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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이야기 5-노력 그리고 고생

"상구, 나랑 이야기 좀 하자.."

"응...그래.."

 

집에 내려가기 전 날 밤

주선생님이 저한테 한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어머니한테 괜히

여성과 남성이 평등해야 한다는 걸 설명하지 말고

혹은 강변하지도 말고

 

대신 어머니한테

"어머니도 같이 식사하세요~"라고 말하고

 

자연스럽게 남자와 여자가 같이 식사하는 분위기부터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싫다고 할 걸?"

"그러면..인제 어머니도 그럴 위치 되셨으니까

같이 식사하시자고 하자..응?"

 

전 주선생님 말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상구는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렇게 친절하게 잘 하면서

부모님한테는 꼭 설명하고, 설득할려고 하고 그러더라..

그래 가지고 맨날 싸우고, 분위기 안 좋아지고 그러잖아.

이번에는 그냥 편하고 자연스럽게 ..알았지?"

 

사실 지난 설에는

시골에 내려갔다가 외가에 들렀었는데

 

저녁 식사를 마치고

제가 부엌으로 당당하게 진격을 했었습니다.

설거지라도 할 참이었습니다.

 

"남자도 부엌일 같이 해야죠..언제까지 숙모들만 일하시게요..."

 

잠시 파문이 일었습니다.

거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외숙모들 중 한 분은 좋아서 박수치시고

또 한분은 저를 말렸습니다.

 

외삼촌 중 한 분은 "야...니가 그러면 우리는 어쩌라고.."라고 하셨고

두 분은 그냥 황당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봤습니다.

 

외가에서도 저는 큰 외손자입니다.

제가 뭘 하면 사람들이 아예 무시하진 않습니다.

 

모두가 어떻게 해야 하나 몰라할 때

어머니께서 한마디로 정리하셨습니다.

 

"상구 너 저리 안 가~~?!!!"

 

이번 추석에는 확실히

좀 더 자연스러운 방법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계획이 다 틀어졌습니다.

차례상 준비는 몇 달 전에 결혼한 제 남동생이랑 제수씨가

이미 다 끝내놓은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저는 미루한테 매달려 있느라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추석날 아침,

제사가 끝나고 식사 시간이 됐습니다.

 

항상 그런 것처럼

남자들은 다 모여서 밥을 먹고

어머니는 남자들 밥 다 먹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선생님, 제수씨 등은 배가 고파서 울상입니다.

 

전,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약속했던 대로 해야지...'

 

"상구 넌 왜 밥 안 먹고 부엌에서 얼쩡 거려..?"

"네? 아..저기 저 숟가락이 없어가지고..

근데, 어머니.."

"왜?"

 

그 말 한번 하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운지

심호흡을 한번 크게 했습니다.

그리고 힘을 잔뜩 줘서 얘기했습니다.

 

"어머니도 밥 같이 먹어요.."

 

어머니는 더 힘을 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 빨리 가서 밥 먹어.."

"네..."

 

결국 이번 추석에는 부엌일도 따로 못하고

어머니를 남자들 밥 먹을 때 상으로 오시게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제가 미루를 하도 열심히 보니까

뭔가 감을 잡은 듯 주선생님한테 이렇게 얘기했답니다.

 

"우리 아들 그만 좀 부려먹어라..."

 

주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그런 일 다 같이 할 줄 알고 결혼한거예요.."

역시 씩씩한 주선생님입니다.

 

추석날 밤

하루 내내 시달린데다

오랜만에 4시간쯤 걸려서 외할아버지 산소에 갔다 오느라고

완전히 녹초가 됐습니다.

 

햇볕이 비쳐서 후끈해진 차안에서

미루를 안고 왔다갔다 하는데 정말 너무 힘들었습니다.

 

저는 온 몸이 쑤셨고

주선생님은 거의 절망적인 편두통이 왔습니다.

 

추석이 끝나고 인터넷에 보니까

'성균관 유림도 명절엔 남자가 부엌일을 도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는 기사가 떴습니다.

 

그 기사를 출력해서 다음 설에 가져갈까 생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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