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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미루

미루가 완벽한 자세로 앉긴 앉지만

몸이 흔들흔들한게 불안합니다.

 

아침에도

기어가다 앉고, 다시 기어가기를 반복했는데

앉아 있으면 온 신경이 미루한테 갑니다.

 

근데 한번도 뒤로 넘어가진 않습니다.

 

"으앗~!"

 

미루가 넘어가는 모습에

주선생님이 비명을 지릅니다.

미루는 순간적으로 몸을 틀어

왼쪽으로 떨어집니다. 머리는 괜찮습니다.

 

"휴...놀랬다..."

 

"그러게...깜짝 놀랐다.."

 

또 다시 뒤로 넘어가려고 합니다.

이번엔 힘을 잔뜩 줘서 허리를 튕기더니

몸을 앞으로 숙입니다.

 

주선생님

미루를 아주 믿음직스러워 합니다.

 

"우리 미루는 역시

뭐든지 다 준비가 된 다음에 하는 것 같애..."

 

"그런가?"

 

"뒤집을 때도 그랬고, 지금 앉는 것도

뒤로 안 넘어질 정도로 근육이랑 감각이 발달한 다음에 앉은 거라고 볼 수 있잖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맞장구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그러게 말야, 뭐든지 충분히 분위기가 익은 다음에 하는 건

나를 닮은 것 같애..."

 

"......"

 

소리가 안 나는 웃음은

싸늘한 법입니다.

 

"그렇지, 설거지도 그릇이 쌓여서 충분히 익은 다음에 하고

재활용도 쓰레기가 충분히 쌓여서 분위기가 익어야 버리잖아..그런 거 말이지?"

 

부모님한테

미루 앉은 사진을 보냈더니

전화를 하셨습니다.

 

"야, 혹시 모르니까 잘 보고 있어..뒤로 넘어가면 큰 일 난다.."

 

"네..."

 

적막한 오후가 됐습니다.

 

주선생님은 사무실에 있고

더 이상 전화는 오지 않습니다.

 

미루는 여전히

단단하게 앉아 있습니다.

 

역시 믿음직스럽습니다.

 

오후 내내

 

두 번

뒤로 떨어졌습니다.

 

소리를 들으니까

제대로 떨어졌다 싶습니다.

 

내내 옆에 있다가

잠깐 딴 짓 할 때 마다 그랬습니다. 

 

많이 후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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