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책은 대체로 쉽게 읽히는 편이다.
더구나 남의 나라 글을 옮겨 놓은 것도 아니고,
아주 먼 세상의 얘기도 아니니까....
그런데도 21권이나 되는 무게는 그리 만만치 않다.
소설의 훌륭함을 따질만한 처지도 못되지만,
읽기에도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걸
써 냈다는 것만으로도 감히 존경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겨우 겨우 토지를 다 읽어 가고 있다.
단순한 사랑이라고 했지만,
토지에 나오는 인물들 가운데, 산오리가 가장 맘에 드는 사람은 송관수다.
백정은 아니지만, 장인이 백정이라고 해서 신분상 차별을 안팎으로 받으면서도
해야 할 일을 잘 해내는, 단순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만주로 떠나면서 딸을 친구이며, 동지인 강쇠에게 맡기는 장면은 또 눈물나게 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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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은 어두컴컴했다. 질화로에는 불이 빨갛게 피어 있었다. 돗자리를 깐 방바닥은 뜨근뜨근했다.
"우찌 된 일이고?"
강쇠의 사팔뜨기 눈이 크게 벌어졌다.
"살림을 동개부릴라꼬."
"살림을 동개부리다니 그기이무신 소리고?"
"말을 하자 카믄 길어질 긴께 차차 하고 오늘 내가 여길 왜 왔는고 하니.. 앞뒤 짤라부리고 영선이를 맽기러 왔다.
맡을라나, 안맡을라나."
"강쇠는 순간 숨을 죽인 듯 관수를 쳐다본다.
"와 말을 못하노!"
"맡는 것도 나름 아니가, 더 확실하게 얘기해 봐라!"
"짐작이 갈 긴데 피하기가?"
"피하는 놈이 확실하게 얘기하라 하더나?"
"자부 삼으라 그말이아."
"조오치."
관수의 굳어졌던 얼굴이 확 풀렸다.
"너무 홍감해서 걱정이제."
"이자 됐다, 자식 걱정은 덜었다."
관수는 쓸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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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봐도 눈물이 날 거 같으네...ㅎㅎ
단순하기 보다는 어찌 보니까 낭만적인.....거 같기도 하다.
전혀 무엇인지도 모르고 애비를 따라왔던 딸의 입장이야 오죽하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