사용법을 수록한 책 <회명정측>과 악보를 기록해놓은 <낭옹신보>를 남기기도 했다. 우리는 이러한 전통을 유실하고 마치 시각예술과 인문학이 두 문화인 것처럼 착각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서구 학문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전통마저 잃어버린 이상한 학문 세계에 갇혀 있는 꼴인 셈이다.

글을 못 읽는 것을 문맹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이미지를 읽지 못하는 것을 '이미지맹'이라 할 수 있다. 요즘 시대에는 이미지를 읽어내지 못하는 것을 문맹과 같은 차원에서 취급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문자에 익숙해 있기 대문에 이미지 언어에 대해서는 독해가 거의 안 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예를 들어 청계천 복원 사업에서도 잘 드러났다. 실제로 청계천에서 복원된 것은 별로 없다. 다만 한강물 펌프로 퍼올려 분수대처럼 물 흘려 내보내고 풀을 심어 '짝퉁' 녹지 공간을 조성한 것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마치 인형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조립되는 인형들처럼 청계천을 구경하러 가는 것은 일종의 도시적 강박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

 

현대 사회에서 이미지는 벗어날 수 없을 만큼 우리를 포섭하고 있다. 일상 속의 광고의 진실은 무엇인지에 대해 소비자들의 이미지 독해가 충분하지 못하니 과장, 사기성 광고에 속는 것이다. 그런 걸 보면 이미지 독해력이라는 차원에서 디자인이 중요하다. 단순히 환경미화 차원의 장식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읽어내는 이미지 독해력의 차원에서 일반인도 디장인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관리해 나갈 수 있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에게는 디자이너 교육만큼이나 소비자 교육도 중요하다.

 

 

 

 

(139-140쪽 김민수 발언 내용)

 

과학기술은 여전히 일상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신비화되고, 인문학은 위기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과 담을 쌓고 있고, 예술은 여전히 예술의 전당과 미술관에서나 하는 것으로 생각해 일상과 거리가 있고, 디자인은 세상과 너무나 가까운 공간, 제품, 이미지를 다루고 있는데도 우리들의 삶의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고 판타지만을 부추기고 있는 점이 그렇다.

 

 

 

 

(214-215쪽 김종철의 대답을 듣고 이명원이 정리한 내용)

 

요컨대 오늘날 지배적으로 돼가고 있는 경제성장 지상주의를 부정해야 한다는 것이 김종철의 근본적 문제의식이다. 그런데 녹색당조차 제도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주장을 내놓고 제기하기 힘들다. 대의제 민주주의 구조 아래서, 녹색당이 제도 정당의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결국 '여론'에 편승해야 할 텐데, 그랬을 때 경제성장 지상주의를 부정한다는 것은 결국 당의 존립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비관이 앞선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김종철의 현실에 대한 비관주의는 매우 뿌리깊은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김종철은 비관적 상황에 대한 어설픈 희망보다는, 비관적 상황 그 자체를 냉철하게 사유하는 시각이야말로 오늘의 시민들에게 오히려 더 필요한 가치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이러한 반문은 현재 성공회대 연구교수로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서경식 교수 역시 동일하게 제기한 바 있다. 서경식은 이른바 민주화 시기에 자신의 두 형인 서승과 서준식 형제가  한국의 감옥에 수감 중일 때, 이탈리아계 유대인인 프리모 레비의 흔적을 찾아 돌아다녔다고 한다.,

이 이탈리아 작가는 아우슈비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전쟁 뒤 이탈리아에 돌아와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작품 등을 통해서, 우리가 인간에게서 찾고 있는 통념적인 인간성이라는 것이 실상에 있어서는 얼마나 허구적이고 절망적인 가치인가를 되물었다. 프리모 레비는 증언하는 문학을 추구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어느 날 돌연 자살을 했다. 서경식 교수는 이 증언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절망에 전율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식인은 정작 뿌리 깊게 절망해야 할 때 그 절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헛된 낙관주의보다는 정직하고 근원적인 절망이 때로는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지식인들은 이 절망을 회피하려는 의식이 강한 것 같다.

어쩌면 희망을 만들어내려는 인간의 욕망보다, 절망을 좀 더 투명하게 투시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김종철의 절망은 그런 점에서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근본적 절망과 비관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절망과 비관을 통해서, 우리는 근대를 틀 지우고 있는 반인간주의와 반생명주의의 무서운 발전주의를 상대화할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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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위한 통성기도를 강요하지 말라!

그를 위한 통성기도를 강요하지 말라!
 
 
고등학교 2학년 때, 잠깐 교회를 다닌 적이 있었다. 그 때까지는 나도 순수한 마음이 조금은 남아있던 터라 그냥 봉사활동같은 걸 여러사람들과 함께 다니고 싶다는 마음에 짝궁이 다니던 교회에 따라갔다. 그런데, 한 두어번 갔을때쯤에 교회에 발길을 뚝 끊어버리게 만드는 일을 겪게되었다. 그것은 바로 통성기도 때문이었다. 목사의 지시에 따라 신도들이 다같이 일어나더니 옆사람과 손을 잡고 목놓아 울부짖으며 기도를 한다. 여러사람이 한꺼번에 울부짖으니 각자의 기도내용이 뭔지 알 수도 없다. 다들 ‘용서하소서’라는 말은 반복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다. 이런 ‘과격한’ 기도 행위가 낯설었던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남들 다 울면서 간절히 기도하는데 나만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으려니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나도 뭔가 하나님께 용서받아야 할 일을 생각해 내려고 애를 썼다. 결국 엄마, 아빠, 누나한테 잘못했던 것들을 생각해 내어 조금씩 목소리를 내 보았다. 아, 그런데 끝까지 눈물은 안 났다. 좀 억울하다 싶으면서도 그 많은 사람들이 함께한 ‘간절한 기도’에 함께하지 못한게 못내 찝찝했다. 그러나 그 일 이후로 한달도 안되어 교회에 발길을 끊었다. 있지도 않은 슬픔을 쥐어 짜낼만큼 내 감정의 상상력은 풍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8년 후인 2009년 오늘, 나는 또 다시 통성기도의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은 많은 시민들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다. 그 수도 봉하마을에만 60만, 전국적으로는 20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인터넷에서는 ‘지못미’ 바람이 불고 있다. 사회원로인사라는 사람들은 앞다투어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읊조린다. 친노인사라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와 정치적으로 대립각을 세워오던 (주로 진보진영) 인사들도 그의 죽음을 막지 못한데 대한 죄스러움을 드러낸다.
 
 
나는 왜 이 ‘통성기도’가 불편한가?
 
8년 전 내가 마주쳤던 그 교회의 통성기도 현장에서처럼, 지금의 한국사회는 나를 비롯해 그의 죽음에 울부짖지 않는 사람들을 참으로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인터넷에 오가는 글들을 보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참으로 매정할 뿐만 아니라, ‘당신의 생각이 한나라당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 보라“는 사상검증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런 네티즌들의 공격적인 태도보다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진보진영 인사들의 신앙고백이다. 통성기도를 할 때, 단상에 선 목사는 신도들의 죄의식을 북돋기 위해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울부짖는다. 있는 힘껏 목소리를 쥐어짜고 몸을 부들부들 떨기도 한다. 이를 통해 신도와 목사 모두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전능하심에 감동받고 성령의 충만함을 느낀다. 지금 진보진영 인사들이 보이고 있는 작태가 이런 공허한 믿음을 강요하는 목사들의 모습과 다를바가 뭔가?
 
무엇보다도 노무현 대통령 임기 당시 온갖 진보적 운동단체의 대표는 다 맡아왔던 오종렬씨의 언사는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서민후보’였다고 추켜세우고는(프레시안은 이 기사를 전하면서 처음엔 ‘민중후보’라는 표현을 썼다가 ‘서민후보’라는 표현으로 바꾼 이유가 뭔지 해명해 주길 바란다), ‘장렬히 산화’했다고 말한다. 그가 수도 없이 한 집회장 발언들을 생각해 볼 때, ‘장렬히 산화’했다는 표현은 노동·민중열사들의 분신에나 쓰는 표현이다. 그런데 그는 노무현도 ‘장렬히 산화’했다고 말한다. 즉 ‘노무현 열사’라는 것이다. 오종렬씨에게 묻는다. 그는 이 표현을 쓰는데 한 점의 망설임도 없었는가? 비정규직의 삶에 비관하여 목숨을 끊고도 노무현에게 ‘민주화된 시대에 낡은 투쟁방식을 고집한다’고 비난을 들어야 했던 이용석 열사의 얼굴을 대하고도 감히 ‘장렬히 산화’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노무현은 왜 자살을 선택했는가? 수사과정에서 의문점이 많이 남는 것이 사실이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는 권력형 비리에 대한 수사를 받다가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함이었든 자신을 믿었던 이들에 대한 미안함에서 였든지 간에 말이다. 자유, 평등, 정의, 평화 등 이 모든 숭고한 가치들은 그의 마지막 선택과는 어떠한 연관성도 없다. 그런 그에게 열사의 지위를 부여하려는 오종렬씨의 발언에 분노를 금치 못하는 것이 오직 나뿐일까?
 
또 김상봉 교수가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한 시대의 종말을 애도함>)을 보자. 그는 “그(노무현)가 권력이 청와대에서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했을 때, 나는 깊이 좌절하고 실망했으나, 생각하면 그것은 그 개인의 한계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한계였다. 자본이 절대 권력이 된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그 한계 앞에서 변절하거나, 세치 혀로 한계를 넘어갈 때, 그는 자기 방식으로 시대의 한계와 끊임없이 부딪혔고, 결국 좌절했다.” 라고 말한다. 이 무슨 궤변인가?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노무현의 당당한 자기고백이 ‘우리 시대’(대체 이 ‘우리’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386인가?)의 한계였다고 말하며 그에게 면죄부를 주고는 그의 삶은 치열했다는 찬사로 마무리짓는다. 그리고 글의 말미에서 “뜨겁게 사랑했으므로 내가 미워했던 마음의 벗이여, 잘 가오. 그대 영전에 오래 참았던 울음 우노니, 그대 나 대신 죽어, 내 마음에 영원히 살아 있으리.”라고 뜨거운 연정을 표시한다. 이로써 2003년부터 2007년까지 그 ‘시대’의 잔혹함을 못이겨 목숨을 버려야만 했던 수많은 열사들의 이야기는 노무현이 ‘시대의 한계와 끊임없이 부딪치는’ 동안 벌어진 한낱 에피소드로 전락하고 말았다. 또한 이 사랑고백에 담긴 무한한 ‘용서와 화해’의 정신은 침몰하는 듯 보였던 자유주의 개혁세력에게 힘찬 찬송가가 되어 입에서 입으로 불려질 것이다.
 
 
누가 노무현의 무덤 앞에 무고한 제물을 갖다 바치는가?
 
김상봉 교수의 말대로 그가 한 시대의 상징이었다면, 그 상징은 진작에 스러졌어야 했다. 그의 일생, 적어도 90년대 이후 ‘정치인 노무현’의 일생이 상징하는 바는 민주도, 정의도, 평등도 아닌 오히려 그 훈장을 밟고 일어서 기지개를 편 탐욕과 착취의 시대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2007년, 많은 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외부 충격을 통한 개방과 성장’이라는 미명하에 추진된 한미FTA에 반대하며 스러져간 어느 평범한 택시 노동자의 삶이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다.
 
그의 죽음 앞에, 그가 진작에 버렸던 민주, 정의, 평등이라는 가치를 제물로 갖다 바치지 말라. 그의 죽음 앞에, 이미 이 세상엔 없는 소중한 열사들의 정신을 제물로 갖다 바치지 말라.
 
나는 노무현이 투신했다는 뉴스를 접한 지난 토요일 오후, 시내의 작은 영화관에서 2006년 평택 대추리에서 미군기지 확장에 의해 삶의 터전을 빼앗긴 농민들의 삶을 기록한 ‘길’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다. 농민들은 절규했고 울부짖었다. 영화가 상영되는 한 시간 내내 나도 그들과 함께 하염없이 울부짖었다. 그 정직한 농민들에게 눈물을 선사한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러므로, 나에게 노무현을 위한 눈물을 강요하지 말라. 그를 위한 통성기도를 강요하지 말라. 나는 오로지 평택 대추리에서 스러져간 뭇생명들에 안타까워 하는 딱 그 만큼만 노무현이라는 소중한 생명의 (억울한) 스러짐을 애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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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하여 - 황석영 비판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광주를, 그리고 5.18을 생각할때마다 떠오르는 책의 제목이다. 수많은 동료시민들의 죽음에 대한 광주의 슬픔은 그 자체로 시대의 어둠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어둠 속에서도 끝없이 뜨거운 횃불을 피워올리며 어둠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지금 우리의 기억 한 가운데에 와 있다. 이제 30년이 다 되어가는 광주에 대해 이런 정도의 기억이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은 결국 그 당시 광주의 주체들이 이 사건을 단지 소외된 지방 도시의 우울증으로 전락시키지 않고 민중 전체의 아픔과 공감이 될 수 있도록 부단히 자신의 환부를 드러내는 모노드라마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같은 책도 소설가 황석영이라는 배우의 입을 빌어 발화되는 광주항쟁 생존자들의 자기 독백이었고, 우리는 그 연극의 비장함과 아픔의 크기 때문에라도 관객으로 끌려나올 수 밖에 없던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기꺼이 광주의 아픔을 전해주는 확성기 역할을 했던 황석영이 얼마 전 광주항쟁(아, 그런데 그는 이를 신군부의 언어인 '광주사태'라고 표현했다!!) 같은 일이 영국에도 있고 프랑스에도 있고 때가 되면 다 있는 일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이명박을 '중도'라고 치켜세우며 중앙아시아 순방에 동행했다는 점에 대한 불만은 여기서 굳이 하지 않으련다. 이 정도 발언은 어떠한 분석도 필요 없는 노망난 늙은이의 망언이라고 해두고 넘어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통과의례, 또는 성장통이라는 말인가? 어디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이고 무엇이 되기 위한 성장통인가? 그런데 나는 이렇게 황석영의 발언 심연의 의도를 따지기 이전에 짚고 넘어가고 싶은게 있다. 그래 좋다, 백번 양보해서 광주와 같은 아픔이 영국에도 있고 프랑스에도 있는 일이라고 치자. 두 나라 모두 엄연히 지배계급의 압제에 맞선 민중들의 혁명과 반란의 역사가 있는 나라이니만큼 그런일이 없을리 없겠지. 그러나 대륙의 양 끝에 자리잡고 있는 서로 다른 나라의 민중들의 경험이, 흙이 되어버린 망자들의 뼛가루와 그들의 관을 태극기로 씌워 보낼 수밖에 없었던 산자들의 고동치는 혈관 속에 오롯이 각인되어 있는 아픔의 기억을, 어떻게 그런 쉬운 한마디로 하향 평준화 시킬 수 있는가? 나는 광주의 아픔이 파리와 런던의 민중들이 겪었던 아픔보다 더 값지고 숭고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런 건 비교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거다. 오히려 다음의 사례가 말하는 것과 같이 황석영의 발언이 "광주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저그런 '지옥'의 하나였을 뿐"임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4년 초, 포위 상태에 놓여 있던 사라예보에서 일 년 이상 거주해 왔던 영국의 포토저널리즘 작가 폴 로우는 절반 이상이 파괴되어 버린 어느 미술관을 빌려 자신이 찍어 왔던 사진들을 전시했다. 그 당시까지도 파괴되어 가고 있던 자신들의 도시를 찍은 새로운 사진을 간절히 보고싶어 했던 사라예보 주민들은 소말리아의 사진들이 포함된 데에 적잖이 언짢아했다. 로우는 소말리아의 사진들을 포함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전문 사진작가이며, 그저 자신이 자랑스러워하는 두 개의 작품을 전시했을 따름이었던 것이다. 사라예보 주민들로서도 언짢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했다. 자신들이 겪은 고통을 타인들의 고통과 나란히 보여준다는 것은, 사라예보가 겪은 수난을 그저 [잔악행위의] 또 다른 사례일 뿐이라고 일축하면서, 양자의 고통을 비교하는 것(어느 지옥이 더 나쁜가?)이었다.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이후, 165-166pp)
 
광주의 아픔은, 광주의 기억은, 그것이 한반도 민중, 나아가 세계 민중이 함께 아파해야 하고 함께 공감해야 하는 그런 보편성의 사건으로 기록되어야 하는 것과 정확히 동시에, 다른 종류의 아픔으로 환원할 수 없는 한국사회의, 호남의 특수한 아픔과 고통으로 기록되어져야만 한다. 광주의 그것을 파리와 런던 등 다른 도시들의 상흔과 같은 테이블에 올려놓고, "이 봐, 광주도 별거 아니잖아. 다른 나라에서도 다 겪는 일인데 뭘. 그것도 프랑스, 영국 같은 선진국에서도 말이야. 그러니 우리가 그런 고통을 겪는 것 쯤은 선진국이 되기 위해 거쳐가야 할 성장통이라고 생각하면 돼."라고 말하는 것처럼 광주를 모욕하는 말이 또 있을까? 이런 발언은 또 광주의 상처를 한국이라는 '국가' 전체의 아픔으로 승화시키는 척 하면서 한국이 '정상적인'(??) 국가가 되는데 일조한 부품으로 전락시켜 버린다. 그것도 대륙 반대편 끝에 있는 다른 나라의 '부품'과 비교하면서!! "프랑스 혁명이 프랑스가 민주국가로 발돋움 하는데 기여한 것처럼 광주항쟁도....." 그렇게 정상국가화에 기여한 부품이 되어버린 광주항쟁에서는 이제 윤상원이라는 이름도, 김남주라는 이름도, 그리고 도청을 사수하며 신군부와 맞선던 수많은 용감한 시민들의 이름도 사라지고 없다.(그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고 단지 '수많은'이라는 형용사로 덮어버리고만 나의 무지함을 망자들께서 용서해 주시길 바란다.) 그것 스스로는 고통을 느낄 수도, 고통을 나눌 수도 없는, 그 누구의 이름도 아닌 '국가 유공자'만이 남게 된다.
 
왜 '국가 유공자'는 고통을 느낄수도 나눌수도 없는가? 그것은 옛날 일이기 때문이다. 옛날 일이고 그 가해자들의 주범은 이미 10년도 더 전에 법정에 서서 심판을 받았다. 가해자는 처벌 받았고, 피해자는 금전상의, 명예상의 보상도 받았다. 그러니 잊어라! 굳이 필요한 기억이 있다면(어떤 기억이 필요한지는 비로소 '정상상태'가 되신 국가께서 친히 선정하신다) 박물관으로 보내버려라! 이제부터 기억은 박물관이(즉 '국가'가) 압수한다! 그 박물관 입구에서는 친히 '정상국가'의 경찰들이 치안을 맡아주겠다. 그러므로 이 박물관이 허락하지 않은 기억을 다시 되살려 박물관의 벽을 허무는 행위는 '정상국가'의 '정당한' 공권력으로 철저히 응징하겠다! 이것이 오늘날의 '정상국가'가 광주를 화석화시키는 방식이다. 그들이 볼 때 광주의 고통을 느끼고 나눈다는 것은 피해망상증에 걸린 환자가 이를 전염병으로 발전시켜 SI처럼 퍼뜨리는 행동쯤으로 보일 것이다. 치사하게 돈도 다 받아 처먹고서!!!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김상봉 교수가 오늘(2009.05.15) 아침 라디오 인터뷰에서 황석영을 비판했던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김상봉 전남대 교수, “황석영의 자기망각, 굳이 변절로 표현하기도 꺼려져”>>, CBS 라디오) 그는 "다른 나라에도 시민이나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났을 때 발포가 있을 수 있지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그 당시의 신군부라는 건 합법적인 국가권력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도대체 이 한반도 땅에 김상봉 교수가 말하는 의미의 합법적인 국가권력이 세워진 사례가 있는가?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 권력이 노동자와 시민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순간, 권력의 합법성은 뿌리에서부터 부패되기 마련이다. 오히려 나는 그 국가권력이 정상적이었기 때문에 '발포'할 수 있었다고 본다. 광주의 유공자들에게 보상도 했고, 명예회복도 시켜준 21세기의 대한민국은 바로 '정상국가'이기 때문에 백주대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시민들을 짓밟는게 아닌가? 이건 정상국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어차피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선언은 만들어질때부터 공(空)문구였기 때문에 국가존립 여부를 여기에 기댈 필요는 없는 거고, 다만 인민주권을 끊임없이 기만하고 위장할 이데올로기만으로도 국가는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물론 그 정당성을 인정한 것은 극히 소수일 뿐이다. 그래서 1980년의 전두환, 2009년의 이명박 모두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해준 그 '소수'에게 보답을 해야 했다. 그것이 자본주의적 국가의 정상적 정치행위 아닌가?1)
 
나는 여기서 갑자기 평생 학교와 병원 등 근대 문명 시스템을 비판하는데 지적 노력을 쏟아냈던 이반 일리히의 주장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병원이 병을 만든다>>(박홍규 역, 미토, 2004. 원제는 >)에서 현대 의료 시스템에 대한 강렬한 비판을 가한다. "현대 의료의 종사자들은 인내하는 인간에게 있어서 고통이 환기하는 의문 부호를 인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을 한 건의 서류 속에 모을 수 있는 불평의 목록 속에 떨어뜨리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160쪽)  현대 의료의 의사는 환자의 고통을 공감하고 최소한 그것을 '동정'이라도 하려는 노력도 내팽겨친 채, 고통을 인위적인 분류 속에 밀어넣고 고통받는 주체와 '고통'을 끊임없이 분리시켜 '고통'을 '삭제'하려 한다. 그 결과 환자는 의사에게 점점 타율적인 존재가 되고, 스스로 고통을 인내하는 힘을 상실하게 된다.2)
 
일리히가 말하는 현대의료의 의사와 환자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광주항쟁의 생존자로 치환시켜 생각해 보자. 지난 몇 년간 국가폭력의 가해자였던 '국가'는 어느샌가 군복을 벗고 피해자들을 치료하는 의사의 까운을 입고 나타났다. 의사가 된 국가는 매년 5월 항쟁의 그날이 되면 고통의 환부를 제거하기 위한 집단 의료행위를 벌인다. 그러나 고통은 제거되기는 커녕 항쟁 이후의 지난 30년 역사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부호를 던진다. 민주주의에 대해, 온전한 해방에 대해 제기되는 의문 부호는 그러나, 끊임없이 국가에 의해 마침표가 될 것을 강요받는다. 그래서 2003년부터 병원장에 취임한 노무현 원장은 '비정규직'이라는 커져만 가는 의문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 몸에 불을 붙인 이용석 열사 등을 향해, "민주화된 시대에 낡은 투쟁방식을 고집한다"는 진찰결과를 내놓았다.(결국 피해망상에 빠졌다는 말 아닌가?) 그 진찰결과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생각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환자들은 결코 병원에 입원되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80년 광주는 단지 비극일 뿐이고 매우 우발적이며 비정상적인 사태일 뿐이라는 그들의 생각으로는 고통은 제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김상봉의 말마따나 국가와 민중의 항시적 전쟁상태였던 우리 근대사에서 광주는 필연이었다. 진정 고통의 종식을 바란다면 전쟁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에게 항복을 강요하고 치료받기를 요구할 게 아니라, 고통을 인내하면서도 전쟁상태에서 끝내 승리하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empowerment), 그리고 연대(solidarity)가 필요했다.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이와 같이 생존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연대해 줄 것을 호소한 실천적 문학의 상징이었다.
 
그랬던 황석영이 이번에 국립병원 의사로 취직했는가 보다. 그리고는 외친다.  "내 서류가방을 찾아보니까 너네가 겪고 있는 고통의 증상들은 다른 나라에서도 있던 사례더군. 그러니 뭐 특별한 것은 아니고, 우리 정신과에 와서 치료를 받도록 해."
 
 그래서 나는 감히 이렇게 주장한다. "광주를 그 스스로 말하게 하라! 광주의 기억은 국가의 것이 아니다. 그 아픈 기억을 낳은 환부를 간직하고 있는 이들, 그리고 이들과 소통하면서 상처를 치유하려고 연대하는 이들의 것이다. " 역사 속에 상처로 남은 우리의 모든 기억들은 이제 병원에서 퇴원하라. 그리고 아무도 광우병에 걸리지 않았지만 모두가 아팠던 2008년 5월 처럼, 모두가 광주의 상처를 안고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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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나 나의 이런 언급이 한편으로는 국가는 경제적, 계급적 관계의 반영일 뿐이라는 표출론적 국가관을 표출론적 국가관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하겠다. 하지만 여기서 굳이 그런 오해를 낳을 수도 있는 언급을 한 것은 내가 표출론적 국가관을 지지해서라기 보다는 김상봉 교수의 발언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쓴 비유적인 궁여지책일 뿐이었음을 밝힌다.
 
2) 이와 같은 일리히의 현대 의료 비판에 대한 분석이 이 글의 주제는 아니므로 그의 주장에 대한 옳고 그름 여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여기서는 단지 그의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 대한 비유만을 빌려오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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