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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 늘려 집값 잡는다'는 위험천만한 발상

 

 

 

투기 늘려 집값 잡는다'는 위험천만한 발상


[경제뉴스 톺아읽기] '이명박표' 반값 아파트, 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 부를 수도

[미디어오늘 이정환 기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지분형 아파트'라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핵심은 아파트에 들어가 살 사람과 투자 만 하는 사람이 각각 절반씩 돈을 내서 아파트를 사고 나중에 이 아파트를 팔게 되면 시세차익을 나누는 방식이다.

정확히는 들어가 살 사람이 51%를 내고 투자만 하는 사람이 49%를 내는 구조다. 51%의 지분을 갖는 사람은 이 아파트를 내다 팔 권리가 있고 49%를 갖는 사람은 이 아파트가 팔릴 때 매도 금액을 나눠 갖게 된다. 이를테면 2억 원짜리 아파트를 1억200만 원과 9800만 원씩 내고 샀는데 이 아파트가 1년 뒤에 3억 원에 팔리면 1억5300만 원과 1억4700만 원씩 나눠 갖게 된다는 이야기다.

만약 5천만 원 밖에 없는 신혼부부가 2억 원짜리 아파트를 사려면 1억5천만 원을 대출 받고 연 800만 원 정도 이자를 물어야 하지만 이 지분형 반값 아파트의 경우 절반은 재무적 투자자가 내고 그 나머지 가운데 절반을 국민주택기금 등에서 대출 받으면 5천만 원만 있어도 2억 원짜리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지분 투자자는 아파트가 팔려야 이익을 실현하게 되지만 그 전에라도 시세를 감안해 지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 있다. 인수위는 이 지분을 자산유동화증권으로 만들어 시세에 따라 사고팔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부동산을 금융시장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이야기다. 여러 지역에 투자한 자산유동화증권을 묶어 이를 여러 투자자가 나눠서 투자하면 특정 지역에 투자하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만약 가능하기만 하다면 이 '이명박표' 반값 아파트는 시중 유동자금을 끌어들여 실 수요자들의 부담을 줄이는 효과도 있고 장기적으로 파생상품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효과도 있다.

   
  ▲ 한국경제 1월18일 1면.  
 
   
  ▲ 한겨레 1월18일 5면.  
 
언뜻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이명박표 반값 아파트는 애초에 부동산이 투자 대상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명박표 반값 아파트의 치명적인 약점은 금리 이상의 투자 수익률이 보장되지 않으면 투자자들을 끌어 모을 수 없다는데 있다. 아파트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이 전제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공급을 늘려 집값을 잡겠다는 선거 공약은 결국 허울 좋은 구호에 그치는 것일까.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킬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환금성 문제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은 주식과 달리 거래량이 많지 않은데다 변동성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가격이 충분히 올랐을 때 더 오를 거라고 생각하는 다른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이익을 실현할 수 없다. 분양가를 시세보다 낮게 잡아 시세차익을 충분히 보장해주는 방법도 있지만 이 경우 투기 거래를 확산시킬 우려가 있다.

실 거주자의 경우 10년 전매제한 조건이 붙지만 지분 투자자들은 언제라도 지분을 내다팔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아파트 가격이 충분히 올랐을 때 이를 넘겨받을 다른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거래가 급감하고 시장이 얼어붙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가뜩이나 부동산 가격이 정점에 온 것 아니냐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확산돼 있는 상황이다. 자칫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가 재연되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18일 주요 언론이 이 소식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일부 보수·경제지들이 비교적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투자자의 입장을 고려, 수익률 확보가 어려울 것을 우려한 반면, 한겨레와 세계일보, 서울신문, 한국일보 등은 부동산 가격 폭등을 우려하는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서울신문은 "지분 투자자에게 양도세와 재산세 등 관련 세금을 어떻게 부과할 것인지도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도 "투자는 조금만 과열되면 투기로 변질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명박표 반값 아파트는 투기적 수요와 부동산 가격 거품을 제도화할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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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기자, black@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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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이매진] 게임이론과 합리성

 

 

진중권의 이매진] 게임이론과 합리성

글 : 진중권 (문화평론가) | 2007.06.29
 

<뷰티풀 마인드>의 존 내시의 예로 보는 실재와 망상의 경계

“형태(shape)를 하나 꼽아봐요.” “예?” “동물이든 뭐든, 아무거나.” “좋아요. 우산이오.” 잠시 눈으로 밤하늘의 별밭을 더듬더니, 내시는 알리샤의 등 뒤로 돌아가 그녀의 손을 잡아 밤하늘의 한쪽 구석으로 이끈다. 그의 손이 이끄는 대로 시선을 따라 옮기니, 별밭의 혼돈 속에 문득 우산 모양의 별자리가 나타난다. 경외에 가득 눈으로 파트너를 바라보는 알리샤. 부드러운 미소를 띠면서 말한다. “다시 해봐요.” “좋아요. 이번엔 뭐죠?” “문어.”

별자리 짜기

신이 인간을 서서 걷게 한 것이 별을 보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던가? 인간이 처음으로 밤하늘을 쳐다보았을 때, 그저 무수하게 널린 별들의 혼돈(chaos)만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마음속의 선으로 별들 사이를 이어가며 땅에 사는 것들의 이미지를 그려냈다. 하늘 전체가 남김없이 별자리들로 가득 찼을 때, 밤하늘은 드디어 질서 잡힌 조화(cosmos)로 변모했고, 혼돈 속을 항해하던 원시인들의 시선은 비로소 하늘의 바다에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과학적 이성은 원래 패턴을 발견하는 미학적 상상력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 ‘법칙의 발견’이란 곧 혼돈스런 자연현상에서 반복되는 질서를 찾아내는 게 아닌가. 과학에서 가설의 수립은 어떤가? 그 역시 관찰된 요소들 사이에 인과(因果)의 선을 이어 미지의 영역의 지도를 그려내는 상상력의 문제다. 위대한 과학적 발견은 종종 논리적 추론이 아니라 영감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과학에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즉 정신도 위대하려면 동시에 아름다워야 한다.

“뭐해요?” 환상 속의 소녀가 내시에게 묻는다. 마침 그는 잡지를 펼쳐들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암호통신을 찾던 중. “반복되는 패턴(patterned recurrences)을 골라내고 있단다.” 코드 브레이커의 작업 역시 문자열의 혼돈에서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패턴을 찾아내는 것. 그렇게 찾아낸 패턴은 객관적 실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한갓 주관적 구성에 불과할 수도 있다. 가령 내시가 밤하늘에서 찾아낸 우산이 설마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겠는가?

게임이론과 내시 균형

프린스턴대학원 시절의 논문으로 45년 뒤 그는 노벨 경제학상을 받는다. 영화는 그가 논문의 발상에 도달하는 계기를 이렇게 묘사한다. 바에 금발의 미녀가 들어온다. 누군가 애덤 스미스를 원용하며 그녀를 놓고 경쟁을 하자고 제안하자, 내시가 반박한다. 모두가 달려들면 서로 길을 막다가 아무도 그녀를 잡을 수 없고, 딱지맞고 뒤늦게 그녀의 친구들에게 가봤자 꿩 대신 닭이 되려는 여자는 없을 터. 그러니 차라리 미녀를 포기하고 그녀의 친구들에게 가는 게 전체를 위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말하기를, 최선의 결과는 집단 속의 개개인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 행동하는 데에서 온다, 맞지?” “그게 완전한 답 아니야?” “아니지. 불완전해. 왜냐하면 최선의 결과는 집단 속의 개개인이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또한 집단을 위해 행동할 때에 나오기 때문이야.”

언뜻 들으면 이기심을 버리고 전체를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내시가 반박하는 것은 ‘개인이 각자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는 가정이 아니다. 그 역시 각 행위 주체가 전체를 고려하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이익을 고려하여 행동할 거라는 애덤 스미스의 가정을 공유한다. 단지 그 이기적 선택들이 전체에게 늘 최선의 결과를 낳는다는 생각만 거부하고 있을 뿐이다. ‘수인의 딜레마’가 보여주듯이, ‘내시 균형’이 언제나 사회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상태는 아니다.

비협조적 게임

오늘날 ‘내시 균형’에 대해서는 여러 반론이 제기된다. 예를 들어 A와 B가 있다고 하자. 10달러의 돈이 있고, 그 돈을 분배할 권리를 A가 쥐고 있다. 두 사람이 합의에 실패하면 아무도 돈을 못 받는다. 그럼 A는 B에게 얼마를 줄까? A는 가능한 한 많이 가지려 할 테고, B로서는 1달러라도 받는 게 아예 안 받는 것보다는 이익이다. 따라서 게임은 B가 1달러를 주겠다는 A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균형에 도달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럴까?

실험경제학에 따르면, 이 게임에 참가한 이들은 대부분 상대에게 5달러를 제안했다고 한다. 또 2달러 이하를 주겠다는 제안에는 대다수 실험자들이 차라리 돈을 포기함으로써 상대 역시 돈을 못 받게 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수학적으로 증명이 끝난 문제인데, 왜 실제로는 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걸까? 그것은 내시 균형의 바탕을 이루는 ‘이기적 인간’이라는 전제 자체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인간의 행동은 이기심만이 아니라 이타심에서 나오기도 한다는 얘기다.

이미 1950년대에 비슷한 실험이 있었다. 당시 내시는 냉전기에 미소의 전략을 연구하던 기관(RAND)에 있었다. 그의 이론의 적합성을 시험하기 위해 연구원 비서들을 상대로 실험을 했단다. 내시의 이론에 따르면 비서들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 서로 모함하는 것으로 균형에 도달해야 한다. 하지만 실험에 참가한 비서들은 거꾸로 공동의 이익을 위해 서로 협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황당한 것은 이 실험의 결과를 보고 그들이 내린 결론. ‘비서들이 직무에 적합하지 못하다.’

냉전, 그리고 망상적 분열증

그럼에도 내시의 이론이 받아들여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중국의 공산화, 한국전쟁의 발발, 소련의 핵무기 개발. 두 체제간의 대립은 세계를 극도의 불안에 빠뜨렸고, “국무부에 200여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매카시의 선동은 미국사회 전체를 불신으로 몰아넣었다. 만인이 만인을 의심해야 하는 시대. 불신의 시대에는 역시 개개인이 생존을 위해 차라리 상대를 의심하는 길을 택하리라 가정하는 내시의 ‘비협조적’(non-cooperative) 게임이론이 적합하다.

생존의 공포에서 비롯한 이 집단 히스테리는 1959년 그의 의식으로 들어가 망상적 분열증(paranoid schizophrenic)의 원천이 된다. “우리 대학 MIT의 스탭들, 이후에는 보스턴의 모든 이들이 나에게 이상하게 행동했다. 도처에 비밀 공산당원들의 존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자서전은 “민망함을 피하기 위해” 망상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있으나, 영화에서는 극좌파 조직이 미국에 휴대용 핵무기를 반입하기 위해 잡지를 통해 암호문을 주고받는 것으로 설정된다.

흥미로운 것은 그 망상이 패턴을 찾아내는 뛰어난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점. 그의 말대로 “수학과 광기 사이에 직접적 연관이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위대한 수학자들이 광기의 특성, 망상증과 분열증으로 고통받는다는 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수학엔 상상력이 필요하나 거기엔 부작용이 따른다. 그리하여 노벨상 후보의 상태를 살피러 온 이에게 내시는 말한다. “정신의 다이어트처럼 특정한 욕망을 자제하고 있지요. 가령 패턴에 대한 욕망, 상상하고 꿈꾸는 욕망 말이지요.”

정신의 다이어트

학자로 살기 위해 그는 패턴의 욕망을 자제해야 했다. 하지만 이 정신의 다이어트에도 부작용은 따르는 모양이다. 자서전에서 그는 이렇게 항변한다. 문제는 “사유의 합리성이 한 사람이 우주와 맺는 관계에 대한 생각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로아스터교를 안 믿는 이들은 차라투스트라가 그저 순진한 사람들을 꼬드겨 불을 숭배하게 만든 미친 놈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광기’가 없었다면, 그는 아마 그냥 살다가 잊혀진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로 그쳤을 것이다.”

상상력이 풍부하던 시대에는 유사성이 곧 동일성의 증거가 됐다. 그런 시대의 마지막 인물은 아마도 돈키호테일 것이다. 그의 눈에 풍차는 거인으로, 양떼는 군대로, 여관집 딸은 귀부인으로 보였다. 상상력은 이렇게 존재하지 않는 것까지 마치 실재하는 양 표상으로 삼곤 한다. 이 때문에 합리주의의 아버지 데카르트는 이성적 존재가 되려면 되도록 상상력을 멀리하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그의 믿음과 달리, 합리주의의 결정체인 수학에서조차 상상력은 결정적 역할을 한다.

실재와 망상의 경계는 생각보다 뚜렷하지 않다. 가령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은 실재인가, 가상인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사실인가, 허구인가? 심지어 우리가 실재라 굳게 믿는 물리학이론조차 실은 모형에 불과하다. 그리고 모형을 구성하는 것 역시 상상력의 소관이 아닌가. 이른바 ‘실재’란 혹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기로 합의한 허구에 불과한 게 아닐까? 그리하여 내시처럼 묻고 싶어진다. “무엇이 이성인지 누가 규정하지?”

글 : 진중권 (문화평론가)
 
 
뷰티풀 마인드
 
[진중권의 이매진] 게임이론과 합리성 No. 608 2007-06-29
[정훈이 만화] <뷰티플 마인드> 수학의 진정한 의미? No. 364 2002-08-06
<뷰티풀 마인드>에 얽힌 `진실` 논란 No. 345 2002-03-25
아저씨, <뷰티풀 마인드> 보고 천재 수학자들을 떠올리다 No. 343 2002-03-14
러셀 크로 미 영화배우조합 남우주연상   2002-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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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날 듣기 좋은 재즈음악

눈 내리는 날 듣기 좋은 재즈음악
어쿠스틱 알케미(Acoustic Alchemy)의 눈발 같은 기타 소리
송병석 (mangkwang)
 
 

멈춤으로써 고정되는 기억, 내 청춘의 한 때...를 회상하며

 

  
▲ [Positive Thingking] 앨범 재킷
ⓒ Universal
재즈
박정대 시인의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라는 낭만적인 제목의 시집이 있다. 박정대 시인의 시집에는 음악을 향한 사랑과 슬픔이 여섯 개의 기타줄처럼 팽팽하게 감겨 있다.

 

 

박정대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 일본의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첫 대목이 떠오른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은 박정대 시인의 이런 진술과 맞닿아 있다.

 

“나는 강원도의 힘을 느낀다, 강원도의 힘은 저 눈발로부터 온다, 지상의 모든 것들을 순식간에 뒤덮어버리는 저 무지하고 순수한 反動으로부터, 그리고 그 눈발을 먹고 자라나는 겨울 나무들로부터, 나는 내가 강원도 출신이어서 지금 이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 박정대 시인의 <그리고 그후에 기타의 눈물이 시작되네> 가운데

 

박정대 시인의 <그리고 그후에 기타의 눈물이 시작되네>는 참으로 긴 시다. 유고 출신의 영화감독 에밀 쿠스트리차의 <집시의 시간>이 등장하고, 역시 영화감독인 폴란드 출신의 키에슬로프스키의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이 나온다.

 

더불어 우리나라 음악인 전인권, 한국계 러시아 3세인 카자흐스탄 출신의 로커 빅토르 최도 나온다. 그러나 박정대 시인이 연주하는 ‘기타’는 스페인의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를 변주하며, 로르카의 시를 자기 기타로 ‘연주’한다.

 

시집 제목의 공간적 배경이 되고 있는 격렬비열도는 서해안에 위치한 무인도인데, 그곳의 무엇이 박정대 시인을 ‘격렬’하게 했는지 나는 알 도리가 없다. 다만 그 ‘격렬’함이 내게는 음악(기타)에 대한 강렬한 흡입으로 다가왔다. 또 한 가지, 강렬한 인상은 눈이다.

 

눈은 낭만의 상징이다.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눈은 여행지에서의 눈발이고, 박정대 시인의 눈은 출생지에서의 눈이다. 눈은 동경이다. 어린 시절 혹은 사랑이 머물던 지점에서의 눈은 추억의 결정체이다. 추억은 머물러 있을 때 아름답다. 과거의 추억이 현재의 이름으로 부상되는 순간 눈은 녹아버린다. 눈 내린 <설국>의 설경이 바로 오늘로 다가올 때 거리는 질척일 뿐이다.

 

눈의 낭만을 추억의 이름으로 자리하게 하는 재즈 밴드 '어쿠스틱 알케미'(Acoustic Alchemy)가 있다. 기타 두 대로 눈의 산발을 흩뿌려내는 이들의 연주는 밴드 이름처럼 ‘Alchemy’연금술을 직조(織造)하며 겨울의 서정을 함축한다.

 

스틸 기타를 연주하는 닉 웹(Nick Webb)과 나일론 기타의 그레고리 카마이클(Gregory Carmichael)로 결성된 어쿠스틱 알케미는 기타 음이 주조를 이루는 밴드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인 닉 웹이 1998년 2월 5일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앨범은 닉 웹의 유작 앨범이다. 닉 웹이 세상을 떠나기 얼마 직전 발표하면서 앨범 제목을 이라니….

 

죽기 직전에 앨범을 발표하면서 이라고 한 건, 음악인 조용필이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라고 노래한 <그 겨울의 찻집>처럼 현실의 아이러니일까, 아니면 소설가 카뮈가 <이방인>에서 뫼르소를 통해 표현했던 부조리일까. 세상을 떠난 닉 웹의 심정을 들을 수 없지만, 기타 연주를 듣자면 겨울의 정점에 어쿠스틱 알케미의 연주는 서 있다.

 

  
'Jester With a Lute'
ⓒ 프란츠 할츠
그림일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이러니와 부조리가 판을 친다. 조용필의 노래를 듣고도 울지 못하고, 카뮈의 소설을 읽고서도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한다. 예술은 아이러니와 부조리한 세상에서 나를 위로해주는 오브제이다. 사람이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가지고 있는 희망들, 그 희망은 긍정적 사고 위에서 발생한다. 어쿠스틱 알케미의 앨범 제목처럼

 

이 앨범은 내게 시에서의 말줄임표보다 여운이 더 오래 남는 앨범이다. 흡사 눈발이 날릴 때, 바로 그 순간의 추억이요, 비가 호수에 떨어지면서 후드득하는 소리가 그려진다. 특히 는 경포대 호수의 빗방울이 뚝방을 밀어내며 내 추억을 적신다. 눈 내리는 순간은 낭만의 정점이지만 비는 죽음의 이미지가 있다고 보인다. 

 

죽음은 빗소리와 함께 사람의 기억을 가장 강렬하게 잡아당기는 요소가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인인 김광석, 유재하… 이들은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서 기억의 저장고에 오래 보관되었다. 이들은 더 이상 부패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존(라이브)이 아니라서 씁쓸하고, 현존의 부재에서 듣는 음악은 오랜 시간 동안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를 들을 때 정호승 시인의 아름다운 시어와 눈발이 흩날리고 ,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를 들을 땐 내 가슴에 비가 들이친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송강호의 대사처럼 "광석이형은 왜 그렇게 빨리 가고", 유재하 역시 왜 그리도 일찍 갔는지…. 흩날리는 눈발과 비는 내 가슴 속에 낭만과 추억이라는 과거시제를 불러들인다. 

 

소설가 구효서의 <추억되는 것의 아름다움 혹은 슬픔>이란 소설을 통해 추억은 아름다움과 슬픔이 현(弦) 위에 걸려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 아름다움이란 슬픔의 가슴을 통해 얼굴에 나타나는 것, 그래서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는 내면에 들어 있고, 죽음으로써 기억은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문다. 

 

어쿠스틱 알케미의 음악을 들었을 때, 제목처럼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은 네덜란드의 화가 프란츠 할츠(Frans Hals)의 라는 그림이 어울리고, 세상을 떠난 김광석이나 유재하, 닉 웹의 이미지는 벤 샨(Bean Shahn)의 <울고 있는 가수>에 가깝다. 두 화가 모두 기타를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프란츠 할츠의 그림은 유머러스하고, 벤 샨은 제목처럼 기타를 연주하는 가수가 울고 있다.

 

  
'울고 있는 가수'
ⓒ 벤 샨
그림

 

나는 벤 샨의 그림에 더 끌린다. 어쿠스틱 알케미의 기타연주는 눈과 겨울 서정을 담고 있는데, 긍정적 사고(Positive Thinkng)라고 앨범 제목을 정하면서 자신(닉 웹)은 세상을 떠나다니…. 이 앨범은 내 청춘의 한때, 겨울의 눈발 속에서 헤매던 젊음의 낭만과 환멸을 담고 있다. 시와 재즈를 들으며 이십대를 보냈던 그 겨울, 이제 나는 박정대 시인의 <겨울 浮石寺>를 읊조리며 이십대를 보낸다.

 

아무래도 나는 가야겠다
오늘은 문득 바람이 불어
앵두나무 푸른 잎들이 손사래치는
적막한 내 저녁의 창가에서
이 언덕과 저 구릉을 지나
한 소설 음악처럼 너에게로 가야겠다

 

밥짓는 마을의 저녁 연기 속으로
개 짖는 소리는 컹, 컹, 컹
돛배처럼 올라오는데
겨울바람이 밀고 가는
한 척의 저녁

 

끝끝내 밀려가지 않는
얼어붙은 폭포 속
절벽의 악기 하나
내 사랑의 의지가 돋을새김해 놓은

겨울 浮石寺
그 단단한 生의
악기 속으로
아무래도 나는
음악처럼 가야겠다

 

- 박정대 시인의 <겨울 浮石寺>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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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ross the Universe(OST

http://abbeyrd.best.vwh.net/news/111newearlybeatletracks.html

 

Across the Uni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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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ross the Universe [SOUNDTRACK]
Original Soundtrack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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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Girl - Jim Sturgess
2. Hold Me Tight - Evan Rachel Wood
3. All My Loving - Jim Sturgess
4. I Want to Hold Your Hand - T.V. Carpio
5.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 - Joe Anderson, Jim Sturgess
6. It Won't Be Long - Evan Rachel Wood
7. I've Just Seen a Face - Jim Sturgess
8. Let It Be - Timothy T. Mitchum, Carol Woods
9. Come Together - Joe Cocker
10. If I Fell - Evan Rachel Wood
11. Dear Prudence - T.V. Carpio, Dana Fuchs Band, Jim Sturgess, Evan Rachel Wood
12. Flying [Instrumental] - Secret Machines
13. Blue Jay Way - Secret Machines
 
1. I Am the Walrus - Bono, Secret Machines
2. Being for the Benefit of Mr. Kite - Eddie Izzard
3. Because - Joe Anderson, T.V. Carpio, Dana Fuchs Band, Martin Luther "M.L." McCoy, Jim Sturgess, Evan Rachel Wood
4. Something - Jim Sturgess
5. Oh! Darling - Dana Fuchs Band, Martin Luther "M.L." McCoy
6. Strawberry Fields Forever - Joe Anderson, Jim Sturgess
7. Revolution - Jim Sturgess
8.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 Martin Luther "M.L." McCoy
9. Across the Universe - Jim Sturgess
10. Helter Skelter - Dana Fuchs Band
11. Happiness Is a Warm Gun - Joe Anderson, , Selma Hayek
12. Blackbird - Evan Rachel Wood
13. Hey Jude - Joe Anderson
14. Don't Let Me Down - Dana Fuchs Band
15. All You Need Is Love - Dana Fuchs Band, Jim Sturgess
16.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 Bono

 

 

I Am Sam - Music from and Inspired by the Motion Pi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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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Sam - Music from and Inspired by the Motion Picture [SOUNDTRACK]
Various Artists - Soundtracks - 2001
     
 
  3.8 out of 5 stars 219 customer reviews (219 customer reviews)| More about this produ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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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wo of Us - Aimee Mann, Michael Penn
2. Blackbird - Sarah McLachlan
3. Across the Universe - Rufus Wainwright
4. I'm Looking Through You - The Wallflowers
5. You've Got to Hide Your Love Away - Eddie Vedder
6. Strawberry Fields Forever - Ben Harper
7. Mother Nature's Son - Sheryl Crow
8. Golden Slumbers - Ben Folds
9. I'm Only Sleeping - The Vines
10. Don't Let Me Down - Stereophonics
11.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 The Black Crowes
12. Julia - Chocolate Genius
13. We Can Work It Out - Heather Nova
14. Help! - Howie Day
15. Nowhere Man - Paul Westerberg
16. Revolution - Grandaddy
17. Let It Be - Nick Cave
18.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 Aimee Mann
19. Two of Us - Liam Finn, Neil Finn
20. Here Comes the Sun - Nick Cave

plus 21. If I Needed Someone - Oscar Tic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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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직은 부작용 속출, 임금피크제 희비 쌍곡선

 

 

 

관리직은 부작용 속출, 임금피크제 희비 쌍곡선


[동아일보]



감정원 “상하관계 역전… 업무 삐걱” 3년만에 폐지

제조업 노사 “정년 연장-숙련 기술인력 활용” 만족

“연공서열식 조직 문화가 관리직 적용에 걸림돌”

한국감정원이 2004년 말 도입한 ‘임금피크제’를 지난해 11월 폐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국내 100여 개 기업 중 이 제도를 폐지한 곳은 한국감정원이 처음이다.

13일 윤태홍 한국감정원 경영관리실장은 “지난해까지 임금피크제에 편입된 30여 명에게는 기존 제도를 적용하지만 올해부터는 이 제도를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감정원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만 59세로 1년 연장했던 정년을 다시 58세로 낮췄다. 또 정년 이전 3년간 단계적으로 낮아지던 임금피크제 대상자의 연봉도 원상 복구하기로 했다. 감정원이 임금피크제를 폐지한 이유는 조직 내 상하관계의 역전, 단순 업무에 배치된 임금피크제 대상자들의 불만 등의 문제점이 예상보다 컸기 때문이다.

○ “품위 지킬수 있는 업무 달라”

한국감정원은 2004년 말 만 56세가 되는 직원들에게 첫해는 기존 임금의 80%, 2년차에 70%, 3년차에 50%를 주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이후 이 제도가 적용된 20여 명의 실무자는 기존 업무를 그대로 하게 했지만 부장, 지점장급 관리직 7, 8명에게는 현장에서 부동산 시세 등을 조사하는 단순 업무를 맡겼다. 이 때문에 해당 관리직들은 “간부로서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관리 업무를 달라”며 반발했다.

감정원 관계자는 “전체 직원이 800여 명밖에 안되는 조직에서 얼마 전까지 상급자였던 사람이 후배 밑에서 단순 업무를 맡게 되자 회사 분위기가 상당히 침체됐고 관리직들이 맡은 일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연령에 따른 상하관계를 중시하는 한국적 조직 분위기를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었던 셈이다. 결국 지난해 말 감정원은 노사 합의를 거쳐 3년 만에 임금피크제를 폐지했다.

김정한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에서 임금피크제 폐지 사례가 보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 관리직, 마땅한 업무 없어

2003년 신용보증기금을 시작으로 금융권에서는 우리 하나 국민 등 시중은행이, 공기업 중에서는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주택금융공사 등 공기업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이들 기업 중 상당수는 임금피크제 대상자들에게 채권추심, 채권 사후관리 등의 업무를 맡기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인사 적체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제도를 도입했지만 맡길 일이 마땅치 않아 지역본부 감사직을 신설했다”며 “하지만 큰 성과는 기대하지도, 평가하지도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달 초 임금피크제가 시행된 한 시중은행의 모 지점장은 아예 출근하지 않고 있다.

이 지점장은 “지역본부에서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주어진 업무가 없어 그냥 집에 있다”며 “배치가 돼도 지점에서 고객을 안내하거나 지역본부에서 책상 하나 두고 영업을 하게 될 거라 솔직히 별 의욕이 없다”고 말했다.

○ 기능직 성과 높아

‘관리직 잉여 인력 처리’ 제도로 활용되는 금융 분야와 달리 임금피크제 이후에도 같은 일을 하게 되는 제조업 기능직 쪽에서는 제도가 근로자들의 호응을 얻으며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2003년 말 제조업체 중 최초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대한전선은 관리직과 연구개발(R&D) 분야를 제외한 기능직(생산직)에만 만 50세부터 적용하고 있다.

대한전선 관계자는 “회사로서는 숙련 근로자들을 적은 부담으로 계속 보유할 수 있고 나이 든 근로자들도 더 오랜 기간 일할 수 있어 반응이 좋다”면서 “임금피크제의 성과가 높게 나타나 재작년에 정년을 만 59세로 연장했다”고 말했다.

2004년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대우조선해양의 관계자는 “임금상승률이 낮아지는 대신 임금은 떨어지지 않아 근로의욕 하락을 방지할 수 있어 효과가 좋다”며 “적용 후에도 성과 평가는 엄격하게 해 급여에 차등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LG전자, LG마이크론, LS전선 등도 지난해부터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김기태 대한상공회의소 노사인력팀장은 “우리보다 먼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일본에서는 고령화사회의 진전과 맞물려 기능직에 도입된 임금피크제가 더 큰 효과를 보고 있다”면서 “금융권 등 다른 분야에서 임금피크제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정년에 가까운 인력이 보람을 느끼며 일할 수 있는 직무의 개발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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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노마드? 현실엔 ‘나쁜’ 노마드도 있다

착한’ 노마드? 현실엔 ‘나쁜’ 노마드도 있다
노마디즘 어떻게 볼 것인가
 
 
한겨레 강성만 기자
 
 
» 왼쪽부터 보아, 삼성 본관, 배용준. 김진석 교수는 여러 노마드들이 현실 세계에서 뒤섞일 수밖에 없다면서, 문화산업과 결합한 ‘한류’나 한국인이 자랑스럽게 동일시하는 ‘삼성’도 유목적 세계화의 흐름 속에 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우리시대 지식논쟁 /

 

① 한쪽만 보는 개념은 불완전

 

지난 두 주 홍윤기 동국대 교수와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는 노마디즘(유목주의)에 대해 엇갈린 견해를 드러냈다. 홍윤기 동국대 교수는 노마디즘(유목주의) 기획을 ‘개념’과 ‘실행’이 태부족한 실험기획이라고 비판했다. 노마드들이 규정력을 발휘하는 ‘개념’으로 총집되지 못하고 다감각의 ‘이미지’로 교착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노마드라는 용어 안에 심지어 ‘시장 노마드’나 ‘디지털 노마드’와 같은 수많은 노마드들이 다양한 의미를 갖고 경쟁·대립·공존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반면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는 ‘시장 노마드’ 등 여러 유사 노마드들은 자본이 게바라로 돈을 버는 것처럼 ‘노마드의 상품화 전략’의 결과물일 뿐이라고 했다. 유목민은 주류적 척도에서 벗어난 새로운 삶의 방식, 사유방식을 창안하는 자들이기에, 마음이 언제나 돈이나 자기 가족에 매여 있는 경우 유목민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또 노마디즘은 “좀더 나은 삶에 대한 꿈”이며 “그런 꿈을 통해 현실을 바꾸려는 의지의 표현”이란 점에서 혁명의 정치학과 상통한다고 강조했다.

김진석 교수는 이 글에서 이 교수의 논리를 ‘착한 노마드 이야기’일 뿐이라고 공박했다. 여러 노마드들이 현실 세계에서 뒤섞일 수밖에 없음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들뢰즈·가타리도 실천의 복잡하고 구체적인 맥락과 조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도 했다. 그는 또 유목민도 ‘전쟁기계’의 복합체로 존재할 경우 폭력적 흐름을 탈 수밖에 없다면서 노마드는 그 자체로 착하며 언제나 권력과 폭력에서 자유롭다는 믿음도 공상이라고 밝혔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한국 사회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세계화 움직임에 덜컥 사로잡혔다. 한국을 유사 이래 최고 속도, 최대 규모로 세계로 나아가게 한 계기는 ‘디지털 노마디즘’. 그러나 세계로 나아갈수록 동시에 어떤 때보다도 유목주의적 기업과 제국들의 침입에 내맡겨질 수밖에 없었던 것도 당연했다. 이 와중에서 세계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점점 새로운 폭력으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결국 한 생태주의자는 “유목주의가 국가주의보다 더 파국적인 시장제국주의를 부추기고 조장하는 또 하나의 침략과 파괴주의”라고 고발하고 나섰다. 고발의 목소리는 비록 거칠고 일방적이었지만,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쓴소리였다.




그런데 노마디즘을 이론적으로 칭송하는 사람들은 그 비판을 쉽게 무시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들뢰즈와 가타리의 책을 제대로 읽지 않는다면서, 이들이 ‘유목민’(nomad)·이주민·정착민을 개념적으로 엄격하게 구분했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그러나 이론적 권위를 앞세운 이런 주장이야말로 왜곡에 가까운 오독을 낳는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엄격한 개념적 구별의 필요성을 강조한 건 맞다. 그러나 그들은 냉정했다. “그들의 개념적 구별이 실제로 그들이 뒤섞이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거꾸로 오히려 그들의 혼합을 필연적으로 만든다”(들뢰즈와 가타리 공저 〈천의 고원〉)고 인정했다.

이들 인용을 빌리지 않더라도, 노마디즘과 관계된 어떤 더러운 현실적 문제들로부터도 자유롭다는 이론은 자승자박에 이를 뿐이다. 현실의 더러움으로부터 뚝 떨어진 개념은 현실을 설명할 힘도 가지지 못할 터이니! 그런데 이진경씨는 개념적 구분에만 매달리면서 ‘노마디즘’이 들뢰즈와 가타리의 숙성한 사상이고 나쁜 자본과 전혀 상관이 없으며 따라서 노마디즘이 침략적 성격을 띠는 것도 자신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마음 편하게 말한다.

 

개념의 구분·순수성 내세우며
현실적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주장
되레 유목주의에 대한 오독 부르고
실천적으로도 공허하게 만들어

 

 

그는 노마드뿐 아니라 ‘매끈한 공간’과 ‘외부성’이 그 자체로 순수하고 초월적인 혁명적 개념인 것처럼 말하지만, 들뢰즈와 가타리는 여기서도 그것들을 개념적으로 구별하는 일에만 머물지는 않았다. “매끈한 공간과 외부성의 형식은 결코 그 자체로 불가항력적인 혁명적 사명을 띠고 있는 것은 아니며, 거꾸로 어떠한 상호 작용의 장에 흡수되고 어떠한 구체적인 조건하에서 실행되고 성립되는가에 따라 극히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천의 고원〉) 세상에 대해 말할 때는 순수한 개념이나 의미만이 아니라, 실천의 복잡하고 구체적인 맥락과 조건을 아는 게 중요하다. 이들은 노마드에 창조성을 부여했지만, 그것이 언제나 착한 정의를 목적으로 삼는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노마드를 말할 때에도 오히려 ‘전쟁기계’의 배치를 끝없이 강조했다.(“이 기계의 본질에 비추어보자면 비밀을 쥐고 있는 것은 유목민들이 아니다”)

‘노마디즘’은 현실 속의 나쁜 노마디즘과는 아무 관계도 책임도 없으며, 나쁜 자본주의 국가의 착한 외부에만 존재한다는 말은 ‘착한 노마드 이야기’일 뿐이다. 그건 들뢰즈와 가타리의 텍스트를 지적으로 배반할 뿐 아니라, 실천적으로도 공허하기 십상이다.

‘전쟁기계’는 비록 전쟁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는 않지만, 언제든지 싸움을 무릅쓰는 어떤 것이며, 때로는 다시 국가제도에 포획되기도 하지만 다시 도망가며 싸우는 어떤 것이다. 그만큼 ‘노마디즘’처럼 지적·문화적으로 유행하기에는 복잡하고 까칠까칠한 주제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진경씨는 ‘전쟁기계’가 부차적이고 적절하지도 않은 표현인 것처럼 말하는데, 그들 책을 경전처럼 주석하면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는 단순화시키다니! ‘노마디즘’이 유행할 수 있었던 것은 ‘전쟁기계’의 무서운 까칠까칠함이 은폐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노마드가 항상 국가 바깥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국가에 대한 투쟁을 말하지만, 그에게는 두 갈래 길밖에 없다. 곧 국가와 싸우는 일과 국가 바깥의 평화로운 공간으로 가는 길. 그러나 유목적 전쟁기계는 국가에 대해서만 싸우는, 국가 바깥의 ‘착한 노마드’는 아니다. 그것은 국가 안에서 국가 말씀에 아랑곳하지 않고 떠도는 가지가지 패거리들이기도 하며, 국가 바깥에서 국가를 비웃는 다국적이고 세계적인 조직과 폭력이기도 하다. “국가 자체도 항상 바깥과 관계를 맺어 왔으며 따라서 이 관계를 빼고서는 국가를 생각할 수 없다. 국가를 규정하는 것은 ‘전부’ 아니면 ‘무’의 법칙, 곧 국가적인 사회냐 아니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냐가 아니라, 내부와 외부의 법칙이다.”(〈천의 고원〉)

 

노마드는 ‘착하다’는 믿음은 공상
한쪽 면만 극단적으로 과장 말고
전쟁기계의 폭력성 함께 인정할 때
문명 분석의 좋은 도구될 수도

 

국가를 위해 싸운 안중근은 바보일까? 또 기독교와 이슬람(그리고 유교)도 국가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유목적 전쟁기계로 작동할 수 있다. 노마드는 그 자체로 착하며 언제나 권력과 폭력에서 자유롭다는 믿음은 공상적이다. 그것은 전쟁기계와 떨어질 수 없고, “전쟁기계와 국가는 서로 독립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상호 작용의 장 속에서 공존하고 경합한다.”(〈천의 고원〉)

더욱이 이진경씨는 ‘노마디즘’을 거의 부드러운 문화상품으로 만든 후에 결론으로 ‘코뮨주의’를 주장하는데, 이것도 ‘전쟁기계’를 간과하거나 은폐한다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폭력의 수많은 흐름에서 전적으로 벗어난 우정과 사랑의 공동체를 목적으로 삼는 일은 노마드를 줄 세우는 일이 아닐까. 우애에 근거한 공동체는 훌륭한 가치지만, 그걸 노마드의 선험적 목적으로 상정할 필요는 없다. ‘전쟁기계’에게 전쟁이 목적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노마디즘은 침략주의라고 공격한 생태주의자가 내세운 것도 모든 국가로부터(심지어 복지국가도) 완전히 벗어난 공동체주의이다.

그런데 거꾸로 노마디즘은 어떤 오류도 없다고 말하는 이진경씨도 비슷한 코뮨주의에 빠진다. 단순한 우연? 아니다. 이들은 노마드의 한쪽 면만 극단적으로 과장했기 때문이다. 소수자인 이주 노동자들은 우정으로 받아들여져야 하지만, 그들도 더 좋은 일을 찾아 고향을 떠난 유목민이다. 더 나아가 이곳에서 정착을 원하는 사람도 많으니, 유목민/이주민/정착민의 배치는 단순하지 않은 것이다. ‘전쟁기계’의 복합체로 존재하는 한, 유목민들은 ‘따로 또 같이’ 폭력적 흐름을 타고 있으며, 그 폭력적 끈의 긴장 속에서 문명적으로 생존한다.

문화산업과 결합한 ‘한류’도 거센 유목적 세계화의 흐름 속에 있고, 한국인이 자랑스럽게 동일시하는 ‘삼성’도 그렇다. 들뢰즈와 가타리도 “새로운 노마디즘은 세계적 규모의 전쟁기계를 수반하는데, 그 조직은 국가장치를 넘어서며, 다국적이고 에너지와 관계된 군산복합체 속으로 흘러간다”고 했다. 한국인은 ‘한류’와 ‘삼성’이 실현하는 유목적 공격성을 전적으로 거부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쉽게 동의하기도 힘든 소용돌이 속에서, 돌고 돈다. 때로는 자랑스럽지만 때로는 더럽다.


 
» 김진석 인하대 교수
 
노마드의 폭력성은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니지만, 그 폭력성이 인정된 노마드 이야기는 문명 분석의 좋은 도구일 수 있다. 강자가 먹이를 다 삼키는 폭력적 시스템만 쫓는 노마디즘은 위악적이지만, 모든 폭력에서 벗어난 공동체를 꿈꾸기만 하는 노마디즘도 위선적이지 않을까. 이 사이에서, 기우뚱, 균형을 잡자.

김진석/인하대 교수

 


김진석 교수는 1958년생으로 독일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철학박사를 받았습니다. 미학과, 민주주의 사회 안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폭력의 다양한 얼굴과 맥락 등에 연구의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저서로 <초월에서 포월로 1, 2, 3> <폭력과 싸우고 근본주의와도 싸우기> <소외에서 소내로> <포월과 소내의 미학>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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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명령제 빠진 ‘李 특검법’] 무기없는 특검…‘헛방’ 될수도

동행명령제 빠진 ‘李 특검법’] 무기없는 특검…‘헛방’ 될수도

[서울신문]헌법재판소가 10일 이명박 특검법의 동행명령 조항을 위헌이라고 결정 내림에 따라 대통령 당선인을 상대로 한 특검 수사는 시작도 하기 전에 난관에 부딪혔다. 수사 기간이 길어야 40일에 불과한 데다 참고인을 강제 조사할 방법이 없어지면서 특검팀이 검찰 수사 결과를 뒤집을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오는 15일 수사를 시작하는 특검이 풀어야 할 의혹은 ▲BBK 주가조작 및 횡령 ▲도곡동 땅과 다스의 실소유주 ▲검찰의 편파수사·축소 발표 ▲상암디지털미디어센터(DMC) 특혜분양 등이다. BBK를 이 당선인이 설립했다는 내용의 광운대 동영상을 비롯한 인지 사건도 수사할 수 있다.

특검이 의혹을 풀려면 김재정(이 당선인의 처남)·이상은(이 당선인의 친형)·김백준(이 당선인의 측근)씨 등의 참고인 소환 조사는 필수적이다.

 
구속 기소된 김경준씨를 빼고는 ‘피의자 신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에서 김재정씨만 소환조사를 받았을 뿐 상은씨 등은 해외출장 중이어서 조사를 받지 않았다.

참고인 동행명령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던 이들이 특검 수사에 스스로 협조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특검이 법원에 영장을 청구해 소환 조사하는 방안도 있겠지만, 혐의가 없다면 이마저도 불가능하다. 결국 특검은 동행명령이 불가능해지면서 검찰 수사 때보다 더 진전된 수사를 위한 ‘무기’를 갖지 못하게 된 셈이다.

그래서 이 당선인의 소환 여부에 관심이 집중된다. 특검법은 BBK 주가조작 의혹 등 여러 사건에서 이 당선인을 ‘잠정 피의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 당선인을 직접 조사하지 않으면 특검의 수사결과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검찰도 대통령 후보를 소환조사하지 못하고 서면조사를 했던 터에 ‘살아 있는 권력’인 당선인을 소환조사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짧은 준비기간과 수사기간은 특검 수사의 또 다른 장애물이다. 정호영 특검은 15일 수사를 시작해 대통령 취임(2월25일)을 이틀 앞둔 다음달 23일까지 수사를 마무리해야 한다. 대통합민주신당이 이명박 특검법을 입안했을 때 대통령 취임 즉시 헌법상 면책특권이 발효된다는 점을 고려해 수사 기간을 역대 특검법 가운데 가장 짧은 40일로 정했기 때문이다.

정 특검은 수사팀 구성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는 “적임자를 찾기가 쉽지 않고, 찾아도 본인이 고사해 상당히 애로를 느끼고 있다. ”고 토로했다. 특검은 검찰도 수사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현직 검사들도 특검팀 합류를 꺼리고 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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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보다 센 김앤장, 왜 간판이 없을까

삼성보다 센 김앤장, 왜 간판이 없을까
[인터뷰] 김앤장 해부서 펴낸 장화식 투기자본감시센터 정책위원장
구영식 (ysku)
 
 

'마지막 성역'으로 불려온 '법률권력' 김앤장 법률사무소(김앤장)를 파헤친 책이 최근 출간됐다.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의 양심고백으로 삼성권력이 사회문제로 등장한 가운데, 한 정치인과 노동운동가의 집요한 노력으로 '법조계의 삼성'인 김앤장에 대해서도 실체규명이 시작된 것이다.

 

이같은 내용의 책 <법률사무소 김앤장(후마니타스)>의 저자는 임종인 의원(무소속)과 장화식 투기자본감시센터 정책위원장. 특히 장화식 위원장에게 김앤장은 각별하다.

 

장 위원장은 외환은행의 자회사인 외환카드에서 15년을 근무하다 지난 2004년 외환카드가 외환은행에 통합되면서 갑자기 직장에서 쫓겨났다. 그의 해고 뒤에는 한국 최고의 '법률기업' 김앤장이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해고를 설명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김앤장의 법률자문과 지도에 따라 두 조직이 통합되었고 해고는 그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내게 통보되었다." (9쪽)

 

"비정규직 노조 깨고 1억1000만원... 그저 법률자문만 한다고?"

 

  
임종인 의원과 함께 김앤장 해부서 <법률사무소 김앤장>을 펴낸 장화식 투기자본감시센터 정책위원장.
ⓒ 오마이뉴스 구영식
장화식

책이 출간된 8일 후마니타스 사무실에서 만난 장 위원장은 "김앤장은 내게 싸움의 대상이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앤장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외환은행 해고건만 자문한 게 아니라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구조조정·인수합병·해외매각 등에 김앤장이 관여하고 있다. 김앤장에 의해 길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이 모였다. 그것은 김앤장이 관여한 구조조정 건이 많다는 걸 의미한다."

 

그는 '김앤장에 의해 길거리로 내몰린 사람들'과 함께 지난 2006년부터 지금까지 매주 목요일 김앤장 건물 앞에서 집회를 열어왔다.

 

그는 "(노동자의) 생존권을 고려한 법률자문과 인수합병하는 기업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법률자문은 완전히 다르다"며 "김앤장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국바스프·미래에셋생명·알리안츠생명·도쿄미쓰비시은행·테트라팩 등의 구조조정과 노조탄압에 김앤장이 관여했다. 또 까르푸를 이랜드에 매각할 때도 법률자문을 했다. 심지어 동우공영이라는 2차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조를 깨는 데 (법률자문을 하고 수임료로) 1억1000만원이나 받았다.

 

2002년 사무금융노련 시절 '외자기업의 노사관계 실태와 문제점'이란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상당수 외자기업의 노사관계는 상당히 격렬하고 잘 안 풀리고 서로 경직돼 있었다. 왜 그럴까? 외자기업이나 외국인기업의 경우 거의 대부분 김앤장에 법률자문을 맡기고 있었다. 노사관계란 싸우면서도 타협해야 하는데 김앤장은 법대로만 코치를 하기 때문에 (김앤장의 법률자문을 받은 기업의) 노사관계는 격렬해지는 것이다. 김앤장은 법률자문만 한다고 하지만 실제는 (자문을 의뢰한) 회사의 행동을 규율한다."

 

입법·사법·행정 권력도 넘보는 김앤장... 왜 간판은 없을까

 

이렇게 김앤장은 분명히 살아있는 권력임에도 잘 보이지 않는다. 김앤장 건물에서 그 흔한 간판 하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처럼 '보이지 않는 권력' 김앤장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실도 없다.

 

"책을 쓰는 과정에서 임종인 의원이나 여러 정치학 박사들과 토론하면서, 김앤장이 보이지 않는 권력이기 때문에 힘이 더 크다는 걸 알게 됐다. 김앤장은 '보는 세력'이다. 예를 들어서 나하고 관련된 사건에서 김앤장은 보기만 하고 나는 김앤장을 볼 수 없다. 그럴 때 (김앤장에) 권력이 생기고 (김앤장과 나 사이에) 힘의 불균형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장 위원장은 "김앤장을 '법조계의 삼성'이라고 부르지만 삼성보다 김앤장의 권력이 더 세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김앤장의 권력은 삼성보다 센 것일까?

 

"권력의 핵심인 법을 다루기 때문이다. 김앤장이 공인중개사나 회계사 집단이었다면, 아무리 그렇게 집단을 만들어 로비를 하더라도 권력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또 거대 법률회사인 로펌이 등장하고 그들이 막대한 수임료를 챙기면서 로펌이 자본을 축적하게 된 것이다. 한 마디로 비즈니스를 규율하는 법률이 법률사업이 된 것이다. 이는 8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현상인데, 우리나라는 97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나타났다.

 

삼성은 돈을 매개로 한 권력이지만 김앤장은 법률을 핵심으로 하는 권력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이 최고라고 할 수 있겠지만, 자본이 바탕(하부구조)을 형성한다면 법률은 상층(상부구조)을 형성하고 있다. 법률이 더 힘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재벌총수들이 왜 법률가와 혼맥관계를 맺겠나? (절대권력이라는) 삼성도 금산분리 등 법률에 의해 통제받고 있지 않나? 그러니 김앤장이 삼성보다 힘이 셀 수밖에 없다."

 

  
가려진 권력 김앤장을 처음으로 해부한 <법률사무소 김앤장> 표지과 공저자인 임종인 의원(오른쪽), 장화식 투기자본감시센터 정책위원장.
ⓒ 오마이뉴스
김앤장

"정부 고위관료, 은퇴하면 김앤장으로... 성공사업은 '신자유주의'"

 

심지어 장 위원장은 "김앤장은 수퍼권력이라고 부를 만 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원래 법률을 해석하는 곳은 사법부이고 법률을 만드는 곳은 입법부다. 그런데 김앤장은 입법부나 사법부의 능력 일부를 가지고 있다. 김앤장의 (법률) 해석이 사법부의 판결이 된다. 형식만 사법부의 판결이지 사실 김앤장의 판결이나 다름없다. 또 김앤장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입법자들을 통해 법률을 바꾸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김앤장의 힘이 커졌다."

 

장 위원장은 "김앤장의 권력은 입법·사법·행정에 다 뻗어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부에서 일했던 고위 관료들이 고문·전문위원·실장의 직함을 달고 김앤장에 근무한다는 것은 이제 제법 알려진 사실이다. 김앤장으로 자리를 옮긴 관료들의 상당수가 돈을 다루는 부서(재경부·국세청·관세청·금융감독원·공정거래위 등)출신이라는 점을 특히 눈여겨봐야 한다.

 

그는 이러한 김앤장의 권력을 '정부관료-투기자본-법률엘리트'의 삼각동맹'으로 설명했다.

 

"김앤장과 투기자본은 거의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김앤장은 법률서비스를 앞세워 투기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관료들은 퇴직 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취업하면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의뢰인을 위해 일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판·검사와 고위공직자 출신의 이들이 공직생활에서 배운 자신의 전문성을 투기자본으로부터의 고액의 수수료와 맞바꾸는 것이다. 투기자본은 공공성에 대한 공격과 노동자에 대한 해고와 구조조정, 비정규직 확산과 저임금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니 만큼, 이들이 받는 엄청난 보수는 결국 비정규직과 해고자, 공공성 파괴로 인한 대가인 셈이다." (178쪽)

 

흥미로운 사실은 김앤장의 전성기는 97년 외환위기 이후 들어선 민주파 정부의 집권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는 모순된 현상이면서도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법률사무소 김앤장>에 '신자유주의를 성공사업으로 만든 변호사 집단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김앤장은 신자유주의를 성공사업으로 만들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민영화·해외매각·인수합병 등의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그 과정에 법률(김앤장)이 개입해서 사업으로 만든 것이다. 거기서 막대한 수임료를 챙기면서 법률가집단이 법률도 다루면서 자본도 집적하게 됐다. 97년엔가 김앤장은 기아그룹 계열사들에 16건의 법률자문을 해주고 28억원을 받았는데 그것이 너무 많다고 해서 변협 윤리위원회의 심사를 받았을 정도다.

 

법률을 다루는 전문가에 대한 국민의 통제 등을 고민했어야 하는데 (민주파 정부에) 그런 고민이 없었다. 그런 법률권력을 통제해서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법 앞에, 권력 앞에 평등할 수 있는지 고민했어야 했다. 그냥 절차적 민주화가 완성됐다고 생각한 것이다. 일례로 노무현 대통령이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얘기한 걸 들 수 있다. 법률권력이 (사회적 통제에서 벗어나) 법률가에게 넘어간 것이다."

 

"왜 삼성특검에 김앤장 문제는 빠져 있나?"

 

하지만 김앤장은 이러한 우려와 문제제기에 대해 '토종 로펌론'으로 맞서고 있다. 일종의 '애국주의'에 호소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장 위원장의 격한 비판이 이어졌다.

 

"김앤장이 토종으로서 한 게 뭐가 있나? 외국 로펌들이 들어오니까 방패로서 토종로펌론을 내세우는 것이다. 이는 공포감을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김앤장이 토종으로 있거나 외국자본이 김앤장을 운영하거나 무슨 차이가 있겠나? 누구를 위해 법률서비스를 하느냐의 문제에 있어 차이가 없다고 본다."

 

이어 장 위원장은 "김앤장은 법률을 가진 자의 이익에만 복무시키고 있다"며 이런 지적을 내놓았다. 

 

"김앤장은 고객을 위해 최대한의 서비스를 한다고 한다. 그런데 김앤장의 고객이 누구인가? 다른 데보다 훨씬 높은 수임료를 받는데 그걸 이용할 수 있는 고객이 누가 되겠나? 김앤장도 선택을 한다. 노동자 편에 서겠나? 안 선다. 이런 문제 때문에 김앤장은 가진 자의 이익을 위해서만 법률서비스를 하게 된다. 결국 법률이 강자의 이익에만 복무하도록 (김앤장이) 작용하는 것이다."

 

  
장화식 위원장은 "김앤장의 권력은 입법, 사법, 행정 등에 뻗어 있다"며 "수퍼권력이라고 부를 만하다"고 말했다. 사진은 김앤장 인터넷 홈페이지.
ⓒ 김앤장 홈페이지
김앤장

 

그렇다면 '김앤장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먼저 책 속에는 이런 해답이 나와 있다.

 

"최소한 김앤장의 실제 모습과 사회적 역할을 객관화하는 것에서 시작해, 보이지 않는 권력과 잘못된 신화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도록 방치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해 가야 할 것이다. 과도할 정도로 특권화되어 있는 법의 영역 역시 민주주의의 가치와 원리에 맞도록 변화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이 일은 법률전문가에게만 맡길 일이 아니며, 우리 사회 모두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260쪽)

 

장 위원장은 "김앤장의 실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드러내면 힘을 절반으로 줄어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앤장의 활동이 드러난 게 없다. 사무실에 들어갈 수 있나? 수익을 알 수 있나? 누구를 변호한다는 것만 공개된다. 그것(변론)도 김앤장이 아니라 개인으로 들어간다. 김앤장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김앤장이란 문을 열고 들어가 권력화된 법률집단을 어떻게 시민의 처지에서 통제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 책은 그 '김앤장 문제'를 생각하는 문이다.

 

사법개혁·민주주의·인권 등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모여 권력이 된 로펌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우리는 독점자본 삼성권력에 대해 많이 얘기하면서도 김앤장에 대해선 거의 얘기를 하지 않는다. 단적인 예가 있다. 김용철 변호사가 김앤장이 에버랜드사건(전환사채 헐값 발행사건)의 조작을 주도했다고 폭로했다. 그런데 삼성 특검 대상에는 김앤장이 빠져 있다. 왜 빠져 있는지 모르겠다."

 

인터뷰 도중 출판사 사무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김앤장에서 책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는 전화였다. 책을 검토한 뒤 소송이라도 제기하려는 것일까?   

 

"김앤장의 장기니까 고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만 썼는데 고소하겠나? 보이지 않는 권력이 자신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쪽을 복종시키는 것은 (10억원대 소송제기 압박으로 정정보도를 받아낸) <뉴스메이커>건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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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치폴의 역사사회학의 전망과 역사


 

 

 

글은 테다 스카치폴(Theda Skocpol)의 「역사 사회학의 쟁점과 전략」이란 글의 분석을 일차적 목적으로 한다. 이차적 목적은 스카치폴이 제시한

 역사사회학의 연구 전략을 너머서기 위한 논의들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1. 「역사 사회학의 쟁점과 전략」의 구성(이하 ‘쟁점과 전략’)

 

 


‘쟁점과 전략’은 크게 3개의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1) 미국 사회학계 내에서의 역사 사회학적 경향의 강화 (2) 역사 사회학의 쟁점 (3) 역사 사회학의 3가지 연구 전략이 그것이다. 이 글은 스카치폴이 고백하듯이 미국 사회학의 변화 추이를 중심으로 고찰한 ‘자의적’ 성격의 글이지만, “최근 수십 년 동안에 미국이 가장 거대하고 영향력 있는 학문의 중심지로 군림해왔다”(스카치폴 : 1991, p434)는 사실과 “역사적 지향은 다른 나라의 사회학적 전통에서는 오랫동안 확고한 위치를 차지해왔다”는 사실로 인해 정당화된다.

 

쟁점과 전략’이 작성된 해는 1984년이다. 스카치폴은 “[역사 사회학]이란 말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사회학자들의 대화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것”(스카치폴 : 1991, p434)이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역사 사회학은 “경험적 연구를 중시하는 사회학의 주류로부터 상대적으로 고립되어 활동하던, 유별나게 범세계주의적인 나이든 사람들이나 그렇게 중요한 역사적 저작을 집필할 수 있다”고 인식되었고, 동시에 “대부분의 평범한 사회학자들은 현대 사회의 특정 국면을 연구하기 위해 양적방법이나 현지조사 방법을 사용”(스카치폴 : 1991, p434)하였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으로 오면서 “역사 사회학은 특출한 대가들의 독점 영역이 아니”(스카치폴 : 1991, p435)게 되었다. “학생들과 젊은 신진 사회학자들이 역사적인 연구 분야를 통해 크든 적든 간에 사회학에 이바지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스카치폴 : 1991, p435)는 지적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미국 사회학 내에서 역사적 지향은 뚜렷하게 강화되었는데, 스카치폴은 그 부분적 원인을 틸리와 월러스타인과 같은 뛰어난 연구소 설립자들의 노력에 기인한 것으로 설명한다.1)

 

스카치폴에 의하면 “역사 사회학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토크빌, 맑스, 뒤르켐, 베버가 유럽의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의 사회적 기원 및 영향에 대해 중요한 의문을 제기하고 다양한 해답을 제시하던 당시에 처음으로 확립”(스카치폴 : 1991, p434)되었다. 하지만 근대 사회학의 ‘천재’들에 의해 확립된 역사 사회학의 쟁점은 현대에 들어와 더욱 발전된 전략과 연구들에 의하여 새롭게 재서술되고 있다.


(1) 유럽 산업혁명의 기원과 결과

(2) 노동자 계급의 성장

(3) 국가의 관료제화 및 정치의 민주화


에 관한 고전적 문제의식들이 여전히 탐구되고 있으며(스카치폴 : 1991, p435), 역사 사회학에서 현재 두드러진 연구쟁점들도 “사회학 창시자들의 관심이 다른 시대와 장소, 그리고 새로운 주제를 포함하도록 확대된 것”(스카치폴 : 1991, p436)에 불과하다. 물론 스카치폴은 20세기의 주요한 (1) 산업관계 (2) 복지 국가 (3) 인종별 유형 등도 역사 사회학의 주된 연구쟁점으로 부각되었음을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스카치폴은 “모든 사회과학,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사려 깊은 사회연구는 역사적 시야를 지니는 개념과 역사적 자료를 충분히 사용해야 한다”는 C.W. 밀즈(mills)의 사회학에서의 ‘역사적 상상력’이 1980년대 중반 이후 미국 사회학 내에서 밀즈가 살았던 시대보다는 더욱더 희망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대규모 구조와 장기적 변동 과정의 본질 및 결과를 추구하는 연구 전통으로 이해되는 역사 사회학은 실제로 사회학이라는 학문 안에서 항상 하나의 중요한 구심점을 갖는 일련의 초학문적(trans-disciplinary) 시도”(스카치폴 : 1991, p439)로 자리 잡았다.


4. 역사 사회학의 연구 전략


스카치폴은 역사 사회학이 일반적으로 유용한 연구 전략을 갖고 있다는 인식에 대항하여 모든 역사적 지향의 사회학 저자들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 그 저자들이 선택한 연구 전략들에 대한 검토를 통해 연구 전략들의 지도를 그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스카치폴 : 1991, p443). 물론 스카치폴은 “역사 사회학의 적절한 방법을 위한 기계적인 비결은 없다”(스카치폴 : 1991, p443)고 강조한다.


스카치폴은 래긴과 자넷이 함께 쓴 『비교 연구의 이론과 방법 : 두 가지 전략』이라는 글에 대항하여 틸리와 월러스타인을 대비시키고, 이후 틸리와 월러스타인을 포함하는 탁월한 역사적 지향의 사회학 저서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연구 전략의 3가지 지도를 보여준다.


래긴(C. Ragin)과 자넷(D. Zaret)은 분석 단위, 인과성의 개념, 적당한 설명 개념, 분석 논리와 관련하여 뒤르켐과 베버의 비교전략을 대비시킨다. 그들에게 있어 기본적으로 역사학적 방법은 베버주의적 연구 전통과 동일시된다(스카치폴 : 1991, p515). 래긴과 자넷은 “전통적인 사회학적 연구의 대부분을 본래 반(反) 역사적인 뒤르켐적 접근 방식으로 간주”한다. 뒤르켐적 접근 방식이란 주로 양적 분석을 통해 일반적인 설명 변수를 찾아내는 연구를 가리킨다. 이러한 뒤르켐적 접근 방법에 반대하는 베버주의적 접근방식이란 “역사적 사건의 특수한 양상을 이념형 개념의 도움으로 밝히려는 것”을 의미한다.


스카치폴은 ‘비교’를 사용하는 목적의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래긴과 자넷이 부당하게 “벤딕스와 앤더슨으로부터 무어와 자기 자신에 이르는 모든 역사 사회학자들을 하나의 베버주의적 진영으로 간주”(스카치폴 : 1991, p441)한다고 비판한다. 스카치폴에 의하면 역사 사회학에서 ‘비교’를 사용하는 사회학자들의 목적은 서로 다른 두 가지이다.


(1) 대비-지향적 비교(contrast-oriented)

(2) 거시-분석적 비교(macro-analytic)


대비-지향적 비교는 “특수한 서술을 첨예하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며, 거시-분석적 비교는 “인과적 일반화를 검증하거나 수립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며, 이 두 비교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 스카치폴의 지적이다(스카치폴 : 1991, pp441~442). 스카치폴은 이러한 래긴과 자넷의 이분법적 유형화로는 현대 미국 사회학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연구 전략들을 올바로 포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틸리와 월러스타인은 래긴과 자넷의 연구 전략과는 상이한 연구 전략을 통해 자신의 탁월한 연구업적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 반증으로 제시된다(스카치폴 : 1991, p442).


스카치폴은 래긴과 자넷의 뒤르켐-베버주의적 대립구도로 역사 사회학의 연구 전략을 설명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역사 사회학에 적용되는 (1) 일반 모델(model) (2) 개념 (3) 인과적 규칙성의 발견이란 세 연구 전략에 따라 기존의 연구 성과들을 폭넓게 유형화한다. 그리고 이러한 유형화를 통해 자신이 ‘분석적 역사 사회학’이라고 명명한, ‘인과적 규칙성의 발견’이 역사 사회학의 바람직한 연구 전략임을 주장한다.


5. 연구 전략1 : 역사에 대한 일반 모델의 적용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역사 사회학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나 그 이상의 역사적 국면에 대한 일반 모델의 적용”(스카치폴 : 1991, p444)으로 이해되었다. 이것은 사회학과 역사학의 첨예한 구별 위에서 구성된 역사 사회학의 유형이었다. 사회학은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일반 사회이론을 공식화할 수 있는 학문”으로 인식되고, 역사학은 “과거의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 관한 ‘사실들’을 수집하는 학문”이라는 대립적 정의에 기반을 둔 것이다.


1960년대 중반에 출판된 에릭슨의 『변덕스런 청교도 : 일탈 사회학의 한 연구』는 역사에 대한 일반 모델의 적용이라는 1950년대 이후 역사 사회학의 전형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그는 이 저서에서 “특정한 공동체가 일탈행동을 어떻게 정의하고 규제하는가에 관한 뒤르켐적 모델을 정교화 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는 거기서 이렇게 말한다.


여기에 수집된 자료는 뉴잉글랜드 지역의 청교도 집단을 새롭게 조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일탈행동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미국 청교도들의 경험은 세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인간 생활의 한 보기로서 취급되었다. 이러한 접근이 바람직한 것인지의 여부는 [···] 궁극적으로 이 연구의 특정한 주제가 아니라 다른 시대의 사람들의 행동을 해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설명 범위에 달려 있을 것이다.”

(스카치폴 : 1991, p446, 재인용)


에릭슨의 설명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역사에 대한 일반 모델을 구성하는 학자들의 주요 관심은 “일반 이론 모델의 내적 논리를 설명하고 정교하게 다듬는”(스카치폴 : 1991, p446)것에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비판에 직면한다. (1) 먼저, 일반 이론 모델을 구성하고자 하는 학자는 일반 이론 모델을 연역적으로 구성하여, 그것을 이미 주어진 모델로 독자들을 혼동시킨다. (2) 다음으로, 연역적으로 주어진 일반 이론 모델의 적합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자의적으로 경험적 사례들을 재구성한다. 즉 중요한 역사적 반증을 ‘의도적’으로 회피한다. 이러한 비판에 대응하기 위하여 이 연구전략을 채택한 학자진영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대안전략을 구현하였다.


[대안1] 렌스키는 “알려진 모든 역사적 사건들의 세계에 일반 모델을 적용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이것은 분명히 중요한 역사적 반증을 의도적 회피하는 두 번째 비판을 넘어설 수 있지만, 연구자가 특정한 사건에 대한 본질적인 관심으로부터 멀어지는 결과가 발생한다.

[대안2] 윌러(David Willer)는 비판(1)을 넘어서기 위하여 주어진 하나의 일반 모델로 역사적 사건을 포착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반대로 “선택적이고 전략적인 관점에서 그 사건에 대한 역사적 논의들을 증명”(스카치폴 :1991, p449)한다. 하지만 이 전략 역시 ‘자의성’의 문제제기를 넘어서지 못한다.


하지만 역사에 적용되는 일반적 이론 모델을 구축하려는 학자들이 렌스키와 윌러의 접근만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스카치폴은 틸리와 월러스타인의 예를 통해 일반 모델의 적용과 결합되는 다른 유형의 연구 전략들을 소개하고 있다. (1) 하나는 유의미한 역사적 해석을 발전시키기 위해 개념을 사용하는 ‘해석적 역사 사회학’이며 다른 하나는 (2) 다른 하나는 역사의 인과적 규칙에 관한 대안적 가설을 탐구하는 ‘분석적 역사 사회학’이다.


6. 연구 전략2 : 역사를 해석하기 위한 개념의 사용


스카치폴이 ‘해석적 역사 사회학’이라고 이름붙인 이 두 번째 연구 전략은 “광범위한 역사적 유형에 대한 유의미한 해석을 발전시키기 위해 개념을 사용한 것”(스카치폴 : 1991, p451)을 의미한다. 이 연구전략은 “이론적 모델을 역사에 적용하거나 대규모 구조와 변동의 유형에 관한 인과적 일반화를 수립하기 위해 가설 검증의 접근 방식”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따라서 이 연구전략이 경제 결정론적 맑스주의와 구조기능주의의 결정론적 경향 및 지나친 일반화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 내지 ‘비판적 대응’의 전략으로 설명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이러한 이론에 대한 회의가 ‘일반성’ 그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이 연구전략은 “자신들의 연구관심을 한정하고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사례 연구로부터 역사적 유형을 뽑아내고 제시하기 위해 항상 명백한 일반성의 개념들을 사용하고 있다”(스카치폴 : 1991, p452). 하지만 이 연구전략이 역사적 인과성에 관한 규칙들을 발견하려는 ‘분석적 역사사회학’과 구별되는 지점은 바로 ‘비교’를 사용하는 목적이다. 그들은 스카치폴이 말하는 ‘대비-지향적’ 비교전략을 사용한다. 이 연구전략은 “개별 사례의 독특한 특성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비교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벤딕스의 비교연구에 대한 설명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다른 연구와 비교함으로써 하나의 구조가 지닌 시계를 확대시킨다. 따라서 유럽의 봉건제는 일본의 봉건제와의 비교를 통해 보다 정확하게 정의될 수 있으며, 서구 문명에서 교회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성직에의 경향성이 발전하지 않은 문명과의 비교를 통해 보다 분명해질 수 있다.”

(스카치폴 : 1991, p453)


해석학적 연구 전략의 강점은 연구 주제가 과거-현재의 두 맥락(context)을 연결할 수 있다는 것에 존재한다. 해석학적 연구 전략은 (1) 과거 행위자들의 지향성과 행동을 취하는 제도적, 문화적 상황과 맥락을 선택하며 (2) 동시에 그것이 현재적 맥락에서 정치적,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주제일 때, 탁월한 연구로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들은 비교의 방법을 통해 사례의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어냄으로써 제한된 사례의 해석을 일반적인 개념을 통해 이루어낸다. 바로 이 지점이 두 번째 연구전략의 장점이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한계가 공존한다. 사례 혹은 역사적 사건의 해석에 치중하는 ‘개념’의 적용은 그 개념에 해당 사례의 역사적 특수성이 결합되어 존재한다. 따라서 ‘해석학적’ 연구전략의 성과를 다른 나라에 확대하려고 시도하는 경우 그것은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며, 개념에 연결되어 있는 잠재적 인과성을 확증하는 것에 약점을 갖는다. 그것은 그 사례의 ‘특수성’을 해석하는 것에 장점이 있는 반면, “왜”라는 질문에 대한 지속적이고 일반적인 관심에 있어 부족하다. 순수한 일반 이론 모델이 역사적 특수성과 다양성을 간과하는 것에 대한 반발로 출현한 이 연구전략은 해당 사례의 역사적 특수성을 잠재적 일반성을 지닌 ‘개념’으로 해석해내지만, ‘이론’으로 발전하는 것에 어려움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연구 전략 또한 다른 연구 전략들과 통합될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7. 연구 전략3 : 역사에서의 인과론적 규칙성의 분석


마지막으로 스카치폴이 주장하는 ‘분석적 역사사회학’의 연구전략은 앞의 두 전략과는 차별화된다. 분석적 연구전략의 목표는 “명백히 정의된 역사적 결과나 유형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구축하는 것이며, 이 전략은 “역사에서도 인과론적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스카치폴  : 1991, p459). 분석적 역사 사회학의 연구 전략의 핵심은 “연구자들이 특정한 기존 이론, 또는 이론들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역사적 유형을 설명하는 데 적합한 구체적인 인과론적 구성논리의 발견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스카치폴 : 1991, p460)에 존재한다. 즉 이 연구전략은 연구주제로 설정된 ‘실재’(the real)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며, 이 실재를 해명하기 위하여 서로 경합하는 이론들을 결합하기도 하며, 새로운 이론을 잠정적으로 구성하기도 한다. 인과론적 규칙성에 대한 발견은 일반적 이론 모델의 연구전략과 같이 ‘미리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실재를 해명하고 설명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 전략이 “독자적인 중요성을 개개의 맥락 탓으로 돌리는 해석적 경향”을 피한다고 하여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일반법칙으로 진술되지 않는 이론적 가설은 결코 탐구할 가치가 없다”는 비어(Samuel Beer)의 ‘보편성의 정론’(dogma of university)을 채택하는 것은 아니다. 이 연구전략은 “특정한 역사적 맥락, 또는 맥락들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설명적 일반화의 작업”에 만족한다(스카치폴 : 1991, p461). 즉 이 연구 전략은 자기제한적 ‘일반화’를 지향한다.


이 연구전략이 자기제한적 일반화를 지향한다는 사실은 스카치폴의 단 하나의 사례만으로도 가능하다는 주장에서 확인된다. 하지만 그것은 ‘가능한 것’이지 ‘충분한 것’은 되지 못한다. 논의의 타당성을 증명하고 연구를 보다 발전시키기 위해서 스카치폴은 ‘비교’의 방법을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단일사례 연구는 분석적 전략보다는 역사 사회학의 처음 두 분야에 더 전형적인 보기이다.”(스카치폴 :1991, p462)


분석 전략의 비교는 대조-지향적 비교와는 구별된다. 분석 전략의 비교는 인과적 규칙성의 발견을 목표로 한다. 인과적 규칙성의 발견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이 비교 전략은 “타당하지 않은 원인들로부터 타당한 원인을 구별하기 위한 변차 통제의 확립을 목표로 하는 사회과학의 다른 방법론적 접근”(스카치폴 : 1991, p464)과 유사하다. 이러한 비교전략으로 스카치폴은 J. S. 밀이 제시한 일치법과 차이법을 유용한 전략으로 제시한다. 스카치폴은 밀의 일치법과 차이법을 통해 인과적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제시한다.


8. 소결 : 연구 전략의 통합전략


2004년에 처음 이 논문을 접했을 때는 스카치폴이 분류한 3가지 유형의 연구 전략이 서로 대립되는 연구전략으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은 3가지 연구 전략이 보다 통합적으로 결합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스카치폴은 역사의 인과론적 규칙성을 발견하려는 분석 전략이 이론적 모델이나 해석적 전략을 대체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가 생각하는 분석적 연구 전략은 ‘특수성’-‘보편성’의 양 극단에 위치하는 해석적 연구 전략과 일반적 모델의 연구 전략을 분석적 연구 전략이 매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분석적 역사 사회학의 실행은 역사 사회학이나 역사적 사례에 대한 일반 모델의 적용에 비해 역사적 증거와의 보다 친밀한 대화를 촉구한다”(스카치폴 : 1991, p473).


특수성 <----------------------------------------------------> 보편성

해석적 연구 전략 ------------ 분석적 연구 전략 ------------- 일반 모델 전략


9. Rethinking Theda Skocpol's Strategy


스카치폴의 연구 전략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동시에 우리 세미나의 주된 목표인 ‘민주주의’ 연구의 주된 접근 전략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역사 사회학의 주된 전통으로 제시되는 스카치폴의 ‘자기제한적 일반화’=‘인과론적 규칙성의 발견’이라는 연구 전략에 대항하여 공개적인 ‘이의’를 제기해볼 필요성이 존재한다.


1) 비교의 독자적 단위는 실재하는가?


스카치폴이 스스로 고백하듯이, 분석적 연구 전략은 “인과론적 규칙에 대한 비교 평가용의 독자적 단위가 발견될 수 있다는 가정”(스카치폴 : 1991, p471)에 근거한다. 월러스타인의 접근인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단 하나의 체제로서 자본주의 근대체제를 설정한다면, 우리는 비교의 독자적인 단위를 설정할 수 없다. 비교가 아닌 다른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2) 밀의 ‘인과관계’에 대한 규정은 실재하는 인과성을 반영하는가?


비교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비교의 방법으로 제시된 밀의 논리관계 증명법은 ‘분석’을 위한 올바른 인과관계를 보장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밀의 인과관계에 대한 개념은 흄적 인과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흄적 인과개념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인과관계를 구성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사건들의 규칙적 결합 속에서 인과관계를 파악하려는 흄-밀적 인과개념은 기본적으로 사회와 자연관계 모두에서 그러한 규칙적 결합이 아주 드물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못한다.

 


3. 역사 사회학의 쟁점

 


2. 미국 사회학에서의 역사적 지향의 강화

 

 

 
본문스크랩 [발제문] 스카치폴의 [역사 사회학의 전망과 전략] 낙서장

2008/01/07 20:01

 

http://blog.naver.com/sickduck/20045738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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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블로그 > Bleistifte des Ganndalf
원본 http://blog.naver.com/ganndalf/150002467680

 

Rethinking Theda Skocpol's

Vision and Method in Historical Sociology


 

장 훈 교

* 2006년 3월 9일 역사사회학


이 글은 테다 스카치폴(Theda Skocpol)의 「역사 사회학의 쟁점과 전략」이란 글의 분석을 일차적 목적으로 한다. 이차적 목적은 스카치폴이 제시한 역사사회학의 연구 전략을 너머서기 위한 논의들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1. 「역사 사회학의 쟁점과 전략」의 구성(이하 ‘쟁점과 전략’)


‘쟁점과 전략’은 크게 3개의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1) 미국 사회학계 내에서의 역사 사회학적 경향의 강화 (2) 역사 사회학의 쟁점 (3) 역사 사회학의 3가지 연구 전략이 그것이다. 이 글은 스카치폴이 고백하듯이 미국 사회학의 변화 추이를 중심으로 고찰한 ‘자의적’ 성격의 글이지만, “최근 수십 년 동안에 미국이 가장 거대하고 영향력 있는 학문의 중심지로 군림해왔다”(스카치폴 : 1991, p434)는 사실과 “역사적 지향은 다른 나라의 사회학적 전통에서는 오랫동안 확고한 위치를 차지해왔다”는 사실로 인해 정당화된다.


2. 미국 사회학에서의 역사적 지향의 강화


‘쟁점과 전략’이 작성된 해는 1984년이다. 스카치폴은 “[역사 사회학]이란 말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사회학자들의 대화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것”(스카치폴 : 1991, p434)이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역사 사회학은 “경험적 연구를 중시하는 사회학의 주류로부터 상대적으로 고립되어 활동하던, 유별나게 범세계주의적인 나이든 사람들이나 그렇게 중요한 역사적 저작을 집필할 수 있다”고 인식되었고, 동시에 “대부분의 평범한 사회학자들은 현대 사회의 특정 국면을 연구하기 위해 양적방법이나 현지조사 방법을 사용”(스카치폴 : 1991, p434)하였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으로 오면서 “역사 사회학은 특출한 대가들의 독점 영역이 아니”(스카치폴 : 1991, p435)게 되었다. “학생들과 젊은 신진 사회학자들이 역사적인 연구 분야를 통해 크든 적든 간에 사회학에 이바지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스카치폴 : 1991, p435)는 지적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미국 사회학 내에서 역사적 지향은 뚜렷하게 강화되었는데, 스카치폴은 그 부분적 원인을 틸리와 월러스타인과 같은 뛰어난 연구소 설립자들의 노력에 기인한 것으로 설명한다.1)


3. 역사 사회학의 쟁점


스카치폴에 의하면 “역사 사회학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토크빌, 맑스, 뒤르켐, 베버가 유럽의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의 사회적 기원 및 영향에 대해 중요한 의문을 제기하고 다양한 해답을 제시하던 당시에 처음으로 확립”(스카치폴 : 1991, p434)되었다. 하지만 근대 사회학의 ‘천재’들에 의해 확립된 역사 사회학의 쟁점은 현대에 들어와 더욱 발전된 전략과 연구들에 의하여 새롭게 재서술되고 있다.


(1) 유럽 산업혁명의 기원과 결과

(2) 노동자 계급의 성장

(3) 국가의 관료제화 및 정치의 민주화


에 관한 고전적 문제의식들이 여전히 탐구되고 있으며(스카치폴 : 1991, p435), 역사 사회학에서 현재 두드러진 연구쟁점들도 “사회학 창시자들의 관심이 다른 시대와 장소, 그리고 새로운 주제를 포함하도록 확대된 것”(스카치폴 : 1991, p436)에 불과하다. 물론 스카치폴은 20세기의 주요한 (1) 산업관계 (2) 복지 국가 (3) 인종별 유형 등도 역사 사회학의 주된 연구쟁점으로 부각되었음을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스카치폴은 “모든 사회과학,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사려 깊은 사회연구는 역사적 시야를 지니는 개념과 역사적 자료를 충분히 사용해야 한다”는 C.W. 밀즈(mills)의 사회학에서의 ‘역사적 상상력’이 1980년대 중반 이후 미국 사회학 내에서 밀즈가 살았던 시대보다는 더욱더 희망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대규모 구조와 장기적 변동 과정의 본질 및 결과를 추구하는 연구 전통으로 이해되는 역사 사회학은 실제로 사회학이라는 학문 안에서 항상 하나의 중요한 구심점을 갖는 일련의 초학문적(trans-disciplinary) 시도”(스카치폴 : 1991, p439)로 자리 잡았다.


4. 역사 사회학의 연구 전략


스카치폴은 역사 사회학이 일반적으로 유용한 연구 전략을 갖고 있다는 인식에 대항하여 모든 역사적 지향의 사회학 저자들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 그 저자들이 선택한 연구 전략들에 대한 검토를 통해 연구 전략들의 지도를 그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스카치폴 : 1991, p443). 물론 스카치폴은 “역사 사회학의 적절한 방법을 위한 기계적인 비결은 없다”(스카치폴 : 1991, p443)고 강조한다.


스카치폴은 래긴과 자넷이 함께 쓴 『비교 연구의 이론과 방법 : 두 가지 전략』이라는 글에 대항하여 틸리와 월러스타인을 대비시키고, 이후 틸리와 월러스타인을 포함하는 탁월한 역사적 지향의 사회학 저서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연구 전략의 3가지 지도를 보여준다.


래긴(C. Ragin)과 자넷(D. Zaret)은 분석 단위, 인과성의 개념, 적당한 설명 개념, 분석 논리와 관련하여 뒤르켐과 베버의 비교전략을 대비시킨다. 그들에게 있어 기본적으로 역사학적 방법은 베버주의적 연구 전통과 동일시된다(스카치폴 : 1991, p515). 래긴과 자넷은 “전통적인 사회학적 연구의 대부분을 본래 반(反) 역사적인 뒤르켐적 접근 방식으로 간주”한다. 뒤르켐적 접근 방식이란 주로 양적 분석을 통해 일반적인 설명 변수를 찾아내는 연구를 가리킨다. 이러한 뒤르켐적 접근 방법에 반대하는 베버주의적 접근방식이란 “역사적 사건의 특수한 양상을 이념형 개념의 도움으로 밝히려는 것”을 의미한다.


스카치폴은 ‘비교’를 사용하는 목적의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래긴과 자넷이 부당하게 “벤딕스와 앤더슨으로부터 무어와 자기 자신에 이르는 모든 역사 사회학자들을 하나의 베버주의적 진영으로 간주”(스카치폴 : 1991, p441)한다고 비판한다. 스카치폴에 의하면 역사 사회학에서 ‘비교’를 사용하는 사회학자들의 목적은 서로 다른 두 가지이다.


(1) 대비-지향적 비교(contrast-oriented)

(2) 거시-분석적 비교(macro-analytic)


대비-지향적 비교는 “특수한 서술을 첨예하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며, 거시-분석적 비교는 “인과적 일반화를 검증하거나 수립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며, 이 두 비교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 스카치폴의 지적이다(스카치폴 : 1991, pp441~442). 스카치폴은 이러한 래긴과 자넷의 이분법적 유형화로는 현대 미국 사회학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연구 전략들을 올바로 포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틸리와 월러스타인은 래긴과 자넷의 연구 전략과는 상이한 연구 전략을 통해 자신의 탁월한 연구업적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 반증으로 제시된다(스카치폴 : 1991, p442).


스카치폴은 래긴과 자넷의 뒤르켐-베버주의적 대립구도로 역사 사회학의 연구 전략을 설명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역사 사회학에 적용되는 (1) 일반 모델(model) (2) 개념 (3) 인과적 규칙성의 발견이란 세 연구 전략에 따라 기존의 연구 성과들을 폭넓게 유형화한다. 그리고 이러한 유형화를 통해 자신이 ‘분석적 역사 사회학’이라고 명명한, ‘인과적 규칙성의 발견’이 역사 사회학의 바람직한 연구 전략임을 주장한다.


5. 연구 전략1 : 역사에 대한 일반 모델의 적용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역사 사회학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나 그 이상의 역사적 국면에 대한 일반 모델의 적용”(스카치폴 : 1991, p444)으로 이해되었다. 이것은 사회학과 역사학의 첨예한 구별 위에서 구성된 역사 사회학의 유형이었다. 사회학은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일반 사회이론을 공식화할 수 있는 학문”으로 인식되고, 역사학은 “과거의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 관한 ‘사실들’을 수집하는 학문”이라는 대립적 정의에 기반을 둔 것이다.


1960년대 중반에 출판된 에릭슨의 『변덕스런 청교도 : 일탈 사회학의 한 연구』는 역사에 대한 일반 모델의 적용이라는 1950년대 이후 역사 사회학의 전형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그는 이 저서에서 “특정한 공동체가 일탈행동을 어떻게 정의하고 규제하는가에 관한 뒤르켐적 모델을 정교화 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는 거기서 이렇게 말한다.


여기에 수집된 자료는 뉴잉글랜드 지역의 청교도 집단을 새롭게 조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일탈행동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미국 청교도들의 경험은 세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인간 생활의 한 보기로서 취급되었다. 이러한 접근이 바람직한 것인지의 여부는 [···] 궁극적으로 이 연구의 특정한 주제가 아니라 다른 시대의 사람들의 행동을 해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설명 범위에 달려 있을 것이다.”

(스카치폴 : 1991, p446, 재인용)


에릭슨의 설명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역사에 대한 일반 모델을 구성하는 학자들의 주요 관심은 “일반 이론 모델의 내적 논리를 설명하고 정교하게 다듬는”(스카치폴 : 1991, p446)것에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비판에 직면한다. (1) 먼저, 일반 이론 모델을 구성하고자 하는 학자는 일반 이론 모델을 연역적으로 구성하여, 그것을 이미 주어진 모델로 독자들을 혼동시킨다. (2) 다음으로, 연역적으로 주어진 일반 이론 모델의 적합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자의적으로 경험적 사례들을 재구성한다. 즉 중요한 역사적 반증을 ‘의도적’으로 회피한다. 이러한 비판에 대응하기 위하여 이 연구전략을 채택한 학자진영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대안전략을 구현하였다.


[대안1] 렌스키는 “알려진 모든 역사적 사건들의 세계에 일반 모델을 적용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이것은 분명히 중요한 역사적 반증을 의도적 회피하는 두 번째 비판을 넘어설 수 있지만, 연구자가 특정한 사건에 대한 본질적인 관심으로부터 멀어지는 결과가 발생한다.

[대안2] 윌러(David Willer)는 비판(1)을 넘어서기 위하여 주어진 하나의 일반 모델로 역사적 사건을 포착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반대로 “선택적이고 전략적인 관점에서 그 사건에 대한 역사적 논의들을 증명”(스카치폴 :1991, p449)한다. 하지만 이 전략 역시 ‘자의성’의 문제제기를 넘어서지 못한다.


하지만 역사에 적용되는 일반적 이론 모델을 구축하려는 학자들이 렌스키와 윌러의 접근만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스카치폴은 틸리와 월러스타인의 예를 통해 일반 모델의 적용과 결합되는 다른 유형의 연구 전략들을 소개하고 있다. (1) 하나는 유의미한 역사적 해석을 발전시키기 위해 개념을 사용하는 ‘해석적 역사 사회학’이며 다른 하나는 (2) 다른 하나는 역사의 인과적 규칙에 관한 대안적 가설을 탐구하는 ‘분석적 역사 사회학’이다.


6. 연구 전략2 : 역사를 해석하기 위한 개념의 사용


스카치폴이 ‘해석적 역사 사회학’이라고 이름붙인 이 두 번째 연구 전략은 “광범위한 역사적 유형에 대한 유의미한 해석을 발전시키기 위해 개념을 사용한 것”(스카치폴 : 1991, p451)을 의미한다. 이 연구전략은 “이론적 모델을 역사에 적용하거나 대규모 구조와 변동의 유형에 관한 인과적 일반화를 수립하기 위해 가설 검증의 접근 방식”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따라서 이 연구전략이 경제 결정론적 맑스주의와 구조기능주의의 결정론적 경향 및 지나친 일반화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 내지 ‘비판적 대응’의 전략으로 설명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이러한 이론에 대한 회의가 ‘일반성’ 그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이 연구전략은 “자신들의 연구관심을 한정하고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사례 연구로부터 역사적 유형을 뽑아내고 제시하기 위해 항상 명백한 일반성의 개념들을 사용하고 있다”(스카치폴 : 1991, p452). 하지만 이 연구전략이 역사적 인과성에 관한 규칙들을 발견하려는 ‘분석적 역사사회학’과 구별되는 지점은 바로 ‘비교’를 사용하는 목적이다. 그들은 스카치폴이 말하는 ‘대비-지향적’ 비교전략을 사용한다. 이 연구전략은 “개별 사례의 독특한 특성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비교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벤딕스의 비교연구에 대한 설명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다른 연구와 비교함으로써 하나의 구조가 지닌 시계를 확대시킨다. 따라서 유럽의 봉건제는 일본의 봉건제와의 비교를 통해 보다 정확하게 정의될 수 있으며, 서구 문명에서 교회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성직에의 경향성이 발전하지 않은 문명과의 비교를 통해 보다 분명해질 수 있다.”

(스카치폴 : 1991, p453)


해석학적 연구 전략의 강점은 연구 주제가 과거-현재의 두 맥락(context)을 연결할 수 있다는 것에 존재한다. 해석학적 연구 전략은 (1) 과거 행위자들의 지향성과 행동을 취하는 제도적, 문화적 상황과 맥락을 선택하며 (2) 동시에 그것이 현재적 맥락에서 정치적,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주제일 때, 탁월한 연구로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들은 비교의 방법을 통해 사례의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어냄으로써 제한된 사례의 해석을 일반적인 개념을 통해 이루어낸다. 바로 이 지점이 두 번째 연구전략의 장점이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한계가 공존한다. 사례 혹은 역사적 사건의 해석에 치중하는 ‘개념’의 적용은 그 개념에 해당 사례의 역사적 특수성이 결합되어 존재한다. 따라서 ‘해석학적’ 연구전략의 성과를 다른 나라에 확대하려고 시도하는 경우 그것은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며, 개념에 연결되어 있는 잠재적 인과성을 확증하는 것에 약점을 갖는다. 그것은 그 사례의 ‘특수성’을 해석하는 것에 장점이 있는 반면, “왜”라는 질문에 대한 지속적이고 일반적인 관심에 있어 부족하다. 순수한 일반 이론 모델이 역사적 특수성과 다양성을 간과하는 것에 대한 반발로 출현한 이 연구전략은 해당 사례의 역사적 특수성을 잠재적 일반성을 지닌 ‘개념’으로 해석해내지만, ‘이론’으로 발전하는 것에 어려움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연구 전략 또한 다른 연구 전략들과 통합될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7. 연구 전략3 : 역사에서의 인과론적 규칙성의 분석


마지막으로 스카치폴이 주장하는 ‘분석적 역사사회학’의 연구전략은 앞의 두 전략과는 차별화된다. 분석적 연구전략의 목표는 “명백히 정의된 역사적 결과나 유형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구축하는 것이며, 이 전략은 “역사에서도 인과론적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스카치폴  : 1991, p459). 분석적 역사 사회학의 연구 전략의 핵심은 “연구자들이 특정한 기존 이론, 또는 이론들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역사적 유형을 설명하는 데 적합한 구체적인 인과론적 구성논리의 발견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스카치폴 : 1991, p460)에 존재한다. 즉 이 연구전략은 연구주제로 설정된 ‘실재’(the real)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며, 이 실재를 해명하기 위하여 서로 경합하는 이론들을 결합하기도 하며, 새로운 이론을 잠정적으로 구성하기도 한다. 인과론적 규칙성에 대한 발견은 일반적 이론 모델의 연구전략과 같이 ‘미리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실재를 해명하고 설명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 전략이 “독자적인 중요성을 개개의 맥락 탓으로 돌리는 해석적 경향”을 피한다고 하여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일반법칙으로 진술되지 않는 이론적 가설은 결코 탐구할 가치가 없다”는 비어(Samuel Beer)의 ‘보편성의 정론’(dogma of university)을 채택하는 것은 아니다. 이 연구전략은 “특정한 역사적 맥락, 또는 맥락들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설명적 일반화의 작업”에 만족한다(스카치폴 : 1991, p461). 즉 이 연구 전략은 자기제한적 ‘일반화’를 지향한다.


이 연구전략이 자기제한적 일반화를 지향한다는 사실은 스카치폴의 단 하나의 사례만으로도 가능하다는 주장에서 확인된다. 하지만 그것은 ‘가능한 것’이지 ‘충분한 것’은 되지 못한다. 논의의 타당성을 증명하고 연구를 보다 발전시키기 위해서 스카치폴은 ‘비교’의 방법을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단일사례 연구는 분석적 전략보다는 역사 사회학의 처음 두 분야에 더 전형적인 보기이다.”(스카치폴 :1991, p462)


분석 전략의 비교는 대조-지향적 비교와는 구별된다. 분석 전략의 비교는 인과적 규칙성의 발견을 목표로 한다. 인과적 규칙성의 발견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이 비교 전략은 “타당하지 않은 원인들로부터 타당한 원인을 구별하기 위한 변차 통제의 확립을 목표로 하는 사회과학의 다른 방법론적 접근”(스카치폴 : 1991, p464)과 유사하다. 이러한 비교전략으로 스카치폴은 J. S. 밀이 제시한 일치법과 차이법을 유용한 전략으로 제시한다. 스카치폴은 밀의 일치법과 차이법을 통해 인과적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제시한다.


8. 소결 : 연구 전략의 통합전략


2004년에 처음 이 논문을 접했을 때는 스카치폴이 분류한 3가지 유형의 연구 전략이 서로 대립되는 연구전략으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은 3가지 연구 전략이 보다 통합적으로 결합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스카치폴은 역사의 인과론적 규칙성을 발견하려는 분석 전략이 이론적 모델이나 해석적 전략을 대체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가 생각하는 분석적 연구 전략은 ‘특수성’-‘보편성’의 양 극단에 위치하는 해석적 연구 전략과 일반적 모델의 연구 전략을 분석적 연구 전략이 매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분석적 역사 사회학의 실행은 역사 사회학이나 역사적 사례에 대한 일반 모델의 적용에 비해 역사적 증거와의 보다 친밀한 대화를 촉구한다”(스카치폴 : 1991, p473).


특수성 <----------------------------------------------------> 보편성

해석적 연구 전략 ------------ 분석적 연구 전략 ------------- 일반 모델 전략


9. Rethinking Theda Skocpol's Strategy


스카치폴의 연구 전략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동시에 우리 세미나의 주된 목표인 ‘민주주의’ 연구의 주된 접근 전략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역사 사회학의 주된 전통으로 제시되는 스카치폴의 ‘자기제한적 일반화’=‘인과론적 규칙성의 발견’이라는 연구 전략에 대항하여 공개적인 ‘이의’를 제기해볼 필요성이 존재한다.


1) 비교의 독자적 단위는 실재하는가?


스카치폴이 스스로 고백하듯이, 분석적 연구 전략은 “인과론적 규칙에 대한 비교 평가용의 독자적 단위가 발견될 수 있다는 가정”(스카치폴 : 1991, p471)에 근거한다. 월러스타인의 접근인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단 하나의 체제로서 자본주의 근대체제를 설정한다면, 우리는 비교의 독자적인 단위를 설정할 수 없다. 비교가 아닌 다른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2) 밀의 ‘인과관계’에 대한 규정은 실재하는 인과성을 반영하는가?


비교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비교의 방법으로 제시된 밀의 논리관계 증명법은 ‘분석’을 위한 올바른 인과관계를 보장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밀의 인과관계에 대한 개념은 흄적 인과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흄적 인과개념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인과관계를 구성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사건들의 규칙적 결합 속에서 인과관계를 파악하려는 흄-밀적 인과개념은 기본적으로 사회와 자연관계 모두에서 그러한 규칙적 결합이 아주 드물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못한다.


3) 모델(model)이 ‘인과성’과 결합될 수 있다.


스카치폴은 역사에서 규칙적인 인과성을 발견하는 전략을 연구가설의 검토 및 수정과정과 동일한 과정으로 파악한다. 하지만 인과성을 발견하려는 전략이 가설과 연결될 필요는 없다. 반대로 인과성을 발견하려는 전략은 모델과 결합되어야만 한다. 즉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모델(model)의 구축이 가능하고, 실제로 역사 사회학은 경험에 열려 있는 모델의 구축이 보다 일반적인 전략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10. 민주주의 이행 모델(model) :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


J. A. 슘페터(Schumpeter)는 『경제발전의 이론』(1912)에서 모순적인 연구전략을 통해 자본주의의 성장과 동학에 대한 혁신적 규명을 해낸다. 그는 “자본주의의 성장과 동학에 관련한 책이지만 전혀 성장이 없는 자본주의 경제를 설명하는 데서 시작한다. 슘페터는 책의 앞부분에서 애덤 스미스와 밀 그리고 마르크스와 케인스 등의 세계에 성장을 가져오는 요인 즉 자본축적을 결여한 자본주의를 설명한다. 이들과는 달리 슘페터는 축적 없는 자본주의 즉 생산의 흐름이 완전히 정태적이고 변화가 없으며 결코 부의 창조를 바꾸거나 확장하지 않는 ‘순환적 흐름’ 속에서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자본주의를 묘사한다”(하일브로너 : 2006, p389). 이것은 일종의 ‘정상상태’에 대한 모델이다.


슘페터의 연구 전략을 모방하여 우리가 아주 정태적인 순환적인 흐름을 가진 ‘민주주의’ 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면, 우리는 순환적 흐름의 연관고리를 해체하면서 민주주의 이행의 동력과 동학을 구성하는 동태적 민주주의 모델로 이동하는 어떤 흐름을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맑스가 추상화되고 단순화된 물물교환의 과정으로부터 보다 복잡하고 세부적인 근대 자본주의의 구조와 동학을 해명하듯이, 우리 또한 아주 정태적이고 단순한 모델로부터 근대 민주주의의 구조와 동학을 설명하는 모델로 이행할 수는 없을까? 그런데, 이것이 베버의 이념형(Ideal type)적 접근과는 어떻게 구별되는 것일까.....요?


^_________^ I don't know.


· 참고문헌


1. 테다 스카치폴, 「역사사회학의 방법과 전망」, 『역사 사회학의 방법과 전망』, 한국 사회학연구소, 1991.

2. 마가렛 아처 외, 『초월적 실재론과 과학』, 한울아카데미, 2004

3. 한국비교사회연구회, 『비교사회학 : 방법과 실제1』, 열음사, 1990

4. 김용학·임현진, 『비교사회학』, 나남출판, 1998.

5. L. 하일브로너, 『세속의 철학자들』, 이마고, 2005.

 

 
본문스크랩 [스카치폴] 사회구조적 설명의 필요성 낙서장

2008/01/07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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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블로그 > Bleistifte des Ganndalf
원본 http://blog.naver.com/ganndalf/140009361796

사회구조적 설명의 필요성

테다 스카치폴

 

* 원제 : “Explaining Revolutions : In Quest of a Social-Structural Approach”(1976)
* 출처 : 혁명의 사회이론, 김진균 편, p14~p40, 부분발췌

 


이 글을 통해 스카치폴이 주장하려고 하는 핵심은 기존의 사회과학적 혁명이론이 혁명을 해명하거나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카치폴은 혁명을 포함하는 보다 포괄적인 현상들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다음과 같이 3가지로 분류한다.

 

(1) 집합심리학적 이론
정치적 폭력이나 저항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동기라는 관점에서 혁명을 설명하는 것

 

(2) 체계/가치합의 이론
혁명을 사회체계상의 극심한 불균형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운동의 폭력적 반응으로 설명하는 것

 

(3) 정치적 갈등 이론
정치권력을 목표로 하여 경쟁하고 있는 조직화된 집단과 정부 사이의 갈등으로 설명하는 것

 

스카치폴은 이러한 이론들이 ‘주어진 구체적 역사적 상황에 처해 있는 특정한 복합 사회 속에서의 제도적 발달의 유형에 관한 가설이 아니라 반란을 일으키는 대중들의 정신상태나 의식적인 혁명적 전위들의 출현에 대한 가설을 통해서 혁명의 발생을 설명’하려고 하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고 비판하며, 방법론적으로는 ‘혁명이 실패하였거나 일어나지 않았던 부정적 경우들과 혁명이 발생하였던 몇 개의 긍정적 경우들을 체계적으로 비교함으로써, 가설들을 귀납적으로 정립하고 검증하기 위한 비교사적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행동이나 사회과정 일반에 관한 추상적이고 연역적인 가설들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혁명을 설명하고 수많은 분석단위들을 토대로 하여 그 가설들을 통계적으로 검증하려 한다는 데 가장 큰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즉, 스카치폴의 이 글은 사회심리학적 설명방식과 보편주의적 연역적 설명방식에 대한 이론과 방법론적 비판을 포함하며, 이러한 설명방식의 대안으로 구조적이고 비교사적인 접근방식을 지향하는 이론적 방향의 재조정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1. 집합심리학적 혁명이론

 

집합심리학적 이론은 “모든 정치현상들과 마찬가지로, 혁명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시작된다”고 가정하고 있으며, 따라서 인간의 심리적 동기의 역할을 다룬 여러 이론들로부터 설명력을 찾아내려고 한다. 혁명에 대한 가장 유력하고 발전된 형태의 집합심리학적 설명은 “불만이 폭력적 갈등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표면상 자명한 전제로부터” 출발하며, 좌절을 그것의 인지된 동인(動因)에 대한 폭력적인 공격행동과 연결시키는 심리학적 이론의 도움을 빌어서 이 전제를 해명하려고 한다.

 

데이비스(James Davies), 파이어아벤트 부부, 네스볼트 그리고 거어(Gurr)가 중심학자이며, 거어의 저작 『인간은 왜 반란하는가(Why Men Rebel)』는 좌절-공격이론(frustration-aggression theory)에 기초한 모델 중에서 대표적으로 가장 정교하고 매우 세련된 것이다.

 

좌절-공격이론가들은 혁명을, 기본적으로 어떤 정신의 구조에 의해서 야기된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정치적 행동의 하나로 ‘보는’ 경향이 있다. Gurr는 ‘정치적 폭력’을 “한 정치적 공동체 내부에서 정치체제 및 그 체제의 집권자들뿐 아니라 경쟁하는 정치적 집단을 포함하는 행위자들, 혹은 그 체제의 정책에 대한 모든 집합적인 공격”이란 의미로 사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적 폭력은 “ 두 가지 의미에서 정치체제를 위협한다. ··· 국가에 귀속된 폭력의 독점 ··· 정상적인 정치적 과정의 방해”가 그것이다. 거어는 혁명이 가져오는 광범위한 변동의 크기나 종류에는 관심이 없고 혁명의 파괴성에만 관심을 갖는다. 즉 이러한 집합적 사건들을 다른 사건들로부터 구별시켜주는 결정적 속성으로서 한 유형의 행동, 즉 ‘불법적 폭력에의 의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상대적 박탈감 - “인간의 가치기대(사람들이 스스로가 정당하게 소유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재화와 삶의 조건)와 인간의 가치능력(사람들이 스스로가 도달하거나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재화와 삶의 조건) 사이의 인지된 불일치” - 은 정치적 폭력의 잠재력을 산출하는 좌절적 조건으로 기술된다. 상대적 박탈감은 사회가 변동을 경험할 때마다 사람들 속에서 어느 정도 생성된다고 상정되고 있다. 상대적 박탈감에 기인하는 불만이 일단 생성되면, 그것 때문에 발생하는 집합적 정치적 폭력의 크기와 형태는, 상대적인 박탈감이 사회 속에서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는 범위와 그 강도 및 정치적 폭력의 일반화된 잠재력의 구체적 표현을 조정하고 규제하는 여러 가지 매개변수들의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

 

거어의 전체적 모델에서는, 특히 혁명은 ‘대중’과 사회의 주변적 ‘엘리트’에게 동시에 영향을 미치고 그리하여 폭력에의 광범위한 참여와 폭력의 신중한 조직화를 가져오는 넓고 강력한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단순한 반응일 뿐이라고 설명된다. 거어에 의하면, 대중들에게만 국한되어 있는 상대적 박탈감은 소란만을 일으킬 뿐이다.

 

모든 집합심리학적 이론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그 이론이 개인들의 집합에 귀속된 주관적 지향들에 관한 가설에 다소간 직접적으로 의존하여 사회과정을 설명하려 한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론적 전략은 설명되어야할 사건들이 개인적 행동의 직접적 표현으로 인식되고, 그리하여 ‘정치적 폭력’에 초점이 두어지는 한에 있어서만 겨우 표면적으로라도 그럴 듯하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혁명, 쿠데타, 반란 심지어는 폭동까지도 무정형의 집합이 아니라 집합적으로 동원되고 조직화된 집단들이, 그들을 다른 동원된 집단들과 갈등관계에 빠뜨리는 목표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폭력에 참여하게 되는 사건들이다. 게다가 여러 유형의 정치적 폭력을 분류하고 명칭을 붙이는 일반적 기준은 행위자들의 사회구조적 위치와 정치적 갈등과정에서 의해서 야기된 사회정치적 결과들이다. 무엇보다도 혁명은 개인 행동의 어떤 동질적인 유형이 단순하게 극단적으로 표현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혁명은 서로 다른 사황에 처해 있고, 동기화도 다른 집단을 포함하는 갈등이 전개되는 복합적 상황이며, 한 정체의 폭력적 파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정치적 질서를 출현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좌절-공격이론가들이 설사 개인적인 정치적 폭력의 성향이나 모든 유형들이 합쳐진 순수한 집합적 결과를 설명할 수 있을지라도, 그들은 혁명의 원인이나 정치적 갈등의 어떤 다른 독특한 형태를 우리에게 새롭게 밝혀줄 수는 없는 것이다.

 

2. 체계/가치 합의 이론

 

대중의 불만이 좌절-공격이론가들에게는 혁명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 요인이지만, 체계의 위기, 그리고 특히 혁명적 이데올로기가 체계/가치합의 이론가들에게는 핵심적 요인들이다. 이 시각을 정치적 혁명의 설명에 가장 완벽하고 적절하게 사용했던 것은, 1966년에 발행한 존슨(Chalmeers Johnson)의 『혁명적 변동』이다.

 

존손에게 있어서, 혁명이란, 보통 폭력을 제한하는 기능을 하는 “시민적 사회관계 속에 폭력을 개입시키는 특별한 종류의 사회변동”이다. 존슨은 폭력을, 파괴를 향한 감정적 충동으로서가 아니라, 파괴와 함께 전체 사회의 재구성을 포함하는 변동을 성취하기 위한 합리적인 전략으로서 간주한다. 따라서 그는 혁명의 분석과 설명이 일정한 사회구조이론에 준거하여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존슨이 준거점으로 삼고 있는 사회학이론이 파슨즈의 체계이론이라는 사실은 치명적인 것이며, 사회통합과 변동에 관한 이 이론의 시각 때문에, 존슨은 혁명적 변동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설명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파슨즈류의 학자들과 같이, 존슨도 정상적인 사회 혹은 위기가 없는 사회는 사회의 핵심적 가치지향들을 규범과 역할 속에서 표현하고 명시하는, 내적으로 일관된 일련의 제도들로서 인식되어야 한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가치지향은 사회화과정을 통해 내면화되어 그 사회의 대부분의 정상적인 성인 구성원들의 개인적인 도덕적 기준과 현실규정의 기준이 되어버린 가치지향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한 사회의 지배적인 세계관과 개인들의 개별적 지향은 서로 아주 유사하며, 모든 객관적인 사회구조적 위기는 지배적인 세계관의 붕괴와 대안적인 사회적 가치지향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이데올로기의 대중적 수용 속에서 자동적으로 반영된다는 결론이, 사회적 통합의 기초에 관한 위와 같은 개념으로부터 도출된다. 존슨은 이러한 파슨즈의 사회통합이론의 논리적 결과들을 주저없이 받아들인다.

 

따라서 존슨에 따르면, 한 사회의 위기는 그 사회의 가치나 환경이 중대할 정도로 시간적으로 불일치할 때마다 나타난다. 위기의 원인은 내적혁신이든 외부적 영향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원인이 무엇이든 위기는 항상 사회구성원들이 지향의 상실을 경험하면서 촉진된다. 그 결과 ‘개인적 불균형’이 광범하게 경험되고, 과거의 가치합의의 관점에서 이제까지 ‘일탈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개인적 집단적 행동이 증가한다. 바로 이 순간에 혁신적인 대안적 가치지향을 중심으로 한 이데올로기적 운동들이 결합하고 수많은 추종자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할 때 비로소 혁명적 상황은 도래한다.

 

그러나 혁명적 상황이 완전히 성숙하더라도, 존슨에 따르면 혁명이 실제로 성공할 것인가의 여부는 무엇보다도 합법적 권력당국이 가치와 환경의 “재조화를 향하여 움직일 수 있는 체계의 능력과 그 체계 자체에 대한 비일탈적 행위자들의 신뢰를 유지시켜줄”정책들을 발전시킬 자발적 의사가 있고, 또 그렇게 할 능력이 있는가에 달려있다. 권력당국이 "재조화“의 정책을 시행하려고 하지만, 성공적 혁명을 방해하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강압에 의존할 수도 있다.

 

요약하면, 존슨은 집합심리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혁명을 회피하려면 그 시민들을 만족시켜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존슨에게 있어서 특이한 점은, 충족되어야 하는 것이 단지 시민들의 관습적인 혹은 획득된 욕구가 아니라 그들의 내면화된 가치기준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좌절-공격이론가들의 경우 혁명운동이 불만층들의 분노를 표현하기 때문에 성공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체계/가치합의 이론가들에게 있어 혁명운동은 지향상실자들을 새로운 사회적 가치에 몰입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3. 정치갈등론적 시각

 

집합적 폭력과 혁명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집합심리학적 이론가와 체계/가치합의 이론가 모두, 불만이나 지향 상실에 초점을 맞추고 제도적 요인과 조직적 요인을 매개변수의 역할로 전락시키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하지만, 정치갈등론적 시각은 오히려 정치적 목표를 위한 조직화된 집단갈등의 역할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시각의 대변자가 틸리이다.

 

정치갈등론적 시각은 정치적 폭력을 불만이나 사회적 해체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접근방식에 대한 비판속에서 발전하였다. 틸리에 따르면, 거어, 데이비스, 존슨 같은 이론가들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폭력이 동원된-즉, 자원을 통제하며 조직화된-집단과 통치권력 사이의 정치적 갈등이라는 과정의 부산물이라는 점을 보지 못하였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틸리는 ‘정치적 갈등’을 관심의 중심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는 정부(강압의 주요 수단들을 통제하는 조직체)와 정치적 조직체 구성원과 도전자 들을 포함하는 권력 경쟁자들을 그 주요 구성요소로 하는 일반적 모델의 도움을 받아 정치적 갈등을 분석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틸 리가 정치적 폭력을 설명하려는 경쟁적인 접근방식들을 비판, 반박하고 나서 혁명들을 특징지우고 상세히 설명하려는 자신의 시도로 되돌아오면, 그는 상대적 박탈감과 이데올로기적 전향에 관한 낡은 가설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틸리가 혁명은 복합적 사건이며 혁명의 발생은 몇 가지의 상대적으로 독립된 과정들이 수렴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그는 계급갈등과 사회변동의 측면을 무시하고 있으며, 정치적 주권을 둘러싼 투쟁이라는 한 측면만을 분석적 설명의 관심사로 삼고 있다. 틸리는 내란, 국제적 정복, 민족적 분리주의 운동과 마찬가지로 혁명도 단순히 복수의 주권이 존재하는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혁명적 상황을 보다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경쟁하는 집단들의 투쟁대상인 목표의 특별한 성격이라면, 혁명에 관해서 설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이러한 특별한 목표를 성취하려고 의도하는 경쟁자들의 출현과 그들의 호소이다. 하지만 틸리는 혁명의 원인을 제시해야할 지점에 이르면 사회심리학적 가설에 의존한다. 존슨을 그대로 모방하여 틸리는 잠재적 경쟁자들은 항상 존재하고 있으며 진정한 문제는 그러한 경쟁자들이 언제 증가하고 동원되는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즉 불만은 중심적 설명요인으로 다시 나타나며, 종속변수는 이제 폭력적 행동이 아니며 혁명적 엘리트나 연합 혹은 조직을 옹호하는 묵종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정치갈등론적 시각은 조직화된 정치적 활동이 강조되기 때문에 국가가 중심적인 것이 된다. 그러나 복수주권의 존재에 대한 틸리의 강조는 국가의 역할을 평범하게 만들어 버린다. 국가는 하나 이상의 완성된 혁명적 조직체 또는 세력과 어느 정도 대등한 입장에서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조직체로 묘사된다. 사회의 구성원들은 정부를 지지할 것인가 또는 혁명적 조직체를 지지할 것인가를 자유롭고 신중하게 선택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그들의 선택은 혁명적 상황이 전개될 것인가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요컨대, 정치갈등이론가들은 체계 또는 사회체계를 파괴하거나 전복시키는 혁명적 행동에 직접적으로 몰입하는 불만에 찬, 지향을 상실한 혹은 도덕적으로 분노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개념을 명백히 거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혁명의 원인에 관하여 대체로 사회심리학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불만에 찬 혹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전향한 사람들로부터 사회적 지지를 얻으려는 호소를 통해서 정부조직에 도전하는 조직화된 의식적 혁명가들이라는 이미지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4. 구조적 비교사적 접근법의 모색

 

혁명에 대한 기존의 세 가지 접근방식은 동일한 이미지를 공유하고 있다.

 

(1) 사회체계나 주민들 속의 변화 또는 그것들에 영향을 미치는 변화는 불만, 사회적 지향상실 혹은 집합적 동원을 위한 새로운 집단과 잠재력을 낳는다.

(2) 그 이후 현존하는 정부, 더 나아가 전체 사회질서를 위식적으로 전복시키려 하는 광범위한 기반을 가진 의도적인 운동이 등장한다.

(3) 마지막으로 혁명운동은 ‘권력당국’이나 ‘정부’와 끝까지 싸우며, 만일 승리할 경우, 자기 자신의 통제권, 권위 혹은 사회적 변혁의 계획을 수립하는 데 착수한다.

 

즉, 혁명 발생의 기본적 조건이 현존하는 정치질서나 사회질서를 전복시킬 것을 목표로 하는 지도자와 추종자가 결합된, 신중한 노력이 사회나 국민으로부터 출현한다는 주장이 공통적이다. 이러한 이미지에 집착하면 사회구조적 설명을 지향하는 이론들조차도 사회심리학적 설명으로 변화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혁명의 설명에 있어서 핵심적인 쟁점으로서 사람들의 감정과 의식에 분석자의 주의를 필연적으로 집중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운동은 국가, 계급 그리고 지배의 정상적 유형의 위기가 발생한 이후에야 비로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그러한 위기의 발생은, 혁명을 설명하기 위해서 먼저 설명되어야 할 중요한 사실의 하나이다. 게다가 모든 혁명적 위기에 있어서,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해있고 서로 다른 동기를 가진 여러 관련 집단들은, 그들이 처음에는 예측하지 못했거나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들을 궁극적으로 발생시키는 다양한 갈등의 복합적 전개과정 속에 참여하게 된다. 따라서 혁명이론의 타당성은 분석가가 혁명 참여자들의 관점을 초월하여 주어진 역사적 보기들을 넘어서서, 혁명이 일어났던 상황과 혁명이 진행되었던 과정 속에서 비슷한 제도적 역사적 상황적 유형들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과 필요성에 의존한다.

 

혁명의 설명은, 총체적으로 인식된 혁명적 상황의 출현과 혁명에 참여하는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해 있는 집단들의 다양하게 동기화된 행위의 복합적이고 비의도적인 결합을 문제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결합은 ‘한 주어진 집단이 아무리 핵심적인 집단일지라도 그 집단의 원래 의도와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 전체적 변동을 낳는 결합’을 의미한다. 우리는 특정한 사회적 제도적 관계 속에서의 집단의 상호 관련 상황과 역동적인 국제적 영역 속에서의 사회의 상호관계에 초점을 동시에 맞추어야만, 그러한 복잡성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비개인적이고 비주관적인 관점을 취하는 것은 일반적 의미에서 사회역사적 현실에 대한 구조적 시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관점을 취하는 것이다. 비개인적이고 비주관적인 관점이란 ‘개인, 지위, 집단 사이의 제도화된 관계의 유형을 강조하는 관점’을 의미한다.

 

혁명이론에 대한 연역적 일반화, 즉 모든 시대와 장소 그리고 모든 종류의 사회정치적 질서에서 가능하고 비슷하다고 인식된 어떤 일반적 혁명과정에 대한 일반적인 명제를 연역하려는 시도, 이러한 연역적 일반화의 이론구성 전략은 세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

 

(1) 너무 일반적인 이론적 명제들은, 간단하게 일차원적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현상들을 설명하는데만 적합하며, 혁명과 같이 그 성격상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인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것에는 부적합하다.

(2) 사회구조적 접근방식을 택한다면, 우리는 다양한 특정 형태의 사회들의 관점에서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까지 알려진 모든 종류의 사회들을 총괄하여 그 사회들의 정치적 제도나 사회경제적 제도에 관해서 말한다는 것은 거의 혹은 전혀 의미가 없다.

(3) 근본적으로 연역적으로 일반화하는 이론구성의 방법은 혁명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전혀 현실적 의미를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엄밀한 정의에 따르면 혁명이 일어났던 경우는 매우 소수에 지나지 않으며, 이 모든 경우도 ‘근대화’의 시기에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혁명과정 자체는 부분적으로는 보편적이 아닌 특별한 사회정치적 구조에 독특한 것으로, 그 나머지 부분에 있어서는 특정한 종류의 세계사적 구조에 특수한 것으로 가정되어야 한다.

 

혁명은 ‘이론적 주제’로 취급될 수 있다. 혁명에 관하여 귀납적으로 일반화하고 혁명의 원인과 결과에 관한 가설들을 증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몇몇 국가의 역사적 궤적을 비교의 단위로서 선택하는 <비교사적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변수들은 너무나 많고 구체적 경우들이 충분하게 존재하지 않을 때 필연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다변수분석 방법으로서의 비교분석은 국가적 정치적 갈등과 발전에 관심이 있고 세계적 맥락의 변수들의 국가적 발전에 대한 엄청난 영향력을 민감하게 의식하고 있는 거시사회학자가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과학적 도구이다.

 

5.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평가

 

혁명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설명은 많은 점에서 모범적이다.

 

(1)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고수하는, 혁명과정의 일반적 이미지는 혁명적 위기를 발생시키는 데 있어서 사회구조적 모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2) 이론적 목적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모든 혁명들이 똑 같은 것은 아니라고 가정한다. 즉, 혁명이 일어났던 여러 특정 사회들의 생산력 및 생산관계와 계급구조의 구체적 분석을 통해 각 유형의 혁명의 특별한 변형들을 구별한다.

(3)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혁명이 대규모적인 사회변동의 보다 광범한 과정과 내재적으로 연결된 것이라고 간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로부터 도출된 혁명과정의 이론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솔직히 다음과 같다. 생산양식을 변화시키고 서로 다른 생산양식들을 구분시켜주는 계급투쟁을 발생시키는 사회경제적인 발전에 의해서 혁명이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적인 기본적 설명도식은, 실제 역사적 혁명들의 전체적 논리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혁명들에 있어서 핵심적으로 중요하였던 정치적 갈등은 계급적 관점만 가지고는 이해될 수 없다. 혁명적 상황에는 경제적 ‘모순’뿐만 아니라 정치적·군사적 모순도 포함된다.

 

또한 혁명에 있어서의 국가의 중심적 역할을 과소평가하였다. 마르크스주의적 학자들은 국가의 강력함과 그 구조 및 국가조직과 계급구조의 관계를 지칭하는 인과적 변수들이, 계급구조와 경제발전의 유형만을 지칭하는 변수들보다, 성공한 혁명의 경우와 실패한 혁명의 경우 혹은 혁명이 전혀 일어나지 않은 경우를 훨씬 잘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또한 그들은 군대와 행정조직 같은 국가조직의 구조와 기능 및 국가와 사회계급의 관계가 보다 더 직접적인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이것은 국가발전의 비혁명적 유형으로부터 혁명을 구분시켜주는 독특한 제도적 변동을 밝혀내지 못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논평의 여러 주장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새로운 이론적 전략을 통해서만 혁명의 설명에 있어서 실질적인 진보가 이루어질 수 있다.

(2) 새로운 이론적 전략이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사회구조적 설명방법과 가설검증의 비교사적 방법을 종합하는 전략이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거시이론적 전통의 특징인 이론적 이해와 역사적 유관성을 융합하고, 엄밀한 가설검증의 관심을 결합시킴으로써 추상적이고 현실 유관성이 없는 ‘이론화’와 ‘경험적 부적절성’이라는 두 가지 위험을 회피할 수 있다.


 
본문스크랩 [스카치폴] 혁명적 이데올로기의 역할 낙서장

2008/01/07 20:02

 

http://blog.naver.com/sickduck/20045738860

출처 블로그 > Bleistifte des Ganndalf
원본 http://blog.naver.com/ganndalf/140018034104
 

혁명적 이데올로기의 역할


* 출처 : 테다 스카치폴, 『국가와 사회혁명 : 혁명의 비교연구』, pp183~188

* 부분발췌 + 내 언어로 정리(약간)


혁명지도층을 정치가들로 생각하는 연구자들은 대개 혁명지도층이 취하는 이데올로기들, 예를 들면 <자코뱅주의> 혹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등이 혁명의 결과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한다고 믿거나 주장한다. 또 그러한 이념들은 혁명지도자들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동할 때 추구하는 실천적 전략을 보여준다고 믿는다. 혁명과정과 결과에서 혁명적 전위집단의 이념적 방침이 주요하다고 보는 분석태도는 어떤 한 가지 가정에 입각해 있는 것이 통례다. 이 견해에 따르면, 구체제에 원래부터 내재해 있던 투쟁과 모순이 사회적 위기를 가져오고 이로 인해 혁명적 변혁이 가능해지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적 변화의 실제적 성취는, 특히 어떤 종류의 특수한 변화가 성취되는가는 확고하고 조직적 혁명 전위집단의 의도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혁명의 결과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도층의 이데올로기적 비전을 살펴야 하는 논리가 성립하는 듯 하다. 그밖에 달리 개방된 사회적 위기 속에서의 여러 가지 가능성들 중에서 특정 가능성들만이 실현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는 고려해 볼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혁명 이데올로기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 한번 따져 보기로 하자.


<자코뱅주의>나 <마르크스-레닌주의> 등과 같은 혁명이데올로기들은 확실히 사회혁명적 상황하에서 국가권력의 기초를 세워 정착시키려는 정치지도층들을 결속시키는 기능을 하는 듯하다. 또한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들을 따름으로써 혁명정치가들은 적절한 방식으로 투쟁할 수 있게 되었다. [···] <자코뱅주의>나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같은 혁명 이데올로기가, 그것을 취한 정치엘리트들이 사회혁명 상황 속에서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도록 도울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이 이데올로기들은 출신배경이 아주 다른 사람들을 <동료적 시민>이나 <동지>로서 함께 뭉치고 고무할 수 있었던 (그들의 역사적이고 민족적 맥락 속에서는) 보편적 교리였다. [···] 따라서 혁명 이데올로기들은 국가권력을 재건하고 이를 행사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도록 전면에 내세워졌다.


둘째로, 이 이데올로기들로 혁명엘리트는 대중을 정치적 투쟁과 행동에 가담시키고 전향시켰다. 이러한 방침은 비록 많은 사람들을 정말 전향시키지는 못했을지라도 적어도 자코뱅당과 볼세비키당, 중국공산당이 반혁명분자들에 대한 정치군사투쟁을 벌이는 데 중요한 보조역할을 했다. 그런데 반혁명분자들은 이념적, 물질적 이해타산을 함으로써 대중의 자발성을 기대할 수도 도움을 얻을 수도 없었다.


세 번째는, <자코뱅주의>와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둘 다 세속화된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이를 믿는 사람들에게 지상에서의 궁극적인 정치적 목표-‘일반의사’의 구현이나 ‘계급없는 사회’로의 진보 등과 같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을 써도 좋다는 것을 정당화해주었다. 그리고 비트너(Egon Bittner)의 견해처럼 만일 전체주의적 이념들이 집단 내에서 유일한 신앙으로 떠받들리게 되면, 특정한 성격의 조직장치를 세우는 일이 절실히 요구되기 십상이다. 특정한 상징이나 지도자들을 정점으로 한 집단적 위계적 권위질서에 맞춰 조직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것을 꾀하는 통제장치가 이에 속할 것이다. 혁명으로 인한 ‘내란’의 특징인 끝없는 정치투쟁 과정에서는 그런 장치가 소수의 무장세력에게 큰 이점을 줄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혁명 이데올로기와 그 이데올로기에 동조하는 민중은, 이 세 나라의 대규모 사회혁명에서 의심할 나위 없이 필수적인 요소들이었다. 그렇지만 이에 더하여 어떤 의미에서든지 그 이데올로기의 구체적 내용이 혁명의 결과나 혹은 혁명을 정착시킨 국가조직을 건설했던 혁명가들의행위와 꼭 맞아 떨어진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혁명 이데올로기를 혁명가들의 행위와 혁명의 결과에 대한 청사진으로 보는 어떠한 논리도, 프랑스, 러시아, 중국에서 전개된 사회혁명적 상황 속에서 <자코뱅주의>와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실제로 어떻게 발전했고 작용해나갔는가에 대해서 역사적 증거에 입각한 정확한 진상을 밝혀주지 못했다.


자코뱅 이데올로기는 단지 1년가량만 혁명 프랑스를 장악할 수 있었고, “덕의 통치”는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그 대신 자코뱅당은 자신들을 사로 잡았던 혁명의 성공에 필수적이었던, 보다 세속적인 과업-국가건설과 혁명의 수호-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러시아의 볼세비키당은 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지리멸렬된 농촌지역에서 마르크스사회주의의 명목하에 국가권력을 장악해야할 긴박성에 쫓겼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에 직접적으로 모순이 되는 과업과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자각했다. 결국 스탈린주의의 승리는 사실상 마르크스주의의 모든 이상을 왜곡시켰고 전복시켰으며 관료주의와 상비군제도를 일소하려던 1917년의 레닌의 구상과 완전히 어긋나는 것이었다. 중국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고유한 방식대로 도시프롤레타리아의 봉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려 시도했다. 이것이 실패로 돌아간 뒤, 일이 여의치 않게 되자, 농촌의 군대 주둔지역에 기반을 둔 새롭고도 실천가능한 농민지향운동이 이미 일어난 일을 정당화하고 명문화하기위해 <毛>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뒤로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실천적 과정에서 기본적인 이론에서 벗어났을 경우 정당화가 필요하다면 언제나 이것에 보조이론이 덧붙여졌다.


간단히 말해, 혁명상황에서의 이념지향적 지도층은 기존의 구조적 상황에 의해 크제 제약을 받으며 신속히 변화하는 혁명의 흐름으로 흑심한 곤란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그들은 아주 다른 과업을 성취하거나 그들이 원래부터 (아마 그때 이래로 계속된) 이데올로기적으로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새로운 체제의 강화를 촉진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통례였었다. 일단 우리가 하나의 분명한 사실을 깨닫고 이를 검토해 봤다면, 이런 일은 별로 놀랄 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 사실이란, 만일 의지가 강한 혁명가가 마음먹기만 한다면 일시에 모든 것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역사의 극한적인 상황이 혁명적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한지 이유로서, 혁명적 상황은 원래 어떤 환경하에서, 어떤 구체제하에서 그것이 발생했는가에 따라 특수한 형태를 가지며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의 특수한 연쇄를 창조한다. 더 나아가 혁명적 상황이 주어진 사회 내에서 무엇인가를 가능하게 하는 매개변수들을 신속히 변화시키는 계급투쟁과 제도의 붕괴를 가져오기는 하지만 항시 많은 조건들-특히 사회경제적 조건들-이 구체제로부터 이월된다. 이런 조건들 역시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특수한 연쇄를 창조하며 혁명가들은 새로운 체제를 정착시키려고 할 때, 그 한계 내에서 움직여야만 한다. 그리고 모든 혁명적 변혁이 발생하는 주어진 세계사적, 국제적 배경 역시 같은 작용을 한다. [···] 따라서 나는 이데올로기적 세계관이나 강령의 시각에서 혁명의 진전을 설명하고 해석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우리는 혁명적 위기의 형태와 구체제의 유산들이 국가를 건설하려는 혁명지도층의 노력과 성취를 어떻게 구체화시켰고, 또 어떻게 제약했는가에 중점을 둘 작정이다.

 

스카치폴의 국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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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방 ⓕ | 2007/06/24 (일)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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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여자의 어디를 보고 반할까?

남자는 여자의 어디를 보고 반할까?


‘얼굴은 예쁜데 몸매가 엉망인 여자’ 와 ‘얼굴은 별로지만 몸매는 좋은 여자’ 중 남자들은 어떤 여자를 더 좋아할까? 남자 100명에게 물어본 결과 60%이상의 남성이 얼굴은 별로지만 몸매가 좋은 여자를 선택했다. 그렇다면 ‘몸매’ 란 구체적으로 어떤 몸매를 바라는 걸까? 남자들이 가장 많이 보는 여자의 신체 부위 1,2,3 위를 공개한다.

▪ 1위- 다리

남자들이 가장 많이 보는 부위는 ‘날씬한 다리’로 나타났다. 가장 많은 수의 남성은 여성의 날씬한 다리를 보고 섹시함을 느끼거나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대학생 이한식(25세,가명)씨는 “여자의 날씬한 다리는 남자를 끄는 매력이 확실히 있다.

 
얼굴은 별로여도 각선미가 아름다운 여성은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 ” 고 전한다.

▪ 2위- 가슴

여성의 섹시미를 한층 더 해주는 것은 풍만한 가슴이다. ‘날씬한 다리’에 아깝게 밀리긴 했지만 상당수의 남자들은 여성의 풍만하고 보기 좋은 가슴을 좋아한다. 직장인 나인기(34세, 가명)씨는 “가슴이 있는 여성들은 확실히 옷맵시가 사는 것 같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자라고 해도 가슴이 납작하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 이라 전한다.

▪ 3위-허리

세 번째로 남자들의 선택을 받은 곳은 ‘허리’이다. 많은 남성들이 잘록한 허리가 드러나는 쫄티를 입은 여성을 보면 상당히 감동(?)을 받는다고 전한다. 잘록한 허리라 함은 날씬한 복부와 함께 허리와 엉덩이의 비율이 적당하여 허리가 ‘쏙’ 들어간 모습을 말한다. 이 밖에도 날씬한 팔뚝과 갸름한 턱선 등이 뒤이어 랭크되었다.

다리도 굵고 가슴도 작은데다가 허리도 통자인 여성이라면 한숨부터 나올지 모른다. 도무지 어느 한 군데라도 ‘완소’ 몸매가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낙담할 필요는 전혀 없다. 위의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여성이라 해도 약간의 ‘의술’의 힘을 빌리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나도 가능할까’ 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수술을 어디에’ 해야 효과가 좋은 지에 대한 정보이다. 미쉘클리닉 최영환 대표원장(www.meshell.co.kr)에게 완소 몸매 만들기의 비법을 들었다.

▻ 알통 없이 매끈한 다리를 위해

▪ 워터젯 지방흡입=종아리의 곡선을 찾기 위해서는 종아리와 발목의 워터젯 지방흡입이 효과적이다. 종아리 전후좌우 모든 면을 시술할 수 있으며 두꺼운 발목은 과도한 지방을 효과적으로 제거하여 잘록하고 가느다란 발목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워터젯 지방흡입술을 물을 이용하여 혈관과 신경을 지방세포와 분리해주는데, 물분사를 이용했기 때문에 안전하게 지방만 흡입이 가능하며, 피부의 탄력이 탱탱하게 유지되어 만족도가 높다.

▪ 근육제거=수술 없이 알통만 제거하는 효과적 방법으로 최근 많이 알려진 비수술적근육퇴축술이 있다. 부작용 위험이 없어 안전하게 시술받을 수 있고 알통의 원인이 되는 비복근의 근육신경을 차단하면 발달된 종아리 근육이 수축되면서 알통이 확실하게 줄어들게 된다.

▻ 섹시한 가슴을 위해

▪ 코히시브 젤 가슴확대=코히시브 젤, 줄여서 ‘코젤’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가슴확대에 쓰이는 보형물이다. 가슴성형전문의 윤경준 미셸클리닉 원장은 “기존 보형물의 단점을 완벽히 보완한 코젤은 말랑말랑한 상태의 실리콘 백으로 이루어져 촉감이 실제 가슴처럼 우수하다. 또한 젤리 같은 상태로, 파열이 되더라도 인체에 흘러들지 않아 안전하다” 고 조언했다.

▻ 날씬 허리라인를 위해

▪ 지용봉 지방흡입= ‘지용봉’이란 ‘지방을 용해시켜주는 봉’인데, 초음파를 방사하여 지방을 녹인 뒤 쉽게 체외로 배출된다. 지방을 녹여서 빼내는 것이기 때문에 마찰이 거의 필요치 않고 빠른 시간 안에 지방이 제거될 수 있다. 최영환 대표원장은 “지용봉은 옆구리, 팔뚝, 얼굴 살등 숨어있는 군살제거에 효과가 탁월하다. 특히 지방흡입 후 보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위해 재수술를 원할 시에도 그 만족도가 높아 지용봉 지방흡입술을 많이 시술하고 있다"고 요즘 추세를 말했다.

[OSEN=생활문화팀]osen@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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